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Long and Winding Road (5)
(175/449)
175. Long and Winding Road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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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Long and Winding Road (5)
2022.02.22.
“소주…….”
방으로 돌아가 소주 팩을 들었다.
취해 버리면 어쩌지?
진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팩의 주둥이를 찢고 크게 한 모금을 들이켰다.
달큰하면서도 뜨거운 기운이 식도를 지나 뱃속까지 확 훑고 내려간다. 이제 조금은 열이 날 것이다. 더 마시고 싶은 유혹을 꾹 눌러 참고 진우는 얼굴을 문질렀다.
탄창 두 개가 더 생겼다고 해도 여전히 그는 불리한 입장이다. 쓰러뜨려야 할 좀비가 몇 마리인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칠흑 같은 어둠이 너무 두렵다.
슥, 진우는 플래시를 붙인 총구를 전방의 허공에 비춰보았다. 아주 약한 빛의 원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 힘을 잃어서 불과 십 미터 앞만 해도 형체를 분간하기 어렵다.
좌우로 총구를 움직여 봤다. 광원의 지름은 대략 4~5미터. 그 외의 부분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좀비들은 빛과 상관없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 훤히 안다. 더럽게도 불공평한 싸움이다.
“차라리 여기를 지키면서 방어를 할까?”
진우는 고개를 돌려 집의 구조를 살폈다. 시골집답게 개방적이다. 담은 낮고, 창문은 사방으로 뚫려 있어서 안전한 방향이 하나도 없다.
맑은 날이었다면 소리로라도 좀비들이 달려드는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겠지만, 이 폭풍우 속에서는 그것마저 어렵다. 혼자서 여기를 지키며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삼척 시내에서 분대원들과 치렀던 전투가 떠오른다. 그때, 순식간에 뛰어드는 규모 삼의 좀비들을 아무 희생 없이 저지할 수 있던 것은 놈들이 한 방향에서만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래, 한 방향으로 몰아야 해.”
말은 쉽지만 방법은?
진우는 자신이 지금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짚어봤다. 그렇게 하면서도 끊임없이 주변을 돌아보고 혹시라도 몰래 접근하는 좀비들은 없는가를 경계해야 했다.
입은 바짝바짝 마르고, 간만에 술맛을 본 혀끝에서는 자꾸만 소주 한 잔을 더 달라는 유혹을 보낸다.
“불, 불을 좋아해, 이 새끼들은.”
불을 피웠다 하면 놈들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러니 여기에 있는 놈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 이 집에 불을 지르자. 그러면 놈들이 그걸 보고 달려오겠지.
나는, 나는…… 마을 입구의 다리 부근에 서 있다가 놈들이 몰려오면 원거리에서 하나씩 처리하면 된다. 불이 주변을 환히 밝혀줄 테니 시야도 어느 정도 확보가 될 거다.
혹시라도 내가 가진 실탄의 수보다 놈들이 많으면, 그때는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산으로 도망가자…….
생각을 정리한 진우는 성냥을 집어 불을 긋고 그걸 다시 통 전체에 옮겨 붙였다.
화르륵―
성냥 수백 개가 동시에 발화하면서 매서운 기세로 타올랐다.
타탁거리며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성냥 통을 이불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집주인이 고이 모셔두었던 각종 청구서와 영수증들을 뿌렸다.
불은 금방 눅눅한 습기를 날리고 종이를 잡아먹으며 몸집을 키웠다. 벽에 걸려 있던 허름한 옷가지들도 던져 넣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불길은 벽과 이불을 타고 번지기 시작했다.
“좋아.”
비바람에 꺼지지 않을 만큼 확실하게 불이 자리 잡은 것을 확인한 진우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소주 덕인지, 아니면 불에 살짝 덴 것인지, 비로소 얼굴에 따뜻한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이제 놈들이 불을 보고 달려오기 전에 공터를 지나서 다리까지만 가 있으면…….
진우는 대문을 열기 위해 휘어진 자물쇠를 억지로 빼봤다.
빡빡해서 도무지 움직일 생각이 없다. 문틈에 낀 좀비를 밀쳐 버리고 경첩을 바로 하기 전에는 대문을 여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휘이이잉― 쏴아아아―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 때문에 고개를 똑바로 드는 것조차 어렵다. 좀비를 밀어 치려면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떼고 두 손을 동원해야 한다.
차라리 담을 짚고 넘어갈까?
진우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씨발…….”
담장 위를 꽉 잡고 있는 시커먼 손들을 보니 심장이 멎는 것 같다.
어느새!
진우는 손전등으로 담장을 비추며 뒤로 물러섰다. 손이 많다. 하나, 둘…… 적어도 열대여섯 마리는 된다.
쾅―
또 다른 좀비들이 문 쪽으로 몰리면서 군인 좀비의 시체가 끼워진 대문이 격하게 흔들린다.
도대체 밖에 몇 마리나 와 있던 거냐?
“후우~ 후우~”
진우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등 뒤에서는 한창 기운이 오른 불길이 활활 바람을 타며 열기를 뿜어내고, 앞쪽에는 좀비들이 쳐놓은 벽이 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허술한 시멘트 벽은 부딪쳐 오는 좀비들을 이기지 못하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진우는 젖은 소매로 얼굴을 막고 빨간 화염이 날름거리는 마루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뒤쪽의 골목으로 난 창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철썩!
물웅덩이 위로 떨어진 진우는 벌떡 일어나 총구를 좌우로 돌렸다.
“하아~ 하아~”
좁은 골목 안에서 바람은 돌풍이 되어 있었다.
쐐애애애앵―
바람 소리가 고막을 찌르고 지나며 매캐한 연기를 함께 안겨준다.
“쿨럭! 쿨럭!”
한 번 들이마신 것뿐인데 가슴이 터지는 것처럼 괴롭다.
차라리 불을 지르지나 말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이제 여기에는 더 머물 수 없다. 진우는 새로운 계획을 세울 틈도 없이 무작정 뛰어야 했다.
탁탁탁탁―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총구가 흔들리고, 그 움직임에 맞춰 손전등의 불빛도 좌우로 흔들린다. 한 지점을 똑바로 보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어서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두렵다. 그냥 무작정 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좁은 길, 양쪽으로 허술한 시멘트 담이 죽 늘어서 있는 미로 같은 골목을 달리면서 진우는 자신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젠장! 이게 뭐야! 작전을 짜지 않은 것만도 못해졌잖아! 멍청한 새끼! 그걸 계획이라고!”
번쩍!
벼락이 부근에 내리꽂히는 순간, 갑자기 멀리까지 전방이 훤하게 밝아졌다. 과장된 음영의 파란색 조명 아래 일군의 좀비들이 섬뜩한 모습을 드러냈다. 골목 끝에서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그롸아아아―!
“으아아아!”
진우는 멈춰 서서 조준을 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툭― 투둑― 투둑―
순식간에 네 마리의 좀비가 머리를 잃고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총알을 낭비했지만, 그래도 이 비바람이 부는 상황 속에서 꽤나 선방했다. 뒤이어 달려오는 놈들이 자빠진 동료의 몸뚱이를 짓밟고 뛰어오른다.
진우는 뒷걸음질을 치며 놈들의 머리에 5.56㎜탄을 꽂아 넣었다.
투투툭― 투두둑― 투둑―
아홉 마리째 좀비를 잡았다는 기쁨보다 순식간에 탄창의 반을 넘게 비웠다는 사실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자꾸 뒤쪽을 돌아보게 된다. 혹시라도 협공을 당하면 끝이다. 진우는 그의 오른쪽 무너진 벽 내부를 비춘 뒤,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창고를 거쳐 주방으로, 주방에서 다시 마루로, 마루에서 내려와 반파된 대문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그와아아아―
두 번째 집에 들어섰을 때, 유리로 된 마루문을 깨고 얼굴이 썩어가는 좀비가 달려들었다. 마치 플래시의 광원 안에 갑자기 나타난 귀신 같다. 너무 가깝다!
투투투두둑―
진우는 앞뒤 계산하지 않고 K―2를 연사했다. 좀비의 머리가 엉망으로 뚫리고, 목뼈가 박살 나 사방으로 튄다.
어깨 위로는 전부 산산조각 난 좀비의 시체가 발치에 쓰러지기도 전에 진우는 돌아서서 그 집을 뛰쳐나왔다.
썩어가는 돼지와 닭의 시체가 뒹구는 우리 몇 개를 지나고, 무너진 장작더미를 뛰어넘었다.
그렇게 코너를 꺾어가며 서너 집을 횡단하고 나니 방금 전 그를 쫓던 좀비들로부터 벗어나기는 했으나, 이제는 방향감각이 얽혀서 자신이 어디를 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하아~! 하아~! 여긴…….”
주변에 길고 넓게 늘어선 것은 온통 찢어지고 색이 바래 버린 비닐하우스들. 그리고 네 시 방향 하늘은 진한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다.
그건 자신이 맨 처음 들렀던 집이 타오르면서 주위를 밝히는 빛이리라.
저기에 몇 놈이나 모여 있는 걸까?
진우는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휘이이이이― 위이이―
모든 소음을 삼켜 버린 매서운 바람 소리 때문에 좀비들의 포효가 들리지 않는 게 너무 큰 변수가 되었다.
놈들이 어디에 얼마나 모여 있는지 도대체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돌풍이 몰아칠 때마다 비닐하우스의 찢어진 비닐들이 하얀 소복처럼 나풀거린다.
진우는 미친 사람처럼 바쁘게 손전등을 움직여 혹시 이 어둠 속에 좀비가 숨어 있지 않은지를 살폈다. 그러면서 동시에 조금 전 자신이 도망 나온 그 골목길도 돌아봐야 했다.
“읏!”
눈을 때린 빗물에 진우는 얼굴을 찡그렸다. 거센 비 때문에 고개를 똑바로 든 채 전방을 보는 것마저 힘이 든다.
그런 상황에서 비닐하우스 내부는 꽤나 유혹적이었다. 비도, 바람도 맞지 않고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너무 숨이 차서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모르는 동네를 헤매고 다니는 것보다는 차라리 바둑판 모양으로 배치된 이 비닐하우스 밭에서 기다리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
초조한 마음과 괴로운 육체는 진우를 유혹한다. 그리고 진우는 유혹에 넘어가 개중 가장 멀쩡한 형태로 남은 비닐하우스 안에 몸을 숨겼다.
“하아~! 하아~ 우웨엑!”
주변이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구토가 올라왔다. 계속 너무 열심히 뛰었고, 스트레스가 심했다.
뭉개진 채 위액에 섞인 꽁치를 한 무더기 토해낸 다음에야 진우는 겨우 숨을 쉴 수가 있었다.
젠장! 젠장!
눈가에 맺힌 눈물과 입가 주변의 토사물을 훑어내고, 진우는 자신의 뺨을 쫙쫙, 두들겼다. 계속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죽는다.
일단 거의 다 빈 탄창부터 갈아 끼웠다. 궁지에 몰렸을 때 탄창을 교환하다가 맥없이 물려 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작전을 바꿔야 한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다시 확인했듯이, 돌파는 전혀 경제적인 전술이 아니다.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소모하고, 실탄도 필요 이상으로 낭비하게 된다.
원거리에서 저격했다면 지금 쓴 탄의 절반만으로도 똑같은 수의 놈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게다가 너무 위험하다.
“높은 건물…….”
진우는 찢어진 비닐 틈으로 밖을 내다보며 마을의 그림자 중에서 제일 높은 곳을 찾았다.
그냥 단순히 지붕 위에 올라서는 건 안 된다. 전투가 길어질 경우, 야산에 숨어 있는 것과 똑같이 비바람을 맞으며 체온을 잃기 때문이다.
“저긴가…….”
11시 방향. 다 고만고만한 낮은 집들 사이에 그나마 조금 더 우뚝 솟은 3층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거리가 가늠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맨 처음 그가 불을 질렀던 집보다는 가까워 보인다. 게다가 직선으로 뚫린 도로만 따라가도 된다.
가볼까?
한 발짝을 내디딘 진우는 흠칫 놀라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분명…… 주변에 뭔가가 있다. 비닐을 두드리며 쏟아져 대는 빗소리와 바람 소리에 가려져 있어 몰랐지만, 목덜미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그런 것이…….
“어디야? 응? 어디냐고?”
진우는 총을 어깨에 바짝 붙인 채 사방을 둘러봤다. 손전등의 불빛은 비닐하우스에 막혀 밖을 비춰주지 못한다. 지금 저기 어른거리는 그늘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인가, 아니면 좀비인가.
그롸아아아!
습격은 6시 방향에서 왔다. 비닐에 축축하게 젖은 손 모양 두 개가 찍히고, 사람 얼굴의 윤곽 그대로 밀린 비닐이 안으로 쑥 들어온다.
“죽어!”
진우는 비닐을 찢기 위해 발버둥 치는 놈을 향해 K―2를 발사했다.
찌이이익―
초록색 뇌수가 가득 튀며 비닐은 맥없이 찢어졌고, 머리 위쪽이 박살 난 좀비의 시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찢어진 틈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좀비가 연달아 뛰어들었다. 진우는 더 상대하지 않고 문밖으로 달아났다. 이렇게 좁은 곳에서 난사를 해가며 일일이 대응했다간 한도 끝도 없다.
쏴아아아―
비닐하우스를 벗어나자마자 매서운 폭우가 그를 반긴다. 진우는 조금 전 보아두었던 건물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3시 방향과 9시 방향에서 그를 발견한 좀비들이 달려오는 것이 얼핏 스쳐 보였다. 뒤쪽의 비닐하우스와 씨름을 하고 있던 좀비들도 곧 뒤를 쫓을 것이다.
그리고 진우는 지금까지 사람보다 느리게 달리는 좀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뿌리칠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은 자꾸 그에게 돌아서서 난사라도 하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정작 3층 건물을 점거한 뒤에 제대로 싸울 실탄이 없게 된다.
지금 그가 해야 하는 일은 최대한 빠르게 저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 문을 잠그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그게 가장 생존 가능성을 높여줄 방법이니까.
쨍그랑!
뒤쪽에서 유리창이 박살 나는 소리가 울리며 진우의 초조함을 더해준다. 분명 좀비가 몸을 던진 것일 테지. 그래도 진우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롸아아아―
앞을 막아선 채 달려오는 좀비 세 마리.
툭― 툭― 투둑―
진우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놈들의 머리에 차례로 총알을 박아 넣었다.
네 발. 그래도 준수해. 아직은 승산이 있어.
진우는 계속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사거리는 치열한 전투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었다.
수류탄이 터졌는지 움푹 팬 도로, 벽 전체에 걸치다시피 길게 나 있는 탄흔, 그리고 웅덩이에 떨어져 있는 조각난 몸뚱이와 대가리가 날아간 채 널브러진 시체들.
휘이잉―
바람에 날린 유리 조각과 쇠붙이들이 어깨를 때리고 지나가도 진우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방향을 바꾸지도 않았다.
3층 건물까지는 이제 겨우 20미터 정도만이 남았다. 하지만 그놈을 보았을 때, 진우는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롸아아!
셔터가 내려진 쌀가게 쪽에서 달려오는 녀석은 그가 오늘 만난 두 번째 군인 좀비였다.
탄창!
진우는 자기도 모르게 속도를 줄이고 손전등으로 녀석의 가슴팍을 비췄다.
주렁주렁 달린 탄창들!
진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뒤를 돌아보았다. 쫓아오는 좀비들과의 거리는 대략 40여 미터. 여기까지 닿는 데 5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 직각에서 뛰어오는 군인 좀비가 그가 서 있는 지점에 도달하기 이전에 놈들이 먼저 자신을 따라잡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쪽에서 군인 좀비와의 거리를 줄이는 편이 나을 테지.
그러고 난 다음에는 우회하여 쌀가게 뒤로 돌고 몸을 숨긴 채 3층 건물로 잠입하면…… 그래, 그렇게 하면 될 거다.
찰나에 뇌리를 스치고 간 계획이니만큼 허술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정도에도 목숨을 걸고 싶을 만큼 탄창의 유혹은 컸다.
진우는 쌀가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두 팔을 벌리며 달려드는 군인 좀비의 얼굴은 광대뼈가 드러날 만큼 잘려 나가 있었다.
탕― 탕―!
아낌없이 두 발을 쏘았다. 총탄의 충격을 고스란히 얼굴로 받은 군인 좀비는 크게 원을 그린 뒤, 물웅덩이에 쓰러졌다. 녀석의 머리를 있는 힘껏 걷어차 죽은 걸 재확인한 진우는 놈의 시체 옆에 앉으며 방향을 돌렸다.
투둑― 투두둑― 투투툭―
가장 앞서 쫓아오던 놈들을 쓰러뜨리자마자 진우는 왼손으로 군인 좀비의 가슴팍을 더듬었다.
몰리 시스템이 적용된 신형 전술 조끼라 탄창이 네 개나 있었다. 두 개를 챙기고 다시 한 번 도로 위의 좀비들을 향해 K―2를 훑었다. 그러고는 다시 또 두 개.
다급한 마음에 손이 떨린다.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총알을 챙긴 진우는 쌀가게 뒤로 돌아 건물의 어둠에 바짝 붙은 채 몸을 숨기며 뛰었다.
3층 건물의 뒷문이 이쪽을 향해 나 있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이제 빨리 저 건물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잠근 채 농성만 하면…….
계획대로 된다는 미소가 슬쩍 번질 때였다.
콰장창!
쪽창을 깨뜨리며 뻗어온 손!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유리 조각이 박힌 손이 진우의 얼굴을 할퀴려 들었다. 진우는 반사적으로 총을 들어 막았다.
그게 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