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악마는 어디에나 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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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악마는 어디에나 있다 (3)
2022.01.25.
보안관 일행이 아주 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때, 태양 그룹 건물 지하 제1연구실에서는 작은 회장의 이른 저녁을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오늘의 식삿감으로 결정된 대상은 A708756. 나흘 전, 남산타운에서 구조해 온 40대 초반의 남자였다.
“아, 어서 오세요!”
A708756이 진료실 안으로 들어오자 오 박사는 예의 그 뺀질거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남자를 맞았다. 민구의 간호사에게 모욕적인 말들을 퍼부을 때에도 그는 지금과 똑같이 웃고 있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편안하시죠? 음식은 입에 맞으시던가요?”
“아, 네. 덕분에……. 그런데 검사를 추가로 받아야 한다고 하시던데…… 무슨 검사입니까, 선생님? 제 몸이 어디 안 좋은가요?”
어리숙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A708756을 보면서 오 박사는 속으로 낄낄거렸다. 인간이라는 건 너무나 어리석어서 이제 몇 분만 지나면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는 것도 까맣게 모른 채 저렇게 편안하다.
“별것 아닙니다. 혈압이 조금 높으신 것 같아서 약을 처방해 드리려고 그래요. 술, 담배 하시나요?”
차트를 대충 넘기면서 오 박사가 말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네, 잘 아시잖습니까. 직장 생활 하다 보면 다 하지요, 스트레스 때문에.”
“하하하, 그렇죠. 뭐, 크게 문제될 정도의 수치는 아니니까 약으로 조절하면 됩니다. 이건데요, 말 나온 김에 지금 하나 드세요.”
오 박사는 플라스틱 약통에서 흰 알약 하나를 꺼내 사내에게 건넸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사내는 꾸벅 인사까지 하고 순순히 알약을 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쿠욱! 캑! 캑! 우욱!”
너무 급하게 물을 마신 탓일까, 사내는 곧바로 물을 뿜으면서 허리를 굽히고 격하게 기침을 해 댄다. 졸지에 물을 뒤집어쓴 오 박사와 그 곁에 서 있던 건장한 남자 간호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 그 참, 천천히 드시지. 왜 그렇게 급하게…….”
오 박사는 사내에게서 눈을 떼고 책상 위에 있던 휴지를 뽑아 얼굴을 닦았다. 남자 간호사도 소매로 눈 주위를 훔친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야아~!”
A708756은 짐승처럼 고함을 지르며 남자 간호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난데없는 태클에 중심을 잃고 쓰러진 남자 간호사의 머리 위로 A708756의 발길질이 쏟아진다.
“죽어! 이 개새끼야!”
배 나온 40대 아저씨답지 않은 매서운 발길질이었다.
쿠쿵!
뒤통수를 바닥에 찧은 남자 간호사는 좀처럼 일어나지 못한다. 사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오 박사를 향해 돌아섰다.
“뭘 처멕이려고 했던 거야, 응? 이런 개새끼야!”
오 박사가 서랍 아래 벨을 누르기도 전에 A708756은 그의 넥타이를 꽉 잡아채며 입에 플라스틱 약병을 쑤셔 넣었다.
“윽! 으윽!”
오 박사는 약을 넘기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다. 그러느라 사내에게 반항할 기회를 잃었다.
푹.
사내가 원피스 입원복 뒤춤에서 꺼낸 뭔가로 오 박사의 목을 찌른다. 플라스틱 포크를 부러뜨려 만든 흉기가 오 박사의 목에 얕게 박혔다.
“일어나, 이 개새끼야! 따라와!”
A708756은 흉기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이 상태에서 깊숙이 쑤신다면 정말로 치명상이 될 수도 있다.
퉤― 퉤―
필사적으로 약을 뱉어낸 오 박사는 순순히 그의 명령을 따랐다.
“너희는 실수한 거야, 이 인간 양창훈이를 너무 우습게 봤어. 이 개씨부랄 새끼들. 응?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나도 뒷골목에서 20년이 넘도록 잔뼈가 굵었어. 같은 방 쓰던 놈이 말도 없이 사라졌을 때 벌써 딱 알아챘다고.”
오 박사를 앞세우고 복도를 걸어가며 A708756은 계속 떠들어 댔다. 사내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린다. 안정제 섞인 밥을 먹지 않은 게 분명하다.
엇, 뭐야?
그들을 발견한 경비원들이 다가서려 하자, 사내는 오 박사를 방패 삼아 내세우며 위협했다.
“가까이 오지 마, 이 새끼들아!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그냥 확!”
크윽! 목에 박힌 플라스틱 칼에 힘이 주어지자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한 오 박사도 경비원들의 접근을 저지했다.
“이분 말 들어! 오지 마!”
A708756은 씩씩거리며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까지 오 박사를 끌고 갔다.
“엘리베이터 눌러! 나갈 거니까!”
“선생님, 이러지 마세요. 나가봐야 별거 없습니다.”
“눌러, 이 새끼야!”
오 박사가 팔을 움직이려 하자 사내는 플라스틱 포크를 꽉 눌렀다. 찌이익, 가느다란 핏줄기가 벌어진 상처 사이로 흘러나온다. 오 박사는 그래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무슨 오해를 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하시고 제 말 잘 들어보세요. 이 엘리베이터, 아무나 누른다고 오는 게 아닙니다. 안전을 위해서 일부 경비 책임자들만 키를 가지고 있어요.”
“닥쳐, 이 씨발 새끼야! 네가 목에 찬 출입증 대고 문을 여는 걸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도 개소리를 지껄이려고? 빨리 안 열면 죽일 거야! 어디 너도 죽고, 나도 죽고, 우리 그냥 다 죽어볼까? 응? 그래야 속이 시원하겠어?”
젠장, 어지간히 유심히도 봤군.
오 박사는 포기하고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가까워질수록 오 박사의 목덜미에서는 더 많은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복도에 늘어선 구경꾼들도 늘었다.
지금쯤이면 비상벨이 울렸을 테고, 그러면 자동으로 문이 잠겼을 테니, 먹이를 만들기 위해 수용하고 있는 인간들은 아니다. 연구원, 직원, 경비원들이 웅성대며 엘리베이터 주변으로 모여든다.
“뭘 쳐다봐! 가까이 오지 말라고!”
A708756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한층 더 날카로워져서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몇 초 뒤, 띠잉―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안에는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모두 검은 옷에 검은 베레모까지 쓰고 있어 언뜻 특전사 복장처럼도 보인다.
“비켜! 빨리 내려!”
오 박사의 목을 좀 더 깊이 찌르며 A708756은 핏대를 세웠다. 두 검은 옷 중에서 좀 더 작은 사내가 삼단봉을 촤악, 소리가 나게 펴 들었다.
“까불지 말고 그분 놔드려. 더 설치면 그냥 안 넘어간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누굴 좃으로 보고!”
A708756은 앞으로 한 발을 크게 내디디며 로우킥을 날렸다. 오 박사는 이미 조금 전에도 느낀 바 있지만, 정말로 아저씨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빠르고 매서운 킥이다.
빠악―
검은 옷의 경비원이 휘청한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A708756은 한 번 더 세차게, 이번에는 무릎을 향해 발차기를 했다. 크윽, 경비원이 바닥에 뒹군다. A708756은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으며 두 번째 검은 옷을 향해 말했다.
“봤지, 이 개새끼야? 너도 잽싸게 짜져, 망신당하고 싶지 않으면. 소싯적에 도 대표까지 했던 몸이시다.”
두 번째 검은 옷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주먹이 번개처럼 뻗어 나왔다.
“어?”
A708756은 짧은 한마디만을 남기고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오 박사의 목에 플라스틱 흉기를 깊숙이 찔러 넣을 만한 여유조차 없었다. 부러져서 엉망으로 뒤틀린 A708756의 코에서는 피가 왈칵왈칵 솟는다.
“아아~ 덕분에 살았어, 메이저!”
오 박사는 아직도 피가 나는 상처를 꾹 누르며 두 번째 검은 옷의 경비원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메이저라 불린 경비원은 유난히 시꺼먼 근육질의 얼굴을 씰룩거리면서 조금 전 로우킥에 맞아 쓰러졌던 경비원의 따귀를 후려갈기고 빽! 소리를 질렀다.
“드, 드, 드, 드, 등신 같은 새끼! 저, 저, 저, 저런 놈한테 맞고 자빠져! 지, 지, 지난주에는 세, 세, 세 놈이나 양아치 새끼한테 뒈, 뒈지지를 않나. 너, 너희 대, 대체 왜 이래!”
“죄송합니다, 메이저.”
경비원이 고개를 숙인다. 메이저는 한 번 더 세차게 뺨을 올려붙였다.
“죄, 죄, 죄송한 줄 알면 또, 똑바로 해!”
“됐어, 됐어. 내가 보니까 저 새끼 겉보기에는 저래도 운동깨나 한 놈이야. 그리고 놀기도 꽤 험하게 놀았나 봐. 아까 내 진료실에서도 한 놈을 아주 찰지게 치는데, 인정이고 뭐고 그런 거 없더구만. 그런 것보다…….”
오 박사는 손수건으로 피를 찍어내고, 곁으로 다가온 자신의 연구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일 아침 식사거리로 정해져 있던 애 있지?”
“네, E828229입니다.”
“바꿔. 다 한 줄씩 순서를 뒤로 미뤄.”
“예? 그럼 내일 아침은 어떻게…….”
“오늘 수감자들 식사 감시…… 담당이 누구였지?”
웅성거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주방 인력들 쪽으로 쏠린다. 흰옷을 입은 주방 인력들 중 유난히 긴장하고 있는 젊은 여자 하나가 가장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저년인가 보네. 야이, 미친년아. 밥을 안 처먹는 새끼가 있으면 보고를 하라고 내가 몇 번을 이야기했냐? 그리고 이거 봐라, 이거.”
오 박사는 바닥에 떨어진 플라스틱 흉기를 집어 올렸다.
“이렇게 식기가 없어졌는데도 아무 생각 없이 세상 편하게 농땡이를 피웠어?”
말을 하는 동안 오 박사의 얼굴은 점점 분노로 일그러졌고, 여자 직원의 표정은 파랗게 질려간다. 메이저는 워커로 바닥을 울리며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너같이 멍청한 년은 살아 숨 쉬는 자체가 전부 죄야. 그러니까 내일 아침까지만 살아. 그게 지구 전체로 봐서도 큰 이득일 거다.”
오 박사의 선고가 내려지자 여직원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온다. 털썩 무릎을 꿇고 빌어보려는 여자의 턱에 메이저의 워커가 꽂힌다. 곧바로 거품을 뿜으며 기절해 버린 그녀를 경비원들이 양쪽에서 잡아 끌고 가버렸다.
“뭐해? 이거 안 데리고 가니? 작은 회장님 식사 시간 이미 지났을 텐데? 시범 케이스를 보고 나서도 느끼는 바가 없어? 누구 하나 더 지목해 줄까?”
오 박사는 코뼈가 으스러진 채 바다에 널브러진 A708756을 가리켰다. 뜻밖의 사건들에 놀라 어리벙벙해져 있던 연구원들은 서둘러 그를 이동 침대 위로 올리고 X―1을 주사했다.
“우리는 옥상에서 커피나 한잔하자고, 메이저.”
오 박사는 메이저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앞서 들어갔다.
“그, 그러지.”
메이저가 각진 턱을 끄덕인다. 탄력 있는 근육질의 검은 피부는 칼날도 튕겨낼 것 같다.
흠, 말만 더듬지 않으면 정말 그럴듯해 보인단 말이야.
엘리베이터 내부에 설치된 거울을 통해 메이저의 옆얼굴을 보면서 오 박사는 생각했다.
***
“대체 뭣들 하는 거야! 회장님이 전화라도 하시면 뭐라고 대답할 건데, 엉? 빨리 식사 준비해!”
A708756을 끌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중년 남자는 버럭 화부터 낸다. 연구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을 서둘렀다.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지만, 긴장한 그들의 등은 아까부터 흠뻑 젖어 있다.
“10분 내로 작은 회장님이 식사 마치셔야 돼! 서둘러!”
중년 남자가 종종걸음으로 사라지자, 의식을 잃은 A708756의 옷을 벗기고 수갑을 채우던 신 차장이 투덜거린다.
“에이, 진짜! 이 새끼 때문에 분위기 험악해졌잖아! 그냥 곱게 뒈질 것이지.”
말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신 차장은 크레인에 걸린 A708756의 옆구리에 주먹질을 하는 것으로 분풀이를 했다. 두툼한 옆구리 지방이 출렁거린다.
“근데…… 신 차창님, 내일 아침에는 진짜로 아까 그 여직원이 와요?”
“그럴걸? 오 박사 표정 봤지? 그 사람은 동정이라고는 없어. 그냥 사이코야. 그러니까 우리도 늘 조심해야 돼.”
“어우, 너무 무서워요. 그 메이저라는 사람도 그렇고. 어쩜 그렇게 여자를 인정사정없이 후려쳐요? 완전 야만인이야.”
A708756을 매단 크레인을 아래로 내리면서 연구원들은 그런 잡담을 했다. 버튼을 누르자 한쪽 구석의 강화플라스틱 문이 열리고 작은 회장이 미친 듯이 달려 나온다.
그롸아아아―
와자작! 꿀쩍, 꿀쩍, 쩝쩝.
작은 회장은 여느 때와 똑같이 피를 사방에 흩뿌리며 살아 있는 사람의 가죽을 찢고 살을 삼켰다.
“그런데 메이저라는 사람은 뭐예요?”
“여기 경비 총책임자라던데.”
“그럼 군인이었나 보네. 정말 소령 출신이에요, 그 사람? 그럴 나이가 안 돼 보이잖아요.”
“소령이 되고 싶었는데, 성폭행인가 뭔가로 불명예제대 했다든가 그랬어. 하여간 별명 가지고 그 사람 앞에서 피식거리면 안 돼. 전에도 어떤 놈 하나가 영어 별명 재수 없다고 뒤에서 비웃다 걸렸었는데, 아주 곤죽이 되도록 터졌었대.”
발아래에서 A708756의 생명이 끊어져 가는 걸 구경하며 연구원들은 그런 잡담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심장이 멈췄음을 알리는 삐이― 소리가 울리고, 파블로프의 개처럼 작은 회장도 식사를 마쳤다.
그롸아아아!
작은 회장은 또 위로 고개를 든 채 살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포효했다. 옷을 갈아입히지 못해 고급 정장에는 검붉은 피딱지가 두껍게 말라붙어 있다.
“서두르자!”
A708756을 끌어 올려 침대에 눕히고 신 차장과 연구원들은 작업 속도를 높였다. 여느 때처럼 몸 네 군데에 볼트를 박아놓고 머리에는 철망을 고정시켰다.
“후후, 또 기록 경신이다. 어제보다 15초 앞당겼어. 이것도 계속하니까 느는구나.”
작업을 마친 신 차장은 마스크를 벗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 내장이 덜렁거리는 배불뚝이 중년남자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기다려서 시간을 기록하고 오 박사에게 인계하면 된다.
지금까지 가장 빠르게 좀비로 변했던 시간은 15세 소녀가 이틀 전 기록한 8분 15초였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10분보다 무려 2분 가까이 빠른 것이어서 연구원들은 더욱 서둘러 신체를 고정시켜야만 했다.
“이놈은 좀 늦는군.”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는 A708756을 향해 눈을 한 번 흘긴 신 차장은 시계를 봤다. 심장이 정지한 지 30분. 이제 슬슬 변해줘야 그들도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좀 쉴 수 있을 텐데 하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또 30분이 지났다. 여전히 좀비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신 차장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일그러져 간다.
또다시 20분. 신 차장은 파랗게 질린 자신의 얼굴을 쥐어뜯었다. 아무래도…… 이 중년 사내는 그냥 완전히 죽어버린 것 같다.
“이, 이런 제기랄! 이런 개 씨팔!”
신 차장은 자신의 얼굴을 쥐어뜯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간 백여 명의 사람들에게 실험을 하면서 잠정적으로 내렸던 결론은 ‘항체 따위는 없다’였다. 좀비들의 이빨에 물어 뜯기도록 하고 격리해 두었던 실험 대상들은 백이면 백, 전부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이 중년 사내는 여전히 핏기 없는 얼굴을 하고 자는 듯 누워 있다.
탈모가 진행 중인 배불뚝이…….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인류의 구세주가 이런 외모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뭘 멍하니 서 있어? 제세동기라도 가져와! 강심제도! 아무거라도 좀 해보라고! 손을 써야 할 거 아냐!”
주변에 늘어서 있는 연구원들을 향해 바락바락 악을 쓰면서도 신 차장은 이미 늦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멎은 지도 대략 한 시간 반. 지혈도 하지 않고 피가 줄줄 흘러내리도록 방치해 두었었다. 이 중년 사내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로또에 4주 연속 1등 당첨되는 것보다도 희박하다.
어쨌든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연구원들은 허둥지둥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 방은 먹이로 줘서 죽이기 위한 방이었지, 살리는 방이 아니었으므로 설비나 약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외부로 나가야 한다.
때르르릉― 때르르릉―
벽에 걸린 인터폰이 운명의 벨처럼 울린다. 신 차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집었다.
“왜 샘플 안 보내? 아직 식사 중이야?”
냉기가 서린 말투, 오 박사다. 신 차장은 부들거리며 간신히 목소리를 끌어 올렸다.
“바, 박사님, 아무래도 이 샘플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오 박사는 잠시 침묵했다. 그 몇 초의 시간 동안 신 차장은 등 전체가 흠뻑 젖을 만큼 많은 식은땀을 흘렸다. 오 박사가 묻는다.
“……그게 무슨 소리야? 심장정지하고 정확히 몇 분이 지났는데?”
“한 시간 반입니다.”
우당탕― 수화기를 집어 던지는 소리. 그러고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신 차장은 그래도 수화기를 귀에서 떼지 못했다.
잠시 후, 콰당― 요란하게 문을 박차고 오 박사가 조수들과 함께 뛰어 들어왔다.
“이 멍청한! 한 시간 반 동안이나 보고도 하지 않았단 말이야? 대갈통은 뭣 때문에 달고 다니는 거야? 이런 미친!”
씩씩거리며 이동식 침대로 걸어간 오 박사는 볼트에 의해 고정되어 있는 중년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심장이 멎었을 때, 좀비화는 훨씬 더 빨리 진행된다.
이만한 시간이 흐르도록 변화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다. 그들은 오늘 천우신조로 만난 항체 보유자를 허무하게 죽여 버린 것이다.
젠장, 오 박사는 이를 빠드득, 갈며 고개를 흔들어서 머릿속을 가득 채워 버린 후회를 털어냈다. 아쉽기는 하지만 아직도 기회는 있다.
“물러나 주세요! 감전됩니다!”
제세동기를 가지고 돌아온 여자 연구원이 숨을 헐떡이며 침대 주변을 물리치려 하자, 오 박사는 그녀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챘다.
“이 등신아! 한 시간 전이었다면 몰라도 이제 와서 그런다고 살아나겠어? 뭔 헛짓거리야?”
“엑…… 그, 그러면…….”
바닥에 넘어진 연구원은 두려움이 가득해서 말을 제대로 맺지 못했다. 오 박사는 다시 중년 남자의 시체로 시선을 옮겼다.
비록 죽어버리기는 했지만, 모처럼 손에 얻은 귀한 물건이다. 이것으로 뭔가 해야만 백신이든 항체든 만들어낼 수 있다.
“혈액 샘플, 타액 샘플 추출해. 그러고 나서 냉동시켜. 더 이상의 부패가 진행되지 않도록.”
머리를 쓸어 넘긴 오 박사는 금세 냉정을 되찾고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연구원들이 머뭇거리자 그는 가장 가까운 위치에 서 있던 남자 연구원 하나를 시체 쪽으로 밀어 쳐버렸다.
“빨리! 서둘러!”
“네, 넷!”
연구원들이 넷이나 달라붙어 침대를 밀고 문을 열고 허겁지겁하는 동안, 오 박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누구야?”
“네?”
오 박사로부터 난데없는 질문을 받은 여자 연구원은 잔뜩 움츠리며 되물었다.
“오늘 여기 책임자가 누구였냐고?”
“저…… 저기…….”
말로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머리는 신 차장을 향해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