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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암야행 (1) (181/449)


181. 암야행 (1)
20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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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희 씨, 피곤하실 텐데 그렇게 서 계시지 말고 여기 좀 앉으세요. 비록 야전침대지만 체육관 맨바닥보다는 훨씬 편안할 겁니다.”

가희가 못 이기는 척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자 강 소위도 얼른 그 곁에 와 앉는다. 시험 삼아 소위의 허벅지 바깥쪽을 살짝 쓸었더니, 덥석 그 손을 잡는다.

이렇게 상대방의 행동에서 욕정이 노골적으로 묻어나기 시작하면, 유혹을 멈추고 발을 뺄 시간이다. 가희는 벌떡 일어나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어머, 어머, 가희 바보가 하는 짓 좀 봐. 어떡해요, 가희가 또 바쁘신 분을 계속 붙잡았네요. 벌써 새벽 두 시가 넘었는데…….”

“아니, 괜찮습니다. 더 계셔도…….”

가희는 강 소위의 목소리에 잔뜩 묻어 있는 아쉬움을 애써 모른 척하며 능청을 떨었다.

“이해해 주세요. 소위님과 이야기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자꾸 이래요. 꼭 오래 사귀었던 사이처럼 편안한 것 같아서. 조금 전에도 오빠라고 할 뻔했지 뭐예요.”

“가희 씨만 좋으시다면 언제든지 그렇게 부르셔도 됩니다. 저도 아주 예쁜 여동생이 생긴 것 같아서 행복합니다.”

너는 여동생 가슴골을 그런 눈으로 쳐다보니? 여동생 손을 그렇게 주물럭거려?

가희는 속으로 코웃음을 지었다. 물론 입술을 통해서는 전혀 다른 말이 나온다.

“정말이요? 그럼 무서워서 잠 안 오고 그럴 때마다 이렇게 와도 되는 거예요? 가희는 요새 자꾸 무서운 꿈 꾸거든요. 그런데 여기…… 민간인들 함부로 드나들면 혼난다고 들었는데. 힝~”

“후훗, 몰래 오시면 되죠, 오늘 밤처럼.”

“네에! 그럴게요. 커피 드시고 힘내세요! 아참, 이렇게 왔다는 거는 절대로 비밀이에요. 아시죠? 가희는 연예인이라서 아무래도 이미지라는 게……. 후훗.”

그가 더 흥분해서 엉겨 붙기 전에 가희는 서둘러 인사를 했다. 빼꼼, 살짝 문을 열고 복도에 사람이 있는지부터 살핀 가희는 얼른 강 소위의 방에서 빠져나왔다.

“뭐라고 하더냐?”

가희가 어두침침한 복도를 지나 체육관 주차장으로 나왔을 때, 처마 그늘 속에 숨어 있던 육만배가 불쑥 모습을 드러내며 물었다.

밤새도록 펜스 주변이 서치라이트로 환히 밝혀지는 이 건대 쉘터에서 그들이 서 있는 자리가 가장 어두운 곳이다.

“아유, 깜짝이야. 회장님, 인기척이라도 좀……. 음, 얘는 고민도 안 하고 바로 몰래 오라고 했어요. 물어보자마자 바로 답이 나오던데요?”

“그래? 중대장에 대해서는 더 알아온 것 없나?”

“뭐, 또 칭찬이에요. 문형식이라고 하면 육사 때부터 떠르르 했다대요. 딱 부러지고 머리도 좋고…… 근데 너무 유도리 없고 곧아서 별까지는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아, 맞다. 요즘 들어 부쩍 위쪽하고 마찰이 많다는 걱정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중요해요?”

“지금 만나고 온 놈이 누구라고 했지? 강 소위?”

“네, 맞아요.”

육만배는 수첩을 꺼내 ‘강’이라고 적어둔 줄에 X표 하나, 별표 하나를 추가했다. 이놈은 벌써 X표가 세 개나 된다. 가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데 회장님, 그런 건 매번 왜 물어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만나는 놈들한테 전부 똑같은 걸…….”

중대장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장교와 개별적으로 접촉하라고 하면서 육만배는 한 가지씩 공통된 질문을 준다. 그리고 그 반응을 물어 혼자만 아는 기록으로 남긴다.

시키니까 하기는 하지만, 가희 본인은 그 영문을 모르겠다. 메모를 마친 육만배는 빙그레 웃었다.

“후후, 어떤 놈이 네 배필로 좋을지 고르느라 그렇지.”

“네, 네. 제대로 말씀 안 해주실 거 알고 있었어요. 알았는데 한번 여쭤나 봤네요. 하긴 뭐, 저 같은 년이 그런 복잡한 이야기 들어봐야 뭐하겠어요,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지. 그래서 이제 순서가 뭔가요? 강 소위랑 자요?”

“아니, 걔는 슬슬 멀리해라.”

가희가 나름 비꼬아봤는데 육만배의 어조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요? 의외네요. 그래도 제가 보기엔 셋 중에 제일 약삭빠르고 눈치도 있는 것 같던데. 적당히 편법도 잘 쓰고. 저번에 담배 좀 구해줄 수 있냐고 하니까 그것도 아무 말 없이 가져왔잖아요.”

“그래, 그래서 이렇게 잘 피우지. 하지만 그건 그거고, 사업은 또 다른 거니까.”

육만배가 담배를 물자 가희는 곧바로 불을 붙여주었다.

후우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육만배가 말했다.

“그런 놈은 안 돼. 법 어기는 걸 우습게 아는 놈들은 죄책감 같은 것도 없거든.”

나나 당신처럼 말이죠.

가희는 육만배의 교활한 눈을 보며 생각했다. 물론 그래도 그녀는 육만배를 싫어하지 않는다.

정말 견디기 힘든 짓까지도 서슴없이 시키는 잔인한 인간이지만, 주제넘는 짓만 하지 않으면 육만배의 그늘 아래서 그녀는 안전하다.

세상에는 그와 비슷하게 잔인하면서도 무능하기까지 한 놈들이 얼마든지 있다. 적어도 그녀가 겪은 세계에서는 그랬다.

힘 있는 놈의 노예냐, 떨거지들의 노리개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게 가희의 인생이고, 그녀는 기꺼이 앞엣것을 택했다. 그런 선택의 기회조차 가져 보지 못하는 비슷한 처지의 년들도 수두룩하다.

“강 소위는 탈락이네요. 그럼 박 소위랑 김 소위 중에서 누구를 녹여놓을까요?”

“글쎄다. 아직 고민 중이니까 적당히 조절해 가면서 애만 좀 태워라. 두 놈이 비슷하네.”

육만배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두 애송이 장교가 비슷하게 미련하고, 비슷하게 충직하다. 앞뒤 재는 재주가 없는 점도 닮았다.

외부로 식량을 구하러 나가는 김에 담배 좀 몇 보루 구해다 달라는 사소한 부탁마저도 주저하다가 겨우 들어줄 만큼 규칙에 매여 있고, 미녀가 야밤에 찾아왔는데도 지휘관의 명령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실로 바보 같은 놈들이다. 그래서 쓸모가 있다. 그가 꾸미고 있는 계획은 욕망에 눈이 먼 바보가 없으면 실현되지 않을 것이기에.

***

육만배와 가희가 음흉한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곳에서 채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체육관 3층에서는 대위 문형식과 박 소위가 커피로 졸음을 달래가며 지도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도에 그어진 붉은 선은 좀비들의 공격을 차단해 줄 펜스가 설치된 곳이다. 아직 그어야 할 선이 많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여러 도로가 연결된 현 쉘터의 위치는 방어에 취약하다. 2만 평에 달하는 건국대 호수에서 끌어와 필터 처리를 거쳐 사용하는 생활용수만 아니라면 벌써 예전에 쉘터를 다른 곳으로 옮겼을 것이다.

대체 왜 이런 곳에 쉘터를 배치한 것인지, 문 대위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가로수 제거 작업은 얼마나 진행되었나?”

문 대위가 물었다. 박 소위는 고민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나무들도 워낙 촘촘히 박혀 있고, 작업 인원이 적은 것도 문제고…… 특히 안전 조치를 병행하느라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솔직하게 성과 부진을 보고하면서도 박 소위의 얼굴에는 머뭇거림이 없다. 그것은 그간 쌓인 신뢰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군에서 너무도 흔하게 마주쳐야 하는, 무능한 권위주의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지휘관을 모신다는 자부심과 믿음이 그들의 중대에는 존재했다.

“음…….”

문형식은 하루 만에 빳빳하게 수염이 돋아 오른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24시간 내내 휴식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대좀비전의 특성상, 병력은 늘 심각하리만큼 부족하다. 취침하는 병사들과 체육관 내부의 질서 유지 병력을 제외하면 평상시 운용이 가능한 수는 50여 명 내외에 불과하다.

거기에 또 근처 건물 옥상에 배치한 저격조들과 탱크 세 대로 구성된 기갑 소대 인원은 빼야 하니까 실제로 작업에 투입될 수 있는 수는 두세 개 분대를 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대로변의 가로수들을 잘라내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니, 시간만 잡아먹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생존의 문제가 걸린 일이므로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무성하게 자라나 있는 가로수들과 길 양쪽으로 밀어놓은 자동차 더미가 방패 역할을 해주는 바람에 밀려드는 좀비를 상대하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그건 그저 선과 면으로 된 지도만 보고 병력을 배치하는 사령부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시가전 현장의 당면한 문제이다.

“작업에 투입된 재소자들 보호를 더 낮은 수준까지 격하시키기만 해도 효율은 훨씬 증가할 겁니다. 작업 시간도 반으로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적은 병력으로 이나마 건대 쉘터를 방어해 내고 가용 면적을 넓혀가며 외부 식량까지 확보해 반입할 수 있는 것은, 국방부가 선심 쓰듯 배정해 준 교도소 재소자들의 노동력 덕이 컸다.

그리고 그렇게 군인들의 손에 강제로 맡겨진 재소자들은 소모품처럼 취급되기 마련이었다. 어차피 이놈들은 죄수니까…… 박 대위의 이 제안도 그런 맥락에서 출발한 것이다. 문 대위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돼. 지금 실행하고 있는 보호 조치라야 겨우 안전 펜스를 설치해 주는 수준인데, 그렇게 하면 좀비들이 몰려왔을 때 그 사람들이 대피할 공간이 없어지는 거야.”

“하지만 그 사람들은 재소자잖습니까? 죄지은 놈들까지 보호하려다가 공연히 더 큰 위험을 감수할 수는…….”

“박 소위.”

문형식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른다.

네, 넷. 박 소위는 하던 말을 멈추고 상관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자네, 우리가 왜 국군인지 아나?”

“네? 잘 못 알아들었습니다.”

“국군이라는 명칭 말이야. 다른 이름이 붙었을 수도 있잖은가. 예를 들어…… 음, 대한군이나 대한민국군, 또 민주공화국의 군이니까, 공화국군이라고 할 수도 있잖나. 하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군이라고, 더 흔히는 그냥 ‘국군’이라고 불리지. 그 이유를 알고 있는지 묻는 거다.”

잠시 고민해 보던 박 소위는 결국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솔직히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이걸 물어보면 다들 잘 모르더군. 의외로 간단한데. 우리를 부르는 명칭이 국군인 이유는 헌법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야. 1장 5조 2항에 그 명칭과 할 일이 규정되어 있네.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라는 문장이야. 만약 그 조항에 국군이 아니라 민국군이라고 적혀 있었다면 나는 민국군 대위였겠지. 우리가 누구이며 뭘 해야 하는지 그 모든 걸 헌법이 규정하는 거니까.”

‘좋은 걸 배웠습니다! 앞으로는 항상 명심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박 소위는 그의 상관이 재소자 이야기를 하다 말고 왜 이런 뚱딴지같은 이야기로 옮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문형식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헌법에는 군에 관한 조항이 그리 많지 않아. 관심만 가지면 누구나 외울 수도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그중 그 어떤 조항에서도 일개 장교에게 민간인을 임의로 심판할 권리를 부여하지는 않았네. 설사 비상계엄이 선포된 상황에서라도 군사재판이라는 과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어. 자네나 나나 재판관이 아니고, 이 쉘터는 군사 법정도 아니지. 저기 저 건물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들은…….”

문 대위는 창가로 걸어가 재소자들의 숙소를 바라봤다.

그들을 좀비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그저 두 겹으로 둘러쳐진 철책이 전부다. 그 허술한 보안만으로도 이미 쉘터에서 안전을 보장 받고 있는 다른 민간인들과는 충분히 차별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격리 수용된 채 매일 노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법부에서 명령한 징역보다 나을 게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하지만 저 파란 수의를 보며 절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저들 역시 엄연한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민간인들이라는 사실이야. 다시 말해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지. 그걸 꼭 기억하고 한시도 잊지 않도록 해야 돼.”

이야기를 하는 내내 문형식 대위의 눈은 확신과 신념으로 빛난다. 마주 보고 있는 부하 장교가 도저히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박 소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예전부터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정해두고 있었다. 죄수는 죄수다. 그런 것들을 위해서까지 목숨을 걸 생각은 없다.

***

계엄하의 제주에는 왕래하는 행인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요 며칠 전부터는 경비가 훨씬 더 삼엄해져서 길목마다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굳은 얼굴의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덕분에 사람들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아예 바깥출입 자체를 자제했다.

그 정도는 신경 안 쓴다고 큰소리를 뻥뻥거리던 한량들도, 총을 겨눈 군인들로부터 한 번 시달리고 나면 간이 콩알만큼 줄어들어 방구석에 처박혔다.

- 이거 어떻게 할까요?

그 한량들이 군인들로부터 검문을 받으며 들었던 가장 무서운 말이었다. ‘이거 어떻게 할까요?’, 그 말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는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대여섯 명의 무장한 군인들이 빙 둘러싸고 주소와 이름, 외출한 이유 등을 질문하다가 갑자기 상관에게 그렇게 묻는 것이다. ‘이분’이 아니고 ‘이거’다.

게다가 어떻게라니…… 죽일 수도, 살릴 수도, 혹은 어딘가로 끌고 갈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린다.

그래봐야 아무도 모른다. 길거리에 사람이 없으니 보는 눈도 없다. 아무 죄도 없이 그런 취급을 받는데도 분노보다 공포가 더 크게 마음을 흔들었다.

하이바 그늘 아래에서 눈빛을 번뜩이며 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겨누고 있는 군인들을 보며 사람들은 법이고 뭐고 다 소용없어졌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걔들 왜 눈이 돌아갔는지 알아? 현직 장관이 서귀포에서 죽었대. 그것도 대낮에 대갈통이 터져서.”

“아닌데. 내가 들은 이야기로는 죽은 사람이 해병대 사령관이라던데? 그 호텔 폭파된 날, 거기서 죽었다더구만.”

사람들 사이로 유언비어와 진실이 적당히 섞인 채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민심은 흉흉해졌다.

배급이 곧 끊길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남의 것을 탐내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강도를 색출한다는 핑계로 군인들이 벌이는 가택수색 때문에 온갖 말썽이 끊이질 않았다.

우리 집에 강도 없으니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항의를 해봐도 군인들은 강제로 밀고 들어와 워커발로 집안 곳곳을 헤집다 사라졌다.

“문단속 잘하십쇼!”

‘미안합니다’라는 말 대신 마치 명령과 같은 고압적 음성을 남기고 가는 군인들의 뒤통수에는 당연히 원망과 저주의 욕설이 퍼부어졌다.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의 욕설이…….

이럴 때 죽어나는 것은 말단 사병들이다. 병사들은 장교의 닦달에 지치고, 민간인들의 원망에 시달리면서 매일 진땀을 쭉쭉 뽑아야 했다.

물론 이렇게 대대적인 규모의 가택수색은 강도 따위 때문에 실시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 전복을 꾀한 역도의 무리들을 색출하기 위함이다.

킹메이커가 살해당한 이후 교수와 해군 장성들의 불안감은 극도까지 치달았다.

즉시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병력으로 대규모 수색을 진행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교수는 밤에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당연히 제거됐다고 믿었던 채 장군의 시체가 쉐라톤 호텔의 폭발 현장에도, 그리고 서귀포의 횟집에도 없다는 사실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그가 아직 살아서 이승남과 함께 쿠데타를 획책한다는 의미였고, 현 정부의 최고 실세인 교수와 그의 손을 잡은 해, 공군 장성들의 불안감을 몇 배나 증폭시키기에 충분한 사건인 것이다.

육군에서 채 장군이 가지고 있는 라인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가 섬 안에 고립되어 있는 동안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이틀 주겠어. 이틀 안에 그 두 새끼 내 앞에 데려와. 모가지만 잘라 와도 되고, 산 채로 개처럼 끌고 와도 돼. 어쨌든 채양균, 이승남, 그 두 새끼가 뒈졌다는 걸 내가 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해. 당신의 능력이 별 네 개를 달기에 충분하다는 걸 증명하라고.”

이승남의 자리를 꿰찬 신임 해군 참모총장 안병도에게 교수는 악에 받친 명령을 내렸다. 안병도는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호기로운 대답과 달리 이틀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훌쩍 지나가 버렸다. 두 놈의 명은 질겼다.

게다가 놈들은 단순히 숨어 지내기만 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러기는커녕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서 오히려 이쪽의 목숨을 하나씩, 하나씩 빼앗아갔다.

첫 희생자는 안병도였다. 방탄 처리가 된 관용차에서 내려 음식점으로 들어가는 순간, 타앙― 하는 소리가 들렸고, 7.62㎜탄이 헤집고 나간 안병도의 두개골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이틀 만에 해군 참모총장 자리를 다시 공석으로 만든 저격이었다.

그 뒤로도 하나씩, 하나씩 장성들과 정부의 고위직 관료들이 어디에서 날아온 것인지도 모르는 총알에 목숨을 잃었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강정 기지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당연히 검문과 수색을 강화했지만, 그래봐야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아무리 제주도가 좁다고 해도 상주인구만 60만이 넘는다. 그 모든 집들을 샅샅이 뒤지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주택가가 아니어도 도망쳐 숨을 곳은 얼마든지 있었다.

결정적으로 교수 쪽에서는 채 장군이 대체 몇 명의 병력과 함께 이동하고 있는지, 그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연기처럼 자취를 감췄던 채 장군의 반란군이지만, 오늘 오후 드디어 꼬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516로와 산록북로를 잇는 삼거리 초소 경계 분대가 전원 살해된 채 발견된 것이다. 교전의 흔적이 역력한 현장에는 산록북로를 따라 올라가며 점점이 혈흔이 뿌려져 있었다.

그때부터 비상이 내려지고 새벽 세 시가 넘은 지금, 산록북로의 끝자락에는 수색 작전에 투입되기 위해 도열한 1개 대대 병력이 불안함에 지친 표정으로 한라산 북쪽 능선의 검은 그림자를 노려보는 중이다.

언제 머리 위로 총알 세례가 퍼부어질지 모른다는 공포, 게다가 밤이 되어도 가실 줄 모르는 이 찌는 듯한 더위, 거기에 방탄 조끼까지 입고 있자니 그저 죽을 맛이었다.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도 병사들은 하이바 아래로 땀을 뚝뚝 떨어뜨렸다. 피아 식별 표식이라고 헬멧에 둘러준 초록색 밴드가 너무나 허접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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