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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인간 사냥꾼 (6) (166/449)


166. 인간 사냥꾼 (6)
202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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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저 사람, 어떡해요? 어우, 저 피.”

제니가 어깨를 떨며 물었다. 유빈은 입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도와줘야 하겠다거나 따위의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 남자는 지금 쫓기는 중이고, 그를 쫓는 게 좀비인지, 사람인지조차 아직 파악되지 않는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을 돕겠다고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저만한 부상을 치료해 줄 기술도, 장비도 없다.

그런 것들보다는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이 더 컸다.

도대체 왜 저 남자는 저렇게 큰 상처를 입은 채 군인들이 구조를 진행하고 있는 건물로부터 달아나는 것일까? 도대체 저 건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군인들이 결국엔 좀비들에게 패배했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두 대의 헬기가 너무 여유롭게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는 것투성이다.

“흐으으으~ 끄으으으~”

차 밑으로 기어 들어간 사내의 숨넘어가는 소리는 신기하게도 헬기 프로펠러가 내는 커다란 소음을 뚫고 보안관 일행의 귀에까지 닿았다.

유리를 긁는 것 같은 사내의 신음이 들어주기 괴로웠다. 어쩌면 고막이 아니라 양심을 울리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

“아악! 아아악!”

자동차 아래의 사내가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옥상에서는 또 다른 비명이 들렸다. 대체 몇 명이 소리를 지르는 건지, 이제 다 헤아리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러 더 이상 비명이 들려오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건물 옥상의 헬기는 고도를 높이면서 떠나 버렸다. 헬기 아래에 매달린 구조용 그물은 거의 텅텅 비어 있었다. 두 대가 전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지는 느낌이었다.

쟤들은 왜 또 그냥 가버리는 거지? 마지막 구조라면서? 아무도 구하지 않았잖아? 그저 총질만 계속했잖아?

유빈은 자신이 보고 있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여기까지 목숨을 걸고 달려왔던 이유가 다 뭐란 말인가.

“젠장, 또 가버렸어. 미치겠다.”

삼식이도 한숨을 쉬었다. 제니는 멍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또 뒤를 따라가요?”

아니. 유빈은 고개를 저었다. 이만큼이나 멀리 오는 것만 해도 이미 충분히 위험을 감수했다. 더 이상 무모하게 헬기만 쫓아 달리다간 결국 좀비 떼와 만나게 될 것이다. 게다가 헬기가 또 멈춰 서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씨발, 공연히 힘만 뺐네. 개새끼들, 존나 야속하게…… 좀 도와주지. 씨발.”

분한 마음을 삭이기 위해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신입이 헬기가 사라져 간 하늘을 흘겨보았다. 희망찬 달리기는 이제 끝났다. 허술한 천막이 기다리는 선로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저 아저씨는 죽은 것 같지?”

자동차 아래의 사내를 가리키며 보안관이 물었다. 삼식이는 풀죽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그는 더 이상 신음 소리를 내지 않았다.

“돌아가자. 기회가 또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축 처져 있을 필요 없어.”

얼굴의 땀과 먼지를 훑어낸 후, 보안관은 제니를 잡아 일으켰다. 모두들 천 근처럼 무거워진 다리를 끌고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왔다.

“끄으으으~ 끄으으~”

바로 그때, 죽었다고만 생각했던 사내가 앓는 소리를 내는 바람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서로 눈빛을 마주친 유빈과 보안관은 천천히 사내가 몸을 숨긴 자동차를 향해 다가갔다.

“끄으으~ 물, 물 좀…… 제발.”

유빈의 발소리를 들은 사내는 밖으로 손을 뻗어 물을 청했다. 덜덜 떨리는 손에도 피가 잔뜩 묻어 있다.

물린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출혈량 하나만 봐도 회생하기는 이미 글렀다. 유빈은 자세를 낮춰 자동차 아래 사내의 안색을 살폈다.

푸르다 못해 회색에 가까운 납빛이었다. 아직도 숨이 붙어 말을 한다는 게 용할 지경이다. 자동차 아래의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그걸 보면서도 그리 두렵지 않다는 걸 깨달은 유빈은 한숨을 쉬었다. 다른 이의 죽음을 보는 일이 점점 무덤덤해지는 것 같아 그게 더 무서웠다.

“아저씨, 왜 그렇게 다쳤어요?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예요? 군인들은 또 왜 그냥 가버린 거고요?”

“구, 군인 같은 소리 하네. 으으~ 물…… 물…… 물 좀. 그리고 후우…… 담배도…… 제발…… 으으윽…….”

사내는 다시 한 번 애걸했다. 질문에 답해줄 마음 같은 건 없어 보였다. 유빈은 주변을 돌아봤다.

하필이면 편의점도, 가게도 눈에 띄지 않는다. 죽기 직전인 사내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려면 위험을 무릅쓰고 인근을 돌며 물을 찾아야 할 판이었다.

“물은 우리도 없어요. 미안해요.”

그렇게 말한 유빈은 사내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이 좀 더 편하게 죽게 해주려고 목숨을 걸기는 싫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그냥 가버린다면 조금 전 자신들과 이 사내를 버려두고 날아가 버린 군인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인간이 된다는 생각이.

“후우~”

유빈은 한숨을 쉬었다.

후우~ 보안관도 한숨을 쉬었다. 죽마고우는 아마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알았어요, 물 구해 올게요. 죽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야 돼요.”

보안관은 허리를 숙여 자동차 아래의 사내에게 약속을 하고 돌아섰다.

“계속 물을 달래. 구해다 주기로 했거든. 돌아올 때까지 계속 보고 있어. 한눈팔지 말고, 너무 가까이 가지도 말고.”

일행에게 돌아간 보안관은 삼식이와 제니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삼식이가 왜 감시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보안관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물렸는지 안 물렸는지 모르니까 그렇지, 인마.”

주변의 가게들은 정말 깨끗하게 털린 상태였다. 먹을 것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수기에 걸려 있어야 할 생수통은 모두 자취를 감췄고, 음료수 빈병들만 굴러다녔다.

구멍가게에조차 마실 것이 남아 있지 않은 걸 보면 이 부근에 살던, 꽤 큰 규모의 사람들이 알뜰하게도 탈탈 털어먹은 것 같다.

“젠장, 차라리 선로로 돌아가서 물을 가져오는 게 더 빠르겠다. 이러는 동안 그 아저씨 죽으면 우리가 거짓말했다고 생각할 것 아냐.”

미용실 내부를 뒤지다가 텅 빈 냉장고 안을 확인한 보안관이 혀를 찼다. 유빈도 인상을 찌푸리며 다음 가게로 이동하려 했다.

그러다가 거울을 통해 비친 분무기를 발견했다. 물이 차 있었다.

킁, 킁, 유빈은 분무기 뚜껑을 돌려 냄새를 맡아봤다. 무취. 이번엔 살짝 입술에 대봤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몰라도 일단은 아무것도 섞지 않은 물이다. 그들 역시 목이 바짝바짝 말랐지만, 유빈은 분무기 뚜껑을 다시 돌려 닫고 죽어가는 사내를 위해 그것을 온전히 주기로 했다.

다시 돌아왔을 때, 삼식이와 제니는 사내가 숨은 자동차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너희들, 진짜!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니까!”

보안관이 둘을 잡아당겼다. 제니는 진정하라는 손짓을 하며 상황을 설명한다.

“삼식이 오빠한테 답답하다고, 자꾸 밖으로 좀 꺼내 달라고 해서 그랬어요. 불쌍하잖아요. 이렇게 피를 흘리는데 혼자 있으면 무서울 거니까.”

유빈은 안색을 살펴 사내가 아직 사람인 걸 확인하고는 그의 손을 잡아 상체를 차 밖으로 끄집어냈다.

으으윽~!

상처가 당겨졌는지 비명을 지르면서도 사내는 햇살 아래 얼굴을 내놓기를 원했다. 유빈은 분무기 뚜껑을 열어 사내의 손에 쥐여 주었다.

“물! 으! 흐으~”

분무기를 건네받은 사내는 쩍쩍 갈라진 입술을 대고 미친 듯이 들이켠다. 그러다가 기침을 하고 켁켁대느라 절반가량은 흘렸지만, 그래도 소원하던 물을 마시고 나니 사내의 숨소리는 한결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끄으으~ 길게 신음을 토해낸 사내는 몸을 뒤척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내, 내가 이걸 주지. 흐으~ 큭큭, 우습구만. 젠장, 이게 내 말년 보험이었는데 이걸 물 한 잔에 팔다니…… 너희들, 나한테 백억짜리 물 준 거야. 끄으으~ 그러니까 담배도 한 대 좀 줘. 큭큭큭, 신기하네. 그 난리를 쳤는데도 이건 멀쩡하다니.”

거창한 소리와 함께 사내가 주머니에서 꺼내 내민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죽어가는 사람이라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유빈이 선뜻 손을 내밀지 않자 사내는 다시 한 번 스마트폰을 흔들며 힘들게 말했다.

“흐흐흐~ 돼지 목에 진주라더니, 고마운 것도 모르는군. 하아~ 하아~ 그래도 뒈져 가는 나한테보다야 쓸모가 있을 테지. 받아둬. 그리고 똑똑히 봐라. 대태양 그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큭큭큭, 그래도 내가 작은 회장, 그 악마 같은 새끼보다는 오래 살았군그래. 끄으으~”

“작은 회장이요? 태양 그룹? 그 사람 죽었어요?”

제니가 갑자기 끼어들어 물었다.

끄윽~ 사내는 신음을 하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이상한 소리를 내며 놀란다.

“크, 크크, 놀랐구만. 이런 미인이 이런 데 있었나? 죽기 전에 그래도 좋은 걸 보고 눈을 감는 건가. 후우~ 메이저, 개새끼. 이걸 알았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희들을 헬기에 태웠을 텐데. 그래서 제 방에 가둬놓고…….”

“아저씨, 대답해 주세요! 작은 회장 죽었어요? 확실해요?”

제니는 사내의 말을 끊고 다그쳤다. 사내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것보다 더 좃같은 꼴이지. 아가씨, 작은 회장에 관심이 많구만? 잘됐어. 이 핸드폰, 거기에 들어 있는 영상을 봐. 그럼 그 악마 새끼가 어떻게 됐는지 알게 될 테니까…… 끄으으, 그러니까 담배 좀 줘. 거기 너! 담배 있다면서? 제발!”

“담배 피우면 안 돼요, 아저씨. 우리까지 위험해져.”

“큭큭큭, 위험? 끄으으~ 진짜 위험한 걸…… 알려줄까? 후우~ 후우~ 조금 전에 떠난 까만 헬기 봤지? 그게…… 제일 위험해. 그러니까 혹시라도 멀리서 그게 날아오는 걸 보면…… 끄으~ 무조건 피해. 후우, 후우, 그거에 타는 순간, 뒈지는 거니까. 그것도 정말 괴롭고 더럽게…….”

“뭔 소리야, 아저씨? 그 사람들 군인이잖아. 군인들이 구조한다는 방송을 우리도 듣고 왔어. 총알이 날아다니는 바람에 피해 있느라 구조받지는 못했지만.”

보안관은 말 같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꾸를 했다. 소원하던 물 한 잔을 줬으니 이제 슬슬 떠나야겠다 싶어진다. 광인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여기 서 있는 건 너무 많은 위험부담을 떠안는 일이다.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걔들, 군인이 아니야. 후우~ 후우~ 태양 그룹의 개들이지. 그러니까 끌려가면 너희는 백신 만드는 실험에 산 채로 쓰인다고……. 야, 그런 것보다 담배 좀 줘, 응? 이렇게 빈다. 죽기 전에 한 대 피우자. 오래 살아보겠다고 몇 년 동안 참았었는데, 후우우~”

“아저씨, 이거 락이 걸려 있어요.”

핸드폰을 받아 부팅되기를 기다리던 제니가 다시 사내에게 다가와 물었다.

“제니야! 너 왜 그래? 위험하다니까!”

보안관이 만류했지만, 제니는 그걸 뿌리치고 다시 사내에게 다가가 잠금 해제 패턴을 물었다.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 지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고집스런 모습이었다. 사내는 무표정하게 중얼거렸다.

“……담배.”

“네, 네! 여기 있어요. 그러니까 락 풀어주세요. 패턴이 뭐예요?”

제니는 삼식이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아 사내에게 쥐여 줬다. 담배를 물고 만족한 웃음을 지은 사내는 허공에 패턴을 그려 보여줬다.

핸드폰이 잠금 해제되는 걸 확인한 제니는 부들거리기만 하고 좀처럼 라이터를 켜지 못하는 사내를 도와 불을 붙여주었다.

후우우~ 켁! 켁!

기분 좋게 연기를 빨아들이는가 싶던 사내는 곧바로 기침을 하며 몸서리를 쳤다.

“크크크, 이것도 끄으으~ 내 뜻대로…… 안 되는군. 하아아~ 쿨럭! 쿨럭! 너무 오랜만에 피워서 그런……가. 큭큭큭.”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내는 부지런히 담배를 빨아들이고, 또 기침을 했다. 보안관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저씨, 담배 연기가 나면 좀비들이 오니까 우린 여기 더 못 있어요. 그러니까 야속하게 생각하지 마요.”

“담배가 좀비를 부른다고? 처음 들어보는구만. 큭큭큭, 그게 사실이면…… 씨발, 우리는 대체 뭘 연구했던 거야? 쿨럭! 쿨럭! 야속? 아니야, 고마워. 끄으으~ 정말이야. 이 태양 그룹 신 차장이 그동안 한 짓을…… 끄으~ 만약 너희가 안다면 아마 침이나 뱉고 가버렸겠지. 법을 무시하고 그 위에서 산다는 거…… 좋더구만. 근데, 후우~ 나도…… 후우~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무서웠어. 끄으으~ 그리고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 돼버려서…….”

보도에 비스듬히 누운 사내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해를 올려다보았다.

뭐라고 몇 마디 더 중얼거렸지만, 이미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목소리는 작아졌고, 물고 있던 담배도 바닥에 떨어뜨릴 만큼 기력이 다했다. 담배를 주워 다시 물려주려던 삼식이가 말했다.

“……죽었어. 이대로 두고 가?”

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사람 챙겨주기 위해 더 시간을 보내며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고, 조금 전 아파트 마당에서 보았던 수많은 시체들보다 더 각별하지도 않다.

“서두르자. 젠장, 이게 무슨 꼴이야?”

보안관은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때까지도 제니는 사내가 전해 준 핸드폰에 꽂혀 정신없이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워낙 많은 동영상들이 내장되어 있어서 사내가 말했던 문제의 동영상을 찾기가 어려웠다.

“제니야!”

보안관이 언성을 높이며 제니의 팔을 낚아챘다. 제니는 깜짝 놀라 보안관을 올려다봤다.

“너 왜 이래? 가자고 했잖아? 그까짓 새끼가 뭐라고 이러는데?”

보안관은 제니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위로 치켜들었다. 태양 그룹 작은 회장이라는 이름이 나온 이후 제니의 행동이 이상했다. 다정하고 상냥하던 평소의 그녀가 아니었다. 너무 흥분해 있다.

‘그 사람 죽었어요?’라고 제니가 다급하게 묻던 것이 떠오른 보안관은 핸드폰을 집어 던지고 싶어졌다.

그래, 상류층이라 이거지? 너도 톱! 그 새끼도 톱! 톱끼리 애인이었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새끼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 말을 콧등으로도 안 들어?

질투가 불처럼 일어났다.

“이까짓 거!”

보안관이 핸드폰을 던질 기미를 눈치챈 제니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줘요, 오빠! 제발! 저 그거 봐야 돼요! 제발!”

“왜! 왜 봐야 돼? 응? 너랑 무슨 사이인데? 사랑하던 사이? 그런 거야?”

제니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분한지 그녀의 눈에는 눈물까지 맺혔다. 그녀를 울게 만들었다는 것 때문에 보안관은 더 화가 났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다.

뭐 이렇게 재수 없는 날이 다 있단 말인가. 태권소녀, 그 꼴 보기 싫은 년에게서 놀림이나 당하고, 구조 헬기는 바로 머리 위에서 그냥 지나쳐 가버리고, 죽어가는 낯선 사람 뒤치다꺼리도 모자라 제니의 눈에서 눈물까지 뽑았다.

“집에 가서 싸워! 좀비 온다고!”

유빈이 둘 사이에 끼어들며 중재를 했다. 그리고 허튼소리도 아니었다.

끄롸아아아~

멀리에서 악취와 함께 좀비들의 포효가 몰려오고 있었다.

아직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콧김을 내뿜는 보안관과 제니조차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만들 수 있을 만큼 끔찍한 울음소리였다.

“자, 여기.”

선로로 돌아와 갈증을 달래기도 전에 보안관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제니에게 건넸다. 말없이 걷는 동안 화도 가라앉고 질투도 식었다.

사실 좀비 세상이 오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가까이에서 말을 걸고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는 것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러니까 그녀가 예전에 누구와 무슨 관계였다 해도 질투하거나 화를 내면 안 되는 거였다.

그렇게 간단한 거였는데, 요 며칠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그녀를 보면서 착각 속에 빠져 살았던 것뿐이다. 제니의 얼굴을 보면서 보안관은 힘들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 화내서.”

제니는 시선을 아래로 깐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물었다.

“봐도 돼요?”

하아~ 보안관은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껏 쌓아왔던 신뢰라든가 좋은 감정이 다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속이 상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과민반응으로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던 건 그 자신이고, 여자가 눈물을 흘렸으니, 이미 이 싸움은 그가 졌다.

“……그래.”

보안관은 힘없이 대답하고 구석으로 걸어가서 종이 박스 위에 몸을 뉘었다.

자, 고생 많았어.

유빈이 뜨뜻한 생수병을 건네주며 어깨를 두드렸다.

곁눈질을 해보니 제니는 주섬주섬 다시 핸드폰을 조작하고 있다.

저러다가 정말 작은 회장 뒈진 걸 보면서 울음이라도 터뜨리면 그 질투의 감정을 억누를 수 있을까?

보안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런 꼴은 정말 보고 싶지 않다.

“삼식아, 담배 맛있냐?”

선로 교각 아래에서 신입과 함께 담배를 피우는 삼식이에게 공연히 말을 걸었다. 담배를 피워서 속이 좀 풀린다면 한 갑 다 피워 버리고 싶었다. 신입이 고소하다는 듯 비웃었다.

“킥킥킥, 그으럼! 여자한테 차였을 때는 담배가 제일이지! 킬킬킬.”

“까불지? 너 거기서 영영 안 올라오고 살래?”

그런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애써 외면하고 있는데, 갑자기 제니가 끅끅, 하는 소리를 냈다. 보안관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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