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REDEMPTION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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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REDEMPTION (5)
2022.03.24.
“이제야 흥미를 보여주는구나. 후후후, 응, 있고말고. 지금 사람들은 좀비에 물린 피해자들을 무조건 죽이지. 또는 죽도록 방치하거나.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한 가지 확고한 믿음 때문이지. 좀비에 물리면 100퍼센트 전염된다는 가설에 대한 믿음 말이야. 그 가설은 대부분 옳지만, 몇몇 예외적인 경우가 있단다. 좀비에 물린 후에도 죽지도, 전염되지도 않는 사람. 이런 건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이야기지. 어때? 이 정도라면 과자 한 봉지의 값어치로 충분하지 않을까?”
테라의 표정에서 흥미를 읽어낸 젠킨스는 말을 끌며 털북숭이 손을 비볐다. 자신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테라는 안도했다. 그런데 정말로 궁금한 이야기이기는 하다.
좀비에 물리면 변한다는 건 누구나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는 시몬에게 물리고도 아직까지 변하지도, 죽지도 않고 멀쩡히 살아 있다.
대체 그 차이는 무엇 때문에 만들어지는 걸까?
조금이라도 더 잘 알고 싶었지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던 비밀을 지금 이 남자가 대화의 장으로 끌어낸 것이다. 게다가 자기가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냥 아무 거짓말이나 막 늘어놓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뭔가 알고 있는 걸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자 몇 봉지를 더 주고 이야기를 들어본 후에 판단을 해도 늦지 않을 거라는 결론이다.
“좋아요, 여기에서 기다리세요. 과자를 가져오죠.”
거래를 성사시켜 신이 난 젠킨스는 테라의 등에 대고 떠들어 댔다.
“많이 가져와야 해! 여러 가지 맛으로! 나는 위가 크고, 신기한 이야기는 넘치니까.”
잠시 후, 테라는 다용도 비닐봉지에 몇 가지 과자와 음료수를 가지고 돌아왔다. 얼굴이 상기된 걸 보니 걸음을 서두른 게 분명하다.
“자, 과자를 가지고 왔어요. 이야기를 계속해 주세요.”
테라가 내미는 작은 과자 봉지를 뜯어 입에 가져가면서 젠킨스는 생각했다.
한 번에 다 주지 않는군. 이 아이도 어지간히 약다. 하지만 그래도 저 과자가 전부 내 뱃속에 들어갈 거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지…….
그런 생각을 하며 만족한 웃음을 짓던 젠킨스의 시야에 테라의 잘린 발가락이 들어왔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발이……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다친 거지?”
“제 발가락이 아니라 다른 것에 관해서 말해주신다고 했었잖아요.”
테라가 단호하게 주제 변경을 막자, 젠킨스도 납득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말이 맞아. 우리는 좀비들에게 물리고 나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어디에서부터 시작할까……. 좀비를 중심으로 생각하자면 말이지, 이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단다. 녀석들에게 물렸을 때 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물론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아. 비율로 따지자면 대략 10,000대 1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유전자와 관련된 문제라서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엄청 길어질 테니, 그냥 결론만 말하는 거야. 그런데도 목이 마르는군. 그 음료수 좀 마셔도 될까?”
테라에게서 주스 팩을 받은 젠킨스는 빨대를 쪽쪽 빨면서 말을 계속했다.
“만 명 중 한 명 있는 면역자들도 항체의 종류에 따라서 또 세 종류로 나눌 수가 있단다. 사실 여기가 재미있는 부분이지. 첫 번째 경우는 면역이 단발성인 경우야. 가장 쉽게 이해하자면, 말벌에 쏘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처음 한 번 물렸을 때에는 괜찮아. 하지만 그때 독성이 강한 항체가 형성되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물리면 그때는 과다 면역에 의해 즉사하고 좀비로 변하게 되는 거지. 그게 첫 번째 경우고, 항체 중에서는 가장 흔해. 어떤 집단에서는 이런 유전자 유형을 아나필락시스 진이라고도 부르지……. 이번엔 짭짤한 맛 과자를 주면 좋겠는데.”
테라는 작은 포테이토칩 봉지를 건넸다. 젠킨스의 큰 손으로는 서너 번 집으면 다 없어질 정도 양밖에 안 된다.
“자, 이제 두 번째 경우야. 이런 유전자는 더욱 낮은 확률로 발견돼. 10만분의 1 정도 확률이니까 정말 귀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동시에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6만 명 이상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지. 처음 물렸을 때 무사하다는 점에서는 좀 전에 말했던 아나필락시스 진과 같아. 그런데 항체가 형성되면서 차이가 발생해. 이 두 번째 경우의 항체에는 ‘아나’ 즉, 반대가 없고, ‘필락시스’…… 그러니까 방어만 있는 거야. 이 필락시스 진들은 한 번 좀비에 물린 뒤에 항체를 갖게 되고, 쇼크를 일으키지 않으니까 그 뒤에 아무리 몇 차례든 좀비에 물려도 무사해. 물론 급소를 물린다거나 과다 출혈이 생기면 죽겠지.”
젠킨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테라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 둘 중 어느 편일까? 독성이 있는 항체가 생긴 걸까, 아니면 이제부터는 좀비들에게 물려도 무사한 걸까? 아니, 애초에 이 이야기를 어느 정도나 신뢰할 수 있는 걸까?
그런 그녀의 고민을 모르는 젠킨스는 과자를 씹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자, 이제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로 들어가 볼까? 아나필락시스 진과 필락시스 진은 모두 좀비 사회에서 꽤나 유용한 유전자들이야. 적어도 한 번의 재생 티켓을 가지고 있는 거니까 말이지.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보자면 둘 다 그다지 쓸모가 없어. 왜냐하면 그 두 유전자에게서 만들어진 항체는 다른 사람의 몸에 주입되었을 때 효력을 발휘하지 않거든. 다시 말해서 자기들만 좋은 거고, 구세주가 되어주지는 못한다는 거지.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아나필락시스 진이나 필락시스 진을 발견한 멍청이들이 항체를 만든답시고 열등한 머리들을 쥐어짜고 있겠지만, 그건 아무 소용 없는 헛고생일 뿐이야. 절대로 안 된다고! 하지만 세 번째 유형의 유전자는 좀 이야기가 달라. 우리는…… 이런 젠장, 내가 우리라고 말해 버렸구나. 뭐, 어때? 이쯤 되면 내가 관련이 있다는 것쯤 너도 짐작할 수 있겠지. 우리는 이 유전자를 ‘널 키드’라고 불러. N, U, L, L, 키드. 좀비 세상에서 유일한 축복이자 구원이지.”
테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축복의 유전자라고 하면서 어째서 아무 가치가 없다는 의미의 이름을 붙여요? 그리고 이번에는 Gene이 아니라 Kid네요?”
“그건 너무나 귀해서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의미지. 널의 어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제로라는 뜻도 있으니까. 그리고 내 설명을 다 듣고 나면 그런 이름이 적절하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자, 설명을 시작해 보자. 널 키드들은 수학적 가설로만 존재했어. 이 연구의 방대한 데이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슈퍼컴퓨터들이 1억분의 1 확률로 널 키드가 존재할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을 때, 우리의 분위기는 반신반의였거든. 전 세계에 단 60명뿐이라니. 뭔가 허황되기까지 한 느낌의 숫자 아니냐. 하지만 몇 년 뒤, 조지아의 앱테크나야라는 도시에서 널 키드의 실재 존재가 처음으로 확인되었던 거야.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지.”
“잠깐만요. 몇 년 전에 이미 좀비에 대한 연구가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다고요? 좀비가 발생한 지 이제 겨우 보름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요?”
테라가 당황해하며 말을 끊고 묻자 젠킨스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자, 과자를 다오’ 하는 식으로 손을 벌리며 젠킨스가 말했다.
“그것 봐, 점점 네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나오잖아. 게다가 흥미롭기까지 하고 말이야. 이런 대단한 정보들을 고작 과자 몇 봉지를 주면서 들을 수 있다니, 네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알겠지? 후후후, 이번엔 그 초콜릿이 좋겠구나.”
젠킨스는 점점 아까의 그 오만한 표정으로 돌아가 탐욕스럽게 음식을 먹으며 말을 이었다.
“널 키드와 다른 면역 유전자들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항체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다는 점이지. 그리고 더 매력적인 것은 널 키드가 좀비들과 사람, 양쪽 모두에게서 동족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데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널 키드는 단순히 좀비 박테리아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야. 일단 첫 번째 접촉을 하고 항체가 만들어지면 좀비들은 더 이상 널 키드를 공격하지 않아. 자신들과 동류라고 판단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널 키드는 어디까지나 사람인 거야. 상상을 해봐. 백만, 아니, 천만의 좀비들이 운집해서 파도처럼 움직이고 있는데, 그 한가운데에서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역방향으로 좀비들을 헤치며 걸어가는 널 키드의 모습을……. 모세가 홍해를 가르며 걸었던 것보다 더 멋진 장관일 거라고 확신한다. 널 키드는 좀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동시에 구원자인 거지.”
젠킨스는 고개를 젖힌 채 자신의 말에 빠져 환상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테라의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그녀는 그가 했던 말들을 되짚어봤다. 그러고는 물었다.
“그러면 널 키드에게서 얻은 항체를 주입 받은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 모두 다 널 키드처럼 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좀비에게 보이지 않고, 물리지도 않는, 그런 안전한 상태로 바뀔 수 있냐는 뜻이에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아. 널 키드의 항체는 분명 사람들에게 면역 체계를 만들어줘. 원래대로라면 좀비에 물리는 순간 죽어버렸을 인간이 두 번째 삶의 기회를 얻는 거지. 하지만 그 후에 아나필락시스 진이 될지, 필락시스 진이 될지, 또는 정말로 또 다른 널 키드가 될지는 그저 확률에 의해 결정되는 것뿐이야. 그리고 그때에도 널 키드의 확률은 지극히, 아주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낮다는 것만은 확실하지.”
“그렇다는 건…… 그 널 키드라는 존재는, 계속 피를 뽑혀야 하겠네요. 항체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아니면 제가 모르는 어떤 다른 길이 있나요? 최초에 한 번만 항체를 추출하면 그다음엔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젠킨스는 고개를 저었다.
“인공적인 제조법 같은 건 없어. 혈청에서 추출해 내는 게 유일한 방법이야. 네 말대로 널 키드의 피는 굉장히 중요한 자원이 맞아. 그러니 추출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추출해야 하고.”
“그 널 키드가 있는데 왜 아직 좀비 사태가 개선되지 않는 거죠? 조지아의 어떤 도시에서 찾았다면서요? 그럼 항체를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것 같은데. 백신이라든가.”
젠킨스가 피식거리며 웃었다. 자조가 섞인 웃음이었다.
“그게 이 이야기에서 비극적인 부분이지. 좀비는 자신의 동류를 공격하지도, 죽이지도 않지만, 인간은 긴 역사 동안 자신의 동류들을 계속해서 죽여왔거든.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엄청난 숫자를 말이지……. 어쩌면 그게 우리가 가진 가장 두드러진 특성인지도 몰라.”
“설마, 지금 그 귀하고 위대한 널 키드가 죽었다는 말을 하려는 건가요? 그래서 이 모든 이론들이 다 물거품이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로 흘러가는 거냐고요? 그렇다면 전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어지는데요?”
테라가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젠킨스를 보며 물었다. 젠킨스는 아주 당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널 키드의 행방과 그 원인에 대한 이야기는 내일 또 과자를 먹으면서 들려주면 어떨까? 너 정도 영리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본 아이라면 대화의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아니면 믿기지 않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정도는 분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때? 지금 네가 들은 나의 이야기가 단순히 과자에 미친 어떤 중년 뚱보가 먹을 것을 얻어내기 위해 아무렇게나 막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여겨지나? 그렇지 않을걸?”
“모르겠어요. 전…… 전 솔직히 혼란스러워요. 만약에 젠킨스 씨가 정말 그 모든 놀라운 비밀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왜 여기에서 제게 과자를 달라고 하고 있는지부터 모르겠어요. 정말 그런 사람이라면 지금 훨씬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테라가 힘없이 중얼거리는 걸 들으며 젠킨스의 얼굴에는 점점 화색이 돌았다.
“그것 봐. 너도 이제는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잖니? 내가 미친 차별주의자라서 그런 소리를 한 게 아니라니까?”
자신만만하게 운을 뗀 젠킨스는 입술 주변에 묻은 음식 부스러기들을 혀로 날름거리며 테라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어때? 내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가, 테라 양? 널 키드와 항체와 인류의 미래 같은 것 말이야.”
“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새로운 이야기들을 듣고 고민에 빠진 테라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젠킨스가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며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근데 어쩌지? 나는 이제 슬슬 배가 부른 것 같아. 그러니 별로 더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구나. 후후후, 물론 네가 내 입술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있지. 내가 지난 보름 동안 꾹 참았던 건 배고픔만은 아니었거든. 그리고 너는 정말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어. 동양의 신비라는 게 이런 걸까 싶은, 그런 모습이야. 후후후,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음, 아마 잘 알 거다. 너는 영리한 아이니까.”
테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진심이세요? 아니면 이것도 아까처럼 말이 통하는 사람과 만난 기쁨 때문에 나오는 농담인가요? 진심이라면 저 화낼 거예요.”
“그저 농담으로만 원하기에는 네가 너무나 아름답구나. 후후후, 발끈하는, 그런 모습마저도 말이지.”
느릿느릿 징그러운 말투로 그런 소리들을 지껄이며 젠킨스는 점점 더 테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테라의 어깨를 쓸어보려 했다.
그의 손이 테라의 몸에 닿기 직전…….
찰싹―
테라의 작고 하얀 손이 젠킨스의 손등을 때렸다. 물리적으로 아프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가슴 저 안쪽이 흠칫 놀라게 만드는 매서움이 있었다. 아까 아이의 과자를 빼앗으려 할 때 저지했던, 그 손길과도 유사한 느낌이다.
젠킨스는 깜짝 놀라 황급하게 손을 뒤로 물렸다. 그러고 나자 곧바로 수치심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왔다.
감히 이 쪼그만 계집아이가 나를 거부하고 위협해?
“젠킨스 씨.”
젠킨스의 감정이 폭발하기 직전에 테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대단히 위압적으로 느껴진다. 젠킨스는 기가 죽어 한 걸음 물러나면서도 마지막 무기를 꺼냈다.
“우정을 쌓고 싶지 않다면 좋다. 강요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이제 내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다고 기대하지도 마.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고작 과자 몇 봉지에 넘겨받으려는 너는 정말 비양심인 거야. 이런 건 부당한 거래라고.”
“아뇨, 당신은 앞으로도 계속 말하실 수밖에 없을 거예요. 알고 있는 걸 전부 다 말이죠. 제가 정당한 거래가 되도록 해드릴게요.”
테라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평온하게 말했다. 젠킨스의 욕망이 다시 부푼다.
“그럼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냐? 더 깊은 우정을 준다는 뜻이지?”
“당신의 생명은 우리의 우정보다 훨씬 값어치 있는 게 아닐까요? 상상해 보세요. 지금 당장이라도 저기 저 군인들에게 다가가서 내가 몇 마디만 속삭이면 당신이 어떻게 될는지.”
테라는 까만 눈동자를 돌려서 근처를 순찰하고 있는 군인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외국인이 나를 협박하고 욕보이려 했다……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저는 거기에 눈물도 몇 방울 곁들일 생각이에요. 그러면 군인 오빠들의 분노도 훨씬 커질 테니까요. 어때요, 젠킨스 씨.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겠죠? 아마 잘 알 거예요. 아저씨가 그렇게 대단하고 영리한 분이라면.”
자신이 사용한 표현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아치는 테라의 당돌한 얼굴을 보면서, 젠킨스는 상대방을 너무 얕잡아 봤음을 깨달았다.
확실히 실수였다. 하지만 이미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당황하고 있는 젠킨스를 향해 테라가 또박또박 말했다.
“안심하세요. 앞으로도 오늘처럼 당신이 배가 고프다고 하면 나는 이야기를 듣고 당신은 과자를 먹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젠킨스 씨, 당신이 확실히 기억해야 할 것은 한 가지예요. 절대 거짓말은 하지 마세요. 아까 당신이 말했듯이 난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이해하셨죠?”
젠킨스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옛날 생각을 하다가 들떴지만, 이제 다시 초라하고 힘없는 이방인의 신분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외로운 이방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