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REDEMPTION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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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REDEMPTION (6)
2022.03.25.
젠킨스와 헤어진 후, 테라는 천천히 3루 측 내야석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원래대로라면 주부와 아이들로 둘러싸인 그녀의 성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지금은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서 생각을 좀 하고 싶었다.
“하아~”
꾹꾹 참아왔던 한숨이 터져 나오자 그것을 기점으로 팔다리가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흥분과 기대, 두려움과 쾌감이 한꺼번에 밀려온 탓이다.
지난 14일, 시몬에게 물렸던, 그래서 스스로 발가락을 잘랐던 그날 이후 처음으로 자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못하고 누구에게서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 좀비에 물리고도 살아남는 사람들…….
자신과 같은, 그런 사람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자신이 기이한 돌연변이이거나 좀비의 피를 몸 안에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괴물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유형에 속한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조금은 구원을 받은 것 같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았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사람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잘린 발가락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다.
그동안 내내 테라는 두려웠다. 자신의 핏줄을 타고 돌아다니는 더러운 좀비의 세균이 언제든지 번식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남몰래 떨어야 했다.
자신의 까만 눈동자가 흰 막으로 덮이고, 그 혐오스러운 괴물들처럼 변하는 악몽도 여러 번 꾸었다.
그리고 그 악몽은 언제나, 머리가 펑! 하고 터져서 죽은 격리장의 그 중년 여자와 오버랩되며 끝을 맺곤 했다. 이제 그 두려움을 벗어버려도 된다.
“다행이야, 다행이야, 잘됐어…….”
내야석의 상단에 앉아 눈물을 훔친 테라는 자신의 가냘픈 허벅지를 두 손으로 쓸며 연신 안도의 말을 중얼거렸다.
이제 겨우 평범한 사람들과 비슷해졌다. 좀비에게 감염되어 썩어가고 있을 내부 장기 어딘가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젠킨스의 말이 사실이기만 한다면.
거짓말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젠킨스의 이야기들은 솔직히…… 황당했다. 몇 년 동안 좀비에 관해 연구했다는 것부터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만분의 일이니, 십만분의 일이니, 일억분의 일이니 하는 단위들도 너무 어마어마하다.
평소였다면 테라 역시 코웃음을 치고 말 이야기다. 하지만 바로 그녀 자신이 좀비에 물리고도 살아남은 당사자가 아닌가.
게다가 젠킨스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는 좀비 면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모두들 물리면 그것이 곧 끝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테라는 일단 젠킨스의 이야기를 믿기로 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인정해 버리면 두려움과 걱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그럼 나는 그 세 가지 유형의 면역 유전자 중 어떤 것일까?’
우습게도 아나필락시스 진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든다.
단 한 번이라도 면역이 작용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해야 맞겠지만, 이왕이면 앞으로도 계속 좀비가 될 걱정이 없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혹시…… 널 키드일 가능성도 있는 걸까? 1억분의 1에 든다고?
그것이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테라는 잠시 상상을 해봤다. 엄마, 아빠에게, 그리고 제니에게 자신의 피를 나누어 주는 상상…….
그러나 곧 격리 시설에서 난리를 치던 그 중년 여자 좀비의 생생한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 행복한 상상은 깨져 버렸다.
자신과 수정 언니를 향해 팔을 휘저어 대던 좀비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래, 맞아……. 좀비의 눈에 보였잖아. 그러니 널 키드는 아니겠지.
예상치 못했던 자신의 욕심을 깨닫고 테라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욕심쟁이네, 나……. 후후.’
내일은 젠킨스에게 아나필락시스 진과 필락시스 진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테라는 먼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노을로 물든 하늘이 점점 붉어지다가 어둑함 저편으로 잠겨간다.
자주 보던 풍경이지만, 오늘은 그 아름다움이 각별하게 느껴져서 테라는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젠킨스는 테라가 지정한 장소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서성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아침 식사 배급을 받기도 전일 만큼 이른 시간이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몫을 먹어 치운 뒤였다.
테라는 그가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천천히 아침을 먹고, 아이들과 조금 시간을 보낸 뒤에야 사물함으로 가서 과자들을 챙겼다.
“이만큼만 가져가야지.”
과자의 양도 어제보다 약간 줄여 담았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이지만 그의 행태를 보고 테라가 내린 결론은, 젠킨스의 위장은 적당히 비어 있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어제 그가 처음 치근덕거렸을 때에는 제니의 흉내를 내서 겁을 줬지만, 협박은 테라의 전문 분야가 아니다.
매번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성욕에까지 신경이 미치지 않을 정도로 식욕을 활성화시켜 둘 필요가 있다.
“늦었구나. 후우~ 계속 기다렸는데……. 혹시 어제 내가 했던 말들을 오해해서 안 오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다. 오, 크래커를 가지고 왔네? 마침 딱 그게 먹고 싶던 참이었거든.”
아침이어서 아직 그리 덥지 않은데도 젠킨스는 끊임없이 땀을 흘리고 입가를 손으로 닦았다.
절제라는 게 사라진 그의 지금 모습은 내부의 무언가가 버터처럼 계속 줄줄 녹아 흘러내리는 듯한, 그런 이미지다.
“아무 데라도 가서 좀 앉으면 어떨까? 기다리느라고 계속 서 있었더니 허리가 아파.”
젠킨스의 제안에 테라는 고개를 끄덕여 줬다.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이 이방인과 함께 서 있으며 눈길을 끄는 건 그녀 역시도 원하지 않는 바였다. 물론 이 욕망덩어리와 으슥한 곳에서 단둘이 있는 건 더 싫다.
그래서 그들이 택한 장소는 내야석의 한구석. 두 사람은 의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 시선을 그라운드에 둔 채 이야기를 나눴다.
“어제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는 조지아의 널 키드에 관한 것이었지? 오늘도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면 될까?”
“아뇨. 그보다 아나필락시스 진과 필락시스 진에 대해 먼저 듣고 싶어요. 그 두 유형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말이에요.”
테라는 비어 있는 의자 팔걸이에 조그만 크래커 봉지를 올려놓았고, 젠킨스는 얼른 그걸 집었다. 거래가 개시되었다.
“널 키드가 아니라? 그건 또 의외구나. 사람들은 대부분 구세주에게 더 관심이 많은데. 뭐, 내겐 상관이 없는 일이다만…….”
젠킨스는 크래커를 두 개씩 겹쳐 입안으로 욱여넣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두 유형 모두 항체가 생길 때 두통이 발생한다는 점에서는 같아. 어지럽거나 메스껍거나, 심하게는 정신을 잃는 경우도 있지. 말 그대로 몸 전체의 모든 세포들이 좀비 박테리아와 전쟁을 치르는 것이니까 짧은 시간에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거든.”
테라는 그 기분을 안다. 스스로 발가락을 자르고 방 안으로 들어가던 중에 핑글 돈다는 기분이 들었고, 곧바로 기절해서 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깨어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발가락을 자른 쇼크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거기까지는 동일하지만, 필락시스 진의 경우에는 하루 이상,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체온이 올라가지. 한쪽 눈의 실핏줄이 터져서 흰자가 붉게 물드는 경우도 보고되기는 했지만, 그건 보편적인 특성은 아니야. 물론 더 정확하게 분류하기 위해서는 혈청을 확보해서 항체를 살펴봐야겠지.”
테라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봤다.
눈의 혈관이 터진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심장박동은? 그건 모르겠다. 체온도 마찬가지고.
워낙 더운 여름날이었고, 당장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소한 문제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었다.
결국 검사를 받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건가…….
단서는 여러 가지 얻었지만, 자신이 두 유형 중 어디에 속하는가 하는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다. 답답하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테라는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잠시만요, 젠킨스 씨.”
크래커 한 줄을 다 먹어 치우면서도 열심히 떠벌이던 젠킨스가 고개를 돌린다.
“응? 왜 그러지?”
“저기…… 이런 것들을 다 어떻게 아는 거죠? 단순히 컴퓨터로 계산을 해서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니잖아요. 감염이 된 후의 반응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실제 눈으로 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테라의 질문에 젠킨스는 잠시 입을 다물고 퉁퉁한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를 두드렸다. 그러고는 이어 말했다.
“음……. 이 시점에서 우리가 대화를 더 진행하기 전에 먼저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무슨 뜻인가요?”
“어제 너는 나에게 한 가지 조항을 달았지.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 말이야.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합의를 했고. 그런데 말이지, 지금 네가 물어본 질문 같은 경우에는 어제의 그 계약과 나의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도록 한단 말이지.”
“어떤 기본권을 말씀하시는 거죠?”
“스스로에게 불리하게 작용할지 모르는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지. 왜, 알잖아? 형사 드라마에서 범인에게 수갑을 채울 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해 주는 형태로 대중매체에서도 수없이 재생산되었으니까.”
젠킨스는 뻔뻔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한 채 에둘렀고, 테라는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장황한 수식어는 빼고,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해봐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 도스토예프스키 씨.”
“후~ 좋아. 뭐, 이런 거지. 너는 진실을 듣고 싶어 해. 그래서 나에게 이 과자를 미끼로 주고 있지. 아, 물론 너의 행동을 비하하려는 건 아니야. 우리가 서로 선의에 기반을 두고 충실히 계약을 이행하고 있다는 의미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너의 궁금증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내놓은 진실한 답변 때문에 나에 대한 너의 가치판단이 부정적으로 변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생긴다면, 그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계약이 파기될지도 모르는 부담을 안고서라도 너에게 진실을 말하는 게 옳을까, 아니면 왜곡된 말로 위기를 모면해 보려는 시도를 해야 옳을까? 젠장, 말이 또 길어졌군. 다시 정리하자. 그래, 이런 질문으로 대체하지. 테라 양, 너의 윤리 의식은 호기심보다 강한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테라는 잠시 고민했다.
대체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기에 이 남자는 이렇게까지 엉덩이를 빼는 걸까?
“빨간 알약을 선택한다면 끔찍한 이야기를 해주실 모양이네요…….”
“음, 아주 끔찍하다고 할 수 있겠지. 의사 결정권자들을 제외한다면, 우리 회사의 법무팀 중에서도 극히 제한된 인원만이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고 있으니까. 만약 네가 원하지 않거나 마음의 준비가 미비한 상황이라면 우리는 이 주제를 살짝 덮어두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어. 서로가 상처받지 않고 이야기와 과자를 계속 교환할 수 있도록 말이야.”
그렇게 대답하는 젠킨스의 표정에서 죄의식이나 부끄러움은 전혀 읽을 수 없었다. 몇 초 정도 뜸을 들이던 테라가 무겁게 입을 뗐다.
“제 생각에…… 지금 제 호기심은 윤리 의식보다 강한 것 같아요.”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 진실이라는 것에는 선악의 판단이 결코 줄 수 없는 쾌감이 있거든. 그러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때문에 나에게 불이익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받은 거지? 네가 나를 범죄자라고 군인들에게 신고하거나, 나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과자를 다 챙겨서 가버리거나 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도 될까?”
“네, 약속하겠어요. 그러니까 진실을 말하세요.”
테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젠킨스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비어 있는 의자의 팔걸이를 두들겼다. 테라는 초코파이 두 개를 올려놓았다.
“그런 약속들에도 불구하고 이제부터는 행동의 주체를 ‘나’나 ‘우리’가 아니라, 회사의 이름으로 할 계획이야. 그렇게 하는 게 나에 대한 경멸을 완화시켜 줄 거라고 믿으니까……. JL이라는 회사가 있어. 꽤나 유명한 회사지. 그리고 만약 그 이름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이미 JL의 상품을 구입하거나 사용해 본 경험이 있을 거다. 꽤 많은 약과 의료 기계를 만드는 곳이니까. 병원도 운영하고 있지. 최근에 뉴스에서 가장 크게 다뤄졌던 거라고 하면…….”
“……의수였죠. 기억나요.”
테라가 멍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젠킨스는 꽤나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오호, 테라 양이 의료 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구조 중에 두 손을 잃은 소방관 아저씨께 한국 JL이 최신 의수를 선물했거든요. 그 행사에 저와 제니가 초대를 받아서 의수를 낀 소방관 아저씨와 악수를 하고 함께 게임을 했어요. 아무렇게나 섞여 나오는 달걀과 쇠공을 다른 접시로 옮기는 게임이었죠. 그때 놀랐어요. 의수인데도 꽤나 정교한 작업을 빠르게 하시는 걸 보고서.”
“그랬군. 뭐, 당연한 이야기지. 팔의 신경과 전기신호를 주고받으며 작동하니까, 조금만 익숙해지면 기능 면에서는 진짜 자신의 신체와 큰 차이가 없을 거야. 어쨌거나 너도 알고 있는 그 JL이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의 주체다. 좀비 면역 체계에 대한 연구가 어느 특정 단계를 넘어선 시점부터 JL은 살아 있는 인체를 사용했어. 좀비 박테리아는 동물이나 인간의 몸에서 떼어낸 세포에서는 전혀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네가 들었던 그 모든 정보들은 전부 인체 실험을 통해 얻은 지식의 일부란다. 신뢰할 만한 이야기라는 뜻이지.”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젠킨스는 잠시 말을 끊은 채 한 자리 건너에 있는 테라의 눈치를 살폈다. 테라는 믿기 어려웠다.
“말이 안 돼요. 필락시스 진의 경우는 10만분의 1 확률로 발견된다면서요? 그러면 10만 명 이상을 좀비에게 물리도록 했다는 건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10만이면 작은 도시 하나의 전체 인구라고요.”
“말이 돼. 첫째, 유럽이나 미국에서 10만 명이 사라진다면 엄청난 문제가 되겠지만, 분쟁 지역에서 매일 5천 명 정도가 모습을 감추는 건 그리 대단한 뉴스가 아니지. 전쟁으로 어수선한 나라에서는 난민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아무리 문명화된 현대인들이라 해도 다른 대륙의 난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거든. 예를 들어볼까? 넌 소말리아 난민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나?”
테라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젠킨스가 이야기해 주기 전까지 그런 난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네요. 젠킨스 씨의 말이 맞아요. 전혀 몰라요.”
“당연한 거야.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한창 많을 때였던 2013년의 경우에는 정착지를 구하지 못한 난민의 수가 102만이 넘었어. 소말리아 한 나라에서 탈출한 사람만! 그중에 52퍼센트가 17세 이하였고, 정착한 건 15퍼센트 내외에 불과해. 그 외에도 난민은 엄청나게 많은 국가와 지역에서 계속 발생하지. 그러니 10만 같은 건 그리 큰 숫자가 아니야. 말이 되는 둘째 이유는, 샘플 선택의 과정이야. JL 정도 되는 기업이 수만의 사람들을 일렬로 줄 세운 다음 좀비들에게 물리도록 하는, 그런 미련한 방법을 택하지는 않지. 일단 난민촌에서 혈액 샘플을 먼저 채취하는 거야. 명분이야 얼마든지 그럴듯하게 댈 수 있는 거잖아. 의료 지원 차원에서의 건강검진이든, 전염병 검사든 말이야. 그렇게 채취한 혈액에서 적혈구 표면의 항원을 검사하면…… 음, 거기에는 대략 340가지 정도의 항원이 있거든. 하여간 그걸 분석하면 대강은 알 수 있지. 이 혈액의 주인에게서 항체가 생겨날 수 있는지 아닌지 말이야. 그러면서 항체 형성 가능한 대상들만 따로 모으지. 브로커를 통해서 망명시켜 준다고 속이면 실험 대상들은 자발적으로 열심히 이동하니까.”
“세상에……. 그 불쌍한 사람들을…….”
“어? 테라 양, 분명히 이야기했잖아. 귀하의 호기심이 윤리 의식보다 강하다고. 계속 그런 눈으로 나를 보면 나는 거짓말을 꾸며낼 수밖에 없어.”
젠킨스의 말이 맞다. 테라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분노와 소름을 가라앉혔다.
지금 자신이 화를 낸다고 해서 실험체로 이용당한 난민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그 비극이 없던 일이 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테라는 면역체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정보는 역겨운 이야기들 속에 묻혀 있다.
테라는 음료수 팩을 건네는 것으로 자신이 진정되었음을 알려줬다. 젠킨스는 다시 평온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물론 혈액검사의 정확도라는 게 30퍼센트 정도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실험 대상이 연구자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경우도 있어. 항체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해서 박테리아를 주입했는데, 심장이 멈췄다가 좀비가 돼버리는 거지.”
“그렇게 만들어진 좀비들은 어떻게 됐나요?”
테라는 끔찍한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쪼로록―
음료수를 단번에 다 들이마신 뒤, 젠킨스가 대답했다.
“대부분…… 배에 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