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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Long and Winding Road (2) (172/449)


172. Long and Winding Road (2)
202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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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서워? 야, 뭘 그렇게 쫄아, 새끼야. 말로는 좀비니 뭐니 해도 여기 와서는 그딴 거 구경도 못 해봤구만. 그리고 한 시간이면 다시 돌아온다는데, 계속 이딴 것만 먹고 있을 수는 없잖아. 읍내 나가서 구멍가게라도 좀 털어 와야 싸제 물건 구경을 하지. 그리고…… 캬! 소주도 한잔 빨고, 이 새끼야!”

상급자는 이딴 거라는 말을 할 때 군홧발로 박스들을 툭툭, 걷어찼다. 아마 전투식량인 모양이다.

우와, 저게 다 먹을 거라고?

여러 줄 높이 쌓인 박스들을 보며 진우는 형언할 수 없는 부러움을 느꼈다. 꾸르르륵, 배에서는 난리가 난 지 좀 지났다. 세찬 빗소리가 아니었다면 터널 안의 병사들에게도 들렸을 것이다.

“어! 차 상병님, 여기서 담배 피우시면…… 탄약이랑 유류가 있어서 화기 엄금입니다.”

시야에 닿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세 번째 목소리. 상급자는 곧바로 궁시렁거렸다.

“그럼 이 새끼야, 저 비가 쏟아지는데 나가라고? 여기는 괜찮아. 입구잖아.”

“그럼 저희도 여기서 피워도 괜찮습니까?”

“이런 미친 새끼가…… 눈깔을 그냥 콱! 작대기 두 개짜리가 어디서 개수작이야? 나가서 피워!”

그런 쓰잘데기없는 이야기들이 빗소리에 섞여 들려온다.

하아아~ 진우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탄약 상자라는 말에 미녀를 만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딱 한 박스씩만 나를 좀 줬으면. 전투식량과 실탄. 더도 말고 딱 한 박스씩만…….

이성적으로 그러면 안 되는 걸 아는데, 자꾸 나가서 저 병사들에게 애원을 하고 싶어진다. 나 좀 살려 달라고, 너희들은 어차피 그 밥 먹기 싫고, 그 총알 안 쓰지 않느냐고.

꾸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비는 더욱 거세게 내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젖은 몸이 저절로 떨려서 이가 딱딱 부딪칠 지경이다.

거짓말을 해볼까?

그런 미친 생각까지도 들었다. 어이, 아저씨들. 우리 지금 작전 중인데, 실탄 보급이 잘 안 돼서 그래요. 많이도 말고 1,000발만 빌려줘요.

어떻게든 핑계를 꾸며내 보려고 해도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게다가 이 꼬라지. 진우는 낡아 빠지고 너덜거리는 자신의 군복과 군용 배낭조차 없는 행색을 훑어보며 고개를 저었다.

누가 봐도 탈영병이나 패잔병의 몰골이다. 저 친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다시 저 터널을 마음대로 빠져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사기꾼 뺨치는 언변의 넉살맞은 김 상병이나 있었다면 또 모를까…….

“크흐~ 젠장!”

포기해야 하는 게 분명하지만, 미련이 남아서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바로 눈앞에 박스 가득 실탄이 있고, 먹을 것이 있다.

저걸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그 기약도 없이 먼 길을 굽이굽이 헤매고 가서 구령대 아래를 파내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하이바 위로 주르륵 부은 것처럼 흘러내리는 이 지독한 비바람도 피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어떻게 찾아낸 피신처인데, 왜 하필이면 저런 놈들이 먼저 선점하고 있단 말인가.

물러나서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가는 것만 해도 멀고 괴로운 일이다. 생각도 하기 싫을 만큼 까마득한 일이다.

“근데 우리 이 깊은 산속에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 겁니까? 바깥세상은 난리가 났다는데 말입니다.”

판초 우의를 걸친 상병 둘이 터널 밖으로 나와 나란히 서서 담배 연기를 뿜어 댔다. 상급자는 대수롭지 않게 히죽거렸다.

“어쩌겠어, 씨발. 상수원 보호구역 경비가 우리 임무인데. 까라면 까야지. 덕분에 우리 소대만 꿀 빨고 있는 거지, 뭐.”

두런두런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머지 세 명의 병사는 여전히 터널 입구와 바리케이드 사이에서 제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정말로 긴장감이라고는 없는지, 상병 둘은 개인화기도 소지하지 않고 있었다. 나머지 병사들에게서도 경계 태세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대충 옆구리에 소총을 끼고 서 있을 뿐이다. 제압하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30초도 채 걸리지 않을 만큼 허술하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진우의 마음에 악마가 지나갔다.

- 빼앗으면 되지.

그것은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었다. 벌떡 일어나서 ‘손들어!’라고 외치기만 하면 된다. 상병 둘은 짬밥이 있으니 아마 그 말을 들을 정도로는 약을 것이다. 위협사격 두세 발이면 이쪽이 몇 명인지도 모르고 투항할 테고…….

하지만 뒤쪽에서 어리바리 서 있는 저 일병들이 마음에 걸렸다.

미친 척하고 방아쇠에 손을 가져가면 어쩌지? 터널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리거나, 대치 상황이 되면 어쩌지? 확률은 반반……인가?

아니다! 막상 소리가 나면 저 일병들은 재빨리 터널 안으로 뒷걸음질을 칠 것이다. 그게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지금 엎드려 있는 각도에서는 녀석들의 얼굴이 보이지만, 놈들이 두어 발짝 물러나고, 내가 일어서면 사각에 가려지는 형세가 돼버린다. 그리고 적이 한 명뿐인 게 밝혀지면 놈들은 분명 뭔가를 해보려 들 것이다.

진우는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교전이 벌어질 테지.

말이 교전이지만, 그건 분명히 일방적인 학살이 될 터였다.

이 썩어가는 K―2라고 해도 겨우 다섯뿐이라면, 그것도 거리가 20미터 내외에 불과하다면 열 발도 필요치 않다. 게다가 두 명은 현재 무장하지도 않았다.

불과 5초? 아니, 3초? 아마 가장 뒤에 선 이병이 허둥대며 안전장치를 풀기도 전에 총을 가진 셋은 쓰러뜨릴 수 있을 거다. 그다음 둘은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을 쏜다고?

그건 정말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지금껏 사람의 모습을 한 좀비들을 헤아릴 수 없이 벌집으로 만들고 머리통을 터뜨렸지만, 살아 숨 쉬는 진짜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본 적은 없었다.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고.

- 너는 장교 대갈통도 개머리판으로 후려갈겼고, 지프에 탄 병사들에게 총도 겨눠봤잖아. 삼척에서 빠져나오던 날, 중위의 턱에 총구를 들이댔을 때, 그때는 무슨 각오였어? 여차하면 정말로 당길 생각이 아니었다고? 그때랑 지금이랑 똑같아.

악마에게 강하게 유혹받은 또 하나의 자아가 진우를 설득한다. 진우는 이를 빠득, 갈았다.

아니, 그건 분명히 다른 일이었어. 그때는 지켜야 할 동료 분대원이 있었고, 지금은 그저 내 몸 하나 편해지자고 다른 사람을 죽이겠다는 거야. 완전히 달라.

진우는 가볍게 도리질을 하며 이 자리를 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하지만 배가 너무 고프다. 견딜 수 없는 허기와 추위가 자꾸 미련을 갖도록 만든다.

- 그런 건 핑계에 불과해. 동료 같은 소리 하네. 그냥 넌 지금 마음이 약해진 거야. 너무 힘들어서 뒈지고 싶은 것뿐이라고. 잘 들어봐. 저것들, 저렇게 허접하니까 분명히 얼마 못 살고 죽어. 지금까지는 그저 운이 좋았던 거야. 좀비들이 이 길로 들어서는 순간, 죽은 목숨이라니까? 진우야, 내일 죽을 애들 오늘 죽인다고 해서, 그거 그렇게 큰 죄 안 된다. 살 사람이나 좀 살자. 그러니까 총알을 빼앗으라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진우는 가늠자 사이에 가장 먼 일병의 얼굴을 집어넣고 있었다. 아주 맞추기 쉬운 표적이었다.

아까 밥을 버리던 그 밉살맞은 놈. 놈이 히죽거리며 뭔가 농담을 하고 있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놈의 숨은 끊어진다.

- 이것 봐! 이렇게 쉽다고! 너 많이 해본 그대로만 하면 돼. 가장 터널에 가까운 이병 놈부터 탕! 그다음에 일병 둘, 타당, 탕!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 어차피 생판 모르는 놈들이야! 네 생명이 우선이잖아! 지금 네가 죽게 생겼다고! 아무도 몰라! 네가 살인을 했다는 거, 너만 입 꾹 다물면 평생 비밀로 남을 거야! 앞으로 한 시간 뒤에 더 많은 놈들이 돌아와.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 저질러 버리자.

“후우~ 후우~”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동그란 가늠자 안에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는 이병의 얼굴이 고정되어 있었다.

빼앗고 싶다. 저질러 버리고 싶다. 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위협사격을 하고, 경고가 통하지 않으면 모두 갈겨 버린 뒤에 유유히 실탄과 식량을 취해서 그대로 서울을 향해 가고 싶다.

그러기만 해도 생존할 확률이 수십 배는 더 높아진다. 거기에 보송보송한 새 옷, 새 양말로 갈아입고 판초 우의까지 걸치면 날아갈 듯 가벼운 기분이 들 것이다.

“하아~ 하아~ 정신 차려.”

진우는 빗물과 눈물이 섞여 흐르는 눈가를 손바닥으로 훔쳤다. 그러고는 눈을 꾹 감았다.

악마로 살 것인지, 사람으로 죽을 것인지 선택을 하라면…….

“후우우~”

진우는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빼고 아주 천천히 뒤로 기었다. 와스락거리는 풀잎과 나뭇잎들은 이 비바람 속에서 전혀 눈길을 끌 만하지 않았다.

터널 앞에 선 병사들은 자신들이 방금 전까지 사신과 마주 서 있었다는 것도 까맣게 모른 채 희희낙락하고 있다.

- 너, 상처 어떻게 할 거야? 저 터널 안에 분명 구급상자도 있을걸? 아무도 몰라. 증인이 한 사람도 없다고. 너 그러다가 죽어! 저체온증으로 죽는다고!

나무둥치 아래에서 몸을 일으켜 돌아설 때, 악마는 한 번 더 수십 가지 이유를 대면서 진우를 유혹하려 들었다. 그러나 진우는 더 이상 듣지 않았다. 듣지 않기로 했다.

“씨발! 씨발! 멍청한 새끼! 미친 새끼!”

코너를 돌아 도로 위로 올라선 진우는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욕설을 내뱉으며 달렸다. 친구들과 가족의 얼굴이 조금 전 가늠자 안의 그놈 얼굴과 교차하며 휙휙 스쳐 간다.

거세진 비바람은 몸이 휘청거릴 만큼 휘몰아쳤고, 뱃속에서는 뜨거운 위액이 느껴진다. 죽을 것처럼 괴로운데 몸을 숨길 만한 곳은 여전히 눈에 띄지 않았다.

***

“경순아!”

삼식이가 다시 한 번 힘차게 이름을 불렀다. 벌써 열 번? 아니, 열댓 번은 불러 댄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다섯 명은 어제보다 조금 이른 시간, 같은 장소. 태권소녀와 경순이를 만났던 그 도로 위에 똑같이 서 있었다.

다만 어제와 다른 건 그들을 반기는 게 도로 표지판에 거꾸로 매달린 중년 남자의 시체뿐이라는 점이다.

“경순아아아~ 나야! 삼식이이~!”

목청을 최대한 높이느라 삼식이의 흰 얼굴은 터질 것처럼 빨갛게 피가 몰렸다. 보안관이 삼식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만해. 걔들 없어. 이쯤 되면 확실한 거지 뭐.”

유빈도 쓸쓸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헬기가 이 근방을 돌았으니까 경순네 무리가 구조대인 줄 알고 그 그물망에 올라탔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안 끌려갔으면 했는데…… 그 까만 헬리콥터에 타버렸나 봐.”

“그러게, 그랬나 보다.”

납득하는 삼식이의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아, 젠장. 또 메슥거린다. 걔들이 어떻게 될 건지 생각하니까.”

보안관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가를 닦았다. 다들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생각은 비슷했다.

어제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같이 대화를 나눴고, 밉살스럽기는 해도 통할 점이 있으리라는 기대도 들었다. 말하자면 미래의 이웃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인간 도살장으로 끌려가 버린 거다.

하지만 유빈과 보안관, 삼식이는 그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라고 변명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봐야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막지는 못했다.

“퉤―!”

유빈은 입안에 가득 고인 쓴맛을 바닥에 뱉어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이제 어떡하지?”

삼식이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선로 위로 피한 지 이틀 만에 또다시 거처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햇살을 가리기 위해 선로 위에 쳐놓은 천 쪼가리들은 시선을 끄는 물건들이고, 직선으로 곧게 뻗은 선로에서는 여차할 때 달아나기도 어려웠다.

인간 사냥꾼들이 돌아다닌다는 걸 알게 된 이상, 그렇게 허술하고 눈에 잘 띄는 곳에서 계속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좀비 하나만으로도 골치가 지끈거리는데…….

“와요! 오빠! 오고 있어요!”

승합차 위에 서서 삼식이의 망원경으로 망을 보고 있던 제니가 도로 끝을 가리켰다.

하긴, 어제 이맘때에도 좀비들의 행렬을 알리는 호각 소리를 들었었지. 그때, 뭔가 반짝하는 게 유빈의 뇌리를 스쳤다.

“피해 있자!”

보안관은 제니를 번쩍 안아 내린 뒤, 선로를 향해 뛰었다. 삼식이는 뒤쪽을 감시하던 신입을 챙겼고, 유빈은 아쉬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다시 한 번 어제 그 녀석들이 숨어 있던 가발 가게와 다른 건물들을 훑어봤다.

그러고는 손목시계를 힐끗 본 뒤, 친구들의 뒤를 따랐다.

“걔들이 살던 곳을 찾아내야 돼.”

선로 방음벽 뒤에 숨어서 좀비들의 행진이 지나기를 기다리던 유빈이 제안했다. 니코틴 냄새라도 맡고 싶다며 불 꺼진 담배꽁초를 물고 있던 신입이 어처구니없어 했다.

“우와! 이 새끼, 태세 전환 엄청 빠르네. 끌려간 애들 불쌍하니 뭐니 하더니, 금방 걔들 살던 자리를 꿰차겠다고?”

“잘난 척하지 마.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이고, 우리 살 궁리는 해야지.”

“찝찝하잖아. 걔들 뭔 일 당했을지 빤히 아는데. 씨발, 귀신 돼서 나올까 봐 무섭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코스트코를 뚫자. 저기에 진짜 물건들 장난 아니게 쌓여 있을걸? 건물도 튼튼하잖아.”

“코스트코는 좀비들 행진하는 경로의 중간에 있어. 까딱 방심하면 그 안에 갇혀. 그러니까 걔들 살던 데가 더 나아. 그리고 생각해 봐. 걔들 아지트가 어디든지 간에 우리보다 훨씬 더 오래 있었어. 복지 센터보다 더 안전한 곳이었던 거야.”

“아, 씨발. 그 헬리콥터 탄 새끼들이 또 오면 어떻게 할 건데?”

“전쟁 영화도 안 봤냐? 폭탄은 한 번 떨어진 자리에는 안 떨어져. 거기 살던 사람을 싹 다 실어 갔는데 걔네가 왜 또 오겠어?”

유빈과 신입이 말싸움을 하는 동안 펜스 틈으로 바깥을 내다보며 시간을 체크하던 삼식이가 입을 열었다.

“근데 유빈아, 암만 안전한 데라도 걔들 살던 데가 어디인지 어떻게 찾아? 이 넓은 동네에서 저 많은 건물들을 다 뒤지고 다닐 거야?”

“아, 그건 짚이는 데가 있어. 제니가 좀비들 온다고 신호 보낸 다음 여기까지 와서 숨는 데 얼마나 걸렸을 것 같아?”

“글쎄, 30초 정도일까? 거리가 별로 멀지는 않았는데…….”

“2분 반이야. 뛰어오는 시간은 얼마 안 되지만, 담을 넘는 데 꽤 걸리더라고. 그러고 나서 1분도 안 지나니까 저 틈사이로 맨 앞에 선 놈들이 지나가는 게 보였지.”

유빈은 자신의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 그렇게 초 단위로 들으니까 더 아슬아슬한 기분이네요. 근데 갑자기 시간 이야기는 왜 해요, 오빠?”

“어제 걔들도 호각을 불고 나서 우리한테 주어진 만큼밖에 달아날 시간이 없었다는 거야. 왜, 호루라기 소리 들리니까 전부 싹 사라져 버렸던 거 기억나지? 그러니까 걔들이 숨은 곳도 그 가발 가게에서 2, 3분 내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이야기고.”

“잔대가리 쩌네…….”

신입은 누렇게 찌든 담배꽁초를 쭉쭉 빨면서 감탄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를 아리송한 반응을 보였다. 유빈은 모두를 둘러보며 말을 계속했다.

“2, 3분 내에 닿을 수 있는 곳이라면 꽤나 범위가 한정돼. 또 걔들이 저 도로를 가로질러서 이 선로 쪽으로 오지 않았다는 것도 확실하니까 찾아야 되는 건물 수는 더 줄어들지.”

“그게 걔네 살던 곳이라는 근거는 뭐야? 그냥 잠시 몸을 숨기는 데일 수도 있잖아.”

보안관이 물었다.

“그야 뭐, 아지트 근처가 아니라면 걔들이 그렇게 경계를 설 이유가 없을 거 아니야. 보아하니까 숨어 있는 건물의 위치나 인원 배치 같은 게 하루 이틀 해본 솜씨가 아니던데. 그러니까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물은 저 남자 시체에서 오른쪽으로 3분 정도 거리에 있어. 그건 확실해 보여.”

유빈이 설명을 마치자 다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간단한 것처럼 말하지만, 180도 가까운 각도로 퍼져 나가는 수많은 건물들 중 3분 거리라는 건 꽤나 넓은 범위다.

그 정도 시간이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뛰어가 버릴 수도 있다.

“……그걸 오늘 찾을 수 있다고? 저렇게 건물들이 많은데? 또 어디가 안전한지도 모르고?”

보안관과 신입은 썩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머지 둘도 막막한 표정으로 유빈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유빈도 잘 안다. 낯선 동네를 무작정 헤매고 다니기에는 너무 위험한 세상이다. 유빈은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야 안 하지. 너희들도 잘 알잖아, 내가 얼마나 겁이 많은지. 일단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에서부터 출발하자. 걔들이 숨었던 가발 가게, 또 삼식이가 그…….”

경순이랑 들어갔던 편의점…… 이라는 말을 하려다가 삼켰다. 삼식이가 우울해질 것 같아서. 그런데 정작 삼식이는 괜찮다는 얼굴이었다.

“됐어, 그렇게 말조심하지 마. 같이 잤던 여자들이 좀비 된 것도 많이 봤는데 뭘.”

“그래, 삼식이가 그 여자애랑 갔던 편의점. 그 두 가게는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잖아. 걔들이 거기에 숨을 만큼 말이야.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면 되지.”

“뭘 어떻게 출발한다는 거야?”

“땅따먹기랑 비슷해. 그 건물에서 시작해서 하나씩, 둘씩 갈 수 있는 곳을 넓혀 나가는 거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안전하고 확실하지.”

“음…….”

보안관과 삼식이가 마치 미리 입을 맞춘 것처럼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제니까지도 삼식이 옆에 서서 갸우뚱하고 있었다.

이 새끼들, 아까부터…….

유빈은 한숨을 쉬었다. 속에 다른 생각이 있는 게 분명했다.

“아휴~ 됐어. 대체 뭘 하고 싶은 건데? 그렇게 시간 끌지 말고 말을 해. 어디 먼저 가고 싶어?”

“코스트코지.”

삼식이가 기다렸다는 듯 냉큼 대답했다. 코스트코로 가자는 삼식이의 말에 나머지 모두가 ‘옳소’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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