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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둥지 (2) (177/449)


177. 둥지 (2)
202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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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쳐 가는 강원도와 달리 서울의 폭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기세를 올렸다. 굵은 빗방울은 유리창을 부술 듯 두드렸고, 바람은 창틀 사이를 울리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보안관 일행은 여관 2층에 발이 묶인 채 몇 시간을 보내야 했다.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창문에 이마를 대고 바깥 풍경을 보던 유빈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선로에 갖다놓은 박스들 다 찢어지고 난리도 아니겠다. 진짜 엄청 쏟아붓네. 좀 멎지. 선녀님 빤쓰에 구멍이 났나…….”

“푸하하하! 선녀님 빤쓰래. 큭! 오빠, 완전 노인 말투.”

엎드린 채 온몸으로 매트리스의 쿠션을 느끼며 발을 동동거리고 있던 제니가 엉뚱한 지점에서 빵 터졌다.

침대와 깨끗한 변기, 그리고 지붕이 있는 장소에 너무 오랜만에 와봐서 어지간히 기분이 좋아졌나 보다.

그 옆에 나란히 엎드려 있던 보안관도 제니의 웃음소리에 반사적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큭큭, 우리 할머니도 그런 말 썼었는데.”

음? 침대 모퉁이에서 도롱도롱 졸고 있던 삼식이는 웃음소리에 깼다가 다시 베개를 끌어안고 입을 다신다. 신입도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입술 끝을 씰룩거렸다.

하아~ 유빈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참 좋기도 하겠다, 이 대책 없이 긍정적인 새끼들. 먹을 거라고는 배낭에 든 게 전부고, 비가 언제 멎을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물론 선로 위가 여기보다 더 낫다는 주장은 아니다. 거기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이보다 훨씬 더 심란한 꼴을 당했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그런 점들을 다 감안하더라도 코는 정말 고생을 하는 중이다.

좁은 여관방 안에 창문까지 닫고 모여 있으니 땀 냄새, 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누군가가 몸을 들썩일 때마다 썩은 수박에서 나는, 그런 냄새가 확확 퍼지며 후각을 파고들었다.

그롸아아아―!

멀리서 또다시 좀비들의 포효가 울려온다. 이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행진을 거르지 않을 만큼 놈들은 성실하다.

“삼식아, 삼식아…….”

신입이 자꾸 삼식이를 흔들어 깨운다. 담배를 피우려면 옥상으로 나가야 하는데, 이 깜깜한 밤중에 그 어두운 계단을 혼자 오르는 게 별로 내키지 않는 모양이다. 조명 하나 없는 복도는 귀신의 집처럼 으스스했다.

“음냐…… 너 피우고 와. 난 그냥 잘래.”

삼식이가 거절을 하자 초조해진 신입은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신입, 나랑 같이 가자. 어차피 바람도 좀 쐬고 싶었으니까.”

기대도 하지 않던 유빈이 나서주자 신입은 반색을 하며 플래시를 챙겼다.

“읏! 바람 진짜 장난 아니네. 이래서야 담배 피우는 것 같지도 않겠다.”

옥상 문을 열던 유빈이 주춤한다. 차가운 비와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우비 대신 머리에 덮고 나온 큰 비닐 봉투는 뒤집힌 채 미친놈처럼 춤을 추었다. 손으로 바람을 가리며 라이터를 켜던 신입이 툴툴거렸다.

“아, 씨발. 그냥 다른 방에서 피우면 안 돼? 빈방 존나 많잖아. 문 꼭 닫고 피울게.”

“냄새가 배서 안 된다고! 여기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불편해도 좀 참아.”

“전에 있던 동네에서는 방에서 피워도 뭐라고 안 했으면서 왜 갑자기 그래?”

“거기는 좀비들이랑 꽤 떨어져 있었으니까 그렇지. 여기는 바로 저기 큰길에 좀비들이 떼로 몰려다니잖아.”

마침 겨우 담배에 불이 붙어 이야기는 거기에서 일단락이 됐다. 신입은 찌푸린 얼굴로 담배가 젖지 않도록 보호해 가며 뻑뻑 빨아대는 데에 집중했다.

연기는 바람에 실려 큰길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그 정도라면 좀비들도 어디에서 이 연기가 시작된 것인지 모를 것이다.

녀석이 니코틴을 보충하는 동안 유빈은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봤다. 어제 만났을 때 태권소녀 일행에게서 굶주림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었다.

분명 이 여관 너머 어딘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 열 명 이상이 생활을 하던 아지트가 있을 거다. 식량과 음료, 그리고 좀 더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아지트.

과연 그게 어디일까…….

숨어 있던 녀석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기 위해 애를 쓰는 중이다.

그 애들은 좀비에게 신경을 쓰는 것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래서 늘 망을 보았던 거고, 또 그래서 미로 같은 피난처도 만들어뒀을 테지…….

가발 가게에서부터 여기까지는 그 비밀 통로를 잘 쫓아서 왔는데, 더 이상은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한 번 더 꼼꼼히 찾아봐야지…….

분명 어딘가에 다음 장소로 이어지는 비밀 경로가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아, 씨발. 깜깜하니까 괜히 후달린다. 혹시 저런 데서 좀비 새끼들이 뛰어내릴까 봐.”

신입이 길 건너의 건물을 플래시로 비추며 투덜거렸다. 터미널 부근답게 여관이 많아서 그 건물 역시 모텔이다.

불과 5층짜리 건물이지만 나지막한 2층 옥상에서 올려다보자니 까마득히 높게 느껴진다. 물론 거리가 좀 있기 때문에 저기에서 뛰어내린다고 해도 이곳에 닿을 리는 없겠지만.

“파, 라, 다, 이, 스 모텔.”

플래시로 비춰가며 건너편의 모텔명을 읽던 신입이 갑자기 재미있다는 듯 킥킥거렸다.

“큭큭, 야, 씨발. 근데 저기 3층이나 4층에서 보면 우리 있는 이 여관에서 X치는 거 고스란히 다 보였겠는데? 무슨 건물을 이렇게 마주 보게 지어놨냐? 그것도 모텔을. 민망하게시리. 큭큭큭.”

“누가 그걸 문 활짝 열어젖히고 하겠냐, 커튼 치고 하지. 봐, 저기도 다 커튼 쳐져 있구만. 담배 다 피웠으면 들어가자. 비 맞고 있으려니 춥다.”

건물 안으로 들어와 보니 보안관과 제니가 방 앞에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너희, 왜 그렇게 하고 있어?”

“삼식이 오빠가 자면서 자꾸 방귀를 뀌어서…….”

제니가 뭔가 미안한 표정을 짓는 동안에도 방 안에서는 뿌웅, 하는 소리가 울려 나온다.

것 봐, 제니야. 예전에 그 방귀, 그거 내가 뀐 거 아니었다니까. 저 새끼, 저게 범인이야……. 보안관은 잘 기억도 안 나는 일까지 끄집어내 자기변호를 하느라 열을 올렸다.

“야, 배낭만 가지고 나와. 저 새끼 놔두고 우리는 옆방으로 가자.”

미리 코를 막아 쥔 신입이 유빈의 등을 떠밀었다.

“그게 뭐 그렇게 유난 떨 일이냐? 어차피 아까부터 우리 땀 냄새도 장난 아니었는데 뭐.”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하며 대범하게 문지방을 넘던 유빈은 허겁지겁 달려가 창문을 열어젖혔다.

우와! 이 새끼, 이거. 제대로 뀌었잖아!

휘이잉―!

차가운 공기가 빗방울을 싣고 날아와 얼굴을 때린다. 갇혀 있던 공기가 한 바퀴 도니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엇, 차거! 뭐야아, 왜 창문 열어어~?”

삼식이가 얼굴에 튄 빗물을 닦으며 웅얼웅얼 볼멘소리를 한다.

그냥…… 환기 좀 시키려고 그래…… 라고 말하며 배낭에서 마실 것을 꺼내던 유빈은 딱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위화감을 느꼈다.

내가 조금 전에 한 행동 중에 부자연스런 뭔가가 있었다. 미처 깨닫지 못하고 넘어갔던 어떤 것…… 그게 뭐였지?

“젠장, 초코바만 잔뜩 넣어 왔네. 아까도 이거 먹었는데. 다른 거 있는 사람? 바꿔 먹자.”

삼식이도 주섬주섬 일어나서 배낭을 뒤졌다. 제니가 과일 맛 에너지 바를 건네준다.

“자요, 이거라도 먹을래요?”

“근데…… 이거, 암만 아껴도 내일 아침 먹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손가락 빨게 생겼는데?”

친구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유빈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인상을 썼다.

뭐였지? 뭐가 이상한 거지? 난…… 방에 들어와서 창가로 걸어갔었다. 그러고는 창문을 최대한 들어 올렸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게 다인데…….

아닌가? 뭔가 더 있었나?

유빈은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깜깜한 밤이라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과 이따금씩 불빛에 어른거리는 빗물들뿐이다.

번쩍―!

근처에서 번개가 치자 밖의 풍경이 아주 잠시 동안 훤하게 밝혀졌다.

그래봐야 마주 보고 선 파라다이스 모텔에 꽉 막혀서 다른 건 뵈지도 않는다. 여러 개의 창문과 내부의 짙은 색 커튼, 그리고 모텔 간판 따위가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이내 어둠 속에 묻혔다.

정말이네, 이 방 대실했던 사람들은 신경 좀 쓰였겠는데…… 라고 생각하며 멍하니 창문을 보던 유빈은 허벅지를 탁, 내려쳤다.

“그래! 맞아! 그거였구나! 이제 알았다!”

응? 플래시 주위에 옹기종기 앉아서 과자로 주린 배를 채우던 나머지 넷이 놀라 유빈을 쳐다보았다. 유빈은 얼른 옆방으로, 그리고 그다음 방으로 뛰어다니며 창문마다 플래시를 비춰봤다. 전부 마찬가지다.

“쟤 또 왜 저래? 야, 너 왜 그래? 무슨 일인지 같이 좀 알자.”

유빈이 미친놈처럼 복도를 뛰어다니자 보안관이 붙잡으며 묻는다. 유빈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커튼! 커튼이 없어! 이 방에! 이 방만 그런 게 아니라, 2층 전체가 다 그래! 뭔가 이상했는데, 그게 뭔지를 정확히 몰랐거든!”

잔뜩 흥분한 유빈과 달리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머지 넷의 반응은 별로 신통치 않았다. 이해를 하지 못한 것 같아 유빈은 설명을 덧붙였다.

“생각해 봐! 저기, 저렇게 다른 건물들이랑 마주 보고 있는데, 창문에 커튼이 없다고! 말이 안 되잖아! 여기 여관인데, 이런 데서 어떻게…… 그, 그, 그런 걸 하겠어? 알잖아? 다 들여다보일 텐데.”

제니 때문에 뒷부분은 얼버무렸다. 잠시 창문과 유빈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보안관과 제니가 거의 동시에 물었다.

“그래, 커튼이 없다는 건 알겠어. 그런데 그게 대체 뭘 의미하는 건데?”

어? 그, 그건…….

순식간에 흥분이 가라앉은 유빈도 눈만 멀뚱거렸다.

글쎄, 커튼이 없는 여관이라는 게 대체 뭘까?

“나는 알 것 같은데.”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명탐정 연기를 하던 삼식이가 입을 열었다.

“여기는…… 보여주는 걸 즐기는 취향의 마니아들 전용 여관이었던 거지.”

네 사람은 잠시나마 기대를 했던 걸 후회하며 각자 생각에 잠겼다.

경계, 미로, 비밀 통로, 그리고 이 여관, 커튼이 없는 방…… 외부 사람을 지독히도 경계하던 그 시선……. 그런데 왜 하필이면 가발 가게에서부터 여기까지는 한 번에 이어지도록 만들었을까…….

“우리가 용케 비밀 통로를 찾은 게 아니었네요.”

플래시로 건너편의 파라다이스 모텔을 비춰보던 제니가 중얼거린다. 비슷한 때에 답을 얻은 유빈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보안관은 아직도 이해를 못한다.

“낯선 사람이 뒤를 밟으면 이쪽으로 오도록 유도를 해놨던 거예요. 자기들이 빤히 보고 감시를 할 수 있는 장소로요. 바로 저기에서.”

파라다이스 모텔을 가리키며 제니가 말했다.

아하, 그래서 커튼도 다 떼어버렸구나! 보안관과 신입이 손바닥을 친다.

“그럼 저기가 걔들 아지트였다, 이런 말이야?”

“그럴 가능성이 높지. 적어도 중간 기지 정도는 될걸?”

파라다이스 모텔의 입구는 셔터도 내려져 있지 않고 유리문이 박살 나서 엉망이다. 다가가고 싶지 않을 만큼 불길하고 으스스하다. 엉망이다.

도로 외부와 코스트코 앞에 시체를 잔뜩 가져다 놓았던 것과 비슷한 수법이다. 자신들이 숨은 곳 앞을 일부러 훼손시켜 놓은 것이다.

“그렇다는 건, 어제 그 애들이 지금 저기에 숨어서 우릴 보고 있다는 의미? 경순이나 그런 애들이?”

삼식이의 얼굴에 반가운 기대가 스친다. 유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누가 있었다면 당연히 아까 우리가 부를 때 대꾸라도 했겠지. 아니면 어제처럼 시비를 걸었든가. 걔들은 다 잡혀간 것 같아. 그 헬리콥터 탄 놈들한테 말이야. 봐, 저 건물. 불빛 하나 안 새어 나오잖아.”

끄응~ 삼식이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나머지 넷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우리는 이제 내일 아침, 아니, 나아가서는 한동안 먹을거리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제니와 유빈의 추리처럼 저 모텔이 그 애들의 아지트라면.

“뭐하고 있어? 빨리 가방 챙기고 준비해.”

배낭을 메고 해머까지 든 보안관이 채근을 한다. 유빈은 망설였다.

“엇, 지금 가자고? 이렇게 깜깜하고 비도 많이 오는데? 내일 날이 밝으면…….”

“날 밝는 것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야, 바로 옆에 보물 창고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배를 곯아가면서 잠을 자자고? 딴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보자. 어두운 거는 이렇게 하면 해결되잖아.”

헤드 랜턴을 쓰는 보안관을 보며 신입이 걱정스러워한다.

“씨발, 그러다가 좀비 있으면 어쩌려고 그래? 위험하잖아.”

“그럼 넌 여기 있든가. 야, 그리고 좀비 없어. 있으면 너희 둘이 계속 옥상 들락거리면서 담배 뻑뻑거릴 때 벌써 튀어나왔어도 나왔겠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유빈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100퍼센트라는 확신이 없을 뿐.

음…… 유빈은 창밖을 내려다보며 잠시 고민했다. 비가 쏟아붓기 시작한 지 몇 시간 만에 길거리에는 찰박하게 물이 고여 있다.

내일 아침에는 당연히 더 높이까지 물이 차오를 것이고, 그러면 운신하기에 몇 배나 불편해진다. 여기에서 오래 머물 생각이 없다면, 더 나은 가능성을 찾아 가야 하는 게 맞다.

“그래, 가자. 대신 가봐서 영 아니다 싶으면 곧바로 이리 돌아오는 거다.”

“오케이, 오케이. 그거야 당연하지!”

보안관은 호언장담을 하지만, 혹시라도 다시 도망 와야 할 경우를 대비해서 삼식이와 제니, 신입은 정문 앞에 남겨두고 가기로 했다.

“계속 플래시를 비추고 있어. 그리고 우리 둘이 뛰어들면 곧바로 이걸 들어 올렸다가 내려줘. 뭐냐고 물어볼 것도 없어. 도망 오는 경우는 하나뿐이니까.”

제니에게는 플래시를, 남자 둘에게 정문 셔터를 잡고 있게 했다.

드륵, 드륵.

다행히도 셔터는 매끄럽게 작동한다. 자물쇠는 없지만, 드라이버 정도만 레일에 박아도 급한 대로 어느 정도 고정은 될 것이다.

둘 다 헤드 랜턴과 무기만 들고 배낭은 놓고 가기로 했다. 몸이 가벼운 편이 운신하기 좋으니까.

출발하기 전에 유빈은 한마디를 더 보탰다.

“음, 그리고…… 만약에 30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그때도 셔터를 내리…….”

“어휴!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그런 일 없다고요!”

제니가 조그만 손으로 얼른 입을 틀어막는다. 보안관도 유빈의 등짝을 쫙, 후려쳤다.

“맞아! 바로 요 길 건너로 가는 건데 요란 떨지 마! 하여간 걱정박사야! 가자.”

보안관에게 끌려 문을 나섰다.

드르르륵―

등 뒤에서 셔터가 내려지는 소리가 나자 갑자기 단절되는 기분이 든다.

첨벙첨벙. 발을 내디딜 때마다 물보라가 튄다. 벌써 물이 발목 근처까지 차올랐다.

“난리네.”

박살이 나 있는 유리문을 보면서 보안관이 중얼거렸다. 통 유리문이 아니라 삐죽삐죽 깨진 유리 조각이 위협적이다. 유리와 문틀 사이로 자빠진 냉장고 모서리가 튀어나와 있다. 보안관이 씩 웃는다.

“이걸 보니까 점점 확실해지는 것 같네. 이쪽으로 들어오지 말아달라, 이건가?”

현관이 ‘ㄱ’ 자로 꺾여 있어서 플래시를 비춰봐도 그 안쪽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보안관은 일단 문을 밀어봤다.

빠지직―

문이 움직이자 냉장고가 더 기울면서 유리 조각들을 깨뜨렸다. 하지만 아주 약간 뒤로 밀린 뒤, 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안쪽에서 냉장고가 버팀대 역할을 아주 충실히 하고 있는 모양이다.

끄응~ 보안관이 힘을 써도 안 된다면 그 방법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예 이쪽으로 당겨서 문이랑 같이 뜯자.”

바깥으로 돌출된 냉장고의 양쪽 끝을 잡고 둘이서 앞뒤로 조금씩 흔들다가 움직임이 조금 커졌다 싶을 때, 아래 방향으로 확 잡아당겼다.

빠지직―!

냉장고의 무게에 두 친구의 힘까지 더해지자 스테인리스 문틀이 휘고, 유리 파편이 튄다. 케블라 장갑이 아니었다면 진작 손이 작살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같은 동작을 서너 번 반복하니 진폭이 커졌고, 한 번 더 당기니 프레임과 경첩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드디어 문이 뜯어져 나온다.

끼이잉― 꽈장창!

보안관과 유빈은 얼른 뒤로 물러나 발을 피했다.

“뭐야? 무슨 소리야?”

뒤쪽에서 삼식이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맞다. 쟤들은 큰 소리가 날 줄 몰랐지……. 유빈은 밖으로 나가 알려줬다.

“막아놓은 게 넘어진 소리야! 걱정 안 해도 돼!”

보안관과 유빈은 자빠진 냉장고를 타 넘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관 내부도 지저분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자빠진 화분에서 흘러나온 흙들과 말라 죽은 화초, 시뻘건 얼룩 따위로 가득하다. 위쪽에는 이가 듬성듬성 빠진 주렴도 걸려 있어서 한결 더 으스스하다.

게다가 이 지독하게 쏟아붓는 비까지 더해지니 스산함은 몇 곱으로 늘었다. 아지트로 점찍지 않았다면 애초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을, 그런 분위기였다.

“거기, 발 조심해. 그나저나 이렇게 해놓고 원래 있던 애들은 어떻게 왔다 갔다 다녔지?”

“여긴 아예 안 쓴 것 같은데, 안에 들어가 보면 뭔가 뒷문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장애물들을 대충 한곳으로 몰아놓고, 신경 거슬리게 하는 주렴도 통째 뜯어내 버렸다. 그렇게 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다.

“아! 이거, 철문이네. 애들한테 큰 소리 날 거라고 알려줘. 또 놀랄라.”

보안관이 해머를 꽉 잡는다. 손잡이와 자물쇠를 통째로 박살 내서 열 심산이다. 유빈이 물었다.

“근데, 그거 잠기기는 한 거야?”

“응? 아니, 확인은 안 해봤는데. 그렇지만 당연히 잠가뒀겠지…….”

그렇게 말하며 보안관은 손잡이를 돌렸다. ‘어? 의외로 돌아간다?’ 하는 표정의 보안관이 문을 당겼다. 그때였다. 근래에는 들은 적 없는 종류의 소음이 귀를 때렸다.

삐융~! 삐융~! 삐융~! 위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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