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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테라와 제니 (3) (153/449)


153. 테라와 제니 (3)
202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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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헉!”

민구의 손이 어깨에 닿자 테라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다. 부어오른 입술을 보니 속이 좋지 않다. 자신의 주먹이 스친 자국이 아니라 오늘 새로 생긴 상처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그렇다.

“후우우~”

민구는 한 번 더 한숨을 내쉰 뒤, 테라의 손 위에 천천히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그 차갑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천천히 토닥거렸다.

“다 끝났다. 너 아무 일도 당하지 않았고, 저놈들은 이제 못 까불어. 그러니까 이제 정신 차려. 안전하니까.”

민구는 테라가 알아듣는 기미를 보일 때까지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해서 똑같은 말을 천천히 몇 번이고 반복해 줬다.

눈동자에 사라졌던 총기가 희미하게나마 돌아오자, 테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에 처박혀 뻗어 있는 주황색 트레이닝복.

하아아~ 한숨을 내쉰 그녀는 민구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다시 또 울음을 터뜨렸다.

젠장!

민구는 속이 오글거리는 것을 꾹 참으며 테라의 손을 쥐었다.

“그래그래, 고생했어. 이제 괜찮아.”

“아저씨! 고맙습니다! 흐윽~!”

10여 분 만에 처음으로 말을 한 테라는 민구의 목을 와락 끌어안으며 또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알고 하는 짓인지, 모르고 있는 것인지 그녀의 손에 쥐여진 레이스 팬티가 자꾸 민구의 볼을 스친다.

마음이 급해진 것은 민구 쪽이었다. 조금 전부터 더 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의 배팅이 어긋날 리는 없으니 군인들이 승리를 거뒀다는 의미이고, 살아남은 놈들은 이제 슬슬 쉘터 내로 복귀할 시간이다.

만약 지금 이런 꼴을 씻으러 들어온 군인들이 본다면…… 그렇다면 제아무리 강민구라고 해도 살아남기가 어려울 터였다.

민구는 극한까지 인내심을 끌어올려 최대한 친절해 보이는 거짓 얼굴로 테라의 팔을 풀어냈다.

“자, 나가자. 이것부터 입고, 응?”

민구가 등을 돌린 사이, 테라는 팬티를 다시 입고 흘러내린 드레스 어깨를 바로잡았다. 옷매무새를 다듬은 그녀는 다시 민구의 팔을 꽉 잡았다.

“일어날 수 있겠나?”

다리가 풀려 버린 테라를 부축해 일어설 때, 피가 흐르는 그녀의 새끼발가락이 민구의 시야에 들어왔다. 피 속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였지만, 그 선명한 붉은색은 왠지 각별한 그 무엇처럼 찡했다.

이게 대체 뭐지? 민구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

“끄응차~!”

보안관은 다시 한 번 긴 파이프를 물속에 담그고 수문 쪽으로 휘저었다. 오전에 공원에서 잘라온 파이프다. 물살이 워낙 세서 그 정도를 하는데도 꽤 힘이 들었다.

풀럭, 커다란 기포들이 솟아나며 수문 창살을 꽉 막고 있던 쓰레기들 중 몇 개가 둥둥 떠올랐다가 소용돌이에 휘말려 뱅글뱅글 돈다.

비닐봉지, 스티로폼, 플라스틱 슬리퍼 따위의 가벼운 물건들은 금방 물살에 밀려 하류로 떠내려가 버렸지만, 좌우에 난 수문은 어느 한쪽도 물이 빠질 기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불어나고 있다. 쉼 없이 빠르게 떠내려오는 물살을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만하자.”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훔치며 유빈이 말했다. 서너 시간 이상 번갈아 교대를 해가며 계속 시도해 본 결과, 온갖 쓰레기로 꽉 막혀 저수지를 만들고 있는 이 수문을 뚫는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확인됐다.

“그래, 답이 안 나오는 것 같다.”

보안관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땀에 찌든 셔츠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덥다.

뜨거운 햇살과 힘든 노동으로 올라간 체온을 식히기 위해 그들의 몸은 엄청난 양의 땀을 배출해 내고 있었다. 보안관과 유빈은 두어 발짝 뒤로 물러나 바닥에 주저앉은 채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어제 밤새도록 번갈아 보초를 서가며 차 안에서 쪽잠을 잔 탓에 온몸에는 피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간선도로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철책 위에 걸터앉은 채 망을 보고 있던 삼식이는 여전히 아무 신호도 내지 않는다. 아직 근처에 좀비는 없는 모양이다.

“참 웃기지? 이렇게 온갖 잡동사니가 다 떠내려오는데, 정작 우리한테 필요한 건 안 와주네.”

발 근처에서 물살을 따라 빙빙 도는 페트병을 톡, 차며 유빈이 중얼거렸다.

“정작 우리한테 필요한 거? 그게 뭐야?”

“뭐긴, 고무보트나 뭐 그런 거지. 이 염병할 저수지를 건너갈 수 있을 만한 거. 한창 휴가철이었으니까 어느 계곡 유원지에서 쓰던 게 좀 떠밀려 올 수도 있잖아.”

“행여나 그런 복이 잘도 우리한테 있겠다. 우리가 동네로 가서 하나 구해온다면 또 모를까.”

보안관이 콧방귀를 뀌었을 때, 뒤쪽에서 살금살금 다가온 제니가 두 사람의 어깨를 한쪽씩 콱 끌어안았다.

“에비! 놀랐죠! 하하하!”

별것도 아닌 장난을 쳐놓고 혼자서만 신이 난 그녀가 개구지게 웃는다.

“어때요? 잘돼가고 있어요?”

둘이 말없이 고개만 젓자, 제니도 미간을 찌푸렸다.

“영 아니에요?”

“응. 영 아니야. 암만 후벼 파봐도 물이 빠질 기미 같은 건 안 보여.”

보안관은 원망스러운 듯 파이프 끝을 잡고 수문을 쿡, 질렀다.

“음, 역시 그렇구나……. 그럼 이제 차에 가서 에어컨 바람 좀 쐬어요. 어제부터 너무 무리하고 있잖아요. 이러다가 더위 먹고 쓰러지기라도 하면 정말 아무것도 못하게 되니까.”

“그래, 알았어.”

보안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나무를 자르고 옮기느라 땀을 잔뜩 흘린 뒤 일사병에 걸린 신입은 오늘 아침까지도 고생을 했다.

계속 노가다를 뛰어온 덕에 체력적으로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 있다고는 해도 그들 역시 무한한 에너지를 가진 게 아니고, 며칠 동안이나 불편한 쪽잠을 잤으니 아슬아슬한 선 위에 있는 셈이었다.

몇 시간 만에 결판을 낼 수 없다면 차라리 적절하게 쉬어가며 일을 하는 게 나았다.

그리고 이 지독한 날씨……. 지난 몇 년간 이렇게 더운 적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푹푹 찌는 기온과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 덕에, 스무 살의 쌩쌩한 몸도 금방 방전이 되어버릴 만큼 지친다.

“그렇게 말만 하지 말고 빨리 와요! 조금 전부터 에어컨 켜서 음료수 식혀놨다고요.”

양손으로 잡아당기는 제니에게 못 이기는 척 끌려온 두 남자는 코롤라 좌석에 털썩 몸을 던졌다.

하아아~ 에어컨으로 청량해진 실내 공기가 피부의 땀을 식히자 저절로 한숨과 탄성이 섞여 나온다.

“으아~ 시원해.”

운전석에 앉아 에어컨 통기구의 방향을 얼굴 쪽으로 조절하며 보안관이 말했다. 뒷좌석에 널브러진 유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치익~!

조수석에 따라 들어와 앉은 제니가 얼른 캔을 따서 보안관의 뺨에 가져다 댄다.

읏! 예상하지 못했던 차가운 감촉에 보안관의 목덜미는 소름이 돋아 올랐다. 그가 놀라는 걸 본 제니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두 번째 캔을 유빈에게 건넸다.

“이거 맥주잖아?”

“맥주라고 해봐야 겨우 캔 하나인데, 어린애도 아니고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냥 음료수죠, 뭐. 어때요? 그래도 꽤 시원하죠?”

“으응…… 그러네.”

땀 흘려 일하고 나서 맥주 한잔이라…….

그걸 마다할 사람이야 없겠지만, 두려운 것은 이런 음주가 버릇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짐을 쌀 때 술은 별로 담아 오지 않았으니까…… 잠시 망설이던 유빈은 맥주 한 모금을 쭉 들이켰다.

크으~ 갈증이 한결 가셨다. 얼음물처럼 차갑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온의 뜨뜻미지근한 음료수만 마셔온 터라 꽤나 감동적이고 사치스런 시원함이었다.

유빈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직도 철책 위에 걸터앉아 망을 보고 있는 삼식이와, 오피러스 위에서 강 건너편을 살피는 신입에게로 향해졌다. 그것을 눈치챈 제니가 다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삼식이 오빠 거랑 신입 오빠 것도 있으니까 다 마셔요. 아, 그리고요…… 오빠, 가스레인지 써도 돼요? 점심 준비하면서요.”

제니가 유빈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데우지 않아 딱딱한 밥이랑 김만 먹기가 지겹기는 했지만, 유빈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에이, 안 돼. 담배랑 불이랑 어떤 게 좀비를 끌어들이는지 아직 확실하게 모르는데…… 그냥 대충 먹자.”

“하지만요, 오빠. 저걸 좀 봐요. 엄청 뜨거워서 손도 못 댈 지경이에요. 이 정도면 근처에서 불 잠깐 피운다고 크게 온도 차이가 날 것 같지도 않은데…….”

제니가 가리킨 것은 동부간선도로를 막고 서 있는 자동차들이다. 몇 시간째 사납게 내리쬐는 햇볕에 달궈진 차체와 아스팔트에서는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확실히…… 엄청난 열기라는 걸 느낄 수 있다.

모르기는 해도 열화상 카메라로 비춰본다면 아마 선명한 빨간색으로만 보일 것이고, 그 위에 달걀을 깨면 금방 프라이가 될 것이다. 물론 에어컨을 가동하기 위해 엔진을 켜둔 두 대의 차는 더욱 뜨거울 테고.

그런 형편이니 이 근처에서 조그만 가스레인지 하나 더 켜거나 끈다고 해서 어떤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으음…… 열은 뭐 그렇다 치고…… 요리를 할 거야?”

잠시 망설이던 유빈이 묻자, 제니가 찡긋 윙크를 한다.

“넷! 우리 전부 잠도 설쳤고 기운도 없으니까 제가 오랜만에 솜씨 발휘 좀 하려고요. 스팸이랑 고추장이랑 넣고 찌개 만들어줄게요. 우리, 김치도 조금 가져오지 않았어요?”

제니가 요리를 하겠다는 말에 보안관과 유빈이 동시에 주춤한다. 얼큰한 국물은 간절히 먹고 싶다. 하지만 누가 만드는가가 메뉴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들의 뇌리에는 아직도 그녀가 만들었던,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까운 재료를 다 망쳐 놓았던 김치찌개의 강렬한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유빈이 더듬거렸다.

“구, 굳이 그렇게…… 안 해도 되는데…… 그냥 물만 끓여서 즉석 국에 부어도…… 아니면 라면을 끓여도 되고, 어…….”

“오호, 그게 무슨 의미일까? 설마 지금 내가 한 찌개보다 라면이 더 낫다는 이야기예요? 보안관 오빠, 그런 거예요? 오빠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 거예요.”

눈을 가늘게 뜨고 유빈을 노려보던 제니는 바로 곁에 앉은 보안관 쪽으로 타깃을 옮겨 묻는다. 맥주를 음미하고 있던 보안관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 그, 그냥 너 번거롭고 히, 힘들까 봐 하는 말이지.”

“후훗, 그런 거죠? 에이, 걱정하지 마요. 나도 도와서 뭔가를 해야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슈퍼맨 포즈를 취해 보인 제니는 두 남자의 이마에 물수건을 한 장씩 덮어주고서 차에서 내렸다. 역시 에어컨 바람을 쐬었던 것이라 시원하다.

“좀 더 쉬다가 나와요. 다 되면 부를게요.”

“복이라…….”

찡긋 윙크를 하고 문을 닫고 나간 제니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면서 보안관이 중얼거린다.

“……아까 수문을 휘저으면서 우리한테 복이 있네, 없네 했지만, 그런 게 있었더라도 벌써 다 써버린 걸지도 모르겠어.”

유빈도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심으로 깔깔대는 저 밝은 웃음소리가 주는 긍정적 에너지가 없었다면, 그리고 저 아름다운 미소가 곁에 없었다면, 지난 열흘은 훨씬 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니, 사실 이제 그녀 없는 날들이 잘 상상이 가지 않을 만큼 익숙하고 절실하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느긋하게 한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5미터 정도 앞에 정차되어 있던 오피러스 위에서 신입이 방방 뛰었다.

“저, 저기! 저기!”

원숭이처럼 외마디 소리를 질러 대는 바람에 트렁크에서 취사도구를 꺼내던 제니도, 물수건을 이마에 얹고 있던 보안관과 유빈도 깜짝 놀랐다.

“뭐야? 왜 그래, 인마?”

급하게 문을 열고 뛰어나간 보안관이 물었다. 신입은 중랑천 건너편을 가리키며 다시 꽥! 소리를 질렀다.

“저거! 안 보여, 이 등신아? 저기 좀비잖아! 떼로 온다고!”

보안관은 신입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발돋움을 했다.

그러자 쑥쑥 자라 있는 갈대밭 사이로 개천 건너편의 산책로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정말로 신입의 말처럼 거기엔 좀비가 있었다. 다만, 떼라는 건 심한 과장이었다. 좀비는 모두 세 마리뿐이었다.

“야! 빨리 차에 타! 뭐해? 저 새끼들, 여기까지 금방이야!”

허겁지겁 뛰어내린 신입은 오피러스에 올라타며 목청을 더 높였다. 코롤라 지붕 위에 구부정하게 올라서 살펴보고 있던 유빈이 허리를 굽히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쉿! 목소리 좀 낮춰. 너 때문에 들키겠어. 쟤들은 아직 이쪽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갈대에 가려져서 우리가 안 보여.”

“……모른다고? 정말?”

삼식이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시동부터 걸고 있던 신입은 잠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주춤거리며 다시 자동차 지붕 위로 올라갔다.

건너편의 좀비들은 특유의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천천히 산책로 위를 걸어가는 중이었다.

특별히 걸음을 서두르는 기미도 없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는다. 그저 끄으으으~ 하는, 숨이 막혀 괴로워하는 듯한 소리를 간간이 내며 규칙적으로 발을 내디딜 뿐이다.

“뭐지? 저놈들은 어디에서 오는 거지?”

유빈의 옆에 선 보안관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피가 검게 말라붙어 있는 상태로 보아 좀비가 된 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것처럼 보인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놈들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처음 좀비가 급격하게 확산되던 날 물려 감염이 된 이래 지금까지 계속 저런 꼴로 걸어 다니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산책로라고 해서 안전하지 않다는 것 하나는 확실해졌다. 사람이 있던 곳이라면 어디든 좀비가 있다는 사실이다.

“근데 쟤들은 왜 다른 좀비들이랑 합류하지 않았을까요?”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제니도 속삭인다. 그건 유빈에게도 궁금한 문제였다. 돌이켜 보면 몇몇 녀석들은 반드시라고 할 만큼 무리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었다.

어제의 시장에서도 그랬고, 경전철역 건너 번화가에서도 그랬고, 나중에 불을 보고 찾아온 놈들 중에서조차 몇 놈이 따로 떨어져서 벌판을 배회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놈들의 행동을 조종해 정찰이나 보초를 담당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사령부 같은 게 존재할 성싶지도 않았다.

“안테나 같은 게 고장 난 걸까요? 쟤들은?”

“어쩌면…….”

말없이 좀비들을 관찰하던 유빈이 입을 열었다.

“저것 때문인지도 몰라.”

“뭐요? 다리?”

응, 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개천 건너편을 걷고 있는 세 마리 좀비의 공통점을 고르라면, 놈들이 모두 종아리나 허벅지 근육이 뜯겨 나가거나, 뼈가 부러진 상태여서 좀처럼 스피드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내장이 드러날 만큼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놈도 있었다. 한마디로 신체적 상황이 엉망이었다.

“살 좀 뜯겨 나가기는 했지만, 그게 뭐? 좀비 중에 멀쩡한 놈이 어디 있어? 어차피 한 번은 물려야 좀비가 되는 건데.”

유빈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보안관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유빈은 자신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이런 데나 목 같은 데를 물리는 거랑은 다르지. 다리라고. 다리가 망가져서 걷는 게 꽤 느리잖아. 물론 그래도 잘만 걸어 다니기는 하지만…… 어쨌든 저런 놈들이 무리에 합류해서 이동을 한다면, 무리 전체의 이동 속도도 확 줄어버릴 거야. 차라리 떼어놓고 다니는 게…….”

“뭔 소리야? 부상당한 부위랑 정도를 파악해서 무리에 넣고 안 넣고를 정한다고? 저것들 대가리로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칼날에 목이 걸려도 똑바로 직진밖에 할 줄 모르는 놈들인데…….”

“모르겠어.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논리적으로 말은 되잖아. 그건 그렇고…….”

지붕에서 뛰어내린 유빈은 갈대숲을 헤치고 개천 쪽으로 다가갔다. 깜짝 놀란 보안관이 묻는다.

“야, 무슨 짓이야? 뭘 하려고?”

유빈은 갈대들을 양쪽으로 눕혀 그 사이로 좀비가 보이도록 했다. 놈들은 아직도 처음 눈에 띄었을 때와 같은 속도로 이동 중이다.

물이 불어난 개천의 폭은 15미터 남짓. 그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이편에 사람이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게다가 조금 전 신입이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며 난리를 쳤는데…….

바람은 좀비들로부터 유빈이 선 쪽을 향해 불어오고 있다. 예전에 번화가에서 그들을 발견하고 달려오던 놈들이 눈으로 보고 그렇게 한 게 아니었다는 게 느껴진다.

“들어봐. 이건 아주 좋은 기회야. 저놈들이 어떻게 우리를 느끼고 찾아내는지 알 수 있는 기회라고. 일단 지금까지 저것들은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놈들처럼 굴어. 그렇지? 심지어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어 댔는데도. 그러니까 바람의 방향만 잘 맞춘다면 이 정도 거리에서 이 정도 소리를 내는 건 아직 안전하단 뜻이야. 안 들킨다고.”

이 정도면 몇 가지 실험을 해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들뜬 유빈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풀에 걸려 중심을 잃었다.

어엇, 하며 갈대라도 잡아보려 했지만, 한번 균형이 무너진 데다 바닥도 끈적이는 진창이어서 그대로 넘어가고 말았다.

풀썩.

갈대밭 위라서 소리는 별로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건너편의 좀비들은 바로 그 순간, 몸을 돌렸다.

크륵― 그롸아아악―!

“안 들키는 것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빨리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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