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변곡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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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변곡점 (4)
2022.01.21.
물론 놈들이 결코 숨지 않는다는 건 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성대가 뜯겨 나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는 좀비를 목격한 적도 있다. 문제는 좀비가 물에 뜨는지 가라앉는지를 그가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이 똥물을 헤치고 걸어 겨우 통로 저 끝까지 도착했을 때, 반대편에서 서성거리던 좀비가 달려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했다.
보안관이라고 해도 이 정도 깊이의 물속에서는 제대로 싸우기 어렵다. 잠시 고민을 하던 유빈은 다시 위쪽으로 걸어 올라왔다.
“어깨 바로 아래까지 푹 젖었네. 물 높이가 그 정도구나. 근데 표정이 왜 그렇게 걱정스러워?”
삼식이가 물었다.
“그게…… 너무 더럽기도 하고, 또 위험하기도 해서…….”
유빈은 네 명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물이 더러워서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 남자 가슴 높이까지 물이 차 있으니까 저항력 때문에 움직임이 더뎌진다는 점, 일단 일정 지점 이상을 지나면 무슨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빨리 되돌아오기가 어렵다는 점, 통로 반대편에서 혹시 좀비가 뛰어들면 싸우기가 어렵다는 점.
그리고 남자들보다 키가 작은 제니는 이 모든 과정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점까지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나니, 애초에 막연하게 인식하고 있던 것보다 문제가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 피하고 싶다.
하지만 건너편의 산책로로 이어진 유일한 통로는 여기뿐이다. 여길 지나지 않으면 차를 탈 수도 없고, 그러면 대피소로 이동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면 안 돼? 아, 저 더러운 물에 담근다는 상상만 해도 존나 역겹네, 진짜.”
신입이 코를 막은 채 코맹맹이 소리로 묻는다.
“안 돼. 며칠이나 걸릴지도 모르고, 그동안에 저 건너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도 전혀 예측할 수 없으니까.”
“내가 제니를 목말 태워서 갈게. 그렇게 해서 빨리 지나가 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물속이라고 해도 고작 몇십 미터인데, 그동안 무슨 별일이 있으려고?”
보안관이 흑심 반, 책임감 반의 심정으로 제안한다. 이번에도 유빈은 고개를 저었다.
“될 대로 되라는 도박은 안 할 거야. 그리고 네가 제니를 목말 태우고 있으면, 만약의 경우가 벌어졌을 때 우리는 누가 지켜주냐?”
으음~ 다섯 명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야기가 늘어지는 기미를 보이자, 코에 휴지를 말아 넣은 신입이 유빈을 위아래로 훑으며 중얼거린다.
“야, 너 씨발, 일단 좀 씻어. 옷도 갈아입고. 남 생각도 좀 해라. 지금 네 바지에 묻은 거 아무리 봐도 똥인데, 그거.”
“엑, 진짜?”
허벅지를 쓱 훑어 코에 가져다 대본 유빈이 곧바로 기절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으! 그걸 왜 굳이 확인까지 해요?”
제니가 뒷걸음질을 치며 입을 가린다. 사실 다른 친구들에게도 견디기 쉬운 냄새는 아니었다.
깊이를 가늠하기 위해 잠시 담갔다 나온 것만으로도 유빈의 몸에서는 악취가 강하게 풍겨 나왔다. 삼식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신입에게 동조했다.
“그래. 혹시 피부병 걸릴지도 모르니까, 나중에 또 들어가더라도 비누질 좀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너 다리에 상처도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잖아.”
“알았어, 알았어. 금방 씻고 올게, 그럼.”
유빈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하고 생수병과 물티슈, 소독용 에탄 알코올을 챙겨서 비닐봉지에 담아 옷가게 탈의실로 들어갔다.
비닐봉지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오물에 푹 젖어 잘 벗겨지지 않는 옷을 바닥에 집어 던진 유빈은, 물티슈로 대강의 더러움을 닦아내고 레이저 와이어에 찢겼던 다리와 칼에 얕게 찔렸던 옆구리를 살펴봤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다행히 이미 붉은 새살들이 돋아나 있다. 이만하면 상처를 통한 감염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지만, 이왕 가져온 것이니 알코올은 부어두었다.
슬슬 야생이 되어 가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유빈은 대충이나마 물로 몸을 닦았다.
“야! 그 신발은 뭐야? 왜 안 버리고 가지고 왔어?”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 물로 헹군 안전화를 비닐에 담아 들고 나오는 유빈에게 신입이 얼굴을 찌푸리며 묻는다.
“아, 이거…… 아무래도 안전화는 필요할 것 같아서.”
“손만 뻗으면 사방에 새 신발인데, 그까짓 낡은 신발이 뭐가 그렇게 아쉬워? 그냥 버려, 인마.”
“근데 이거는 앞코에도 철판이 들어 있고, 바닥도 못에 뚫리지 않는 재질이거든. 보안관, 삼식이, 너희는 아예 다른 신발로 갈아 신고 건너.”
“잠수복 같은 게 있으면 좋은데…….”
“옷은 저기를 벗어나자마자 갈아입으면 돼. 비누랑 물 가지고 가서 씻으면 되는 거고.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많아.”
“갈아입을 옷은 어떻게 가져가? 보따리에 싸서 머리에 이고 가나? 하하하, 그 모습 상상하니까 어지간히 궁상맞은데.”
싱거운 삼식이가 자신의 말에 빵 터져서 혼자 킬킬거리는 동안 보안관과 유빈은 지하 차로를 건너는 방법에 대해 논의를 계속했다.
“먹을 거랑 옷을 배낭에 넣고 비닐로 여러 겹 싸서 카트에 담아 끌고 가면 될 것 같아. 그 위에 세녹스나 물처럼 무거운 걸 눌러놓으면 뜨지 않을 거야.”
“그럼 아예 슈퍼에 가서 카트를 하나 더 가져와야겠다. 보안관, 너 혼자서만 무거운 걸 밀고 가면 힘이 빠질 테니까 무게를 나누자. 젤 걱정되는 건 역시 안전인데…… 물이 워낙에 탁하니까 안에 뭐가 숨어 있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아.”
유빈과 보안관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 제니가 제안을 했다.
“오빠,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요, 전에 우리가 옥상 위로 건널 때 쓴 그 철책 있잖아요. 그걸 앞세워서 붙잡고 가면 안 돼요? 보호망처럼.”
듣고 보니 꽤 괜찮은 이야기다. 쇠기둥을 떼어내고 철망만 사용하면 무게도 확 줄어들 테고, 게다가 철책을 잡고 가면 제니가 턱 끝까지 차오르는 똥물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질 가능성도 한결 줄어들 듯하다.
“에…… 철책 높이가 2.5미터 정도니까 그걸 옆으로 누인 다음, 양쪽에 남자 둘이 잡아서 균형을 잡고 제니가 가운데에서 보조를 맞춰가며 걸으면 되겠네.”
“케블라 장갑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도 끼고, 그렇게 하고 잡으면 안전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그렇게 세 명이 앞장서고, 보안관이랑 한 명이 바짝 붙어서 카트를 끌고 따라가는 걸로 하자.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 때 철책을 잡고 버티고 있으면 보안관이 곧바로 도와주면 되니까. 그럼 누가 어떤 위치에 서서 가느냐 정하는 것만 남은 건가?”
“그거야 따로 정할 필요도 없지, 뭐. 삼식이랑 유빈이, 네가 철책을 잡아. 나랑 신입이 카트를 끌고 갈게.”
보안관의 결정에 신입이 끼어든다.
“아…… 나도 철책 잡고 가는 게 더 좋은데……. 내가 잡을게.”
위험해 보이는 선봉을 자처하는 게 이상한지 보안관이 물었다.
“야, 너답지 않잖아. 앞장을 서겠다니, 왜 그래? 무슨 꿍꿍이야?”
“꿍꿍이라니, 그런 거 없어. 그냥…… 그게 더 하고 싶은 것뿐이지.”
신입이 말을 제대로 맺지 못한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노려보던 삼식이가 손바닥을 탁, 친다.
“아하, 이제 알겠다! 너…… 맨 뒤에 처져서 가는 게 무섭구나? 누가 뒤에서 확 끌어당길까 봐? 하하하, 하여간!”
“지, 지랄 마! 이 미친 새끼야! 누구를 무슨 어린애인 줄 아나?”
신입이 목소리를 높인다. 목덜미까지 벌게져서 펄펄 뛰는 걸 보니 정곡을 찔린 모양이다. 보안관이 신입의 어깨를 꽉 잡고 귀에 속삭였다.
“만약에 무슨 일 났을 때 철책 놓고 달아나면 네 대가리부터 찍을 거야. 그러니까 자신 없으면 뒤에 서.”
뚫어져라 쳐다보는 보안관의 눈에서는 진심이 뚝뚝 떨어진다.
흠, 흠, 신입은 잠시 헛기침을 하며 서 있다가 말했다.
“그냥 더 힘이 들더라도 내가 카트 끌고 가는 게 낫겠다. 이럴 때일수록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지.”
보안관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나머지 세 사람은 신입의 변덕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유빈이 종이 쪼가리에 볼펜을 끄적거리면서 지하 통로를 건너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나열했다.
“보안관, 너 일단 팔에 랩부터 감아.”
“랩? 음식 포장하는 비닐? 그건 왜?”
“너 팔 찢어진 데 아직 딱지도 제대로 안 앉았잖아. 거기에 저 똥물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거지. 물 새지 않게 서너 겹으로 튼튼하게 감아.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 관절 주변은 놔두고.”
“그건 제가 감아드릴게요. 저 때문에 다친 거니까.”
제니가 손을 번쩍 들자 보안관은 형언할 수 없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똥물에 잠수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건데, 그의 표정만 보자면 남태평양의 해변에서 선크림을 발라주겠다는 말을 들은 사람 같다.
“좋아, 그럼 너희는 랩 가지러 슈퍼 가는 길에 비닐봉지랑 샴푸, 비누, 수건, 고무장갑 이런 것 좀 챙겨다 줘. 종량제 비닐 100리터짜리 알지? 그거랑 생수는 많이 필요할 테니까 넉넉하게 가지고 와. 나머지는…… 각자 갈아입을 옷이랑 신발 챙겨. 혹시 내가 말하지 않은 거 있어?”
각자 갈라져서 준비를 마친 일행은 30여 분 뒤, 다시 지하 통로 앞에서 만났다. 애초 유빈이 주장했던 3일치 식량과 물에 새로운 준비물들까지 더해지자 카트 두 개를 준비한 게 그리 과하지 않아 보였다.
“그건 뭐야?”
난데없이 야구 모자를 돌려쓰고 나타난 유빈을 보고 보안관이 물었다.
게다가 모자 위에는 덕 테이프로 고정시킨 분유 깡통이 달려있어 난해하기 그지없다. 송곳으로 구멍을 숭숭 뚫어놓은 플라스틱 뚜껑에는 라이터도 끼워져 있다. 구멍 사이로 휘발유 냄새가 살짝 풍긴다.
“이거…… 보험이야.”
“무슨 보험이 담배를 댓 갑이나 머리에 쓰고 가는 거야?”
뚜껑을 열어본 보안관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더 캐묻지 않고 짐을 옮겼다. 테이프로 입구를 꽁꽁 봉쇄해 둔 커다란 비닐봉지들을 계단 아래에까지 미리 옮겨놓고 카트와 철망을 들고 내려갔다.
“들어가기 전에 이거.”
삼식이가 내민 것은 싸구려 물안경이었다.
“편의점에 네 개 만 원짜리로 들여놨더라. 여름 대목을 노린 거였겠지. 전부 이거 써. 혹시라도 물에 잠길 일이 생기면 이렇게 허접한 물건이라도 있고 없고 차이가 클 거야.”
케블라 장갑, 그 위에 고무장갑, 싸구려 물안경, 그리고 머리에는 헤드 랜턴. 이게 다섯 명의 표준 장비다. 각자 등에 멘 배낭 속에는 비닐로 꽁꽁 싸둔 옷과 신발, 비누와 수건이 들어 있다.
“잠시만요.”
물에 몸을 담그기 전, 제니는 길고 치렁치렁한 갈색 머리를 전부 틀어 올려 머리 위로 묶고 비니로 덮었다. 그녀의 흰 목덜미를 보며 보안관과 신입이 동시에 침을 꿀떡 삼킨다.
“준비 다 됐지? 자, 그럼 들어간다.”
철망의 왼쪽 끝을 잡고 유빈이 가장 먼저 물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팔뚝만 한 쥐의 시체가 배를 드러낸 채 천천히 떠내려온다. 유빈은 이마를 찌푸리며 물을 휘저어서 죽은 쥐를 밀어내 버렸다.
그가 철망을 잡고 있는 뒤쪽으로, 나머지 네 사람은 카트를 물속에 집어넣고 거기에 차곡차곡 짐을 담았다.
보안관은 야구 배트를 카트에 끼워 넣고 대신 짧은 망치를 택했다. 물에 몸이 잠긴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리치가 짧은 무기가 낫다.
“잘 잡았어?”
철망을 잡고 나란히 선 제니와 삼식이에게 유빈이 물었다.
“하아~ 하아~ 오빠, 저 진짜 이럴 때 유난 떨고 싶지는 않은데, 냄새가 너무…… 숨쉬기가 어려워요. 이거…… 지금 떠내려오는 거…… 설마 똥?”
까치발을 하고 키를 높인 제니가 숨을 몰아쉬며 괴로워한다. 그녀의 오뚝한 콧날과 똥물 수면과의 거리는 손가락 하나 길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물방울이 튀면 입술에 닿을 만큼 가깝다. 그만큼 악취도 더 직접적으로 강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는 순간에도 그녀의 시선 반대쪽에 또 죽은 쥐가 떠온다. 삼식이는 티 내지 않고 얼른 꼬리를 집어 뒤쪽으로 던져 버렸다.
“조금만 참아. 여기만 건너가면 힘든 건 다 끝나. 그다음엔 보송보송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11킬로미터만 가면 돼. 그러면 대피소에서 안전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어.”
“후우~ 후우~ 네, 알아요. 후우~ 이제 가요.”
몇 번 입으로 숨을 몰아쉰 제니가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을 신호로 철망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려오기 전 연습했던 대로 왼발을 먼저 내디디면서 철망을 슬쩍 밀었다.
조금만 가면 된다고 했지만, 헤드 랜턴의 빛이 중간까지밖에 미치지 않을 만큼 지하 통로는 결코 짧지 않았다.
그리고 출렁이는 흙탕물이 주는 압박감 때문에 평소보다 몇 배나 더 길어 보였다. 발밑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폭도 짧아질 수밖에 없다.
하아~ 하아~ 그들은 가능하면 입으로 숨을 쉬기 위해 노력하면서 천천히 한 발, 한 발을 내디뎠다. 물속에서 카트를 민다는 게 꽤 힘이 들어서, 뒤따라오는 신입과 보안관도 진땀을 흘려야 했다.
“저기, 저거…….”
삼분의 일 지점쯤에서 삼식이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유빈도 보았다. 통로 저 끝 쪽에 뭔가 둥둥 떠 있다. 젖은 머리카락, 축 늘어져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등짝…… 분명히 죽은 사람의 형태다.
중요한 것은 저놈이 그저 단순한 시체인지, 아니면 좀비인지 하는 점이다. 시체는 잔잔한 물의 흐름에 따라 아주 천천히 돌고 있었다.
“좀비야?”
보안관이 물었다. 삼식이가 고개를 젓는다.
“울부짖지 않는 걸로 봐서는 그냥 죽은 사람 같기는 한데…… 좀비가 물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뭐라고 단정하기가 어렵네.”
“하긴…… 좀비 시체일 수도 있어. 계단 위쪽에서 우리가 여러 마리 죽였었잖아.”
유빈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찜찜하다.
시체가 있는 물속에서 계속 걷는다는 것만 해도 불과 며칠 전에는 기절할 만큼 끔찍한 일이었으니까. 시체 썩은 물이 고스란히 옷 속으로 흘러 들어올 것만 같다. 만에 하나 저게 좀비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아, 정말 싫다. 씨발, 저기를 지나가야 돼?”
신입이 인상을 쓰며 버릇처럼 침을 탁, 뱉었다. 침은 물 위에 둥둥 떠서 다시 그의 옷 가슴팍에 달라붙었다.
후우~ 크게 한숨을 쉰 유빈이 말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시체면 그냥 옆으로 밀어 치우면 돼. 시체 많이 봤잖아. 그리고 저게 다른 거라고 해도 우리는 가야 돼.”
모두는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르고 다시 전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체에서 2미터 내외까지 접근하게 되었다.
“천천히 가.”
카트를 놓고 다가온 보안관이 망치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세 사람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한 발짝씩을 내디뎠다. 공교롭게도 시체는 제니가 선 곳을 향해 느리게 떠온다.
“으으으~”
울상을 짓는 제니의 몸이 점점 더 뒤로, 그리고 유빈 쪽으로 향한다. 한쪽 귀가 물에 잠길 것처럼 기울었는데도 정작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출렁~ 철망에 닿은 시체가 빙그르르 돈다. 한쪽 눈알이 달아난 채 퀭하니 뚫려 있는 눈구멍, 반쯤 벌어진 썩은 입술, 뻣뻣하게 굳은 얼굴 근육을 보니 확실히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알 수 있다.
모두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올 때, 시체와 눈높이가 같은 제니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를 냈다.
“어떡해, 어떡해. 눈 마주쳤어요……. 으아아~”
그녀의 숨이 엄청나게 가빠진다. 너무 기울어져서 물에 빠지기 직전에 보안관은 얼른 제니의 옷깃을 잡아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제니야, 진정해. 숨 크게 쉬어. 눈만 감으면 아무 일도 없어. 이제 다 끝났어.”
보안관이 한 팔로 제니를 안아 올려주며 진정시키는 동안 유빈과 삼식이가 철망을 비스듬히 밀어서 시체를 한쪽으로 떠내려 보냈다. 또다시 빙글 돌았을 때 시체의 뒤통수가 드러났다.
가까이에서 보니 해머에 맞아 박살 난 게 분명해 보이는, 움푹한 상처가 있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요 며칠 새 보안관이 끝장을 낸 좀비인가 보다.
첨벙, 첨벙.
혼자만 뒤처진 신입이 물보라가 제 얼굴에 튀든 말든 허겁지겁 뛰며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줄인다.
좀비의 시체를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고 나서 일행은 지하 통로의 끝에 도착했다.
실제로 그 안에서 보낸 시간은 불과 몇 분 정도였겠지만, 체감되는 피로는 그것의 수십 배 이상이다. 계단을 통해 비취는 햇살을 보자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터졌다.
“여기 있어봐. 내가 먼저 보고 올게.”
위쪽을 살피던 유빈이 철망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조심스레 계단을 밟으며 올라섰다.
“서둘러. 얘 거의 패닉 직전이야.”
유빈의 뒤통수에 대고 보안관이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입도 한마디 보탠다.
“나도 씨발…… 토할 거 같아. 우웁…… 후우.”
그런 말들에 흔들리지 않고 유빈은 난간을 잡으며 한 계단씩 시야를 넓혔다. 여기까지 잘 와서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