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암야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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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암야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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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암야행 (2)
2022.03.01.
“아, 아, 거기, 끝에 줄 맞춰. 야! 너, 좌로 2보 가.”
신경질적이 된 부사관들이 병사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간격을 조정한다. 살해당한 초소 경비병들의 처참한 시신을 본 터라 그들도 기합이 바짝 들어갔다.
까딱 마음을 놓았다가는 자신들도 같은 처지가 될지 모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들은 정말 죽고 죽이는 전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명심해라. 이 간격을 항상 유지한다. 수상한 움직임이 발견되면 경고 없이 곧바로 방아쇠를 당긴다. 트랩을 발견하면 즉시 멈춰 선 다음 소리쳐서 알린다. 이 세 가지만 명심하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적을 섬멸할 수 있다. 블랙 호크가 작전 내내 상공에서 지원과 엄호를 해줄 거다.”
지시를 내리는 장교 본인조차도 그 말을 믿지 않았기에 목소리는 떨리고 갈라졌다. 그에게 애초부터 이 수색은 미친 짓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야간에 저 광활한 한라산 전체를 샅샅이 훑어 올라가며 매복해 있을 적을 찾는다니…… 동네 뒷산 수색도 이렇게 해서는 별 소득을 거두기 어렵다.
이건 그저 빨리 저격의 공포에서 벗어나 두 다리를 뻗으며 자고 싶다는 욕망밖에 없는 윗대가리들이 죄 없는 병사들을 갈아 넣는 짓이 아닌가.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하달되는 명령에 반기를 드는 것은 자살행위다. 그러니까 안 되는 일인 줄 빤히 알면서도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군이란 내려오는 명령을 수행하는 집단이지, 논쟁으로 정답을 찾는 집단이 아니다. 건국 이래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문화다.
훙훙훙훙― 투두두두―
서귀포항 방향에서 날아온 네 대의 블랙 호크가 완만한 호를 그리며 회전한 뒤, 상공에 머문다. 블랙 호크의 서치라이트가 닿는 지역에는 대낮만큼이나 환하게 밝혀진 빛의 원이 만들어졌다.
밝게 도색된 그 해군용 헬기들이 이 작전의 모든 성격을 다 말해준다.
염분 부식 방지 처리가 된 고가의 시호크가 아니라, 일반 블랙 호크라도 감지덕지하게 구입해서 시호크처럼 꾸며 썼을 정도로 해군은 군 예산이라는 파이를 제대로 나눠 먹지 못해왔고, 그것을 독점해 온 육군의 채양균에게 해묵은 앙금이 있다.
이제 그 빚을 갚아주고 군 내부의 서열을 재조정할 시간이다. 따라서 코브라 공격 헬기를 비롯한 육군의 모든 병력 자원은 이 작전에서 배제되었다.
아예 작전이 실시된다는 정보 자체가 하달되지도 않았다. 그들은 채 장군의 라인이므로 신뢰하고 제주도에 들일 수 없는 것이다.
와삭와삭.
일렬로 늘어선 제1조가 군견들을 앞세운 채 수풀을 헤치며 한라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을 엄호하기 위해 대기하던 제2조도 20여 분의 시간 차를 두고 출발했다.
깊은 밤의 어둠을 덮어쓴 산은 수색자들에게 호의적인 협력자가 아니었다.
K―2의 레일에 부착된 플래시와 516로에 세워진 차량들이 비추는 서치라이트, 거기에 헬리콥터의 지원까지 다 더해졌어도, 빽빽하게 자라난 나무들에 가로막혀 여전히 사방에 음영 지역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 망할 놈의 잡초들이 자꾸 발목을 잡는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한 발짝, 한 발짝씩을 떼는 병사들은 나직이 한숨과 욕설을 내뱉었다.
소문에 의하면, 쿠데타에 가담했다가 실패하고 도주한 해병대 병력만 일개 소대가 넘는다고 한다.
쉐라톤 호텔에 폭발이 일어나던 날, 그곳을 경비하던 부대가 통째로 사라졌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촘촘히 선 채로 전략적으로 불리한 낮은 지대에서 걸어 올라가도 되는 것인지…….
수류탄 몇 발만 날아와도 수십 명이 몰살당하기 딱 좋다. 자꾸 두려운 망상이 마음을 휘젓는다.
“씨발, 이런 거는 UDT가 하면 되잖아. 왜 걔들이 안 오고 우리가…….”
한 병사가 원망 가득한 마음을 담아 중얼거렸다. 다른 병사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이미 UDT도 이 작전에 참여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한라산을 오르고 있는 수색대로부터 북쪽으로 300미터 떨어진 폴리텍 대학 본관 건물의 옥상에서는 헤클러 & 코흐 사의 MSG90 저격소총 여섯 정이 한라산의 북쪽 능선을 계속 훑어댔다.
야간 조준경을 통해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저격수들과 감적수들은 UDT SEAL의 최정예 팀. 저격수들은 덤불 속 어딘가에 숨은 반란군들이 수색대라는 미끼를 덥석 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어디 소속인지 상대방 역시 꽤나 솜씨가 좋아서 아직 위치를 숨기고 있지만, 놈들이 수색대 병사들을 사격하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 총구의 불빛만은 감출 수 없을 것이다. 그래주기만 하면 이 승부는 끝난다.
저격수는 차분히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후우우웅~
축축하고 후텁지근한 바람이 대학 건물 주변을 휘돌아 나간다.
한동안 순조롭게 진행되던 수색이 난항을 맞은 것은 새벽 네 시가 막 지난 시점이었다.
턱, 관음사 탐방로 우측의 완만한 비탈을 오르던 병사는 자신이 뭔가 심상치 않은 걸 건드렸음을 깨달았다. 뗏장 속에 묻혀 있던 가느다란 낚싯줄이 전투화 부리에 걸려서 들어 올려진다.
허윽―! 병사는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에서도 출발 전 지휘관이 지시했던 당부를 용케 기억해 냈다.
“트랩! 트랩입니…….”
‘트랩입니다!’라는 말을 다 외치기도 전에 엄청난 열과 에너지가 그의 몸 전체를 튕겨 올리며 갈가리 찢는다.
콰앙―!
파편과 돌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고,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끄아아아~! 으아아아악~!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병사들의 절규가 메아리를 만들어내며 울린다.
블랙 호크의 서치라이트가 폭발이 일어난 지역을 비추는 동안, 의무반이 달려가 부상자들을 끌어냈다.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 대고,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병사들조차 두려움을 절감하면서 발이 얼어붙었다.
“멈춰 서 있지 마! 오히려 더 위험하다! 계속 움직여!”
장교와 부사관들이 열심히 독려를 해서 수색대의 긴 행렬은 다시 위쪽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가라니까 가기는 하지만, 병사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불만과 공포가 가득 들어찼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부정적인 감정에 부채질이라도 하듯 두 번째, 세 번째 폭발이 연이어 일어났다.
콰아아앙―!
크레모아의 살상력은 수류탄과는 달랐다.
끄아악!
툭, 투투둑.
부채꼴로 확산된 폭발에 휘말려 날아가며 피폭자들의 방아쇠가 당겨졌고, 그 총성을 조준 사격이라 오인한 주변의 병사들이 지형지물 속에 몸을 숨기면서 전방의 막연한 어둠 속을 향해 대응사격을 시작했다.
사방으로 날리는 예광탄이 시선을 어지럽힌다. 그러는 동안 죄 없는 아름드리나무들만 벌집처럼 파이고 터지고 부러졌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지휘관이 악을 써보지만, 이미 폭발과 총성으로 마비된 병사들의 청각이 그것을 알아듣고 방아쇠에서 손을 떼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 병사들은 좀처럼 앞으로 발을 내디딜 용기를 내지 못했다.
자욱한 연기와 화약 냄새로 뒤덮인 숲속에서 수색 병력들은 지옥을 실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들은 아직 적군을 구경조차 하지 못한 상태이다.
“우와…… 뭔가 장난 아니네. 씨발, 무섭다, 야.”
“저희가 차출된 게 아니라서 다행이지 말입니다.”
크레모아의 폭발음은 2.5㎞ 떨어진 용강 마을 회관에까지 전해졌다.
임시 창고로 사용 중인 그 건물에서 경계 근무를 서던 병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서 멀리서 울리는 총성과 불빛을 보며 뭐라고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이 새벽에 근무를 선다는 게 좋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저렇게 한라산을 기어오르느라 피똥을 싸는 녀석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타타타타타―
조용한 새벽 공기를 타고 계속 총소리가 날아온다.
“애들 존나 죽어 나가겠다. 저게 뭔 난리냐. 으! 저거 봤어? 불꽃이 팍 퍼지는데?”
“근데 분대장님, 이렇게 뒤숭숭한 상황이면 우리한테도 추가 병력 지원해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크크, 이 새끼야. 여기에 뭐가 있다고 추가 병력씩이나 파견을 해? 기껏해야 전투식량 나부랭이나 조금 쌓아놓고 있는데. 네가 탈주병 새끼들이면 이딴 거 먹으러 여기까지 오겠어? 편의점 아무 데에만 가도 사제 식량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데. 안 그래?”
“흐흐, 하긴…… 저 같아도 안 먹을 것 같습니다.”
“그런 거야, 인마. 그리고 낮에 한라산 쪽으로 들어간 핏자국을 발견했대. 어떤 새끼들인지 몰라도 이제 다 뒈지는 일만 남았어. 포위망 금방 좁혀들 건데 뭐.”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들의 배후로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좁혀 들어오고 있었지만, 그 낌새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0년 이상 살인 기술을 연마한 프로들이 이제 겨우 일 년 남짓 총 쏘는 법을 배운 아마추어들을 덮치는 것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원 준비 마쳤답니다.”
부근의 숲속에 모습을 감춘 채 슈타이어 SSG―69 저격 소총에 부착된 야간 조준경으로 마을 회관을 살피던 특임대원이 보고했다. 소령은 감정이 없는 어조로 명령을 내렸다.
“신호 보내줘.”
신호 보내겠습니다, 그의 좌우에 있는 두 저격수가 작게 복창한 후, 거의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자 두 가지가 훌륭하게 기능을 했다. 선더 트랩 소음기와 서브 소닉 308 실탄.
찰칵, 탁, 하는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마저도 수색 지역에서 울려오는 소음에 묻혀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225그레인의 화약이 날려 보낸 탄자는 침묵을 지키면서도 똑바로 300미터 이상을 날아가 목표물을 꿰뚫었다.
퍽―!
옥상 위 사대를 지키고 있던 K―3 사수의 얼굴 한가운데에 구멍이 생겨났다.
피가 만들어낸 안개구름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저격수는 노리쇠를 당겨 재장전을 했다. 그런 후, 곧바로 첫 번째 목표에서 2미터 떨어진 위치의 경기관총 부사수를 쐈다.
탁.
이번에도 총알은 깨끗하게 명중했다. 모래주머니 위에 기대 쓰러진 부사수의 눈에서 피가 솟는다.
복창부터 분대 지원화기가 무력화되기까지의 총 소요 시간은 채 2초도 걸리지 않았다.
“깔끔하지 않았습니까, 소령님?”
여전히 조준경에 눈을 붙인 채 첫 번째 저격수가 묻는다. 아주 약간의 애교와 웃음이 섞인 그 자랑에 소령은 냉담하게 대꾸했다.
“똑같은 걸 K―2로 하는 놈도 있었다. 게다가 뛰어다니면서.”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옥상 위에 있던 나머지 경비병을 처리한 두 번째 저격수가 표적을 바꾸어 방아쇠를 당겼다.
파작, 마을 회관 현관의 등이 깨지고 마당 전체가 순식간에 어둠에 묻힌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이미 잠입해 있던 특임대원들도 행동을 개시했다.
“흡!”
불꽃과 헬기에 정신이 팔려 있던 병장의 목을 울트라마린 나이프가 훑고 지나간다.
곧바로 입을 꽉 틀어막은 손이 얼굴을 뒤로 꺾어 그어놓은 상처를 벌렸다. 잘린 경동맥에서는 피가 왈칵왈칵 솟아올랐고, 그 피는 다시 기도로 역류해 들어간다.
죽음의 고통과 공포를 채 온전히 느끼기도 전에 날카로운 칼날이 겨드랑이를 반복적으로 뚫고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며 반항의 시도 자체를 무력화한다.
퓨욱― 퓨욱―
주변에서는 영화에서나 들어본 적 있는 소음기의 소리가 불규칙하게 울리고, 뿌옇게 감겨오는 시야에 조금 전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상병의 모습이 들어온다.
바닥에 쓰러져 경련하는 상병의 얼굴에 검은 옷을 입은 놈이 MP5를 겨누고 두 발을 더 쏘았다.
거기까지가 그가 본 세상의 마지막 풍경이다. 그에게도 확인 사살을 위한 사격이 가해졌지만, 이미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였다.
퓨욱― 퓨욱― 퓨욱―
마을 회관 안쪽에서도 불꽃과 함께 소음기 소리가 울렸다. 그 단조로운 소리 외에는 비명도, 아우성도 없이 아주 고요하게 특임대의 습격은 진행됐다.
옥상 위로 올라가 기관총 사수들의 시체를 확인한 특임대원이 수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모든 작전은 완료되었다.
“정리했습니다, 장군님.”
소령이 보고하자 채양균은 몸을 일으켰다. 둘은 저격수와 병력의 호위를 받으면서 마을 회관으로 걸어갔다. 가로등조차 변변히 밝혀지지 않아서 주변은 완벽하게 어둠 속에 묻혀 있다.
쿠쿵―
또다시 산 쪽에서 폭발음이 들린다. 헬리콥터도 라이트를 번쩍거리며 쉬지 않고 날아다니고 있다.
“저 새끼들, 진짜 저기로 가서 그 지랄을 하고 있구만. 속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뻘짓거리하는 걸 보니까 참 마음이 복잡해진다. 봐라, 저런 새끼들이 애들을 지휘하고 있으니 내가 속 편히 이선으로 물러나 쉴 수가 있겠냐? 어떻게 생각해, 조철웅?”
훤하게 불이 밝혀진 한라산 북쪽을 보며 채 장군이 중얼거렸다. 특임대 소령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큰 어른이 자리를 비우시면 군이 흔들립니다. 그리고 군이 흔들리면 그때는 국가도 없습니다.”
“하하, 새끼. 이건 군인 안 했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었겠어. 하여튼 말 잘해. 그건 그렇고…….”
채 장군이 돌아서서 시체들로 뒤덮인 마을 회관을 굽어본다. 약관의 군인들이 두 눈을 부릅뜬 채 차갑게 식어간다. 바닥에는 그 시체들을 끌어 이동시키는 동안 흘러나온 붉은 선혈이 길게 선을 그리며 이어져 있다.
“얘들한테는 좀 안된 일이긴 하네. 뭐, 군인이니까 죽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거지만.”
무책임한 소리를 지껄이며 채 장군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주변에서는 정신없이 얽힌 핏자국 사이로 그의 병사들이 뛰어다니며 음식을 꺼내 와 방금 징발하기로 결정한 트럭에 싣고 있다.
성동격서. 오늘 아침 초소병들을 죽인 후 혈흔까지 남겨서 모든 시선을 돌려놓고, 그쪽으로 병력이 집중된 틈을 타 이렇게 허술해진 배후를 친 것이다.
대단한 피해를 준 건 아니지만, 식량을 성공적으로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애초 80명이 잠입한 데다 쉐라톤을 지키던 해병들까지 모두 끌고 나온 터라 음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해병 애들 역시 똘똘해서 데리고 나온 보람은 확실히 있다.
“이것 봐라. 이 새끼들, 내 사진도 어디서 이런 걸…… 잘 나온 것도 많은데. 철웅아, 얘들 하는 짓 봐라, 이거. 하여간에 맘에 드는 게 한 개도 없구나. 음, 이승남이 사진은 좀 닮았네.”
회관 입구에 붙어 있던 수배 전단지를 떼어내며 채 장군이 투덜거렸다. ‘반란 수괴 ― 사살 시 2계급 특진과 포상’이라는 빨간 글씨 아래에는 정면을 보고 있는 채 장군과 이승남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다.
변장을 했을 때의 사진도 어설픈 합성으로 만들어 하단에 추가해 두었다.
채 장군은 가만히 전단지를 바라보다가 곱게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이런 흉악한 것도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보면 좋은 기념이 될 것이다.
투타타타타타― 콰아앙―
아직도 한라산 북쪽에선 끊임없이 고성이 이어지고 있다. 불빛도 어지럽게 번쩍인다. 고작 폭발물 트랩 몇 개로 저만큼의 병력을 이렇게 장시간 붙들어놓고 있다니, 우습기까지 하다.
“왜 죽은 놈들이 지키던 위치 부근에 우리가 숨었다고 생각할까? 아니, 아무리 급해도 자기가 마시는 우물 옆에 똥 싸놓겠냐고. 밥통 같은 새끼들. 아참, 저기 매복해 있는 애들 말이야, 혹시 정말로 발각되고 그러는 거 아니냐?”
물론 북쪽 능선 방향에 숨지는 않았지만, 한라산에는 아직 특임대 병력이 꽤 잠복해 있다.
그들은 앞으로도 일주일간 쉼 없이 들락거리며 경비병들을 교살하고 더 많은 트랩을 설치해야 한다.
이 혼란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그들이 사살되어 버린다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질 것이다. 채 장군의 물음에 소령은 자신 있게 말했다.
“굴 파고 들어가서 덤불 속에 숨어 지내는 것만 10년 가까이 훈련한 애들입니다. 바로 옆에서 일주일을 지내도 절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좋아, 그 자신감. 그래야 내 새끼들이지.”
채 장군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04시 35분. 지금쯤이면 남동쪽의 표선해 비치와 북서쪽의 애월항 쪽에서도 별동대의 초소 급습이 끝났을 시간이다.
한 교수, 이 새끼. 감히 나를 숙청하려고 해? 매일 아침 네가 받게 될 보고에 우울하고 불안한 내용만 가득 채워주마!
그의 플랜 B는 그렇게 양복쟁이들의 혼을 빼고 서서히 지치게 하는 것이다.
내일 아침이면 수색대는 아무 전과도 올리지 못한 채 수많은 사상자와 부상병들만을 데리고 복귀할 테고, 한 교수는 아무 죄도 없는 애들을 달달 볶아 다시 한라산으로 내몰 게 분명하다.
그런 일이 얼마나 사람의 진을 빼고 소모시키는지 양복쟁이 놈들은 모른다. 그리고 사람은 지치고 얼이 빠지면 누구나 멍청한 실수를 저지른다. 그는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
채 장군이 문을 닫자 그를 태운 차량이 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어두운 골프장을 향해 출발했다. 조금 전 탈취한 트럭이 그 뒤를 따른다.
채 장군에게는 남겨진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 앞으로 일주일, 그에게 허락된 7일 동안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테러를 하고, 일부러 단서를 남겨 적의 신경을 끊어지기 직전까지 당길 것이다.
그리고 7일째에 탈진해서 허술해진 그들의 심장을 쳐 정권을 장악할 것이다.
일주일이라…… 채 장군은 손을 꼽으며 다시 날짜를 확인했다. 이미 플랜 D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갔고, 여기에 갇힌 그는 그 가동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성공 아니면 공멸. 두 가지의 선택지만이 존재한다. 그 외의 타협은 불가하다. 그것이 그가 선택한 도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