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광기와 폭력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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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광기와 폭력 (4)
2022.03.09.
“왜요?”
임수정이 물었다.
“총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줄었어요. 그쵸? 그쵸?”
그러고 보니 쉬지 않고 난사해 대던 4층의 기관총도 언제부터인가 조용하다. 들려오는 총성이라고는 간간이 울리는 단발들뿐이다. 임수정도 가희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뭐죠? 좋은 거겠죠? 다 죽인 거 맞겠죠? 언니 생각은 어때요?”
“제 생각에도 우리가 이긴 것 같아요.”
경비병들의 얼굴을 보며 임수정이 대답했다. 만약에 아니라면 경비를 서는 군인들 표정이 저것보다 어두울 테니까.
살아남았다. 전투가 끝났다.
하아아~ 긴장이 풀린 임수정은 쪼그리고 있던 두 다리를 펴서 바닥에 붙였다.
가희는 줄곧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두어 번 중심을 잃고 비틀댄 끝에 겨우 제대로 설 수 있게 된 가희는 흐흥~ 하고 어색한 웃음을 웃었다.
“고마웠어요, 언니. 근데 가희가 골초라는 건 꼭 비밀로 해주세요. 네? 그리고…… 이것도요. 이것도 남들이 알면 창피해요.”
자신의 가슴께를 가리키며 가희가 눈을 찡긋한다. 아마 속옷 속에 숨겨놓은 부적을 말하는 모양이다. 임수정은 미소를 지어줬다.
“걱정하지 마요. 그리고 저도 고마웠어요. 정말…… 가희 씨랑 같이 있지 않았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거예요.”
후훗,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가희가 허리를 굽혀 임수정을 가볍게 끌어안아 준다.
다음에도 또 무서워지면 옆에 올지도 몰라요, 가희는 그 말을 남기고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다른 사람들 역시 웅성거리며 조금씩 제정신을 찾아가는 중이다. 긴장 때문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자신의 손을 주무르며 임수정은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해야 했다.
세상에…… 이렇게 무섭고 두려운 일을 대체 몇 번이나 더 겪어야 하는 걸까? 아니, 이런 날들이 정말 끝나기는 하는 걸까?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그걸 견뎌낼 수 있을까?
***
“저기 저쪽, 흰색 소나타 옆에! 저기 다시 봐봐! 뭐 움직였다!”
부사관이 지목한 곳을 라이트가 따라가 비춘다. 차량 아래에서 흔들리던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밖으로 기어 나온다. 하체는 잘려나가고, 오른팔도 팔꿈치 아래로는 없는 좀비다.
하지만 놈은 여전히 강력한 적의를 뿜어내며 부지런히 기어서 쉘터의 게이트 쪽으로 다가온다.
왼손, 오른쪽 팔꿈치, 그리고 다시 왼손, 번갈아 땅을 짚고 거리를 줄이던 놈이 아가리를 쩍 벌리며 포효한다.
그롸아아…….
투투툭―
총알이 놈의 머리를 박살 내자 좀비의 목이 뒤로 꺾이고 왼손도 맥없이 툭, 떨어진다. 움직이지 않은 것을 확인했지만, 그래도 모자라 한 차례 더 확인 사살이 가해졌다.
투투툭―
좀비의 목과 머리가 산산조각 나서 사방으로 튄다.
“중앙에 제2저지선 한 번 비춰보자! 거기 뭐 잔뜩 있네!”
라이트가 영역을 밝혀주고, K―3 경기관총이 좌에서 우로 철망 전체를 훑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반대 방향으로 총알을 박아 넣었다. 끊어진 철조망에 끼인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좀비들의 몸과 머리가 엉망으로 꿰뚫리고 잘려 나간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놈들은 개인화기로 처리했다.
좀비의 머리를 조준한 병사가 방아쇠를 당긴다.
투투툭―
조금 빗맞기는 했어도 뇌가 터져 나왔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시 겨냥을 하고 쏜 확인 사살은 좀 더 정확하게 좀비의 머리 전체를 파괴하였다. 비로소 병사의 얼굴에 만족한 표정이 보인다.
“자기 라인 철저하게 다시 확인해! 내일 아침에 작업 나갔다가 물리면 아무도 못 고쳐 준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잘 봐!”
건대 쉘터의 북쪽 게이트에서는 이제 대좀비 마무리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아까부터 계속 사거리를 배회하던 흑표도 불러들였고, 부사관들은 쉬지 않고 서치라이트를 움직여 가며 깜깜한 도로 위에 혹시나 아직 공격이 가능한 좀비가 남아 있는지 수색을 했다.
옥상의 저격수들도 천천히 거리를 훑어보며 움직이는 놈들의 머리에 구멍을 뚫었다. 이따금씩 시체 더미 사이를 비집고 일어나 멀쩡히 뛰어오는 좀비도 있다.
일몰 후, 400여 미터에 달하는 6차선 도로 위에서 움직이는 것들을 모두 찾아 저격하는 것이니만큼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게다가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들도 많다.
할 일은 아직 좀 남았지만, 전투는 끝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경비 중대의 사망자는 0이다. 사소한 찰과상을 입은 부상자들은 있지만, 아무도 죽지 않았다.
‘역시…….’
강 소위는 경외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문 대위를 돌아보았다. 매년 봄, 폴 이글 훈련 때마다 소규모 가상 모의 전투에서 미군들을 압도했던 지휘관답다.
가장 유리할 때 가장 확실한 전술로 최소한의 손실을 입으며 목표를 성취한다. 그게 그가 모시는 중대장이 전쟁을 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매일 밤 끝없이 지도와 씨름을 하고, 현장을 살피고, 계속 작전을 개선하기 위해 고민한다. 강 소위는 그의 그런 노력을 잘 안다.
‘신도 참 어지간히 잔인해. 천재성을 좀 덜고, 융통성을 그만큼 넣어주실 것이지. 아니, 그 반만큼이라도.’
현장 정리와 부상자 격리 보호를 명령하고 체육관으로 돌아가려는 문 대위를 보면서 강 소위는 그런 생각을 했다.
보급 장교에게 뇌물을 좀 주어야 우리가 받을 물량이 제대로 온다는, 그 사소한 진리를 설득하는 데도 며칠씩이나 걸릴 만큼 답답한 원칙주의자.
하지만 그 덕분에 이곳으로 와서 벌인 최대 규모의 전투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아무도 목숨을 잃지 않고…….
한 가지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다면, 그건 좀비들의 규모였다.
그렇게 급박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막상 전부 제압을 하고 보니 실제로 그들이 사살한 좀비의 수는 결코 2,000을 넘지 않을 것 같다. 규모 넷 중에서는 소규모인 셈이다.
그런데도 중대 전체가 발칵 뒤집힐 만큼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런 상황에 더 대규모의 좀비 무리들이 몰려온다면…… 그건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서울에는 규모 오, 여섯짜리 무리들이 아주 흔하다.
오늘 밤 중대 본부로 돌아가 복기해 보면 몇 군데나 악수를 둔 지점을 발견하게 될 테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장교들을 포함한 중대 거의 전부가 이렇게 목숨을 걸고 벌이는 싸움에 익숙하지 않다는 데 있었다.
사제 물품을 얻기 위해 타고 나가는 높다란 트럭 위에서 거리 위의 좀비들에게 방아쇠를 당긴 게 교전 경험의 거의 대부분이니, 압도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놈들과 같은 높이에서 마주 보고 싸우는 일은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겁에 질린 병사들을 데리고는 전쟁을 할 수 없다.
‘음, 그건 확실히 고민을 좀 해봐야 할 문제겠는데…….’
그렇게 강 소위가 이따금씩 울리는 총성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도로 위에 쓰러져 있던, 아까 모두가 죽었다고만 여긴 작업반장이 의식을 찾았다.
“응? 뭐, 뭐야? 왜 이렇게 컴컴해? 뭐, 뭐가 이렇게 번쩍번쩍하고? 으, 씨발. 내 머리…… 아주 쪼개진다. 씨발, 아이고…….”
작업반장이 옆머리를 꽉 눌러 일단 통증부터 좀 잠재우려 할 때, 허공을 흔들며 커다랗게 총소리가 울렸다.
타타탕― 타타타아아앙~
총성은 상점가의 벽을 울리며 길고 우렁찬 메아리를 만들어냈고, 깜짝 놀란 작업반장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도 어지러워 곧바로 다시 고꾸라져 버렸다.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뭐지? 소위, 그 개새끼가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후려쳤기에 이렇게 됐지?
기절해 있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많은 양의 피를 흘렸는지 모르고 있기에 작업반장은 그 어지러움이 부상의 후유증이라고만 생각했다.
두 손으로 땅을 짚은 채 천천히 무릎을 대고 일어나는, 그 간단한 동작을 하는 데도 눈앞이 빙글거린다.
타아앙~
총성이 계속 고막을 자극해서 안 그래도 욱신거리는 머리가 아예 터져 나갈 것 같다.
도대체 어디서 왜 이 총성이 들려오는지, 군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따위의 문제들을 생각하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어지럽고 고통스럽다. 숨은 차오르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그때, 자빠진 가로수 뒤쪽에서 소름 돋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롸아아~ 그롸악!
헉!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던 작업반장은 그만 중심을 잃고 다시 고꾸라졌다.
첨벙!
비릿한 냄새가 나는 빗물을 뒤집어쓴 작업반장은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눈앞에는 아까 그가 구해내지 못한,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기절해 있던 수감자의 시체가 있다. 그 광경도 나름 끔찍하지만, 그런 것은 문제조차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공포가 뒤에서 다가오고 있다.
파스락, 파스락, 아까 그가 잘라냈던 가로수 가지들을 헤치며 좀비가 기어온다. 무릎 아래가 송두리째 날아갔는데도 저렇게 멀쩡하게 움직인다.
흐으윽! 작업반장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허억~! 허억~ 안 돼, 이, 이거는 아니야!”
필사적으로 네댓 걸음을 떼던 작업반장이 다시 옆으로 넘어졌다.
찌익, 넘어지는 걸 뻔히 아는데도 손이 미처 따라오질 못해서 아스팔트에 얼굴을 갈고 말았다.
왼쪽 눈 주변 살갗이 다 벗겨지고 피범벅이 되었다.
끄으윽! 작업반장의 힘없는 비명이 목구멍 안쪽에서 울린다. 도무지…… 똑바로 설 수가 없다. 사람이 급해지면 초능력이 생긴다고들 했는데, 그게 다 순 구라였던 모양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좀비는 계속해서 다가온다.
파사삿― 파사삭―
당황한 작업반장의 눈에 아까 떨어뜨렸던 연장들이 들어온다.
톱! 그리고 도끼!
그는 네 발로 기어가 연장에 손을 뻗었다.
그롸아아아!
등 바로 뒤에서 울리는 포효!
작업반장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양날톱을 잡고 고개를 돌렸다. 악취가 풍기는 좀비의 아가리가 쫙 벌어진 채 덮쳐 온다.
으아앗! 작업반장은 비명을 지르며 톱을 휘둘렀다.
칵―!
톱이 좀비의 아가리에 박혔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 놈이 그대로 덮쳐 오며 작업반장의 팔이 꺾이고 반대쪽 톱날이 그의 가슴팍을 파고든다.
콰직! 콰직!
좀비가 몸을 움찔거리며 짓누를 때마다 놈의 턱 안과 작업반장의 가슴 근육 안으로 날카로운 톱날이 더 깊숙이 박혀든다.
“으아아아악! 끄아아!”
이런 힘이 어디에 있었나 싶을 만큼 고성의 비명이 작업반장에게서 터져 나왔다. 사방에서 울리는 총성 사이를 헤집고 게이트 안쪽까지 닿을 만큼 날카로운 비명이었다.
“뭐야, 이 비명? 사람이잖아! 어디서 난 소리야?”
게이트 경비대는 깜짝 놀라 사방으로 라이트를 돌렸다.
끄아아~ 작업반장이 한 번 더 울부짖으며 자신의 위치를 알린다.
한 뼘 거리까지 접근해 온 좀비의 찢어진 아가리에서는 점액이 뚝뚝 떨어지고, 놈이 몸을 비틀 때마다 말 그대로 가슴을 후벼 파는 통증이 작업반장의 모든 신경을 갈기갈기 찢는다.
앞뒤 계산할 겨를도 없이 왼손을 가슴과 톱 사이에 넣고 밀어보지만, 톱날은 얄팍한 목장갑을 순식간에 잘라내고 그의 손바닥 깊숙이 박혀 들어왔다.
그롸아아! 그르르~
그를 깔아뭉갠 좀비가 힘을 쓸수록 그의 몸속 더 깊은 곳까지 톱에 잘려 나간다. 기절할 것 같은 고통이 끝없이 밀려오는데도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
“저기다! 저기 가로수 자빠진 곳 옆에!”
“수감자인데? 뭐야? 왜 저기 있어?”
병사들이 외친다. 생존자를 놔두고 게이트를 닫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문 대위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강 소위와 박 소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후우우~ 후우우~ 벌겋게 달아올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박 소위의 얼굴이, 그가 이 사태의 책임자라는 걸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책임 소재를 따질 때가 아니다.
문 대위는 게이트로 달려가 비명이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게이트로부터의 거리는 약 40미터. 좀비와 한 중년 남자가 얽혀 있고, 그 사이에 양날톱이 끼어 있다.
어떻게든 좀비를 밀쳐 내보려던 중년 남자가 놈의 위턱을 잡고 들어 올린다. 스스로 물리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젠 구할 수도 없다.
“끄으으윽!”
작업반장은 오른 손바닥으로 좀비의 턱을 밀쳐 냈다. 이빨이 손바닥에 박히는 게 위험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톱에 잘리고 있는 가슴과 왼손이 고통스럽다.
좀비의 얼굴은 벌써 반 이상 잘려 있다. 이대로 뜯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콱!
좀비가 또 한 번 몸을 챈다. 작업반장은 전기가 오른 사람처럼 일순간 멈칫했다. 너무나 큰 고통이 밀려오자 순간적으로 눈앞이 하얗게 바뀌었다가 다시 돌아온다.
하아~ 하아~ 탈진한 작업반장의 오른손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이게…… 이게 내가 죗값을 치르는 방식인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이 끔찍한 통증이 오히려 공정한 것처럼 여겨진다.
사회에 있을 때, 그는 두 명을 죽였다. 그들이 받았던 고통을 온전히 다시 돌려받는다면, 그렇게 하고 나면 정말 지은 죄가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
쿨럭!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작업반장의 뇌리에서는 마지막으로 그런 생각들이 어지럽게 펼쳐졌다.
“변하기 전에 고통을 덜어줘.”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문 대위가 박 소위를 향해 명령했다. 거부하기 어려운 목소리였다.
굳은 표정의 박 소위는 자신의 K―2를 들고 사대 위로 올라가 좀비와 사내의 겹쳐진 머리를 향해 세 차례나 3점사를 퍼부었다.
투투툭― 투투둑― 투투툭―
빗나가는 총알은 없다. 그는 꽤 뛰어난 사수다. 완전히 머리가 박살 난 작업반장과 좀비의 시체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고생들 했어. 정리는 부사관들에게 맡기고 잠깐 올라오지. 할 이야기도 있으니.”
문 대위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어조로 강 소위와 박 소위를 향해 명령하고 체육관 안으로 돌아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화가 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 대위는 원래 여러 사람 앞에서 부하 장교들을 야단치는 법이 없다. 그건 시정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그저 망신을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후우~ 박 소위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10분 뒤, 두 소위가 체육관 3층의 중대 작전 본부로 올라갔을 때, 그곳에는 문 대위뿐이었다. 당번병도, 경비병도 미리 자리를 피하도록 한 걸 보면 화가 꽤 많이 난 모양이다.
“앉아. 커피 마시지, 다들?”
막 물이 끓어오른 전기 포트를 들어 올리며 문 대위가 물었다. 두 소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믹스 커피가 든 종이컵을 받으며 인사를 하는 강 소위와 박 소위의 목소리 톤이 완전히 다르다. 오늘 전투의 성과와 용기에 대해 치하를 하던 대위가 커피 잔을 다 비울 때쯤 물었다.
“아까 그 수감자,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할 수 있나?”
나직하고 근엄하다. 문 대위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박 소위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은 많다. 하지만 너무 많아서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는지 그걸 정하는 게 어려웠다.
성수 1쉘터에서 있었다는 대형 인명 사고, 수감자들의 반항적이고 반사회적인 천성, 좀비들이 들이닥치는 위급한 상황, 그리고 놈들이 들고 있던 톱과 도끼……. 역시 성수 1쉘터의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박 소위가 그렇게 침묵 속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강 소위는 빠르게 상황을 추리했다.
아까 그 광기 어린 박 소위의 표정, 그가 내질렀던 말들, 그리고 버려졌다가 좀비에게 죽은 수감자, 쓰러진 나무 주변에 죽어 있던 다른 수감자들.
거기에 평소 박 소위의 우직하다 못해 미련하기까지 한 성격을 더하니 스토리가 딱 맞아떨어진다.
아하―! 강 소위는 자신의 빠른 계산에 감탄하면서 다시 한 번 가설을 점검해 봤다. 역시 허술한 구석은 없다.
“그…… 중대장님께서는 혹시 성수 1쉘터 인명 사고에 관해 들으신 적 있으십니까?”
박 소위가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문 대위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 이야기해 봐.”
“얼마 전, 그곳에서 한 무리의 수감자들이 계획적인 사고를 일으켜 경비를 보던 사병들이 사망하고 총기를 탈취당해…….”
강 소위는 답답한 마음에 박 소위를 돌아보았다. 그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 말을 꺼내면 논리를 펴기에 불리해질 뿐이다.
오히려 편견을 가지고 오해를 한 것 아니냐는 공격에 노출되기 딱 좋아진다. 하지만 미련한 박 소위는 계속 그 사건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문 대위가 물었다. 누구에게 들었냐고 묻지 않고 그래서라고 묻는다는 것은 그 사건과 오늘의 사건을 별개로 놓는다는 의미다. 박 소위는 당황해하며 더듬거렸다.
“저…… 그, 오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차 저지선으로 물러나 교전이 진행 중일 때, 큰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봤습니다. 그랬더니 톱과 도끼로 무장한 수감자들이 몰래 저희 부대원들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일단 정지하라고 누차 경고를 했지만, 계속 무시하며 달려드는 바람에 제가 가장 가까운 거리의 수감자를 개머리판으로 쳐서 제압하고 나머지 수감자들을 체포했습니다. 그, 죽은 수감자는…… 저는, 아니, 다른 동료 수감자들이 그 수감자가 그때 이미 사망했다고 판단했습니다.”
“톱과 도끼를 든 다수의 수감자들이 경고를 무시하며 달려들었는데, 박 소위 단독으로 제압을 했다는 거지?”
“네, 넷! 그렇습니다.”
거짓말에 서툰 박 소위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질문을 던지는 문 대위의 시선이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등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