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폭풍 속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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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폭풍 속으로 (1)
2022.01.12.
채 장군의 부하 장성들은 이 총장의 뒷모습을 보며 분함을 못 이겨 부르르 떨었다.
“뭐어? 긍정적으로 검토를 해? 밤송이를 까라면 까겠습니다 해도 모자랄 판에 감히 뉘 안전이라고……. 하아~ 저, 저걸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군님?”
그러거나 말거나 채 장군은 초연한 표정으로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잠시 침묵했다.
이 모든 사달의 원인은 이 외딴곳에 긴급 대책 본부를 차렸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셈이다. 그러니 탓하려면 미리 알아채고 대처하지 못한 그 자신을 탓해야 한다.
4․3 사건 이후 근 70년이 되어가도록 제주도에는 육군이 배치되지 않아 왔다. 해안 경비는 전경이 맡았고, 강정 기지가 완공되기 전까지는 공군과 해병 소수만이 배치되어 있었다.
일본을 가상 적국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륙전에 대한 대비는 제로에 가까웠던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제주는 전국 8도에서 유일하게 육군의 파워가 미치지 않는 땅이다. 불과 보름 전까지는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정치, 경제가 모두 반도 내에 집약되어 있고, 3군 사령부까지도 한자리에 몰아넣어 뒀기 때문에 육지를 지배하는 자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경조차 쓰지 않던 이 조그만 섬에 들어온 것이 채 장군을 옭아매는 감옥이 되어버렸다.
“……어쩌겠어.”
채 장군이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이, 운용할 병력이 없는 장군이니까……․. 후우우~”
킹메이커는 철저했다. 하루에 이 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육군 병력을 블랙 호크 네 대로 제한했고, 그나마 북쪽 해안에 내려야 하며, 한 번에 두 대 이상씩은 안 된다.
그리고 긴급 물자 수송 같은 임무를 마치면 들어왔던 병력들은 고스란히 다시 뭍으로 돌아가야 한다. 긴급 물자라야 구조한 정치인들이나 고급 식재료 따위가 전부지만․…….
좀비 사태가 벌어지고 사나흘의 시간이 흐른 뒤부터는 감시의 수준이 한결 더 철저해졌다.
슬쩍 떠보기 위해 대형 수송 헬기가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이쪽으로 기수를 틀기라도 하면 곧바로 이지스함에서 감지하고 경고를 보낸다.
물론 이쪽에서 떠나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된다. 이런 이유들로 지금 제주도에는 육군 사병보다 장성이 더 많다는 말까지 나온다.
“혹시 오늘 회의에서 무슨 사달을 내려는 것 아닐까요, 장군님? 저놈들이 갑자기 이렇게 소집하는 꼴이 아무래도 영……․.”
참모 하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속삭인다. 군 명령 체계 내에 대규모 물갈이가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이기는 하다. 숙청 대상 1호일 게 분명한 채 장군은 고개를 저으며 킹메이커를 가리켰다.
“저기 윤 장관이 있는 한, 이 자리에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 저놈은 겁이 많아서 혹시라도 피를 흘려야 하면 늘 빠져 버리거든.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슬슬 들어가자.”
채 장군은 대리석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담배를 비벼 끄고 일어나 컨퍼런스 룸 안으로 들어갔다.
40여 명이 벌려 앉은 널찍한 회의실 내부에서는 벌써 보란 듯이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육군 장성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식의 태도다.
“지금 보시는 이것이 컨트롤러입니다. 처음 동작을 개시할 때만 이 기기로 명령을 입력하면 그 뒤에는 GPS와 적외선 센서를 이용해서 아군을 따라 움직입니다. 100킬로그램의 장비를 싣고 하루 만에 15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발표를 하고 있는 것은 국방과학연구소 ADD에서 파견 나온 연구원이었다.
그가 설명하는 물건은 충견이라 불리는 군용 4족 보행 로봇으로, 미군이 운용하는 무인 수송 로봇인 알파 독을 모델로 삼아 2010년대 초반부터 개발에 착수한 것이다.
그래 봐야 기술적 한계 때문에 미제 오리지널의 절반에 해당하는 속도로 절반의 무게밖에는 나르지 못한다. 채 장군을 알아본 연구원이 꾸벅 목례를 한다. 채 장군이 고개만 까딱하고 자리에 앉자 연구원은 다시 설명을 재개했다.
“현재까지는 어디까지나 전장에서 물자를 수송하고 병사들의 개인 적재량을 분담하는 지원의 용도였지만, 전투의 대상이 인간에서 변종으로 바뀜으로써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연구소에서는 연속 철야 작업을 통해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이루어냈습니다. 자, 처음 인사드립니다. 전투 4족 보행 로봇 관창입니다.”
장황한 설명을 하며 중앙으로 걸어 나온 연구원이 흰 장막을 벗겨내자, 황소만 한 크기의 기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컨트롤러의 조작에 따라 기계는 짧은 보폭으로 대여섯 걸음을 뗀 후 멈췄다.
몇몇이 가벼운 박수를 치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시큰둥한 얼굴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연구원은 페이스를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프로토타입 개발을 완료하고 이곳에서 먼저 선보이기 위해 여섯 대를 긴급히 공수해 왔습니다. 관창의 최대 장점은 살아 있는 병사들의 지원이 없이도 도로에 그어진 선을 따라 스스로 적진에 쇄도하여 근접 거리에서 적들을 섬멸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구형 모델의 화물 적재 공간에 두 정의 각기 조준 가능한 K―3 기관총과 4,800발의 실탄을 적재하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목표로 상정하여 사격합니다. 또는 50킬로그램의 폭발물을 탑재한 채로 좀비 무리의 한가운데까지 접근한 후, 자폭할 수도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군에 몇 차례나 돌진하여 전황을 역전시킨 관창이라는 이름처럼 이 전투 4족 보행 로봇은 수세였던 작금의 전세를 한 방에……․.”
“구형이 100킬로그램까지 적재할 수 있었는데 신형은 50킬로그램을 싣는다고? 왜 그런 무게 차이가 나? ADD에서는 그런 걸 업그레이드라고 부르나?”
신나게 떠들던 연구원은 교수의 지적 때문에 말이 끊겼다.
“아, 그건…… 첨단 조준 장비와 센서, 그리고 신형 보조 모터 등의 중량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관창은 어디까지나 독자적인 전투 수행이 가능한 일발 역전 병기로․…….”
연구원이 대답을 마치기도 전에 교수는 또 다른 걸 물었다.
“조준해서 기관총을 쏠 수 있다고 했잖아? 드론처럼 원거리에서 조종하는 건 아닐 테고, 도대체 뭐로 목표를 분간한다는 거야?”
“근접 초음파 센서입니다. 단순히 무인 주차 시스템 등에서 사용되는 기술을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기에 움직임을 감지하는 알고리즘을 더했습니다. 따라서 고정적인 사물, 예를 들어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나 건물, 도로 표지판 등은 목표에서 제외됩니다.”
“한마디로 가만히 있는 건 안 쏜다는 말이잖아. 뭐, 좋아. 놈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엄청 열심히 움직이기는 하니까. 그런데 근접이라는 게 대체 얼마의 거린가?”
“초음파 빔 앵글을 좁히면 직진성은 좋아지지만, 대신 감지 범위가 좁아집니다. 기관총 한 정이 각도를 바꿔가며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저희 연구소에서는 각 총에 두 개의 센서를 부착하는 것으로…….”
“아, 왜 자꾸 말을 길게 늘어뜨려? 몇 미터냐고? 목표물 인지 가능한 거리가?”
“……8미터입니다.”
“8미터? 지금 8미터라고 했어?”
교수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투로 짜증을 부렸다.
“그러니까 다시 정리를 한번 해보자고. 저 관창인지 뭔지가 좀비 떼를 찾아서 걸어가. 그것도 험로는 안 되고, 선이 그어진 도로 위에서만 움직일 수 있어. 그러다가 8미터 안쪽에 뭔가 움직이는 게 있으면 사격을 시작해. 그런데 좀비 떼랑 10미터만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앞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쳐서 가는 거야. 한마디로 이건 바짝 붙기 전까지는 아무 의미도 없는 기계라는 말이지. 그렇지? 어군 탐지기보다도 못한 거 아니야, 이거?”
“기술의 차원이 다릅니다. 그리고 일단 근접하고 나면 두 정의 경기관총이…….”
교수는 손을 들어 연구원의 말을 끊고는 입구를 지키고 서 있던 해병 둘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이, 너, 너. 이리 와봐. 저거 옆에 서.”
그러고는 다시 연구원에게 관창을 가동시켜 보라고 했다. 연구원은 어쩔 수 없이 컨트롤러를 주물렀다.
위잉― 위잉―
관창은 밖으로 꺾인 네 발을 움직여 걷기 시작했다.
“자, 너희 이제 저 위에 매달려 봐.”
네?
갑작스러운 명령에 해병들이 망설이자 교수는 다시 한 번 명령을 내렸다.
“저 기계 위에 매달려서 당겨보라고. 왜? 무서워?”
교수의 도발을 받은 해병들은 곧바로 관창의 화물 적재 칸 위로 뛰어올랐다.
적재 표준량보다 무거운 무게가 한꺼번에 한 방향으로 실리자 관창의 중심은 금세 왼쪽으로 기울었다. 그런 상황에서 두어 발짝을 내딛더니, 다리가 휘청대다가 이내 중심을 잃고 넘어져 버린다.
위잉― 위잉―
네 발이 허공에서 버둥거리는 관창의 모습은 흡사 싸구려 장난감과 비슷했다. 연구원도 민망한지 얼른 컨트롤러로 시동을 껐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교수가 관창의 후면을 구둣발로 걷어차며 소리를 지른다.
“장장 5년이야! 그리고 들어간 돈만 2,670억이었어! 2,670억을 쏟아부어서 나온 게 이거야? 사람 둘도 지탱 못 하는데, 뭐 어쩌고 어째? 근접해서 움직이는 표적을 섬멸해? 어떻게 섬멸을 한다는 거야? 좀비들이 이놈만 보면 물러나서 길을 터줄 것 같은가? 응? 젠장, 긴급하게 보고할 것이 있다고 해서 가져온 게 이거야? 내가 하던 일도 멈추고 급히 참석한 회의의 이유가 이거였냐고?”
“허허허, 한 교수님도 참…… 진정하시지요. 뭐, 젊은 사람들이 서두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죠. 게다가 저기 계신 채 장군님께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셨던 사업이기도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거 연구개발 예산이 어딘가로 새어 나가지 않았나 하는 느낌은 저에게도 드는군요. 엄정해야 할 예산집행이니까 만약 유용의 혐의가 있다면 그 부분은 따로 감사를 하든지 하면 되겠고요.”
교수를 진정시킨 것은 킹메이커였다. 하지만 킹메이커는 ‘감사’라는 단어를 길게 끌어 발음하며 채 장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흠, 채 장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헛기침을 하며 그 시선을 무시했다.
국방과학연구소 예산 사용을 가지고 나를 치시겠다? 좋아, 마음대로 해 봐. 하지만 장부나 자료가 남아 있어야 감사든 뭐든 하는 거지…….
채 장군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킹메이커는 또 특유의 말투로 이죽거린다.
“허허, 하지만 이런 때에 서류 감사를 할 여유 같은 건 없겠지요. 결국 죄지은 놈들은 이런 세상이 와서 쾌재를 부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채 장군님?”
“크흠, 뭐, 똑똑하신 분들이 잘 알아서 하시겠지요. 저같이 무식한 놈이 뭘 알겠습니까?”
채 장군은 굳이 억지웃음을 짓지 않았다. 웃어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건 그렇고…… 채 장군님, 또 서울에서 건물을 부쉈다면서요? 허허, 지난번에도 강남역 사거리에서 대형 폭발을 일으켜서 한 블록을 거의 날린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왜 육군들은 그렇게 조심성이 없는 건지 모르겠네요. 폭발물 사용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실탄으로 대응하라는 명령이 잘 전달이 안 된 겁니까?”
계속해서 긁어 댄다. 이번에는 생존자들을 이송할 때 유탄을 발사했던 걸 문제 삼고 있다.
그가 더 이상 사유 재산 보호에 연연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사실이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게 도무지 성미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생존자들 따위 어떻게 되든 지금 당장 네이팜으로 경기도 북부부터 싹 불태워 밀어버린 후에 탱크로 남진하고 싶다.
아무리 사방에서 곡소리가 나도 북괴의 남하를 핑계로 삼으면서 전방의 병력들을 전부 동원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 한 방을 위한 준비였으니까. 채 장군은 온화한 얼굴로, 하지만 단호한 말투로 대꾸했다.
“제주도에 계신 분들이야 전혀 실감을 못 하시겠지만, 저희 애들은 지금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아무리 구치소에서 수감자들을 차출해 건설 작업을 돕게 시킨다고는 하지만, 철책을 치고 수송차를 모는 군인 애들은 여전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시답지 않은 건물 몇 개 보존하자고 걔들을 싹 다 좀비 밥으로 주자는 말씀은 아니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시답지 않은 건물 몇 채가 아닙니다. 저희가 집계한 바로는 어제까지 군에서 민간 기업에 입힌 재산 피해가 3조 4천억 원이 넘습니다. 물론 수도권 내에서만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우측 말석에 앉은 양복쟁이 하나가 서류철을 뒤적이며 끼어들었다. 채 장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넌 어디 소속이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태양 그룹 재무실 제2차장입니다. 민관 합동 대책 본부 경제 고문 자격으로 이 회의에 참가했습니다.”
아나, 이거…….
채 장군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양복쟁이를 향해 명패를 집어 던졌다.
“당장 안 나가, 이 개새끼야? 여기가 어디라고 잡상인 새끼가 버르장머리 없이 기어 들어와서 주둥이를 나불거려? 고문? 야! 뭐해! 당장 저 새끼 안 끌어내고!”
명령이 즉각 수행되지 않은 것 때문에 더 흥분한 채 장군이 옆자리의 명패까지 들어 올리자 해군참모총장이 마지못해 눈짓을 했고, 해병들은 그제야 양복쟁이를 데리고 나갔다.
“허허, 채 장군님. 암만 그래도 잡상인이라뇨. 민 없이는 군도 없다는 걸 잊으시면 안 되겠죠. 우리가 이렇게 모이는 것도 다 국민들을 위한 것 아니겠어요?”
킹메이커가 빙글거리며 딴죽을 걸어온다. 채 장군도 곧바로 받아쳤다.
“그렇게 민이 소중하신 분들이 대피소 만드느라 건물 몇 개 부서진 걸 걱정하시는군요. 몰랐습니다. 근데 그 잘난 민간 연구소인지 뭔지에서 열흘 정도만 지나면 좀비들의 운동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 예상되니 일단 기다리라고 하시던 박사님들은 다 어디로 가셨습니까? 제가 직접 헬기에 태워서 강남역 사거리에 모셔다 드리려고 했는데…….”
이 순간을 계기로 해서 안 그래도 껄끄럽고 냉기가 흐르던 회의의 분위기는 더욱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리고 그 살얼음처럼 얄팍한 표면 아래로는 언제 모든 것을 태울지 모르는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다음 발표자로는 공군의 대령 하나가 나섰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전략은 간단합니다. 그리고 비용도 그리 많이 들지 않습니다. 좀비들의 운동 성향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런 후, 대령은 태블릿 컴퓨터 크기 정도의 장비 하나를 꺼내 보였다.
“여기에는 GPS와 간단한 송신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거의 배터리입니다. 아시다시피 좀비들은 원을 그리면서 이동합니다. 상공에서 좀비들의 무리를 관찰한 파일럿들이 일관되게 보고해 온 사항입니다. 가장 가운데에 커다란 규모의 원이 톱니바퀴처럼 돌고, 그 주변에 보다 적은 규모의 좀비들이 작은 원형으로 모여 위성처럼 돕니다. 그리고 이것이 전체적으로 회전하면서 이동합니다. 문제는 이 거시적인 이동의 궤도가 대체적으로는 원형이지만, 예외의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 군은 언제 어느 지점에 얼마나 큰 규모의 좀비 떼들이 위치해 있는가 하는 점을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예측을 하고는 있지만 빗나가는 일이 많아서 큰 피해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이동 중에 전사자가 느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너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야? 육군이 무능하다고 하는 그런 소리야?”
갑자기 발끈한 채 장군 때문에 공군 대령은 당황해서 얼굴을 붉혔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장군님. 제아무리 철저히 대비되어 있는 병력들이라고 해도 예기치 않은 습격에는 약점을 보인다는 원론을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이 전략은 창끝처럼 날카로운 아군의 공격력을 적재적소에 투입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장치…….”
대령은 다시 한 번 장비를 들어 올렸다.
“저는 이 장치를 고양이 방울이라고 부릅니다만, 이 고양이 방울을 좀비 개체에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방울을 부착한 좀비를 헬기와 같은 수송수단을 이용해 가장 중앙에 위치한 큰 규모의 좀비 원 속에 투입시킵니다. 모든 대규모의 좀비 집단 속에 이렇게 하나씩의 방울을 달아둔다면 우리 군에서는 놈들의 이동 경로와 방향, 속도 등을 모두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향후 진로까지도 예측이 가능합니다. 물론 그러면 엄청난 전략적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화면을 통해 보실 것은 제가 파주에 연락해서 미리 방울을 달아놓은 좀비들의 최근 3일간 움직임입니다. 규모는 오, 꽤나 대규모에 속하는 무리입니다.”
스크린 위에는 파주와 일산의 지도가 떠올랐고, 곧 삐뚤빼뚤한 빨간 선이 거리를 아무렇게나 누비고 다닌 기록이 그 위에 겹쳐졌다. 파주 출판 단지에서 출발하여 일산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고 마지막에는 고양까지 도달해 있었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놈들은 거시적 경로마저도 원을 그립니다. 지금 여기에서는 단순히 지그재그인 선처럼 보이지만, 이것을 확장시킨다면 서울 북부와 포천까지가 포함된 커다란 원의 형태가 된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이 규모 오짜리 무리들은 지금 시속 4킬로미터의 평균 속도로 며칠 동안에 걸쳐 서울을 향해 동진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