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7. 안전지대는 없다 (2) (157/449)


157. 안전지대는 없다 (2)
202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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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문소리가 난 뒤에도 한동안 신 차장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개새끼…….”

텅 빈 공간을 향해 속삭이듯 욕설을 내뱉는 데에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도 그 말이 소리가 되어 자신의 귀를 울리자 막혀 있던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든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주저앉은 신 차장은 한참을 꼼짝도 하지 않고 멍하니 파일을 바라보았다.

열여섯 개의 실험체. 저 중에서 만약 항체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나는…….

오 박사의 악마 같은 얼굴이 떠오른 신 차장은 도리질을 해서 머릿속을 비웠다. 그리고 옷매무시를 바로 한 후, 작은 회장이 기다리고 있는 식사실로 향했다.

“준비 다 됐어?”

평상시와 다름없이 그 방에는 발가벗겨진 채 크레인에 매달린 사람 하나와 방균복으로 무장한 여섯 명의 직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제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먼저 작은 회장이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다.

신 차장은 크레인에 고정된 채 겁먹은 눈동자만 격렬하게 굴리고 있는 젊은 여자의 몸에 혹시 이물질은 붙어 있지 않은지 찬찬히 검사했다.

가뜩이나 눈엣가시처럼 여겨지고 있는 상황인데 작은 회장의 이빨이라도 나갔다가는 그 즉시 이 발판 아래로 밀려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오늘 저녁 식사감과 눈이 마주친 신 차장이 목소리를 낮춰 중얼거렸다. 다들 자신의 할 일에 몰두해 있던 다른 직원들은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제발…… 제발…….

눈물이 가득 고인 여자의 눈동자가 애절하게 빈다. 그 시선을 차갑게 외면하며 신 차장은 크레인을 내리는 단추를 눌렀다.

지이잉―

발판이 열리고 여자의 몸이 천천히 죽음을 향해 내려간다.

“너나 나나 똑같아. 별로 다를 게 없어.”

여자의 뒤통수에 대고 신 차장은 또 나지막이 속삭였다.

“피차 죽을 날이 바로 코앞까지 와 있다고.”

그롸아아아―

사람의 기척을 느낀 작은 회장은 발광을 하며 울부짖어 댔다.

몇 초 뒤, 크레인이 멎고 격리용 투명 플라스틱 문이 열리자 이제는 사람이었던 흔적이 별로 남지 않은 작은 회장이 맹렬한 기세로 뛰어나와 여자의 몸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비릿한 냄새와 함께 피가 사방으로 치솟아 올랐다.

“너희 대장 어디 있어?”

복도에서 경비병을 만난 오 박사는 메이저의 행방을 물었다. 경비병은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15층 정원에 계십니다.”

“아, 그랬지. 맞아.”

오 박사는 경비병의 어깨를 두드려 용건이 끝났음을 알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이 건물의 중간 높이쯤 되는 15층에는 꽤나 넓은 야외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런 때에 그나마 나무 그늘 아래에서 편히 한숨 돌리고 초록의 잔디밭을 구경할 수 있는, 정말 드문 장소이기도 했다.

“우왓, 더워! 후끈하구만.”

정원으로 통하는 유리문을 열자 외부의 열기가 확 오 박사의 몸을 덮쳤다. 25도로 항상 유지되는 에어컨 덕에 계절을 잊고 있던 오 박사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얼굴을 태울 듯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햇살을 받으며 정원의 끝까지 걸어가자, 한때는 분수를 끼고 조성된 산책로였던 곳에 앉아 있는 메이저가 보였다.

“오오, 곽 소령! 덥지 않아? 이걸 꼭 여기서 해야 돼?”

메이저의 옆에 걸터앉으며 오 박사가 물었다. 메이저의 시선은 철망이 둘러진 잔디밭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바, 바, 밖에서 해야 벼, 벼, 변수가 없어. 외부 화, 환경이랑 다르면 실험이 의, 의미가 없으니까.”

딴에는 그의 말이 맞았다. 폐쇄된 실내에서 이뤄진 실험만 믿고 직접 필드에 투입했다가 만약 다른 결과가 벌어지면 곤란하다. 좀비들을 상대할 때는 특히 더 그렇다.

컹― 컹―

열 평 남짓한 철망 안에서는 커다란 셰퍼드 다섯 마리가 조련사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라도 영리한 놈들이라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좋은 개들이다.

명령에 따라 언제라도 사람의 명줄을 끊을 수 있는 놈들인 동시에 아기를 보살필 수도 있는, 그런 놈들이었다.

한데…… 신기하게도 이 영리한 놈들조차 무슨 이유에선지 좀비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그렇게 코가 떨어져 나갈 만큼 지독한, 썩은 냄새가 풀풀 풍겨 나오는 좀비가 바로 옆에 있어도 개들은 좀비를 향해 짖지도, 달려들지도 않는다.

마치 그 자리에 없다는 듯 구는 것이다. 잡종견이든 최우수 군견이든 모두 매한가지였다.

좀비들 역시 동물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만약 개에게 좀비를 공격하도록 훈련시킬 수만 있다면 정말로 요긴하게 써먹을 수가 있을 텐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냈다. 특정한 냄새를 맡으면 공격하도록 개들을 훈련시키고, 그 냄새를 좀비들에게 덧입혀 보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기만 하다면 상공에서 냄새 스프레이를 폭파시켜 도포하고, 나중에 개들을 투입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굳이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움직일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 역시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좀비라는 놈들은 아무리 지독한 냄새를 뿌려도 그걸 모두 흡수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몇 번의 실험 동안 개들은 좀비를 외면하는 중이다.

“오늘은 무슨 냄새야?”

오 박사가 물었다. 메이저는 오늘 좀비에게 뿌릴 스프레이를 들어 보였다.

치잇.

TVZ―06이라고 적혀 있는 캔을 하늘에 조금 살포하니 낯설면서도 강렬한 냄새가 퍼졌다.

일상의 생활에서 맡기 어려운 특이한 향기여야 하기 때문에 태양 그룹 조향실에서 특별히 배합한 것이다. 물론 앞서 있은 다섯 번의 시도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으…… 뭐지, 이 냄새? 그래, 효과는 좀 있고?”

오 박사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셰퍼드들이 미친 듯이 짖어 대며 이를 드러냈다.

흠, 오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환장을 하는구만.

“이, 이거, 하, 한 방울만 묻어도 저놈들이 아주 무, 물어 주, 죽일 거야. 시, 시, 시범을 보여주지.”

메이저가 신호를 보내자 대기하고 있던 대원이 자신의 보호복 위로 스프레이를 뿌리고 철창을 열었다.

두툼한 보호복 여기저기에 냄새를 듬뿍 뒤집어쓴 대원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다섯 마리의 셰퍼드는 곧바로 달려들었다.

목과 겨드랑이, 발목처럼 치명적인 곳을 향해 개들의 날카로운 이빨이 박혔다.

그 흔들어 대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대원은 이내 쓰러져 버렸다. 가죽으로 된 보호복의 표면이 걸레처럼 찢기고 패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을 때, 메이저는 목에 걸고 있던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익― 하는 소리가 공기를 가르는 것과 동시에 개들은 공격을 멈추고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기가 막히는군.”

겨우 몸을 추슬러 우리 밖으로 빠져나오는 대원을 보며 오 박사가 중얼거렸다.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인 메이저는 기분이 좋아져서 미소를 지었다. 각진 근육질의 검은 피부가 햇살을 받아 윤이 난다.

“하지만 우리가 사람 잡으려고 이 짓을 하는 건 아니니까…….”

“그, 그, 그렇지. 조, 조, 조, 좀비 가지고 와.”

메이저의 명령이 떨어지자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이 바퀴가 달린, 관처럼 생긴 철제 상자를 밀고 왔다. 들어 있는 것은 물론 좀비다.

치이이이익―

구멍을 통해 상자 내부에 스프레이를 듬뿍 뿌린 대원들은 좀비 투여용으로 설치해 둔 문에 상자를 대고 뚜껑을 들어 올렸다.

쿵―

상자가 열리자마자 안에 있던 좀비가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 모르는 불상사로부터 소중한 개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 실험에 쓰는 좀비는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을 제거해 두었다.

그래서 좀비는 팔도 다리도 모두 절단된 상태이고, 얼굴에는 위아래의 턱을 고정하는 단단한 쇠 자물쇠가 설치되어 있다.

몸뚱이와 머리만 남은 채 바닥에 쓰러진 좀비는 메이저와 오 박사를 보고 몸을 꿈틀대며 반응했다.

“엇, 저거?”

좀비의 정체를 알아채 버린 오 박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저거, 어제 그거야? 응? 크크크, 자네도 참 어지간히 악취미구만.”

스프레이 세례를 받은 후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는 실험용 좀비는 어제 점심 식사에서 A708756이 포크를 훔친 것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던 그 여직원이다.

물론 그녀를 작은 회장의 식사로 지목한 것은 오 박사 본인이었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저런 꼴로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오 박사를 따라 메이저도 킬킬대기 시작했다.

“쇼, 쇼는 사, 사연이 있어야 더 재미가 있는 버, 법이잖아. 큭큭큭.”

컹― 컹―

냄새를 맡은 개들이 흥분해서 짖어 댔다. 대원들이 개들과 좀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철창을 치웠다. 그 짧은 순간 동안 오 박사와 메이저는 긴장과 기대 속에서 손에 땀을 쥐며 개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개들은 맹렬히 짖어 대기만 할 뿐, 바로 코앞에 자빠져 있는 좀비를 찾아내지 못했다.

열심히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쫓는 놈도, 흥분해서 철창을 긁어 대며 짖는 놈들도 모두 좀비를 공격하지 않고 지나쳐 버렸다.

“젠장…….”

오 박사가 혀를 끌끌, 차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혹시나 실험에 방해가 될까 봐 두어 시간 동안 꾹꾹 참아왔던 메이저도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한숨과 연기를 동시에 뿜어냈다.

실험용 좀비의 몸부림이 더욱 격렬해진다. 하늘을 보며 담배를 뻑뻑 피우던 오 박사가 입을 열었다.

“뭐…… 자꾸 캐다 보면 언젠가 걸리겠지. 그런 것보다 말이야, 사람들을 좀 더 데려와야겠어.”

“지, 지난주에도 서, 서, 서른 명이 넘게 구해왔잖아. 버, 버, 벌써 그걸 다 썼어? 사, 사, 살아 있는 사람들 구, 구경하기가 점점 힘들다고.”

“아, 나도 알지. 메이저, 자네가 애들이랑 고생하는 거. 근데 중요한 실험을 좀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래. 이게 어쩌면 아주 중요한 고비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며칠 내로 바짝 한 오륙십 명만 더 땡겨다 줘. 그쯤만 있어도 훨씬 도움이 될 거야. 반포나 여의도 어때? 거기, 사람 많은 데잖아.”

신 차장이 맡은 열여섯의 실험체는 아마 실패할 확률이 높으리라. 그러면 놈에게 책임을 물어서 좀비 밥으로 줘버려야지.
그 멍청한 새끼…….

오 박사는 음흉하게 웃었다.

“그, 그쪽은 요즘 군인들이랑 자꾸 겨, 겹쳐서 다른 데를 뚜, 뚫어야 돼. 아, 아무리 우리가 고, 공식적인 구, 구조 협력 업체라고 해도 너무 눈에 자, 자주 띄는 건 좀 그렇거든.”

생존자 찾기가 쉽지 않다고 엄살은 피웠지만, 말과는 달리 메이저는 이미 생각해 둔 곳이 있는 표정이었다. 연구실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 박사가 물었다.

“내일 어디로 갈 건데?”

메이저가 대답했다.

“주, 주, 중랑구에 가볼 거야. 상봉이랑 주, 중랑천 부근에 아파트도 많으니까. 거기서 겨, 경기도로 넘어가도 되고. 그, 그쪽에 바퀴벌레처럼 사, 살아 있는 놈들이 꽤 된다니까.”

***

보안관 일행은 선로 위를 걷고 있었다. 중랑천을 넘어가고 나서는 쭉 아파트가 이어졌다. 걷다가 멈춰 서서 선로 아래의 풍경을 구경하기도 해가며 가는 길이어서 속도는 그리 나지 않았다.

처음엔 기대와 불안의 심리를 감추기 위해 열심히 조잘대던 다섯 사람이지만, 이제는 자그락대며 자갈을 밟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어가는 늦은 시간에도 여전히 공기는 뜨거웠고, 달궈진 선로는 그보다 더 강한 열기를 뿜어내며 가뜩이나 지친 그들을 괴롭혔다. 발갛게 익은 얼굴마다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도 좋은 점을 꼽으라면, 선로라는 것이 가진 개방성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선로 위에는 장애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급격한 곡선주로도 없다. 덕분에 언제나 전방은 시야가 확보되어 있어, 갑작스레 튀어나올 좀비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선로의 양옆을 막아놓은 투명한 강화플라스틱을 통해 몇 미터 아래 거리의 풍경이 전달되지만, 새로운 것이나 희망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보이는 거라곤 그저 멈춰 선 자동차,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아파트, 그리고 이따금씩 지나가는 좀비 떼들의 행진뿐이다.

“더워…… 씨발, 존나게 걸었잖아. 얼마나 더 가야 되는 건데?”

신입이 가장 먼저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불만을 드러낸다.

글쎄, 어디까지 가려고 했던 것일까……. 그 말에 유빈도 문득 회의가 들었다.

걸어서 30분. 꽤나 긴 거리 같지만 좀비들이 달려온다고 생각해 보면 그땐 또 별게 아니다.

얼마나 더 가서 좀비가 없으면 안심하고 돌아갈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이렇게 별 대비 없이 무턱대고 계속 가는 게 잘하는 짓인지도 모르겠다.

“뻥 뚫렸네. 이리로 가다 보면 아예 강남까지 가나? 어? 저거.”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하던 삼식이가 가장 먼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뭔데? 왜 그래?”

보안관이 눈썹을 찡그려 가며 눈에 힘을 줘봐도 별로 보이는 게 없다. 삼식이도 분명하지 않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아니, 뭐가 움직이기는 하는데, 그게 뭔지를 잘…….”

조금 더 다가가자 그 정체가 명확해졌다. 저 멀리 이글이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선로 위에 상반신만 남은 좀비가 있었다. 놈은 계속해서 차단벽을 기어오르려다가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일행은 천천히 걸으면서 녀석과의 거리를 좁혔다. 선로 위가 좀비 청정지역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차피 한 마리, 그것도 허리 아래가 잘린 놈이니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좀비와의 거리가 20여 미터 정도로 좁혀졌을 때, 녀석도 이쪽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롸아아아!

차단벽을 긁어 대던 녀석이 갑자기 몸을 틀며 방향을 바꿔 기어오기 시작했다. 몸놀림은 맹렬했지만, 단단한 바닥이 아닌 자갈밭이어서 속도를 내지는 못한다.

차르륵, 차르륵, 차르륵…….

놈의 손과 팔이 자갈들을 긁을 때마다 기묘한 소리가 났다.

물론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쌍뚱 잘린 채 시커멓게 굳은 피가 잔뜩 묻어 있는 허리였다. 좀비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길게 늘어진 척추가 꼬리처럼 흔들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오른다. 놈이 더 거리를 줄이기 전에 보안관이 마중을 나가 해머를 힘껏 휘둘렀다.

콱! 콰작―!

두 번의 강한 충격을 받고 나자 좀비의 목은 자갈에 묻힌 것처럼 깊이 처박혔고, 터진 머리 주변은 흘러나온 녹색의 체액으로 엉망이 됐다.

특유의 악취가 놈에게서 피어올랐다. 보안관은 해머를 지렛대 삼아 놈의 몸뚱이를 굴려 한쪽 구석으로 밀어냈다.

“왜 이 꼴이 나서 여기에 있는 거지, 이놈은?”

척추가 삐져나온 단면을 노려보면서 보안관이 중얼거렸다.

사람의 몸을 이 지경으로 훼손하려면 그야말로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차단벽을 긁어 대고 있었는지, 좀비의 손바닥과 팔꿈치는 흰 뼈가 드러나 있는 채였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하나가 눈에 띄었다는 건…… 두 마리도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흐…… 이거, 내장 맞지? 아까 그 새끼한테서 흘러나온 건가?”

바닥에 말라붙은 살덩이들이 점점이 떨어져 있다. 그리고 역 건물이 시야에 들어올 무렵, 그보다 훨씬 엄청난 것이 그들을 맞이했다. 탈선한 채 전복되어 있는 기차였다.

주변의 차단벽은 엉망으로 박살이 나 있고, 기차가 누워 있는 곳으로부터 수십여 미터 이전부터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잘려나간 신체, 부패한 살과 뼛조각, 폭풍우가 미처 지워내지 못한 핏자국들.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뿌려져 있는 그 끔찍한 잔해들 사이로 걸으면서 보안관은 해머를 꽉 움켜쥐었다.

신입의 다리가 달달달 떨린다.

“조심해, 보안관. 좀비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삼식이에게 제니를 돌보게 한 뒤, 유빈도 손도끼를 꺼내며 뒤를 따랐다. 보안관이 전복되어 있는 객차에 다가가 피로 얼룩져 있는 유리창 안쪽을 살폈다.

객차 내부는 말 그대로 시체들로 가득했다. 그것도 엉망으로 꺾이고 부러진 형태의 시체들. 안전벨트 따위가 없는 전철이라서 승객들은 열차의 흔들림에 따라 아무렇게나 날아가고 부딪쳤던 모양이다.

어으…….

그간 어지간히 많은 시체들을 보아왔건만, 이건 또 다른 형태의 참혹함이었기에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다음 객차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후드드득―

보안관과 유빈이 다가가자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새들이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숨을 못 쉬겠네……. 그나저나 산 사람은 하나도 없나?”

보안관이 팔을 들어 코를 막으며 물었다. 깨진 객차 유리창 사이로 좀비의 악취와는 다른, 지독한 썩는 냄새가 뿜어져 나온다. 박살 난 문의 날카로운 단면에 걸린 살덩이들을 가리키며 유빈이 대답했다.

“사고 때 즉사한 사람들만 여기에 남은 건가 봐. 숨이 붙어 있던 사람들은 다 좀비가 돼서 여기를 깨부수고 기어 나온 거고.”

“그런데 왜 이렇게 기차가 뒤집어져 버렸지? 전철 운전사가 좀비로 변한 건가?”

“아니. 내 생각에는 좀비들이 저기 보이는 역에서부터 여기까지 왔던 것 같아. 난데없이 선로 위에 수십, 수백 명이 서 있으니까 운전사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던 것 아닐까?”

보안관은 뒤를 돌아보며 잠시 상상을 해봤다. 좀비 떼를 발견한 운전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깜짝 놀라 멈춰 서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속도를 이기지 못한 기차가 좀비들을 완전히 깔아뭉갠 다음 탈선한다. 영문을 모르고 있던 승객들은 쇠기둥에 머리를 박은 채 쓰러지고, 깨진 창문을 통해 좀비들이 꾸역꾸역 기어 들어와 아가리를 벌린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저 뒤쪽에 널려 있는 팔다리들이 설명이 되기는 한다. 조금 전, 자신이 대가리를 터뜨려 죽였던 그 좀비는 열차에 깔려 하체를 잃은 뒤, 그 느린 속도로 계속 기어온 건가 보다.

고개를 저어 끔찍한 상상을 털어내던 보안관의 뇌리에 더 중요한 문제가 떠올랐다.

“……그럼 그 좀비로 변한 놈들은 어디로 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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