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1. REDEMPTION (1) (201/449)


201. REDEMPTION (1)
2022.03.20.


16554471717081.png

민구가 눈을 떴을 때, 그의 곁을 지키고 있던 것은 의외의 얼굴이었다.

“너…… 네가 왜?”

놀란 민구가 물었다. 그러면서 일어나 앉아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의 뜻대로 움직여 주는 것은 눈꺼풀과 입뿐, 나머지 부분은 아무런 감각이 없다. 목을 움직여 팔다리를 돌아보지 못할 만큼 너무나 무기력하다.

“쉬잇― 아저씨, 말씀 많이 하시면 안 돼요.”

테라가 민구의 머리를 쓸어주며 조용히 말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흰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콕콕 찍어주는 이 깡마른 계집애와 힘없이 누워 있는 그 자신뿐이다.

이 아이와 마주하고 있다는 건 다시 잠실로 돌아왔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해도 왜 하필이면 이 계집애가 내 간호를…….

“초희는 어디 갔어? 왜 네가……. 그리고 밤톨이랑 그 부하들은 다 어떻게?”

테라는 아무 대답도 않고 물수건으로 입술을 적셔주었다. 바짝 말라 갈라진 그의 입술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답답해진 민구가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어떻게 됐냐고 묻잖아.”

망설이던 테라가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잘 아시잖아요.”

“무슨 소리야?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린 사람에게……. 말해줘, 다들 어디에 있어?”

“죽었어요, 전부 다.”

“뭐라고? 그럴 리가……. 대체 왜?”

민구의 눈이 커졌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다리 위에서 함께 싸워 위기를 넘긴 기억이 선명하건만, 그 이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하지만 그렇게 당황스러운 마음의 이면 저 안쪽에 키득거리며 웃는 또 다른 목소리가 있다.

큭큭큭, 내 그럴 줄 알았어…….

또 다른 목소리는 그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납득한다. 비 오듯 쏟아져 내리는 땀을 닦아주며 테라가 담담하게 말했다.

“당연한 일이었는데요, 뭐. 아저씨랑 얽혔으니 끝이 좋을 리가 없죠.”

그래, 옳은 말이야. 당연한 일이었잖아. 그래서 너도 이 말라깽이 계집애와 자꾸 거리를 두려 했던 거고……. 뭘 그렇게 순진한 척을 하려고 해?

키득거리던 내면의 목소리가 민구의 심장을 간질였다. 구역질이 솟는 것 같다.

“후우우~”

민구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 속을 진정시켜 보려 했다. 끔찍한 기분이다. 모두가 죽고 자신만 살아남은 싸움…….

또인가. 그러고 보면 그날 새벽 강서 정수장에서도 그랬지……. 정문을 들이받고 떠올랐던 승용차에서 살아 걸어 나온 사람은 그 자신밖에 없었다.

두 눈을 부릅뜬 채 피를 뒤집어쓰고 죽어 있던 조직원 놈들의 얼굴과, 머리가 잘려 나간 괴물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정수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몇 명인가가 있었지만, 그중 오직 강민구, 혼자만이 정수장 문밖으로 빠져나왔다.

살려준다는 약속을 했던 그 가방끈 긴 여자도…… 나름 애를 써서 냉장고에 넣어놨지만, 아직 살아 있을 성싶지가 않다.

세상이 이 모양이 되었으니 용케 정신을 되찾아 밖으로 나왔다고 해도 지금쯤은 아마 괴물들 중 하나가 되어 있든지, 아니면 시체가 되어 어느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것이다.

후후후후, 손만 대면 다 죽어 자빠지는 건가. 저승사자가 따로 없군. 뭐, 이런 엿 같은…… 후후후…….

민구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하지만 그 지독한 악귀로서의 삶도 이제 끝이다. 그는 안다, 자신의 목숨이 이제 아주 힘없이 사그라지고 있다는 것을.

“다행이에요.”

테라가 이마를 짚어보며 미소를 지었다. 민구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행이라니……. 대체 이 거지 같은 상황의 어떤 면이 다행이라는 말인가.

민구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동안 테라는 자신의 두 손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한겨울에 얼어붙은 손을 녹이기 위해 하는 행동과 비슷하다. 하지만 민구는 자신의 생명이 꺼져 가는 와중에도 그녀의 그런 행동이 뭔가 위험한 일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테라가 열심히 입김을 불어넣자 그녀의 희고 가느다란 손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와 비례해서 원래부터 그리 혈색이 좋지 않던 그녀의 얼굴은 더더욱 파리하게 변해갔다. 테라는 눈부시게 빛이 뿜어져 나오는 두 손을 뻗어 민구의 두 눈가를 덮었다.

따뜻하다. 안구부터 시작해 얼굴 전체로 따뜻한 기운이 번지기 시작하며, 극심한 무력감과 고통에 지쳐 있던 몸에 생기가 돈다.

“이렇게…… 은혜를 갚을 수 있어서요.”

그렇게 말한 테라는 한 번 더 두 손을 얼굴로 가져가 입김을 불어넣었다.

……위험하다.

민구는 그녀를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짓을 계속했다가는 그녀가 죽고 말 것이다. 테라의 두 손이 다시 눈을 덮는다. 그녀의 기운을 받아 간신히 움직일 수 있게 된 팔로 민구는 테라를 밀어냈다.

“그만! 그만둬! 왜 이래!”

“아직, 치료를 더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죽게 될 거예요.”

“오히려 네가 못 버텨! 너도 알잖아!”

“하지만 보답을 하고 싶어요…….”

“보답 같은 거 필요 없어! 내가 경고했지, 나한테 가까이 오지 말라고! 그런데 왜 이래? 내가 결국 너의 시체를 봐야겠어?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게 나뿐이라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하도록 할 셈이야?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라고!”

민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테라의 손이 다시 한 번 뻗어왔다. 이마에 닿는 손길을 느끼자마자 민구는 그 손을 쳐내고 고함을 질렀다.

“꺼지라고! 내 몸에 손대지 마! 참견 말고 꺼져!”

탁, 손끝에 닿는 느낌이 생생하다. 그리고 곧바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쨍쨍댔다.

“아우, 진짜 이 오빠는 기절해서까지도 성질이 지랄 맞아! 왜 이렇게 짜증을 부리고 난린데? 좀 가만히 좀 있어봐! 쫌! 아우 썅! 간호해 주다가 욕먹으니까 기분 존나 더럽네, 진짜!”

초희다. 민구는 자꾸 감기려고 하는 눈을 억지로 떴다. 초희는 작은 수건에 물을 적셔 그의 얼굴을 닦아내는 중이었다. 자신의 주변을 밤톨, 무전병, 그리고 몇몇 군인들의 걱정스런 얼굴이 빙 둘러싸고 있다.

하아…… 모든 게 다 환상이었나? 그 계집애도, 이상한 빛이 나던 손도…….

민구는 몸을 일으켜 보려 했다.

크윽!

엄청난 고통이 옆구리 전체를 휘감는다. 환상 속에서처럼 평화롭지도, 나른하지도 않다. 1초가 멀다 하고 무지막지한 아픔이 신경의 여기저기를 잔인하게 쑤신다.

“아, 그렇게 무리하게 움직이지 마세요! 지혈해야 하니까 좀 가만히…….”

밤톨이 땀을 뻘뻘 흘리며 민구의 옆구리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 민구는 초희가 닦아준 입술 주변의 수분을 할짝거려 삼킨 후 물었다.

“내가…… 끄으응, 얼마나 오래 뻗어 있었던 거지?”

“오래요? 아닙니다. 지금 기절하시고 몇 초 안 돼서 곧바로 눈뜨신 거예요. 한 20초나 되었을까? 뭐,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형님, 운이 좋았어요! 총 맞은 사람한테 운이 좋았다는 말 하는 건 좀 그렇지만, 하여간 그냥 관통상 같아요! 그것도 옆구리 쪽이라서 뼈나 내장이 다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제 피만 좀 멎으면…… 아, 근데 이거 잘 안 되네.”

민구는 잘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움직였다. 뜨끈뜨끈한 아스팔트 위에 대자로 뻗어 있는 자신의 팔다리가, 그리고 붉은 피가 옅게 배어나는 가슴의 상처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옆구리는 어떻게 된 것인지 도통 보이지 않았다.

밤톨이 상처 주변에 뭔가 검붉은 천을 잔뜩 쑤셔 박아 가려뒀기 때문이다. 다리 위로 강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검붉은 천의 끝자락이 어지럽게 춤을 추며 날렸다.

“그게…… 뭐야? 뭘 그렇게…….”

민구는 손을 뻗어 검붉은 천을 쥐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깨달았다. 자신이 잡은 게 원래는 흰색이었을 지혈용 붕대라는 것을. 그리고 그걸 흠뻑 적신 액체가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라는 사실도…….

밤톨은 황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민구를 만류했다.

“만지시면 안 돼요! 감염이 될지도 모르니까! 아, 그리고 자세를 바꾸지 마세요! 심장이 낮게 가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녀석은 얇은 고무장갑 같은 걸 낀 채다. 바닥에는 몇 개의 소독 솜뭉치가 역시 시뻘건 피를 잔뜩 머금고 뒹굴었다.

“큭큭큭, 감염 같은 소리 하네. 괴물들 시체 바로 옆, 맨바닥에 눕혀놓고 그런 걱정을 하다니. 그나저나…… 끄응, 어디서 이런 걸 구했어?”

“아, 이거 말씀입니까? 이거…… 아이 팩이라고, 그 장갑 트레일러 배치용으로 지급받은 겁니다. 인디 비주얼 퍼스트인가 뭐라고 했는데……. 하여튼, 저희도 대강 교육만 받았지 실제로 써보는 건 처음이라서……. 아이, 젠장. 거즈가 한참 모자라잖아. 씨발, 벌써 피범벅인데……. 이 상태로는 압박을 못 해. 야, 더 뒤져 봐. 이게 다야?”

민구의 옆구리에 계속해서 거즈를 밀어 넣던 밤톨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식판 정도 크기의 국방색 천 가방 안쪽을 살피던 무전병이 ‘없습니다!’ 하며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지혈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압박붕대를 둘러보려던 밤톨이 결국 포기를 하고 다시 가방에서 작은 봉지 하나를 꺼낸다.

“맞다, 맞다. 이런 게 있었어. 그래. 야, 여기 좀 치워서 시야를 확보해 봐. 이걸 뿌려서 지혈시키고 그다음에 거즈로 누르자.”

밤톨의 명령에 무전병이 피투성이 거즈를 가슴 쪽으로 옮긴다. 민구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자신의 어디가 얼마나 작살이 났기에 이렇게 정신을 잃기까지 했는지 알고 싶었다.

“아우! 어떡해! 완전 초전박살이 났네, 울 오빠. 아유.”

상처가 드러나자 초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했다. 골반과 갈비뼈 사이, 총알이 할퀴고 지나가며 살을 한 움큼 떼어낸 자리에서는 계속해서 꿀럭꿀럭 빨간 피가 배어 나오고 있다.

“어디, 어디…… 어이구, 저거는 못 살아. 저렇게 피가 나면…….”

“흉측해라. 세상에, 저 피 좀 봐. 아주 그냥 수도꼭지 돌려놓은 것처럼 줄줄 흐르네. 쯧쯧쯧, 옛말 그른 거 하나도 없다니까……. 칼로 흥한 놈은 칼로 망한다고, 남한테 발길질하고 욕지거리할 때부터 알아는 봤지.”

병사들의 등 뒤로 다가와 어깨너머로 민구의 상처를 훔쳐보던 놈들이 한마디씩 도움 되지 않는 소리를 내뱉는다.

아까 얻어맞은 두 놈과 그 일행들이다. 사이를 헤집고 들여다보기 위해 가뜩이나 진땀이 흐르는 병사들의 어깨에 손을 짚어 누르며 발돋움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물러납니다! 가까이 오지 않습니다!

병사들이 녀석들을 밀어냈다.

크흐흐~ 민구는 운이 좋았다는 밤톨의 말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아 쓴웃음을 지었다.

평상시에 총을 맞고 이 정도 부상에 그쳤다면 조상님 은덕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내장이 꿰뚫린 것도 아니고, 뼈가 작살 나서 조각이 살 속을 휘저은 것도 아니고, 복부가 벌어져 체액이 흘러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근육이 잘려 나가고 출혈이 심한 것뿐이니, 빨리 구급차만 부르면 된다.

그렇게만 하면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다.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와 주는 구급차도 없고, 병원에서 기다려 주는 의사도 없다.

잠실야구장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오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그 후에도 구조 차량을 두 시간째 기다리고 있다.

그 차를 용케 타게 된다고 해도 돌아가는 동안 또 한 시간 이상은 허비하게 될 터였다. 그렇게 예측하는 게 이치에 맞다.

그러니 지금 그에게 닥친 현실은 그가 제일 혐오하는 상황에 가까워져 버렸다. 무력하게 피를 잃으며 천천히 죽어가는 상황 말이다.

민구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밤톨은 신형 분말 지혈제 봉지를 잡고 거기에 적힌 주의사항을 이해하느라 애를 썼다.

“음, 퀵 클랏 분말은 넓은 범위에서 일어난 출혈을 빠르게…… 아, 이런 개소리는 됐고, 음…… 봉지를 뜯고 상처 위에 충분한 양의 분말을 고루 도포하시오……. 음, 그냥 뿌리기만 하면 되는 거네? 아니, 근데 씨발, 애초에 달랑 이거 한 봉지를 줘놓고서 뭘 충분한 양을 뿌리라는 거야?”

이제 와 뒤늦게 사용 설명서를 숙지하는 밤톨의 진지한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밤톨은 밀봉된 퀵 클랏 분말 봉지를 이로 물고 다급하게 찢었다.

서둘러야 한다. 매 초마다 민구의 상처에서는 피가 울컥거리며 흘러나오고 있으니까. 병사 둘이 민구의 몸을 잡아 분말을 뿌리기 좋도록 돌렸다.

“뿌립니다! 움직이지 마십쇼!”

밤톨은 눈살을 찌푸리며 상처 위에 봉지를 가져다 대고 거꾸로 들었다.

탁, 탁, 두어 번을 털자 단단히 뭉쳐져 있던 흰 가루 분말이 확 쏟아졌다. 그리고 그 순간에 바람이 불어왔다. 휙― 톱밥보다도 곱고 가벼운 결정체들이 바람에 흩뿌려지며 사방으로 날아간다.

“헉―!”

밤톨과 무전병, 그리고 민구의 몸을 잡고 있던 두 병사의 입에서 동시에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믿을 수가 없다. 퀵 클랏 분말은 주변의 모든 이들을 조롱하듯 화려하게 휘날리며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다.

쿨럭―!

그러는 동안에도 피는 부지런히 샘솟는다.

“아, 안 돼! 이…… 이런 씨발! 이게 뭐야!”

밤톨은 원망스럽다는 듯 빈 봉지를 노려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씨발! 제일 중요한 말을 왜 안 적어놨어! 바람 불 때는 쓰지 말라고 했어야지! 이런 개좃같은 새끼들이! 아……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니야. 거, 거즈! 그걸로라도 다시 막고 이 압박붕대로 감싸서…….”

허둥대며 다시 거즈를 끌어와 상처에 대려는 밤톨의 손을 민구가 잡았다.

“에? 형님, 미안합니다. 근데 좀 가만히 계세요.”

“그걸로…… 안 돼.”

민구의 말처럼 이미 피에 푹 젖은 거즈는 지혈의 기능을 해줄 성싶지가 않아 보이긴 한다. 아니, 사실 지혈이 어떤 원리로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밤톨은 의무 병과와는 아주 거리가 먼 보병이었고, 이 응급 키트 사용법은 장갑 트레일러에 처음 배치되던 때 30분 정도 교육받은 게 전부다. 그나마도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저 귓등으로 들었었다.

“하, 하지만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밤톨의 말에 민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밤톨의 어깨에 부착된 대검을 가리켰다.

“옛날 방식으로 가자. 그거…… 좀 빌려줘. 불로 달궈서 지지면…… 피는 멎는다. 후우~”

짧은 말을 하는 동안에도 숨이 차올라서 민구는 진땀을 흘렸다. 옆구리의 출혈이 물론 제일 큰 문제지만, 금이 간 갈비뼈 쪽에서도 숨을 쉴 때마다 쩌릿쩌릿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러면서도 오한이 든다.

칼을 맞았을 때와는 영 다르다. 쇼크로 언제 뻗어버리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 정신이 온전할 때 얼른 이 피를 멎게 만들어야 한다.

“어서!”

망설이던 밤톨도 민구의 채근에 못 이겨 자신의 대검을 뽑았다.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아니, 내가 한다.”

민구가 고개를 젓는다. 밤톨은 결국 칼을 넘겨주었다. 극심한 고통 때문에 칼을 쥔 민구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라이터를 켜서 칼에 대보지만, 바람이 불어와 라이터의 불을 자꾸만 앗아갔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병사 중 하나가 지포라이터를 찾아 건넸다.

화륵―!

라이터의 불꽃이 바람에 춤을 추면서 대검을 달군다. 쇠끝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며 민구는 상처를 유심히 살폈다.

지포라이터 하나가 데운 면적으로는 전부 지져질 것 같지 않은 크기다. 위쪽을 한 번, 아래쪽을 한 번, 이렇게 두 번은 지져야 한다.

민구가 달궈진 대검을 상처 쪽으로 움직이는 동안 무전병은 마지막으로 거즈를 움직여 상처 주위의 피를 최대한 닦아냈다.

거리를 가늠하던 민구는 대검을 상처의 윗부분에 바짝 붙였다.

치이잇―

피가 끓어오르고 살이 익는다. 그리고…… 고기 타는 냄새와 함께 덮쳐든 격통이 그를 마구 잡아 뜯고 뒤흔들었다.

흐윽! 꽉 다문 민구의 입에서 아주 가느다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어흐~ 주위를 둘러싼 군인들의 입에서도 동시에 고통스런 탄성이 터졌다.

쇠가 식어버려서 더 이상 인두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민구는 대검을 상처에서 떼어냈다.

피부는 뻘겋게 화상을 입고 짓물러졌지만, 지진 부위에서 더 이상 피가 솟지는 않는다. 이제 똑같은 방식으로 아래쪽만 마무리하면 된다.

민구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대검을 고쳐 쥔 후, 라이터를 들고 기다리는 밤톨을 향해 뻗었다. 눈이 가물거리고, 손에 경련이 인다.

젠장, 피를 너무 흘린 건가…….

민구는 이를 악문 채 아득해지려는 의식을 붙잡으려 노력했다.

이렇게까지 도움을 받고 애를 썼는데 그 끝이 허무한 죽음이고 싶지는 않다. 밤톨은 흔들리는 민구의 손을 꽉 잡고 라이터로 대검을 지졌다.

치이익―!

두 번째 지질 때의 고통은 처음보다 훨씬 덜 날카로웠다. 그만큼 의식이 가물거리고 감각이 둔해졌다는 의미다. 민구는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한 정신 속에서, 달궈진 대검을 계속 옆구리에 문댔다.

16554471717086.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