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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테라와 제니 (4) (154/449)


154. 테라와 제니 (4)
2022.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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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관이 얼른 팔을 뻗어 유빈을 잡아 일으켰다. 철책에서 내려와 뒤늦게 합류한 삼식이도 서둘러 흡연 차량 오피러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미 시동이 걸려 있던 두 자동차의 운전자들이 기어를 바꾸는 동안 좀비들은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다이빙하는 좀비들의 모습이 조금 전, 유빈이 깔아뭉갠 갈대 틈 사이로 보인다.

“빨리! 빨리요!”

눈이 똥그래진 제니가 채근을 한다. 세 마리뿐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뒤가 막힌 곳에서 큰 소리를 내며 싸우고 싶진 않다. 혹시라도 놈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다른 동료들을 유인하기라도 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놈들이 물속에서 얼마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터라 보안관의 마음도 급했다. P에 가 있던 기어를 D로 옮기고, 파킹 브레이크를 풀면서도 보안관과 유빈의 시선은 개천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저것 봐!”

유빈이 가리키지 않아도 이미 모두의 시선은 좀비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기세 좋게 물속으로 몸을 날린 다음, 개헤엄을 치듯 두 팔과 두 다리를 휘저어 대던 좀비 세 마리는 그대로 물살에 말려 하류 쪽으로 떠내려가 버렸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 버린 일이다.

“……뭐지, 저놈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차문을 열고 나온 일행들은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며 좀비의 뒤를 쫓았다.

그르륵― 그르륵―

놈들이 고함을 지르려 입을 벌릴 때마다 물이 빨려 들어가며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속보 정도의 빠르기로 떠내려가던 좀비들은 저수지처럼 커진 물웅덩이로 빨려 들어가며 돌기둥에 호되게 부딪쳤다.

콰직―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물속에 잠긴 좀비의 몸뚱이가 다시 잠깐 떠오르는가 싶더니, 부서진 수문의 튀어나온 창살에 걸려 주욱 찢어진다. 그러고는 곧바로 콘크리트 구조물에 내동댕이쳐져 뼈가 꺾였다.

결국 세 마리의 좀비는 단 하나의 생존자도 남기지 못하며 처절하게 부러지고 터진 채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수문에 박히고서야 비로소 멈춰 섰다.

터져 버린 놈들의 뇌수가 흘러나와 둥둥 뜬다. 식사를 앞둔 시점에서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고무보트로 건너가는 작전은 포기. 그건 잊어버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좀비들이 물살에 휘둘려 박살 나는 광경을 지켜본 유빈이, 수문 사이에 낀 좀비의 몸뚱이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보안관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수문 너머의 물살은 그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흐르고 있었다.

“겉으로 보는 것하고는 또 다르구나…….”

보안관이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조금 전까지 물가에 서서 아무렇지도 않게 파이프를 넣어 저으며 막힌 수문을 뚫어 대고 있던 걸 생각하니 새삼 오싹해진다. 혹시라도 저기에 말려들었다면…….

콰아아―

온갖 것들이 낀 수문에 막힌 물살은 두어 번 더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돌다가 콘크리트 둑을 넘어 흘러가 버렸다. 뒷걸음질로 물러나며 유빈이 중얼거렸다.

“여기가 이 정도면 한강은 도대체 얼마나 빠르다는 거야? 젠장, 곤란하잖아.”

“응? 물살이 빠르면 안 되는 거?”

삼식이가 머리를 갸웃거린다.

“뭐, 그야…… 잠실 수용소인지 하는 곳으로 가려면 한강에 도착하고 나서도 강을 건너야 하니까.”

유빈의 절망적인 설명이 끝나자 일순 적막이 감돌았다. 침묵을 깬 것은 제니였다.

“자, 자, 그런 걱정은 좀 이따가 하고, 일단 밥부터 먹어요. 오빠들은 손도 좀 씻고 쉬고 계세요. 제가 맛있는 찌개 끓여줄 테니까요.”

그 말을 듣고 남자들은 순순히 시키는 대로 생수를 부어 손과 얼굴을 닦고 자동차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뭔가 시시한 농담을 하기도 한다.

“아야야, 따끔거린다.”

보안관이 물집이 터진 손바닥을 주무르며 중얼거리고, 바지를 걷은 유빈의 무릎과 종아리 상처에는 아직도 붉은 새살이 돋아나는 중이다.

한마디로 다들 몸이 많이 망가진 상태였다. 그리고 희망은 옅어질 대로 옅어진 상황이다. 하지만 셋 중 누구도 한숨을 쉬지는 않았다.

신입은 생각했다. 이것들은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거지? 어제 아침만 해도 두어 시간만 걸리면 한강에 도착할 것처럼 신이 나 있더니, 실제로는 하루 종일 장비를 찾아 나무를 자르고 힘든 일만 하느라 수용소는 구경도 못 해봤다.

나까지 그 고강도의 노동에 휘말려서 끝내 더위를 먹고 구역질을 꽥꽥 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게다가 나무를 다 치우고 여기까지 와보니 이제는 물에 막혀 꼼짝도 못하게 되어버렸다.

담배도 맘대로 피우지 못하고 잠도 순번을 지켜가며 차에서 쪽잠을 자야 하는 신세. 당장 입에서 ‘나 죽겠네’ 하는 엄살과 서로를 원망하는 욕설이 쏟아져 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도 뭐한다고 이렇게 빙글거리면서 저 맛대가리 없어 보이는 찌개를 먹기 위해 웃으며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나사가 빠진 게 분명하다.

제정신이 아니야. 안 되겠어. 보안관, 저 개새끼가 좀 무섭기는 하지만…… 씨발, 나라도 화를 한 번 버럭 내야지.

너희 지금 장난쳐? 수용소 간다더니, 여기가 수용소야? 이 멍청한 새끼야, 사람을 이 고생을 시키려고 여기까지 끌고 왔어?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게 음식이냐? 개도 이런 건 안 먹어!

정말 그렇게 말해야겠다고 화낼 준비를 단단히 했다. 한데…….

“오빠, 몸은 좀 괜찮아졌어요? 자, 따뜻한 걸 먹으면 기운이 좀 날 거예요.”

제니가 빙긋 웃으며 희고 가느다란 손으로 건네주는 찌개를 받아 드는 순간, 신입은 그만 헤죽, 마주 웃고 말았다.

제니가 직접 만든 찌개를 나한테!

의식이 엉뚱한 데에 홀리자 화를 내야겠다는 생각조차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입에서는 멍청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으, 으응. 고마워.”

“고맙긴요. 자…….”

먹어봐요, 하는 눈빛으로 제니가 지그시 바라본다. 신입은 한 숟갈을 떠서 입에 가져갔다.

맛은…… 예상했던 그대로다. 정말 맛이 없다. 아까 수저로 간도 보는 것 같더니만, 얘는 혀에 미뢰라는 게 없는 건가?

“어때요? 굿?”

모두가 한입을 떴을 때, 제니가 두근두근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떠냐고? 아까운 김치랑 햄을 가지고 이게 무슨 짓이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국자로 머리를 때려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맛이다.

하지만 이런 대스타가 정성껏 만들고 꽃처럼 웃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차마 화를 낼 수가 없다.

그래도 말이지…… 괜찮잖아? 생각해 봐, 대체 지금까지 몇 명이나 제니가 직접 만든 찌개를 대접 받아봤겠어. 옆의 놈들만 없으면 꼭 신혼 분위기 같잖아.

지금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신혼부부 놀이는 그날로 쫑이 나고 앞으로는 산적 같은 남자 놈들이 만든 요리만 먹어야 한단 말이지. 그래, 좀비 세상에서 이런 낙이라도 있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곁에 앉은 삼식이가 입을 열었다.

“난 솔직히 제니가 요리 안 했으…… 읍!”

신입과 보안관의 손이 동시에 삼식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삼식이의 입술을 꽉 쥐며 보안관이 강압적으로 말했다.

“행복한 맛이야. 그렇지, 삼식아?”

“읍~! 읍~!”

“고개를 끄덕이면 되잖아. 그렇게 꼭 말로 의사를 표현하려고 할 필요 없어.”

삼식이가 버티려 해보지만, 보안관은 억지로 녀석의 주둥이를 꾹 누르고 얼굴을 위아래로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 장난기에 기분이 좋아진 제니가 까르르 웃는다.

훗, 후후~ 그녀의 웃음을 따라 신입도 덩달아 실실거리며 싱거우면서 매운, 그러면서도 시큼한, 이상한 김치찌개를 떠먹었다.

“하아~ 이놈들 엄청 여유만만이네. 객관적으로 꽤나 낙담할 만한 상황까지 몰린 것 같은데…… 걱정…… 안 돼?”

신입이 하려던 말을 입 밖으로 낸 건 유빈이었다. 찌개에 만 밥을 마치 벌칙을 수행하는 사람처럼 후다닥 넘긴 유빈이 중얼거리자, 제니가 유빈의 어깨를 탁, 친다.

“에이~ 뭔 소리예요. 머리 쓰는 사람 여기 있으니까 우린 오빠만 믿고 있구만. 자, 맛있는 거 먹었으니까 이제 어떻게 할지 얘기해 봐요.”

“맛있는 거? 하아…… 그래, 뭐, 그건 그렇고, 이후 계획에 대해서도 다들 비슷한 생각인가?”

모두의 눈이 일제히 유빈에게 향한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유빈은 힘이 든다는 듯 한 번 고개를 갸웃하고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글쎄…… 뭐, 벌써들 다 눈치채고는 있겠지만, 그래도 분명히 말을 하고 넘어가야겠지. 이제 수용소까지 단기간에 간다는 건 포기해야 할 것 같아. 장애물이 너무 많아. 저기 물이 고인 데를 육로로 우회해서 지나간 다음, 간선도로에서 차를 끌어내린다고 해도 또 얼마나 많은 저수지 같은 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내 계획은 완전히 텄어.”

거기까지 말하고 유빈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 비난이든 욕설이든 뭐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라고 기다리는 것 같다.

“그런 건 벌써 어젯밤에 다 알았잖아. 그거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나 이야기해.”

제니가 만든 요리를 버릴 수 없다며 남은 찌개를 바닥까지 긁어 먹고 있던 보안관이 입 안의 음식을 꿀꺽삼키고 나서 말했다. 제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어차피 좀비들이 자꾸 몰려와서 거기엔 더 있을 수도 없었잖아요. 물론 앞뒤 재보지 않고 무작정 출발한 건 무모했지만. 후훗!”

편을 들어주는 척하던 제니가 말끝에 가시를 하나 붙여서 유빈을 놀리고 웃는다. 유빈은 힘없이 머리를 긁적이고서 말을 이었다.

“어쨌든 가져온 식량도 이제 절반은 먹었으니 더 이상 여기에서 마냥 시간만 보낼 수는 없고, 슬슬 플랜 B로 가야 돼. 물론 이건 처음 출발할 때부터 포함되어 있던 게 아니라 어젯밤부터 급조한 거라서 조금 엉성하기는 해. 뭐,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서도.”

“그런 설명을 길게 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일단 저 위로 가는 거야.”

채근을 받은 유빈은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는 고가도로를 가리켰다. 모두의 고개가 우측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중랑천을 가로질러 뻗은 고가도로.

기둥에는 교량의 바닥 높이가 4.5미터라고 표시되어 있다.

물론 그들이 서 있는 산책로가 아니라 비탈길 위의 동부간선도로에서 측정한 수치다. 그리고 거기에서 또 4.5미터 두께의 구조물을 더 올라가야 위에 닿을 수 있다. 그럼 실제 높이는 15미터 가까이나 된다.

“저길 어떻게 올라간다는 거야? 무슨 동남아 원주민도 아니고.”

고가도로를 올려다보던 신입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올라갈 수는 있어. 너도 슬쩍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을 텐데. 저기 중간쯤에 정비하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철제 구조물들 보이잖아. 애초에 저기다 사다릴 대고 올라가라고 만들어놓은 거야.”

유빈이 말하는 것은 20여 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기둥 중간 부분마다 설치된 철제 구조물이었다.

철망으로 된 발판과 난간이 지붕 없는 동물 우리처럼 기둥을 빙 둘러쳐져 있고, 역시 철제 구조물로 덮인 사다리가 고가도로 위까지 연결된 형태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의 높이도 꽤 되어 보인다.

“별걸 다 자세히도 봤네. 올라가는 문제는 둘째 치고, 저기가 어딘데? 하고 많은 고가도로 중에 왜 하필 저걸 골랐어?”

이번엔 보안관이 끼어들어 물었다. 유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나도 정확한 건 몰라. 하지만 저 위에 고압전선이 쭈욱 이어져 있는 걸 보면 아마 전철이나 기차가 지나가는 길이었겠지. 그게 다른 고가도로들이랑 달라. 저기는 사람 사는 동네랑 바로 이어진 도로가 아니니까 훨씬 안전할 거 같아서.”

“씨발, 막연히 기찻길이었을 것 같은 데로 올라가자고? 그게 어제부터 기껏 생각해서 내놓은 결론이냐? 너 상황을 존나 우습게 안다?”

제니의 미소와 함께 먹은 점심 덕에 한껏 기분이 업된 신입이 유빈을 다그쳐 봤다. 하지만 그의 말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설명을 계속했다.

“저기로 올라가면 좋은 점이 몇 개 있어. 첫째, 저렇게 높이 쭈욱 뻗은 공간이잖아. 그러니까 앞뒤, 이 두 방향만 신경 쓰면 돼. 이런 평지에 있을 때처럼 사방 어느 쪽에서 좀비들이 갑자기 달려들지 몰라 늘 긴장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오케이, 그건 납득이 갔어. 그럼 나중에 혹시 양방향에서 오는 놈들이 있으면 그건 어떻게 할 건데?”

보안관과 제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유빈은 고가도로 측면의 난간을 가리켰다.

“저길 보면 저렇게 쇠로 된 난간이 쫙 이어져 있어. 저걸 뜯어서, 물론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말이야…… 하여간 저걸 뜯어서 앞뒤 양쪽 땅에다 박아 고정시키면 꽤나 튼튼한 벽이 될 거야. 물론 그렇게 해도 놈들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어디까지나 시간 벌이밖에는 안 되겠지만, 적어도 자다가 목을 물어 뜯길 일은 없어지겠지. 대비가 된다는 거야.”

“다른 철책들이랑 묶어서 고정시킬 수도 있겠네. 만약 그런 작업이 다 끝나기 전에 좀비들이 몰아닥치면?”

삼식이가 턱의 수염을 긁적이며 묻자 유빈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때는 다시 여기로 내려와서 이 차를 타는 수밖에 없겠지. 그래봐야 원점이야. 그리고 또 하나 좋은 점은…… 저긴 선로잖아. 길이라고. 어딘가로 연결된 길. 그러니까 저길 따라서 이동할 수도 있어. 좀비만 없다면 말이야. 만약에 저게 지하철이 아니라서 계속 지상으로만 이어져 있다면…… 혹시 모르지, 잠실이나 더 먼 데까지도 갈 수 있을지도.”

“너 지도 가지고 있었잖아. 거기에 안 나와 있어? 이 고가도로가 뭔지?”

“이 부근까지는 부동산 지도에 포함이 안 되어 있어. A4 한 장짜리 서울시 지도는 잘 보이지도 않고.”

으음, 유빈을 제외한 네 사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민에 빠져 이마를 찌푸린 채 삼식이가 물었다.

“저기를 올라가기 싫다면 다른 방법도 생각해 놓은 것 있어? 예를 들어 플랜 C라거나…….”

“그야 뭐, 간단하지. 철책을 넘어서 아무 동네에라도 들어가야 돼. 그러고는 우리가 숨어 지낼 만할 안전한 집을 찾아야겠지.”

“으아, 지금 갑자기 낯선 데로 가는 건 좀 무서운데…… 언제 얼마나 되는 좀비들이랑 마주칠지도 모르는 거고. 그냥 여기에 있는 건 안 돼?”

“안 될 거야 없겠지만, 사실은 저놈의 호수 때문에 우린 막다른 길에 있는 거나 다르지 않아. 그러니까 혹시라도 저쪽에서…….”

유빈은 자동차로 그들이 달려온 방향을 가리켰다.

“좀비들이 떼로 몰려오면 우린 갇히는 거야. 그때 허겁지겁 철책을 넘어서 동네로 들어가는 것보다야 여유가 있을 때 미리 찬찬히 하는 편이 낫다는 거지.”

끄응~ 삼식이가 앓는 소리를 낸다. 조금 전, 하천 건너편에서 걸어온 좀비 놈들을 본 터라 여기는 안전하다는 말을 하기도 어렵다.

상대가 손에 꼽을 정도뿐이라면 차로 치고 도망갈 수도 있겠지만, 만약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온다면…….

그건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사방으로 전망이 탁 트여서 잊고 있었지만, 사실 그들은 이 길의 끝에 갇힌 채 서 있는 꼴이었다.

“저 위에도 좀비가 있지는 않을까? 그러면 괜히 땀만 빼는 거잖아. 더 위험하고.”

보안관이 고가선로를 가리키며 물었다. 유빈은 고개를 저었다.

“눈에 보이는 구간에는 절대 없어. 만약 그랬다면 우리를 보고서 발광을 하다가 곧바로 뛰어내렸을 테니까. 아니면 적어도 죽어라 울어 대기라도 했을 테고. 지금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을 리가 없잖아.”

하긴, 좀비들은 망설이지도 웅크린 채 때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일단 살아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제 살이 찢어지든 뼈가 부러지든 개의치 않고 곧바로 몸을 날리고 보는 게 놈들의 특성 아닌가.

유빈의 설명을 다들은 네 사람은 다시 팔짱을 끼고 잠시 더 고민하다가 결국 해보자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들만으로 미뤄볼 때, 별로 손해 볼 게 없는 시도처럼 들렸다.

“좋아, 그러면 올라가 보지, 뭐. 까짓거. 그런데 저기까지 어떻게 갈 거야? 사다리를 뭐로 만들어?”

삼식이가 교각에 붙은 철제 구조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높이는 5.5미터가량, 그보다 조금 더 높을지도 모른다.

간단하잖아, 유빈이 중얼거리면서 자동차와 보안관, 그리고 삼식이를 차례로 지목했다. 그러면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높은 것들은 전부 동원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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