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9. 광기와 폭력 (3) (189/449)


189. 광기와 폭력 (3)
202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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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죽어라 쏴대는데도 실제로 머리가 터져 죽는 좀비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들이 무슨 타고난 명사수도 아니고, 빗속에 야간의 도로를 뛰어다니며 쏘는 총알이 제대로 명중될 리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조명이 너무나 부족했다. 흑표에서 쏘는 헤드라이트는 열한 시 방향에 집중되어 있어서 오히려 그늘진 부분의 어둠을 더 짙게 만들었고, 그 사각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점점 시야가 줄어들었다.

“후퇴하시랍니다!”

등 뒤쪽에서 들려오는 그 말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혹시 여기에서 죽는 건가 싶어서 다리가 후들거리던 병사들은 얼른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타타타타― 타타타타―

그들이 차에 타는 동안 지원 온 병력들이 엄호사격을 해준다. 그러나 이미 좀비들의 파도는 저지선을 완전히 무력화시킨 이후다.

그롸아아아―

가로수와 자동차들 사이로, 그리고 뻥 뚫린 가운데 차선 위로 좀비들이 달려온다.

부우우우웅―

그사이 병사들을 태운 승합차도 속도를 냈다.

“차 들어오면 곧바로 설치해!”

박 소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승합차가 중앙 차선을 통과해 뒤쪽으로 지나갔고, 2차 저지선 주변에 대기하던 병사들은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투타타타타― 투투투투― 투투투투―

중앙의 열린 공간으로 달려오던 좀비들은 머리에서 뇌수를 뿜고, 혹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고꾸라졌지만, 보도와 자동차들 사이로는 여전히 뛰어오는 놈들이 있다.

퓽~ 퓨웅~

K―201 유탄 발사기에서 발사된 노란색 탄두의 40㎜ 유탄들이 날아가 상가와 자동차들 사이에 꽂힌다.

콰앙!

자동차가 들썩이고 상가의 유리창은 박살이 난다. 엄청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달려오던 좀비들의 몸통을 조각내 날려 보내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시간을 버는 사이에 2차 저지선을 쳐둔 병사들은 곧바로 50미터 더 후방에 설치하고 있는 3차 저지선을 향해 달렸다.

좀비들을 막아둔 2차 저지선과 병사들이 넘어가 몸을 숨기려는 3차 저지선, 그리고 그 지점에서 20미터 뒤에는 쓰러진 가로수와 거기에 깔린 부상자들과 그들을 구하려는 여섯 명의 수감자가 있었다.

“이런 니미 씨발!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 그렇게 잘라냈는데! 끄으응~!”

나무는 여전히 꿈쩍도 않고, 총소리는 바로 귀 옆에서 쏴대는 것처럼 울려 댄다.

군인들이 계속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면서 작업반장을 도와 어떻게든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던 수감자들조차도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던 중에 깔린 부상자들이 이미 의식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수감자들은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해보려 했다.

이 사람들 다 죽었어. 그러니 공연히 헛힘 쓰지 말고 빨리 피해…….

납득할 만하다! 이제 달아나도 비겁한 게 아니다!

모두의 시선이 작업반장에게 쏠리고, 작업반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부상자들을 두고 가는 데 무언의 합의를 마쳤다.

그리고 한 발을 딱 떼려는 순간, 그때까지 숨조차 변변히 쉬지 않던 부상자가 발목을 붙잡으며 빽! 소리를 지른다.

“안 돼!”

그러더니 곧바로 손의 힘이 풀리고 부상자는 눈을 까뒤집은 채 움직이질 못한다. 단말마다운 커다란 절규였다.

발목을 잡혔던 수감자는 심장이 떨어질 만큼 놀라서 덜덜 떨었고, 그때까지 전방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박 소위도 그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바로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당연히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있어야 할 죄수 놈들이 자신의 배후, 나무 주변에 잔뜩 뭉쳐 서 있다.

게다가 톱과 도끼를 든 채로…… 바닥에 쓰러진 두 놈의 머리에서는 1리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엄청난 피가 흘러나와 있다.

- 큰 말썽 났었지. 쓰레기 놈들. 여기를 푹, 총을 탈취해서 난사했대……. 여기를 푹, 연장으로 옆의 놈을 찍었네? 구하러 들어갔더니 여기를 푹…… 쓰레기 놈들.

보급 소대장이 해줬던 이야기가 검붉은 피와 겹쳐지며 뭉쳐 서 있는 수감자들이 좀비보다 더 끔찍한, 어떤 괴물처럼 보인다.

이 개새끼들이…… 이렇게 정신없는 상황에서 대체 뭘 해보려고…… 우리는 지금 여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다니는데…….

흥분한 박 소위의 충혈된 눈이 광기를 뿜어냈다.

“야! 이 개새끼야! 이게 뭐야, 지금? 죄수 관리 안 해? 모가지 따여야 정신 차릴 거야?”

박 소위는 곁에 서 있던 병사의 허벅지를 걷어차고, 숨을 씩씩거리면서 수감자 무리를 향해 걸어갔다.

투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체육관 4층에 배치된 K―3가 한 번씩 훑고 지나갈 때마다 전방에서는 달려들던 좀비들이 잘리고, 터지고, 고꾸라졌다.

그 비명과 총소리가 심장을 흔들어 대는 바람에 박 소위의 이성은 상당히 마비됐다.

철컥, K―2 개머리판을 어깨에 바짝 붙인 채 노리쇠뭉치를 뒤로 당긴 박 소위가 수감자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 이 개새끼들아! 엎드려! 무기 버리고 엎드리라고!”

“어? 이, 이게 무, 무슨…….”

“엎드리란 말이야! 그리고 닥쳐!”

박 소위에게 걷어차인 뒤 절룩거리며 따라온 일병도 엉겁결에 수감자들을 향해 소총을 겨눈다. 수감자들은 톱과 도끼를 손에서 놓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작업반장을 제외하고…….

그만은 여전히 서 있었다. 그 상황이 어지간히 분했는지, 아니면 그에게 나름의 곤조가 있던 건지는 모른다.

어쨌든 작업반장은 박 소위의 명령을 이행하기 전에 항의 한 번쯤은 해야 가오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소위님, 너무 심하십니다. 우리는 얘들이 나무에 깔려서 그거를 구해주려고…….”

빠악―

작업반장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박 소위는 힘차게 팔을 돌려 그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개머리판에 관자놀이를 맞은 작업반장은 통나무처럼 고꾸라졌다.

“닥치라고 했지, 이 개새끼야!”

소위가 악을 쓴다. 하지만 눈을 홉뜬 채 땅에 얼굴을 처박은 작업반장은 이미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피싯― 피싯― 찢어진 피부 사이로 가느다란 핏줄기가 솟아오른다. 작업반장의 옆얼굴은 이내 선명한 빨간 점으로 덮였다.

하아~ 하아~ 박 소위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콰쾅~! 투투투투― 투투투투―

수류탄이 터지고 K―2가 난사되는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려 대는데도 오히려 자신의 심장 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리는 기분이다.

쿵쿵― 쿵쿵― 쿵쿵…….

“주, 죽었나 봐.”

엎드려 있던 수감자들이 겁에 질려 중얼거린다. 박 소위는 다시 큰 소리로 그들을 윽박질렀다.

“입 다물어, 이 새끼들아! 야! 이것들 끌고 가서 처넣어! 도주 및 살인 미수 현행범들이다.”

병사들이 수감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확인한 박 소위는 3차 저지선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제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가는 모양새였다. 지원을 나와 병사들과 함께 전투를 벌이던 강 소위가 짜증을 부린다.

“어디서 뭘 하고 있었어? 애들을 지휘해야지!”

“네 목숨 구해줬다!”

박 소위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뭐라고?”

“탈옥 모의한 죄수 새끼들이 도끼 들고 설치는 걸 진압했다고! 나 아니었으면 너도 지금 모가지가 날아갔을지 몰라!”

이게 무슨 소리야? 이 세상에 어떤 바보가 좀비들이 저렇게 몰려올 때를 일부러 골라서 탈옥을 한다고…….

강 소위는 박 소위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의 눈빛이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느꼈기에 굳이 대거리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볼일이 앞쪽에서 접근해 오고 있으니까…….

그롸아아아아―

그 빗발치는 총알 세례 속에서도 좀비들은 아가리를 벌린 채 달려들고 있었다.

“저기, 뭉쳐서 넘으려고 한다! 유탄으로 날려!”

2차 저지선에 달라붙어 자신의 가죽과 살로 철조망을 무력화시키는 좀비들. 그 위로 옥상에서 퍼부은 K―3의 5.56㎜ 세례가 쏟아졌다.

수십 마리분의 내장과 말라붙은 피, 뇌수와 뼛조각이 빗속으로 튀어 섞인다. 그리고 그 바로 뒤에서 살덩이로 덮인 철조망을 향해 또 다른 좀비들이 뛰어오른다.

2차 저지선 역시 함락 직전까지 내몰렸다. 애초부터 그리 오래 버텨줄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보다도 훨씬 빨리 무너지는 느낌이다.

아니, 사실 건대 쉘터의 경비병들은 지금 빠르다거나 늦는다는 개념도, 처음 좀비들에게 사격을 개시한 후 얼마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에 대한 개념도 아예 없었다.

그저 이 끔찍하고 긴장되는 순간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다는 두려움만이 커다랗게 부풀어서 그들을 짓눌러 댔다.

강 소위는 병사들의 다리가 후들대고 있다는 것을 알아봤다. 지금은 그나마 50미터나 거리를 두고 설치된 두 겹의 철책 뒤에 숨어 있는데…… 그런데도 이렇게 두려워하고 있다.

병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도 지금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다. 게다가 그와 함께 지휘를 해야 할 박 소위는 광인처럼 흥분해서 마구 난사를 해 대는 중이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거리를 두고 이 세 번째 저지선을 보며 교전을 하는 게 맞을까…… 그게 정말로 합리적인 판단일까, 아니면 그저 겁먹은 개처럼 꼬리를 말고 달아나고 싶은 것인가.

그렇게 강 소위가 망설이고 있을 때, 체육관 쪽에서 확성기를 통해 문 대위의 명령이 울려왔다.

“셋으로 나눠서 순차적으로 내부 게이트까지 퇴각해! 게이트 안에서 재정비하고 다시 시작한다!”

휴우~ 명장의 귀환인가…….

문 대위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강 소위는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가 자신의 상관이고 이곳의 책임자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좀비들이 밀려오는 상황을 마주하자 절감할 수가 있었다.

투투투투― 투투투투투투―

양쪽 건물의 옥상에 설치된 경기관총들이 쉬지 않고 울리며 도로 위의 병사들에게 퇴각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

임수정은 체육관 구석에 기대앉은 채 귀를 막고 있었다.

두두두두― 두두두―

밖에서 끊이지 않고 울리는 총성 때문에 귀가, 그리고 고막 너머에 있는 무언가가 정말이지 어떻게 되는 것 같다.

투웅―

외부에서 폭발이 있을 때마다 벽을 타고 그 울림이 고스란히 전해지면 자신의 심장도 함께 멎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벽에라도 기대 있어야 한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쓰러질 것만 같아서 그러지 않고서는 몸을 가누기가 어렵다. 정수장에서 구조되던 날, 그 도로 위에서 벌어지던 전투의 공포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죽는 건가? 잠실에 있었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까…….

임수정은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는 심장을 달래가며 용기를 내기 위해 애를 썼다.

체육관의 중앙에서는 각 종교의 신도들끼리 모여 앉아서 저마다의 신을 향해 기도와 찬양을 하며 웅성이고 있다. 병사들의 무운을 빌고, 이 체육관의 안전을 기원하고, 좀비들의 죽음을 청한다.

울부짖고, 소리를 지르고,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절을 하는 그 모습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 같다.

거, 좀 닥쳐! 씨발, 정신 사나워!

임수정처럼 벽에 붙어 앉아 떨던 누군가가 욕설을 퍼부어도 큰 변화는 없었다. 벽 쪽의 그늘에서는 흡연자들이 담배 연기를 뻑뻑 뿜어내고 있다.

자기들 딴에는 몰래 숨어서 피운다고 하는 것 같지만, 이미 체육관 전체에 지독한 냄새가 퍼져 있다. 보초병들이 말로 제지를 해도 별 효과가 없다.

보초병들이 더 애를 먹는 상대는 흡연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총을 달라고 악을 쓰는 아저씨들 쪽이었다.

이판사판이라고 생각들을 하는 모양이다. 하긴 그들 모두는 외부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기고 있는지, 밀리고 있는지, 전멸 직전인지…… 지금 당장 바깥에서 총성이 울리고, 저 문이 벌컥 열리며 좀비들이 들이닥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여기 좀 앉아도 돼요?”

말을 건네는 것과 거의 동시에 임수정의 옆에 누군가가 등을 댔다. 깊숙이 눌러쓴 모자 때문에 그녀가 가희라는 것을 알아보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하아~ 티를 안 내려고 해도 씨발…… 하아, 너무 떨려서…… 어떤 잘나신 분은 저기 저 보초병들이 아직 여기 있는 걸로 봐서 별거 아니라고,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냉정한 척을 하시지만…… 그게 되나요,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가희의 시선은 육만배를 향해 있었다. 육만배는 이요섭의 근처에서 함께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다가 또 기동이를 불러 뭔가 귀엣말을 건네고 있다.

젠장…… 가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부들거리는 손으로 손가방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낸다. 긴장으로 떨리는 손가락으로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아! 언니도 피울래요?”

가희는 떨리는 손으로 담뱃갑을 내민다. 임수정은 아니라고 했다. 가희는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려 몰래 담배 연기를 뿜으면서 중얼거렸다.

“후우~ 하아~ 미안해요. 이런 거 보여줘서…… 근데, 너무 무서워서요……. 후우~ 나도 험한 꼴 꽤 보고 살았는데, 이렇게 계속 총소리가 나니까 적응이 안 되네요.”

“다 그럴 거예요. 저도 무서워요. 보세요, 다리가 계속 후들거리잖아요. 이렇게 앉아 있는데도.”

임수정이 자신의 두 다리를 가리키자 가희가 코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네요. 훗, 나는 팔이…… 계속 떨리고 막 저려요. 피가 안 통하는 것 같이…… 하아, 담배는 피우고 싶고, 누구랑 이야기가 좀 하고 싶었어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니까 미치는 거 같아서…….”

투타타타타타― 타타타타―

4층에서 또 기관총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자 가희는 움찔하며 말을 멈췄다. 1인칭 대명사 대신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며 혀 짧은 소리를 내던 평소의 그녀와는 완전히 달라 보인다.

후우, 후우, 씨발…… 가희는 입술을 깨물며 신경질적으로 담뱃재를 털었다.

“근데…… 그놈의 이미지가 뭐라고, 소문이 날까 봐 자꾸 신경이 쓰여서,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가희라는 년, 그거 순 골초래’, 그런 소리 나는 게 싫거든요. 그런데 언니가 여기 앉은 게 보이더라고요. 언니는 좀 점잖은 사람이라서…… 뭔가 배운 것도 좀 있어 보이고…… 뭐, 그랬어요. 최소한 남들한테 제 험담은 안 하고 다닐 것 같았거든요. 언니는 잠실에서 테라하고도 오래 같이 있었지만, 여기에서 걔 이야기하는 것도 못 봤고요. 후우우~”

가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임수정은 대강 짐작이 됐다.

“험담……할 사람도 없어요. 친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걱정 안 해도 돼요. 그리고 살아 있어야 그런 것도 신경이 쓰이는 거죠, 뭐.”

“후, 후후, 그러네요. 하아~”

가희는 허탈하게 웃으며 중앙의 육만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육만배는 신도들과 둥글게 둘러앉아 목청껏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그의 곁에 앉은 다른 신도들이 저리 의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겉모습만 보자면 언제라도 순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진짜 독실한 신도 같으니까.

콰아앙―

또다시 밖에서는 폭발이 일어나고, 체육관 전체에 가벼운 진동이 인다.

하아~ 가희는 한숨을 쉬었다.

“언니는 아무것도 안 믿어요?”

“저도 기도해요. 믿고도 싶고요. 엄마가 말해줬던 것처럼 죽고 나면 다 하늘나라에서 만나게 된다는 걸요. 지금 같아서는……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임수정은 옷 속에 늘어져 있던 십자가 목걸이를 꺼내 들어 가희에게 보여주었다. 가희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왜 저 찬송가 부르는 사람들이랑 같이 안 있어요?”

“딱히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그냥…… 저렇게 모인다고 해서 더 나을 것 같지 않아서요. 우습잖아요. 신이 목소리 더 큰 놈들부터 먼저 보고 ‘아, 쟤네가 저렇게 많이 모여 있으니까 쟤들부터 복을 줘야겠다’라고 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훗~ 맞아요. 저런 거 다 부질없는 짓이에요. 모지리들이 괜히 자기들끼리 불안하니까 모여 가지고……. 모여 있다고 복을 받을 것 같으면 좀비들이 제일 먼저 천국 가겠네.”

각종 종교 신자들 전체에게 비웃음 섞인 시선을 던진 가희는 자신의 웃옷 속에 손을 넣고 브래지어 주변을 주물럭거렸다.

그러고는 잠시 후, 꼬깃꼬깃 접힌, 작은 노란 종이를 꺼내 떨리는 두 손으로 꼭 쥐고 사연을 들려주었다.

“언니도 한번 만져 봐요. 이거 정말 용한 선생님이 그려주신 거거든요. 천오백 내고 열 달을 기다려서 받은 거예요. 지니고 있으면 죽을 고비를 세 번 넘기게 해준대요. 자요…… 살짝, 살짝만 건드려 봐요. 신기하죠? 종이인데 따뜻한 기운이 나죠?”

그거야 당연히 조금 전까지 네 살과 속옷 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하도 열심히 권하는 가희의 기세에 눌려 종이를 살짝 쓰다듬으면서 임수정은 생각했다.

하지만 이 가희라는 사람이 특별히 이상한 건 아니다. 누구에게나 믿고 버틸 수 있는, 아주 작은 끈 하나가 필요한 법이니까.

그리고 요즘은 그 끈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해졌으니까.

후훗, 부끄럽게 웃은 가희는 다시 부적을 잘 접어 옷 속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근데 문제가 뭔지 알아요? 그 세 번이 벌써 다 지나갔는지, 아니면 아직 두 번은 더 효과가 남았는지 그걸 모르겠다는 거예요. 후후, 우습죠? 받을 때는 그런 생각 안 했었는데…… 무슨 표시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불안하기는 사실 마찬가지더라고요. 후우~ 아직 한 번은 남은 거여야 하는데.”

그렇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현실의 두려움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어서, 임수정과 가희는 바짝 붙어 앉아 말을 하고 또 들었다.

그녀와의 대화가 왜 그렇게 안정을 주는지 임수정은 알고 있다.

아무리 죽음은 혼자 겪는 것이라지만, 그것이 닥치기 직전까지는 그 진리를 망각하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자신과 가희는 지금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 열심히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저기 멀리서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들도, 열심히 절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는 사람들도, 사방에 욕설을 해 대는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다.

“……어?”

얼마나 그렇게 대화를 나누었을까, 갑자기 가희가 눈을 위로 올리며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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