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테라와 제니 (5)
(155/449)
155. 테라와 제니 (5)
(155/449)
155. 테라와 제니 (5)
2022.02.02.
“뒤로 조금만 더 빼. 조금만. 오케이!”
유빈이 트렁크를 탁탁, 두드리자 삼식이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오피러스는 교각 구조물의 한쪽 끝자락에 맞춰 세워졌다. 그 위로 보안관이 올라갔다.
삐이익― 삐익―
모래가 박힌 안전화가 밟고 지날 때마다 페인트가 벗겨지며 강판이 꿀렁거린다.
보다 더 많은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서는 위치는 C필러에 근접한 부분으로 정했다. 그래도 어지간한 무게의 보안관이 버티고 서자 지붕은 곧 내려앉을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자, 삼식이 이제 올라와!”
신발을 벗은 삼식이도 보안관의 말에 따라서 자동차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러고는 유빈의 도움을 받아 보안관의 어깨 위에 올라섰다.
순식간에 남자 세 명의 몸무게를 지탱하게 된 자동차의 지붕에서 끼이잉― 하고 쇠가 뒤틀리는 소리가 울린다.
“아, 아야! 이 새끼야! 뼈 밟지 마! 윽! 근육을 밟으라고!”
어깨 위의 삼식이가 중심을 잡기 위해 발을 옮길 때마다 쇄골이 눌린 보안관이 인상을 찌푸렸다. 싱거운 삼식이가 웃음을 꾹 참으며 조심조심 발을 옮겼다. 보안관이 삼식이의 발목을 잡아 중심을 잡도록 도왔다.
그리고 마침내 삼식이는 보안관의 어깨 위에서 섰다. 후들거리며 겨우 중심을 잡아 구부정하게 서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은 마치 거지들이 하는 삼류 서커스단을 보는 것 같다.
“……닿아? 닿았냐고?”
보안관이 용을 써가며 물었다. 아무리 호리호리하다고 해도 키가 187인 녀석을 어깨로만 버티고 있자니, 저절로 인상이 써지는 모양이었다.
힘이 들기는 위에 있는 삼식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팔을 하늘로 쭉 펴 올린 삼식이도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아니…… 허리를 좀 더 쭉 펴봐. 아오, 이거…… 손끝에 닿을락 말락 하는데.”
야, 안 되겠어. 나 어깨 뽀개질 것 같아. 일단 내려와 봐. 뭔가 밟는 데가 잘못된 것 같아…… 라는 말이 보안관의 입에서 막 나오기 직전에 제니가 간절하게 외쳤다.
“보안관 오빠! 괜찮아요? 아프지 않아요?”
“당연하지! 이 정도야!”
버프를 받은 보안관은 이를 악물고 가슴을 쫙 폈다. 그 덕에 삼식이의 두 손끝이 쇠파이프로 된 구조물 바닥에 닿았다.
덥썩!
삼식이는 때를 놓치지 않고 손가락을 꽉 오므려 쥐었다.
“잡았다!”
어깨에서 짐을 덜어낸 보안관도 반색을 하며 팔을 들어 올려 삼식이의 발을 받쳤다.
“꽉 잡아! 민다!”
끄응, 보안관이 밀어주는 힘을 추진력 삼아 삼식이는 두 칸 위의 철창에까지 올라갔다. 그러고는 몸을 쭉 끌어 올려 구조물 위에 섰다.
챙―
삼식이가 두 발을 내딛자 격자무늬의 쇠 그물 바닥이 흔들리며 울린다.
“좋았어! 이거 받아!”
아래에서 보고 있던 유빈이 삼식이를 향해 배낭을 던져 올렸다. 배낭 안에는 신발과 망치가 줄사다리처럼 엮어놓은 여러 겹의 빨랫줄에 칭칭 싸매어져 있었다.
“일단 줄부터 묶어서 내려! 그래야 여차하면 우리도 올라갈 수 있으니까!”
“알았어. 근데 유빈아, 아까는 저 위로 올라가면 좋은 점만 잔뜩 이야기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이상하단 말이지? 그렇게 좋은 데라면 여태까지 망설이면서 계속 애꿎은 수문만 쑤셔 댈 리가 없었을 텐데. 저 위의 단점 같은 건 없어?”
줄사다리를 기둥에 묶으면서 삼식이가 물었다.
단점…… 유빈이 힘없이 웅얼거렸다.
“뭐라고? 안 들려?”
“단점도 있어! 그리고 그게 뭔지는 위에 올라가 보기만 하면 바로 알게 될 거야!”
그렇단 말이지?
빨랫줄을 세 군데에 단단히 고정시켜 묶은 삼식이는 안전화의 끈을 묶고 망치를 허리춤에 쑤셔 넣은 다음, 철제 구조물로 둘러쳐진 사다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한 발, 한 발 빠르게 기어 올라갔다. 철책 문은 잠겨 있었지만, 굳이 망치로 때려 부수지 않아도 넘어갈 수 있을 높이였다. 삼식이는 조심스레 머리부터 선로 안으로 집어넣었다.
“괜찮아요, 삼식이 오빠?”
삼식이가 상반신만 사다리 안쪽에 걸치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지켜보고 있던 제니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갑작스럽게 울리는 삼식이의 비명! 궁둥이를 씰룩대면서 그의 긴 다리가 허공에서 거칠게 발버둥을 친다.
“꺄아악!”
제니의 쇳소리.
이런 씨발! 넘어져서 뒤로 기는 신입.
삼식이의 다리는 경련하듯 떨리다가 마침내 철책 위로 축 늘어져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빈은 한번 힐끗 쳐다본 뒤, 차에서 짐을 꺼내는 데에만 집중했다.
하아암~
덤덤한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던 보안관이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다.
“어설퍼, 이 새끼야.”
“하하하하!”
웃음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킨 삼식이는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웃어댔다.
“어때? 내 덕에 좀 오싹해졌지?”
“진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오빠 올라가면 가만 안 둘 거예요! 정말 천벌 받을 거야! 이씨!”
무표정한 두 친구와 달리 제니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돼서 씩씩거렸다. 신입도 쌍욕을 퍼붓는다. 둘의 목소리가 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유빈이 물었다.
“위험한 거 아무것도 없지?”
“응! 완전 뻥 뚫렸어. 근데…… 무지하게 더워! 정말 타 죽을 것 같아!”
삼식이가 목 주변을 잡아당겨 펄럭이며 하소연을 했다. 어느새 잔뜩 솟아난 땀이 턱 아래로 뚝뚝 떨어진다. 어디에도 열기를 피할 수 있는 곳 따위는 없고, 그저 자갈과 쇠뿐이다.
천장도, 이렇다 할 벽도 없어 직사광선을 고스란히 받은 선로 위에는 달궈진 자갈과 쇠가 이글이글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맥반석 위에 올려진 오징어가 되면 이런 느낌일까.
고가도로 그늘 밑에서 햇살을 피할 수 있고, 그나마 간간이 강바람이 불어오던 산책로도 덥다고 불평을 했는데, 이곳에 비하면 리조트급으로 시원했던 것 같다.
“그게 단점이야. 이 여름에 사람이 살 만한 데가 아닐 거야. 애초에 사람이 살 목적으로 만들어놓은 곳도 아니지만. 아마 사하라 사막에 있는 기분일걸?”
라면과 물을 배낭에 채워 넣던 유빈이 하늘 한가운데에 떠 있는 해를 힐끔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나머지 셋이 얼빠진 표정으로 유빈을 향해 물었다.
“저기로 올라가자면서? 그럼 어쩌자는 거야? 쪄 죽기는 싫어!”
“그래, 지금 당장은 좀 고생스러울 거야. 선로 위가 정 더우면 저 구조물로 내려와서 잠시 피해 있어도 돼. 거기는 고가선로 때문에 그늘이 생기니까.”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이 안 되잖아!”
신입이 목청을 돋웠다.
“그건 차차 해결할 수 있어. 그냥 시간이 좀 필요해. 진정해, 인마. 너 현대인이잖아. 도구를 쓰면 된다고. 그렇게 열 낼 힘이 있으면 이거나 지고 올라가.”
유빈은 식량을 채운 배낭을 신입의 등에 지워주며 귀찮다는 듯 어깨를 토닥였다. 모두는 떨떠름한 얼굴이 되어 삼식이가 매놓은 줄사다리를 타고 구조물 위로 한 명씩 기어올랐다.
“으아아~ 정말 장난 아닌데!”
선로 위에 발을 내딛자마자 보안관의 입에서는 앓는 소리가 저절로 터졌다.
후끈후끈, 그야말로 한증막에 들어선 것 같은 열기다. 선로 주변과 높이 솟은 전선 탑에서는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앗, 뜨거!
무심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던 신입이 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다. 새 거처는 꽤나 뜨겁고 열렬하게 그들을 맞아주고 있었다.
제니부터 시작해서 모두에게 머리를 감쌀 수 있는 수건을 건네준 유빈이 손을 들어 햇살을 가리며 이야기한다.
“말했잖아, 존나게 더워. 여기는 구조상 그럴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래도 저 아래에 비하면 꽤 안전해. 그러니까 조금만 더 고생한다 생각하고 꾹 참아. 내일이면 여기도 그럭저럭 버틸 만큼은 만들 수 있을 거니까. 지금은 여기서 오래 있지 않아도 돼. 그냥 구조를 살필 겸해서 올라온 거야. 자, 자, 물 마시고, 뻗기 전에. 각자 배낭 안에 물병 들어 있잖아. 보안관, 넌 저쪽으로 한 30미터 정도만 갔다가 와봐 줘.”
“나, 담배 피워도 되겠지?”
삼식이가 간절하게 묻는다.
여기라면 괜찮을 것이다, 아마도…….
유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찰을 위해 선로의 한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반대쪽으로는 보안관이 걸어가고 있다.
생각했던 대로 기차선로라는 건 확실히 폐쇄적이고 독립적인 공간이었다. 철책이나 플라스틱 방음벽으로 격리된 데다가 지상으로부터 높이 솟아 있어서 일반 고가도로와는 다르게 꽤나 안전한 느낌을 준다.
플랫폼 아래로 뛰어 내려와 여기까지 오는 좀비만 없다면…….
그런 생각을 하며 유빈은 짧은 정찰을 마치고 무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왔다. 티셔츠는 벌써 땀으로 흠뻑 젖었다.
“잘 구경했어? 이제 여기에서 한동안 살지도 모르니까 익숙해져야 해. 일단은 너무 더우니까 내려가자.”
산책로에 내려서고 나니 모두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새나왔다. 그건 이제야 좀 살 만하다는 의미의 한숨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동차에 뛰어들어 에어컨을 켜 찬바람을 쐬며 옷자락을 펄럭였다. 음료수가 끝없이 들어간다.
“그런데요, 잠은 여기든 저 위든, 어찌어찌 잔다고 해도…… 밥이랑 물은…….”
수건 양끝을 양머리처럼 돌돌 말아 쓰고 생수병을 반쯤 비우던 제니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보안관과 삼식이도 비슷한 걱정을 했던 모양이다. 유빈이 대답했다.
“밥은…… 차차 동네로 나가서 구해야겠지만, 그렇게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이 근처에서 며칠간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여기서? 음식을 구한다고? 어디서?”
신입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 돼야 해. 안 그러면 골 아파져. 너희들, 혹시 여기까지 오는 동안 트럭 본 기억 있어?”
“트럭?”
“그래. 동부간선도로에 버려진 차들 중에 트럭 본 기억이 있느냐고.”
“글쎄? 그런 걸 누가 신경 써, 가뜩이나 걱정할 게 많은데.”
“나도 비슷하기는 했는데…… 이제부터는 신경 써가면서 찾아야 돼. 택배 트럭, 배달 트럭, 편의점 트럭, 아니면 잡화 트럭이라도. 뭐든지 좋아. 트럭이나 밴만 보면 무조건 뜯어보는 거야. 그중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엄청 많을 거거든. 지금부터 해 지기 전까지 우리는 화물차를 찾아 털러 다녀야 돼.”
“오호, 도둑질입니까요? 두근두근하는뎁쇼?”
제니가 두 손을 비비며 눈빛을 반짝였다. 예전에 유빈과 함께 남의 집 찬장을 뒤져 먹을 것을 찾던 재미가 새록새록 떠오르는 모양이다.
“좋아, 출발하자.”
더위로부터 입은 대미지를 어느 정도 회복한 보안관이 다시 기세를 올리며 기어를 바꿨다. 다섯 명을 태운 오피러스와 코롤라는 왔던 길을 천천히 되짚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저건 어때? 세워?”
첫 번째로 발견된 화물차는 봉고였다. 하지만 커다랗게 박혀 있는 복사 용지 회사의 로고 때문에 그냥 통과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A4지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은 것이다.
의외로 화물차가 그리 흔하지 않아서, 트럭다운 트럭을 발견한 건 거의 1킬로미터가량이나 되짚어 온 후였다.
보안관은 환호성을 지르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트럭 짐칸에 그려진 GJ택배 로고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흐흐흐, 조금만 기다려. 엉아가 열어줄게. 제발, 제발 꽉 차 있어라.”
트렁크에서 해머를 꺼내 들며 보안관이 간절하게 빌었다. 유빈이 말했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그날 길이 막힌 게 낮 열두 시 이전이었으니까, 배달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이렇게 버려졌을 거잖아.”
“그렇단 말이지? 좋았어~!”
귀를 대고 짐칸 내부의 소리를 들어본 유빈이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자, 보안관은 곧바로 해머를 내려쳐서 짐칸의 자물쇠를 부쉈다.
세 번, 네 번…… 엄청난 쇳소리가 울리고 자물쇠와 손잡이 일부를 박살 낸 다음에야 애초에 화물칸의 문이 잠겨 있지도 않았다는 걸 발견했다. 보안관은 머쓱한 표정으로 적재함의 문을 양쪽으로 활짝 당겨 열었다.
“윽! 냄새!”
플래시로 내부를 비추던 유빈이 팔을 들어 코를 막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안에 들어 있던 신선 제품이 지난 12일 동안 아주 단단히 썩어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하지만 그 정도 악취로는 이 약탈자들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을 끌어내려 코와 입을 막은 보안관과 제니는 택배 화물이 2/3 이상 차 있는 트럭 안으로 냉큼 뛰어 들어갔다.
“뭐부터 찾아줄까요? 오빠, 뭐 필요해요?”
왠지 신이 난 제니가 화물 운반용 핸드 카트를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가볍게 헛웃음을 지은 유빈이 말했다.
“안 필요한 게 뭔지 물어보는 편이 더 빠를 것 같은데? 거의 모든 게 다 필요해. 그러니까 일단 이 안에 있는 건 웬만하면 다 끄집어내서 뜯어보자. 딱 봐서 썩은 야채 같은 거 아니면 전부 밀어줘.”
“오케이! 받아!”
보안관이 기다렸다는 듯 가장 가까운 곳에 놓여 있던 커다란 박스를 밀어 보냈다. 분위기에 편승해서 트럭 안쪽을 기웃거리던 신입이 슬그머니 발을 빼려 들었다.
“망보는 사람도 있어야 하잖아. 내가 봐줄게.”
“아니, 아니, 어딜 가려고 그래? 넌 짐 좀 받아. 어제저녁에 반짝 일하고 내내 쉬어놓고!”
보안관이 재빨리 팔을 뻗쳐 신입의 옷 뒷덜미를 꽉 잡았다.
“하지만 망을 안 보면 위험한데…….”
좀처럼 자신의 쉴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려 드는 신입에게 제니가 결정타를 먹였다. 제니는 허리를 굽히고 신입의 머리를 엉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오빠가 도와줘야 나도 힘이 나잖아요오~”
눈앞에 펼쳐진 제니의 길고 곧은 다리와 귓가를 울리는 코맹맹이 소리.
신입은 콧김을 풍풍 내뿜으며 호기롭게 대답했다.
“알았어! 나만 믿어!”
신입이 씩씩하게 박스를 받아 내리는 동안, 보안관의 눈빛 신호를 받은 삼식이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커다란 첫 번째 박스를 뜯었다.
내부에 2중으로 포장된 것은 믹서기 박스. 꽤 고가인 것으로 보이는 제품이지만, 지금으로서는 거의 쓸모가 없다.
삼식이는 물건을 내버려 두고 누런 종이 박스만 들고 자동차 위로 올라갔다. 그 위에 꼼짝 않고 서서 망을 보려면 양산 대용으로 햇빛을 막아줄 물건이 아쉽던 참이었다.
각자 소리를 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세 사람의 마음속에는 공통적인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신입에게 보초를 맡기는 게 너무 위험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오! 있다! 있어! 생수다!”
먹을 것을 발견한 보안관의 목소리가 커졌다. 1.8리터 생수병 여섯 개들이 묶음이 세 개나 나왔다. 물이라는 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 감사합니다.
유빈은 아주 잠깐 눈을 감고, 이제 적어도 이틀은 더 버텨낼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그가 아는 모든 신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
진우는 교차로 앞에 잠시 멈춰 선 채 고민하고 있었다. 양쪽 모두 어느 쪽이 더 낫다 할 것 없는 후미진 2차선 도로였다. 물론 표지판 따위도 없다.
어지간히 깊은 산골짝이라 길거리에 멈춰 선 자동차들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사람의 왕래가 아주 드문 곳이다. 여름의 햇살을 담뿍 먹은 아스팔트 도로에서는 이글이글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후우~”
저절로 한숨이 난다. 이름 모를 할머니의 집을 나서서 걷기를 이틀째.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 구경을 못 했다.
혼자 걷는 길은…… 그야말로 끔찍하다. 후회와 공포가 파도처럼 교차하며 머릿속을 엉클어놓기 때문이다.
모든 전우가 전멸해 버린 그 밤의 시간들이 섬광처럼 계속 떠오르면서 복기를 강요한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별 소용이 없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한 걸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좀 더 나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옥상으로 올라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을 했다면 어땠을까? 주차장 입구로 들어갈 때, 이 병장님과 김 상병님 대신 내가 앞장을 섰더라면…….
그렇게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상념에 빠져 멍하니 걷다가 문득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깨닫고 식은땀을 흘렸다.
이제는 뒤를 살펴줄 동료도, 측면의 사각을 엄호해 줄 고참도 없다. 그러니 더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한다.
슬쩍 바람만 일어도 흠칫 놀라 등 뒤를 돌아보게 된다. 혹시나 좀비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못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원초적 두려움이 자꾸만 발걸음을 붙들었다.
수분을 보충하며 잠시 주저하던 진우는 결국 왼쪽 길을 택해 걷기 시작했다.
길 양쪽으로는 짙은 녹색의 나무숲이, 그 너머로는 완만한 야산들이 겹치듯 이어져 있다. 지난 하루하고도 반나절 동안 지겹도록 보아온 경치다.
푸드득~
수풀이 흔들리며 기분 나쁜 소리를 낼 때마다 움찔해서 멈춰 선다. ……바람인가? 새가 날아오른 소리인가? 그것도 아니면…….
진우는 소름이 돋은 채 총을 고쳐 잡았다.
저 무성하게 우거진 덤불 속, 아무 데에서나 지금 당장 한 무더기의 좀비들이 튀어나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쫑쫑쫑쫑쫑―
이름 모를 산새들이 머리 위로 날아가며 요란하게 지저귀고 있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길 위에서 만나 죽인 좀비는 모두 여섯 마리.
그 울음소리를 듣고 끔찍한 몰골로 달려오는 놈들을 대면해야 하는 것도 섬뜩하지만, 그보다는 매번 총알을 써야 한다는 게 무섭다. 남은 실탄 한 발, 한 발이 말 그대로 피처럼 소중했다.
“……젠장, 큰길을 만날 수 있기는 한 거야?”
30분여를 더 걸어갔을 즈음, 진우는 불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이대로 길을 잃고 산속에서 헤맨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진우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리고 그때, 앞쪽에서 작은 돌 부스러기들이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