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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인간 사냥꾼 (4) (164/449)


164. 인간 사냥꾼 (4)
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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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님! 뒤!”

헬기 안에서 경계를 하던 대원이 화들짝 놀라 외치며 기관단총을 고쳐 쥐었다. 신 차장도 깜짝 놀라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아래층과 이어진 계단 건물에서 한 무더기의 남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긴 둔기와 흉기를 휘두르며 메이저 일행의 뒤를 덮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프로펠러 소리 때문에 경고도 묻혀서 베슬의 로프를 당기고 있던 대원들은 총을 잡을 틈조차 없었다.

등에 몽둥이찜질을 당한 대원 하나가 맥없이 쓰러지는 광경까지 보았을 때, 헬기가 약간 흔들리며 시야가 가려졌다.

“다시 돌려요! 아래 지원해야 돼!”

헬기에 탄 대원이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신 차장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

다시 옥상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을 때, 이미 기관총 지원사격은 어려운 지경이었다. 세 명의 대원을 포함해 열 명 이상의 남자들이 한데 뒤엉켜 육탄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이런 미친! 헌터 2! 헌터 2! 비상 상황! 지원 바란다!”

두 번째 헬기에 바쁘게 지원을 요청한 마지막 대원은 곧바로 사다리에 몸을 실었다. 한 명이라도 더 힘을 보태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신 차장에게는 둘도 없는 찬스였다.

“이야앗!”

신 차장은 아래로 손을 뻗어 사다리에 몸을 걸친 대원의 멱살을 움켜잡고 흔들었다. 난데없이 위로부터의 공격을 받은 대원의 눈이 커졌다.

“뭐, 뭐야? 이 미친 새끼! 왜 갑자기!”

신 차장의 손길을 뿌리치려고 대원이 주먹을 휘저을 때, 신 차장은 오른손으로 놈의 주머니에서 DEM 케이스를 잡아보려 했다.

놈이 반사적으로 총 멜빵을 보호하려 했기 때문에 경계가 허술한 편이었다. 위치도 워낙 유리하다.

하지만 신 차장은 어디까지나 머리를 써서 평생을 먹고살아 온 중년이고, 상대는 각종 무술 유단자 자격으로 이 직업을 얻은 청년이다.

신 차장의 필사적인 시도는 대원의 완강한 저항 앞에 무력화되었고, 신 차장은 곧 중심을 잃었다.

“으아아!”

아래로 고꾸라지는 바로 그 순간에 신 차장은 대원의 방탄모 끈을 움켜잡을 수 있었고, 목이 뒤로 꺾인 대원은 비명을 내질렀다.

뭐, 뭐야? 왜 이래, 대체!

헬기 조종사는 갑작스럽게 몰아치는 여러 개의 돌발 상황에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끄아아악, 끄으으~”

그렇게 줄사다리에 매달린 채 꼭 달라붙어 발버둥을 치던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콰직!

두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의식적으로 몸을 굴려보기는 했지만, 이미 발목에서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끄으으윽―!”

신 차장은 비명을 지르며 겨우 일어섰다. 바깥으로 돌아간 발목뼈가 땅에 닿을 때마다 척추 끝까지 쩌릿쩌릿한 통증이 전해졌다.

“하아아~ 하아아~”

좌우를 돌아볼 여유도, 다시 대원에게 달려들어 DEM을 강탈할 만한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제기랄, 신 차장은 이를 바득 갈며 절뚝대는 다리를 서둘러 움직였다.

목표로 삼은 것은 조금 전 사내들이 뛰어나왔던 옥상 문. 총알 세례가 날아오기 전에 저기로 달아나야 했다.

“이, 이, 이 정도면서 그, 그렇게 까분 거냐? 대, 대, 대체 왜 구조대를 고, 공격해?”

정신없이 치고받으며 어느새 습격자들을 거의 다 정리한 메이저가 쓰러진 부하들을 가리고 서며 남아 있는 네 놈을 향해 물었다.

앞쪽에서 계집애들이 정신을 홀리고 그사이 뒤통수를 후리는 수법이었지만, 애초에 신체 능력의 격이 달랐다.

겨우 버티고 서 있는 네 놈의 눈동자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그렇게 여럿이 기습적인 다구리를 쳤는데 저놈 하나를 이기지 못하고 전력의 반 이상이 떨어져 나갔다. 총을 뽑은 것도 아니고, 오로지 육탄전이었는데도…….

“소령님! 소령님! 저, 저 새끼를! 끄으윽!”

뒤쪽에서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에 메이저는 고개를 돌렸다. 헬기에 남아 있던 자신의 부하가 바닥을 뒹굴면서 고통을 호소하고, 신 차장이라는 놈은 절뚝거리며 문 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뭔가 단단히 사달이 났다.

“뭐, 뭐야, 인마! 저, 정신 못 차리고!”

분노한 메이저가 부하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려는 그 몇 초가 옥상의 습격자들에게는 대단한 기회처럼 느껴졌다.

습격자들 중 리더 격인 청년이 기합 소리와 함께 긴 사시미 칼을 내질렀다. 나머지 세 명도 곧바로 뒤이어 달려들었다. 그들의 시선은 이 검은 군복이 든 기관단총에 사로잡혀 있었다.

저 총들만 빼앗으면 왕이 부럽지 않게 된다! 세상이 다 내 것이 된다!

“이 새끼들!”

공격의 낌새를 느낀 메이저는 몸을 틀어 칼날을 피하고, 맨 앞 사시미 든 놈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그러고는 곧바로 옆구리에 차고 있던 MP5를 들어 올려 사정없이 총알을 갈겨 버렸다.

투투두두두둑―

총알이 발사되는 소리와 거의 동시에 네 습격자의 몸통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인철아! 안 돼~! 인철아!”

뒤쪽에 물러나 있던 계집애 하나가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뛰어왔다. 계집애는 사시미의 시체 위에 얼굴을 묻고 통곡을 해 댔다.

메이저는 몸을 돌렸다. 이제 저 신 차장이라는 놈을 처리할 때다.

“소령님! 저, 저놈이 갑자기…… 으으으…….”

척추가 나갔는지 아직도 몸을 일으키지 못한 대원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목소리를 쥐어짜 낸다. 신 차장은 이미 문 안으로 뛰어드는 중이었다.

이쯤 되면 이유고 뭐고 중요하지 않다.

감히 우리 애들을 건드려? 나를 바보 취급했어?

메이저의 눈이 불타올랐다.

“야! 이 새끼야!”

MP5를 들고 쫓아간 메이저가 옥상 문을 확 열어젖혔을 때, 신 차장은 쿠당탕거리며 구르다시피 계단을 반쯤 내려가고 있었다.

“거, 거, 거기 서!”

메이저가 외쳤다. 쉽게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오늘 밤에는 계집애들 대신에 두들겨 줄 놈이 생겼군, 아주 천천히 비명을 즐겨주마…….

메이저가 계단에 발을 내디디려는데,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철제문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건 또 뭐야?

돌아보니 아까의 그 미친놈들 일행이 이쪽을 향해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쓰러진 대원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바보 같은 놈들……. 총 한 자루를 못 지켜…….’

메이저는 끓어오르는 분을 삼키며 문 안에 몸을 숨겼다. 그러고는 순서대로 일을 처리했다.

투투투두둑―

계단 아래를 향해 갈긴 총알이 돌을 부수는 소리를 내기도 전에 신 차장의 비명이 들려왔다.

“으아아아악! 으윽!”

그리고 쿠당탕, 하며 자빠지는 소리.

맞았군.

이걸로 저 쥐새끼 같은 배신자의 발은 묶어두었다.

다음은……. 메이저는 문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투투투툭― 투투투투두둑―

상대는 난사를 하고 있지만, 정확도는 확연히 떨어졌다. 애초부터 훈련된 놈들이 아니니 당연했다.

그리고 마침내 놈이 가진 30발이 모두 떨어졌다. 메이저는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뛰어나가서 어리바리한 얼굴로 빈총을 들고 있는 애송이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뭐지, 이 미친놈들은?

메이저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참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어쨌든 이유야 천천히 물어보면 되고, 저 미친, 사시미 칼 든 놈의 여자로 보이는 년과 신 차장이라는 또라이를 모두 괴롭혀 주려면 저녁을 일찍 먹고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몽둥이찜질을 받고 쓰러졌던 대원들이 겨우 몸을 추슬러 척추를 다친 대원을 돌보고, 다시 총을 회수해서 억지력을 갖게 된 다음, 메이저는 계단 안으로 다시 들어섰다.

“야, 이, 이, 이 새끼야! 너 무지하게 우, 웃기는 놈이다?”

메아리쳐 돌아오는 목소리. 하지만 대답이 없다.

설마…….

당황한 메이저가 뛰어 내려가 봤을 때에는 이미 신 차장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부러진 다리에 총알 세례까지 받고도 기어이 이 긴 계단을 굴러 달아난 것이다. 메이저는 복도에 난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다봤다. 미로처럼 복잡한 뒷골목 사이로 핏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무리해서 잡으려면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겠지만, 저 정도 출혈이면 하루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그 살아 있는 동안 느낄 고통이란 것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지독할 터였다.

그러니 굳이 좀비들이 우글거리는 뒷골목으로 엄호 병력도 갖추지 않은 채 뛰어들 필요는 없다. 그게 논리적이다.

“후우~!”

옥상으로 돌아온 메이저는 한숨을 내쉬면서 분노를 삼켜보려 했다. 그런데 잘 안 된다. 도무지 화가 가라앉지를 않는다.

에이, 씨발~

성큼성큼 걸어간 메이저는 마스카라가 줄줄 흘러내릴 때까지 울고 있던 계집애의 머리통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

퍼억― 퍽! 퍽!

세 번 차고 나자 계집애는 더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메이저의 발길질은 이후에도 열댓 번을 쉬지 않고 계속됐다.

***

검은 헬리콥터의 훙― 훙― 하는 프로펠러 소리를 듣자마자 제일 먼저 천막 밖으로 뛰어나가 웃통을 벗어 휘두르며 선로 위를 내달렸던 것은 삼식이었다.

여기요! 여기요!

삼식이가 고함을 지르는 동안 나머지 네 명도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두 대의 헬기는 바람처럼, 정말 몇 초 만에 휙 하고 사라졌다. 크게 원을 그리며 선회하는 일도, 제자리에서 기다려 주는 일도 없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 남긴 채 그냥 높은 건물 숲 사이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삼식이는 헬기가 사라져 버린 서쪽 하늘을 향해 멍하니 서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허탈하기는 나머지 네 명도 마찬가지였다.

어찌나 악을 써가며 여기라고 외쳤는지 머리는 어찔어찔하고 목에선 피가 나올 것같이 따끔거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삼식이는 더 버티지 못하고 제자리에 벌렁 누워버렸다.

“……가까웠어. 여기…… 바로 머리 위로 지나갔는데…….”

유빈이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보안관도 퀭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살면서 그렇게 낮은 높이로 가까이 스쳐 날아가는 헬리콥터를 본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두 대씩이나…….

그런데도 구조를 받지 못했다. 예전에 벌판에서 먼 하늘을 지나가는 헬기를 놓쳤을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었다.

“하아…… 하아…… 저거, 저거에 타기만 했으면 바로 잠실행이었겠지?”

큰대자로 뻗은 삼식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웃옷을 벗은 그의 몸 이곳저곳에는 경순이가 만들었을 키스 마크가 립스틱 자국과 함께 붉게 번져 있었다.

화를 삭이지 못해서 씩씩거리던 신입이 욕설을 내뱉었다.

“뭐야, 저 개새끼들? 다 눈깔이 삔 거야? 응? 씨발,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못 본 체 지나간다는 게 말이 돼? 씨발, 사람으로서 양심이라는 게 있어야지! 왜 구조를 안 해주는 거냐고? 이 좃같은 군인 새끼들아!”

악을 빽빽 쓰는 신입의 눈에는 눈물까지 맺혔다.

“……그러게.”

보안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해서는 신입에게 동조해 주는 법이 없는 그였지만, 이번에는 한마음이 되었다. 이런 행운을 놓치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저 헬리콥터가 잠시만 멈춰 서서 기다려 줬다면 안전한 쉘터로 갈 수 있었을 테고, 그러면 이렇게 매 순간을 마음 졸이며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건데…….

“우리가…… 하아…… 안 보였을까요?”

숨을 몰아쉬며 제니가 묻자 유빈은 손사래를 쳤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 사람 구경하기가 얼마나 힘든 세상인데. 삼식이가 웃통을 벗고 뛰어가자마자 확 눈에 띄었을걸? 천막 쳐놓은 것도 허름해서 더 특이해 보일 거고.”

그렇게 말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천막은 까마득히 먼 곳에 있었다. 헬기만 쫓아 뛰다 보니 순식간에 꽤 멀리 온 것이다.

“그럼 대체 뭐죠? 왜?”

“구조 헬기가 아니었나 봐. 뭐, 다른 임무가 있어서 이동하는 중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럼 이따 돌아가는 길에라도 다시 들러줄까요? 우리가 어디 있는지는 알잖아요.”

“그러면 좋겠는데…… 근데…….”

근데 확실히 이쪽을 통해 돌아가기는 하는 걸까? 우리 몇 사람 따위, 신경을 쓰기는 하는 걸까? 모르겠다…….

유빈은 반쯤 포기하고 자갈 위에 주저앉았다.

아쉬움을 버리지 못한 제니는 선로 주변을 맴맴 돌며 혹시 나타날지 모를 헬기를 찾아 넓고 푸른 하늘을 눈으로 좇았다.

개새끼들! 좃같은 새끼들!

신입은 아직도 계속해서 욕을 주워섬기는 중이었다.

몇 번씩 중복되는 것들도 있지만, 그래도 꽤나 풍부한 욕설 어휘를 자랑하고 있는 동안 아무도 그만 좀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속에도 역시 적지 않은 분노와 좌절감이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알았어, 뭐가 문제였는지.”

한동안 멍하니 누워 있던 삼식이가 일어나 앉으며 중얼거렸다.

정말?

갑작스런 삼식이의 말에 모두가 관심을 기울였다. 신입조차도 욕하던 것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뭔데?”

“내가 웃통을 까면 안 되는 거였어. 아, 젠장. 그걸 왜 생각 못 했지? 간단한 거였는데.”

“얘 뭐라는 거냐?”

보안관이 이마를 찡그리며 유빈에게 물었다. 그러자 삼식이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두 손으로 자신의 젖꼭지를 짚었다.

“모르겠어? 넌 이걸 보면 기분이 좋아?”

당연히 안 좋다. 게다가 경순이가 참 어지간히도 여기저기에 분홍색 립스틱을 묻혀놓은 상태라서 더 그랬다. 하지만 그게 이것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 차암! 아직도 못 알아들은 거야? 헬리콥터에 탄 군인 애들도 우리 또래 남자일 거잖아. 내가 웃통을 깔 게 아니라 제니가…….”

“미친놈아!”

보안관이 등짝을 후려치는 바람에 삼식이는 말을 다 맺지 못했다. 하지만 삼식이는 자신의 가설이 어지간히 중요하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아니, 그렇게 화만 낼 게 아니고, 생각 좀 해봐! 제니가 여기 있는 줄 알았으면 군인들이 그냥 지나갔겠냐고. 아마 무슨 장애물이 있더라도 기를 쓰고 구조하러 왔을걸?”

“어떻게 알아보는데? 응? 저 멀리서 내려다보면 다 손가락만 하게 보일 텐데, 그 빠르게 스쳐 가는 동안에 ‘어! 저거 제니잖아!’ 하고 알아본다고?”

“그러니까 일단 주목하게 하자는 거 아니야. 저렇게 꽁꽁 싸매고 있는 것보다는 속옷이라도 좀 보여주…….”

“그렇게 보여주고 싶으면 경순인지 뭔지 하는 네 여자 친구 거나 실컷 보여줘, 이 정신 나간 새끼야! 애먼 제니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흥분한 탓인지 보안관과 삼식이는 서로의 얼굴에 침을 튕겨가며 열변을 토했다. 그 유치한 말싸움을 진정시킨 건 제니였다.

“그만해요! 그만! 그까짓 게 뭐라고! 헬리콥터만 세워준다면 까짓 속옷쯤 열 번이라도 보여줄 수 있어요. 안 그래도 다음엔 그래볼까 하고 생각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애들처럼 싸우지 좀 마요.”

“하지만…… 난 네가 그렇게까지 하는 게 싫단 말이야! 같이 있는 남자들 전부 한심해지는 일이라고.”

보안관은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니는 도리질을 하며 보안관의 손을 잡았다.

“저도 별로예요. 그런데 그게 오빠 손이 이렇게 되는 동안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요. 그리고 반대로 생각해 봐요. 오빠들은 제가 그렇게 하면서까지 돕고 싶을 만한 사람들이라고요. 절대로 망신이 아니에요. 오히려 자랑할 만한 일일걸요?”

제니가 차분한 목소리로 달래주자 감동한 보안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랄, 영화를 찍고 앉아 있네, 등신들.

신입은 모깃소리보다도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유빈의 귀에는 들렸지만, 굳이 지적을 해서 또 다른 시비를 만들지는 않았다. 그런 걸로 허비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충분히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고, 진땀을 흘린 반나절이었다.

“다들 돌아가자. 일단 천막 쳐놓은 데로 돌아가서 뭘 준비해도 해야 돼. 삼식이, 너도 그만 일어나서 옷 입어.”

유빈은 삼식이의 팔을 잡아당겼다. 준비를 하고 기다려 봐야 한다. 혹시라도 돌아가는 헬기를 만나면 소리도 내고, 연기도 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에서 기다리다가 클랙슨도 울리고, 깜빡이 켠 채로 달려보고, 타이어에다가 불이라도 붙여 끌든가…… 뭐,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흔들리는 바람 사이로 인위적인 확성기 소리가 희미하게 실려 왔다.

“들었어?”

유빈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물었다. 삼식이와 보안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확성기지? 그치?”

신입마저 욕설을 그치고 귀를 기울였다. 저음이 웅웅거리긴 하는데, 워낙 먼 거리에서 울리는 소리였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 지나쳐 날아갔던 헬기를 감안하고 생각해 보면 확성기를 통해 떠들어 댈 주체가 누구인지도 확실하고, 그 내용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다.

구조해 주겠다는 방송! 헬기는 아직 근처에 있다!

일행들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어디지? 어느 쪽이지?

온몸의 감각을 총동원해 보지만, 건물들에 가려진 채 메아리쳐 울려오는 소리의 방향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모두들 자기도 모르게 두 눈을 꼭 감은 채 고개를 좌우로 틀어 댔다.

“이쪽이에요!”

제니가 천막과 반대편을 가리켰다.

“확실해?”

유빈이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제니의 조그만 얼굴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날씬한 턱이 두 번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다섯 명은 일제히 제니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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