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운수 좋은 날 (5)
(200/449)
200. 운수 좋은 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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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운수 좋은 날 (5)
2022.03.19.
투투투투― 투투투―
200여 미터 거리를 두고 양방향에서 총성이 울리고, 버스 쪽에서도 그것을 마지막으로 사격하는 소리가 끝났다.
다 잡았거나, 총알이 바닥났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이든 간에 그렇게 난사를 했으면서도 K―3 사수들은 800발만으로 꽤 버텨주었다.
그롸아아악!
틈을 노리고 뛰어드는 열 번째 놈의 정수리에 민구의 손도끼가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쫘악―
머리 가죽이 갈라지며 검붉은 핏줄과 흰 두개골이 드러난다. 이미 날이 다 죽은 도끼여서 뼈를 뚫고 박혀들지는 않았지만, 타격을 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민구는 반복적으로 뼈와 뼈 사이의 틈을 쪼개듯 후려갈겼다. 놈이 일어서려 하자 다리를 걷어차 다시 쓰러뜨리고, 마지막으로 일격을 가했다. 머리가 박살 난 좀비의 무릎이 뒤로 꺾여 넘어간다.
털썩.
가벼운 흙먼지가 일며 상황 종료를 알린다. 바로 곁의 총성도 막 그쳤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민구는 다섯 번째 예비 무기인 야전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좀비들의 포효와 총성으로 가득 덮여 있던 도로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오직 검은 연기만이 피어오를 뿐이다.
“끝입니까? 이, 이제 이긴 겁니까?”
잠시 텅 빈 도로를 노려보고 있던 병사 하나가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그래! 이제 없다! 안 보여! 아, 아니! 긴장 풀지 마! 아직 대비 태세 유지하고 있어!”
분대원들과 민구를 돌아보는 밤톨의 목소리도 떨린다. 말로는 계속 대비하라고 했지만, 사실은 승리의 전율이 온몸을 흔들었다.
몰살당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멀쩡히 살아남았고, 게다가 전사자도 한 명뿐이다. 밤톨은 크게 숨을 몰아쉬며 앞뒤를 훑어봤다.
‘이제 뭘 하지? 지휘해야 할 게 또 뭐가 남았지? 젠장, 명령에 따라 움직일 때가 더 편했구나. 이건 뭐, 언제 긴장을 풀라고 해도 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잖아. 다들 나만 보고 있는데.’
뒤쪽에는 아직도 두려움에 휩싸인 채 벌벌 떠는 민간인들, 앞쪽에는 그가 배치해 둔 버스 위의 병력이 저 시커먼 연기와 불기둥 너머에 고립되어 있다.
거리는 불과 200여 미터 정도지만, 연기 때문에 도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어느 쪽을 먼저 보살펴야 하는 걸까? 가용 병력이라야 겨우 다섯인데…….
목까지 차올랐던 위기를 벗어나자마자 또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쯧, 나는 평생 리더는 못 되겠어. 이런 건 너무 골 아프다고. 세상이 좋아져도 얌전히 월급쟁이 노릇이나 하고 살아야지.’
고민을 하던 밤톨은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버스가 있는 방향을 향해 외쳤다.
“K―3! 현 상황 보고해! 사상자 있나?”
두 번 반복해 목청껏 소리를 지른 밤톨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
분명 사람의 소리긴 하다. 뭐라고, 뭐라고 외치는 거 같긴 한데,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다.
거리도 거리인 데다 강바람이 부는 다리 위, 거기에 가끔 헬리콥터 지나가는 소리까지 섞이니까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마를 찌푸린 밤톨이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야, 저거 알아듣겠는 사람 있냐?”
“잘 안 들립니다.”
“모르겠습니다.”
분대원들도 다들 고개를 저었다. 밤톨은 생각했다. 내가 물어보는 소리도 저렇게 들렸겠지.
그렇다면 저 말들은 단순히 ‘안 들려!’라든가 ‘뭐라고?’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전방에 생존자가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졌다. 밤톨은 무전병에게 물었다.
“헬기랑 교신되냐? 좀 물어봐, 상공에서 보면 버스 주변 상황이 어떤지. 아, 그리고 민간인들 저기에 계속 둬도 되는 건지.”
오늘 진종일 무전기 수신 감도 때문에 애를 먹어온 무전병은 또다시 손을 하늘 위로 올렸다가, 중앙선을 넘어갔다가, 가로등에 가까이 가봤다가…… 아주 생쇼를 해야 했다.
그게 P96K라는 소형 기종이 가진 태생적 결함인지, 아니면 이 무전 기기 단품의 불량인 건지는 몰라도 헬리콥터가 조금만 멀어지거나 각도가 맞지 않으면 먹통이 되어버린다.
특히 지금처럼 헬리콥터와 무전기의 사이에 건물이 있으면 안 터질 확률이 100퍼센트라고 봐야 한다.
“당소, 이동차 찰리 공둘! 당소, 이동차 찰리 공둘! 올빼미 다섯, 응답하라! 올빼미 다섯!”
저러다가 저놈 목이 터지겠다 싶어진 밤톨은 무전병을 불렀다.
“야, 됐어. 그만해. 그 시간에 벌써 중간 정도까지는 이동하고도 남았겠다. 너희 둘, 민간인분들 호위해서 와. 다 같이 버스로 이동한다. 나머지는 계속 전방 감시한다.”
병사 두 명이 빠른 구보로 다리의 남단 쪽을 향해 달려가 민간인들을 호위해 왔다.
다행히 아직까지 새로운 좀비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정말 전투가 끝났다는 공식적인 선언은 없었지만, 모두의 총구가 조금 아래로 내려가고, 여전히 상기되어 있는 병사들의 얼굴에 비로소 웃음기가 돌았다.
“이, 이제 끝난 겁니까? 좀비 다 죽었어요?”
민간인들이 겁에 질린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묻는다. 앞에서는 자동차들이 불타고 있지, 바닥에는 대가리가 터져 죽은 좀비들의 시체가 가득하지, 누구라도 떨릴 상황이다.
“네. 전사자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모두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저분께서 도와주신 게 정말 큰 힘이 되기도 했고 말입니다.”
밤톨은 민구를 가리키며 그의 공로를 알렸다. 이렇게 공식화해 놓아야 아까 그가 두 사람을 구타한 게 알려져도 문제가 되지 않을 터이다.
깡패 새끼니 싸움이야 오죽 잘하겠어…… 라고 비아냥대는 목소리도 섞여 있지만, 대부분의 민간인들은 박수를 보냈다. 살아남았다는 큰 기쁨 앞에서 다들 약간씩은 들떠 있다.
“우리 오빠가 원래 좀 멋있어요. 으흐흥~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정작 민구가 귀찮아하는 동안, 초희는 자신을 향한 박수인 양 시상식에 참석한 여배우처럼 가슴에 손을 얹고 연신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저, 저기로 못 걸어가요. 무서워서…… 그, 시체 좀 치워주시면…….”
이동하자는 말에 여자들이 엉덩이를 뒤로 빼며 거리 위에 쌓인 시체들을 가리켰다.
“어, 맞아. 한쪽으로 딱 밀어두면 왕래하기가 아무래도 좋지. 시체 밟고 자빠질 일도 없어지고. 음, 그러네!”
남자들도 그 말에 동조해서 뭐라고 한마디씩 보탠다. 기강을 강조하던 그 중년 사내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밤톨은 그들이 가리킨 방향을 돌아봤다. 물론 징그럽고 무섭다. 머리와 온몸이 불타 버리고, 총구멍이 숭숭 뚫린 채 쓰러져 있는 시체가 수십 구나 쭈욱 잇달아서 널브러져 있으니까.
게다가 녹색의 체액과 진득한 검은 피, 그리고 내장과 뇌수가 바닥에 고여 있다.
무너져 내린 자동차 더미 때문에 보행자 통로도 막힌 지금, 저기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징검다리를 건너듯 시체가 없는 빈 공간만을 밟으며 걸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조금 전까지 저 징그러운 것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느라 탈진 직전까지 몰려 있는 군인들에게 길거리 청소도 해달라는 저 뻔뻔함은 정말이지…… 이기적이다. 병사들의 눈에도 불만이 가득 서렸다.
후우~ 밤톨은 치미는 화를 달래고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또 상상을 했다.
지금 저 부탁을 하는 사람이 우리 엄마라고 생각하자…… 우리 엄마가 무서워서 벌벌 떨며 ‘아들, 나 무서워서 저기 못 지나가겠어’ 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자……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후우~
조금 진정을 한 밤톨이 병사 셋을 지목했다. 그리고 자신도 합류해 각각 시체의 양쪽 끝을 잡고 들어 길가로 던졌다. 시체를 움직일 때마다 관통된 상처 사이로 온갖 것들이 뚝뚝 떨어져 흐른다.
“윽!”
왼쪽에서 길을 트던 병사들이 움찔하며 멈춰 선다.
왜 그래? 밤톨이 돌아보자, 녀석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 일병입니다.”
끄응~ 밤톨의 입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다. 몇 겹으로 겹쳐진 상태에서 불을 뒤집어쓰고 타버린 너덧 구의 시체들.
그 가장 아래쪽에 깔린 것이 서 일병의 시신이다. 까맣게 타버린 얼굴로는 구분할 수 없지만, 근처에 떨어진 하이바와 착용하고 있는 복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씨발 새끼들…….”
위에서 깔아뭉갠 채 죽어 있는 좀비들의 시체를 전투화로 차서 밀어버리자 끔찍한 몰골의 서 일병이 드러난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차를 타고 온 녀석이 지금 여기 물어뜯기고 총에 꿰뚫려, 불에 탄 채 죽어 있다.
“……미안하다.”
서 일병의 시체를 중앙선 너머의 차량 지붕 위로 옮기고, 군번표를 회수하면서 밤톨이 중얼거렸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유가족조차도 남아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자…… 됐습니까? 이제 이동합니다.”
밤톨은 이를 악물고 말한 뒤, 대충 만들어놓은 길을 앞장서 걸었다.
타다닥― 타닥― 턱―
불타오르고 있는 자동차 더미가 이따금씩 제풀에 움직이며 둔중한 소리를 낼 때마다 저절로 움찔하게 된다.
저것들을 다 치워내고 여기를 다시 이동 경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또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게 될 것이다.
“조 병장님!”
중간 정도 지점, 시꺼먼 연기 너머로 버스에 배치해 두었던 병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들 역시 밤톨을 향해 이동하던 중이었다. 웃는 얼굴로 뛰어가 반기려던 밤톨이 멈칫한다.
“나머지 한 명은?”
밤톨이 물었다. 버스 위에 올라가 부사수 역할을 하던 장갑차 승무원 둘 중 하나만 돌아왔다. K―3 사수가 고개를 젓는다.
“초반에 버스가 흔들릴 때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좀비들이 수십 마리씩 달려들어 미니까 버스가 파도타기하는 것처럼 들썩거렸습니다.”
으윽, 밤톨은 난감한 마음에 이마를 훑었다. 잠시 들떠 있던 게 미안해진다.
이제 오늘 전사자만 셋이 되었다. 두 시간을 버티면 되는 거였는데, 그 별거 아닌 일을 수행하느라 병력의 30퍼센트를 잃었다. 게다가 아직도 구조 차량의 예상 도착 시간까지는 20분 이상이 더 남았다.
“……고생했다. 그리고 정말 잘 싸워줬다. 이제 20분만 더 버티자. 다 끝나간다. 알겠지? 자, 순번을 정해서 둘씩 경계를 서고 나머지는 휴식한다.”
비교적 시체들이 덜 널려 있는 곳까지 돌아온 밤톨은 병사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하고 휴식 시간을 주었다.
분대 지원화기가 배치되었던 버스 옆면, 더러운 얼룩 사이로 유달리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누구의 피였을지 짐작할 수 있는 데다가 그에게 버스 위로 올라가란 명령을 내렸던 게 자신이어서 괴롭다.
그렇게 우울한 상념에 젖어 있는 밤톨과 병사들에게 민간인 몇 명이 다가와 부탁을 한다.
“저기…… 미안한데요, 저 사람…… 저것 좀 버리라고 해줘요. 흉측하게 자꾸 저런 쇠붙이를 긁어모아서 들고 돌아다니네.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게시리. 안 그래도 아까 보니까 성질이 아주 더럽던데.”
물론 사람들이 지칭하는 대상은 민구다. 민구는 북단 방향으로 이동해 와서도 열심히 건너편 차선의 차량들을 뒤지며 무기로 쓸 수 있을 만한 것들을 고르는 중이었다.
시선을 느낀 민구가 도끼와 식칼을 날끼리 부딪쳐 보이며 히죽 웃는다. 그 섬뜩한 모습을 보고 나니 불안해하는 민간인들의 심리도 이해 못 할 바가 아니었다. 밤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말을 할게요.”
민간인들을 안심시켜 돌려보낸 밤톨이 무전병을 데리고 민구 쪽으로 걸어갔다. 민구는 새로 얻은 식칼을 햇빛에 반사시켜 가며 날을 살피는 중이었다.
“형님, 이제 다 끝났어요. 그렇게 칼이니 무기니 챙기셔 봐야 쓰실 일 없습니다.”
“그거 이상하군. 나 그거랑 똑같은 이야기 오늘 아침에도 들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민구의 농담에 밤톨과 무전병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 그러게요. 그 칼들이 있었다면 한결 편하셨을 테죠? 뭐, 보관소에 있던 그 녀석들도 이런 일 있을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이해해 주십시오. 게다가 걔들은 형님이 어떤 분인지도 전혀 모르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음, 내가 어떤 사람인데?”
“겉모습하고 달리 사실은 남을 위협하거나 해칠 만한 분이 아니라는 거 말입니다.”
그 말에 조금 놀라 민구는 밤톨을 빤히 쳐다봤다.
아닌데? 그게 내가 하고 다니던 일 맞아! 이놈 참, 귀염성은 있는데 사람 보는 눈이 영…… 이런 판단력으로 용케 이만큼이나 지휘를 해서 버텼군…….
후후후, 민구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이 밤톨 같은 놈의 허술한 면이 싫지 않았다.
“저 꼰대들이 가서 일렀구만? 칼자국 난 새끼가 자꾸 흉기를 주물럭거리면서 사람들 위협한다고.”
“정확하게 그런 말은 아니었지만, 비슷하기는 합니다. 뭐, 그렇지 않아도 한 방 맞았던 사람이 있으니까요. 아참,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싸움이 끝나고 고맙다는 인사도 안 드렸네요. 형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밤톨이 인사치레를 하려 들자 민구가 머쓱해한다.
“나도 살겠다고 한 짓이었으니까 그런 소리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리고 다 같이 싸운 거였잖아. 누가 누굴 돕고 그런 건 아니지.”
“저희는 군인이고, 형님은 민간인 신분이잖습니까? 맡은 책임이 다르죠. 그…… 보관소에 맡겨두신 칼 있잖습니까, 그건 제가 돌아가면 다시 말을 잘 해보겠습니다. 혹시라도, 물론 그런 일이 없으면 더 좋겠지만, 건대 쉘터에도 위기 상황이 닥치거나 하면 형님이 힘을 좀 쓰셔야죠.”
“별로 기대는 안 되는데……. 걔들 순 고집불통이더라고. 그리고 언제 또 건대로 올 일이 있겠나? 이번에도 이동하려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던데.”
민구는 획득한 무기들을 자동차 지붕 위에 나란히 늘어놓으며 대꾸했다. 도끼, 야전삽, 식칼…… 연장의 질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니까 양이라도 넉넉히 채워야 한다.
이 녀석들, 아까 마지막 탄창이니 뭐니 하는 소리들을 떠드는 걸 들었다.
만약 한 번 더 괴물들이 몰려오거나 하면 그때는 거의 몸으로 때워야 할 것이다. 물론 죽는 놈의 수도 훨씬 늘어나게 될 테고.
“그런데 헬리콥터는 왜 저렇게 멀리 가 있지? 근처에서 날아야 아까처럼 기관총으로 갈겨주든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먼 하늘에 떠 있는 500MD를 가리키며 민구가 물었다.
“아, 저 헬기 하나가 이 부근 도로 상황을 다 살피고 통보해 주는 거라 저분도 어지간히 바쁘십니다. 그리고 이젠 실탄도 없고요. 잠시 후에 건대에서 보낸 구조 차량이 근처까지 오면 그것도 저걸로 알려줄 겁니다.”
밤톨은 무전병이 어깨에 끼고 있는 P96K를 가리켰다. 자동차 시트에 도끼날을 닦고 있던 민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 조그만 거, 어지간히 안 터지는 것 같던데…… 저걸로 알려주면 다른 차들은 다 알아듣나?”
“하하하, 장갑차에 장착된 무전 설비를 이용하면 이렇게 직직거리지 않습니다. 선명하게 들리죠.”
밤톨이 웃고 있을 때, 양반이 아닌 헬기로부터 무전이 날아왔다.
― ……소, 올빼미 다섯. 건대 둥지에서…… 치익…… 이동차 찰리 공둘…… 대기…… 치익…… 하기 바람…… 이상.
어? 찰리 공둘? 우리다! 우리를 부른다!
무전병과 밤톨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문제는 구체적인 내용이 싹 다 짓뭉개져 들어온다는 데 있었다. 무전병은 다시 안테나가 잘 터질 만한 위치를 찾아 자동차 위로 뛰어다니며 고래고래 악을 썼다.
“당소, 이동차 찰리 공둘! 올빼미 다섯, 응답하라! 감도 불량하여 수신되지 않았음! 재송신 바람! 재송신 바람!”
무전병이 자동차 더미에 가까이 갔을 때, 밤톨이 외쳤다.
“야! 그런 데 너무 붙지 마! 무너진다고!”
“예? 잘 못 들었습니다!”
강바람에 청각이 무뎌진 무전병이 뒤돌아보며 얼굴을 찡그린다.
“위험하다고! 새끼야!”
그 말이 밤톨의 입에서 다 빠져나오기도 전에 중앙분리대와 자동차 더미 사이에서 뭔가가 확 튀어나오며 무전병을 덮쳤다.
그르륵―
얼굴과 목이 새까맣게 타버린 좀비다.
억! 엎어지는 무전병과 그걸 보고 있는 밤톨의 입에서 동시에 비명이 터져 나온다. 민구는 도끼를 들어 무전병 쪽으로 던지기 위해 어느새 몸을 틀고 있다.
투투둑― 투투둑―
좀비에게 밀린 무전병이 엎어지며 발사된 총알이 세워져 있는 자동차들의 유리창을 박살 낸다.
채애앵―
쇠에 탄두가 맞고 튀는 요란한 소리도 함께 섞여 있다.
콱―!
민구가 재빠르게 날린 도끼가 좀비의 목을 직격하자 그 충격에 달려들던 좀비의 기세가 휘청 꺾였다.
“으아아아~!”
무전병은 미친 듯이 발버둥을 치며 좀비로부터 빠져나왔고, 밤톨은 개머리판을 휘둘러 도끼날이 박힌 좀비의 목을 반복적으로 후려쳤다.
칵― 칵―
점점 더 깊이 들어가 박힌 날이 목을 3분의 2 이상 잘라낸 다음에야 불탄 좀비는 움직임을 멈췄다.
“하아~ 하아~ 너, 너 괜찮아? 안 물렸어?”
정신없이 개머리판을 휘두르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찬 밤톨의 질문에 무전병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 모르겠습니다. 으흐흑, 저, 저 어떻게 됐습니까?”
서둘러 옷을 들추고 두 손으로 목덜미를 더듬는 무전병의 피부에는 다행히 물린 흔적이 없다. 대신 원수 같던 소형 무전기가 아주 박살이 나 있다.
“하아~ 이, 이게 막아준 모양이다. 너 진짜 무전기한테 절이라도 해라.”
조금 마음에 여유가 생긴 밤톨은 무전병의 머리통을 두드려 준 후, 좀비의 목에 박힌 도끼를 보았다.
5미터 거리는 족히 될 것 같은데, 그 찰나의 시간에 이걸 이리도 정확하게…….
“야, 무전기보다도 저 형님한테 감사하다는 인사 먼저 드려. 너 진짜 저세상 문고리 만지고 왔어, 인마. 형님, 또 신세를 져…… 엇! 형님! 형님!”
밤톨의 목소리가 떨리고 커진다.
“끄응…… 요란 떨지 마. 별거 아니야.”
민구는 인상을 쓰면서 왼쪽 가슴에 가로로 길게 박힌 칼날을 뽑아냈다.
저 멍청한 녀석이 쏜 총알이 하필이면 그가 왼손에 들고 있던 칼에 스치면서 튕긴 칼날이 가슴에 박혔다. 우연치고는 참 더럽다.
“으읏!”
땡그렁―!
민구는 뽑아낸 칼날을 바닥에 버렸다. 다행인 점을 고르라면 칼날이 그리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다는 거다.
물론 갈비뼈 한두 개 정도는 금이 간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정도까지 통증이 심할 리가 없다.
“형님! 아흐~!”
밤톨과 무전병, 그리고 주변의 다른 병사들까지도 뛰어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민구를 에워쌌다.
뭔데…… 뭘 그렇게 쫄아? 칼을 만지다 보면 칼에 맞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뭐…….
그렇게 이야기하려던 민구는 놈들의 시선이 가슴이 아니라 자신의 옆구리에 집중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응? 골반 위를 짚어본 민구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지독하게 아프다. 그리고 뜨겁다.
“후우~ 후우~”
손을 들어보니 온통 빨갛다. 익숙한 피의 색깔이다. 지금까지 그가 진창을 구르며 평생 흘렸던 양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피가 흥건하게 손바닥을 적시고 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무전병과 밤톨이 울부짖으며 민구를 부축한다.
아니야, 멍청아. 눈먼 총알이지, 네가 아니라고. 어디 가서 네깟 놈이 강민구를 죽였다고 하지 마. 그런 건 절대로 용납 못 하니까…….
그 말을 꼭 남기고 싶었지만, 민구의 입에서는 후우우~ 후우우~ 긴 신음만이 새어 나온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끼며 민구는 눈을 껌뻑였다. 점점 시야가 어두워진다.
흐리고 흐려지다가…… 결국 완전한 암흑이 그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