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Long and Winding Road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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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Long and Winding Road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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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Long and Winding Road (3)
2022.02.20.
“거기 물건 엄청 많아. 가구도 있고, 발전기까지 다 있어. 상상해 봐. 냉장고를 돌려서 얼음을 먹을 수 있다고! 소파에 탁 걸터앉아서 이렇게!”
말은 얼음이라고 하면서 삼식이는 맥주를 따서 마시는 시늉을 했다.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놈이다. 제니도 우물거리며 자신의 환상을 말했다.
“그, 조그만 욕조가 있어요. 외국 영화에 나오는 거. 어떤 모양인지 아시죠? 그 마트에 물도 엄청 많거든요. 제, 제가 제일 처음 안 들어가도 돼요! 우리 가위바위보로 순서 정해서 해요!”
“그래그래, 걱정하지 마, 제니야. 내가 다 찾아서 준비해 줄게.”
보안관까지 거들었다. 이쯤 되면 다수결로 하는 것도 무의미해진다. 신입은 ‘봤지?’ 하는 표정으로 얄밉게 싱글거렸다.
“엇! 비 오네. 소나긴가?”
삼식이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새파랗던 하늘이 갑자기 어둑해지면서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이제 어디를 가든 가야 할 상황이고, 다시 선로 위의 허름한 아지트로 돌아가 무의미하게 하루를 그냥 보내기는 너무 아까웠다. 게다가 그곳의 허술한 천막은 비를 온전히 막아주지도 못한다. 유빈은 깨끗이 항복했다.
“좋아, 가보자. 그런데 한 가지만 확실히 해줘. 만약에 문이 잠겨 있으면 그냥 포기하는 거다?”
“그건 왜?”
“원래 이곳에 있던 애들은 우리보다 많았어. 그런데도 문을 열지 않았다는 건, 안에 들어 있는 걸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 아냐.”
“아! 오케이!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자!”
보안관이 유빈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제니와 함께 앞장을 섰다. 유빈은 땀과 흙먼지가 잔뜩 엉겨 끈적거리는 목덜미를 훑었다. 하긴 목욕을 할 때가 이미 한참 전에 지나긴 했다.
사내의 시체가 매달린 도로 표지판으로부터 코스트코까지는 꽤 가까웠다. 거의 한 블록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건물에 가까워질수록 모두들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생존이 우선이니,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느니 따위의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돌바닥 위에서 종이를 깔고 이삼 일을 자면서 제니가 해주는 요리만 먹고도 그런 주장을 계속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인간이니까 몸을 편하게 해주는 물건, 입을 즐겁게 해주는 물건을 욕심내기 마련이고, 이 박스형 건물 안에는 그런 것들이 꽉 채워져 있다. 문제는 입구의 몰골이었다.
“……셔터는 안 내려져 있네.”
대로와 직각으로 만나는 정문 앞에 섰을 때, 삼식이가 중얼거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입구 주변의 넓은 공터가 온통 시체투성이다. 처참하게 훼손된 몸뚱이들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카트는 정신없이 흩어져 있다.
이게 무슨…….
보안관은 구역질을 삼키려고 하늘을 보며 숨을 들이켰다. 아무리 다시 봐도 좀비 사태 첫날 이후 사람이 다닌 것 같지는 않다.
왕래가 있었다면 이 몰골을 그대로 두었을 리가 없다. 여름의 더운 기온 속에 부패한 시체에서는 엄청난 악취가 났다. 하루 이틀 방치된 게 아닌 듯했다.
“대체 왜 이렇게 해놨지? 웬만하면 좀 치우고 살 것이지…….”
제니에게 달려드는 파리들을 쫓으면서 보안관이 혀를 끌끌, 찼다. 그 이유야 유빈도 모른다. 빗줄기는 거세지고, 불안감은 커진다. 이제 빨리 그 가발 가게로라도 들어가서 거기에서부터 시작하고 싶다.
어제 그 새총을 들고 있던 녀석들이 어디로 도망을 쳤고, 어떻게 몸을 숨겼는지를 알아내는 게 중요했다.
“근데 있지, 유리문은 또 멀쩡해.”
간이 큰 건지, 물건에 대한 욕망이 너무 강한 건지, 삼식이는 시체들 사이로 걸어가 마트의 문에 다가섰다.
튼튼해 보이는, 널찍한 유리문은 삼식이의 말처럼 꽉 닫힌 채였다. 다만, 기름기와 피로 얼룩진 손바닥 모양 자국들이 10여 미터 길이의 유리문 이곳저곳에 잔뜩 찍힌 채다.
통통. 삼식이는 들고 있던 망치로 유리를 두들겨 봤다. 단단하다.
“젠장, 뭐가 아무것도 안 보이네.”
워낙에 어두운 데다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불 꺼진 실내는 말 그대로 암흑이었다.
내부의 모습을 보기 위해 삼식이는 손으로 그늘을 만들고 유리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윤곽으로나마 내부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어때?”
자동차 위에 올라 망을 보던 신입이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묻자 삼식이는 여전히 얼굴을 바짝 붙인 채 대답했다.
“잘 안 보여. 워낙에 깜깜해서…… 이렇게 하면 보이려나?”
삼식이는 망치도 내려놓고 두 손을 모두 유리에 바짝 붙였다. 보이는 게 조금은 나아졌다.
“안에도 카트가 잔뜩 있어! 물건도 그대로인 거 같아! 저거…… 물놀이 용품들인가? 저기에 바람 집어넣어서 욕조로 쓰면 되겠네.”
삼식이는 오른쪽에서 왼쪽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마트 내부를 훑었다. 왼쪽으로 고개가 반쯤 돌아갔을 때, 어둠 속에서 뭔가가 확 튀어나오는 걸 봤다.
비명을 지르는 것보다 빠르게 벌어진 좀비 아가리가 시야 전체를 덮었다.
쿵―
유리문이 흔들리며 좀비의 침이 묻었다.
“으아아악!”
그롸아아아아!
좀비와 삼식이는 거의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말 그대로 놀라 자빠진 삼식이를 보며 보안관과 유빈도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뭐야? 뭐야? 왜 그래?”
망치를 움켜쥔 보안관이 이내 달려왔다.
쿵―
그러는 동안에도 유리문 건너편의 좀비는 또 한 번 유리에 대가리를 박았다. 간만에 만난 먹이를 보고 엄청 흥분한 모양이다.
“하아, 하아~ 우와! 완전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
보안관에게 안긴 삼식이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동안, 더 많은 좀비들이 속속 문 쪽으로 다가와 소리를 지르고 대가리를 박아댔다. 코스트코 쇼핑은 아무래도 오늘 내엔 어려울 성싶다.
“열 마리 정도 되는 건가? 아니네, 저 뒤에 세 마리 더 있으니까…….”
보안관은 해머를 꽉 쥔 채 유리문 안쪽의 좀비들을 헤아리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유빈은 등에서 식은땀이 좌륵 흘렀다.
아까 제니가 목욕하고 싶다 운운했던 것도 있겠다, 당장 건물 안에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이 유혹도 하고 있겠다, 이래저래 이 우직한 놈이 지금 당장 저것들을 다 죽여 버리겠다고 달려들 게 빤해서다.
“잠깐만, 잠깐만.”
유빈은 다급하게 보안관에게 다가가 귀엣말을 하기 위해 어깨를 끌어안았다.
“왜 그래? 안 그래도 척척하니까 붙지 마.”
이미 전투 모드에 돌입해 있는 보안관의 눈에서는 살기가 돌았다.
저 눈, 익숙하다. 보안관이 저 눈을 하는 밤이면 친구들도 함께 파출소에서 잠을 자야 했다.
유빈은 설득을 시작했다.
“너, 설마 저기 들어가려고?”
“응. 그러려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
“위험해. 우리 여기 지리도 잘 모르고, 안에 몇 마리나 더 있는지도 몰라. 그러니까 여길 터는 건 좀 더 시간을 두고 준비를 해서 하자. 그래도 안 늦어.”
“괜찮아. 뭘 그렇게 쫄아? 내가 앞장설 테니까 걱정하지 마.”
보안관은 제니를 돌아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을 보탰다.
“제니야, 좀만 기다려! 오빠가 목욕하게 해줄게.”
막무가내다. 물론 보안관의 능력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보안관의 심정이 이해 안 가는 바도 아니었다.
어제 제니와 그놈의 스마트폰 영상을 두고 좀 티격거리며 잃은 점수를 오늘 보충하고 싶은 남자의 순정!
하지만 100퍼센트 완전하게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돌아갈 수 있는 쉬운 길이 있는데 지금 당장 열매를 맛보려고 위험을 감수하는 건 유빈의 살아온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나 열을 내고 있는 보안관을 말리면 오히려 더 고집을 부릴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비는 조금씩 더 거세지고 하늘도 대낮인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어둑해졌다.
이래저래 좀비들과 싸우기에는 영 좋지 않은 조건이다. 다급해진 유빈은 제니를 향한 간절한 찡긋거림으로 눈짓을 하고 턱을 휘둘러 보안관을 가리켰다.
야, 얘 좀 말려. 자존심 건드리지 말고 지금 이 안으로 뛰어들지 좀 못하게 해봐!
그런 메시지를 담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글쎄, 그런 게 얼마나 전달이 될는지 의심스러웠다. 영악하게도 눈빛을 읽은 제니는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연기 모드에 돌입했다.
“콜록! 콜록!”
제니가 갑작스레 기침을 하자 보안관이 돌아보며 물었다.
“왜 그래, 제니야?”
“아, 아무것도…… 쿨럭, 사실은 좀 추워요, 오빠. 으슬으슬하고…… 어제 그 비디오를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런가? 으, 콜록, 콜록!”
제니는 두 팔로 어깨를 감싸며 보안관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연기 자체도 훌륭하지만, 워낙에 비주얼이 좋았다.
비에 촉촉하게 젖은 갈색 머리가 얼굴에 반쯤 드리워진 채로 그 핑크색 입술을 떨며 그런 말을 하는데, 안 흔들릴 남자가 몇이나 될까.
뭔가 해보라고 시켰던 유빈조차 목구멍 안쪽으로 뜨거운 게 치미는 정도였으니, 단순한 보안관이 1초도 안 걸려서 홀딱 속아 넘어간 것은 물론이다.
“이, 이거라도 머리에 걸쳐!”
보안관은 자신의 티셔츠를 벗어 물기를 꽉 짠 후 제니의 머리와 어깨에 걸쳐 주자, 그의 넓은 등 근육을 힐끔 돌아본 신입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씨발 새끼가 진짜, 몸 좋다고 아무 때나 훌떡훌떡 벗고 지랄이야. 저거 입고 계속 땀 흘려서 냄새도 드럽게 날 텐데.”
축축한 티셔츠를 덮고도 제니가 계속 떨어 대자 보안관의 마음속에서 코스트코는 이내 지워졌다.
“유빈아, 어디로 간다고 했었어? 걔네들 있던 데로 가자. 얘 아무래도 감기가 왔나 보다.”
생마초 곰탱이 보안관을 속이기 위한 제니의 연기는 감탄스러울 만큼 대성공이었다.
“가발 가게부터 가자. 거기에 숨어 있었으니까 안전할 거야.”
보안관이 스스로 고집을 거둔 것에 대해 안도하면서 유빈이 대답했고, 일행은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갔다.
쯧, 저 안에 담요도 존나게 많을 텐데…… 라고 신입이 투덜댔지만, 삼식이가 얼른 달려들어 입을 막아버렸다.
어차피 싸우는 건 녀석이 아니고 보안관이다. 그러니 가장 덜 위험한 방법으로 싸울 수 있을 때까지 충돌은 미뤄둬야 한다.
“이 새끼들, 이런 걸 해놓았었구나.”
가발 가게로 올라가는 2층 계단의 그늘에는 밧줄로 만든 바리케이드와 몇 가지 쇠붙이가 달려 있었다.
거기에 장치가 되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피해갈 수 있겠지만, 무심코 뛰어 올라갔다가는 발목이 걸리기 딱 좋은 형태였다.
어두운 실내에서 보면 한눈에 알 수 없도록 밧줄이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암만 봐도 좀비가 아니라 사람의 침입을 대비해 만들어둔 장치다.
“어째 얘들은 좀비보다 사람에 더 신경을 썼던 것 같네.”
배낭에서 커터를 꺼내 밧줄을 자르면서 유빈이 중얼거렸다. 그렇다는 것은 녀석들이 이 가게에 들어와 있으면서 대규모 좀비의 습격으로부터 달아날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건 좋은 징조였다. 어쨌든 녀석들은 좀비들이 득시글거리는 이 동네에서 보름 이상을 버텨냈으니까.
보안관의 어깨에 기댄 제니는 아직도 추운 연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위험지역에서 벗어나자마자 아픈 것이 다 나았다고 하면 너무 이상할 테니까, 썩 내키지는 않지만 엄살을 유지하느라 애를 쓰는 중이다.
“제니야, 이거라도 둘러.”
가게 문을 열자마자 보안관은 벽에 걸려 있던 커다란 걸개그림을 북 뜯어서 제니의 어깨에 걸쳐 주고 소파에 앉게 했다. 그렇게 하고도 모자라서 뭘 더 줄 게 없나 사방으로 눈을 굴렸다.
“여기 전망이 꽤 좋구나.”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며 삼식이가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지하 차도와 이어지는 삼거리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게다가 가발이 걸린 마네킹들이 죽 늘어서 있는 가게 특성상, 사람 머리 한두 개가 더 기웃거린다고 해도 밖에서 보기에는 그리 크게 시선을 끌 것 같지 않기도 했다.
가게 안에는 벽돌 수십 장과 빈 병 따위의 소위 던질 만한 무기, 빠루와 쇠파이프 따위의 근접전 무기가 잔뜩 준비되어 있었다. 가게 내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넓었다.
“어! 이거 좀 좋아 보인다.”
1미터 정도 길이의 와이어 절단기를 발견한 유빈이 그걸 챙겨 들었다.
무게는 좀 나가지만, 헤드 부분과 손잡이까지 모두 쇠로 되어 있어서 웬만한 망치보다도 타격력이 세 보이고, 케이블 따위도 쉽게 자를 수 있을 듯했다.
“이건 뭐야? 뭘 숨겨놨지?”
캐비닛 안에 별 신통한 게 없다는 걸 확인한 신입은 한구석에 놓인 커다란 플라스틱 통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우우욱― 헛구역질과 함께 뚜껑을 급하게 다시 닫았다.
“뭔데? 뭔데?”
삼식이가 관심을 보인다. 유빈은 손사래를 쳐서 통에 다가가려는 삼식이를 말렸다.
“뭐겠어? 똥 싸놓은 거겠지. 저건 오줌통일 거고.”
그 옆에 죽 늘어놓은 건 노란색 액체가 든 페트병들이었다. 매일 버리지 않은 모양이다.
“구역질 난다, 씨발! 빨리 나가자! 뭐 이런 데를 오자고 해서.”
신입이 씩씩거렸지만, 유빈은 신경 쓰지 않았다. 찾아야 할 게 있다. 이 녀석들은 여기에 있으면서 좀비가 온다는 호각 소리가 울리면 몇 분 내에 어디론가 달아났었다. 어딘가 안전한 곳으로. 그 통로를 발견해야 했다.
뒤쪽으로 나 있는 쪽문을 열자 진짜 화장실이 나타났다. 그런데 벽면 한쪽 아래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여긴가?”
천을 들추니 바짝 붙은 뒤쪽 건물과 연결된 널빤지가 보였다. 건너편 건물의 벽에도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첫 번째 통로를 발견했다. 유빈은 비에 젖은 널빤지에 반쯤 몸을 걸친 채 절단기를 뻗어 건너편 구멍을 덮고 있는 천막을 들춰보았다.
날이 날인지라 캄캄했다. 그래도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위험하다면 원래 여기를 지키던 녀석들이 이렇게 허술한 관리를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가방에서 꺼낸 플래시로 안쪽을 비춰보았다. 거의 텅 빈 방이고, 움직이는 건 보이지 않는다. 유빈은 널빤지를 천천히 기어서 맞은편 건물 구멍 안으로 넘어갔다.
한쪽 구석에는 재봉 기계들과 작업을 하다가 만 천 쪼가리들, 굵은 실 뭉치들이 몰려 쌓여 있다. 작은 공장이었던 모양이다.
창문이 다 깨져서 비바람이 고스란히 날아들던 가발 가게에 비하면 이곳에는 아직 후끈한 여름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었다. 문이 철제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얘들아.”
플래시로 방 안을 꼼꼼히 비춰본 유빈은 널빤지에 기댄 채 친구들을 불렀다.
“이리 와. 거기보다 훨씬 아늑해.”
그런 식으로 아주 천천히 건물 댓 개를 이동했다.
별로 대단한 미로나 수수께끼는 아니지만, 그래도 미지의 공간에서 진행해야 할 방향을 찾고 어두운 건물들 안으로 점점 더 깊숙하게 들어간다는 건 꽤나 체력을 소진시키는 일이었다.
원래 살던 경순이 일행은 허술하지만 나름대로 꼼꼼하게 미로를 만들어두어서, 밖에서 본다면 절대로 길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곳들을 연결 통로로 삼고, 일부러 벽을 쌓아 시야를 가려둔 곳도 있었다.
“아, 얼마나 더 가야 돼? 이 길이 맞는 거긴 해?”
여관 건물 안에 들어섰을 때, 신입이 맥 빠진 한숨을 내쉬었다. 지치기는 앞장서서 길을 트는 유빈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온 거리를 익숙한 걸음으로 달리면 얼마나 되는 걸까? 왜 이만큼이나 왔는데도 아지트 같은 건 보이지 않을까?
점점 자신의 계획에 회의가 든다.
“좀 채워놓을 것이지…….”
카운터 옆의 자판기를 열어보고 텅 빈 걸 확인한 보안관이 혀를 끌끌, 찼다. 먹는 걸 정말 알뜰하게도 치워뒀다. 그리고 시체도.
오는 동안 벽지에 튄 핏자국은 봤어도 시체나 잘려 나간 신체 부위 따위는 구경도 못 했다. 코스트코 앞이 시체들로 뒤덮여 있던 것에 비하면 너무 대조적이다.
“아마…… 허수아비 같은 거였나 봐.”
유빈이 혼잣말을 하자 보안관이 물었다.
“뭐라고? 허수아비가 뭐야?”
“그 시체들 말이야. 매달아둔 아저씨 시체도 그렇고, 얘들 시체를 일부러 눈에 잘 띄는 큰길 쪽에 가져다 뒀나 봐. 허수아비처럼, 누가 보면 무서워서 가까이 오지 말라고.”
“그런 소리는 됐어. 이 시간이면 벌써 코스트코에 있던 좀비들 다 털고도 남았겠다. 젠장.”
보안관도 슬슬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제니는 그걸 무마시켜 보려고 한동안 쉬고 있던 기침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1층은 깨끗했고, 정문에는 셔터까지 굳게 잠겨 있었다. 창문에는 전부 단단히 방범창이 채워져 있었다.
“창고로 쓰는 방 같은 게 있을 거야. 거긴 혹시 먹을 걸 놔뒀을지도 모르지.”
2층으로 올라간 일행은 나란히 서서 첫 번째 방문을 열었다.
침대다. 당연한 거지만 침대가 있었다. 여관이니까.
“으아!”
배낭을 바닥에 벗어 던진 삼식이가 가장 먼저 널찍한 더블베드 위로 몸을 던졌다. 냉장고 문을 여니 들어 있는 건 생수 두 병뿐이다. 이래서야 오늘 저녁을 굶을 판이다.
선로로 돌아가서 먹을 것을 더 가져오든지, 아니면 나가서 끼니가 될 만한 걸 찾아와야 한다.
배낭 안에 든 비상식량에는 웬만해서는 손을 대지 않고 싶다. 그건 정말 어디까지나 비상시에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유빈이 물었다.
“삼식아, 너 편의점에 들어갔을 때, 거기 먹을 거 있디? 기억해 봐.”
“유빈아…….”
“응?”
“나한테 아무것도 물어보지 마. 난 지금 빠다야. 으아, 녹는다.”
삼식이는 고양이처럼 온몸을 베베 꼬면서 침대의 촉감과 쿠션을 만끽하고 있었다.
“장난치지 말고 일어나! 아직 바빠!”
유빈이 잔소리를 하며 손을 뻗자 삼식이는 그 손을 피하고 대신 제니를 침대 위로 잡아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