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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악마는 어디에나 있다 (2) (146/449)


146. 악마는 어디에나 있다 (2)
20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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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변에 위치한, 열 평 남짓한 가게였다.

쨍강―!

잠겨 있던 유리문을 배트로 깬 유빈은 손을 넣어 자물쇠를 돌렸다.

“사방에서 난리가 났었을 텐데 문까지 잠그고 도망쳤네. 꼼꼼하기도 해라.”

삼식이가 안으로 한 발을 내디디려 하자, 보안관이 어깨를 붙잡는다.

“그 반대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기다려 봐.”

혹시 안쪽에 좀비가 된 가게 주인이 숨어 있을지 몰라 네 사람은 잠시 바깥에서 시간을 보냈다.

양쪽 선반에 공구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는 가게 내부는 두 사람이 겨우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고, 저 안으로 들어가면 손잡이가 긴 무기는 휘두를 수 없다.

“이 정도 시간을 줬는데도 안 뛰어나오면 없는 거겠지.”

그렇게 말한 보안관은 입구에 해머를 내려놓고 선반에 걸려 있던 망치를 집어 들었다.

탱―

스테인리스 선반을 망치로 가볍게 두들겼다. 여전히 가게 안은 조용하다.

“톱이랑 작업용 장갑부터 챙기자.”

숨어 있는 좀비는 없다고 결론을 내린 보안관이 앞장을 섰다.

그와 제니가 새 공구 가방에 손에 닿는 대로 장비들을 집어넣는 동안 삼식이는 플래시를 들고 가게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유빈은 망을 보는 역할을 맡았다.

“500미리짜리가 없네. 이걸로는 너무 짧아서 중간에 걸릴 텐데…….”

보안관은 톱들을 뒤적이며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손도끼를 찾은 제니가 묻는다.

“오빠, 이걸로 하면 어때요?”

“아,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필요하기는 해. 무기로도 쓸 수 있을까?”

도끼와 망치, 두툼한 용접용 장갑에 고글, 대형 스패너까지 챙기긴 했지만, 보안관은 여전히 마음이 차지 않았다. 날 길이 30센티미터가 겨우 넘는 막톱으로 그 굵은 나무들을 자를 생각을 하면 한숨이 나온다.

“저런 것들은 못 써요? 날이 엄청 무서운데.”

제니가 가리킨 것은 쇼 윈도우에 전시되어 있는 회전날 원형톱이다.

“음, 못 써. 저런 거는 다 전기로 움직이는 거야. 야…… 삼식아, 뭐하냐? 이제 가자!”

포기한 보안관이 아쉬운 대로 챙겨서 돌아가려고 할 때, 안쪽 깊숙이 들어갔던 삼식이가 회색 가방을 메고 돌아왔다. 가방의 모양이 평범하지 않다. 그리고 왼손에는 주유구가 두 개인 작은 기름통이 들려 있다.

“이거 봐, 보안관! 이 통 보면 생각나는 거 없냐?”

“너 설마…….”

“그래, 맞아! 전기톱! 그것도 허스크바나 거야!”

가방의 지퍼를 연 삼식이가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주황색 엔진에 주황색 톱날 커버, 전기톱이다. 보안관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웃는다.

“어디 봐! 오, 390! 3시리즈네. 근데 암만 봐도 새 거는 아닌데?”

“그게 뭐가 중요해? 가게 주인이 쓰던 건가 보지. 구리스 칠도 잘되어 있으니까 그게 오히려 더 좋아.”

“저기요, 오빠…… 전기를 못 쓰는데…….”

제니가 끼어들었다.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잠시 뒤에야 깨달은 보안관과 삼식이는 배를 쥐며 웃었다. 제니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이다.

“왜…… 그렇게 웃어요?”

“아, 제니야. 이번 거는 좀 좋았어. 굉장히 맹해 보였다. 하하하.”

삼식이가 겨우 웃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이름만 전기톱이지, 사실은 기름으로 움직이는 거야. 이거, 전기하고는 아무 상관 없어.”

삼식이가 제니를 더 놀리고 싶어 낄낄거리고 있을 때, 웃음소리를 들은 유빈이 가게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으며 다그친다.

“야, 너희 장난 그만 치고 빨리 나와! 가자! 하여간 겁도 없는 새끼들이라니까.”

“하하하, 잔소리 대장 시아버지 납셨다. 일하자! 일!”

유빈이까지 손길을 더하자 작업에 속도가 붙어 대형 공구 가방 세 개가 금방 꽉 찬다. 들고 온 해머와 야구 배트 때문에 손에 여유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 지경이다.

“그런데 말이야, 슬슬 돌아가는 길이 헷갈리기 시작했어. 이쪽인가?”

다시 거리로 나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삼식이가 말했다. 처음 와보는 동네에서 아무렇게나 헤매면서 온 것이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반응이다.

“저리로 가야 돼.”

유빈이 자동차를 가리킨다. 문손잡이 높이로 얇게, 그러나 꽤 깊게 생채기가 나 페인트가 벗겨져 있다.

“저렇게 긁어놓은 것만 보고 따라가면 돼. 코너 돌 때마다 첫 번째 보이는 차들은 드라이버로 다 긁었어.”

“아항~ 헨젤과 그레텔 같네요. 역시 꼼꼼해.”

제니가 유빈의 어깨를 툭, 치고 앞서 뛰어간다. 공구상 하나만 목적으로 하고 달려오던 때와 달리, 돌아가는 동안에는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길거리 구석마다 세워둔 자전거가 매혹적으로 보인다.

“힘들여서 톱질하지 말고 차라리 저런 거 하나씩 타고 가버릴까? 거리만 놓고 보면 이제 8킬로미터도 안 남은 거잖아. 짐 다 버리고 배낭 하나씩만 메고 가면 금방 도착할 텐데.”

삼식이의 제안에 유빈이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건 너무 극단적이다. 그렇게 했다가 만약에 한강까지 가서 아무것도 없으면 그땐 어떻게 할래? 당장 마실 물도 모자라면 정말 죽을 맛일걸?”

보안관도 유빈의 편을 들었다.

“아무래도 자전거는 자동차만 못해. 그거 타고 가다가 육교에서 뛰어내리는 좀비라도 걸리면 힘도 못 써보고 죽어. 나도 반대야. 엇, 저기 제니다.”

보안관이 이야기를 하다 말고 손가락질한 것은 건물 옥외 광고판에 붙은 커다란 에어컨 광고였다.

사진 속에서 흰색과 파란색 짧은 원피스를 입은 핑크 펀치 두 명은 신형 에어컨 옆에 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겨드랑이를 적시고 있는 땀까지 다 들어갈 것같이 시원해 보인다.

잠시 넋을 놓고 광고를 올려다보던 보안관은 바로 곁에 서 있는 실제 제니를 돌아본다.

“……사방에 네 얼굴이구나.”

보안관이 감격스럽다는 듯 중얼거린다. 조금 전, 그녀의 포스터가 붙은 화장품 가게 앞을 지나온 터라 그가 느끼는 뿌듯함은 몇 배나 더 컸다. 제니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두 팔로 가렸다.

“크으, 저때 사진 보니까 괜히 창피해지네요. 그동안 통 관리 못 받아서 엉망일 텐데.”

“아냐, 너 무지하게 예뻐. 저 사진보다 훨씬 더 예뻐.”

보안관의 입에서 사랑에 폭 빠진 남자의 전형적인 대사가 나온다. 제니는 기분 좋게 웃으며 보안관의 등짝을 때렸다.

“하하, 하여간 이 오빠는 부끄러움이라는 걸 모른다니까. 말만이라도 고맙네요. 그만 구경하고 이제 빨리 가요.”

아무렇지 않게 그런 이야기들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걷던 그들은 아케이드 시장 앞에서 잠시 망연자실해졌다.

“……여기가 정말 조금 전에 우리가 지나갔던 데 맞아?”

주변의 광경을 돌아보며 보안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불과 수십여 분 전에 쓰러뜨렸던 좀비들이 걸레처럼 짓뭉개져 있었다.

로드킬을 당한 고양이나 개의 시체가 지나는 차들에 반복적으로 깔려 터진 모양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그리 육중하지 않은 무게로 수십, 수백 번 밟고 지나가는 동안 훼손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놈들의 몸에서 터져 나온 체액에는 신발 자국이 선명히 찍혀 있다.

“더럽게 많기도 하네.”

삼식이가 한숨을 내쉰다. 어지러운 발자국들의 수와 모양으로 미루어 적어도 수십, 아마 수백의 커다란 좀비 무리가 이 길을 걸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여길 지나간 지 얼마나 됐지? 20분? 30분? 그사이에 이놈들이 여길 지난 거야.”

“그 생각 하니까 토할 것 같다.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났으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잖아.”

일행은 예외 없이 몸서리를 쳤다. 보안관이 옥외 광고판에 정신이 팔려 멍하니 몇 분을 그대로 보내지 않고 걸음을 서둘렀더라면, 이 좀비 행렬의 꼬리와 맞닥뜨렸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이곳 역시 그 지긋지긋한 좀비 떼가 지배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호기심은 저 멀리 사라져 버리고 1초라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마음뿐이다.

“아, 저 등신 같은 새끼 진짜…….”

다시 힘겹게 철책을 넘었을 때, 발아래 산책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보안관이 으르렁거린다.

오피러스의 창문 사이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가 바람에 흩어지는 게 똑똑히 보였기 때문이다. 흥분한 보안관은 제니를 챙기는 것도 잊고 곧바로 비탈길을 뛰어 내려가 오피러스의 창문을 두들겼다.

“야이 개새끼야! 담배 어떻게 피우라고 했어! 창문 닫으라고 했지! 그 간단한 약속도 못 지키냐?”

백미러로 보안관이 오는 것을 보고 급하게 창문을 올린 신입은 식은땀을 흘리며 차에서 니왔다. 그러고는 콸콸 흘러가는 물살 속에 피우던 담배를 집어 던졌다.

“다, 닫았잖아! 너도 지금 보다시피 닫고 피웠다고!”

“지랄하지 마. 네가 서둘러서 창문 올린 걸 모를 줄 알고 구라 치냐? 사방에 냄새가 자욱한데! 이 멍청한 새끼가 진짜 누구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났나!”

“글쎄, 아니라는데 자꾸 왜 생사람 잡고 지랄! 힘 좀 세다고 증거도 없이 이래도 되냐, 응? 아, 존나 억울하다고! 야, 삼식아! 얘 좀 어떻게 해봐!”

보안관에게 멱살이 잡혀 차에 떠밀려 있던 신입은 삼식이에게 도움을 청했다.

삼식이는 자동차 안에 뒹굴고 있는 생수병 재떨이를 잠시 응시했다. 한 시간여 만에 피운 꽁초가 한 갑 가까이 된다. 음료수도 어지간히 먹어 치웠다.

불안과 초조를 덜기 위해 담배는 계속 피우게 되고, 그러자니 꽉 막힌 차 안에서 숨은 못 쉬겠고……. 신입이 창문을 열어놓고 뻐끔거린 이유는 대충 알 것 같다. 삼식이는 보안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결론적으로 별일 없었잖아. 어차피 저 나무만 잘라 버리고 한강까지 가면 더 이상 이런 일로 시비할 일도 없어. 그러니까 빨리 톱질이나 하자.”

씩씩거리던 보안관은 멱살을 쥔 손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힘을 주며 말했다.

“내가 너를 버리고 가게 하지 마라, 이 새끼야.”

길을 막고 누운 나무 쪽으로 보안관이 걸어가 버린 다음, 신입은 삼식이를 돌아보며 투덜거렸다.

“저 새끼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담배 몇 대 피웠기로 사람을 버리고 간다고? 쳇, 농담이겠지?”

“아니, 눈동자를 보니까 농담이 아닌 것 같던데.”

삼식이가 모처럼 장난기 없는 얼굴을 보이자 신입은 또 식은땀을 흘린다. 삼식이는 공구 가방에서 쪼개기용 도끼 하나를 꺼내 건네며 말했다.

“그냥 내색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차이만 있는 거지, 실은 네가 불안한 만큼 우리도 불안해. 조금 전에도 이거 구하러 갔다가 좀비들이랑 마주쳤었어. 죽을 뻔했다고. 게다가 길은 막혔지. 저 동네에 지금도 돌아다니는 수백 마리가 네 담배 냄새에 끌려서 오면 막을 방법도 없어. 상황이 그러니까 평소보다 날카로워지는 게 하나도 안 이상한 거야. 네 사정만 생각하지 마.”

마른침을 꿀꺽 삼킨 신입은 도끼의 커버도 벗겨내지 않고 서둘러 보안관의 곁으로 다가갔다. 일하는 시늉이라도 해서 점수를 만회하려는 모양이다.

“……도울게. 뭘 하면 돼?”

신입이 쭈뼛거리며 말을 걸었을 때, 보안관은 막 전기톱의 초크를 빼고 스타터를 잡아당기는 중이었다.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신무기를 마주한 신입의 눈동자가 욕심으로 빛난다. 한쪽 발로 손잡이를 밟고 있던 보안관은 신입을 돌아보고 그새 훨씬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러나서 좀 기다려. 내가 나무에 쐐기 박을 자리를 만들어줄 테니까, 삼식이랑 쪼개.”

푸드득― 우우웅―

전기톱에 시동이 걸렸다. 보안관은 손잡이를 잡고 나무 앞에 섰다.

고정되어 있는 나무를 얇게 자르는 게 아니어서 일단 전기톱을 이용해 V자로 나무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도끼를 박아 해머로 내려쳐 끊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꽤나 걸리겠지만, 회전 톱날이 나무 사이에 끼는 것보다는 낫다.

우웅― 우우우우웅―

요란한 소리와 함께 톱날이 돌고 금방 사방으로 톱밥이 튀어 오른다.

“야, 저거 진짜 쩔기는 한다. 이거 끝나고 나면 저거는 나 줘라. 네가 보안관한테 말 좀 잘해줘 봐.”

코롤라 보닛에 기대서 보안관이 작업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신입이 삼식이에게 소곤거린다.

이쯤 되면 성격이 좋다고 해야 할지, 뇌의 어떤 부분이 없다고 해야 할지…… 조금 전 그렇게 구박을 받고 나서도 신입은 좀처럼 기가 죽는 법이 없다.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모습을 보니, 네일 건을 욕심낼 때보다도 두 배는 더 흥분한 모양새였다.

아하암, 가볍게 하품을 한 삼식이가 도리질을 한다.

“네 손에 저거 들어가면 우리가 불안해서 안 돼.”

“흥, 새끼. 너한테 안 휘두른다. 쫄기는.”

“그런 게 아냐. 우리가 저걸 맨 처음 봤을 때 조국남 반장님이 했던 이야기를 너한테도 그대로 해줘야겠군.”

“뭔 헛소리야, 등신아.”

신입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댄 삼식이가 작업반장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

“이거는 장난감이 아니다. 아주 아주 위험한 연장이고, 전문가들도 늘 긴장하면서 만져야 하는 물건이다. 호기심에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위험한 거 누가 모르냐, 이 새끼야. 갖다 대기면 하면 그냥 존나 잘라내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내가 무기로 쓰겠다고! 너희는 해머다 배트다 해서 다들 무기 하나씩 있잖아.”

아휴~ 삼식이는 탄식을 하고 나서 자신의 손을 전기톱처럼 흔들어 댔다.

“잘 들어봐. 네가 전기톱을 잡았다고 치자. 기름까지 합하면 무게가 5킬로 정도 되고, 90㏄ 엔진이 진동을 하니까 실제로 느끼기에는 그것보다 더 무거워. 그러니까 네 마음대로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고. 자, 한참 스타터를 당겨서 시동 걸렸어. 손잡이를 위아래로 꽉 쥐면 톱날이 돈다. 우우웅! 근데 저게 은근히 예민해서 단단한 물건에 잘못된 각도로 들어가기라도 하면 톱날이 곧바로 팍 튀어. 됫바꾸가 일어난다고. 그러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위이잉―!”

삼식이는 톱이라고 가정한 손날로 신입의 허벅지를 내려친 뒤, 빠르게 문댔다.

“그러면 네 허벅지에 박혀서 계속 도는 거야. 그런데 당황한 너는 손을 놓는 것도, 왼손으로 브레이크를 거는 것도 다 잊어 먹고 비명만 존나 지르는 거지. 으아악! 나 좀 살려줘! 하지만 우리가 가까이 가기도 전에 톱날은 벌써 핏줄을 다 자르고 뼈를 토막 내고 있지! 피로 범벅이 된 우리 신입의 짧은 다리뼈를! 위이잉! 위이잉!”

“그만 문대! 이 미친 새끼야! 재수 없게 왜 만날 남의 다리를 자르는 시늉을 해! 저번에도 그러더니! 주기 싫으면 주기 싫다고 솔직히 말을 할 것이지, 왜 개소리를 꾸며대!”

놀란 신입이 삼식이의 손을 쳐내며 발끈한다. 삼식이는 여전히 웃지 않으면서 말을 마무리했다.

“꾸며 대는 이야기가 아니야. 전기톱 쓰는 아저씨들이 뭣 때문에 비싼 안전 작업복을 사서 입고 안전화를 챙겨 신겠냐? 다 혹시라도 사고가 났을 때 조금이라도 덜 다쳐 보려고 그러는 거란 말이야. 내가 장담하는데, 네가 저거 주물럭거렸다가는 한 시간 내에 어디 하나 날아간다. 그게 손가락이기만 해도 운이 좋은 거고, 만약 허벅지나 발이면 그냥 죽는 거야, 지혈이 안 돼서. 그러니까 제발 쓸데없는 욕심 부리지 말라고. 저게 좀비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어.”

“계속 지껄여라, 난 안 들으니까.”

신입은 두 귀를 틀어막은 채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저 둘은 나름 잘 어울려서 노네요. 삼식이 오빠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유빈과 함께 늦은 점심 식사를 준비하던 제니가 신입―삼식 콤비의 모습을 보며 묻는다.

응? 잠시 시선을 두던 유빈은 따로 대꾸하지 않고 트렁크에서 음식들을 꺼냈다. 점심 식사 준비라고는 하지만, 그저 캔이나 봉지에 들었던 음식들과 1회용 포크, 물 같은 것들을 사람 수만큼 찾아 꺼내놓는 것뿐이다.

불 지른 자동차에 몰려든 놈들을 한번 보고 나니 찝찝해서 도무지 불을 피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더운 여름이라 캔에서 음식을 갓 꺼내도 별로 차갑지는 않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늘의 늦은 점심은 데우지 않은 햇반, 참치 캔, 그리고 봉지에 든 김과 튜브에 든 고추장이다. 어제저녁도, 그리고 오늘 아침도 비슷했다.

“어휴~ 사치스러운 말이라는 건 잘 알지만요, 이런 거 말고 얼큰한 국물이 엄청 그립네요. 날도 더운데…… 이상하죠?”

이마의 땀을 닦으며 제니가 중얼거린다.

“이상할 게 뭐 있어. 나도 그래. 한국 사람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어이! 보안관! 밥 먹고 해! 준비 다 됐어!”

“오빤 뭐가 젤 먹고 싶었어요?”

“음, 어제부터 계속 김치찌개가 먹고 싶더라고.”

“아하! 전에 제가 해줬던 그거요?”

제니가 해줬던 거라면…… 그 김치를 물에 목욕시키고 대책 없이 계속 끓이기만 하던 음식이 아닌가.

유빈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제니를 보며 도리질을 했다.

“그…… 그런 것보다 더 제대로 만든 것 있잖아. 목살 듬뿍 넣고 끓여서 김치 야들야들해진 김치찌개. 후우, 근데 이제 그런 건 정말 다시 먹어볼 수 없겠지. 김치는 다 쉬어 꼬부라졌고, 돼지고기 같은 걸 어디서 구할 수 있을 리도 없고 말이야. 세상이 예전처럼 돌아가면 그때나 먹게 되겠지. 야, 그건 정말 꿈같은 소리다.”

“더 꿈같은 이야기 하나 해줄까요?”

제니가 유빈의 손을 가볍게 토닥이더니 한쪽 눈을 찡긋한다.

“그때가 되면 그 찌개 제가 만들어줄게요. 이 예쁜 손으로!”

예쁘다…….

제니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면서도 유빈은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그런 날이 올 것 같지가 않아서…… 그리고 기적처럼 그런 날이 온대도 제니표 찌개가 맛있을 리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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