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악마는 어디에나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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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악마는 어디에나 있다 (1)
2022.01.23.
삼식이가 크게 하품을 하고 나서 손가락으로 신입의 코끝을 튕긴다.
“바보냐, 너? 혹시 몰라서 차를 돌려놓으려고 빼는 거잖아. 여기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니까.”
“뭐, 뭐라고? 차를 왜 돌려?”
“길이 막혔는데 지금 당장에라도 저쪽에서 좀비들이 달려오면 어떻게 할래? 아니면 저 위에서 뚝 떨어질 수도 있고. 하여간 그런 경우에는 다시 차를 몰아야 한단 말이야.”
삼식이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동부간선도로와 50여 미터 전방을 가로지르는 육교를 가리켰다. 도로 위에는 며칠째 그 자리에 방치되었을 게 분명한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서 있다.
삼식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타이어가 젖은 바닥과 모래를 훑으며 가까워지는 소리가 들린다. 후진으로 들어온 오피러스는 코롤라와 10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코너 끝에 멈춰 섰다.
“아, 난감하네. 좀 길이 넓은 데서라도 자빠질 것이지. 이러면 피해 갈 수도 없잖아.”
차의 시동을 걸어두고 내린 유빈은 쓰러져 있는 나무들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름드리에 가까운 나무들이 나란히 세 그루나 부러지고 뽑혀 누워 있다.
“시간도 많이 늦었는데.”
삼식이가 시계를 확인하고 나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좀 전에도 말했었는데, 줄로 묶어서 차로 끌어내. 그러면 되잖아. 새끼들, 머리를 좀 써라.”
답답하다는 듯 충고하는 신입을 보며 유빈은 고개를 저었다.
“저런 나무가 얼마나 무거운데. 세로 방향에서 당기는 거라면 또 모르겠지만, 가로로 누운 거라서 승용차로 끌어서는 어림도 없어. 버텨낼 수 있는 줄도 없고.”
“빨랫줄 잔뜩 챙기더구만. 그걸로 안 돼?”
“당연히 끊어지지. 그런 걸로 될 것 같으면 더 굵은 밧줄들은 왜 만들어놨겠냐. 후우, 대체 여기가 어디야. 상봉? 저 진입로로 들어가서 좌회전하면 상봉역으로 가는 건가 본데?”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보안관이 개천 건너편의 도로 표지판을 확인하고 말했다.
“상봉이면 얼마나 온 거예요, 우리가 있던 데에서?”
제니가 물었다. 유빈이 곧바로 일러준다.
“내리기 직전에 거리계를 봤더니 3.4킬로미터 조금 못 왔더라.”
“미묘하네. 그 정도면 멀리 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복지 센터 근처라고도 못하겠네.”
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입에 가져갔던 삼식이가 멈칫한다. 아까 좀비들의 발을 묶어두기 위해 유빈이 던진 깡통이 생각난 것이다.
“피워도 될까, 이거?”
“솔직히 모르겠어. 좀비들이 끌리는 게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불 때문인지. 하여간 불안한 건 사실이야. 마음 같아서는 이참에 끊으라고 말하고 싶긴 한데, 그건 또 너무 가혹한 거겠지.”
히잉― 유빈의 말에 삼식이가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다. 유빈은 피식 웃었다.
“차 안에 들어가서 창문 다 닫고 피우면 그나마 낫지 않을까? 꽁초도 밖에다 버리지 말고 빈 병에다 모으고.”
“오케이. 금방 한 대만 피우고 올게.”
삼식이와 신입이 자동차로 뛰어가는 동안 제니는 트렁크에서 약상자를 꺼내 와 보안관의 손바닥에 소독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돌기둥을 해머로 내려치느라 그의 손바닥은 그야말로 너덜너덜하다. 나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유빈이 보안관에게 말했다.
“길을 트려면 아무래도 몇 토막으로 잘라야겠지? 한 덩어리로는 답이 안 나오겠어.”
“자르는 것도 일이겠다. 시간깨나 잡아먹겠는데.”
“저 굵은 걸 뭐로 잘라요?”
테이프로 붕대를 고정시키던 제니가 묻는다.
“나무 자르는 거야 톱이지, 뭐.”
“톱? 우리한테 없잖아요.”
“……저 위쪽으로 올라가서 구해 와야지.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니까 철물점 정도야 있을 거고.”
“하아~ 괜찮을까요? 여기는 아는 동네도 아닌데.”
제니가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본다. 그들이 위치한 산책로에서 비스듬히 10여 미터만 올라가면 동부간선도로가 있고, 그 도로를 넘어가면 다시 민가다.
별다른 높은 건물이 눈에 띄지 않는, 전형적인 변두리의 모습이었다. 개천 반대편에 수십 동이 넘는 대단지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과 선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그래도 저쪽보다야 나을걸? 사람들이 많이 살던 곳이니까 아파트 단지에는 아무래도 좀비가 남아 있을 가능성도 더 커.”
보안관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 며칠 전, 산 위에 올라갔다가 목격한, 좀비들에 포위되어 있던 아파트의 광경이 떠올라서다.
“벌써 세 시가 넘었네. 아침부터 준비해서 꽤나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도…….”
시간을 확인한 유빈은 해머를 꺼내 보안관에게 건네고, 자신은 야구 배트를 들었다.
“어디 가려고요? 삼식이 오빠 아직 안 왔는데.”
“그냥 우리 둘이 후딱 다녀와 보려고. 그렇게 큰일 없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유빈은 코롤라 안에 있던 개인용 배낭 두 개를 꺼냈다.
출발하기 전, 그가 하나씩 표준 장비를 챙겨 넣어놓은 것들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그는 가방 앞주머니를 열고 라이터 기름과 라이터가 들어 있는지를 확인했다.
“싫어요, 다 같이 가요.”
제니가 유빈의 가방을 빼앗는다. 유빈은 제니의 다리로 시선을 주었다. 희고 매끈하고 길다. 하지만 동시에 약하다.
“그런 바지 입고는 저길 못 지나가……. 댓 걸음도 못 가서 발목이 다 긁힐걸. 피투성이 된다고.”
제니는 유빈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경사로에는 관리를 받지 못한 덕에 제 마음대로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들과 키 작은 나무들이 가득 얽혀 있다.
“양말, 긴 양말 가져왔잖아요. 두 개 겹쳐 신을게요. 두꺼운 등산 양말이에요.”
다급하게 짐을 뒤지는 제니의 손목을 보안관이 잡았다.
“제니야, 이 동네……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야. 위험할지도 몰라.”
위험할지도 몰라, 라는 말을 할 때 보안관은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그렇게 하면 제니가 겁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니는 담담하게 그의 손을 다독이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같이 가고 싶어요.”
그 한마디에 감동받아서 완전히 녹아버린 보안관은 더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순순히 물러났다. 하긴 처음 만나 속옷 가게 2층 집에서 탈출했던 날에 그녀는 빼어난 달리기 실력을 입증했었다.
그리고 높다란 철책을 뛰어넘을 때에도 구르지 않고 정확하게 착지했을 만큼 운동 능력도 좋다. 그녀의 고집을 이미 경험해 본 유빈은 더 말을 보태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아, 올라가는 거야? 공구 찾으러?”
담배를 피우고 돌아온 삼식이가 장비를 갖추고 있던 유빈에게 물었다.
응, 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은 아무 말도 없이 서서 콧구멍만 벌렁거리고 있다. 양말을 겹쳐 종아리 위까지 올려 신고 있는 제니를 빤히 쳐다보느라 혼이 빠졌다.
“삼식이, 너 담배 어디다 챙겼어? 두 보루 정도 줘봐. 여차하면 아까처럼 그거라도 써봐야지.”
오피러스 트렁크에서 담배를 한 무더기 가져온 삼식이가 신입을 가리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근데 나랑 얘는 무기가 없는데…….”
“어차피 그렇게 전원이 싸울 일은 없어. 위험하면 다른 동네로 가면 되니까. 올라가 봐서 아니다 싶으면 곧바로 도망쳐야 돼.”
유빈이 야구 배트를 삼식이에게 건네며 말했다.
흠, 삼식이가 다 찌그러진 배트를 잡고 스윙 연습을 할 때, 바로 직전까지 제니에게 정신을 빼앗겼던 신입이 고개를 돌렸다.
“그럼 나는 여기서 차를 지킬게.”
말 같지도 않은 핑계였지만, 보안관은 그냥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좋을 대로 하는데…… 담배 피우고 창문 열어놓지나 마라.”
신입은 열쇠 하나만으로는 아직 불안했는지 한술 더 뜬다.
“너희 차 열쇠도 나한테 맡겨놔. 내가 유턴시켜 놓을 테니까.”
“이걸 달라고?”
보안관은 열쇠를 빙글 돌려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콧방귀를 뀌었다.
“네가 말 안 했으면 그냥 차에 두고 갈 뻔했다, 이 사악한 새끼야. 남을 믿는 법을 좀 배워라. 이제 그럴 때도 되지 않았냐?”
얼굴이 벌게진 신입을 놔두고 네 사람은 비스듬한 경사로를 올랐다.
풀은 발이 푹 빠질 만큼 자라 있고, 그 바닥은 물기 덕분에 온통 진창이다. 긴 바지를 입고 있는데도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찌를 때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야야, 앞장서서 걷던 삼식이의 입에서 가벼운 신음이 흘러나온다. 보안관은 해머를 지팡이처럼 짚어 길을 트면서 제니의 손을 잡아주었다.
“엉망이구나, 여기도.”
동부간선도로 위에 올라서서 꽉 막힌 자동차들을 보며 삼식이가 중얼거렸다. 문을 열어놓은 채 버려두고 간 차들이 대부분이고, 서로 들이받아 박살이 난 차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차라리 이 차들 중에 멀쩡한 걸 골라서 타고 내려가면 안 돼요? 그러면 나무로 막힌 데를 지나칠 수 있잖아요.”
제니가 유빈에게 물었다.
“경사로가 꽤 가파른 데다가 진창이어서 위험하기도 하고…… 또 일단 이걸 제거해야 내려갈 수 있잖아.”
유빈은 추락 방지용 철제 펜스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것도 해체하려면 공구가 있어야 하니까 이래저래 공구상은 찾아야 돼. 이만큼 큰 사이즈 볼트를 풀 수 있는 스패너는 우리한테 없거든.”
삼식이가 가장 먼저 높다란 철책을 기어 올라가 중간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망원경을 꺼내 도로 건너편의 마을을 살폈다.
“어때? 뭐가 좀 보여?”
“음, 지금 보이는 데까지는 조용해. 그런데 집들에 가려져서 멀리까지는 안 보여. 이쪽이 지대가 좀 높은가 봐.”
일단 넘어가 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제니는 다른 사람들 애먹이지 않고 풀쩍 뛰어 사뿐히 바닥에 내려앉았다.
철책 너머에는 동부간선도로의 소음을 막기 위해 설치해 둔 녹지와 폭이 좁은 공원, 좁은 4차선 우회로, 그 우회로를 따라 지어진 나지막한 집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4차선 도로에 발을 디디며 보안관이 투덜댔다.
“여기까지도 차들이 이렇게 많아? 젠장, 길이 안 막힌 데가 없구만.”
“보안관, 이쪽에서 걸어. 집들 있는 쪽에 붙지 마.”
“그건 또 왜 그렇지?”
“우리 번화가에서 도망치던 때 생각해 봐. 2층, 3층 가리지 않고 좀비들이 뛰어내리잖아. 게다가 유리 조각까지 쏟아지지. 좁은 데서 그러면 빼도 박도 못해. 가급적이면 넓은 길 가운데로 가야 돼.”
그렇게 말하며 유빈은 멈춰 서 있는 자동차 보닛과 트렁크를 드라이버로 긁어 별 모양 표시를 해두었다. 철책 넘어온 위치가 헷갈릴 경우를 대비해서다.
낯선 동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그들의 가슴은 빠르게 뛰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젖어 있는 바닥에 좀비 발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10여 분을 더 걸은 일행은 재래시장 골목을 만났다.
아케이드 시장답게 도로 양쪽으로는 점포들이 죽 늘어서 있고, 위쪽에는 연두색 투명 패널로 만든 지붕이 골목 전체에 걸쳐 길게 덮인 채였다.
“……으아, 이거 봐.”
거리 여기저기 엎어져 있는 시체들과 넘어진 스쿠터들을 보며 삼식이가 중얼거린다. 목을 물어 뜯겨 잘렸거나, 머리가 깨진 채 죽은 시체들이 즐비하다.
패널 지붕 덕에 태풍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상가의 유리창마다 말라붙어 있는 핏자국들도 선명했다.
이곳에서도 역시 대참극이 벌어졌었음을 알려준다. 평범하게 장을 보러 나왔던 사람들과 가게를 지키고 있던 상인들이 좀비들에게 쫓기고 물어뜯기는 광경이 고스란히 상상되었다.
“들어가지 말자. 너무 좁아…….”
유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골목 저 끝 코너에서 뭔가가 터벅터벅 걸어 나온다.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하기도 전에 일행은 얼른 입간판 뒤로 숨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늘어나는 좀비들의 수에 비례해서 그들은 점점 더 깊이 허리를 숙였고, 더 멀리 뒷걸음질을 쳤다. 다섯 걸음을 뒤로 물러났다.
100여 미터 앞에는 좀비 다섯 마리가 우뚝 서서 고개를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 들켰을까?”
타이어에 기대앉은 삼식이가 놀란 가슴을 눌러 진정시키면서 속삭였다. 몇 번이나 경험을 했는데도, 갑작스레 저놈들과 맞닥뜨리는 건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내가 볼게.”
놈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슬쩍 고개를 내밀어본 보안관은 허겁지겁 배낭을 벗고 해머를 집어 들었다.
말로 굳이 전하지는 않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은 나머지 세 사람도 얼른 몸을 일으켰다. 다섯 마리 좀비들이 전속력을 다해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다.
“뒤로 빠져!”
보안관이 자세를 잡으며 외쳤다. 삼식이가 제니를 붙잡고 뒤쪽으로 뛴다.
유빈은 배트를 꽉 쥔 채 5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보안관과 나란히 섰다. 혹시라도 보안관을 지나쳐 달려오는 놈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그런 일이 없으면 더 좋겠지만…….
그롸아아아―!
10초도 걸리지 않아 바로 코앞까지 내달려온 놈들이 아가리를 벌리고 포효한다. 풀쩍, 가장 앞서 달리던 놈이 자빠진 스쿠터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콰당!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얼굴을 찧는다.
목뼈가 꺾여 버릴 만큼 호되게 부딪친 좀비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도 의외의 전개여서 엄청 긴장하고 있던 유빈조차 웃음이 터질 뻔했다.
하지만 곧바로 덮쳐 오는 두 번째, 세 번째 좀비의 끔찍한 비주얼이 그 웃음기를 싹 거두어가 버렸다.
그와아아―
좀비가 보안관의 목덜미를 향해 풀쩍 뛰었다. 기다리고 있던 보안관은 허리를 힘껏 돌려 놈의 얼굴을 해머로 박살 냈다. 그러고는 한 바퀴를 회전해서 세 번째 좀비의 관자놀이를 힘껏 후려갈겼다.
쩌억―!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하지만 유빈에게도 눈을 돌릴 여유 같은 건 없다. 유독 그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놈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둘…… 타이밍을 재던 유빈은 이를 악물고 배트를 돌렸다.
부우웅―
그러나 거리가 조금 부족했다. 찌그러진 알루미늄 배트는 좀비의 머리가 아니라 아래턱과 이빨들을 몽땅 날려 버렸다.
“이런!”
휘청한 좀비가 금방 다시 중심을 잡고 유빈을 향해 달려든다. 유빈은 뒷걸음질을 치면서 마구잡이로 배트를 휘둘렀다.
빠악― 빠악―
손과 머리를 계속 얻어맞으면서도 좀비는 좀처럼 쓰러져 주지를 않는다. 툭, 등에 벽이 닿았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
유빈은 배트를 짧게 돌려서 이빨이 없어져 버린 좀비의 턱을 쳐올렸다. 그리고 놈이 주춤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있는 힘껏 정수리를 내려쳤다.
“하아~ 하아~”
겨우 놈을 끝장낸 유빈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보안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안관은 벌써 세 놈째의 대갈통을 박살 내버리고 도와주기 위해 이쪽으로 달려오는 중이다.
“넌 여태까지 이런 걸 들고 용케 싸웠다. 때려봐야 잘 죽지도 않는데…….”
“너무 찌그러져서 그래. 처음에는 꽤 괜찮았어. 일단 가벼워서 휘두르기가 좋잖아.”
“어쨌든 공구상에 가면 무기가 될 만한 것도 좀 챙겨야겠다. 이걸로는 안 돼.”
유빈은 야구 배트를 바닥에 짚으며 중얼거렸다. 어찌나 긴장해서 용을 썼는지 팔이 후들거린다.
“괜찮아요? 혹시 다친 거 아니죠?”
제니가 다가와 유빈의 등을 짚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아니.”
유빈은 고개를 저었다. 안심한 제니가 다시 보안관에게 고개를 돌리자 보안관은 찡긋 윙크를 하며 오른팔의 이두박근에 힘을 꽉 주어 보였다.
“이런 놈들은 대체 왜 다른 놈들이랑 같이 안 몰려다니고 따로 떨어져서 저희들끼리만 서성거리는지 모르겠네.”
유빈이 투덜거리자 보안관도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번화가에도 이런 것들 있었지. 행렬에 참가 안 하고 어정거리던 좀비들.”
“근데 저놈은 뭐지? 좀비로 변하기 전 직업이 코미디언이었나?”
스쿠터를 뛰어넘다가 미끄러져 목뼈가 부러져 죽은 좀비를 턱으로 가리키며 삼식이가 물었다. 네 사람은 천천히 놈이 자빠져 있는 아케이드 안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벌어진 아가리, 축 늘어진 혀, 미동조차 없는 손가락…… 녀석은 확실히 죽었다.
“혹시…… 이거 때문이었을까요?”
놈의 발이 미끄러진 곳 근처에는 썩을 대로 썩은 야채들이 쏟아져 있었다.
아마 배달을 나가던 스쿠터가 넘어지면서 바닥에 엎은 것 같다. 야채 더미 한가운데에는 방금 생긴 것으로 보이는 움푹 팬 자국이 남아 있다.
“그러니까 이런 거네. 풀 스피드로 달리다가 장애물이 있어서 점프를 했는데, 하필이면 착지한 지점에 썩은 야채가 있었다. 큭큭큭, 이렇게 날로 먹는 경우도 다 있구나. 바나나 껍질이었으면 더 그럴듯했을 텐데.”
삼식이가 킥킥거리는 동안 유빈은 중요한 깨달음을 또 하나 얻은 것 같았다.
“……그래, 이놈들이 아무리 빠르고 힘이 세도 우리랑 똑같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거였지……. 바닥이 미끄러우면 자빠지는 거야. 그리고 어쩌면 더 치명적일지도 모르겠어. 이것들은 다른 놈이 미끄러지는 걸 봐도 거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를 못하니까.”
“참내…… 그게 그렇게 진지한 목소리로 웅얼거릴 만큼 대단한 발견이냐? 이것들 돌대가리인 건 예전부터 알았잖아. 이러면서 시간 보내지 말고 빨리 공구상이나 찾자. 해 질라.”
좀비의 신발 바닥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서 있는 유빈을 잡아끌며 보안관이 말했다.
응, 응. 그래, 가자.
대답은 그렇게 했어도, 돌아서서 걸어가는 동안 유빈은 여전히 생각에 잠겨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기까지 했다. 얼마 동안 더 헤맨 끝에 공구상을 발견한 보안관이 입을 열었다.
“됐다! 찾았다.”
쇼윈도 선반에 걸려 있는 여러 가지 전동 공구들이 그들을 향해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