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운수 좋은 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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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운수 좋은 날 (2)
2022.03.16.
“그쵸? 그거,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맞죠? 아우! 오빠는 계속 담배도 못 피우게 난리야!”
초희는 밤톨이 온 걸 기회로 삼아 얼른 한 대를 피워 물고 철퍼덕 두 다리를 펴고 앉는다. 그녀의 다리를 잠시 바라보던 밤톨이 금방 제정신을 차리고 민구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참, 담배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었지……. 아까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통제가 전혀 안 돼서 난감했거든요. 어휴~”
“뭐, 그럴 때는 하나 정도 본을 보여주면 되니까.”
민구가 덤덤하게 대꾸했다. 괜히 어영부영 시간을 끌었다가는 몰살당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기에 나선 것뿐이다. 밤톨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거야 저도 잘 알죠. 군대에서 1년 반 동안 배운 게 삽질이랑 사람 갈구는 건데요. 근데 저희 연대장님도 그렇고, 대대장님도 민간인들이랑 마찰 빚거나 피해 끼치는 거에 엄청 엄하시거든요. 그러니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군인이라는 게 원래 쓰는 사람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대민 지원 센터인가에서 만났던 낙타같이 생긴 놈의 경우를 생각하면 딱히 그런 것 같지만도 않았으나, 민구는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보다는 눈앞의 전망에 집중했다.
도로 양쪽으로 자동차들을 밀어둬서 약 2.5차선이 된 잠실대교 송파대로 위에 서 있는 건 꽤 묘한 기분이 드는 일이었다.
그 텅 비고 쭉 뻗은 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종말이 실제로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실감된다. 다들 그렇게 발버둥을 치고 살아온 결과가 이건가 싶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저기 저 고가도로…… 걱정돼서 그러시는 거죠? 저도 그렇습니다. 좀비 새끼들이 지나가다가 무더기로 뛰어내리면 어쩌나 하고 말입니다.”
민구의 시선을 오해한 밤톨이 전방의 강변북로를 가리킨다.
그들이 위치한 잠실대교와 직각으로 교차하는 고가도로다. 하필이면 그 교차하는 구간에는 높다란 차단벽조차 없이 그저 야트막한 난간뿐이다.
하지만 애초에 교각의 높이가 꽤 돼서 만약 괴물들이 뛰어내린다고 해도 멀쩡한 몸으로 일어설 수는 없을 것이다. 담배를 잡은 밤톨의 손이 덜덜 떨리는 걸 보며 민구가 말했다.
“긴장했군.”
“창피하기는 하지만,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무서워요. 상대가 좀비라는 게……. 물리면 그걸로 끝이잖습니까? 살짝 물리든 깊이 물리든 상관없이 그냥 전부 똑같이 죽어야 한다는 게 너무 매정한 것도 같고, 어딘가 불합리한 것처럼도 느껴지고…… 뭐, 그렇습니다.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요? 사람을 상대로라면 이렇게 무서워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밤톨이 한숨을 내쉬는 걸 보며 민구는 히죽 웃었다.
“생각을 바꿔봐. 한결 기분이 나아질걸?”
“생각을 바꾸라니, 그게 무슨?”
“저것들은 최소한 고문은 안 하잖아. 재미 삼아 시간을 끌지도 않고, 죽어가는 걸 다시 깨워서 또 괴롭히는 법도 없지. 인간은 그런 짓을 할 수 있거든. 그러니까 인간과 싸우는 편이 훨씬 더 무서운 거야. 내가 얼마나 미친놈과 상대하고 있는지, 싸움에서 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알 수 없으니까. 산 채로 가죽을 벗긴 다음 얼마 만에 죽는지 시간을 재고 있는 놈에 비하면, 저 괴물 같은 건 그렇게 겁날 것도 없지.”
넋을 놓고 민구의 이야기를 듣던 밤톨의 손에서 담뱃재가 툭, 떨어진다. 허어~ 밤톨이 고개를 저으며 두어 걸음 물러났다. 총 멜빵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 하는 걸 들었으면 ‘뭐지, 이건? 왜 이렇게 허세를 부리지?’ 하겠는데, 형님이 말씀하시니까 확 오네요. 그 칼 들고 싸우는 걸 봐서 그럴까요? 어휴~ 소름이……. 근데 저도 한 말씀 드리면요, 어디 가서 그런 말씀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진짜 리얼해서 형님 곁에 다가가기 싫어지니까 말입니다.”
밤톨은 농담과 진심이 반반씩 담긴 말을 남기고 다시 무전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민간인 구역은 담배 연기가 쉬지 않고 피어오르는 중이다.
보행자 통행로 쪽으로 나가서 피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까부터 꼴 보기 싫던 놈들은 대여섯 명이 아주 나들이라도 온 것처럼 모여 앉아서 줄담배를 피워 댄다.
비흡연자들이 콜록거리며 한쪽으로 피하는 걸 보니, 차에서 담배를 꺼내 준 게 후회스럽다.
“조 병장님.”
무전병이 밤톨에게 뛰어와 은밀하게 부른다.
응? 밤톨은 무전병을 돌아보았다. 잘 터지지도 않는 소형 무전기를 들고 전파가 잡히는 데를 찾아 돌아다니느라 무전병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장갑차의 통신 장비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에 목숨을 맡기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걱정하시던 그겁니다. 강변북로에서 접근 중이랍니다. 규모는 넷이고, 20분 뒤쯤부터는 이 위로 지나갈 거라고 했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무전병의 목소리가 떨린다. 덩달아 밤톨의 가슴도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넷? 넷이라고 했냐? 천 마리가 넘는다고? 아씨, 돌아버리겠네, 진짜.”
시간을 확인하던 밤톨은 자신의 시계가 망가진 것인가 잠시 의심했다. 아까부터 지금까지 겨우 40분도 지나지 않았다니. 1초, 1초가 너무 더디게 흐른다. 구조대가 도착하려면 앞으로도 한 시간 반은 기다려야 한다.
저 멀리 머리 위로 지나는 강변북로와의 거리를 가늠해 봤다. 100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데도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천 마리라니……. 자신들의 화력을 총동원해도 그만큼을 죽일 수는 없다.
고이 지나가 주면 제일 좋겠고, 그게 아니라면 위에 떠 있는 헬리콥터가 반 이상 처리해 줘야 한다. 아니, 반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헬기가 팔 할은 잡아줘야 생존의 희망이라도 가져볼 수 있을 거다.
어쩌지? 뒤로 더 빠질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뒤쪽에서 총성이 울렸다.
탕, 탕, 타타탕―
밤톨은 기겁을 하며 돌아봤다. 심장이 멎는 것 같다. 놀란 게 그 혼자만이 아니어서, 민간인들 역시 비명을 지르며 기겁을 했다.
“조용히 해요! 시끄러워!”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버럭 악부터 썼다. 조금 전하고는 다르게 이번 명령은 먹혔다. 찍소리도 없이 구석으로 물러나 앉는 걸 보니 다들 총소리에 어지간히 쫀 모양이다.
투투투― 투투투― 투투투―
그사이에도 쉬지 않고 3점사 소리가 전해졌다. 밤톨은 병력 둘을 데리고 남단 쪽으로 뛰어가며 외쳤다.
“야, 뭐야? 응? 왜 그래?”
좀비입니다! 다리 남단에서 접근해 옵니다!
대답을 듣기 전부터 이미 밤톨도 눈으로 확인을 할 수 있었다. 스무 마리 정도의 좀비가 간격을 두고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깨알같이 멀리 보였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K―3 사수가 놈들을 향해 총알을 퍼부어 대고 있지만, 덜덜 떠느라 제대로 맞추지를 못한다.
“막 갈기지 말고 조준해서 신중하게 쏴! 실탄 아끼라고! 아직 거리 있잖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밤톨 역시 경기관총 바로 옆에 자세를 취하고 앉았다. 어제까지 왔던 비가 증발하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넓은 도로 위로 좀비들이 뛰어온다.
가늠자를 통해 그 일렁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비현실적인 풍경 같다. 하지만 이 상황은 너무도 냉혹한 실제다.
개미 새끼같이 조그맣게 보이는 저 좀비들이 여기까지 도달해서 몸 어느 곳에든 이빨을 한 번 박으면 그걸로 끝이다. 치료고 뭐고 아무 방법이 없다.
안전장치를 해제한 밤톨은 호흡을 가다듬고 표적에 집중하기 위해 애를 썼다.
후우~ 후우~ 숨을 들이쉴 때마다 자꾸 총구 끝이 흔들린다. 조금 전, K―3 사수 놈이 자꾸 엉뚱한 데로 총알을 날리던 것도 이제 이해가 된다.
제길, 여기는 나를 지켜줄 울타리가 하나도 없다. 밀리면 죽는다는 게 너무도 뼈저리게 느껴져 두렵다.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진정해…… 진정…… 씨발, 어려울 거 없잖아? 지그재그로 뛰어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똑바로 달려오기만 할 뿐이야.
그렇게 밤톨이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자니, 흔들리던 가늠쇠 안에 좀비의 모습이 잡혔다. 밤톨은 숨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타탕― 탕타탕―
잇달아 발사된 여섯 발의 탄환이 얼굴을 박살 내는 것과 동시에 좀비의 몸이 뒤로 나동그라진다.
그래! 그래! 잘하잖아! 좋아!
밤톨은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총구를 옆으로 돌렸다. 자신의 한패가 죽든 말든 좀비들은 똑같은 기세로 달려오고 있다. 이놈들이 상대로서 마음에 드는 유일한 장점은 추호도 피할 생각을 않는다는 것이다.
“지원 갑니까?”
북단에 배치해 둔 병사들이 큰 소리로 묻는다. 밤톨은 뒤로 고개를 돌려 외쳤다.
“아니야! 아니야! 현 위치 지켜! 전방 경계해!”
투투투투― 투투투―
계속 방아쇠를 당겨 대던 K―3 사수가 마침내 두 놈을 자빠뜨렸고, 밤톨을 따라 달려온 병사도 한 놈의 대가리를 명중시켰다.
아직 거리는 200 이상 남았지만, 느긋하게 굴 여유는 없다. 놈들과의 거리가 좁혀지면 명중률도 올라가겠지만, 그만큼 이쪽의 조바심도 커져서 허둥대게 될 테니까.
여섯 명의 병사는 열심히 방아쇠를 당겨 댔고, 스무 마리의 좀비는 이내 진짜 시체로 변해 잠실대교 위에 널브러졌다.
이제 다음 이동 차량들이 지나면서 저것들을 깔아뭉개면, 조금 전 그들이 봤던 그 끔찍한 몰골이 되어 길바닥 위에서 천천히 썩어가게 될 것이다.
휴우~ 긴장이 풀어지며 한숨이 나온다.
“잘했어! 잘했어!”
밤톨은 세 마리를 사살한 자신과 나머지 좀비들을 죽인 다른 병사들 모두를 향해 칭찬의 말을 쏟아내고, 하이바를 한 번씩 두드려 줬다.
고작 스무 마리가 300여 미터 이상을 달려오는 동안 처리하는, 어찌 보자면 간단한 일이었는데도 병사들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대체 이 좀비 새끼들이 어디서 이렇게…….”
거기까지 말을 하던 밤톨은 잠실대교 남단의 수많은 아파트 단지들을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저기라면 넓은 대로 위로 규모 오 이상의 좀비들이 수시로 돌아다닌다.
오늘 장갑 트레일러도 그 지역으로 진입하기 전에 꽤나 긴 시간을 대기했다. 놈들이 이 정도 수만큼만 들어와 준 게 오히려 다행일 정도다. 그래서 밤톨은 질문을 바꿨다.
“왜, 왜 하필 이 시점에 여기로 온 거지?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이 전술 조끼와 긴장 때문에 땀으로 범벅이 된 등을 두드린다. 마치 답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 괴물들이 담배 냄새를 맡고 쫓아온다더군.
칼자국 난 사내의 말이 떠오른 밤톨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바람에 실려 자욱했던 화약 연기가 남단을 향해 날아가며 그의 의심을 더욱 부추겼다.
밤톨은 민간인들을 모아놓은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초조함을 달래려는지 아직까지도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하지만 코를 킁킁거려 봐도 담배 냄새가 실감되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30미터 이상 떨어져 있으니까……. 개코도 아니고, 설마 이 정도 냄새를 맡고 쫓아온다는 거야? 하지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공교롭기도 하잖아…….
확신은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보였다. 밤톨은 병사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구조 차량 올 때까지 금연이다. 다들 담배 꺼내지 마.”
다들 이유를 묻지도 않고 알겠다는 대답을 한다. 민간인들에게도 같은 지시를 하기 위해 밤톨이 돌아섰을 때, 건너편 차선의 자동차들 사이로 뭔가가 쑥 지나쳤다.
‘응? 뭐지? 잘못 본 건가…….’
밤톨은 무의식적으로 건너편 차선을 향해 한 발짝을 내디뎠다. 자동차들을 양쪽으로 밀어내고 길을 튼 북쪽 차로와 달리 남쪽 차로에는 여전히 자동차들이 방치되어 있어서 시야를 가렸다.
밤톨이 다시 한 걸음 더 다가갔을 때, 머리 가죽이 반쯤만 남은 좀비의 머리통이 버스 뒤쪽에서 쑤욱 튀어나왔다. 밤톨과 눈을 마주친 좀비가 곧장 아가리를 쫘악 벌리며 달려온다.
“으! 으아악!”
밤톨은 뒷걸음질을 치며 오른쪽으로 물러났다. 다급해지니 안전장치를 푸는 것조차 더듬거리게 된다. 그사이에 좀비는 몸을 날려 중앙선에 설치된 차단벽을 뛰어넘었다.
쿠당탕―
밀어놓은 자동차 더미를 들이받고 구른 좀비가 벌떡 일어섰다. 밤톨 역시 그동안 사격 자세를 갖출 수 있었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려는 순간, 탕타탕― 탕타탕― 탕탕탕― 날카로운 총성이 등 뒤에서 울리는가 싶더니, 차단벽에 돌가루가 튀고 좀비의 얼굴과 가슴이 박살 났다.
놈이 그야말로 짓뭉개진, 썩은 고깃덩어리가 되어 자동차 사이에 처박힌 걸 확인한 밤톨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도 귀가 찡찡 울릴 만큼 가까이에서 총알이 지나갔었다.
“하아~ 하아~”
밤톨과 대각선 방향에 서 있는 김 이병도 그만큼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총을 꽉 쥐고 있다. 이놈이다. 손가락이 아직도 방아쇠에 걸려 있는 이놈이 쏜 거다.
각도로 보자면 녀석이 쏜 총알은 자신의 몸에서 50센티도 안 떨어진 곳을 스치고 지나가 차단벽과 좀비를 때린 거다. 아찔하다. 밤톨은 최대한 침착하게 명령했다.
“……김 이병, 총구 내려.”
녀석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총구를 바닥으로 향하는 걸 확인한 밤톨은 놈의 하이바를 후려쳤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누가 아군 등 뒤에서 총 쏘래? 응?”
“저, 저는 조 병장님께서 대응을 못 하시는……. 조, 조심하겠습니다!”
“죽을래, 이 개새끼야? 쏜다고 말을 하든가, ‘엎드려!’라고 외쳐야 할 거 아니야? 응? 아까 옆으로 한 발짝만 떼었으면 내가 맞는 거였잖아!”
분을 못 참아 또 손이 올라가려던 밤톨은 김 이병의 입술이 파랗게 질린 것을 보고 멈칫했다. 이놈도 마찬가지다. 무서워서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늘 철책 위의 사대에서만 좀비들을 상대하다 보니까 이렇게 훤히 뚫린 3차원의 전선에서 어디에 서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거다.
그리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 자신이 그렇게 어리바리하게 움직이지 않았으면 김 이병이 욕을 먹을 일도 없었으리라.
밤톨은 싱크홀이 생긴 이래 자신이 분대원들과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직도 먹먹한 귀를 꽉 눌러 진정을 시키며 밤톨은 김 이병을 포함한 모든 병사들에게 말했다.
“솔직하게 말한다. 지금 건 내 잘못도 컸다. 그동안 좀비들을 많이 상대해 봤기 때문에 우리가 전문가라고 착각할 수 있는데, 오늘처럼 딱 우리 분대끼리만 좀비들을 죽이는 건 처음이야. 그렇지?”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 밤톨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당연히 뭔가 아귀가 안 맞고 허술할 거다. 누가 뭘 할지, 뭘 해야 다른 사람이 편한지, 서로 훤히 알지를 못한다는 말이다. 장갑차 몰던 너희 둘이야 말할 것도 없고. 뭐, 지금 그걸 안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면 훈련은 왜 하겠냐마는…… 내가 할 말은 이거다. 교전할 때 자기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을 입으로도 계속 떠들어라. 무섭다, 도망가고 싶다…… 이런 말을 하라는 게 아니고, 어디로 이동할지, 발포할지, 어디에 지원이 필요한지, 이런 거를 다른 분대원들도 듣고 알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치라는 거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그래, 좋아!’ 하고 돌아서던 밤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내가 왜 돌아섰지? 뭔가 하려고 했었는데?
아, 담배!
바람에 실려 오는 매콤한 냄새를 맡은 밤톨은 제 머리를 치고 민간인들을 향해 뛰어갔다. 헐레벌떡 달려오는 밤톨을 보고 더욱 위축된 민간인들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 아직 다 못 잡았어요? 좀비 또 옵니까?”
“지금은 다 잡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올 겁니다. 그보다 지금부터 금연입니다. 모두 담배 피우지 마십쇼! 지금 물고 계신 분들 빨리 버리고 불 다 끄십쇼! 빨리! 혹시라도 담배 피우시려는 분이 있으면 주변에서 말리셔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담배를 버리라고 하면 분명 누군가 성질을 부리며 개지랄을 할 거라고 밤톨은 생각했다. 하지만 흡연자들은 겁에 질려 서둘러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신경질적으로 비벼 껐다.
누구 하나 대거리를 하거나 이유를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없었다. 조금 전의 총성이 이들을 어지간히 위축시킨 모양이다.
‘젠장, 순한 양이 따로 없구나.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 알았으면 아까도 좀비가 나타난 척하고 허공에 몇 발 쏴줄걸.’
밤톨이 혀를 끌끌 차고 있을 때, 무전병이 쫓아왔다.
“700미터 정도 남았답니다. 대피합니까, 아니면 현 위치 고수합니까?”
아, 이런 젠장! 강변북로! 거기도 있었지. 벌써 그렇게 가까워졌다고? 700미터, 건성으로 걸어도 10분 정도면 이 근처에 도달한다. 밤톨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분대장이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벼슬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게 이렇게 많은 건지……. 이렇게 골치 아플 걸 알았다면 차라리 트레일러 안에 있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밤톨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거기 있었다가 구덩이에 끌려 들어가 버리면 지하수하고 흙에 파묻혀서 문도 못 열어보고 죽었을 거야…….
지금 해야 할 일은 후회가 아니라 앞으로의 계획을 짜는 거다. 그리고 조금 전 김 이병과 같이, 혹은 그 자신처럼 실수하는 놈이 나오지 않도록 분대장으로서 지휘를 해야 한다.
“다 모여봐. 할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민간인분들, 일어나십쇼. 후방으로 이동합니다. 저기 보이는 저 군인이 있는 데를 지나서 그 다음다음 가로등이 있는 데까지 쭈욱 걸어가십쇼.”
“……더 가라고요? 왜 그래요? 담배도 그렇고…… 갑자기……. 무슨 일인지 좀 알려줘요.”
온순한 여자가 덜덜 떨며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