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7. 광기와 폭력 (1) (187/449)


187. 광기와 폭력 (1)
202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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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부터 주차장 사용 금지합니다! 산책하시는 분들 들어가 주십쇼! 흡연하시는 분들도 그거 빨리 마저 피우시고 체육관 내부로 이동해 주십쇼!”

경비병들이 목청껏 외치며 건대 쉘터의 넓은 주차장을 돈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처마 밑에서 멀리 자신의 집 쪽 하늘을 보고 있던 임수정도, 군인들에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애교를 부리던 가희도, 담배를 피우던 기동이도 모두 쫓겨 들어가야 했다.

나흘에 한 번씩, 오후 세 시에 공식 보급품이 배달되기 때문에 그 한 시간 전부터는 주차장에 민간인 출입을 금하고 있다.

촤악, 민간인들이 사라진 주차장에는 군인들이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대형 천막을 세우고, 발판으로 삼을 팔레트를 넓게 깔며 보급품을 적재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이렇게 비가 올 때면 준비 과정도 더 복잡하고 번거로워진다. 세종대 방향에서 진행되던 가로수 제거 공사도 잠시 중단하고, 그 인력을 여기에 투입할 만큼 중요한 일이다. 나흘치의 살림이 걸린 문제니까 그렇다.

“그…… 참, 여기 책임자도 고집이 세단 말이죠. 우리 신도들이 도와드리겠다고 몇 번을 제안했는데 어쩌면 그렇게 번번이 호의를 거절하는지. 덕분에 저 젊은 군인 친구들만 배로 고생을 하는 거잖습니까? 쯧쯧쯧.”

창가에 뒷짐을 지고 서서 군인들의 작업을 지켜보던 이요섭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다. 그러게요, 이 대표님 말씀이 백번 지당하십니다. 곁에 선 육만배는 건성으로 맞장구를 쳐줬다.

육만배에 의해 교인 대표로 추대된 이래, 이요섭은 줄곧 우쭐해져서 이젠 제법 건방도 떨 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완장에 행복해지는 멍청이다.

‘확실히 내가 사람 하나는 기가 막히게 보지.’

아래턱을 쭉 내밀고 위엄을 가장하는 이요섭의 옆모습을 보며 육만배는 생각했다. 이놈은 허수아비로 꽤 쓸 만한 재목이다.

신념과 자부심을 가진 차별주의자보다 잔인해질 수 있는 놈은 별로 많지 않다. 게다가 기꺼이 똥물을 뒤집어쓰고도 오히려 그걸 자랑스러워할 놈이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욕먹을 만한 일을 할 때에는 당분간 이 멍청이를 앞세워 진행하면 된다. 유효기간이 다할 때까지는.

“빨리 움직여! 저거 치워둬!”

두 시 반이 넘은 시점부터 쉘터 내 군인들의 움직임은 더 분주해지고, 장교들의 지시 사항도 늘었다.

“이 녀석들아! 여기에서 박스 글씨가 다 보인다! 저걸 가린 거라고 한 거냐? 장막으로 잘 덮고, 그 앞에 둘 정도 서 있어!”

부사관들의 지적에 따라 병사들은 주차장 한쪽 구석에 쌓인 과자와 음료수 박스 앞에 국방색 드럼통들을 세워 가리고 그 위로 두꺼운 캔버스 천을 덮었다.

장막이 비바람에 들썩이지 않도록 끈으로 고정까지 한 뒤, 병사들은 마치 주요 군사시설이나 되는 양 근엄하게 그 앞을 막아선다.

쓰레기통 안에 들어 있던 쓰레기와 재활용품들은 모두 수거된 뒤 철책으로 연결된 근처의 건물에 버려지고, 빈 박스들은 차곡차곡 접혀 별도로 보관되었다.

병력을 함부로 동원해서 사제 물건을 털어 오는 행위는 위험하니까 금지한다는 게 국방부 공식 명령인지라, 타 부대 사람이 올 때는 그걸 준수하는 흉내라도 내야 한다.

주차장에서 어슬렁거리며 산책하던 사람들까지도 불러들이고, 체육관의 문을 닫아 수용자들을 통제하는 것도 이런 준비의 일환이었다.

혹시라도 아무 생각 없는 민간인이 우리는 간식도 많이 먹었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를 흘리면 귀찮아진다. 내부가 보일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모든 유리에는 다 두꺼운 커튼을 쳤다.

넓은 주차장을 구석구석 돌며 바람에 날아다니는 빈 라면 봉지까지 싹 다 수거하자 건대 쉘터에서 사제 물건의 흔적이 깨끗이 지워졌다. 이제 비로소 보급품을 받을 준비가 끝난 것이다.

“어휴, 참. 매번 때마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판초 우의까지 걸치고 급하게 준비와 위장을 병행하느라 땀을 뺀 병사들은 땀과 빗물을 훔쳐 내고 게이트 앞에 도열해 섰다. 그러나 투덜거리면서도 그들의 얼굴에는 묘한 자부심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부산을 떨어가며 민간인들에게 과자 한 봉지라도 더 주는 일들과, 그들이 내민 그 작은 사제 물건 꾸러미를 받으며 민간인 수용자들이 보여주는 미소가 그들 모두를 뿌듯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칙, 보급 차량 들어옵니다. 치익.

인근 건물의 옥상에 배치되어 도로를 감시하고 있던 저격조가 무전으로 알려오자, 인수 담당자인 박 소위는 뒤쪽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준비 상황을 점검했다.

10여 분 뒤, 자동차 엔진 소리가 가까워지고 장갑차, 5톤 트럭 두 대, 급수차, 그리고 다시 장갑차의 행렬이 게이트 앞에 멈춰 섰다.

예정 시간보다 30분 이상 지연되었지만, 흔한 일이다. 좀비들이 철책 인근을 지나가면 놈들의 행렬이 다 돌아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 그랬다가는 매일 피 말리는 교전을 벌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철책을 매일 교체해야 하는 수고와 위험이 더 늘어날 뿐이다.

“게이트 열어.”

박 소위의 명령을 받은 초소 경비병들이 철책으로 된 문을 당겨 열고, 지그재그로 설치해 둔 바리케이드를 한쪽으로 접어 길을 텄다.

장갑차가 양쪽으로 벌려 정차하고, 트럭들은 다시 철책 사이로 50여 미터를 더 전진한 후 멈춰 선다.

“아, 오느라고 수고 많았다.”

트럭에서 내려 물품 목록을 전달하는 소위에게 박 소위가 인사를 건네며 어깨를 두드렸다. 육사 동기이고 막역한 사이다. 보급 소대장이 파일을 내민다.

“늦었다. 많이 기다렸지? 자, 여기 목록. 확인해.”

“좀비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모양이네?”

“아, 점점 양이 느는 기분이야. 도저히 시간에 맞춰 올 수가 없어.”

박 소위가 목록을 점검하는 동안 쉘터의 경비병들은 내리는 빗속을 정신없이 누비며 트럭에서 보급품을 하적하고 주차장 중앙에 각을 맞춰 쌓았다.

수용 민간인만 350명.

거기에 중대 병력과 50여 명에 달하는 재소자들을 더하면 총 600명이 넘는 데다 계속 잠실 쉘터로부터 생존자들이 유입돼 불어나고 있는, 나름 큰살림이라 나흘에 한 번씩 지급되는 물품들도 양이 꽤 된다.

7,200인분의 식재료, 보잘것없는 몇 종류의 간식, 비누와 비상약, 콘돔, 그리고 각종 소모품들, 시멘트와 모래, 철책, 거기에 탄약과 전차용 연료, 쉘터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두 대의 군용 방음형 130㎾ 발전기 연료까지……

모두 하적해서 천막 아래에 쌓는 동안 급수차는 주차장 뒤쪽으로 돌아 들어와서 비상용 물탱크에 호스를 연결하고 펌프를 돌려 물을 공급했다.

“매번 네가 진짜 고생 많다. 자, 한 대 피우자. 그런데 시멘트 부탁한 건 왜 소식이 없어?”

목록 확인을 마친 박 소위가 보급 소대장에게 담배를 권하며 묻는다.

“응? 시멘트 가져왔는데? 저기 스무 포대.”

“아니, 저렇게 찔끔찔끔 장난치는 거 말고, 레미콘으로 두 대 보내 달라고 한 지가 언제야?”

“그거야…… 아이구, 야, 내가 무슨 힘이 있냐? 나는 그저 지정해 준 물품, 지정된 수용소로 가지고만 오는 계급이잖아. 너 몰라?”

끄응~ 박 소위는 답답해지는 마음을 담배 연기에 담아 뿜어버렸다. 이놈의 국방부는 도대체 일선의 요구 사항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주는 법이 없다.

이곳에 수용소를 건설할 때 입지 선정부터도 그랬고, 지금도 계속 원하는 물품을 지원해 주지 않는다. 한 번 보급 물품이 정해지면 거기에서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으려는 것 같다.

레미콘 두 대를 부탁한 이유는 자꾸 좀비들이 출몰하는 세종대 방향 도로에 아예 높이 3미터 이상의 장벽을 쌓기 위해서였다.

자동차들을 끌어다가 받치고 기둥을 박으면 꽤나 오래 버텨줄 텐데, 그걸 도무지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저기, 이거는 너 근무 없을 때 너희 애들이랑 살짝 기분만 내. 중대장님이 꼭 전해 주라고 하시더라.”

박 소위가 옆에 놓아뒀던 군용 배낭을 들어 건네자 보급 소대장이 히죽 웃는다.

“이거, 또 그거냐?”

“그래. 생존자 수색하던 중에 발견해서 징발한 거니까…… 알지? 소문 내지 말고.”

군용 배낭을 슬쩍 열어본 보급 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안에는 종이로 둘둘 만 수입 양주 두 병이 들어 있다. 박 소위는 젖은 담배를 뻑뻑 빨며 다시 부탁을 했다.

“아무것도 아닌 걸로 생색내자는 건 아니고, 우리 시멘트 꼭 필요해. 그러니까 네가 눈치 보다가 윗분들 기분 좋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부탁 좀 해주라. 동기 좋다는 게 뭐냐? 아, 그리고 벌집탄! 그것도 좀 더 필요한데.”

“벌집탄이고 뭐고, 중화기나 전차 포탄은 점점 귀해져서 요즘 구경하기도 힘들어. 아예 우리 창고에도 비축 분량이 거의 없어.”

“그건 또 뭔 소리야? 포탄 없이 어떻게 싸우라고?”

“모르지. 아직 공장에서 제조하는 게 수요를 못 따라오나? 하여튼 그래. 벌집탄은 입고가 되는 대로 가지고 올게. 그리고…….”

보급 소대장은 길 건너편의 수감자 숙소를 돌아보고 나서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는 저 새끼들 무슨 말썽 없었어?”

“왜? 무슨 사고라도 있었다는 투네?”

“아, 있었지. 그것도 보통 사고가 아니라 꽤 큰 사고였어. 그…… 성수동 1쉘터에서 저 새끼들 몇 놈이 오랫동안 모의를 한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작업하다가 한 새끼가 연장을 잘못 놀려서 옆 새끼 발목을 찍었네? 물론 찍힌 새끼는 그 일당이 아니었고. 여튼 발목이 작살났으니 오죽 소리를 지르고 살려 달라고 빌었겠냐? 그래서 걔 실어 내오려고 경비병들이 철책 열고 들어가는데…… 다친 놈 지혈한다고 붙잡고 있던 새끼들이 홱 돌아서서 여기를 푹!”

보급 소대장은 자신의 목젖을 가리키며 혀를 내둘렀다.

“그래서 그 경비병들이 죽었다는 말이야?”

“걔네만 죽었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걔들 피 흘리고 쓰러진 사이에 개인화기 탈취해서 난사하는 바람에 여럿 전사했어. 물론 그 새끼들도 총 들고 튀는 거 뒤에서 다 사살했고. 두 놈인가 다리만 관통되고 살아남았는데, 뭐…… 어떻게 됐겠어? 애들이 눈이 돌아가서 아주 해부를 한 모양이야. 그걸 또 민간인이 봐버려서 비명을 지르고…… 하여간 거기는 그 개새끼들 때문에 여러 사람 인생 골치 아파졌더라고. 에휴~ 쓰레기 같은 새끼들…… 너희도 신경 바짝 써. 거기 모의했던 새끼들도 사고 치기 직전까지 아주 순한 양처럼 굴었다더라고. 경비 보는 애들 방심하게 만들려고 말이야. 야, 가야겠다. 중대장님께 잘 마시겠다고 전해 드려.”

보급품을 모두 부린 트럭들이 장갑차의 호위를 받으며 떠나고 난 뒤에도 박 소위의 귓가에는 조금 전 전해 들은 이야기가 떠나지 않고 빗소리와 함께 울리며 반복되었다.

- 쓰레기 같은 새끼들. 너희도 신경 바짝 써. 그 개새끼들 때문에 여러 사람 인생 골치 아파졌더라고.

공포와 증오가 한데 뒤섞여 이성을 마비시키는 바람에, 논리적으로 당연히 던졌어야 할 질문은 아예 뇌리에서 지워졌다.

왜 그 수감자들은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좀비들이 점령한 도시 속으로 탈출하려 했던 것인지, 그 이전에 그들을 위험에 내몰거나 부당한 처우를 한 적은 없는지, 그들이 목숨을 걸도록 내몬 심각한 문제는 없었는지 같은 질문들은 박 소위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가장 절실하게 와닿은 것은 그저 자신의 신념과 공명하는 단 한마디, ‘쓰레기’였다. 박 소위는 도로 너머 철책 사이로 보이는 파란색 외출복의 수감자들을 빤히 노려보았다.

빗속에 다시 작업에 투입될 준비를 하러 나온 수감자들은 기가 죽고 지쳐서 다들 구부정하게 걷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박 소위의 눈에는 불량스럽게 보인다.

보급품 트럭이 떠나고 난 뒤, 쉘터의 가용 병력은 둘로 나뉘었다. 강 소위는 주차장에 남아 정리를 하고, 박 소위가 인솔하는 병력은 능동로 북쪽에서의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이동했다.

현재 그들이 진행하고 있는 작업은 어린이대공원 방면으로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서 철책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일이다.

왜 그렇게 귀찮은 짓을 사서 하고 있는지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좀비들이 점점 더 멀리까지 나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처음 쉘터와 그 주변에 철책을 구축할 때보다 좀비들의 활동 반경이 훨씬 넓어졌다.

게다가 그 수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었다. 이대로라면 몇 주 내로 쉘터가 놈들에게 포위당할 게 분명하다.

이럴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좀비들의 진행 방향을 피해 다른 곳에 쉘터를 마련하는 것. 이건 현실적으로 곤란하다.

쉘터라는 게 아무리 허술하게 세워진다고 해도 육, 칠백 명이 머물 숙소 하나를 새로 만드는 게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상부에서 보급로나 기타 계획을 수정해 줘야 하는데, 그런 일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두 번째 선택지는 다가오는 좀비들을 원거리에서 모두 섬멸해 버림으로써 위험 발생의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첫 번째 선택지보다는 가능성이 높지만, 이것 역시 녹록하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하려면 네 방향에서 각각 중대 이상의 규모 병력이 쉬지 않고 외곽으로 돌며 좀비 무리들을 찾아 소탕해야 할 것이다. 즉, 지금보다 다섯 배 이상의 화력을 유지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작전이다.

결국 남는 건 하나뿐이다.

기존의 철책보다 더 먼 곳까지 진출해 새로운 방호벽을 쌓고 거기에 막힌 좀비들이 방향을 바꿔주기를 기대하는 것인데, 이건 현재 건대 쉘터의 부족한 인력만으로도 어찌어찌 도모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문형식 대위는 가장 빈번하게 좀비 무리들이 출몰하는 능동로 북쪽부터 차단벽을 설치하기로 했다.

이 작업이 완료된 후, 그다음 블록을 아예 날려 버린다면 쉘터의 북쪽에 커다란 성을 쌓는 것만큼이나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이 일의 가장 큰 난점은 역시 6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채 세워져 있는 자동차들을 이동시키는 데 있었다.

한강에서 건대까지의 이동 경로는 대량의 탱크가 동원되어 뚫어냈지만, 그 너머의 영역은 여전히 처음 좀비 사태가 일어났던 7월 14일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버려진 자동차들은 두 가지 문제를 안겨준다.

첫째, 당연한 것이지만 도로를 차지하고 있어서 아군 이동 시의 기동력과 수송 능력을 현저하게 저하시킨다.

둘째, 좀비들이 달려들었을 때, 그것 자체가 일종의 방어벽이 되어 아군의 명중률과 생존 가능성을 낮춘다.

할 수 없이 문 대위는 이 버려진 자동차들을 인도 위까지 끌고 가 상가 건물에 완전히 밀착시켜 세운 뒤 고정시키고, 거기에 와이어와 시멘트 구조물을 더해 도로의 절반가량을 완전히 봉쇄하는 계획을 세웠었다.

좀비들이 숨어들 여지를 아예 차단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반드시 필요한 대량의 시멘트를 지원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계획은 수정되어야 했다. 수정된 계획은 차량을 일렬로 밀착시켜 아예 그것만으로 도로를 차단하는 벽을 만드는 것이다.

아쉬운 대로 그 정도만 해둬도 좀비들이 저격을 피해 그린 존, 즉 안전 지역까지 침투할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물론 모든 일을 오로지 인력으로만 해내야 하기에 시간과 노동력이 더럽게 많이 필요한 작업이다. 게다가 늘 긴장을 하게 만드는 일이다.

근방을 완전히 정화한 것이 아닌지라 불시에 출몰하는 소규모 좀비들이 언제 어느 골목에서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얌전히 손 놓고 기다리다가 좀비 밥이 되고 싶지 않으면 꼭 해야만 한다.

쿠르르르르릉~ 쿠르르르~

2중의 철책으로 된 게이트가 열리면 가장 먼저 K―2 흑표 전차가 전진한다.

미리 갓길 쪽으로 밀어둔 차량 사이를 헤치고 400여 미터를 전진한 전차는 현재 작업 현장인 구의사거리까지 진출해서 광나루로 위에 멈춰 섰다.

어린이대공원역의 남쪽 끝이라 할 수 있는 이 사거리에 방벽만 제대로 구축해도 안심하고 운신할 수 있는 영역이 몇 배나 넓어진다.

“자, 나갑시다.”

탱크의 시야 내에 좀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경비병이 내부의 게이트를 열었다.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대기하고 있던 파란 옷의 수감자들은 물이 질퍽하게 고인 도로 위로 발을 내디뎠다.

철책 좌우, 양쪽 끝의 사대에서는 네 명의 병사가 그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다.

수감자 50여 명 중 소지를 담당하고 있는 다섯을 제외한 45명이 외부 게이트 앞에 줄을 맞춰 서고, 작업반장으로 지목된 수감자가 보고를 마쳤다. 작업이 시작되기 전, 주임 원사가 다시 한 번 당부의 말을 했다.

“에, 뭐…… 이런 때에 서로 만나 가지고 이런 일을 하게 돼서 고맙기도 하고, 유감이기도 하고…… 뭐, 그럽니다. 오늘은 비도 오는데 참 여러모로…… 저희가 마음대로 여러분을 풀어드릴 수는 없어요. 또 워낙에 인력이 없다 보니까 이렇게 일을 부탁하지 않을 수도 없고요. 다만 한 가지 약속할 수 있는 거는, 그거는 뭐냐면, 작업하시는 동안에 안전, 그거 하나는 최선을 다해서 지켜 드리겠다는 거예요. 저희 중대장님 성격 아시죠? 훌륭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그분 믿고 일하시면 됩니다. 저기 저 군인들이 잘 지키고 있으니까 너무 무서워하지 마시고요. 네. 지금 벌써 시간이 꽤 됐는데 모쪼록 사고 없이 오늘 작업도 마무리 잘하십시다.”

주임 원사가 인사를 마쳤다. 이미 네 시가 넘은 시각. 빈말이 아니라 마음 같아서는 정말 이렇게 궂은날 한나절쯤은 쉬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이 작업은 시간이 성패를 가를지도 모른다.

하루 쉬면 그만큼의 할 일은 고스란히 남는 것이고, 막상 좀비가 들이닥쳤을 때 반나절의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을 감수해야 할는지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하루도 그냥 마음 편히 거를 수가 없다.

수감자들에 앞서 외부 게이트의 문을 열고 나간 병사 넷이 재빨리 50여 미터 앞으로 뛰어가 도로 양끝의 가로수를 기둥 삼아 레이저 와이어를 걸었다.

위아래 두 겹으로 쳐둔 이 허술한 임시 철책이 도로 위에서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수감자들에게는 그래도 생명줄처럼 심리적 안정을 준다.

좀비들이 달려든대도 최소한 저 철조망을 넘을 때까지는 시간을 벌 수 있다. 그 아주 작은 보험이 그들을 작업에 몰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자, 시작하자!”

작업반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외부 게이트를 열고 나간 재소자들은 두 무리로 갈라져 각자 자신이 맡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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