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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인간 사냥꾼 (1) (161/449)


161. 인간 사냥꾼 (1)
20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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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이 새끼들, 쫄았냐? 경순이 누나, 그만 가까이 가요. 저 새끼들, 무서워서 밤에 오줌 싸겠어. 킥킥킥!”

2층의 안경잡이가 야유를 퍼부었다. 비주얼 때문에 쇼크를 받은 보안관과 유빈의 표정을 보고 겁을 먹은 것이라고 오해한 모양이다.

경순이라 불린 여자는 배트에 박힌 쇠못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이쪽을 위압적으로 쓰윽 흘겨본 뒤, 다시 컴컴한 편의점 그늘 속으로 몸을 숨겼다.

무슨 생각으로 골랐는지 모르겠지만, 두툼한 그녀의 입술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연분홍색 립스틱이 번들거릴 만큼 진하게 발라져 있었다. 그리고 쪽 째진 눈에는 하늘색 아이섀도가.

그렇게 하고 어둠 속에서 노려보는 모습이란…… 이건 뭐, 삼식이 애인도 아니고…… 응? 삼식이?

유빈이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삼식이는 근래 보기 드물 만큼 흥분해서 어떻게든 그녀의 주의를 끌어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먼지로 떡 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쉴 새 없이 윙크를 보내며 혀를 날름거려 자기 입술 끝을 핥았다. 손가락으로 사랑의 쌍권총도 사정없이 쏘아대는 중이다.

어휴~ 유빈은 한숨을 삼켰다. 역겨운 짓 좀 당장 그만두라고 하고 싶지만, 그런 것에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다.

그런 것보다 지금은 세 방향을 감싸고 있는 놈들과 싸우지 않고 대화를 풀어내는 게 더 시급한 문제다. 신입은 아예 자동차 아래로 기어 들어가서 포복으로 달아날 준비를 하고 있다.

“여자들만 잔뜩 나와서 겁을 주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여자랑 싸우라고? 관둬, 그런 짓은 안 하니까. 정 싸움을 하고 싶으면 남자들 오라고 해.”

보안관이 한심하다는 듯 물었고, 그게 태권소녀를 자극했다.

“풋, 덩치는 산만 한 게 도끼나 들고 설치는 주제에 사내인 척하기는……. 참 꼴 같지 않다. 야, 보내준다고 할 때 얼른 꺼져.”

태권소녀는 예쁘장한 얼굴로 따놓은 포인트를 다 까먹을 만큼 거친 말투를 쓰며 거슬리는 이야기를 하면서 벌레를 쫓듯 휘휘 손을 내젓는다. 일단 잔혹한 사이코패스 살인마는 아닌 것 같지만, 꽤나 밉살스럽게 군다.

“뭐? 먼저 병을 던진 게 누군데? 아우, 진짜 넌 여자만 아니었으면 아주 그냥!”

보안관이 흥분해서 펄펄 뛰는 동안에도 새총과 진짜 총은 천천히 한 걸음씩 각도를 바꿔 뒤로 돌아오고 있었다.

사실 정공법이 아니면 택하지 않을 게 확실해 보이는 눈앞의 태권소녀보다 저 무기를 든 두 놈이 훨씬 더 신경 쓰였다.

은근슬쩍 눈치를 보던 놈들이 또 한 걸음 옮겨 디딘다. 이러다가는 바리케이드 없이 저놈들과 마주하게 될 판이다. 유빈은 보안관과 제니를 감싸 함께 옆 차 쪽으로 옮겨가면서 경고했다.

“목숨 걸 생각 없으면 그만 다가와! 더 오면 나도 가만 안 있어! 너희만 무기가 있는 게 아니란 걸 잘 알지?”

“그럼 그렇지. 슬슬 본색을 드러내네. 아까는 서로 돕자더니, 이제는 무기가 있네 어쩌네 하고 위협하는 꼴 좀 봐.”

일관되게 밉살맞은 태권소녀의 말을 유빈조차 더 참아주기 어려워졌을 때, 이제껏 잠자코 있던 제니가 끼어들어 목소리를 높였다.

“후후후, 그래. 잘난 사람들 만나면 다 쫓아내야지. 그래야 너 따위도 대장, 공주 노릇 다 할 수 있지. 하긴, 네까짓 게 그렇게 어정쩡하게 생긴 얼굴로 평생 어디서 그런 대접 받아봤겠어? 지금 실컷 즐겨라. 난쟁이들 사이에서 공주 대접 받으면서 예쁜 척하니까 좋지? 오빠, 우리 그냥 가요. 이런 애들 도와줄 필요 없어요.”

“말조심해! 이 돼지 같은 년아!”

태권소녀가 모독을 당했다고 생각한 2층의 안경잡이가 욕설을 퍼부었다. 물론 후드와 수건을 벗고 제니가 얼굴을 드러낸다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겠지만.

“뭐, 이런 개새끼가…… 읍!”

발끈한 보안관이 반사작용처럼 쌍욕을 내뱉을 때, 유빈이 재빨리 입을 틀어막았다. 제니의 도발이 뭔가 다른 방향에서 태권소녀를 자극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태권소녀가 제니에게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언제 예쁜 척을 했다는 거야, 이 계집애야! 내가 언제 공주인 척했어!”

“됐어. 너 같은 애들은 말해줘도 어차피 사실을 인정 안 해. 겉으로 내색은 안 해도 속으로는 비리비리한 남자애들 사이에서 여왕처럼 대접받는 걸 즐겼잖아. 큭, 호박 여왕. 자꾸 생각날 것 같네.”

“호박은 너다! 존나 추해서 얼굴도 가리고 다니는 년이!”

“용진아!”

새총 든 놈이 발끈해서 너트를 날리려 하자 태권소녀가 손을 들어 만류하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새총은 마지못해 다시 뒤로 물러났다.

10여 미터의 거리를 둔 채 두 여자의 팽팽하고도 유치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태권소녀의 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정의의 사도처럼 굴며 비아냥거리고 잘난 척하던 그 거만한 태도는 간데없었다. 그녀의 약점을 제니가 제대로 찔렀나 보다.

서로 얽혀 교차하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제니와 태권소녀를 향해 집중되었다.

“세상 여자들이 다 너처럼 남자한테 미쳐 있는 게 아니야. 되도 않는 소리 그만 늘어놓고 꺼져. 그리고 앞으로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 인생이 불쌍해서 해주는 충고니까 새겨듣고.”

몇 번이나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겨우 조금 진정한 태권소녀가 제니에게 독설을 날렸다. 하지만 제니는 무심히 배낭을 고쳐 메며 곧바로 받아쳤다.

“아, 그래? 근데 왜 나한테는 그 충고가 질투처럼 들릴까? 하긴 이렇게 멋지고 잘생긴 남자들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일 테니까 질투도 나겠지. 이해해. 네 쫄자들이랑은 너무 비교가 되니까. 어떡하니, 우리 가고 나면 너 한동안 상사병 좀 앓을 것 같은데? 볼 수 있을 때 얼굴이라도 실컷 봐둬라.”

“미친, 누가 잘생겼다는 거야? 저 근육 쫄탱이? 저 조그만 쭉정이 같은 놈? 그것도 아니면 저기 바닥에 기어 다니는 구더기? 내 눈에는 왜 그런 사람이 안 보이지?”

“너 벌써 사랑에 눈이 멀었구나? 왜, 저 오빠도 안 보인다고 해보시지? 지금 세수를 안 해서 그렇지, 세수만 하면 너 같은 건 단박에…….”

잘난 척하며 삼식이가 몸을 숨긴 방향을 가리키던 제니와 그녀의 손짓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유빈과 보안관이 모두 일시에 얼어붙었다.

삼식이가…… 사라졌다.

유빈은 아까 경숙이라는 이름의 덩치가 몸을 숨기고 있던 편의점 쪽을 곁눈으로 재빨리 훑었다. 그녀 역시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러면 이야기는 빤해진다.

아아, 삼식아…….

유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태권소녀…… 어지간히 바른 척, 잘난 척하던데, 삼식이가 자기 팀의 사람과 만나자마자 환락의 시간을 보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때, 아주 나지막한, 그러나 분명한 여자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이런 개새끼, 빠르기도 하다.

큼, 큼, 유빈은 어떻게든 그 소리를 덮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가, 가기 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걸 몇 개 이야기해 줄게. 불을 함부로 피우지 마. 아마 불이 좀비를 끌어들이는 것 같았어. 아, 그리고 담배도.”

아― 아― 아―

신음 소리가 조금 전보다 더 커졌다. 유빈의 목소리 톤도 덩달아 올라갔다.

“불이랑 담배, 둘 중 어떤 것 때문에 좀비들이 끌려오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어! 확실한 건, 두 개가 겹쳐지면 좀비들이 그쪽에 잠시 발이 묶이는 모양이더라고! 홀린 것처럼 멍하니…….”

“아, 잠깐만! 조용히 좀 해봐. 이거, 무슨 소리야? 경숙이 언니 목소리 아니야?”

아― 아―

더 커진 신음. 덩치만큼이나 화끈하고 큰 소리였다. 삼식이가 어지간히 기운을 쓰는 모양이었다. 태권소녀의 얼굴이 아까 제니에게 정곡을 찔렸을 때보다 더 빨개졌다.

“너, 이 새끼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어떻게 경순이 언니를 억지로 끌고 가서…….”

태권소녀의 말에 유빈이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어, 억지로 그게 되냐! 저 덩치를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저게 당하고 있는 걸로 들리냐? 자기가 좋아서 내는 소리……지. 아, 씨발. 삼식이 새끼, 뭐하고 있는 거야!”

그 단단한 논리에는 태권소녀도 차마 부정을 하지 못했다. 새총과 총을 든 놈들 역시 멈춰 서서 당혹스러워하면서도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어후, 쪽팔려. 빨리 좀 끝내고 나와라…….

당장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유빈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둘이 숨어서 그 짓을 하고 있는 게 편의점 근처 어딘가라는 것은 알지만, 태권소녀 팀도, 유빈 일행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눈치만 보며 머뭇거렸다.

유빈이 그쪽으로 가기 위해선 자동차 장애물 밖으로 나가야 하고, 새총들이 그쪽으로 가려면 유빈을 겨누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사실 그런 것보다 더 큰 이유는 기괴한 정사의 현장을 덮쳐서 그 충격적인 실상을 직접 눈으로 볼 자신이 없다는 점이다.

태권소녀는 입을 꾹 다문 채 분하다는 듯 유빈 일행을 노려보고, 유빈과 보안관은 그 민망하면서도 멋쩍은 시간들을 보내기 위해 식은땀을 쫙쫙 흘려야 했다.

정작 그 짓을 하는 건 삼식이인데, 왠지 발가벗겨져서 망신을 당하는 건 자신들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니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삼식이 오빠, 게이…… 아니었어요?”

제니가 속삭였다.

응? 그 천하에 여자 밝히는 놈이 게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보안관과 유빈은 눈을 똥그랗게 떴다. 보안관이 작게 물었다.

“아니야. 왜 그런 생각을 했어?”

“하긴…… 그냥 아무 근거도 없이 제멋대로 결론 내린 거였네요……. 남자들이 저를 볼 때, 이따금씩 그…… 욕망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눈에 어른어른하거든요. 근데 삼식이 오빠는 그런 게 전혀 보이질 않아서 ‘아하, 이 오빠는 게이구나’ 하고 생각했었어요. 그럼 이제 더 이해가 안 가네요. 왜 그렇게 저한테 관심이 없던 걸까요?”

제니는 멋쩍다는 얼굴로 슬쩍 웃었다.

그건 걔가 볼 때, 네가 어지간히 못생겨서 그래.

제니의 의문에 대한 답은 가지고 있지만, 보안관과 유빈은 차마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걸 말하고 나면 삼식이의 기이한 여자 보는 눈도 다 설명해야 되고, 그놈이 얼마나 멍청이인지까지 일일이 납득시켜 줘야 할 테니까. 두 남자는 그냥 마지막 질문을 못 들은 척 넘어가기로 했다.

“에헷!”

이른 아침의 정사를 한참이나 더 요란스럽게 즐기고 슬금슬금 건물 밖으로 나온 삼식이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집중되자 어색한, 그러면서도 쏟아부을 것을 바닥까지 다 쏟아부은 남자 특유의 개운한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그의 뒤 서너 발짝 뒤에는 경순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부끄러워하며 새색시처럼 따라온다.

“야이 개새끼야!”

유빈과 보안관이 동시에 쌍욕을 날렸다.

“경순이 언니! 괜찮아?”

삼식이를 밀어젖히고 뛰어간 태권소녀는 누가 봐도 멀쩡한 경순을 호들갑을 떨며 부축하려 들었다. 그 덕에 경순을 향한 시선은 더 집중되었다.

경순은 목덜미까지 새빨개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 같은 계집애. 차라리 ‘이 언니가 지금 막 XX했어요!’라고 광고를 하지 그래.

유빈은 태권소녀가 발차기는 할 줄 아는지 모르겠지만, 미움받기 딱 좋은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야이 멍청아! 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알아? 하마터면 너 때문에 큰 싸움 날 뻔했잖아!”

보안관이 삼식이의 등짝을 후려쳤다. 하지만 삼식이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하하, 웃었다.

“아니, 왜 나 때문에 싸움이 나? 정작 나는 러브 앤 피스를 하고 있었는데. 하하하, 그런 것보다 나랑 쟤는 이제 사이좋게 지내기로 했단 말이야. 이야기해 보니까 나쁜 애들 아니더라고. 너희들도 싸우지 마.”

이야기? 너는 이야기를 거시기로 하냐, 이 개새끼야!

보안관은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 같았지만, 상대 여자가 바로 근처에 있어서 차마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보안관을 대신해 삼식이에게 욕을 해준 것은 태권소녀였다.

“웃기지 마! 너, 이 새끼! 용서 못 해! 순진한 경순이 언니를 속여서 무슨 짓을 하려고!”

눈에서 불이 나올 만큼 강하게 노려보는 꼴이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듯하다.

아니, 내가 뭘 속여?

삼식이가 변명을 하려 하는데, 삐이익― 멀리서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돌아가자! 누나, 돌아가요!”

2층 건물의 안경잡이가 다급하게 외치고, 무기를 든 두 놈도 건물들 사이로 뛰어가 버린다.

삭― 삭―

건물들 여기저기에 서 있던 놈들이 모두 재빨리 모습을 감췄다.

삐이이이익―

그러는 동안에 또 한 번 호루라기 소리가 아주 길게 울렸다. 경순과 함께 뛰어가기 전에 태권소녀는 마지막으로 또 한 번 보안관과 삼식이를 흘겨보았다.

“우리도 도망가야 돼! 빨리 뛰자!”

삼식이가 채근했다. 아마 경순에게서 무슨 이야기인가를 들은 모양새다.

아…….

여기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끝내기는 아쉬운 유빈이 태권소녀의 등을 향해 외쳤다.

“내일 다시 올게!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오지 마! 또 보면 죽일 거야!”

태권소녀가 빽! 소리를 지르며 골목 안으로 사라지고, 어딘가에 숨은 보초는 세 번째로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눈으로 좇는 유빈을 삼식이가 보챘다. 말은 저렇게 해도 삼식이와 경순의 정사 이후 경계하는 기색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유빈아, 뭐해! 좀비 온다니까!”

“네가 언제 그런 말 했어, 이 새끼야! 좀비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아놓고서!”

“하하하! 그랬나? 하여튼 빨리 와!”

유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면서 삼식이는 밝게 웃었다. 오랜만에 몸을 푼 게 어지간히 기쁜 것 같다. 제니와 보안관, 그리고 신입은 벌써 저 앞에서 선로로 이어진 철책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근데 그럼 뭐지, 이 시체는?”

교통 표지판에 대롱거리며 매달린 문제의 시체를 지나치면서 유빈이 중얼거렸다. 오늘 만났던 놈들이 저만큼 잔인한 일을 저지를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롸아아아―

멀리서 좀비들의 포효가 들려온다. 전속으로 도로를 내달렸다. 그리고 높다란 플라스틱 경계 벽을 기어올라 다시 선로로 넘어갔다.

아직은 한참 뒤에서 울리기는 하지만, 저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가까워지기 전에, 좀비들의 모습이 눈에 띄기 전에 모습을 숨기는 게 급선무다.

선로의 자갈을 밟자마자 모두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린 다섯 명은 일단 제자리에 주저앉아 한숨을 돌렸다.

정말 모처럼 새로운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고, 그럼에도 반가움보다 경계하는 마음이 더 컸으며, 그런 불신 때문에 한때 충돌 직전까지 갔던 일들이 뜻밖의 방법에 의해 나름 잘 마무리되어서 안도가 되었다.

“하아, 하아~ 그렇게 나쁜 애들 같지 않았어. 완전 양아치 같은 놈도 없었고. 그렇지?”

배낭에서 꺼낸 물로 입술을 적시며 유빈이 말했을 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얼굴이 총을 들고 슬금슬금 다가왔을 때는 심장이 빠르게 쿵쾅거렸지만, 사실 저쪽에서 진심으로 죽이려 들었다면 벌써 죽이고도 남았을 것이다.

위쪽에서 배낭에 불을 붙여 던지기만 했어도 자동차 뒤에 숨을 수 없었을 테니까. 후드를 벗은 제니도 땀이 송송 솟아 발그레한 얼굴로 동의를 해줬다.

“응. 그 트레이닝복 입은 언니도 순진한 사람이더라고요.”

태권소녀에 대한 제니의 평가에 보안관이 정색을 했다.

“순진하다고? 그 싸가지 없는 계집애가?”

“네. 엄청 순진해 보였어요. 꽤나 양심적이랄까, 도덕적이랄까. 뭐, 하여튼 그런 반듯한 타입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여왕 노릇 잘하라고 도발을 했을 때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발끈했겠죠.”

“그럼 안 순진한 사람은 어떻게 나오는데?”

“당연히 무시하고 대꾸도 안 하죠. 자기를 대화의 소재로 삼아서 이득 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그리고 이쪽 정보를 캐려는 시도가 하나도 없었잖아요. 그냥 막연히 계속 가까이 오지 말고 돌아가라는 말만 했었죠. 무서웠던 거예요.”

“응, 맞아. 걔 그런 성격이래. 고지식하고 좀 고집이 있나 봐. 내가 우리 이야기 좀 잘해 달라고 했을 때 경순이도 걱정하더라.”

삼식이가 끼어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술에는 경순이의 것이었을 게 분명한, 번들거리는 분홍색 립스틱이 아직도 이리저리 문대져 있다.

“경순이 같은 소리 하네. 누가 들으면 한 10년 사귄 줄 알겠다. 이 새끼, 넌 진짜…….”

조금 전의 그 황당함이 되살아난 보안관은 삼식이를 흘겨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삼식이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어지간히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뭐가 그렇게 좋아, 인마? 고개 딱 돌렸는데 네가 없었을 때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네가 남아 있으니까 도망도 못 치고.”

유빈이 입술을 닦으라는 시늉을 하며 삼식이를 나무랐다. 삼식이는 팔뚝으로 슥슥 훑어 대충 립스틱을 지웠다.

“예전 같으면 나도 그렇게까지야 안 했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잖아. 언제 또 만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고. 게다가 워낙에 오래 참았으니까……. 지금 벌써 며칠째야? 열흘, 11일, 12일, 13…….”

삼식이가 손가락을 꼽아가며 XX를 하지 않고 지낸 날들을 헤아린다.

“그래봐야 보름이야. 그게 뭐가 길어, 미친놈아! 나는 벌써 한 대여섯 달은…….”

발끈해서 손가락질을 하던 보안관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뒤늦게 깨닫고 갑자기 목소리를 줄였다. 자랑은 아닌 것이다.

“근데 씨발, 뭐라고 했기에 그렇게 금방 대주디? 응? 뭐라고 하면서 작업을 걸었어?”

신입이 호기심 가득한 눈을 빛내며 물었다. 대준다는 어휘를 사용할 때, 제니는 어후~ 하는 소리를 내며 싫다는 표시를 했다.

“쉿―!”

모두의 시선이 삼식이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 유빈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고는 아까 보안관이 찍어 만든 벽의 구멍 가까이 눈을 가져갔다.

“뭔데?”

유빈을 따라 틈에 얼굴을 바짝 댄 보안관의 시야에도 좀비들의 가장 앞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로와 평행을 이룬 채 넓고 길게 뻗은 도로를 꽉 채우고 걷는 좀비들의 모습은 복지 센터의 악몽을 떠오르게 했다.

불을 질러 없애고, 또 따돌려서 도망을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도 역시 좀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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