208. 걷히는 안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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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걷히는 안개 (2)
2022.03.27.
젠킨스는 아이들에게 귀신 이야기를 해줄 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테라는 미간을 찡그린 채 몸을 뒤로 기울이며 고개를 저었다.
“놀라게 하는 건 싫어요. 그러니까 괜히 극적인 효과를 넣거나, 갑자기 달려들면서 왁! 하고 고함을 지르는 건 하지 마세요.”
“후후후, 그런 부탁은 휴슬리에게 했으면 좋았을걸. 바로 그런 일이 휴슬리의 병실에서 일어났거든. JL의 연구실로 옮겨진 지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어. 계속 경련만 하고 있던 휴슬리가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켰지. 새로운 증상을 발견한 연구원들이 반색을 하고 다가가려는 순간, 휴슬리는 날아올랐어. 말 그대로 날아올랐지. 그리고 순식간에 방에 있던 세 명의 연구원과 차후에 지원을 하러 들어갔던 네 명의 연구원 모두를 공격해서 적어도 한 차례 이상씩 물어뜯었지. 박테리아가 인간의 몸에 대한 파악을 끝냈던 거야. 계속 경련하듯 흔들면서 근육의 양과 이완, 수축하는 방향, 관절의 기능 따위를 알아가고 있었던 거지. 그 결과, 휴슬리는 지금의 우리가 아는 좀비들처럼 아주 훌륭한 운동 능력을 선보였어. 감각과 신경의 도움이 없이 그 모든 걸 해냈다고! 연구원들은 일단 피 흘리는 동료를 부축하고 그 방에서 달아났어. 휴슬리는 왼쪽 다리가 침대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달아나는 걸 제지하지 못했지. 관절을 잘라줄 만큼 날카로운 구속 장치가 아니었거든.”
“그래서 그 연구원들은 얼마 만에 좀비로 변했나요?”
지친 목소리의 테라가 물었다. 타인들의 과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겪었던 경악과 공포, 아픔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아 견디기가 힘이 든다. 반면, 젠킨스의 목소리는 점점 더 기세를 높이는 중이다.
“개인들마다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고열에 시달리던 희생자들은 대개 두 달 정도 만에 심장이 정지했어. JL은 연구소 전체를 폐쇄하고 해당 기관에 출입했던 인원 전부를 격리했지만, 더 이상의 전이는 없었지. 공기 전염이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게 된 JL은 휴슬리와 7인의 연구원에게 동물실험을 시작했어. 쥐나 토끼 같은 작은 동물들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자 점점 대상이 대형화되었고, 비슷한 종을 동원했지. 하지만 좀비들은 유인원에게조차 전혀 반응하지 않았어. 오로지 인간을 마주하고 있을 때만 흥분하며 공격성을 드러냈지. 그러니 어쩌겠어, 인간을 원하면 인간을 주는 수밖에. 자원은 꽤나 풍부했지. 작년의 경우라면 난민의 수만 천삼백만 정도였으니까…… 굳이 애써가며 다른 대상자들을 물색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고.”
“지금 숫자를 잘못 말하신 거 아닌가요? 아까는 백만이라고 했으면서 지금은 천삼백만 명이라뇨. 순식간에 열 배가 넘게 늘었다고요.”
“아니, 말이 바뀐 건 없어. 소말리아의 난민이 백만이라고 했지. 전 세계 난민을 다 따지면 천삼백만. 물론 그 수가 점점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아. 그 절반 정도가 미얀마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아시아 출신, 삼분의 일 정도가 아프리카……. 저기 말이지, 테라 양. 이제 슬슬 내 이야기를 신뢰하면서 들을 때도 됐잖아? 하여간 그런 대상들 중에서 혈액검사 결과에 따라 선별한 소수들만을 연구소로 이동시켰고, 그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발견을 할 수 있었지. 그 동그란 초콜릿 파이 더 있나?”
테라는 초코파이 두 개를 다시 팔걸이에 올려놓았고, 젠킨스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크게 한입을 베어 물었다. 테라로서는 보는 것만으로도 질릴 만큼 빠르게, 많이 먹어 댄다.
그것도 아침 식사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이 역겨운 이야기를 하면서. 퉁퉁한 손가락에 묻은 것까지 쪽쪽 빨아먹고 있는 젠킨스에게 테라가 물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조지아의 그 연구소에서 실험의 희생자가 된 건가요? 그리고 칠레에서 보고된 첫 희생자를 조지아까지 옮겨갔던 이유는 또 뭐죠? 지구의 양 끝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먼데요.”
“그럴 리가……. 그렇게 하면 이동 거리도 너무 멀고, 대기 시간이 길어지니까 효율도 떨어지지. 그래서 난민들의 위치에서 가까운 연구소를 우선해서 분산 수용했지. 콜롬비아, 과테말라, 필리핀, 인도네시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이탈리아, 에리트레아…… 뭐, 다양했어.”
하아~ 듣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테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 사람을 희생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 그렇게나 많았다니, 그것도 전 세계 여러 나라에…….
그중에는 테라가 최근 방문했던 나라도 포함되어 있다. 그 희생이 일어났던 장소 곁을 자신이 지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구역질이 난다.
“대체 뭘 위해서 그렇게까지…….”
“그 목적이라……. 테라 양, 귀하가 이 귀한 과자들을 투자해 가면서 나의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들을 꾹 참으며 듣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거시적으로 보자면 JL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며 그 연구를 진행했던 것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네. JL은 미지의 무언가를 만났고, 일단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었던 거야. 그래야만 그것으로 뭘 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으니까. 사실 애초부터 용도라고 하면 단 한 가지뿐이지만……. ‘신은 생명을 만들고, 우리는 더 건강한 삶을 만듭니다?’ 그런 건 다 개소리지. 이게 JL의 슬로건이지만, 어떤 회사도 그런 걸 위해서 일하지는 않아. 목표는 언제나 돈이지. 그 누구도 확보해 본 적이 없는 엄청난 액수의 돈. JL은 좀비들이 역사상 최고의 판매 사원이 되어줄 거라고 예상했지. 효율은 엄청나면서 동시에 복지도, 급료도, 장비도 요구하지 않는, 그런 판매 사원 말이야. 물론 널 키드를 찾기 전에는 아무것도 준비되는 게 없으니 낙관만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읍, 테라는 치솟는 구역질을 가까스로 참았다. 슬슬 견디기 힘든 부분을 향해 이야기가 치닫고 있다.
“……끔찍한 이야기네요. 그러니까 좀비를 퍼뜨리고 백신을 판매하려고 했다, 이런 말인가요? 그렇게까지 하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희생시켜 가며 실험을 하고, 그 후에도 또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서 그 공포를 무기로 삼아 약을 팔고…….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나치도 아니고…….”
테라의 날 선 공격에도 젠킨스는 별로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냉혹하게 들리겠지만,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다른 존재의 희생을 통해서 이득을 얻어. 그리고 그걸 합리화시키거나 애써 외면하지. 그 점에서는 테라 양도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세상이 평화롭던 시절, 아침마다 마시던 한 잔의 커피만 예로 들어도 그렇지. 커피를 마시면서 콜롬비아나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수확했을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나 풍족하지 못한 삶에 대해 고민하던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인정해. 인간이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존재고, 그래서 자신의 고통을 타인에게 미룰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아.”
“그렇지 않아요! 저는…….”
벌떡 일어나서 ‘저는 달라요!’라고 항변하려던 테라는 곧 입을 다물어 버렸다.
물린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아이들과 여자들에 둘러싸인 곳에서 생활했다. 아무도 그녀에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답을 해준 적이 없고, 면역자라는 것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을 때에도 그렇게 처신했던 것이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변해 버리면 주변에 있는 가장 약한 존재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걸 빤히 알면서…… 오로지 자신의 안전을 위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테라는 더 이상 논리를 펴기가 어려워졌다. 힘없이 다시 의자에 앉는 테라를 보며 젠킨스는 꺼억, 하고 트림을 했다. 테라는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좀 쉴게요. 과자를 먹고 싶으면 드세요. 하지만 이야기는 잠깐 멈춰요. 너무 잔인하고 괴로운 이야기라서 계속 듣고 있기가 무척 힘이 들어요.”
젠킨스는 사양하지 않고 멸균우유와 건빵 봉지를 집어갔다. 건빵을 우물거리던 젠킨스가 테라의 발가락에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그 발가락은 누구에게 언제 물린 건가? 상처를 직접 좀 보고 싶은데, 붕대를 걷어봐 줄 수 있을까?”
테라는 고개를 들어 젠킨스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알려 드리고 싶지 않아요. 나를 연구의 대상으로 보지 마세요.”
“혹시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누가 알겠어?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대스타께서 진정한 구세주인 널 키드일 수도 있는 것 아니야? 후후후, 그러면 정말 기가 막힌 일 아닌가. 미녀의 피라……. ‘겉모습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혈관 속을 흐르는 피까지도 아름답습니다’ 이 카피를 사용하면 다른 널 키드의 항체보다 네 항체가 몇 배나 비싸도 사람들은 그걸 살 텐데 말이야. 후후후후.”
“널 키드가 아니에요. 확실히 아니니까 관심 끊으라고요.”
“그건 아쉽군……. 왜 그걸 확신하게 되었지? 좀비들이 공격하던가? 어디서? 내 기억에 테라 양은 꽤나 초기부터 이 수용소에 있었는데……. 좀비들을 대면할 기회 자체가 없었을 거라고.”
테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젠킨스라는 인간을, 그리고 그가 몸담았던 JL이라는 회사를 혐오하고 있다.
게다가 이 잔인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자신을 이용하려 드는 것도 원치 않는다. 아무런 단서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응? 응? 어때? 정말로 물리고 난 뒤, 좀비와 단둘이서 대면한 적이 있나?
젠킨스는 계속해서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럴 때는 차라리 이쪽에서 대화의 주도권을 쥔 채 상대방이 계속 대답만 하도록 하는 편이 낫다.
후우~ 테라는 다시 좀비 연대기를 듣기로 마음먹고 물었다.
“돈이라고는 하지만, 널 키드의 존재를 발견한 게 얼마 되지 않았다면서요? 그럼 그 이전에는 항체도, 백신도 없었다는 의미 아닌가요?”
“맞아. JL에겐 상품‘만’ 없었지. 판로도, 소비자도, 대량생산할 수 있는 설비도 다 준비되어 있었는데 말이야. 그거야말로 기업에게는 최적의 조건이었다고 할까? 물건을 확보하는 그 순간, 판매를 시작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그 반대의 경우를 상상해 보면 될 거야. 상품은 갖춰졌는데 마케팅이나 유통망의 부족으로 그것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말이야. 잘 모를 테지만, 시장에는 그렇게 잊히는 상품들이 엄청나게 많거든. 그중에는 아주 빼어난 상품들도 있고.”
아니, 나도 잘 알아요…….
테라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양 그룹의 작은 회장이 그녀들을 점찍었을 때, 소속사 사장은 완곡하게 거절했었다.
허허, 회장님, 얘네 아직 미성년자들입니다. 좀만 더 기다려 주시죠…….
아하! 그렇구나. 애들이 어려서 안 되는 거구나…….
작은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그리고 곧바로 노골적이면서도 집요한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그녀들의 음악을 틀어주지 않았고, 방송과 인터넷에서 핑크 펀치라는 네 글자는 사라졌다. 그녀들에 관한 게시물에는 조직적인 악성 리플과 욕설이 달렸다.
수청을 거절하고 채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핑크 펀치뿐 아니라 소속사 전체 모든 연예인의 스케줄 표에는 아무런 일정도 적혀 있지 않게 되었다. 더럽고 치사한 일이었다.
톡톡.
상념에 잠겨 있던 테라는 젠킨스가 의자를 두들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위해 남겨두었던 캔 음료 하나를 올려주며 물었다.
“그 상품이라는 건…… 좀비들에 대한 항체를 말하는 거겠죠? 개발되었나요?”
이것이 이 소름 끼치는 대화를 지금까지 끌고 온 이유였다.
상품화된 항체라는 건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존재한다면 어떻게 그걸 손에 넣을 수 있는 걸까?
테라의 질문에 젠킨스는 가볍게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러고는 정색을 한 채 입을 열었다.
“하하하, 그건 자본주의를 우습게 보는 질문이군. 자본은 끊임없는 증식을 목표로 해. 증식할 수단이 사라지는 순간, 소멸하기 시작한단 의미지. 항체라……. 물론 그것도 팔 계획이었어. 하지만 그건 끝이 선명하게 보이는 시장이 아닌가. 전 세계 인구가 모두 그 항체를 하나씩 구입한다고 해도 60억 개로 판매가 마감돼. JL이 목표로 삼았던 연구는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오래도록 지속되는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지. JL은 모든 항체가 필락시스 진처럼 영구적으로 작용하면서도 아나필락시스 진처럼 두 번째 접촉부터 쇼크를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랐어. 그리고 그 쇼크를 억제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지. 약의 효능은 24시간으로 한정시키려 했고. 그렇게 하면 항체를 구입한 모든 구매자가 살아 있는 동안 평생 JL의 충성스런 소비자가 되는 거니까 말이야.”
“거창한 이야기지만, 실제 개발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라 들리네요. 목표로 했다, 노력했다, 바랐다……. 전부 이룬 게 아니라 꿈꿨던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결국…… 실패했군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테라는 자신의 의견이 부정당하기를 원했다.
‘아니, 이제 곧 백신을 실은 비행기가 올걸?’ 따위의 당돌하고 자신만만한 대답이 돌아와 주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이 지긋지긋한 좀비 세상도 끝이 나는 거니까.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 달리 젠킨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식욕이 사라졌다는 듯, 먹던 것을 놓고 얼굴을 쓸어내린다. 지금까지의 자신만만하고 야심 찬 태도와는 꽤 큰 차이가 있는 행동이었다.
“그래……. 실패했어. 완전히 망했지. 대실패라고 할까?”
젠킨스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실패의 원인은 연구 능력의 부족 같은 게 아니었어. 계속 좀비에만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느라 인간에게 무관심하고 소홀했던 게 문제였지.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했던 거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올해 봄이었어. 널 키드를 확보한 덕에 앱테크나야의 연구소에서 드디어 백신과 쇼크 억제제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을 때, 아주 작은 사고가 일어났어. 합선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는데, 그곳은 실험체로 사용하다 폐기하기로 결정한 좀비들을 보관하던 창고였지. 그까짓 것들이야 다 타버리든 말든 큰 상관이 없고, 자체적으로 진화할 능력도 충분했는데, 누군가 신고를 한 거야. 출동한 소방관들이 셔터를 여는 바람에 좀비들이 풀려나 버린 거지. 젠장! 그야말로 난리가 났어. 도시 하나가 홀랑 뒤집혀 버렸지.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부수적인 피해는 2에서 3만 정도에 불과했어. 도시 경계를 막고, 좀비들을 모두 처리해 버리면 끝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갑자기 러시아가…… 확실히 밝혀진 증거는 없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러시아였다고 생각하는데…… 미사일을 발사해 버렸어. 어떤 매뉴얼에 기반을 둔 결정이었는지 그건 지금도 모르겠어. 하여간 도시와 그 인근 전역이 허망하게 날아가 버렸지. 완전히……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린 거야. 젠장, 널 키드가…… JL의 100년을 책임질 미래가 거기에 있었는데…….”
어지간히 분한지 젠킨스는 회상을 하는 내내 턱을 쥐어뜯었다. 테라는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널 키드가 그렇게 죽어버렸다는 건 알겠어요. 그래서 더 이상 백신의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것도 이해했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갑자기 왜 한국이 좀비들의 공격 대상이 된 건지, 그 부분이 연결이 안 돼요.”
하, 젠킨스는 답답하다는 듯 테라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이 나라만 이런 꼴이 된 게 아니야. 전 세계야. 전 세계가 거의 동시에 좀비들의 공격을 받은 거라고.”
전 세계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테라의 뇌리에는 엄마와 아빠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펜사콜라의 집과 해변의 전경이 그 바로 뒤를 이어 떠올랐다. 가슴속에 품고 있던 단 하나의 희망과 바람.
설마…….
테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여기만 이런 게 아니라고요? 미국도, 미국도 같은 상황이란 말이에요?”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브라질, 일본, 호주…… 또 어느 나라가 궁금해? 물어봐. 얼마든지 대답해 주지. 어차피 대답은 똑같으니까. 전부 같은 꼴이야. 모조리 좀비들에게 덮여 버렸다고.”
“왜, 왜요?”
테라가 울상을 지으며 물었고, 역시 찌푸린 얼굴로 젠킨스가 대답했다.
“사랑이야. 빌어먹을 사랑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