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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둥지 (1) (176/449)


176. 둥지 (1)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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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에게 그 상황은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리게, 그리고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뻗어 나온 좀비의 손, 그 회색으로 부패한 손이 K―2의 레일을 꽉 움켜쥔다.

“이런!”

진우는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좀비는 진우의 소총을 창문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그 바람에 진우는 총을 놓쳐 버렸지만, 어깨에 걸린 멜빵 때문에 총과 함께 끌려 들어갔다.

“아아악!”

창틀에 남아 있던 유리 파편이 팔의 살갗을 찢으며 꿈속처럼 멍하던 진우의 정신을 현실로 되돌려 놓는다.

진우의 입에서는 비명이 터졌다. 좀비는 계속해서 총을 잡아당기고, 그렇게 한 번씩 놈이 힘을 줄 때마다 유리는 더 깊숙하게 박혀온다.

“끄으으으윽!”

어떻게든 총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진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스스로 멜빵을 풀었다.

쿵!

팽팽히 당겨지던 무게가 사라지자 좀비는 K―2를 움켜쥔 채 바닥에 뒹굴었다.

그롸아아―

건물 안에 있던 다른 좀비들의 포효가 마치 패배자를 조롱하는 노래처럼 울려 댄다.

“안 돼!”

총을…… 내 총을 빼앗겼다…….

진우는 온몸의 피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실탄을 확보하려고 그렇게 죽을 애를 썼는데 이제 그걸 넣고 발사할 무기가 없다!

되찾아야 해…….

진우는 어린아이처럼 단순해져서 겁먹은 눈으로 상황을 부정했다. 하지만 정들었던 K―2를 되찾는다는 건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에게는 무기가 없는데, 저 쌀가게 안에는 좀비들이 우글거린다. 권총의 탄창 안에 든 여섯 발로는 저놈들을 다 죽일 수 없다.

절망적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쪽창의 크기가 작아 좀비들이 곧바로 뒤쫓아오지 못한다는 정도뿐이었다.

“야이, 씨발! 씨발! 으아아!”

분을 이기지 못해 진우는 건물 벽을 걷어차다가 뒤돌아서 달아났다.

총에 달아놓은 플래시마저 사라진 지금, 시야는 더욱 좁아졌고 아무것도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저 무작정 빗속을 뛰어 도망가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총…… 권총…….”

진우는 미친 사람처럼 웅얼거리며 건빵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1킬로그램의 무게가 너무 가벼워서 발가벗겨진 것 같은 박탈감이 밀려든다.

하지만…… 아직, 아직 싸울 수 있다! 사방이 막힌 좁은 장소까지만 이걸로 뚫고, 들어오는 놈들의 머리를 하나씩 후려치면!
진우는 자신을 다그쳤다.

그러나 그건 막다른 현실을 부정하려는 발버둥일 뿐이었다. 그 증거로 진우는 홀린 듯 조그만 구멍가게를 향해 뛰고 있었다.

그곳에는 막힌 공간 따위는 없다. 그저 마지막 한잔의 쾌락을 위한 음식과 술에 본능적으로 이끌리고 있는 것이다.

탕― 탕― 탕―!

진우는 뒤쫓아오는 좀비들을 향해 권총을 쏘았다. 하지만 모두 빗나가 버렸다. 애초에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이렇게 태풍이 부는 밤에 원거리의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가 아니다.

세 발을 허비하고, 이제 세 발이 남았다. 구멍가게의 부서진 유리문 앞에는 좀비의 시체가, 시체를 넘어 안으로 한 발을 디딘 곳에는 진득하게 굳은 붉은 피가 잔뜩 흩뿌려져 있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진우는 깨진 유리문을 닫고 그곳을 주변에서 끌어온 상품 박스들로 막았다. 가슴 높이까지 박스를 쌓으려는 순간, 문 안으로 좀비의 얼굴이 들어왔다.

찌익―!

유리에 가죽이 찢겨 나가는데도 전혀 망설이거나 주저하는 기색이 없다. 오직 살아 있는 사람의 신선한 살을 뜯어 먹겠다는 일념뿐이다.

“꺼져!”

진우는 놈의 눈에 바짝 대고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펑―

놈의 눈이 뚫리고, 주변의 가죽이 가스의 압력 때문에 찢어지는 것과 동시에 뒤통수 쪽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기면서 초록색 뇌수들을 흩날린다.

끄륵―

기이한 소리와 함께 좀비의 시체가 뒤로 허물어진다. 진우는 다시 박스들을 쌓고, 카운터의 탁자를 끌어와 덧댔다.

찰칵―!

카운터에 쌓여 있던 일회용 라이터들 중 하나를 집어 켜는 순간, 암흑 속에 묻혀 있던 조그만 가게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닥에는 온갖 물건들이 널려 있어 이 안에서 얼마나 지독한 난리가 났는지를 보여준다. 깨진 병, 뒹구는 깡통, 과자 봉지와 라면들…….

시선을 위로 올렸다. 사방에 피가 튀지 않은 곳이 없지만, 음료용 쇼 케이스 주변이 특히 심하다.

- 우리 같이 마실까?

쇼 케이스에 붙은 핑크 펀치의 포스터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제니는 도도하게 콜라 캔을 내밀고, 그 뒤에 다소곳한 테라가 슬쩍 미소를 짓는다.

기억난다, 저 사진…….

진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바람에 낡은 그 포스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목전에 둔 삶에 대한 미련이 더 강해지고 커졌다.

쿵―

문이 밀쳐지며 가장 윗단의 상자가 굴러 떨어져 내린다.

쿵―! 쿵―!

카운터 탁자도 조금씩 밀리고 있다.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지만, 저 밖에는 그의 살과 피를 맛보고 싶은 좀비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남은 총알은 두 발. 아니,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총알은 꽤 많지만, 그중에서 발사가 가능한 건 단 두 발뿐이다.

이게, 이게 뭐야, 씨발!

조금 전 획득한, 이제는 아무 쓸모도 없어진 탄창을 주무르면서 진우는 이를 바득 갈았다.

그롸아아아!

또다시 가게 안으로 좀비의 팔이 비집고 들어왔다. 썩은 팔이 박스를 붙잡고 흔들어 댄다.

잘라 버릴까?

진우는 대검을 빼 들었다가 더 상대하기도 싫어져서 뒷걸음질을 쳤다.

와자작!

병 조각이 밟혀 부서지며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인 모양이다.

칼인가, 총인가.

진우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총이 편하겠지만, 마지막 실탄을 놈들이 아닌 자신의 머리를 향해 쏜다는 게 좀 걸린다.

꼭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아서…… 아무리 그래도 칼은…… 한 번에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다.

“후우~ 씨발, 잠깐만 기다려. 생각 좀 하자.”

가게 문이 흔들릴 때마다 빨리 결정하라고 강요하는 내부의 목소리에 진우는 말미를 요청했다.

- 킥킥킥, 그것 봐. 그러게 내가 뭐랬어? 아까 터널에서 그 새끼들 쏴버리라고 했잖아. 거기에서 실탄이랑 다 챙겨서 튀었으면 이런 일은 없지. 등신, 남 생각 하다가 제가 뒈지게 생겼네. 큭큭큭.

악마의 목소리는 한껏 신이 나서 설쳐댔다. 진우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보고 싶던 얼굴들이 어둠 속에 떠오른다. 그걸 실제로 보지 못하고 이렇게 끝나야 한다는 게 너무 분하다.

쿵―!

또다시 박스가 나뒹군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문이 열릴 것이다.

“까불지 마, 이 개새끼들아! 한 잔만 하고 결정할 테니까!”

진우는 쇼 케이스 쪽으로 걸어가서 유리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늘 마시던 브랜드의 소주를 집어 들었다.

열린 병뚜껑이 떨어지면서 또르르 쇼 케이스와 진열대 사이로 굴러 들어갔다.

인생 마지막의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그 굴러가는 뚜껑을 눈으로 쫓던 진우는 자신이 본 걸 믿을 수가 없었다. 틈새에 기대 세워져 있는 것!

K―2!

“진짜?”

진우는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이 감촉!

틀림없이 K―2다. 이 여름 내내 그가 끌어안고 다니던 것과 똑같은 총이다!

철컥!

탄창은 실탄으로 가득하고, 심지어 작동하는 야간 조준경까지 부착되어 있다.

“……이게 왜?”

K―2의 안전창치를 풀면서도 진우는 자신에게 허락된 이 행운이 믿기질 않았다.

설마…… 좀 전에 마신 소주가 벌써 확 돈 걸까? 그래서 이런 헛것을 보는 걸까? 아니, 아무리 뱃속에 든 게 없다고는 하지만 겨우 소주 한두 모금에…….

툭. 그때, 발에 채인 뭔가가 어지럽게 널린 피투성이 과자 봉지 사이를 비집고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뜯긴 손이다. 조금 전, 불을 지른 집에서 만났던 손 없는 병사가 떠올랐다.

그래, 그놈의 총이었구나. 멍청한 놈이 총을 구석에 세워두고 소주 박스를 양손으로 들다가…… 총을 몸에서 떼어놨다고? 어지간히 고문관 같은 놈…….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생각이 쓸데없는 곳으로 번져 갈까 봐 진우는 얼른 고개를 젓고 이를 악물었다. 살 수 있다. 이제 싸울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진우는 가게의 입구로 걸어가면서 왼손으로 진열대의 물건을 챙겼다. 생수 두 병과 팬티스타킹, 번데기 캔 두 개.

마음 같아서는 가지고 싶은 것들 천지지만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박스가 흔들리는 유리문 앞에서 진우는 K―2의 레일에 달린 플래시를 켜고 머릿속으로 빠르게 작전을 짰다.

흔들흔들. 바깥의 좀비가 쿵쿵거리며 몸을 부딪쳐 올 때마다 박스로 만든 간이 바리케이드가 춤을 춘다. 그리고 몇 초 후, 박스들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좀비 한 마리가 그 틈으로 상체를 쑥 집어넣었다.

크롸아악―

박스 틈으로 몸을 집어넣은 좀비가 진우를 보며 발광을 한다.

쿵!― 끼기긱―!

놈이 체중을 실을수록 문의 아래쪽을 고정시키고 있던 탁자가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곧이어 또 한 마리가 머리를 쑤셔 넣는다. 문이 충분히 벌어진 걸 확인한 진우는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근거리여서 빗나갈 일도 없다. 좀비는 뼛조각을 흩뿌리며 뒤로 날아갔고, 진우는 곧바로 두 번째 놈의 머리도 날렸다.

끄롸아아아!

뒤로 날아가는 좀비의 단말마와 새로 달려드는 놈들의 포효, 그리고 총성이 겹쳐져 가게 내부를 흔들며 메아리친다.

휘이이―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놈들의 악취가 가득 섞여 있다.

서둘러 입구의 놈들을 정리한 진우는 진열되어 있던 신문 뭉치를 들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불이 어느 정도 타올랐을 때, 부탄가스가 진열된 쪽을 향해 던졌다.

타닥― 타닥―

신문은 제법 화력을 뽐내면서 부탄가스의 표면을 검게 그을렸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과 함께 더 큰 불이 날 것이다.

진우는 가게를 빠져나와 원래 목표로 삼았던 3층 건물을 향해 뛰었다. 몇 마리가 앞을 가로막아대도 이젠 총이 있다. 총이 있는 한 그쯤은 별 장애가 되지 않는다.

투투둑― 투두둑―!

남의 총이라서 영점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삼점사로 두 다리를 날리는 것 정도는 문제없다. 하체를 잃은 좀비들은 곧바로 다시 기어서 그의 뒤를 쫓았다.

휘이이―!

차가운 비바람이 시야와 호흡을 어지럽히며 얼굴을 때린다.

농협 마크가 찍힌 3층 건물은 공공건물답게 문이 크고 많았다. 장기적인 기지로 삼으려면 문제가 되겠지만, 어차피 3층에서 오늘 밤 하루만 쓸 거니까 괜찮다.

농협 건물 1층에서 서성거리던 좀비들이 낌새를 느끼고 돌아보기도 전에 진우의 총알이 놈들의 뒤통수를 관통하며 탄착군을 이루었다.

총알을 아끼는 것보다 속도를 높이는 게 더 중요했다. 진우는 야시경을 눈에 바짝 붙인 채 시체들이 널브러진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롸아아!

뒤쪽에서는 쫓아오는 좀비들의 아우성이 폭풍우를 뚫고 들려온다.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돌아설 여유도, 건물 안에 놈들이 몇 마리나 숨어 있는지를 살펴볼 겨를도 없었다. 지금 빨리 3층에 도달하지 못하면 포위되고 만다.

진우는 이 안에 있던 좀비들이 불에 이끌려 나갔기를 바라며 곧바로 계단을 올랐다. 녹색으로 변환돼서 표시되는 좁은 계단과 복도. 2층에 도달했을 때, 자판기 뒤에서 한 마리가 뛰쳐나온다.

투투둑!

목 위를 날려 버린 좀비의 시체를 지나쳐 다시 한 층 위로 올라갔다. 사무실 서너 개가 보인다.

사거리 쪽, 그중에서도 구멍가게 방향으로 창문이 난 방을 찾아 들어간 진우는 쇠문을 잠갔다. 커다란 소파가 두 개나 있는 걸로 보아 여기가 제일 높은 사람이 쓰던 방인 모양이다.

입구에 받쳐 두기 위해 소파를 끌던 진우의 눈에 깜깜한 사무실 한쪽 구석에 있는 뭔가 커다란 덩어리가 들어왔다. 웅크리고 있는 비대한 사내이다.

“으앗!”

진우는 깜짝 놀라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하지만 이내 그 사내의 몸이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야간 조준경을 통해 보이는 사내는 혀를 빼문 채 눈은 위로 치뜨고 벽에 기대 죽어 있었다.

그의 목을 꽉 졸라맨 넥타이가 어디에 연결된 것이 아니라,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는 게 특이하다. 자살이 아니라 누군가 혼란을 틈타 죽여 버린 것이리라.

그 살인의 원인이나 이유가 어떻든 간에 지금 진우에게 중요한 것은 사내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관심을 끊은 진우는 소파를 끌어다가 입구에 받치고 가게에서 집어 온 팬티스타킹을 꺼내 여전히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팔을 꽉 졸라 묶었다. 그러고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쐐에―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건 여전했지만, 그 차가움조차도 즐거운 자극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다시 얻은 생명이나 마찬가지니까.

“너부터 가자.”

생수병과 탄창을 창가 근처 바닥에 나란히 세워둔 진우는 총구를 바깥으로 겨누고 첫 번째 목표를 찾았다. 영점을 조절하려면 조금 멀리 있는 놈이 좋을 것이다.

타앙―

첫 발은 놈의 오른쪽 어깨를 날렸다. 불길에 홀려 가게 쪽으로 걷던 녀석은 길바닥 위에 내동댕이쳐졌다.

“조금 아래로 처지나?”

조절을 마칠 때쯤 어깨가 날아간 좀비도 다시 몸을 일으켰다. 진우는 두 번째 발을 쏘았다. 좀비의 왼쪽 머리가 움푹 파여 날아간다. 겨냥했던 것보다 미세하게 왼쪽으로 치우쳤다.

다섯 발째부터는 그가 원하는 곳에 총알을 꽂아 넣을 수 있었다. 좀비들은 불이 난 가게와 진우가 위치한 삼 층 건물 사이로 사방에서 꾸역꾸역 모여 들어온다.

진우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방아쇠를 당기고 탄창을 교체했다. 찢어진 팔이 저리거나 어지러워지면 잠시 벽에 기대 쉬면서 물을 마시고 짭짤한 번데기를 씹었다.

“훗, 후후훗…….”

입안에 남은 번데기를 우물거리면서 다시 좀비의 머리를 겨눌 때, 실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도로에 가득 쓰러져 있는 시체들. 자신의 손으로 저렇게나 끔찍한 꼴을 만들어가면서 뭘 먹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게다가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같은 공간 내에도 목이 졸려 죽은 사내의 시체가 있는데, 그게 거의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삼식이가 똥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밥맛이 떨어지던 예전의 그가 더 이상 아닌 것이다.

‘나는 뭔가를 잃어버린 걸까?’

방아쇠를 당기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퍼억―

기어서 농협 건물로 다가오던 좀비의 정수리가 산산조각 난다. 빗물 웅덩이에 떠다니는 뇌 조각을 빤히 보면서도 여전히 입안의 번데기를 토해내지 않았다.

다시 총구를 틀어 그 웅덩이 바로 옆을 뛰어오던 놈의 이마에 총알을 꽂았다. 총탄에 꿰뚫린 좀비는 목이 꺾인 채 옆으로 쓰러졌다.

‘뭔가가 끊어지긴 했어. 그게 뭐냐고 묻지는 마. 그건 나도 정확히 표현할 수 없으니까.’

이번에는 스스로에게 대답을 해줬다.

타앙―

입구를 향해 뛰어들려던 녀석의 대갈통이 터졌다. 세 번째 탄창이 다 소진됐다. 탄창을 갈아 끼우면서 진우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직 살아 있고 탄창은 세 개나 더 남았다. 그 대신에 내 안의 뭔가를 조금 덜어내 주었다고 한들 그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타앙―

다시 또 한 놈의 머리가 날아간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쏘아댔는지 모른다. 바닥에 탄피들이 잔뜩 굴러다니고, 좀비들을 거의 다 청소했을 때에는 그 지독했던 비바람도 슬슬 잦아들 기미를 보였다.

사거리를 아무리 노려보고 있어도 더 이상 새로운 좀비가 나타나지 않게 되자, 진우는 비로소 창문을 닫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눈은 가물거리고, 계속해서 찬 비바람과 맞섰던 머리는 핑핑 돌았다. 두 팔이 저리고, 쪼그려 앉아 있던 무릎은 감각이 없다. 유리 조각에 찢어진 팔도 불에 댄 것처럼 화끈거렸다.

쉬고 싶다. 저 푹신해 보이는 소파 위에 누워서 아주 깊게 잠이 들고 싶다. 하지만 그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아직 한 가지 더 남았다.

끼이익―

소파를 받쳐 둔 채 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본다. 만약 밖에 좀비가 서성이고 있다면 곧바로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조용했다. 진우는 소파를 넘어 복도로 나왔다.

텅 빈 계단을 따라 내려와 거리에 발을 내디뎠다.

그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든 수많은 좀비들의 시체가 널려 있는 거리로. 파인 곳마다 고여서 흐르는 빗물을 따라 뼛조각과 살점들이 부유하고 있다.

황량한 바람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다. 가게에서는 마지막 불꽃의 연기가 검게 피어오르는 중이다.

진우는 어두컴컴한 거리를 횡단해서 쌀가게 정면으로 갔다. 문은 스테인리스 파이프 재질의 셔터가 내려진 채 단단히 잠겨 있었다.

콰창!

가게 안에 갇혀 이 싸움에 참전하지 못했던 좀비들이 분하다는 듯 셔터를 두들긴다. 진우는 가게 안쪽으로 플래시를 비췄다. 그러고는 놈들의 썩어버린 눈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 총 찾으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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