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REDEMPTION (2)
(202/449)
202. REDEMPTION (2)
(202/449)
202. REDEMPTION (2)
2022.03.21.
휘청.
민구의 고개가 흔들리고 대검을 잡은 손이 아래로 떨어지려 할 때, 밤톨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대검을 바닥에 내려두고 거즈로 상처를 지그시 눌렀다. 압박붕대를 편 밤톨이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그쪽 허리 들어! 이거 넣어서 돌려야 돼!”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주변의 소리들이 길게 일렁였다. 몸이 들려지는 순간 갈비뼈가 욱신거렸고, 가물거리던 민구의 눈은 다시 감겼다. ‘물을 좀 줘……’라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하고 그는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깜빡―
다시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의 몸은 흔들리고 있었다. 땀내가 진동하는 사내의 등에 업힌 채다.
뛰어! 트럭이 왔다!
밤톨의 목소리가 귀를 울린다. 업고 있는 사람이 쿵쿵거리며 땅을 내디딜 때마다 온몸이 돌가루처럼 다 부서져 나가는 것 같다.
깜빡―
어딘가에 누워 있다. 답답한 공기, 쇠의 냄새가 난다. 그리고 바닥에 모포가 깔려 있다. 그…… 트럭이라는 것에 탄 걸까?
주위를 돌아보려는데 목이 돌아가지 않는다. 머리는 계속 빙글빙글 돈다.
밤새도록 소주를 마시고 뻗었을 때와 비슷하지만, 훨씬 더 기운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 바짝 마른 목구멍과 입술은 갈라지다 못해 타오르는 듯하다.
“무…… 무우…….”
‘물’이라는 한 단어를 뱉어내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다. 밤톨이 민구의 얼굴을 보더니 반색을 한다.
“형님! 정신 차리셨네! 혈액형 알려주세요! 형님! 혈액형! 수혈하려면 알아야 합니다!”
다시 뻗으려는 민구의 뺨을 두드리며 밤톨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 옆에서 초희가 답답해 미치겠다는 말투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우, 그냥 자게 놔둬요! 이 군인 오빠, 참 답답하네! 그걸 뭐 자꾸 물어봐요! 빤한 거잖아! B형이야! 100퍼센트 B형이라고! 그건 보나마나지. 강 실장 오빠가 성질이 얼마나 더러운데! 아니, 오빠도 봐서 알잖아요!”
바보 같은 년……. A……형이야……. A. 잘하면 너 때문에 내가 죽겠구나……. 그딴 개소리 그만 지껄이고 물이나 좀…….
하지만 민구의 생각들은 소리로 이어지지 못했다. 다시 눈이 감기기 전에 그의 뇌리를 스친 것은 흔들리는 차의 진동 때문에 죽을 것 같다는 감상이었다.
깜빡―
트럭의 열린 뒷문 사이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리고 밤톨과 무전병이 그를 업고 받치고 해가며 달린다. 구경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어머’라든가, ‘뭐야, 저거’ 따위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졸지에 눈요깃거리로 전락해 버린 자신이 한심하고 슬프지만, 손 하나 까딱할 기운이 없다.
윽, 그러면서도 옆구리에 충격이 가해지기라도 하면 저절로 팔다리가 움찔거렸다.
“비켜요! 비켜! 의무대 어딥니까? 의무대!”
밤톨이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체육관 내부를 가로지른다.
이쪽이야! 이쪽! 한 사람만 와요! 우르르 다 따라오지 말고!
누군가가 알려주는 소리…….
어머! 초희야! 어머! 강 실장 오빠?
언제나 가식으로 덮여 있는 가희의 놀란 목소리도 들렸다.
빛과 사람 얼굴, 그늘과 철책들이 휙휙 스쳐 간다. 그리고 마침내 민구는 안정된 바닥 위에 눕혀졌다.
“여기 어딥니까, 하사님? 의무대 아니잖습니까? 허억! 허억~ 이건 꼭 창고…….”
밤톨이 숨을 헐떡이며 묻는다. 초희도, 무전병도 다 물리치게 하고 두 명의 의무병이 그를 인도한 곳은 체육관과 철책으로 연결된, 허름한 건물 2층의 구석방이었다.
침대 하나, 의자 두 개, 박스들, 책상 위에 놓인 가방 몇 개가 전부다. 냉담한 목소리가 대꾸했다.
“외상자잖나! 그것도 외부에서 외상을 입고 왔고.”
“하지만 총상입니다! 물린 게 아닌데…….”
“그런 말은 다들 해. 나 물렸어요, 하는 사람 본 적 있어? 게다가 너희 좀비랑 접촉도 했고, 교전도 있었다면서? 그러니까 당연히 48시간 외부 격리할 수밖에 없다고. 뭐, 의무대나 여기나 비슷해. 무슨 차이가 있겠나. 무전 받고 미리 침상까지 다 마련해 놨구만.”
“하사님! 좀비와 접촉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드리는 말씀인데, 이분 꼭 살려야 합니다! 이분 아니었으면 좀비들한테 여러 사람 죽었을 겁니다. 의인입니다! 의인! 꼭 좀 살려주셔야 합니다!”
밤톨이 진심을 담아 외치는 소리가 웅웅거리며 귓가를 어지럽혔다.
큭, 의인……. 젠장, 그렇게 고통스럽고 정신이 아득한 상황인데도 민구는 속으로 웃었다. 평생 온갖 별명으로 불려봤지만, 설마 의인이라는 말을 다 듣게 될 거라고는 단 한 순간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의인 아니야, 이 새끼야……. 사람 미안하게 만들지 마……. 오히려 이 세상을 이렇게 좃같은 괴물들이 설치고 돌아다니게 만든 장본인이지……. 젠장…….’
진통제의 효과가 더해진 민구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의식을 잃어가는 동안, 의무대 하사는 그의 팔을 알코올로 닦고 수액부터 찔러 넣었다. 그러고는 밤톨을 돌아보며 말했다.
“살려야 한다? 뭐, 그게 의무대 구호니까 만날 우리도 외치기는 하는데…… 일단 진정해. 부상 부위부터 좀 보고 말하자.”
“군의관님은 안 계십니까? 아니면 혹시 민간인 의사라도…….”
붕대를 풀던 하사는 밤톨의 말에 바로 옆의 의무병을 가리키며 코웃음을 쳤다.
“큭, 의사? 그래, 요새 나랑 쟤가 의사 뺨치긴 하지.”
“그렇습니까? 하사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사님 실력만 믿겠습니다!”
“실력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해야 하는 임무가 의사 뺨친다는 말이야. 골절 기브스해, 찢어진 거 꿰매, 탈진한 사람 보살펴……. 옘병,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뇌수술도 하게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아우! 이거 완전 화상이 심하네……. 뭐야? 왜 이렇게 지져 놨어?”
민구의 옆구리에서 압박붕대와 거즈를 떼어낸 하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밤톨이 이유를 설명한다.
“지, 지혈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대검을 불로 달궈서…….”
“야이, 미련한 새끼야. 무슨 원시인이야? 지금 여기가 무슨 소말리아 해적 수용소냐, 인두로 지져서 지혈을 하게? 너희 다 아이 팩 지급됐을 텐데, 거기에 지혈용 거즈랑 그런 거 들어 있잖아? 그걸로 압박을 해서 피를 멎게 해야지. 아휴, 이 사람 이거 괜찮나? 고문을 당했네, 아주…….”
입으로는 툴툴거리면서도 의무대 하사는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가방에서 화상용 시트를 꺼내 비닐 포장을 뜯고 민구의 상처에 밀착시켰다.
총에 맞아 뜯겨 나간 상처인 데다가 제멋대로 지진 굴곡이 있어서 까다로운 작업이지만, 하사의 손이 워낙 야무졌다. 순식간에 화상 입은 곳이 시트로 덮이자 밤톨이 감탄한다.
“와, 그런 것도 지급이 됩니까?”
“국방부에서 이런 거를 챙겨주겠냐? 이거 다 근처 병원이랑 소방서 같은 데 털어가지고 집어온 거야. 여기 쉘터 중대장이 그런 거 엄청 꼼꼼하게 준비하는 양반이라.”
하사는 어느새 옆구리를 붕대로 감싸고 가슴의 상처를 살피고 있다. 흉기에 맞아 찢기고 잘린 것보다도 뼈의 골절이 의심되었다. 보라색으로 부어오른 갈비뼈 주위를 소독하던 하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아저씨도 참…… 운이 좋았다고 해야 되냐, 기구하다고 해야 되냐. 옆구리 총상도 그렇고, 이것만 해도…… 이거, 갈비뼈가 안쪽으로 꺾여서 폐를 찔렀으면 그냥 죽는 거거덩. 뭐, 자기가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근육이 감싸준 거니까 운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건가? 야, 여기 잘 잡아서 들어. 뼈 나갔을지도 모르니까 조심해서.”
소독을 마친 하사는 붕대를 단단히 감아 가슴 전체를 왼팔과 고정시켰다. 일을 마친 하사는 라텍스 장갑을 벗어 휴지통에 넣으며 한숨을 쉬었다.
“후아, 다 끝났다. 80만 원입니다. 보호자분, 창구에 가서 수납하고 오세요.”
하사의 농담에 얼떨떨해진 밤톨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이게 끝입니까? 의료 처치가?”
“항생제랑 소염진통제 섞어서 수액 놔드려, 소독하고 골절 부위 고정해, 거기에 화상 시트까지 붙여 드렸는데 뭐? 또 뭐를 더 해야 돼? 서비스로 포경수술이라도 해드릴까? 이미 하셨을 거 같은데?”
“그…… 그런 게 아니라 수혈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분, 피를 엄청 흘리셨습니다.”
“야, 나 같은 돌팔이가 거부반응도 못 살피면서 수혈한다고 껍죽대는 게 훨씬 더 위험해. 혈액형 일치한다고 그냥 푹 쑤신 다음에 아무 피나 넣어도 될 것 같으면 의사들이 공부를 왜 그렇게 오래 하겠냐? 병원마다 이상한 기계들은 또 왜 그렇게 많고? 그런 짓 하다가 한 방에 쇼크로 간다고. 자, 나와. 환자분 안정해야 된다. 궁금하면 내일 또 와봐. 어차피 너희들도 이동 수단이 마련될 때까지 며칠은 여기 있어야 할 거 아니야.”
하사와 또 다른 의무병은 자꾸 미련을 갖는 밤톨을 억지로 끌고 방을 나왔다. 밤톨은 문을 닫기 전 다시 한 번 누워 있는 민구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이제 깨끗한 침대와 붕대, 수액이 제공되는 안전한 공간에 누워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2층인 데다 창이 양쪽으로 나 있어서 맞바람도 쳐줄 테니, 환기 문제도 걱정할 필요 없어 보인다. 문을 조용히 닫는 하사에게 밤톨이 물었다.
“저…… 하사님, 저분 완쾌되실 수 있겠습니까?”
“하아~”
한숨을 내쉰 하사는 밤톨의 어깨를 감싼 채 댓 걸음을 걸어 나온 뒤에야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렵다. 반반이라고 해주고 싶은데, 그 정도로 좋은 상태는 아니고……. 뭐, 너도 봐서 알겠지만, 저 사람은 지금 몸을 못 가누고, 우리는 설비라야 개뿔 아무것도 없어. 태양 그룹에서 민간 의료 지원을 해주니까 거기 요청을 해볼 수도 있긴 한데, 그것도 사람이 좀 모이든가 해야 헬리콥터가 뜨지, 이 사람 하나 땜에 오겠냐? 게다가 이쯤 심각한 환자는 거기에서도 잘 맡지 않으려는 눈치더라고. 그러니까 그냥 썩지 않을 정도로 관리해 주면서 수분이나 영양분 보충시켜 주고 똥오줌 기저귀 갈아주는 정도? 나로서는 이게 최선이다. 그렇게 안타깝다면 그냥 이겨내시기를 기도해라. 내가 소독은 매일 해드릴게. 그거는 약속할 수 있으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밤톨은 하사와 의무대 상병을 향해 간곡히 인사했다. 녀석의 진지한 열의가 좀 의아한 듯 하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너희 오늘 전사자도 나왔다면서? 저 사람한테만 너무 집중하는 것 아니냐? 혹시 개인적으로 각별한 인연이 있는 분이야? 아니면 친인척이라거나?”
“아닙니다. 그저 오다가다 수용소에서 본 적은 있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니라 저희 분대원이 오발 사고를 일으켜서 그렇게 된 거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끼는 겁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좀비들이랑 싸울 때 도움도 받았고요. 저도 그렇고, 오발 쏜 당사자 놈도 저분 괜찮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좀 진정이 될 거라서.”
“애초에 너희가 생존자들 지키려고 싸운 거잖아. 그러니까 그런 생각 하지 마라. 너희는 의무를 수행하려다가 일어난 사고니까……. 뭐, 의무가 없었으면 책임질 일도 없었겠지. 그런 걱정 그만하고 너도 가서 좀 쉬어라. 오늘 진짜 고생했다.”
하사는 밤톨을 데리고 같은 건물의 1층으로 내려왔다. 거기에는 오늘 트레일러를 타고 온 민간인들과 밤톨의 분대가 몇 개의 방에 분리 수용되어 있었다.
철책을 사이에 두고 건대 쉘터 민간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주민들도 더러 보이고, 지급받은 음식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는 이주민들도 있다.
외부에서 좀비들과 접촉을 한 만큼 당장 쉘터로 들이지 않고 격리된 옆 건물에서 하루를 보내게 하는 것이다.
경비를 맡은 병사가 탄창을 반납하라고 해서 밤톨은 빈 탄창을 내주었다. 하사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저었다.
“우와! 너네, 실탄도 없었구나. 완전 아슬아슬했네. 보고하러 가기 전에 주차장에서 담배 한 대 피울래? 거기가 흡연 구역이니까 너도 나중에 옥상에 가든가, 아니면 주차장으로 가서 피우면 된다.”
“아! 담배! 맞습니다, 하사님! 그거를 보고하려고 했는데, 저분 부상에만 정신이 팔려서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담배! 담배 피우시면 안 됩니다. 담배 연기가 좀비들을 부릅니다!”
담배 이야기가 기억난 밤톨은 두 손을 마주치며 눈을 빛냈다. 하사도, 그 옆에 선 의무대 상병도 별 반응 없이 빤히 밤톨을 쳐다본다. 잠시 뜸을 들이던 하사가 물었다.
“놀랍네요. 그런 대발견을 하시게 된 계기는 뭡니까, 조 병장님?”
그래, 안 믿는구나…….
존댓말을 써가며 자신을 놀리는 하사를 향해 밤톨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저도 오늘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하사님처럼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담배를 피우고 얼마 안 지나니까 좀비들이 왔습니다. 다리 양쪽에서 전부 다 말입니다. 이건 정말 확실합니다. 위에도 보고를 해야…….”
밤톨이 애타게 떠들어 대는 동안에도 하사는 담배에 불을 붙인 후, 느긋하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너는 대민 지원 업무를 거의 안 해본 모양이구나. 내 말이 맞지? 생존한 민간인들하고 이야기 나눠본 적이 없지?”
“예? 아, 예. 저는 주로 쉘터 외곽 근무이기는 한데 말입니다. 근데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의무대에 있으니까 뭐 하루에도 수십 명씩 아프다고 찾아오는 민간인들을 만나야 돼. 간판은 의무대라고 떡하니 걸어놓고 있지만, 사실은 약도 그저 그렇고, 의료 지식도 별게 없잖아. 그러니까 나나 다른 의무병들이 하는 일이라야 빤한데…… 그냥 아픈 사람들한테 진통제 주고, 잠시 하소연 들어주는 거야. 그러다 보면 대부분의 경우는 좀 나아지는 기분이 들거든. 사람들이랑 이야기해 보잖아? 그럼 다들 좀비 전문가야. 뭐를 어떻게 하면 좀비가 나타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우리도 처음에는 그런 소리 들을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오오, 그렇습니까? 참고해 보겠습니다’ 이딴 식으로 진지하게 대응했지.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더라고. 그게 뭐일 것 같아?”
“……잘 모르겠습니다.”
“열이면 여덟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거야. 진짜 별의별 소리를 다 해. 노래를 하고 있으니까 좀비가 왔다는 둥, 김치 냉장고를 열면 좀비들이 나타난다는 둥, 소주 마시면 그렇다는 사람, 떡치고 있으면 좀비가 온다는 사람…… 우리가 듣기에는 말 같지 않은 소리들이 대부분이지만, 이 사람들 본인은 자기가 하는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고 있어. 왜 그러냐면, 그 사람들 개개인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을 때 좀비를 만났거든. 완전 100퍼센트 리얼이라고. 그 한 번의 경험이 머리에 완전히 콱 박혀서 그걸 진리라고 믿는 거지.”
“아…… 하지만 말입니다, 담배는 진짜로…….”
밤톨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자, 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반대로 담배를 안 피우고 있으면 좀비가 안 온다는 게 증명되는 건 아니잖아. 너도 알다시피 좀비는 존나게 많아. 그러니까 언제 나타나도 하나 이상할 게 없다고. 근데 이놈들이 나타나는 순간에 네가 하고 있던 일을 무조건 원인으로 지목하지는 말란 소리야. 그건 그냥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거랑 비슷할 수도 있는 거니까. 내가 건의서에 적어는 놓을게. 너도 잠실로 복귀하면 그렇게 하고. 그런데 그래봐야 워낙 의견들이 많아서 별로 달라지지는 않을 거야. 사람들이 주장하는 원인을 다 금지하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하사의 여유로운 표정과 설명하는 방식은 이미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아마 뭔가가 좀비를 부르니 금지해야 된다고 역설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을 다 듣고 나자 밤톨도 자신의 담배 가설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하긴……. 그때에 도로에는 사람들이 뭉쳐 있었고, 200여 미터라고 해봐야 높은 고가도로에서 내려다보면 다 보일 만한 거리다.
또 바로 근처에서 헬리콥터가 낮게 날면서 엄청난 소리를 냈지……. 그러니 담배 하나에만 모든 원인을 돌리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그, 그럼 저도 한 대 피우겠습니다.”
밤톨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후우우~ 아까부터 몇 시간이나 참았던 담배가 기도를 타고 들어가자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안정감이 든다.
목숨을 건 싸움 뒤에 처음 피우는 것이라 맛이 더 각별하다. 밤톨은 자신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진 담배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 좋은 게 좀비를 부르는 원흉으로 지목돼서 금지된다면 그 역시 곤란하다. 담배에 대한 경고는 흩어지는 연기와 함께 밤톨의 머릿속에서 옅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