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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안전지대는 없다 (3) (158/449)


158. 안전지대는 없다 (3)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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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보안관의 물음에 유빈의 눈동자도 흔들렸다. 분명 좀비로 변한 사람들이 꽤 많았을 게 빤한데…….

그리고 선로 위에 있던 놈들 중에도 운 좋게 열차 사고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은 녀석이 있을 테고. 그렇다면 놈들은 모두 저기 멀리 보이는 역사 쪽으로 가버린 걸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좀비를 한 마리밖에 만나지 않았던 것은 단지 행운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부근에 놈들이 있을지 모른다면 지금이라도 빨리 여기에서 벗어나야 옳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겁먹은 눈동자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유빈의 시선에, 파괴된 차단벽이 들어왔다.

“저 아래엔 뭐가 있지?”

뻥 뚫린 차단벽 구멍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5~6미터 아래의 도로에 떨어진 또 다른 객차의 모습이 눈에 띈다.

날벼락처럼 떨어져 내린 객차에 깔려 뭉개진 자동차들로 도로는 어지럽다. 거기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바로 아파트 단지가 있다.

“좀비들이 이리로 뛰어내렸을까?”

옆에 와서 선 보안관이 묻는다. 그럴 법하다. 놈들은 먹이를 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몸을 날린다. 당시만 해도 저 아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아니다. 유빈은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 하여간 돌아가면 이쪽 방향으로는 벽을 좀 단단히 세워야겠네. 신경 쓰인다.”

끔찍한 사고 현장과 시체들의 모습은 그들에게 이제 그만 돌아가라 권유하고 있었다. 이미 해는 기울었고, 더 가봐야 어두컴컴한 역사를 헤매는 일은 위험성을 가중시킬 뿐이다.

애써 거길 한 번 둘러본다고 해도 100퍼센트 안전하다는 보증서 따위는 못 받는다.

돌아가서 허술하나마 달아날 구멍이 구비된 요새를 만들고, 그걸 믿고 잠이 드는 수밖에 없다. 지난 2주 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

늘 느끼던 것이지만, 강원도는 정말 일찍 어두워진다. 그리고 밤이 되면 뜨거웠던 대낮의 기억이 무색할 만큼 추위가 사무쳤다.

흐으으~ 진우는 두 팔로 몸을 감싸며 가볍게 떨었다. 불을 지피기는 했는데, 바람이 불어 대니 그것도 별 효과가 없다.

할머니 집에는 그가 입을 만한 크기의 옷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겁게 이불을 지고 나올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먹을 것들을 챙겨 들고 다니는 것만 해도 이미 힘들다.

“차라리 안으로 들어갈까?”

진우는 바로 곁의 컨테이너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저 안에서 불을 피우기에는 아무래도 연기가 부담스럽다.

그가 위치해 있는 곳은 어느 채석장의 입구에 있는 현장 사무실 앞. 하루 종일 도로 위를 걷고 골짜기 하나를 넘은 뒤 또 걸어서 도착한 곳이 여기다.

더 가봐야 인가를 발견할 거라는 자신도 없고 해서, 차라리 초저녁부터 이곳에서 밤을 지새울 준비를 하기로 했다.

컨테이너 안에 쌓여 있던 장부와 서류 뭉치들을 꺼내 책상 서랍 위에 올려놓고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그 위에 주변에서 긁어온 잔가지들을 얹었다.

“빨리 불어라…….”

모닥불로 데운 물을 부어놓은 뽀글이를 향해 진우는 혼잣말을 했다.

그렇게 맛있던 라면에서 이제 슬슬 역겨운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그제부터 계속 라면만, 그것도 주로 생 라면만 먹어 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계란 프라이에 따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갓 지은 밥, 그리고 적당하게 잘 익은 김치가 먹고 싶다. 그런 음식들하고는 거리가 먼 뽀글이를 숟가락으로 입에 퍼 넣으며 진우는 오늘 하루를 돌이켜 봤다.

소모적인 하루였다. 그렇게 힘들게 걸었는데 별로 멀리 온 것 같지도 않다. 도중에 좀비 열 마리를 잡고, 총알 열세 발을 썼다.

사실 진우는 자신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도 잘 모른다.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낮에 지난 어느 국도의 표지판이 삼척으로부터 28킬로미터, 동해로부터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는 것, 그리고 옥계라는 지명이 자주 눈에 띈다는 것 정도다.

서울이 있는 북서쪽으로 움직인다고 하고는 있지만, 나침반이 없으니 그 방향조차 그저 막연한 추측일 뿐이다.

후웅후웅―

산 안쪽에서 부엉이인지, 올빼미인지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음?”

뽀글이를 반쯤 먹었을 때, 진우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총을 챙겨 들었다. 저 멀리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아니, 솔직히 말해 이 느낌은 인기척이 아니다.

젠장…….

진우는 급히 컨테이너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러고는 엎드린 자세로 총을 겨누고 도로 위를 주시했다. 주야 조준경이 망가져서 밤이 되면 시야가 수십분의 일로 줄어들어 버린다.

하아~ 하아~

라면 냄새가 섞인 숨을 토해내며 전방을 노려보고 있던 그의 눈에 검은 그림자 네 개가 들어왔다. 진우는 그 그림자가 모닥불이 밝히는 범위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사방이 온통 칠흑같이 어두운 터라 조그만 모닥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은 꽤나 강력한 조명처럼 느껴진다. 네 개의 그림자는 거리가 줄어들수록 점점 더 빠르게 다가오는 중이다.

“거기 누구예요?”

의미 없는 짓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진우는 말을 걸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진우는 한 번 더 큰 소리로 물었다.

이 병장과 김 상병의 명령에 따라 총구를 돌리며 전투를 벌이던 동안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묘한 감정이다. 사흘 전 밤까지만 해도 진우는 방아쇠를 당기는 데 일말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었다.

하지만 혼자 남겨지자 모든 게 달라졌다. 혹시, 만에 하나라도 겁에 질려 멀쩡한 사람을 좀비로 착각하고 쏘는 것일까 봐 두려워진 것이다.

“더 오지 말고 대답해요! 쏩니다!”

진우가 또박또박 외쳤지만, 그림자들은 아무 대꾸 없이 부지런히 뛰어오기만 한다. 마침내 그들의 얼굴이 어렴풋하게나마 보일 만큼 거리가 가까워졌다.

썩어버린 피부, 퀭하니 뚫린 눈구멍, 작업복 밖으로 흘러내린 내장, 부러져 뒤틀린 팔다리…….

어떻게 봐도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좀비라는 걸 확인한 진우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한밤의 강원도. 그 깊은 적막을 깨는 날카로운 총소리가 울리고, 가장 우측의 좀비가 픽, 쓰러진다.

채석장의 깎아둔 바위들에 부딪혀 돌아온 메아리가 끝나기도 전에 진우는 두 번째 탄환을 발사했다.

타앙―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고 오던 놈의 이마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난다. 그리고 다시 또 두 발이 발사되고, 나머지 두 마리의 좀비도 마저 쓰러졌다.

네 마리를 모두 고꾸라뜨린 후에도 진우는 한동안 컨테이너 위에 엎드린 채 놈들이 뛰어오던 길을 노려보았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두 번째 웨이브를 대비하는 것이다.

“정말…… 이제 작작 좀 와라.”

10여 분을 더 대기한 뒤에야 컨테이너 아래로 내려온 진우는 한숨을 내쉬며 꺼져 가는 모닥불 위에 서류들을 던져 넣었다.

좀비의 등장과 함께 솟아났던 식은땀이 가라앉자 추위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뽀글이 봉지는 바닥에 엎질러져 있다. 어차피 더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으니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사탕을 몇 알 까서 입안에 던져 넣었다.

탈칵, 플래시를 켠 진우는 20여 미터 앞에 자빠진 좀비들의 시체를 비추며 가까이 다가갔다.

네 마리의 좀비 시체는 이미 그보다 더 앞서 진우를 덮치려 했다가 머리에 바람구멍이 난 채 죽어버린 다른 세 마리 좀비의 시체 근처에 자빠져 있다.

그러니까 오늘 밤만 벌써 일곱 마리째의 좀비가 이곳으로 온 거다.

“확실히…….”

놈들의 시체를 찬찬히 살펴보던 진우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뭔가 비껴 맞는 것 같아. 총이 슬슬 가고 있는 건가?”

총알구멍이 난 자리가 대체적으로 이마의 중앙이 아니라 한쪽으로 쏠려 있다. 예전에는 없던 일인데, 어젯밤부터 점점 그런 경향을 보인다.

오늘 낮에도 그래서 몇 놈의 대갈통이 아니라 귀만 날려 버리는 바람에 아까운 총알을 허비해야 했다. 지금은 그런 총의 특성을 감안해서 쏜다고 한 건데도 가운데를 명중시키지 못했다.

“야, 너 왜 그래? 좀 더 버텨줘.”

진우는 자신의 K―2를 쓰다듬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애초에 그의 손에 들어올 때부터 새 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느낌이 가는 바로 그 지점에 총알을 박아줬는데, 슬슬 내구도의 한계를 보이는 것 같다. 그제 그 비를 두드려 맞은 뒤에 제대로 손질을 못 한 탓일 수도 있다.

이래저래 지금의 진우로서는 어찌해 볼 방법이 없는 문제다. 실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 역시 골치 아픈 일이다.

오늘 하루 동안 사용한 탄약만 스무 발. 이 추세대로라면 서울까지 가기는커녕, 일주일 내에 가진 총알이 전부 바닥나 버릴 터였다.

서울까지 운 좋게 도착한다고 해도 탄약이 없으면 계속 생존해 나가기가 힘들다.

“젠장! 발전소 때부터 시작해서 어젯밤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대체 왜 이렇게 몰려오는 거냐고. 나한테서 무슨 좀비를 끌어들이는 페로몬이 나오나?”

플래시를 끈 진우는 다시 모닥불 앞으로 돌아와 불을 뒤적이며 투덜거렸다.

이상하게 자꾸 좀비들이 덤벼든다. 이렇게 인적도 드문 곳에서 하필이면 자신이 있는 곳을 정확히 알고 찾아온다니, 너무 수상하지 않은가. 그게 분하고 또 불편하다.

“엇, 어휴, 놀라.”

눈앞에 갑자기 날아든 하얀 물체 때문에 진우는 기겁을 했다. 하이바 근처를 스치고 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은 손바닥만 한 흰 나방이었다.

“팅커벨이 여기도 있네…….”

화천의 내무반 시절에 자주 보던 이 커다란 나방을 고참들은 팅커벨이라고 불렀다. 사회에 있을 때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양과 크기다.

어쨌거나 귀찮아서 진우는 손사래를 쳐 놈을 쫓았다. 하지만 팅커벨은 계속 불 주위를 맴돌며 날다가 결국 날개를 태우며 모닥불 안으로 떨어져 버렸다.

지지직―

기분 나쁜 냄새와 타는 소리에 진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후, 수십 마리의 날벌레들과 함께 두 번째 팅커벨이 날아와 그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불을 끄든가 해야지, 벌레가 너무 꼬이네.”

그렇게 중얼거리던 진우는, 어제부터 좀비들이 왜 그렇게 공교로울 만큼 용하게 그가 있는 곳을 찾아내서 오는지 조금 짐작이 됐다.

“……이거였나? 이것 때문에?”

진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모닥불 위로 오줌을 갈겼다. 만약 좀비들이 불에 이끌려 오는 거라면, 조금 추위에 떠는 한이 있더라도 빨리 꺼버리는 편이 낫다.

치이익―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씨가 사그라지면서 사방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진우는 플래시 불빛에 의존해 컨테이너 박스 위로 기어 올라갔다. 안에서 잠이 든다면 따뜻하기야 하겠지만, 아까 자물쇠를 부순 터라 안전하지가 않다.

“후우우~”

하이바를 벗어 옆에 두고 팔베개를 한 채 하늘을 보며 누운 진우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있자니, 꼭 이 세상에 자신 혼자만 남겨진 것 같은 압도적인 고독감이 밀려온다.

외롭다. 너무 외로워서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다. 숨이 가빠진다. 탈칵, 진우는 다시 플래시를 켜고 하이바를 집어 들었다. 하이바 안쪽에는 핑크 펀치 화보집에서 오려낸 사진이 붙어 있다.

서로의 등에 기대앉아 환하게 웃고 있는 제니와 테라. 누가 더 낫다고 판정하기가 어려울 만큼 예쁘다.

하아~ 넋을 놓고 사진을 바라보고 있자니, 터질 만큼 답답하던 가슴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 누구랑 할래? 빨리 말해봐.

김 상병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진우는 마음속으로 누, 구, 랑, 할, 까, 요, 를 외며 제니와 테라에게 번갈아 눈길을 주다가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 아름다운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둘 다, 아니, 둘 중 하나라도 제발 살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좀비 세상이 끝나고 나면 TV를 통해 그녀들의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지는 걸 보고 싶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지옥 속에 있던 삶이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제니야…….”

하이바를 가슴에 댔을 때, 진우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제니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그녀가 더 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녀의 꿈을 꾸길 기도하며 진우는 눈을 감았다.

“만 발!”

40여 분 정도 비몽사몽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하던 진우는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며 외쳤다. 김 상병이 해주었던, 연병장 구령대 아래 만 발의 실탄 이야기가 꿈속에서 선명하게 기억난 까닭이다.

“허억~ 허억~ 만 발……. 그래, 만 발이나 있다고 했어.”

진우는 얼굴의 땀을 씻어내며 중얼거렸다. 문제는 그 이야기가 정말인지, 아니면 그저 어리벙벙한 신병을 놀리기 위한 장난이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그제 밤 그 말을 했을 때, 이 병장도 그 싱거운 놈을 믿느냐면서 웃었었다. 하지만 직접 본인에게 확인해 볼 겨를이 없었다. 그럴 틈도 없이 휘몰아쳐 오는 좀비들을 쓰러트려야 했으니까.

만 발…… 진우는 그 숫자를 몇 번이고 곱씹었다. 비록 총이 슬슬 명중력을 잃어가고 있다고는 해도 그만큼의 탄환이면 무적이 되는 거다.

아니, 그 십분의 일만 실재해 줘도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화천…… 자신이 있는 곳에서 적어도 2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

만약 거기까지 갔다가 허탕이라도 치는 날에는 100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를 빙 돌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까지는 300킬로미터, 화천까지는 200킬로미터.

어느 길로 갈까…….

진우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사실 애초부터 답이 정해진 고민이었다.

화천. 내일부터는 북서쪽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야 한다. 탄약을 확보하는 게 먼저다.

***

이런저런 물건들을 동원해 선로 양 끝에 방벽을 쌓은 후, 대충 끼니를 때우고 나니 밤이 되어버렸다. 물론 좀비들이 마음먹고 달려들면 몇 분 만에 뚫릴, 허술하기 짝이 없는 수준의 방벽이다.

하지만 그 정도라도 보안관 일행에게는 절실했다. 여차했을 때 선로 아래 세워둔 자동차까지 달아날 시간, 그게 필요하니까.

“보안관, 불 좀 켜봐. 물병이 어디 있는지 안 보여.”

핏―

유빈의 말에 보안관이 랜턴의 스위치를 켜자 사방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어둠이 아주 얇게 한 꺼풀 더 벗겨진다.

역시 밤이 깊어질수록 손전등의 좁은 광원만으로는 견디기 어렵다. 부피가 크다는 이유로 랜턴을 하나밖에 가져오지 않은 게 못내 아쉽다.

여덟 시가 넘을 무렵부터 사방이 슬슬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한 시간 반이 더 지난 뒤에는 온통 캄캄해졌다.

전기가 사라진 도시의 밤, 그 완벽한 어둠은 낯설다. 그리고 정말로 코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빛이 없는 시간들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을 도시에서 자란 보안관 일행에게, 칠해놓은 듯 까만 그 밤하늘은 막막함이자 두려운 경험이었다. 물론 이제는 이미 열흘이 넘도록 지켜봤으니 슬슬 익숙해져 갈 때도 됐건만…….

밤이 되어 다행인 점이라고 하면, 지독하게 뜨거웠던 선로 위의 열기도 그나마 조금은 가라앉았다는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불이 필요한 야간에는 모닥불을 피우지 않기로 했다.

그들이 누워 있는 자리에서 좌우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자갈 사이로 박아놓은 손전등이 희미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저 거리에 저 정도의 조명을 켜두는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인간의 불안이라는 것은 그런 무의미한 시도와 희미한 빛만으로도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법이다.

만약 어둠 속에서 좀비가 가까워져 온다면 그 징조는 저 빛이 아니라 훨씬 더 이전에 소리를 통해 알려질 것이다. 도저히 속일 수 없는, 자라락자라락 하는 자갈 밟는 소리가 그들에게 경보음이 되어줄 터였다.

침목 사이사이마다 고루 뿌려진 자갈을 밟지 않고 여기까지 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와아아―

먼 곳에서 좀비의 포효가 한 번씩 메아리쳐 들려올 때면, 가벼운 소름이 돋았다.

“끄응~!”

세 겹으로 겹친 박스 위에 누운 삼식이가 앓는 소리를 낸다. 암만 쪼그리고 자세를 바꿔봐야 긴 다리의 일부는 박스 밖의 자갈밭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그 옆에서는 신입이 꾸벅꾸벅 존다. 택배 트럭에서 찾아낸 보물들을 밧줄에 묶어 이 높은 선로까지 끌어 올리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느라 다들 녹초가 되어버렸다.

머리 위에서는 누더기처럼 둘러쳐진 천막이 흔들리며 음산한 느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양쪽에 우뚝 선 송전탑에 밧줄을 걸고, 모래 트럭에서 벗겨 온 장막을 주 베이스로 삼아 커튼과 이불보, 쓸모없는 옷들을 더해 얼기설기 엮어놓은 것이라 보기에는 영락없이 거지꼴이지만, 그래도 내일 해가 떠오르면 이 넓지 않은 천막이 큰 역할을 해줄 것이다.

“누가 먼저 보초 설래?”

보안관의 물음에, 유빈이 가볍게 손을 들었다.

“에, 하지만 오빠는 어제도 두 타임이나 보초를 서느라 제일 조금 잤잖아요. 괜찮아요?”

유빈 바로 옆자리의 제니가 몸을 발딱 일으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 난 원래 잠이 별로 없어. 걱정 안 해도 돼.”

그렇게 대답하는 유빈의 눈은 피로로 떼꾼하게 꺼졌다. 피곤하다.

그래도 어차피 나눠 서야 하는 보초이니만큼, 보안관이 가장 덜 피로하도록 시간을 배치해야 한다. 보안관이 지치면 이 파티는 무너진다.

제니와 보안관은 잠시 얼굴을 마주 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표정으로 각각 공기 방석과 거위 털 파카를 베고 자리에 누웠다. 둘 다 택배 트럭에서 가져온 물건들이다.

“정 못 버티겠으면 나한테 바꾸자고 해. 어차피 나도 금방 잠들 것 같지는 않으니까…….”

보안관은 그 말을 하고 채 10초도 지나지 않아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기 시작했다. 그 사이사이마다 삼식이가 푸우~ 푸우~ 하고 입김을 내뿜고, 신입은 빠득빠득, 이를 간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잠들어 있음을 알리고 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생존해서 휴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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