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인간 사냥꾼 (2)
(16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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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인간 사냥꾼 (2)
2022.02.09.
젠장, 보안관은 혀를 차며 일행들을 둘러봤다. 그들이 몸을 숨긴 곳부터 도로까지는 대략 25에서 30미터 정도.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다.
다행히 선로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놈은 없기에 그들은 조용히 숨을 죽이고 좀비들의 행렬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와스락거리며 자갈을 밟고 달아나는 것보다 그편이 더 안전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여기도 만만치 않게 많은데?”
몇 분 동안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좀비들의 행렬을 보며 보안관이 낮게 중얼거렸다. 제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있던 데보다 더 많은 것도 같아요.”
“그럴지도 몰라. 아무래도 그 동네보단 여기에 사람이 훨씬 더 많이 살았을 테니까. 문제는 이런 행진이 얼마나 자주 있는가 하는 건데…….”
좀비들이 도로를 차지하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공기를 타고 불쾌한 냄새가 가득 실려 오기 시작했다. 놈들 특유의 그 구역질 나는 악취 때문에 모두는 코를 막았다.
행진이 끝난 것은 거의 20분가량의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꼬리 부분의 몇 놈이 늑장을 부렸다고는 해도 저 넓은 도로를 가득 메운 채 20분이라면 엄청난 수다.
“다 간 거야?”
신입이 묻자 ‘아마도 그런 것 같은데’ 하고 유빈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저 도로로 다시 나갈 만큼 무모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 짓을 하기엔 아침부터 너무 많은 좀비를 봤다.
휴우, 보안관이 한숨을 내쉬며 얼굴의 땀을 닦아냈다.
“이 동네, 정 떨어지려고 한다, 야. 그 싸가지 없는 계집애하며, 좀비들 우글거리는 꼴하며, 여러 가지로…….”
“그래도 말이지,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런 동네지만 걔들은 멀쩡하게 살아남았잖아. 그것도 꽤 많이. 그러니까 그런 점은 인정을 해줘야 할 것 같아.”
유빈의 말에 삼식이가 끼어들어 조잘거렸다.
“아, 그런데 걔들 원래 처음엔 수가 훨씬 더 많았대. 근데 자리 잡는 동안 그야말로 팍팍 줄어들었다는데? 그러니까 우리처럼 적은 수로 시작해서 그 멤버가 그대로 쭈욱 온 게 아니야.”
경순으로부터 정보를 얻어들은 건가 싶어진 유빈과 보안관은 정색을 하며 묻기 시작했다.
“또 무슨 이야기 들었어? 걔들, 지금 어디에서 산대?”
“응? 전부 몇 명이래? 인철인가 진철인가 하는 그놈은 또 뭐야?”
“그 거시기 날아간 아저씨는 왜 그렇게 죽였대? 칼질 열나게 한 건 누구고, 거꾸로 걸어놓은 건 또 누구 아이디어야?”
순식간에 질문들이 너무 정신없이 날아들자 삼식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가뜩이나 부족한 뇌 용량이 터지기 직전까지 몰리는 모양이다.
“야, 그만, 그만! 그런 거 다 물어볼 시간이 있었겠어? 생각해 봐. 기껏해야 십 분도 안 되게 같이 있었던 건데? 그냥 가까이 가서 예쁘다고 인사하고, 그냥 보내면 너무 아쉬울 거라고 했어. 헤어질 때 또 만나고 싶으니까 우리 이야기 좀 잘해 달라고 했고! 그게 다야!”
손사래를 치며 대답하는 삼식이를, 보안관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노려봤다. ‘그 몇 분 동안 넌 첨 보는 여자랑 잤잖아?’라고 말하는 눈빛이다.
“그럼 네가 들은 것만이라도 이야기해 봐.”
유빈의 말에 삼식이는 음, 하고 짧게 앓는 소리를 낸 뒤, 입을 열었다.
“인철이라는 애도 그렇고, 근처 마트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꽤 많았나 봐, 그 죽은 아저씨를 본사 직원이라고 부르는 거 보면. 거기에 이런저런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무리가 커졌겠지 뭐. 어디에 숨어 지내는지 그런 건 못 물어봤어. 암만 생각해 봐도 너무 수상한 질문이잖아. 나라도 선뜻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은데? 아, 맞다. 호루라기 소리 들으면 도로에서 피하래. 그건 좀비 온다는 신호라고.”
“우리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알려줬어?”
“뭐, 그냥…… 여섯 명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이 정도? 근데 잘 믿지 못하는 눈치더라.”
하긴 보안관의 탁월한 신체 능력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까. 유빈도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섯이라는 건 벌써 예전에 전멸을 했어야 할 소수다.
여섯? 유빈이 멈칫했다.
하나, 둘, 셋…… 일일이 수를 세어보던 신입이 꽥! 소리를 질렀다.
“다섯이잖아! 이 등신아!”
“하하하, 다섯이구나, 참. 비슷하니까 됐잖아. 넘어가, 그냥.”
“우리가 선로에서 지낸다는 것도 말했어?”
“아니, 대체 몇 번을 이야기해야 돼? 워낙 급해서 이런저런 소리를 할 여유가 없었다니까. 앞의 이야기들도 내가 시체에 대해서 너같이 예쁜 애가 왜 저렇게 잔인한 짓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걔가 대답한 거야.”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너 진짜 대단하긴 하다. 암만 궁해도 그렇지, 예쁘다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디? 그 뻔뻔함은 좀 부럽다.”
신입은 상상하기도 싫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 삼식이는 피식 웃으면서 신입의 머리를 헝클었다.
“뭘 그렇게 부러워하고 그래. 전에 핸드폰 보니까 너도 끝내주는 여자 사진 있더구만. 여자 친구랬지?”
삼식이의 말을 들으니까 유빈도 신입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맞아, 어지간히 못난 여자애들 사진을 보여주면서 잔뜩 거들먹거렸었지…….
삼식이만의 미적 기준을 알 리 없는 제니는 아직도 왜 하필 그 여자를 골랐는지 조금 어벙벙한 눈치였다. 이야기가 너무 섹스 라이프에만 집중되는 것 같아지자 보안관이 모두의 입을 막고 질문을 던졌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쯤하고! 이제 어쩔 건지나 결정해 봐. 가던 방향으로 계속 더 갈 거야?”
보안관이 가리킨 선로의 앞쪽 주변에는 상봉역이 있고, 그 너머에는 높은 주상 복합 건물들이 몇 채나 들어서 있다.
어지간히 다급하지 않은 다음에야 저런 높은 건물 바로 아래를 지나가고 싶지는 않다. 혹시라도 좀비들이 건물 안에서 뛰어내린다면 피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 만난 태권소녀 일행들이 근처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들을 공연히 자극하고 싶지도 않았다.
동료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가까워져야 한다. 그게 서로에게 안심이 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다시 얼굴을 들이밀고 지분대는 것보다는 아까 언질을 주었던 것처럼 내일 비슷한 시간에 다시 방문하는 편이 낫다.
짧은 회의를 거친 다섯 사람은 일단 천막 아래로 되돌아가 정오의 뙤약볕을 잠시 피할 겸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선로 위는 벌써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만큼 뜨거워져 있었다.
“오늘 본 애들 말고도 근처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더 있을까?”
선로 위를 걷던 삼식이가 물었다.
“뭐, 어디든 사람 살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유빈이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한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나니 근래 없던 희망의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물론 더 조심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자 삼식이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왕이면 또 예쁜 여자애들이면 좋겠는데.”
넌 조금 전에 했잖아, 이 개새끼야. 그것도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 긴장해서 말싸움을 하는 동안…….
남자들의 분노한 시선이 일제히 삼식이에게로 쏠렸다. 그런 분위기를 전혀 모르는 삼식이는 천진한 얼굴로 한마디를 더 보탰다.
“경순이처럼 다리통도 굵직하고 살집도 좋은 글래머…… 억!”
더 참고 봐주기 어려웠는지 보안관은 삼식이의 얄팍하고 날씬한 엉덩이를 냅다 걷어찼다. 유빈의 속까지 시원해질 만큼 호쾌한 킥이었다.
***
신 차장이 모니터실에 들어왔을 때, 여덟 명의 연구원은 얼굴을 CCTV 화면에 처박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하고 인사를 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없다. 좋지 않은 징조다.
신 차장은 샘플들을 비추는 네 개의 화면부터 살폈다. 원래 개나 돼지 따위의 큰 생체 실험용 동물들을 해부할 때 사용하던 철제 침대에는 발가벗겨진 사람 넷이 팔다리가 묶인 채 고정된 채였다.
A708756의 신체 부위를 이식해 두었던 샘플들 중 제일 경과가 좋고 별다른 거부반응이 없던 넷을 골라 강제로 좀비에게 물리도록 만들고 침대에 묶어뒀다.
만약 신체 이식을 통해 항체도 전이되었다면, 좀비로 변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나체인 샘플들이 유일하게 착용하고 있는 것은 손목에 고정된 생체 정보 장치뿐이다.
저 조그만 장치가 샘플의 체온과 심박 수, 혈압 등을 체크해 이쪽으로 송신한다. 나머지 복잡한 측정 기구들은 샘플들이 하도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제대로 붙어 있지를 않았다.
‘으아아아― 살려줘!’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침대에 묶인 채 울부짖는 사람들의 입은 그렇게 애원하고 있었다.
네 사람 모두 예외 없이 좀비에게 물어뜯긴 상처에서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철제 침대에 뒤통수를 찧어 댔다.
저러다가 대가리가 깨져서 뒈져 버리면 어쩌지? 안전모라도 씌워둘 걸 그랬나?
신 차장은 초조해하며 말라서 부서질 것 같은 자신의 입술을 손톱으로 자꾸만 뜯었다.
“어때?”
신 차장의 질문에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눈여겨볼 결과가 하나도 없어?”
신 차장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열여섯 개의 1차 샘플 중 4분의 1을 투입한 실험이다. 그것도 가장 상태가 좋은 실험 대상들이었다. 연구원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듯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특별한 예외적 징후가 없습니다. 이 열화상 카메라 쪽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다들 엄청난 고열에 구토에…… 좀비로 변이할 때와 정확하게 같은 증상입니다.”
연구원이 가리킨 화면에서 네 샘플의 몸은 불이 붙은 것처럼 붉게 표시됐다. 신 차장은 두 주먹에 힘을 꽉 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 고비를 넘기고 항체가 활성화될 수도 있어. 뭐, 아직 한 번도 항체를 가진 인간이 어떻게 감염을 이겨내는지 그 과정을 본 사람은 없으니까. 안 그래?”
“그, 그렇습니다.”
연구원은 신 차장의 눈치를 보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몇 분 만에 무너졌다.
“3번 샘플, 심장 이상! 심박 급감합니다.”
환자 감시 장치를 주시하고 있던 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신 차장의 맥박은 정반대로 미친 듯이 빨라졌다.
“강심제 투여해! 심폐소생술, 제세동기도 동원하고! 뭐라도 해!”
신 차장은 마른침을 사방에 튕겨가며 미친 듯 떠들어 댔다. 흥분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이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을 만큼 하이 톤으로 변해 버렸다.
3번 샘플의 침대 주변에 의료팀이 달려들어 각종 약물을 주사하고, 한편에서는 두 손으로 빠르게 흉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3번 샘플, 심장 정지! 체온 하락 중!”
“제세동기 써! 쓰라고, 이 등신 새끼들아!”
신 차장이 갈라지고 쉰 목소리로 악을 썼다. 심전도 그래프가 일직선을 그리고 난 이후에 아무리 전기로 지져 봐야 되살아날 확률은 거의 없다는 걸 신 차장 역시 잘 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아주 실낱같은 희망에라도 전력으로 매달려 봐야 할 만큼 필사적인 상황이다. 화면 너머에서는 의료팀이 나름 애를 써가며 이미 시체가 된 3번 샘플의 몸에 달라붙어 비지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3번 샘플을 기점으로 해서 나머지 셋도 큰 차이를 두지 않은 채 순차적으로 사망해 버렸다.
“2번 샘플, 심장 정지…….”
네 번째이자 마지막 샘플의 사망을 알리는 직원의 목소리는 대역죄라도 지은 것처럼 기가 죽었다.
다량의 페나세틴과 디곡신을 쑤셔 넣고 산소마스크까지 동원해 봤지만, 놈의 심장은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주 순식간에 멈춰 서버렸다.
“제세동기 사용할까요?”
직원이 눈치를 보며 묻자 신 차장은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얼굴로 고개만 주억거렸다.
의료팀이 2번 샘플로 다가가는 도중, 좀비화가 끝난 3번 샘플은 흰 막이 덮인 눈을 희번덕거리며 발버둥을 치기 시작한다.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고 구석으로 달아나는 의료진. 이제 실험실은 혼란과 공포가 가득한 곳으로 변해 버렸다.
“클리어! 클리어! 전부 거기서 나와!”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소거 명령이 내려지고, 의료진들은 황급히 실험실 밖으로 달아났다. 그런 과정이 벌어지는 동안 신 차장은 초점이 풀린 눈으로 멍하니 모니터실 벽의 한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틀렸어, 이건…….
신 차장 내부에서 포기하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애초에 고작 열여섯 개의 샘플만으로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 박사, 그 잔인한 인간이 그런 변명을 받아들여 줄까?
훗,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신 차장은 신경질적으로 헛웃음을 터뜨리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의 움직임을 느낀 연구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를 주목했다.
모두의 시선을 받는 그 순간, 신 차장은 갑자기 냉혹한 현실과 그보다 몇 배나 더 차갑고 두려운 미래를 절감했다. 사방의 공간이 모두 사라지고, 이 세상에 그 혼자만 남은 것 같은 절대적인 고독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 연구의 책임자로 지정된 순간부터 그의 생명은 시한부로 지정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항체를 얻어내지는 못하겠지. 그렇게 되면…….
오 박사의 뱀처럼 얇은 입술이 씨익 올라가는 환상이 그려졌다.
예고도 없이 목덜미에 따끔하게 X―1이 주사되고, 그 자신이 수없이 다뤘던 식사감들처럼 발가벗겨진 채 크레인에 묶여 작은 회장, 그 망할 자식이 기다리는 방으로 내려질 것이다.
그리고 온몸에 극렬한 고통이 몰아치는 내내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있다가 아주 천천히 숨을 거두게 될 것이다. 아니…… 그건 오히려 너무 희망적인 미래일지도 모른다.
오 박사, 그놈이라면 훨씬 더 잔인한 방법으로 아주 오래 고통을 주면서 나를 죽일 수도 있어.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식으로 말이지…….
순간,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
신 차장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대로 죽음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안면근육을 억지로 끌어 올리며 거짓 웃음을 지어 보였다.
“괜찮아, 수고들 했어! 이제 겨우 첫 번째 실험인데, 이 정도의 진전을 거두고 데이터를 수집했으면 된 거야. 만족스러워!”
조금 전과 비교해 너무 급작스러운 태도의 변화를 보며 연구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자신들의 상사와 같은 표정을 꾸며냈다.
“기죽지 말고 2차 실험은 18시에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 샘플 수는 셋으로 하고. 이런 식으로만 가면 3차에서 항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신 차장은 나오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이면서 연구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다들 뭐가 좋았다는 건지 모르는 눈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말을 의심하는 것 같지도 않다.
좋아, 이쯤 해뒀으면 당장 내가 궁지에 몰렸다는 인상은 주지 않았겠지…….
신 차장은 표정 관리를 하면서 서둘러 모니터실을 빠져나왔다.
“후우우~ 씨발. 정신 바짝 차려, 정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신 차장은 세면대에서 얼굴에 물을 끼얹은 뒤, 자기 뺨을 호되게 후려쳤다. 가벼운 통증이 공포를 몰아내고 머리 회전을 도와줄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초점을 잃고 퀭해져 있던 거울 속의 두 눈은 두어 차례 더 뺨을 두들긴 다음에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대로 순순히 죽여줍쇼, 할 수는 없지. 암, 그럴 수 없어.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버텼는데.”
신 차장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대충 눙치고 나오기는 했지만, 1차 실험이 실패하고 실은 아무것도 건진 게 없다는 소문은 머지않아 이 건물 전체로 퍼지게 될 것이다.
오 박사의 귀에 그 소식이 들어가기 전에 뭔가 행동을 해야 했다. 목숨을 건질 수 있을 만한 행동을.
“나가야 돼…… 나가야…….”
문제는 좀비 세상이 닥친 이후, 그가 단 한 번도 바깥 구경을 해본 적이 없다는 데 있었다. 그가 보았던 외부의 마지막 모습은 TV 속보를 통한 피와 좀비, 시체가 가득한 강남대로의 모습이었다.
그건 지옥보다 더 무서운 광경이었고, 그래서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가족과 친구도 모두 잊고 여기 틀어박혀 저 지긋지긋한 좀비에게 매 끼니때마다 산 사람을 바치는 임무를 수행해 왔다.
그때보다 조금은 나아졌을까?
사설 경비 업체 직원이었던 놈들이 이렇게 멋대로 군인인 체하며 헬기를 타고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잡아다 실험체로 쓰는 걸 보면 여전히 무법천지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도 만약 조금이라도 수복되는 기미가 있다면…… 태양 그룹의 경쟁사나 언론, 하다못해 군인이나 권력자들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책상 서랍을 뒤져 핸드폰을 꺼낸 신 차장은 그것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단단히 여몄다. 여기에 들어 있는 영상, 그가 식사실에서 몰래 찍은 이 영상은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외부에 나가 힘이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만 있다면, 이 영상이 그의 목숨을 부지해 주리라…….
“좋아.”
커터의 날을 확인해 보고 바지 주머니에 넣은 뒤, 신 차장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스스로 목숨을 도모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