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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킬러 (4) (195/449)


195. 킬러 (4)
20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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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투둑―

점사된 세 발의 탄환이 놈의 몸 중에서 나무 바깥쪽으로 노출된 부분, 즉 오른 무릎과 허벅지, 종아리를 관통했다.

끄아아아―! 으으으아!

다리가 꺾여 쓰러진 네 번째 놈은 총을 떨어뜨리고 높게 비명을 질러 댔다.

툭.

놈의 소총이 언덕을 굴러 계곡 아래 자갈 위로 떨어진다.

하아…… 진우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이제 다 끝났다. 마지막 놈까지 무장해제시켰고,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이 개새끼들에게서 누나를 구했다.

아직까지 벽에 바짝 붙어 있는 하 중위에게 손을 내밀기 전에 진우는 언덕 위의 네 번째 놈을 향해 K―2를 겨눴다. 흙과 피범벅이 된 채로 바닥을 기며 비명을 지르던 네 번째 놈의 시선이 진우와 마주쳤다.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게 낯선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놈의 얼굴 위로 좌절과 공포가 확 번졌다. 놈은 울부짖으며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으아아! 쏘지 마세요! 제발! 이제, 이제 됐잖아요! 여자도 데려가고, 다! 다 가져가요! 끄으으~ 그러지 마요. 쏘지 말라고요. 이렇게 일어서지도 못하는 놈을 죽인다고 뭐가 달라져요! 제발! 쏘지 마세요! 살려주십시오! 살고 싶습니다! 제발…….”

간단한 일이었다. 이미 조준이 끝나 있는, 저놈의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을 향해 방아쇠만 당기면 모든 게 다 마무리되는 거였다. 손가락만 까딱! 그걸로 끝이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총을 마주 겨눈 상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건 쉽다. 누가 더 정확하고 빠른가로 죽느냐 사느냐가 정해지니까. 하지만 이놈은 이제 무력하다.

무력한 상태에서 울부짖으며 살려 달라고 비는 놈의 얼굴에 총알을 박아 넣는 건 지금까지의 각오와는 또 다른 수준의 결기를 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진우는 아직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신에게 그런 각오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을, 상황과 직접 맞닥뜨린 다음에야 깨달은 것이다.

진땀이 흘렀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진우는 망설였다. 놈이 애원을 시작한 뒤로부터 10여 초 정도를 허비했다. 그사이 네 번째 놈은 앞으로 기어오며 하 중위에게도 간청을 한다.

“살려줘! 살려…… 주연아! 네가 말 좀 해줘! 나, 나는 다른 새끼들이랑 달랐잖아! 응? 나는…… 나는 말리기도 하고…… 응? 주연아? 거기 있어?”

“네가 말렸다고? 네가 가장 악질이었어!”

듣다못한 하 중위가 벽에서 나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의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네 번째 놈은 앞으로 몸을 기울여 언덕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씨발 년아! 같이 가자!”

하 중위를 향해 몸을 날린 놈의 손에는 대검이 들려 있다.

투투둑―

당황한 진우가 뒤늦게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놈의 미간을 관통했지만, 중력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네 번째 놈의 시체가 하 중위를 덮치며 대검이 그녀의 목에 깊숙이 박힌다.

투두둑―

하 중위가 발사한 총알들이 놈의 등을 엉망으로 꿰뚫었지만, 그것은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끄르륵!”

하 중위가 손을 뻗으며 피가 끓는 신음 소리를 낸다.

“안 돼! 안 돼!”

진우는 미친 듯이 외치며 달려가 네 번째 놈의 시체를 밀치고 하 중위를 들어 올렸다.

대검은 목의 경동맥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 하 중위가 눈을 부릅뜬 채 손을 바들바들 떨 때마다 상처와 입에서 뜨겁고 붉은 피가 꿀럭꿀럭 솟아오른다.

“안 돼! 제발! 안 돼! 누나!”

빌고 또 빌어봐도 돌이킬 수가 없다. 하 중위는 진우의 품에 안긴 채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숨을 거뒀다.

진우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녀 대신 숨을 쉬어줄 수도, 그녀의 아픔을 덜어올 수도 없었다.

“으아아아아!”

하 중위의 부릅뜬 눈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진우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울부짖었다.

눈물이 차올랐다.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막으려고 자꾸만 눈을 깜빡거려 봐도, 지끈거리는 콧잔등을 타고서 고이는 뜨거운 것이 그보다 더 빨랐다.

뚝, 뚜둑.

진우의 눈물이 활짝 열려 있는 하 중위의 눈동자 위에 떨어진다. 그 폭풍우 치던 날 이후로 줄곧, 목구멍 저 안쪽까지 메워져 더 이상 담아둘 수 없게 된 후회와 오열이 이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이 등신! 개새끼! 멍청한 등신 새끼! 어흐흐흑~”

너를 믿으라고? 너 같은 등신을 믿으라고? 우유부단하고 말만 앞세우는 너 같은 새끼를?

진우는 하 중위를 지키지 못한 자신이 치욕스러워서 할 수 있는 온갖 욕설과 자조를 스스로에게 퍼부었다. 눈물과 침과 콧물이 범벅되어 떨어져 내린다.

또 지키지 못했다……. 이 병장님, 김 상병님, 강 일병님, 분대원들 모두…… 그리고 하 중위까지……. 다정했던 사람들, 지켜줬어야 하는, 그 소중한 생명들을 단 하나도 구해내지 못했다.

이게 아니었다. 조금만 더 빨리 결단을 했더라면…… 그랬으면 나쁜 새끼들은 죽고, 좋은 사람은 살 수 있었다.

네 명의 개새끼가 오두막을 향해 걸어가던 그때, 방아쇠를 당겼더라면…… 단 몇 초 만에 모든 걸 아주 안전하게 끝낼 수 있었다.

바로 조금 전에도 먼 곳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마지막 남은 두 놈을 쏴 죽였더라면, 하 중위의 털끝 하나도 다칠 일이 없었다.

‘왜 가까이 가?’ 의아해하던 하 중위의 얼굴이 ‘제압할 수 있습니다’라고 건방을 떨던 자신의 목소리와 겹쳐져 깊고 깊은 후회를 남긴다.

“네가 죽인 거야, 이 개새끼야! 네가 죽인 거라고!”

자갈밭에 이마를 짓찧으며 진우는 자책했다. 하 중위의 어깨를 안았던 진우의 손등에는 그녀의 손톱이 깊게 박혀 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살갗이 찢어진 자신의 손등과 오그라든 그녀의 손을 보고 있으니 그녀가 느꼈을 고통이 상상된다.

차라리…… 차라리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 미안해요. 누나, 미안해요…….

한참을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던 진우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하 중위를 보다가 그녀의 목에서 칼을 뽑아주었다. 어찌나 깊이까지 박혀 있었는지 뽑아내는 것조차 힘이 든다.

으흐흐흑, 피가 잔뜩 엉겨 붙은 그 칼날을 보며 진우는 또 통곡을 했다.

아무도 죽이지 않고 그녀를 구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문제였다. 저까짓 것들도 사람이라고, 죽이는 걸 망설였던 게 문제였다.

다 기절시켜 제압한 뒤 묶어놓고 가겠다는 같잖은 계획이…… 죄를 짓고 싶지 않다는 알량한 양심이,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그 좃같은 자만심이…… 누나를 죽인 거다. 이 착한 여자의 목에 칼을 박은 거다.

“하아아~”

진우는 가슴 저 안쪽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끌려 올라간 원피스의 매무새를 바르게 해주고 그녀를 똑바로 눕힌 뒤, 진우는 냇가로 걸어갔다.

“일어나.”

진우가 발로 밀어 물가로 빠뜨리자 조금 전까지 정신을 잃고 있던, 그 씻던 놈의 코로 물이 빨려 들어간다.

“으으으~ 윽, 컥! 커억! 어? 어?”

코로 들어간 물을 토해내며 일어나던 놈은 진우를 보며 기겁을 했다. 이제야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총을 겨누고 있는 진우에게 녀석이 다급하게 외쳤다.

“저, 저기 드릴게요, 여자…….”

타앙―

진우의 K―2에서 발사된 5.56㎜탄이 씻던 놈의 오른쪽 복부를 뚫자 놈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놈이 허우적거리며 발버둥을 칠 때마다 주변의 물이 솟아오른 피로 붉게 물든다.

꾸루룩, 꾸룩, 한 번씩 놈의 머리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물을 잔뜩 마시고 다시 잠긴다.

씻던 놈이 무릎 깊이의 물에 잠겨 고통스럽게 천천히 죽어가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진우는 놈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자 뒤로 돌아섰다. 이제 아까 뒤통수를 쳐서 기절시켰던 저 마른 놈의 차례다.

***

그르릉―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린 뒤에야 밤톨의 말처럼 장갑 트레일러는 다시 출발했다.

속도를 시속 30킬로미터까지 올린 장갑 트레일러가 잠실대교를 통과한다. 후텁지근하던 컨테이너 내부로 외부의 공기가 유입되자 그나마 좀 숨을 쉴 수 있었다.

“이제 한강 다 건넜나 봐요. 크, 여기도 아주 엉망이네. 전쟁터가 따로 없네, 그냥. 쯧쯧쯧.”

구경꾼이 외부 상황을 중계해 준다. 그의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물었다.

“전쟁터라니? 뭐가 어떤데요? 사람들이 죽어 있고, 막 그래요?”

“아…… 뭐, 시체도 있기는 있어요. 사람인지 좀비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러게 저런 건 좀 치워놓으면 좋을 텐데. 보기도 흉하고, 썩으면 여러 가지 병균도 돌 것 같은데. 근데 그것보다 다리 기둥 같은 게 불탄 데가 많아요. 그리고 사방에 다 총알에 맞아서 팬 자국도 많고. 그다음에는 다 철조망이에요. 예전에 뉴스에서 중동 전쟁 난 거 본 적 있잖아요. 딱 그런 데 시내를 보는 기분이랄까?”

“아휴, 세상에 말만 들어도 끔찍해라. 어쩌다가 우리나라가 이 모양이 됐어그래.”

듬성듬성 앉은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어 댔다. 다들 뭔가 자신이 추리하는 이유가 있고, 할 말들도 많다. 물론 자세히 들어보면 그저 누군가를 탓하고 있을 뿐이다.

회전 구간을 통해 진입로에 접어든 장갑 트레일러의 속도가 다시 줄어들었다.

공기구멍을 통해 비쳐 들던 햇살이 머리 위를 지나는 고가도로에 막혀 잠시 사라지자 밤톨의 얼굴에는 가벼운 긴장감이 깃들었다. 녀석을 관찰하던 민구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이번에는 뭔가 있는 모양이군.”

“아…… 겉으로 표가 나던가요? 나름 숨긴다고 했는데.”

쑥스럽게 웃으며 하이바를 만지작거리던 밤톨은 몸을 민구에게 기울인 채 마음속에 숨겼던 걱정을 조곤조곤 털어놓았다.

“저희들끼리 다니면서 무서워하는 데가 있어요. 바닥에 금 간 게 살짝 보이니 어쩌니 해서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달리는 이 도로들이 처음부터 탱크가 지나가라고 만들어놓은 게 아니잖습니까? 길이 넓게 나 있는 지역은 그나마 좌우로 골고루 밟고 다닌다고 하는데, 여기 진입로는 넓은 차선 하나뿐이라 신경을 바짝 쓰는 거죠. 계속 같은 길 위로 지나다니면서 노면에 스트레스를 주고 있으니까요.”

“어차피 큰 차들도 매일 다녔던 길인데 탱크라고 뭐 다를 게 있나?”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민구가 물었다. 밤톨이 더욱 목소리를 낮춰 일러준다.

“전차나 장갑차라는 게 어지간히 무겁거든요. 상상을 초월해요. 지금 우리 트레일러 끌고 가는 장갑차도 무겁지만, K―2 같은 건 55톤이나 나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한두 번도 아니고, 하루에도 몇 차례나 여기로 지나다니면서 막힌 차들 밀어 치우고, 공사 지원하고, 가끔씩은 기관총도 갈겨 대고 그런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만날 뻑하면 길에 구멍이 뻥뻥 뚫리는 거예요. 가뜩이나 허술하게 지어놨는데 거기에 반복적으로 엄청난 하중이 실리니까……. 그, 왜, 잠실에 계실 때, 그런 거 보신 기억 없으십니까? 멀쩡한 도로에 전차 지나가고 나면 구멍 뻥 뚫리는 거.”

밤톨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게 있긴 했다. 그때는 그저 군인들이 뭔가 공사를 하기 위해 일부러 구멍을 뚫었나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보다.

“그런데 왜 이리로만 다니는 걸 고집하는지 모르겠군. 위험한 걸 알면서.”

“다른 길로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이게 유일하게 뚫려 있는 길이에요. 이만큼의 경로를 확보한 것도 시간이 꽤 걸렸거든요. 게다가 이쪽 도로는 강변이라 한쪽만 철책으로 막아도 되는 장점도 있고 말입니다.”

구우웅―

앞에서 끌고 가는 장갑차가 방향을 틀자 관성이 작용해서 트레일러가 가볍게 흔들린다. 또다시 구우웅― 하고 트레일러와 연결한 고리에서 마찰음이 들려온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기우뚱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아마 길 위의 뭔가를 피하기 위해 크게 반원을 그리는 것 같다.

“강 실장 오빠, 나 심심해. 언제까지 거기 앉아 있을 거야?”

초희가 벌떡 일어나 다가오는가 싶은 순간,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트레일러가 급격하게 앞으로 당겨졌다. 매달려 서 있던 구경꾼이 바닥에 나뒹굴고, 중심을 잃은 사람들이 엎어진다.

그리고 또다시 쿵―!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충격이 적었지만, 그래도 꽤 강하게 인력이 작용했다. 바닥에 얼굴을 찧은 사람들이 내는 비명과 앓는 소리가 트레일러 내부 여기저기서 새나왔다.

“아우~ 아, 뭐야? 존나 발모가지 나갈 뻔했네. 오빠가 잡아줬으니 망정이지.”

앞으로 고꾸라질 뻔한 초희가 민구의 팔에 안겨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끼이이이이이― 뿌드드드드―

트레일러 앞쪽에서 쇠가 갈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왔다. ‘나와! 일단 빨리 나와!’ 하는 다급한 외침도 섞여 있다.

민구는 밤톨과 눈을 마주쳤다. 밤톨의 얼굴에서 조금 전까지의 애교와 붙임성은 사라지고, 그 대신 그 자리를 긴장감과 두려움이 채우고 있다. 뭔가 심상치가 않다.

텅―

쇠가 울리는 소리. 바깥에서 병사들이 뭔가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중이다.

“나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 아까 그 구멍인지 뭔지 같은데.”

참다못한 민구가 밤톨에게 물었다. 밤톨과 그 동료는 고개를 저었다.

“앉아 계십쇼. 밖에서 신호를 줘야 엽니다. 트레일러는 안에서 열지만 않으면 안전합니다.”

하지만 밤톨의 믿음과 달리 외부의 상황은 심각했다.

난데없이 도로가 뻥 뚫리며 그 구멍에 빠져 버린 장갑차 주위로 왈칵왈칵 물이 솟아오른다. 대체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인지 신기할 지경이다.

으으~ 신음 소리를 내며 후방 해치를 열고 나오는 병사들의 얼굴은 코피로 범벅이 되어 있다. 가장 크게 부상을 당한 것은 포탑 밖으로 상반신을 내놓은 채 주행하고 있던 장갑차장이었다.

척추 때문인지 목 때문인지 분간할 수는 없지만, 흙더미에서 건져 낸 이후에도 그는 도무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의식도 없다.

“김 상사님부터 옮겨! 야! 목을 고정해! 목을!”

“거기서 빨리 나와! 이러다가 빨려 들어간다!”

장갑 트레일러 지붕의 사대에 앉은 병사들이 장갑차 탑승원들에게 외친다.

장갑차를 운용하고 있던 인원들과 탑승 구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네 명이 비틀거리면서도 힘을 합쳐 흙투성이가 된 장갑차장을 트레일러 위로 옮기고, 그들도 도로 위로 뛰어내렸다.

끼이이잉―

장갑차가 옆으로 기울어지면서 그 무게를 고스란히 받는 견인 고리에서는 쇠 갈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하아, 하아~ 이, 이거, 분리해야 하나? 이러다가 트레일러까지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데?”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한 병사가 물었고, 나머지 병사들은 싱크홀에 빠진 장갑차와 트레일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구멍의 깊이는 5미터 이상. 중간에 걸린 장갑차를 3분의 2가량이나 집어삼켰다. 게다가 더 커질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고리를 분리한다고 해도 어차피 트레일러는 그 자체의 힘만으로는 단 1미터도 이동할 수 없다. 애초에 동력 기관이 달려 있지 않은 것이다.

끼이이잉―

그렇게 고민을 하는 동안에도 고리는 계속 갈리며 신경을 긁어 댄다.

어쩌지? 어쩌지?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망설이던 병사들에게 결단을 내리도록 만든 것은 도로였다.

쿠쿵―

육중한 소리와 함께 1평방미터 이상의 아스팔트 판이 깨져 나가고, 지면에 걸려 있던 장갑차 무한궤도의 뒷부분마저 아래로 빨려 들어간다. 더 이상 보고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퉁퉁퉁―

병사들은 다급하게 트레일러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내려! 내려! 다 내보내!”

헉! 바깥에서 두드리는 소리에 밤톨과 동료는 숨을 꿀떡 삼켰다. 그러고는 호흡을 가다듬은 후,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를 가장해서 탑승자들에게 외쳤다.

“드, 들으셨죠? 일단 내리셔야 합니다! 다들 조용히 질서정연하게 내립니다! 앞사람을 밀거나 서두르지 마시고, 대기하고 있는 병사의 지시를 따라 주십쇼!”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밤톨이 문을 여는 동안 트레일러 내부는 비명과 울음소리, 각종 불만의 목소리들로 가득 채워졌다.

안 돼! 문 열지 마! 문 열면 다 죽어!

바깥의 상황을 전혀 모르면서도 지레짐작에 흥분해서 발작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용히 해요! 제 말을 잘 듣고 따릅니다! 하차하는 즉시,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병사들의 곁으로 가서 섭니다! 알겠습니까? 뒤쪽입니다!”

문이 열리자 대기하고 있던 세 명의 병사가 큰 소리로 주의 사항을 일러준다. 혹시라도 흥분해서 싱크홀 쪽으로 뛰어가는 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게다가 하필이면 고가도로 아래에서 이 사달이 나가지고 헬기의 시야를 막는 바람에, 여기에 멈춰 있으면 공중으로부터의 엄호도 어렵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내리면 어디로 가라고요?”

맨 앞줄의 여자를 붙잡아주며 병사가 물었다. 여자는 불안에 몸을 벌벌 떨면서도 뒤쪽이라고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병사는 여자를 땅에 내려주고 나머지 병력이 대기하고 있는 쪽을 가리켰다.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비틀거리면서도 이렇다 할 사고 없이 트레일러로부터 20여 미터 뒤쪽으로 이동을 마쳤다.

민간인들이 모두 안전하게 대피한 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장갑차장을 옮기고, 마지막으로 트레일러 상부의 사대를 지키던 병사들까지도 탈출했다.

훙훙훙훙―

앞서 날아갔던 헬리콥터가 다시 돌아와서 고가도로 주위를 크게 선회하며 그들을 엄호한다. 밤톨은 주변을 둘러보며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젠장, 난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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