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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악마는 어디에나 있다 (6) (150/449)


150. 악마는 어디에나 있다 (6)
202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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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로운 하루가 밝았다. 잠실 쉘터에서는 아침 식사를 배급받기 위해 식당 앞으로 하나둘씩 모여든 사람들이 이른 시간부터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아, 빨리빨리 좀 받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느려?”

행렬이 줄어드는 속도가 시원치 않자, 중간에 서 있던 중년 사내 하나가 투덜거린다. 그의 의견에 동조한다는 듯 다른 사람들도 웅성거리며 앞쪽을 기웃거렸다.

충분히……라고까지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름 하루 세끼의 식사를 제공받고 있고, 건빵도 한 봉지씩 지급받는데도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허기를 느꼈다.

물론 허술한 식사 메뉴가 가장 큰 원인이다.

찐쌀로 만든 밥 한 덩이, 말린 야채를 불려 넣고 멀겋게 끓인 된장국, 입에 넣고 씹는 동안에도 도대체 무슨 고기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햄버거 패티 한 조각으로는 그간 고칼로리 식사를 계속해 왔던 현대인들의 식욕을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그리고 제한된 시간, 제한된 양 외에는 먹을 수 없다는 두려움이 일종의 강박증처럼 사람들의 뇌리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식사시간이 가까워지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기 위해 노력했다.

거기에는 취사병들이 양 조절을 잘 못하기 때문에 늦게 가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더 적게 준다는 헛소문도 한몫을 거들었다.

며칠째 감지 않은 머리를 긁적이며 스테인리스 식판을 통통, 두들기고 있는 여드름쟁이 청년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 소문을 믿었다. 그러나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고, 그래서 뒷줄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평소였다면 화가 날 법한 일이지만, 오늘은 특별했으므로 그런 사소한 일 따위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바로 뒤에 서 있는 한 여자 때문이다.

테라잖아…….

처음 그녀가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자신의 등 뒤에 설 때, 여드름쟁이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같은 공간 안에 있다고는 해도 워낙 주목을 받는 대상이고, 항상 아줌마나 아이들 사이에 묻혀 있어서 그녀를 근거리에서 본 경험은 별로 없었다.

드물게 아줌마들의 장벽에서 벗어나 돌아다닐 때면, 그때는 또 늘 군인 놈들이 좋아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다가가 뭔가를 건네고 ‘사랑합니다’를 외치며 도망가 버리곤 했다.

그런데 오늘 그 대단한 테라가 바로 자신의 등에서 30센티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것이다.

씨발, 이럴 줄 알았으면 목욕이나 좀 할걸. 땀 냄새가 엄청 날 텐데…….

여드름쟁이는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도 티를 내지 않고 계속 뒤를 힐끔거렸다.

예쁘다! 정말이지, 더럽게 예쁘다. 현실 속의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예쁘다! 저 오뚝한 코, 선명한 분홍색 입술, 윤이 흐르는 검은 머리, 가녀리고 흰 팔, 그리고 짧은 치마 아래 빛나는 긴 다리…….

만화 속 캐릭터가 현실로 튀어나와 살아 숨 쉬는 기적을 보는 것 같다. 여드름쟁이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난데없이 온몸에 땀이 흐르고 숨이 차왔다.

“하여간, 희한하다니까. 우리랑 똑같은 데에서 먹고 자는데 얘는 어쩜 이렇게 피부가 매끈매끈하고 윤이 나나 몰라. 애초부터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난 걸까?”

테라의 곁에 선 중년 여자가 그녀의 팔을 손바닥으로 쓸면서 떠든다. 다른 여자가 얼른 나서서 깔깔거리며 대꾸한다.

“어이구, 얘처럼 부지런히 씻기나 하면서 그런 말을 하면. 얘는 매일 샤워해요. 우리처럼 그렇게 땀 찬 엉덩이 깔고 앉아서 목 주변만 수건으로 대충 훔치는 게 아니라고.”

“어머, 진짜? 샤워실이라고 차려만 놨지, 물도 잘 안 나온다면서? 나도 처음에 한 번 갔다가 허탕 치고 온 다음부터 거기는 안 가. 그 쫄쫄 흐르는 물로 뭔 샤워를 해? 그냥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말지.”

“아, 그거요. 펌프를 가동하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어서 그래요. 오후 두 시부터 세 시 반 사이, 한 시간 반 동안만 샤워실로 물을 보내준대요. 그 시간대에는 전기에 조금 여유가 있나 봐요.”

테라가 샤워를…….

가뜩이나 강제 금욕 생활을 하느라 괴로웠던 여드름쟁이는 그녀가 얌전한 목소리로 말하는 샤워란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배꼽 아래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쉘터의 급수 시스템은 한강에서 곧바로 물을 끌어다가 여과시켜 사용하는 것이어서 물이 부족한 일은 거의 없지만, 수천의 수용자들에게 24시간 샤워를 제공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낭비를 하기에는 전력도, 여과기의 여력도 부족했다.

두 시라고 했지? 좋아, 나도 그때쯤에 샤워실 부근에서 기웃거리고 있어야지…….

여드름쟁이는 턱의 수염을 쥐어뜯으며 생각했다.

톱스타에 아이돌이라고는 해도 어차피 이제 와서는 같은 배급을 받아 먹고 사는 사이. 지나가다가 눈만 잘 맞고 마음만 통하면 사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아니, 그렇게 구체적으로 관계가 진전되지 않아도 괜찮다. 샤워를 막 마치고 나온, 상기된 얼굴의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꽤나 큰 눈요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총각, 무슨 생각 해요? 앞으로 가요. 줄 비었어요.”

“호호호, 테라 때문에 넋이 나갔나 보네, 이 아저씨.”

여드름쟁이의 기분 좋은 망상은 뒷줄 아줌마의 지적 때문에 깨졌다.

마음이 들킨 것 같아 얼굴이 상기된 그는 재빨리 앞으로 걸어갔다. 배식대의 앞에는 시야를 가리기 위한 칸막이가 쳐져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물건이다.

“뭐야, 이건?”

칸막이 안으로 들어간 여드름쟁이의 눈에 한 분대의 병사들이 들어온다. 두툼한 서류철과 볼펜을 들고 있던 병장이 식판을 내미는 여드름쟁이에게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네?”

여드름쟁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병장은 질문을 고쳐 다시 물었다.

“이름. 이름이 뭐예요?”

“김승준요. 그, 그건 왜요?”

“김승준, 김승준…… 아, 여기 있네.”

여드름쟁이에게 답을 하지 않고 서류철을 넘기던 병장은 그의 이름을 발견하고 두 줄을 그었다.

서류상으로는 동명이인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김승준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상은 다 똑같이 처리될 테니까.

“여기 있다는 게 뭔 소리예요? 그, 그 서류가 뭔데요?”

대답을 듣지 못한 여드름쟁이는 재차 물었다. 병장은 서류철을 덮으며 미소를 지었다.

“김승준 씨, 축하합니다. 현역 입영 대상자입니다. 저기 쳐놓은 노란 테이프 보이십니까? 그걸 따라서 쭈욱 끝까지 걸어가십니다. 거기에서 대기하시면 저희가 안내를 따로 해드릴 겁니다.”

“네? 현역…….”

너무도 갑작스러운 처분에 얼떨떨해진 여드름쟁이가 뭐라 할 말을 찾기 위해 눈을 굴리고 있자, 병장은 차갑게, 그리고 강압적으로 명령했다.

“빨리 이동합니다. 다른 분들 기다리시니까.”

“하, 하지만 아직 밥도 못 먹었는데…….”

병장 곁에 서 있던 병사가 다가와 여드름쟁이의 식판을 빼앗아 반납하는 곳에 놓으며 말했다.

“그쪽에서 따로 챙겨 드릴 겁니다. 이제부터는 군인으로 대접해 드릴 테니까 안심하십쇼.”

“어, 어어…….”

아직도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입을 뻐끔거리던 여드름쟁이는 병사 둘에게 밀리다시피 해서 노란 테이프 안쪽으로 멀어져 갔다.

등을 떠밀려 걸어가면서도 그는 계속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테라를 힐끔거렸다. 병장은 무심한 표정으로 줄 선 사람들을 향해 손을 까딱거린다.

“자, 다음 분 오십쇼. 그렇게 서 계시지 마시고.”

테라는 머뭇거리며 식판을 배식대 위에 올리고 취사병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바로 눈앞에서 군에 끌려가는 수용자를 본 터라 잠깐 동안 일말의 두려움이 마음속을 휘저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리고 그녀와 나란히 서 있는 여자들에게 취사병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친절하게 밥과 국을 퍼 줬다.

잠실 쉘터의 제1차 입영 대상들은 어디까지나 20세에서 35세까지의 젊은 남자들만으로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게 뭐야? 씨이, 왜 아침도 못 먹게 하고……. 난데없이 입영은 또 뭔 소리야?”

미리 쳐둔 경계선을 따라 걷다가 좌익수 쪽 객석까지 이른 여드름쟁이는 울상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아침 먹는 줄에 서지 않는 건데, 이놈들이 꼼수를 부리는 바람에 꿈에도 모르고 있다가 걸려들어 버렸다.

객석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은 여드름쟁이를 보자 아무 말도 없이 박스에서 주황색 트레이닝복 한 세트와 커다란 봉투를 꺼내 건넸다.

“이, 이걸 어떻게 하라고요?”

여드름쟁이가 묻자, 병사는 바로 곁에 쳐둔 커다란 국방색 장막을 가리킨다.

“저기에서 환복합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은 그 봉투에 넣어서 갖고 나옵니다. 빨리 환복하도록 합니다.”

강압적이다. 젠장, 여드름쟁이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이미 대여섯 명이 똥 씹은 표정을 하고서 툴툴대며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개중엔 서른이 훌쩍 넘어 보이는 아저씨까지 있는 걸 보면 이놈들은 나이도, 군필 여부도 따지지 않은 채 무조건 입영시키는 것 같다.

“아, 씨발. 하다 하다 이제는 군대를 두 번 가네. 좃도.”

주황색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삼십 대가 욕설을 내뱉으며 봉투를 뒤져 반쯤 남은 담배꽁초를 꺼내 입에 문다. 후우우~ 불을 붙인 사내는 인상을 팍팍 쓰면서 외야 객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흡연 구역이 아니지만 거기까지 입을 대는 병사는 없었다. 어쨌든 남자들로서는 가장 가기 싫은 곳으로 끌려가는 날이고, 아직 정식으로 훈련이 시작된 것도 아니었으므로 조금은 아량을 베풀어주는 모양이다.

담배…… 피우고 싶다…….

여드름쟁이는 삼십 대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뿌연 연기를 빤히 바라보았다. 불안감이 몰려온다. 이렇게 갑자기 군대에 끌려가게 되다니, 도대체 어떤 대접을 받게 될까?

“아침 식사입니다.”

넋을 놓고 앉아 있는 여드름쟁이의 무릎에 박스 하나가 놓였다. 여드름쟁이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박스를 열었다.

햇반에 즉석 카레, 즉석 미트볼, 포장 김치, 포장 김, 종이팩에 든 과일 주스, 감자 칩, 그리고 손바닥만 한 캐러멜 한 통과 생수가 들어 있다. 평소 쉘터에서 먹던 것에 비하면 진수성찬이다.

이렇게 우울한데도 음식을 보자마자 식욕이 동한다는 것에 여드름쟁이는 한편 놀라면서 허겁지겁 포장을 뜯고 포크를 놀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속속 새로운 입영 대상자들이 들어왔고, 그림자가 드리워진 얼굴로 장막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외야석으로 와 앉았다.

밥을 다 먹어 치우고 과일 주스를 빨 때쯤 돼서야 비로소 다시 암울한 현실이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에에에에에에에엥~ 에에에에에에엥~

잠실 쉘터에 사이렌이 울린 것은 점심시간이 다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전까지 맞은편의 아파트 단지 주변을 배회하던 좀비들이 점점 그 규모를 불리는가 싶더니, 2시 10분 전에 마침내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규모 넷짜리 좀비들의 난입이다. 평소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태풍으로 인해 방어벽이 무너지고 크레모아가 유실돼 버린 상황이라 이야기가 좀 달랐다.

“전방에 좀비! 전방에 좀비! 위치로!”

철책 마무리 공사를 진행하던 병사들은 작업을 중지하고 재빨리 후퇴했다. 후방에서 버티고 있던 K―21 장갑차의 중기관총이 가장 먼저 목표물을 확보하고 불을 뿜는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기관총이 훑고 지나간 지역에는 사지가 떨어져 나가고 허리가 잘린 좀비들이 나뒹군다. 하지만 좀비와의 싸움이 늘 그렇듯이, 그런 기선 제압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롸아아아아!

사람의 기척을 느낀 좀비들은 괴성을 지르며 빠르게 돌진해 온다. 망설이거나 두려워하는 기색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넓게 퍼져 뛰어오는 좀비들을 향해 40㎜ 기관포와 동축기관총이 동시에 발사된다.

콰쾅! 파파파파파바바―

엄청난 화력이지만, 문제는 너무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놈들과의 거리는 불과 50여 미터. 잠시라도 한눈을 팔거나 조준을 놓치는 날에는 끝장이라는 것을 알기에, 병사들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쿠르르르르―

산개해 있던 탱크들과 장갑차들이 화력을 보태기 위해 6시 방향으로 몰려든다. 하지만 그들의 이동보다 좀비들의 난입이 훨씬 빠르다.

콰앙―! 콰앙―!

10여 초의 간격을 두고 K―2 전차의 주포가 학교 운동장을 향해 연속 사격을 날린다.

“크레모아!”

장교의 명령을 받은 병사가 폭파 스위치를 누르자, 정신여고를 향해 설치되어 있던 다섯 발의 크레모아가 일제히 폭발한다.

콰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산산조각 나면서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 거리를 확보한 보병들은 K―2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다― 투투투투두―

갑자기 수십 기의 소총이 일제히 발사되면서 잠실의 하늘은 온통 총성으로 뒤덮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다지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상황은 아시아 공원의 나무숲이 흔들리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사사삿― 사삿―

짙푸른 나무들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그 사이를 뚫고 좀비들이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야구장을 향해 달려드는 좀비들은 6시와 5시, 두 방향에서 밀려온다. 정신여고 쪽의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원 쪽은 상대적으로 방어선이 더 허술했다.

“지원 요청해! 지원!”

야구장으로부터 떨어진 학생 체육관 옥상에 배치되어 있던 저격 소대에서도 긴급 신호가 날아온다. 이 미친놈들이 마치 작당이라도 한 것처럼 거의 동시에 세 방향에서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빨리! 빨리!”

쉘터 내에 배치되어 있던 병사들까지도 서둘러 무기를 지급받고 뛰어나간다.

마지막 하나 남은 철책 방어선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꼼짝없이 야구장에 갇히는 신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야구장 내부는 그야말로 필수적인 소수의 병력만이 남겨진 채 순식간에 공동화되었다.

“야, 밖에 난리 났나 본데? 총소리, 대포 소리 완전 장난 아니야.”

주황색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앉아 있던 사내들의 귀에도 당연히 그 소리가 들렸다.

비슷한 또래의 남자들은 서로 부족한 정보나마 나누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병사들이 바쁘게 뛰어다닌다.

“됐어, 씨발. 싸우든가 말든가,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우리도 내일부터 저렇게 뺑이 쳐야 돼. 아, 좃같다, 진짜. 군대가 웬 말이냐.”

껄렁거리는 몇몇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늘어놓았다. 며칠 동안 이 쉘터 내에서 소위 일진 행세를 하며 군인들의 눈을 피해 톡톡히 재미를 보던 부류들이어서, 군대로 끌려간다는 것에 대해 더 강하게 반발하는 중이다.

여드름쟁이도 그들을 잘 안다. 화장실 부근에서 노상 머물다가 약해 보이는 사람이 눈에 띄면 협박해서 별것도 아닌 물건을 빼앗고, 군인들의 감시를 피해 여자들을 희롱하기도 하던 놈들이다.

“아아, 씨발. 잠깐 동안이지만 좋았는데. 계집애들 따먹는 재미도 쏠쏠했고.”

“그러게. 건빵 한 봉지에 대주는 년들이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해봤냐?”

한데 모여 앉은 녀석들은 잔뜩 허세를 부리며 위악적인 목소리로 자신의 무용담을 털어놓았다. 앉은 위치가 바로 근처여서 애써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여드름쟁이는 녀석들의 대화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었다.

으아아악! 바깥에서는 어느 병사가 내지르는 단말마가 총성에 섞여 울려온다.

“지금 군대에 끌려가면 결국 우리도 저렇게 뒈지겠지? 진짜, 씨발. 이왕 죽는 건데 테라라도 한 번 따먹어보고 죽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내가 이 나이에 뒈지는 걸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아. 바로 근처에서 며칠이나 살았으니까 기회는 있었는데.”

쥐를 닮은 놈이 중얼거리자, 다른 놈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닥치라고. 방법이 있는 걸 좀 이야기해. 군인 새끼들이 완전 밀착 수비를 해줘서 그년은 못 건드린다고. 내가 아무 욕심이 없었는 줄 아냐? 군인들만 없었으면 그년은 내가 벌써 열 번도 더 따먹었을걸?”

덩치는 쥐의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면박을 준다. 이성적으로는 너무도 한심한 이야기들이지만, 가만히 앉아 듣고 있는 동안 여드름쟁이 역시 차츰 그들의 욕망과 동화되어 갔다.

씨발,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미친 척하고 와락 끌어안아라도 보는 건데…….

바로 뒤에 테라가 서 있었을 때, 그 찬스를 놓쳤다는 것이 갑자기 너무나 후회가 된다.

“……야, 이상해. 군인이 없어. 복도도 텅 비었어.”

자리를 이탈해 살금살금 위쪽을 살피고 온 녀석 하나가 덩치에게 다가가 속삭인다. 덩치와 여드름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정말 조금 전까지도 그들을 감시하고 있던 병사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어쩌라고, 이 새끼야. 군인이 없는데 뭐!”

“하~ 이 등신. 굳이 다 풀어서 말해줘야 되나……. 찬스잖아. 네가 조금 전에 뭐라고 했어. 군인들만 없으면 테라 년 아주 죽여 버린다고 했었지? 지금 군인이 싹 다 빠졌다고.”

어라?

덩치의 표정이 묘하게 바뀐다. 그리고 눈빛에 사악한 욕망이 꿈틀거린다. 꺽다리가 끼어들어 겁먹은 목소리로 묻는다.

“야, 근데 따먹는 건 그렇다 쳐도 뒷감당은 어떻게 할래? 그년 당한 걸 알면 군인들이 우릴 찢어 죽일걸?”

“등신아,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돼. 저 앞에를 좀 봐라.”

덩치가 턱으로 다른 입영 대상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자신의 주황색 트레이닝복을 잡아당긴다.

“전부 다 똑같은 옷을 입은 남자가 수백 명인데, 그년이 무슨 수로 우리를 찾아낼 거냐? 그리고 막상 지목을 해도 증거 있어? 응? 이건 거의 완전범죄야. 가자!”

덩치는 콧김을 씩씩거리며 일어났다. 그의 XX는 벌써부터 발기해서 트레이닝복 위로 빳빳이 서 있다.

“다 좋은데, 테라가 어디 있는지는 알고 설치는 거야? 야구장 전체를 다 뒤지려고? 생각을 좀 하고 살아라. 그냥 우리 군인들 오기 전에 가까운 데서 눈에 띄는 년 아무나 붙잡고 하자. 그게 훨씬 현실적이다.”

쥐가 딴죽을 걸자 열 놈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덩치도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그 말도 맞네. 그년이 어디 있는 줄 알고…….”

놈들이 포기하려는 기미를 보인다. 여기까지 엿들은 여드름쟁이는 전광판의 시계를 살폈다. 두 시 오 분.

훗, 이것 봐라?

여드름쟁이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덩치와 그 일행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말했다.

“나는 걔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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