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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운수 좋은 날 (3) (198/449)


198. 운수 좋은 날 (3)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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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군인들 말을 듣자고 하며 밤톨의 편을 들어주던 여자다. 밤톨은 최대한 무덤덤하게 일러줬다.

“몇 분 뒤면 저기 보이는 고가도로 위로 좀비들이 지나갈 겁니다. 그냥 지나갈 건지, 아니면 여기로 뛰어내려서 달려올지 모르니까 일단 뒤로 피신하시라는 겁니다. 담배도 피우지 말고 소리도 내지 말고 조용히, 움직이지 말고 계세요. 제가 이젠 됐다고 할 때까지. 더 길게 이야기할 시간 없습니다. 빨리 걸으십쇼.”

민간인들을 재촉해서 뒤로 보낸 후, 밤톨은 그의 지휘를 받는 아홉 명의 병사를 한데 모이게 했다.

큰 소리로 생각과 다음 행동을 말하라는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오늘뿐 아니라 어쩌면 생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전술 지휘를 했다.

먼저 경기관총 사수와 K―1을 휴대하고 있는 장갑차 승무원들을 지목한 밤톨은 10여 미터 뒤에 있는 버스를 가리켰다.

“짧게 말할게. 5분 뒤에 저기에서 좀비가 올지도 몰라. 오면 꽤 많이 올 거니까 미리 준비를 하자. K―3 사수들하고 너희 둘은 탄통 다 챙겨서 건너편 차선의 버스 위로 올라가. 나도 버스 위에 올라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너희 네 명이 비스듬히 사선으로 엎드릴 정도는 될 거다. 그리고 나머지 우리는 전부 여기 이 가로등을 기준으로 선다. 그럼 K―3보다 약간 앞서 있는 모양이 되겠지. 만약에 좀비들이 뛰어내려서 50미터 이내로 접근해 오면 우리는 다시 100미터 뒤로 간다. 그동안에 K―3가 지원을 해주면 우리가 다시 재정비를 하고 너희를 지원해 줄게. 간단하지? 아참, 너는 처음부터 완전히 뒤로 빠져서 민간인들을 인솔해 남단으로 가.”

밤톨이 지목한 것은 무전병이었다. 무전병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밤톨이 부연 설명을 해준다.

“민간인을 뒤로 보내긴 하지만, 아까도 그쪽에서 좀비들이 왔었잖아. 그리고 나중에 지원 차량이 와도 무전 연락 주고받을 사람도 있어야 하고. 그 사람들 다 네 책임이다. 남단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 몰라도……. 민간인들한테 너무 바짝 붙지 말고, 하여튼 잘되면 부르러 갈 테니까. 이게 내 작전이다. 더 좋은 생각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해라. 계급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병사들을 둘러보며 밤톨이 말했다. 다들 겁에 질렸으면서도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게 훤히 보인다.

하아~ 밤톨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뒤에 있는 저 사람들, 우리 부모님이나 삼촌, 숙모라고 생각해 봐. 우리 가족이 저기 모여 있는데 내가 총을 가지고 지켜주는 거라고 상상했더니, 나는 좀 기운이 나더라. 자, 악으로 버티자! 준비해!”

K―3 사수들이 버스 위로 올라가도록 도와주고, 나머지 병사들은 갓길에 쌓아둔 자동차들 사이에 몸을 숨겼다.

마지막 경고처럼 좀비들이 근접했다는 내용의 무전을 보낸 500MD는 강변북로를 마주 보고 떠 있다. 힐끗, 밤톨은 머리만 내밀고 강변북로의 야트막한 난간을 노려보았다.

“아우, 무서워. 이게 웬일이야? 싫어라, 정말. 왜 하필 내가 올 때 이 난리냐고. 길이 꺼져도 내일 꺼질 것이지. 아니, 근데 오빠…… 뭐해, 지금?”

덜덜 떨며 뭉쳐 있는 사람들 곁에서 온갖 불평을 다 하던 초희가 민구를 보며 찡찡댔다.

남단에 외로이 버티고 서 있는 무전병이 그들의 모습을 힐끗 돌아보았지만, 중앙선을 넘는 것에 대해서까지 굳이 잔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민구는 대꾸하지 않고 건너편 차선의 자동차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대답이 없자 초희는 더 언성을 높였다.

“아이 씨,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왜 강 실장 오빠까지 나 무시하냐고! 뭐하는데? 이럴 땐 그냥 내 옆에 와서 손 좀 잡아주면 안 돼?”

“옳지~”

여전히 자동차들을 뒤지고 다니던 민구는 구형 승용차 트렁크에서 타이어 교체용 렌치를 찾아냈다. 짧은 치마를 입고서 용케 중앙분리대를 넘어 곁으로 온 초희가 한숨을 쉰다.

“그게 뭐야? 그까짓 거 짧아서 별루 세 보이지도 않는다고! 오빠 쫓아오다가 허벅지 다 긁혔잖아! 아우, 씨발. 쓰라려! 이것 좀 봐, 까진 거! 꺄악! 이, 이거 뭐야? 사람 죽은 거잖아!”

치마를 풀썩거리며 허벅지의 생채기와 하늘하늘한 팬티를 동시에 보여주던 초희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보고 기겁을 한다.

민구도 이런 허접한 걸로 싸울 생각은 없다. 애초에 무게중심이 안 맞아서 제대로 휘두르기도 어렵고, 너무 짧다. 하지만 이걸로 창문은 박살 낼 수 있다. 그리고 요령을 좀 부리면 트렁크도 열 수 있고.

“근데 오빠, 오빠가 암만 세도 세상엔 인력으로 안 되는 게 있어. 백 마리도 넘게 올 거 아니야? 그럼 어차피 못 이겨. 차라리 우리 어디 숨어.”

초희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백 마리가 아니라 몇십 마리만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거다.

하지만 만약 군인들이 걱정하듯 저 방향에서 놈들이 덤벼온다면, 그때는 든든한 아군이 생긴다. 높이라는 이름의 아군이…….

10여 미터 아래로 뛰어내리는 놈들의 다리가 멀쩡할 리가 없다. 그리고 만약 놈들의 속도가 부러진 다리 때문에 확 줄어든다면, 그런 놈들을 상대로는 싸워볼 만하다.

“떨어져 있어. 튄다.”

민구는 뒤를 졸졸 쫓아오는 초희를 피하게 하고는 렌치를 휘둘러 애초에 그가 목표로 삼았던 승합차로 다가가 짙게 선팅된 유리창부터 박살 냈다. 손을 안으로 넣고 자물쇠를 당겨 열었다.

번거롭게……. 민구는 얼굴도 모르는 한심한 차 주인을 비웃었다.

이런 데다가 차를 버리고 달아날 만큼 다급했으면서 문을 잠그고 가다니, 인간의 습관이란 참 무섭다. 차 뒤쪽으로 들어간 민구는 허탕을 치고 나왔다.

젠장……. 잠실 쉘터에 고이 남겨두고 온 칼들이 새삼 아쉽다. 양복 안쪽 나이프 홀더에 숨겨둔 라 그리프 나이프는 너무 짧아 괴물들 상대로는 적당하지 않다. 그러니 뭔가 쓸 만한 걸 건져 내야 한다.

콰창―

민구는 또 다른 SUV의 유리창을 박살 내고 뒤쪽 짐칸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예닐곱 대의 승합차 유리를 부숴보고, 승용차 브레이크 등을 박살 내서 트렁크를 연 뒤에야 그는 겨우 갖고 싶은 물건을 하나 찾았다.

“잘한다, 잘한다. 그래, 계속 가라. 이쪽 돌아보지 말고 쭉 가라.”

자동차 더미 뒤에 몸을 숨긴 채 강변북로를 엿보고 있는 밤톨은 주문을 외우듯 작게 중얼거렸다.

좀비 사태 이후 몰라보게 맑아진 공기는 가시거리를 넓혔고, 덕분에 150미터 이상 떨어진 고가도로의 자동차들 사이로 걸어가는 좀비들이 또렷하게 보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쪽을 돌아보는 놈이 없고, 아무것도 뛰어내리지 않고 있다.

“어? 저 새끼, 왜 저래? 야, 그냥 가!”

두어 놈이 갑자기 멈춰 서서 머뭇거리자 밤톨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터져나왔다. 행렬이 나타나고 10분 정도가 지난 시점에 일어난 변화였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서? 아니면 버스 위에 거치된 K―3의 총신이 반사되는 걸 보고? 또는 헬리콥터의 엔진 소리가 놈들의 신경에 거슬렸을 수도 있다.

하여간 놈들은 뭔가 그리운 것을 발견하기라도 한 양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하염없이 밤톨과 분대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방향을, 그러니까 잠실대교의 남단 쪽을 응시하고 있다.

좋지 않다. 밤톨의 턱을 타고 주르륵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헬리콥터 조종사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지금까지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던 헬리콥터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선회하며 고가도로와의 거리를 벌렸다.

적정 사거리 확보를 위해 뒤쪽으로 물러나는 헬리콥터의 움직임에 감응하기라도 하듯 멈춰 선 좀비들의 수가 점점 불어난다.

“아…… 씨발, 안 돼.”

밤톨의 탄식과 거의 동시에 좀비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그롸아아아아―!

놈을 시작으로 수많은 좀비들이 동시에 울부짖었다. 맨 처음 울부짖던 녀석이 콘크리트 난간을 타 넘으며 부웅, 몸을 날렸다. 곧바로 두 번째, 세 번째 좀비가 휙휙 뛰어내린다.

물꼬가 터지자마자 곧바로 수많은 놈들이 잠실대교를 향해 몸을 던져 대고 있다. 교전 시작이다.

쒜에에에에엥―

500MD의 양쪽 측면에 장착된 2정의 M134 미니 건 배럴들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7.62㎜탄을 쏟아낸다. 분당 3,000발이라는 엄청난 수치에 걸맞게 그야말로 빛줄기 같은 총알들이 쭉― 쭉― 뿜어져 나온다.

쒜에에에에엥―

한 번씩 미니 건이 훑고 지날 때마다 자동차에서는 불길이 솟고, 부서져 날리는 돌가루들이 먼지처럼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야말로 초토화! 강변북로 고가도로 위는 조각난 살덩이와 불꽃의 향연이 펼쳐졌다.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저 엄청난 위력 앞에서 감히 머리를 들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좀비들이다. 제압사격이라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바로 옆에서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동료들이 터져 나가는데도 놈들은 망설임 없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와 10여 미터 아래의 송파대로를 향해 끊임없이 몸을 내던졌다.

쒜에에에에엥―

고가 위를 두어 차례 훑은 뒤, 500MD는 잠실대교 도로에서 뒹굴고 있는 좀비들을 향해 조준을 바꿨다.

파파파파파파―

헬기가 지나가는 방향에 따라 30센티 간격의 먼지기둥이 두 줄로 솟는다. 그 범위 내에 들어가 있던 놈들의 몸뚱이는 갈기갈기 찢기고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사격 개시합니다!”

K―3 사수 둘도 좀 전에 밤톨이 일러준 매뉴얼대로 크게 외쳐 알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투― 투투투― 투투투둑―

두 정의 경기관총이 동시에 불을 뿜자 M134 미니 건의 불세례를 통과해서 살아남았던 놈들의 팔다리가 잘리고 조각난 머리통이 흩뿌려졌다.

“우리도 나가자!”

밤톨이 소리치는 것을 신호로, 자동차 더미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나머지 네 명의 병사 역시 개방된 도로 위로 뛰어나와 살아남은 놈들을 향해 조준 사격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저 많은 총알을 두드려맞은 도로 위에 여전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놈들이 잔뜩 있다.

쒜에에에에엥―

헬리콥터가 방향을 돌려 다시 한 번 고가도로 위를 훑고 지나간다. 차량들이 일렬로 박살 나고, 좀비들의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는 호쾌한 기세에 비해 실제 효율은 그리 높지 못했다.

애초부터 수백 발을 날려 한두 마리를 잡는 방식의 사격이고, 그나마도 워낙에 많은 자동차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더 적중 확률을 낮춘다. 좀비들은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더욱 치명적인 문제는 장탄량이다. 탄창을 가득 채워도 4,000발밖에는 되지 않는다.

최대 분당 3,000발을 발사할 수 있다는 말은 곧 헬리콥터의 화력지원이 1분 30초 내에도 종료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한 번씩 끊었다가 쏘기 때문에 그보다는 오래 유지될 테지만, 이 압도적인 화력지원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500MD가 한 번씩 사격을 멈추고 선회하여 방향을 바꿀 때마다 총알이 다 떨어진 것인가 싶어 병사들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곤 했다.

그롸아아악!

총알이 빗발치고, 불길이 치솟고, 화약 연기가 뽀얗게 피어올라도 뛰어내리는 좀비들이 있다.

10여 미터 이상을 자유낙하해 잠실대교 위에 떨어지는 놈들의 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터지고, 목이 꺾인다. 그리고 그 와중에 용케도 두 다리 대신 팔을 잃거나 갈비뼈만 박살 나는 놈들도 있다.

그르르―

벌떡 일어서는 놈들과 발목이 부러진 채 네 발로 기어오는 놈들, 그리고 척추가 부러진 놈들이 모두 뒤섞여 밤톨의 분대를 향해 아가리를 쫙쫙 벌린다.

가장 운이 좋은 놈들은 자동차 지붕에 떨어지면서 충격을 완화시킨 녀석들이다. 놈들은 금방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일어나 버스 위에 배치된 K―3를 노리고 뛰어온다.

훙훙훙훙―

두어 차례 더 섬광 같은 총알 세례를 퍼부으며 놈들을 무력화시켜 주던 헬리콥터가 하늘 위로 떠오른다. 이제 실탄이 바닥난 것이다.

결국 남겨진 수백의 좀비들은 모두 밤톨 분대의 차지가 되었다. 그야말로 끔찍한 몰골의 좀비들이 8차선 대로 위를 내달려 그들을 향해 덮쳐 온다.

“뛰는 놈부터 잡아! 두 다리로 뛰는 놈부터!”

열심히 조준을 해서 방아쇠를 당기며 밤톨이 외쳤다. 네 발로, 혹은 세 발로 제아무리 빨리 뛰어봐야 두 다리로 달리는 놈보다는 느리다.

그리고 좀비라 해도 익숙하지 않은 자세로 달려오다 보면 제풀에 고꾸라지거나 멀쩡했던 나머지 관절마저도 부서져 나뒹굴기도 한다.

투투투투― 투투투둑―!

K―3 사수가 열심히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에 대단한 명사수는 없다. 절반 이상의 총알은 허망하게 허공을 가르고 지나가 버렸다.

달려오는 좀비들의 수를 그리 줄이지도 못했는데 150미터라는 거리가 정말이지 눈 깜짝할 새에 좁혀졌다. 가로등 두 개 너머에까지도 놈들이 몰려왔다.

“지향 사격해! 탄창 다 비우고 빠져! K―3! 우리 빠진다! 엄호해!”

밤톨의 명령에 따라 네 명의 병사도 열심히 연사를 해서 전방을 제압하고 뒤돌아 달리며 탄창을 버렸다. 부러진 팔과 다리를 부지런히 놀려 그들의 뒤를 쫓는 좀비들을 버스 위의 K―3가 처리했다.

“으아! 전방에 좀비! 고개 숙여!”

버스 위에 부사수로 배치되어 있던 장갑차 승무원이 자동차 사이로 풀쩍거리며 뛰어오는 좀비들을 향해 K―1을 난사했다.

뛰어오를 수 없는 높이에 위치해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부러진 팔을 덜렁거리며 세 발로 뛰어오르는 놈들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반응하게 된다.

투투투― 투투투투― 투투투투―

등 뒤로 울리는 K―3의 총성만을 믿고 밤톨과 병사들은 죽어라 달렸다. 도로 표지판이 있는 곳까지 150미터를 전속으로 뛰어야 한다.

하아~ 하아~ 이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말이 150미터 달리기이지, 가뜩이나 두근거려 터질 것 같은 심장으로 혈액을 공급해 가며 3.5킬로그램짜리 개인화기를 꽉 잡고, 무거운 것들이 잔뜩 달린 전술 조끼의 추를 달고 뛰는 것이라 극기 훈련처럼 괴롭다.

멀리 보이는 민간인들은 뛰어오는 군인들의 모습에 기겁을 하며 더 뒤로 물러난다.

“자! 여기에서 재정비한다! 탄창 끼워!”

숨을 헐떡거리며 재장전을 마친 병사들은 좀처럼 펴지지 않는 배에 힘을 꽉 주고 억지로 몸을 세워 자세를 취했다. 그동안 K―3가 선방을 해줘서, 그들의 뒤를 바짝 쫓는 놈들은 이제 일곱 마리에 불과했다.

거리는 50. 여기까지 닿는 데 5초밖에는 걸리지 않을 것이다. 5초 사이에 1인당 한 마리씩을 잡고, 누군가는 엑스트라로 그 이상을 처리해야 한다.

“자기 정면으로 오는 놈부터 쏴! 거리 따지지 말고! 자기 앞부터!”

방아쇠를 당기며 밤톨이 외쳤다.

거리는 50…… 투투툭― 40…… 투투둑― 30…… 마침내 자신의 앞으로 달려오던 좀비의 대갈통이 날아간다. 밤톨은 곧바로 몸을 틀어 그다음 녀석의 머리를 겨냥했다.

거리는 20…… 투투둑― 투투둑― 10…… 가슴팍이 터져 나가며 뒤쪽으로 나뒹구는 좀비. 이제 놈은 일단 됐다.

시야의 바깥쪽에 아직도 움직이는 놈들이 잡힌다. 그다음은…… 밤톨이 고개를 돌릴 때, 연사하는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따라잡을 듯 쫓아오던 좀비가 녹색 체액을 하늘에 뿜으면서 털썩 쓰러진다. 놈이 자빠져 아가리를 뻐끔거리는 곳은 그들의 전투화 끝으로부터 채 5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남은 실탄 수 확인해! 또 온다!”

머리가 아직 파괴되지 않은 두 놈을 확인 사살하며 밤톨이 외친다. 병사들은 헐떡거리면서도 총을 옆으로 돌려 탄창을 확인하고, 다시 전방을 향해 섰다.

후우욱― 후우욱― 흥분하지 않으려 해도 끝없이 샘솟는 아드레날린 때문에 계속해서 팔다리가 부들거리고, 턱은 경련이 온 것처럼 떨린다. 회색 아스팔트 위로 또다시 좀비들이 밀려드는 중이다.

버스 위의 K―3가 쉬지 않고 그어 대도 자빠져 뒹구는 놈의 수는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만큼 빠르고, 또 많다.

밤톨과 병사들은 눈을 가늠자에 붙이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탕― 탕타탕―

5.56㎜탄이 세 발씩 날아가며 허공을 가르고, 이따금씩 좀비의 몸을 꿰뚫어 속도를 줄여준다.

다섯 개의 소총이 일방적으로 사격을 하는데도, 어째 전세는 점점 이쪽이 불리해지는 것 같다.

부러진 관절 때문에 네 발을 모두 사용하며 기괴한 형태로 뛰는 좀비들이 생각보다 빠른 데다가 동시에 맞추기도 어렵다. 뒤뚱거리며, 너무도 불규칙한 형태로 몸을 날리기 때문에 궤적이 예측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튕겨져 가며 굴러오는데, 그 속도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조 병장님! 이쪽에! 이쪽에도 옵니다!”

김 이병이 애타게 부른다.

막연히 ‘이쪽’이라니, 이쪽이 대체 어디야?

밤톨은 김 이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가 가리키는 것은 중앙선 너머의 반대 차선이다.

멈춰 서 있는 차량들 사이로 좀비들이 뛰어온다. K―3가 개방된 차선을 주로 저지하는 동안, 그 바로 곁을 뚫고 온 놈들이다.

K―3 사수들이 배치된 버스는 이미 수많은 좀비들에게 빙 둘러싸여 있다. 좀비들이 당장 그 위까지 뛰어오르지는 못하겠지만, 저것들을 다 상대하기 전까지 K―3가 이쪽을 지원해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침착해! 이제 느린 새끼들만 남았다! 이길 수 있어! 뒤로 물러나면서 계속 쏴! 전방부터 처리해!”

쉬지 않고 3점사를 날리며 밤톨이 외쳤다. 하지만 밖으로 뱉어낸 말소리와 달리 그의 마음속에도 벌써 패배에 대한 불안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너무…… 너무 많다. 고맙게도 아직까지 이 부족한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뒷걸음질을 치며 방아쇠를 당기는 네 명의 병사를 곁눈으로 보며 밤톨은 더 큰 책임감과 죄의식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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