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폭풍 속으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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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폭풍 속으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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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폭풍 속으로 (6)
2022.01.17.
으으으~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이는 사람을 볼 때마다 두 특임대원은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것이 어린 해병이든, 양복쟁이 관료든, 서빙을 하기 위해 대기하다가 봉변을 당한 웨이트리스이든 간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겉모습에 속아 고민하다가 역으로 이쪽의 머리가 날아갈 수도 있다.
바 뒤쪽에 숨어 오들거리던 바텐더를 끝으로 홀이 완전히 정리된 것을 확인한 소령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가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고는 뒤쪽으로 수신호를 보냈다. 채 장군과 이승남을 호위하고 있던 병사가 그들을 데리고 다가왔다.
“찾았습니다.”
소령이 비켜서자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바닥에 뒹굴던 킹메이커가 모습을 드러낸다. 찢겨 나간 머리 가죽에는 성성하던 백발 대신 붉은 피가 점철되어 있다.
“술 가져와!”
채 장군이 명령을 내리자 호위하고 있던 병사가 바 뒤쪽으로 뛰어 들어가서 아직 멀쩡하게 남아 있는 병 중 하나를 집어 왔다. 그러는 동안 채 장군은 의자 하나를 끌어 왔다.
의자 위에 떨어져 있던 살점과 내장을 밀어 쳐버리고 그 위에 걸터앉은 채 장군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느긋하게 연기를 내뿜었다. 차가운 바람 사이로 몰아치는 빗방울들도 청량하게만 느껴진다.
꾸르르릉―
시커먼 하늘 사이로 천둥이 울린다.
“윤 장관! 길었어. 자그마치 15년이야.”
위스키를 병째 나발 불고 나서 채 장군이 킹메이커를 향해 말했다.
끄으으으으~ 킹메이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15년 동안이나 네 뒤치다꺼리나 하며 살았지. 개똥도 모르는 새끼가 그저 주둥이만 살아서 나불거려도 실실대며 비위를 맞춰주고 말이야. 민주주의라는 게 참 좃같더라고. 아, 지금도 네 말투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존댓말로 깐족거리는 그 재수 없는 말투 말이야. 알아?”
채 장군이 워커 바닥으로 손톱을 짓이겨도 킹메이커는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미 가해진 고통에 비하면 그 정도는 자극에도 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VIP는 내가 잘 모실게. 너는 그냥 편하게 가면 돼. 골치 아픈 너희 두 새끼만 사라져 주면 이 나라는 아무 걱정 없어.”
채 장군은 뜯겨 나온 킹메이커의 손톱을 멀리 걷어차 버렸다. 이것으로 상황은 모두 평정됐다.
날아가 버린 작전 본부의 통신 시설을 복구하거나 하는 일들은 며칠이 소요되겠지만, 일단 그 단계만 지나면 전군이 일사불란하게 그의 손아귀 안에 들어올 것이다.
킹메이커와 교수는 쿠데타를 일으키려던 세력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고, 그 범인은 아까 죽여 버린 해병대 사령관으로 몰아가면 된다.
의문을 갖는 놈들도 있겠지만, 그래 봐야 진실은 완벽하게 묻히고, 불평은 화장실에서 수군거리는 정도를 넘지 못한다. 어차피 이 두 놈만 없으면 양복쟁이들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오합지졸이니까.
“……두 새끼? 크크크, 크흐흐흐흐~”
이제껏 아무 말도 않던 킹메이커가 한마디를 내뱉고는 미친 듯이 웃어 대기 시작했다. 흐느끼는 것처럼도 보이는 웃음이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알아차린 채 장군이 빽! 소리를 쳤다.
“두 번째 타깃 어디 있어? 한 교수, 이 새끼 찾았나?”
박살 난 테이블 사이를 뒤지며 돌아다니던 대원이 고개를 젓는다. 피떡이 된 양복 차림의 시체들을 몇 구 찾아냈지만, 그중에는 교수가 없다. 화장실까지 샅샅이 뒤져 봐도 마찬가지다.
“흐흐흐흐흐~ 흐흐흐흐~ 쿨럭, 컥! 컥!”
킹메이커의 음산한 웃음이 계속될수록 채 장군의 불안감은 커졌다.
불알 두 쪽처럼 늘 당연히 붙어 다닌다고만 생각했는데, 오늘처럼 중요한 자리에 어째서 이놈 혼자만 모습을 드러냈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교수 어디 있어? 말해!”
채 장군은 킹메이커의 머리통을 잡고 바닥에 찧으며 고함을 질렀다. 손톱이 뜯겨 나간 손으로 채 장군의 손을 할퀴어 대며 킹메이커는 마지막 기운을 다해 웃었다.
“크흐흐흐흐~ 당신 능력으론…… 집권은 무리야.”
퍼억!
화를 이기지 못한 채 장군은 권총을 휘둘러 말을 끝맺기 전에 킹메이커의 대갈통을 후려갈겼다.
퍽― 퍽―
손바닥 껍질이 벗겨질 만큼 여러 차례 힘차게 내려쳐서 카펫이 피범벅이 된 다음에야 채 장군은 헐떡이며 몸을 일으켰다.
“여기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채 장군의 격앙된 감정이 조금 가라앉기를 기다려 소령이 보고했다.
“그래, 후우~ 아무래도 그 새끼는 다른 데 있는 모양이다.”
피투성이 손으로 얼굴을 쓸며 채 장군이 말했다. 모두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간다.
이렇게 되면 작전은 실패다. 정복자가 된 것이라 믿었다가 순식간에 수배자 신세로 전락해 버린 채 장군의 얼굴에 고통이 서린다.
“일단 피하셔야겠습니다. 두 번째 타깃이 생존해 있다면 이 자리는 위험합니다.”
“그렇겠지. 젠장, 너한테 면목이 없구만. 이제부터 플랜 C로 간다.”
“플랜 C?”
이승남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채 장군이 대답한다.
“아래에 있는 해병대 애들부터 싹 다 쓸어서 함께 데리고 간다. 한 명이 아쉬운 마당이니까 요긴할 거야. 숨어서 때를 봐야지.”
***
“으윽~ 쿨럭! 쿨럭!”
교수는 자신을 누르고 있는 소파를 밀어내고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방 안에는 연기가 자욱하다.
양복 소매에 불이 붙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교수는 서둘러 재킷을 벗어 던졌다. 의식을 잃은 채 얼마나 누워 있었던 것일까. 고막에서는 계속해서 위이이잉― 하는 소리가 울린다.
이봐! 이봐! 아무도 없어? 힘껏 외쳤지만 자신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저 위이이잉― 하는 커다란 울림만 계속될 뿐이다.
조금 전까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태양 그룹 간부는 쏟아져 내린 콘크리트 더미에 몸의 절반이 뜯긴 채 눈을 홉뜨고 죽어 있다.
“이런 젠장! 이게 대체 뭐야!”
형광등이 박살 나서 컴컴해진 방 안을 더듬거려 겨우 복도로 빠져나왔다. 복도 역시 사방이 검은 연기로 덮여 있다. 소화기를 든 병사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닌다.
뭐지? 폭격이라도 당한 게 아니라면 이 지경이 될 수가 있나?
밀려오는 어지럼증을 이기지 못하고 교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지직― 지직―
번쩍거리는 형광등을 멍하니 보고 있던 교수의 귀에 조금씩 소리가 되살아나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화 호스 연결해!’. ‘4층에서 터졌어!’, ‘대피시켜!’ 다들 정신없이 떠들어 대고 있다. 합선 때문에 사방에서 불길이 일어난다.
젠장, 저 개새끼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군……. 교수는 이미 죽은 사람을 향해 눈을 흘겼다.
킹메이커와 함께 호텔로 향하려던 때, 교수는 자기가 명령을 해놓고 몇 시간째 방치한 병사들이 떠올랐다.
밤을 꼴딱 새웠던 놈들. 교수는 금방 따라가겠다는 말로 킹메이커를 먼저 보낸 뒤, 전산실로 향했다. 그냥 전화로 해산을 명해도 되는 일이었지만,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복도를 걸어가던 교수를 태양 그룹 간부가 붙잡고 늘어졌다. 아까 회의에서 거론됐던 고양이 방울 GPS를 현장에 꼭 투입하고, 그 정보를 자신의 기업에게도 공유해 달라는 것이었다.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 대가로 무엇을 제공해 줄 수 있는가에 대해 흥정을 하던 중, 갑자기 폭음과 함께 사방이 흔들렸고, 천장에서 돌무더기가 쏟아져 내렸다.
“쉐라톤에도 병력을 보내야 돼! 거기도 지금 교전 중이라고 한다! 폭발도 있었다는데!”
여군 정보 장교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며 뛰어 올라온다. 교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교전? 교전이라니? 제주도에 누가 있어서 교전을 벌인다는 말인가.
겨우 몸을 일으킨 교수는 창틀에 의지해 가며 천천히 서쪽 별관을 향해 걸어갔다.
힘겹게 한참을 걸어서 창가에 선 교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헛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멀리 보이는 쉐라톤은 은빛 유리로 된 자태를 뽐내며 건재해 있다.
“미친년, 어디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와서…….”
담배를 문 교수가 바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쉐라톤의 최상층 스카이라운지에서는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툭, 교수의 입이 벌어지며 담배가 떨어져 구른다.
죽었구나…….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킹메이커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이 나라에서 그런 미친 짓을 저지를 만한 힘을 가진 놈은 단 한 명밖에는 없다.
이승남! 이 미친 새끼!
교수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
바람이 너무 거세져서 도저히 작업을 계속 진행하기가 어려워졌다.
덜컹― 덜컹―
높게 쌓아놓은 펜스들이 강풍에 흔들리며 거슬리는 소리를 낸다. 신입과 제니는 물론, 팔에서 피가 질질 흐르는 보안관까지 합세해 몇 시간 동안 진땀을 빼가며 풀어놓은 펜스들이다.
“아무래도 더 이상 안 되겠어. 지금까지 한 것들만 묶어놓고 일단 바람을 피하자.”
먼지를 피하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며 유빈이 말했다. 이건 그냥 강한 바람이 아니었다. 예보 같은 건 딴 세상 이야기가 돼버린 지금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태풍이, 그것도 꽤나 큰 태풍이 몰려오는 게 분명하다.
두 줄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강철 펜스들이 회오리바람에 말려 날아다닌다면, 그저 귀찮은 정도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큰 부상을 입게 될 수도 있다.
어차피 이런 강풍 속에 펜스들을 연결해서 다리를 놓아봐야 얼마 버티지 못하고 부서질 것이 분명했다.
“뭐로 묶지? 하아~ 일단 좀 잡고 있어. 내가 금방 슈퍼에 가서 끈이라도 가져올…….”
간만에 허리를 쭈욱 펴며 벌판 쪽을 둘러보던 삼식이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억! 저, 저거 뭐야!”
모두는 삼식이와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벌판 위에서 좀비 한 마리가 어기적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거리는 불과 20여 미터. 레이저 와이어와 한참 씨름을 하다가 넘어왔는지 무릎과 오금이 너덜너덜하게 찢겨 나가 있다. 물론 그래서 걷는 속도도 느리다.
“씨, 씨발…….”
겁먹은 신입이 스패너를 떨어뜨리는 속도와 거의 동시에 알루미늄 배트를 집어 든 보안관이 구름다리를 넘어 내달려 나갔다.
사람들이 가까워지자 흥분한 좀비 역시 떨어져 나가기 직전의 다리를 혹사해 가며 속도를 높여 뛰어온다.
보안관은 인정사정없이 놈의 대갈통을 향해 풀스윙을 날렸다.
쩌엉―!
알루미늄 배트가 찌그러지고 좀비는 핑그르르 두어 바퀴를 돌고 나서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몸을 추슬러 일어난다. 한 방만 제대로 들어가면 두개골이 박살 나던 해머와는 파괴력이 다른 모양이다.
그롸아아―
꿇어앉은 놈의 입에서 포효가 울려 나오기 시작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 소리가 다른 동료들을 끌어들일까 봐 두려운 것이다.
“시끄러, 이 개새끼야!”
보안관은 허리 높이로 한 번 더 있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빠각―!
좀비의 목이 반대 방향으로 꺾여 돌아가며 뒤통수가 앞으로 왔다. 이미 죽은 것 같지만,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 그 뒤통수를 재차 후려쳤다.
뻐억―!
얇은 뼈가 빠개지는 소리. 좀비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진다.
“우와, 놀래라. 도대체 왜 아무도 몰랐지?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삼식이가 가슴을 누르며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도 보초를 서지 않았으니까. 다들 벌판 쪽으로 등을 진 채 경전철역의 펜스 볼트를 푸는 일에만 너무 열중하고 있었으니까.
“후우~ 이 새끼는 어째서 이 멀리까지 온 거야? 다들 불난 주변에 모여드는 거 아니었어?”
이마의 식은땀을 훔치며 보안관이 중얼댔다.
“펜스를 뚫어놓은 곳이 있으니까…… 그리로 빠져나온 것 같아. 워낙 많이 뭉쳐들 있었잖아. 그렇게 저희들끼리 밀고 밀리다가 레이저 와이어 위에 넘어졌는지도 모르고. 어쨌든 한 마리가 있다는 건…….”
말을 하던 유빈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한 마리가 보였으니 보이지 않는 곳에 몇 마리가 더 있다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벌판 위에 얼마나 더 많은 놈들이 돌아다니고 있을지, 또 그놈들이 다른 무리들까지 끌어들여서 이쪽으로 몰고 올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복지 센터와 경전철역 사이의 벌판은 그간 그들에게 있어 청정 지역이었다. 한 마리의 좀비도 본 적이 없어서 안심하고 다닐 수 있던 곳. 그런데 이 좀비가 방금 막 그런 곳을 횡단해 그들의 코앞까지 와 있었던 것이다.
“찜찜해서 안 되겠어. 벌판 쪽을 한 바퀴 쫙 돌아야겠다. 유빈아, 가자. 네가 운전 좀 해.”
보안관이 코롤라 앞으로 걸어가며 손짓을 한다.
유빈은 삼식이에게 제니와 신입을 데리고 3층 집으로 들어가 있으라는 말을 남긴 뒤, 자동차에 올랐다. 주인 여자의 시체가 욕실에 들어 있기는 해도, 복도의 방범 문이 워낙 튼튼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도피처이다.
“어, 저기! 저기 보인다. 저 새끼 잡자.”
풀밭 위를 달린 지 몇 분 되지 않아 두 번째 좀비가 눈에 들어왔다.
“꽉 잡아!”
유빈은 좀비를 향해 방향을 튼 뒤, 속도를 올렸다.
그와―
자동차를 향해 고개를 돌린 좀비가 몸을 날리기도 전에 코롤라는 시속 7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좀비의 무릎을 덮쳤다.
콰직―
왼쪽 범퍼와 좀비의 무릎뼈가 동시에 작살이 났다. 차에 치인 좀비는 튕겨지듯 날아올랐다가 다시 풀밭 위로 곤두박질쳤다.
“다시 돌려! 끝장을 내야 돼!”
흥분한 보안관이 소리를 지른다. 유빈은 입술을 꽉 다물고 핸들을 꺾어서 U턴을 했다. 두 다리와 여러 군데의 뼈가 박살 난 좀비는 기묘한 자세로 네 발을 사용해 빠르게 기어오고 있다. 한 번 더 깔아뭉개야 한다.
위이잉―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엔진이 앙탈을 부린다. 그 속도 그대로 좀비를 들이받았다.
터엉―
사람 체중만큼의 충격이 핸들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는 동안, 머리가 박살 난 좀비가 뒤쪽으로 튕겨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보안관이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배트를 들고 내렸다.
부우웅―
알루미늄 배트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 그리고 곧바로 좀비의 머리통은 부서졌다. 정수리가 쪼개지며 목뼈가 꺾이고, 압력을 이기지 못한 눈알이 튀어나온다. 수십 번을 보았지만, 늘 끔찍한 광경이다.
“가자! 이 방향으로 좀 더 직진해 봐. 소리가 들린 것 같아.”
좀비를 끝장내고 돌아온 보안관이 앞을 가리켰다. 그다음은…… 계속 같은 행동의 반복이었다.
한두 마리, 혹은 서너 마리씩 떨어져 나와 배회하던 좀비들을 발견하고, 냅다 속력을 올려 들이받고, 뼈마디를 작살내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수준이 되면 보안관이 내려서 야구 배트로 정리를 한다.
40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러는 동안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비는 점점 굵어져 폭우로 바뀌었고, 코롤라의 범퍼와 펜더는 엉망으로 훼손되어 버렸다.
헤드라이트는 깨지고, 사이드미러에도 금이 갔으며, 고속으로 시체를 깔아뭉개려다가 하마터면 전복될 뻔한 위기도 두어 번 겪어야 했다.
“하아, 하아~ 뭐 이렇게 많아? 젠장, 앞으로도 한참 돌아다녀야겠네.”
막 좀비 세 마리를 더 끝장내고 돌아온 보안관이 조수석에 앉으며 투덜거린다.
보안관의 머리카락도, 옷도, 조수석 시트도, 우글쭈글해진 야구 배트도 모두 아주 흠뻑 젖어 있다. 계속 배트를 휘둘렀던 보안관의 숨이 가빠졌다. 유빈도 한숨을 쉬었다.
지친다. 좀비들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계속해서 사람 모양을 한 것들을 치어 죽이고 그 충격을 고스란히 몸으로 느끼는 작업이 반복되면서 머릿속 어느 한구석의 퓨즈가 픽― 하고 끊어지는 것 같다.
이제는 불과 20여 미터 앞에 있는 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시계가 불량해졌다. 속도를 최고로 해놓은 와이퍼가 아무리 열심히 움직여도 샤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쏟아붓는 비를 이기지는 못했다.
“뭐해, 유빈아? 출발해.”
유빈이 흘러내리는 물로 뿌예진 차창을 멍하니 보고 있자, 보안관이 씩씩거리며 재촉을 한다.
“하~ 보안관, 이제…… 그만하자.”
유빈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말했다.
뭐? 보안관이 묻는다. 몇십 분 동안이나 피를 보고 흥분해 있었기 때문에 목소리가 높아져 있다.
“이제 그만하자니? 뭘? 이 새끼들 죽이는 거? 그러면 우리가 죽자고?”
“그게 아니야. 이렇게 사냥하고 다니는 거, 이제 그만해. 어차피 좀비들이 사방에 널렸는데 한두 마리 더 죽이고 다닌다고 해서 표도 안 날 것 같아. 무의미한 일이야.”
“약한 소리 하지 마, 인마! 바로 근처까지 이 새끼들이 돌아다니는데, 그러면 가만히 보고 있자는 말이야? 벌판 위에 있는 놈들은 다 죽여놔야 돼! 그래야 우리가 안전해!”
“몇 마리를? 어차피 한번 방향을 이리로 잡았으니까 저 새끼들은 계속 올 거야. 수천 마리를 다 때려죽일 수는 없잖아.”
“왜 못 죽여! 포기하지만 않으면 결국엔 다 죽일 수 있어!”
보안관이 소리를 버럭버럭 지른다. 그는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그 마음은 유빈도 이해한다. 어제 그 난리를 치고 죽을힘을 다해서 수백 마리를 태워 죽였더니, 오늘은 그 몇 배나 되는 놈들이 몰려왔다.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서 제니와 웃음 짓는 매일을 보내고 싶었을 텐데, 그 바람이 다 물거품이 돼버렸다. 게다가 이놈들이 이번에는 번화가 쪽으로까지 뻗어오려 한다.
누구에게나 속상한 상황이지만, 자신이 모두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다고 믿는 보안관에게는 특별히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울분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좀비 몇 마리의 다리뼈를 분지르고, 대갈통을 쪼개는 것으로 해소해 봐야 결국 소모되는 것은 이쪽의 체력과 감수성일 뿐이다.
1킬로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 수천 마리가 모여든 시점에서 이미 안전은 멀리 물 건너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