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8. 악마는 어디에나 있다 (4) (148/449)


148. 악마는 어디에나 있다 (4)
202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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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연구원들의 시선 역시 신 차장에게 고정된다. 오 박사의 쏘아보는 눈빛을 마주한 신 차장은 본능적으로 일단 손부터 휘저었다.

“아, 아니! 그, 그게 아닙니다! 저, 저는 규정에 따라서! 어디까지나 규정에 적힌 대로만…… 그, 그건 잘못이 아니잖습니까.”

“누가 잘못이라고 했어? 나는 아무 말 안 했는데?”

“네? 아…… 네, 죄송합니다.”

한숨 돌린 신 차장이 두 손으로 이마의 땀을 씻어내는 동안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오 박사가 묻는다.

“어땠어?”

“네? 무슨 말씀이신지…….”

“하~ 진짜 답답하기는. 말귀를 알아먹는 놈들이랑 일을 좀 했으면 좋겠다. 항체가 있는 놈이었잖아. 죽어가는 과정에서 일반인들과는 다른 특이 사항이 없었느냐는 말이야. 예를 들어 더 오래 버텼다든지, 아니면 더 빨리 심장이 멎었다든지, 심장이 정지한 뒤에 이상한 징후가 보였다든지 하는 것들! 그런 게 전혀 없었어?”

“소,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다지 눈에 띌 만한 특징은 없었습니다. 확실합니다.”

신 차장은 재빨리 대답했다. 실은…… 자세히 보지 않았다. 눈앞에서 사람이 좀비에게 물어 뜯겨 죽어가는 참극을 보는 것이지만, 계속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엔가 익숙해져 버렸다.

처음엔 눈을 질끈 감거나 손에 땀을 쥐며 부들거렸지만, 요새는 잡담이나 하면서 심장정지를 알리는 부저 소리만을 기다리는 식이다.

오늘 샘플은 기절한 상태로 끌려온 바람에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아서 더 현실감이 없기도 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코 주변을 비비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오 박사는 곁에 서 있던 남자 경호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냐, 안 되겠어. 내가 직접 봐야지, 이런 놈들 말만 믿어서는……. 어이! 너 경비실 가서 오늘 여기 CCTV 자료 가지고 와.”

그러고는 신 차장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서서 나가 버렸다.

“어디 규정을 잘 지켰는지 아닌지 한번 보자고. 후후후.”

당황한 신 차장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작업실 위층과 아래층 구석에 달린 총 네 개의 CCTV. 그중 작은 회장이 식사를 하는 장소는 크레인이 내려지는 것에 맞춰 자동적으로 고화질 카메라가 녹화를 시작하고 음성까지도 녹음된다.

저 차갑고 기계적인 렌즈를 통해 기록으로 남은 시간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과연 정말로 규정을 지켰었나? 저 미친 사이코패스 새끼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내려 해도 보이지 않을 만큼 흠결 없는 근무 태도를 보였었던가? 아니…… 그보다, 내가 저놈 욕이라도 하지는 않았던가?

자문해 보아도 확신은 안 든다.

만약…… 만약…… 아주 작은 꼬투리라도 발견된다면……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끔찍한 상상들이 순식간에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25도로 맞춰진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지만, 그의 온몸은 끈적이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갑자기 어지러워진 신 차장은 벽에 의지하고서야 간신히 서 있을 수 있었다.

***

“아우, 짱나. 강 실장 오빠, 우리 그냥 갔다가 이따가 오자.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려야 돼?”

초희가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물어뜯으며 투덜거린다. 민구는 대꾸하지 않았다. 시간은 이미 오후 일곱 시가 넘었다. 이곳에서 기다린 지도 한 시간은 족히 지난 것 같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2루 베이스에 위치한 서류 접수처. 어제 훑고 지나간 태풍 때문에 천막이 날아가 버려서 테이블 몇 개만 휑뎅그렁하게 놓여 있다. 민구가 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초희는 또 한 번 졸랐다.

“오빠아~ 진짜, 나 이렇게 할 일 없이 죽 때리는 거 제일 싫어한단 말이야. 심심해. 그냥 가자. 내일 와도 되잖아요, 네?”

“죽 때리지 않으면 뭘 할 건데? 달리 바쁜 일이라도 있어?”

민구는 엉겨 붙는 초희의 팔을 떼어내며 물었다.

음,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던 초희가 헤죽 웃는다.

“헤~ 진짜 그러네. 어차피 그냥 시간 죽이는 거였구나. 아후, 그래도 이렇게 가만히 서 있는 건 힘들어요. 오빠, 우리 담배라도 한 대 빨고 오자. 너무 심심하다.”

그 제안은 민구에게도 솔깃한 부분이 있었다. 이곳에 서 있던 시간은 한 시간 정도지만, 그 이전에 군인들에게 귀동냥을 하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시간들까지 합치면 벌써 두 시간 이상 담배를 피우지 못하고 있다.

이 쉘터의 모든 것이 낯선 민구에게는 건대 쉘터로의 이동 신청을 하려면 어디에 서류를 접수해야 하는지,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하는지 알아낸다는 게 꽤나 힘들고 복잡한 일이었다.

그를 데려오라는 명령을 듣고 남아 있던 초희의 조그만 머리통 속은 하얗게 비어 있어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게다가 경비를 서는 소수의 병사들을 제외하면 군인을 보기가 어려웠다. 장교는 더욱 그렇다.

“여기는 원래 이렇게 군인 얼굴 구경하기가 힘드냐?”

민구의 질문에 초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오빠. 원래 이 자리에 항상 군인들이 앉아 가지고 일하고 있었어. 회장님이랑 우리도 처음 이리로 날아왔을 때, 여기에서 서류 작성하고 그랬는데……. 무슨 일이 있나? 아니, 아니, 그런 거 말고 오빠, 우리 담배 피우고 오자~”

민구도 니코틴의 유혹을 어지간히 느끼고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그냥 초희가 잡아끄는 대로 못이기는 척 외야석을 향해 걸었다.

푸른색 방수포가 아직까지도 방치되어 있는 외야 잔디를 지나 흡연석에 들어간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담배 연기를 하늘로 뿜었다.

“아우, 저 여우 같은 년. 저기서 또 관심 끌고 자빠졌네. 어휴, 정말 눈꼴시어서 못 봐준다니까.”

초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배식소 앞에 한 무더기의 어린아이들이 모여 서 있고, 그들 가운데에는 테라가 허리를 굽힌 채 웃고 있다.

그녀는 옆구리에 메고 있는 허름한 천 가방에서 사탕 따위를 꺼내 차례로 나눠 주면서 아이들의 머리를 도닥이는 중이다.

민구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주먹이 스쳤던 그녀의 입가로 향했다. 가깝지 않은 거리라 얼마나 부어올랐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저녁 먹을 때인 것 같은데…….”

민구가 중얼거리자 초희도 잊고 있었다는 듯 손뼉을 친다.

“어머, 맞다! 다섯 시 반부터 줬었는데. 오늘은 너무 늦네.”

아직도 배식소의 셔터는 굳게 내려진 채고, 밥을 지으면서 나는 음식 냄새도 풍겨 나오지 않고 있다.

흐음, 애들이 징징대는 게 듣기 싫어서 사탕으로 입막음을 하는 건가? 하긴 애새끼들 빽빽 울어 대기 시작하면 짜증이 나지, 라고 생각하던 민구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도대체 저 애는 저 많은 사탕이 다 어디서 났단 말인가.

그에게 지급된 보급품 상자에도 사탕이 한 봉지 들어 있기는 했다.

초희 년의 말에 의하면, 매일 그만큼이 새로 지급된다고는 했다. 하지만 고작 서너 알이다. 저만한 양이 되려면 한 달 동안을 꼬박 모아도 부족할 것이다.

“아유, 진짜. 군인 새끼들이 미친 거지. 저런 빼짝 꼴은 년이 어디가 그렇게 좋다고 눈이 돌아가서 만날 음식을 갖다 바치고 생 지랄을 쳐요. 암만 그래봐야 한 번 대주지도 않는 년을. 어휴, 등신들.”

초희가 투덜댄 덕에 민구의 궁금증은 곧바로 풀렸다. 세금을 거두는 거라면 저만한 물량이 납득된다.

나름 군림하는 계집애였군. 크크크.

남이 갖다 바치는 것으로 펑펑 쓰며 산다는 점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 민구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것으로 오해한 초희는 민구의 팔에 가슴을 비비며 다시 한 번 말을 꺼내본다.

“저기요, 오빠. 아까는 내가 말을 좀 싸가지 없이 했나 본데요, 오해하지 마시구요, 전 진짜 심부름 시키고 그런 거 아니라…… 아니, 제가 감히 어떻게 강 실장 오빠한테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 그런 건 진짜 아니었거든요. 그냥 단지 나는 저년이 너무 꼴 보기 싫어서, 가슴에 한이 맺혀서 그래요. 요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구요……. 텔레비전 촬영하러 가서도 저년들한테 피디들이 굽실거리면서 실실 웃어 댈 때마다 만날 생각했었어요. 아주 죽이고 싶었어, 정말. 싸가지 없는 제니 년이 더 싫기는 했는데, 그년은 벌써 뒈져 버린 모양이니까 이제는 저년 얼굴에 흉터 댓 개만 만들어주면 진짜 소원이 없을 것 같아. 내가 진짜 오빠 원하는 대로 다 해줄 건데…….”

“초희야.”

민구는 팔짱을 낀 그녀의 엄지손가락을 잡고 지그시 뒤로 꺾었다.

아~ 아아~ 초희는 비명도 제대로 못 내고 눈을 크게 뜨며 애원하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네가 정신을 차릴 건지 모르겠다. 응? 왜 자꾸 잊어버리냐? 아~ 하긴 너는 머리가 좀 그렇지. 그럼 아예 글씨로 써서 항상 보고 까먹지 않게 해줘야겠다. 여기에 이걸로 써줘? 깝.치.지. 마.라. 이렇게 다섯 글자?”

민구는 물고 있던 담배를 쥐고 그 뜨거운 불똥을 초희의 가슴팍 가까이 가져다 댔다.

헐렁하게 파인 셔츠 아래 흰 피부와 불똥의 거리는 0.5센티 이내로 가까워졌다. 풍만한 가슴골 사이로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초희는 곧바로 우는소리를 한다.

“아, 아니에요, 오빠. 이제 정말 잘 기억했어요. 저, 정말이에요. 잘못했어요.”

“아닌 것 같은데…….”

“제발, 용서해 주세요, 오빠. 다, 다신 안 그래요.”

손가락에서는 뼈가 꺾이는 고통, 가슴에는 솜털이 타버릴 만큼의 고열과 공포. 초희는 이를 딱딱 부딪치며 자신이 굴복했다는 것을 알렸다. 민구는 그 자세를 잠시 더 유지하다가 슬그머니 손에서 힘을 뺐다.

“으흐흐흐~ 너무 아프게 했잖아. 오빠, 진짜. 으흑~”

겨우 풀려난 초희는 엄지손가락을 움켜쥐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구는 두 대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저것도 일단은 배우 나부랭이. 눈물쯤은 아무 때라도 마음만 먹으면 콸콸 쏟아낸다.

“허허, 이거 또 무슨 상황이죠? 미녀는 울고 있고 남자는 먼 산 보면서 담배 피우고……. 뭔가 애절하구만요. 허허허, 초희 씨, 괜찮으십니까?”

잠시 후, 흡연 구역 안으로 들어와 불을 붙이려던 몇 명의 장교가 훌쩍거리는 초희를 보고 말을 걸었다. 연예인이라 얼굴을 기억하는 모양이다. 군인들은 모두 흠뻑 땀에 젖고 먼지에 절어 있다.

네, 신경 쓰지 마세요. 초희는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말은 그렇게 하셔도…… 신경이 쓰이죠. 초희 씨 같은 미인분들을 보면서 그나마 저희가 힘을 내면서 버티고 있는데.”

“어머, 정말요?”

초희는 칭찬에 또 급 방긋 모드로 들어갔다. 민구가 2루 베이스의 접수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쪽 담당 군인들은 언제 오는 겁니까?”

“아, 접수대요. 저기뿐 아니라 오늘은 잠실 병력 거의 전체가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오죽 바쁘면 장교들까지도 이렇게 같이 작업을 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배식도 아직 개시를 못 했네. 후우~ 덥다.”

대답을 해 준 중위는 모자를 벗고 얼굴에 묻은 땀과 먼지를 떨어냈다.

“어머, 왜요? 왜 그렇게들 바쁘셨어요? 어휴, 그런 줄 알았으면 계속 기다리고 서 있지 말걸.”

초희가 입술을 쌜쭉거리자, 중위는 담배 연기와 웃음소리를 함께 내뿜었다.

“허허, 어제 태풍이 지나갔잖습니까. 밖에 설치해 둔 차단벽이 훼손된 데가 많습니다. 그거 수리하랴, 유실된 크레모아 회수하고 다시 설치하랴, 아주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나마 여기는 배수가 되니까 좀 낫긴 한데…… 참, 접수대는 무슨 일 때문에 찾으셨습니까? 따라오세요. 지금이라도 도와드릴 수 있으면 도와드리죠.”

중위는 담배를 급히 빨고 나서 민구와 초희에게 가자고 손짓을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종일 바깥이 어지간히 시끄러웠었다.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민구가 말했다.

“건대 쉘터라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언제 이동이 가능합니까?”

“건대 쉘터요? 하~ 어제 출발했는데.”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게…… 며칠 내로 추가 이동이 있을 계획이긴 한데…… 태풍이 곧바로 또 온다고 해서 스케줄 잡기가 영……. 뭐, 군대 갔다 오셨으니까 아시겠지만, 여기 일 처리되는 게 영 구리거든요. 어제만 해도 하필이면 태풍 오는 날 쉘터 간 이동이랑 신병 징집을 함께 잡아놔서…… 하여간 위에서는 무슨 생각인지를 모르겠다니까요. 태풍이 온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신병교육대도 준비를 다 해놨을 텐데, 공연히 헛고생만 했을 테죠. 아, 근데…… 실례지만 연세가…….”

의자를 빼고 앉은 중위는 두툼한 서류철을 꺼내면서 물었다.

“그게 중요합니까?”

“아니, 뭐, 저도 남자 나이가 알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닙니다. 한데 35세 이하인 남자들은 첫 번째 징집 대상이라서요. 그쪽 남자분께서는 건대가 아니라 군대로 이동하시게 될 것 같은데요. 그것도 내일 당장.”

‘대’로 라임을 맞춘 말장난을 치고 나서 그게 뿌듯했는지 중위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초희가 깜짝 놀라며 묻는다.

“어머, 웬일이야? 우리 강 실장 오빠 군대 가야 돼요? 어떡해.”

“어떡하기는요. 다들 고생하고 있고, 병력 자원이 모자라니 어쩔 수 없죠. 뭐, 그래도 군필자들은 전역할 때 계급 달고 들어가는 거니까 막내 설움은 없을 겁니다. 확실한 게 좋으니까 일단 확인은 해보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그리고 언제 여기 오셨어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너무 갑작스러워서 민구는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일찍부터 법무부 밥을 먹었던 그는 군복을 입어본 적도 없다.

“강민구요. 들어온 건 어제요.”

“아참, 그랬죠. 이렇게 정신이 없다니까. 오늘 워낙 바빠서 그렇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강민구 씨…… 강민구…… 여기 있네요. 맞네, 내일 1차 입영 대상.”

서류철 뒤쪽에서 그의 이름을 찾은 중위는 손가락으로 빨간 줄이 쳐진 부분을 짚는다. 민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무슨 권리로 나한테 그런 명령을 하는지 모르겠군. 고작 밥 몇 끼 주고서 주인 행세를 하려는 건가?”

“에이, 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여기 자원 입대서에 다 자필 서명하셔 놓고서. 어제 들어오셨으면 오늘 막 사인하신 거니까 기억도 생생하시겠구만. 자, 자, 여기서 이렇게 시간 허비하시지 말고 입대하기 전 마지막 저녁을 후회 없이 보내세요.”

중위는 서류철에서 종이 한 장을 빼 들고 흔든다. 민구에게도 낯이 익다. 분명 독방을 나오기 직전 보초병들이 몇 장의 종이를 내밀었고, 그는 읽어보지도 않고 휘리릭 펜을 갈겨 사인을 했었다.

그게 자원 입대서였나?

후우우~ 민구는 성질을 죽이기 위해 가볍게 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그…… 건대 쉘터라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입영 대상이 아닌 거요?”

“거기라고 예외겠습니까? 다만, 시기가 좀 늦춰진다뿐이지, 아무 차이 없습니다. 아마 다음 주나 열흘 뒤 정도에는 그쪽에서도 징집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럼 간단하군. 먼저 건대 쉘터로 가게 해주시오. 그다음에 당신들이 하고 싶은 걸 하면 되잖소?”

“아니, 왜 그렇게 번거롭게 하십니까? 어차피 가야 하는 군대인데.”

“난 건대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소.”

“아, 그렇습니까? 누구를 그렇게 애타게 찾고 계실까요?”

“그런 건 알 필요 없잖소.”

“강민구 씨…….”

중위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등받이 깊숙이 기대앉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가 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고 싶은데 다시 못 보고 있는 사람투성이죠. 저기 저 1루 쪽 응원석 벽에 붙어 있는 종이들을 보세요. 저게 다 누군가가 봐주었으면 하고 붙여둔 작은 포스트잇 종이들입니다. 수천 장이 넘어요. 하지만 구조된 사람이 저걸 읽고서 그 붙인 사람을 만난 경우는 아직 못 봤습니다. 군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서 있는 이 친구도 자기 집이 바로 3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가보질 못했어요. 부모님 생사도 모르고요. 왜? 개인 사정에 따라 헬기 운용을 하면 금방 엉망이 되어버린단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어요. 잘 모르시나 본데, 누군가 만나고 싶다는 게 특별하지도 않고, 입영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없습니다. 특별 대우를 바라면 안 됩니다.”

“아니, 잘 모르고 있는 건 그쪽이오.”

민구는 두 손을 벌려 테이블을 짚고 자신의 얼굴을 중위의 눈에 바짝 붙였다.

“나는 11일 동안 저 밖에서 살아남았소. 당신들이 이 단단한 콘크리트 벽과 철망 뒤에 끼리끼리 모여 세상의 모든 고생을 혼자 다 떠안은 척하며 서로 동정하고 있을 때, 나는 혼자서 괴물들의 목을 따면서 여기까지 내 발로 찾아왔소. 알겠소? 만나야 할 사람을 찾아서 11일에 걸쳐 저 괴물 천지를 헤치고 온 거요. 그런데 지금 당신은 고작 며칠을 기다릴 수 없다고 하고 있고! 난 특별 대우를 해달라는 게 아니오. 당신 입으로 조금 전 말하지 않았소? 태풍만 아니었다면 어제 이미 첫 번째 입영 대상들이 이동했을 거라고. 그때였다면 나는 독방 속에 들어가 있었겠지.”

이야기를 마친 민구는 다시 몸을 세우고 중위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흠, 중위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 사내의 인상이나 싸가지 없는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억울하게 됐다는 것은 알겠다.

어제 병력 수송이 조금만 빨리 진행되었거나 태풍이 하루만 늦게 왔어도 이런 승강이를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특히 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그가 헬기로 수송된 것이 아니라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 사내가 어제 아침 철책 앞에서 벌인 일대 활극은 군인들 내부에서도 적잖이 화제가 되었었다.

아무런 동요도 없이 좀비 댓 마리를 쓰러뜨리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고 했었지…….

중위는 생각했다. 11일을 버텨내며 걸어왔다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과정이 얼마나 지독한 아수라장이었을지 상상조차도 잘 되지 않는다.

오직 한 사람을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음, 중위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갈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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