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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디아스포라 (4) (133/449)


133. 디아스포라 (4)
202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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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식이는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고 제니에게 말했다.

“그것 봐. 지금도 수백 명이 아니라 수백 마리라고 했지? 사람이 아니라는 걸 너도 잘 알고 있는 거야. 그리고 그건 동물도 아니야. 숨도 안 쉬고, 통증도 못 느끼잖아. 그러니까 어제 네가 몇 마리를 죽였든 간에 그건 그냥 뱅어포 한 장 뜯어 먹은 것보다도 죄가 없는 거라고. 너 뱅어포 먹으면서 죄책감 느껴? 아, 뱅어포는 그래도 살아 있던 거니까 꿈틀이 젤리라고 할까?”

“어휴~ 몰라요. 왜 역겹게 좀비랑 먹는 걸 연결시켜요? 전에도 카레 먹을 때 그래놓고.”

말 안 할 거라고 해놓고서 제니는 삼식이와 티격태격 잘도 싸워 댄다. 뭐, 어쨌든 그녀가 조금은 진정이 된 것 같아서 보안관과 유빈은 안도했다.

어제 제대로 화염병을 날리지 못했을 때는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고, 불붙은 채 달려들다가 케이블에 막혀서 버둥거리는 좀비들의 모습은 끔찍했지만, 그래도 이젠 다 끝났다.

이제 다시 복지 센터로 돌아가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

비록 창문도 없고, 아침마다 모래를 채운 플라스틱 통을 두드리며 일을 봐야 하는 곳이지만, 언젠가부터 거기가 집인 것처럼 느껴진다. 때가 꼬질꼬질한 스티로폼 침대조차 그립다.

번화가 골목에서 밤을 보내는 건 왠지 불안하다. 언제 또 다른 좀비들이 들이닥쳐 길을 꽉 메운 채 행진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차 가지고 갈까?”

경전철역을 지나 벌판으로 들어섰을 때, 철책 앞에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코롤라와 오피러스를 보면서 보안관이 말했다.

어젯밤 여기까지 끌고 와 세워둔 것이다. 코롤라를 보자마자 모두의 머릿속에는 파스를 뿌려봐도 완전히 지워지지를 않던 그 시체 냄새가 떠올랐다. 웁, 가벼운 욕지기가 인다.

“난 걸어갈래. 오랜만에 시원한 공기도 쐴 겸.”

유빈이 손을 들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모처럼 청량한 바람을 맞으며 걸어갈 수 있다는 게 축복처럼 느껴졌다.

아침 이슬이 맺힌 풀밭의 향기도 반갑다. 돌이켜 보면 요즘은 거의 매일을 악취에 둘러싸여 살았으니까.

“후~ 하~”

그래서 그들은 다들 가슴을 쫙 펴고 폐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천천히 걸었다.

길거리에 타 죽은 시체들이 수백 구나 널려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납덩이로 누르는 것처럼 무거워지지만, 그래도 집을 안전하게 지켜냈다는 게 중요하다.

이제 좀비들에 대한 걱정 없이 다시 웃고, 떠들고, 밥을 먹을 수 있다. 그쪽 길로 굳이 내려가지만 않는다면 시체들과 마주할 일도 없을 것이다.

“복지 센터 도착하면 팔레트 잘라서 사다리부터 만들어야겠네. 내가 삼식이랑 할 테니까, 보안관 너는 좀 쉬어. 상처 덧나겠다.”

유빈의 말에 보안관은 슬쩍 자신의 팔을 봤다. 제니를 구하기 위해 유리창을 깨다가 난 상처는 어제의 노동 때문에 다시 벌어져 있었다.

대충 소독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두었지만, 어제는 다들 너무 지쳐서 제대로 치료를 하지 못했다. 제니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보안관에게 말했다.

“그래요, 오빠. 약 바르고 제가 반창고 다시 붙여줄게요.”

“후우우~ 어제로 날을 잡은 게 다행이었어. 오늘처럼 바람이 많이 불었으면 아마 우리까지 홀라당 타버렸을지도 몰라. 아, 터보 라이터라도 하나 장만해야지, 이거 원 불이 자꾸 꺼져서…….”

삼식이가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불을 붙이는 데 꽤 애를 먹어야 했다. 연기는 입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춤을 추며 뒤로 날아가 버렸다.

“잠깐만…….”

10분여를 걸어 야트막한 경사의 8부 능선 정도에 도착했을 때, 유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에 제니가 마스크를 벗고 처음 인사를 하던 바로 그 장소다.

“이상한데, 이거? 흐으음~ 냄새 너무 심하지 않아?”

유빈의 말을 들은 나머지도 킁킁대며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보안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에 날리는 제니의 머리카락 냄새를 맡느라 미처 모르고 있었지만, 확실히 바람 속에 악취가 실려 있다. 좀비에게서만 나는 냄새다.

설마…… 설마 전부 다 타버리지 않고 생존한 놈들이 있는 걸까?

모두의 얼굴에 두려움이 스친다.

아니야, 그럴 리가…….

그렇게 쾅쾅, 터지면서 사방이 훤해질 만큼 오랫동안 불이 타올랐는데, 그런 지옥 속에서 멀쩡하게 남은 놈이 있을 리가 없다.

“아무래도 이상해…… 여기 있어봐.”

모두를 대기시킨 후, 유빈이 자세를 낮추고 구릉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전방을 살핀다. 그러고는 곧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하나도 안 죽었잖아, 이거! 오히려 더 늘어난 것 같은데?”

망원경을 꺼내 들고 바로 옆에 다가온 삼식이가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복지 센터 앞에는 수백 마리의 좀비들이 모여서 북적이고 있다. 하지만 전부 어디에선가 새로 온 놈들이다. 불에 탄 흔적 없이 멀쩡한 피부와 옷이 그 증거였다.

녀석들은 오른 방향의 도로, 즉 어제 유빈 일행이 길을 막고 불을 질렀던 지점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양이 얼마나 되나 싶어서 한참을 지켜봐도 도무지 행렬이 끝날 기미가 없다. 게다가 이미 도로 아래로 내려가 있는 녀석들은 또 얼마나 될는지…… 아마 천 단위,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산을 넘어온 놈들도 있나 봐.”

“어떻게 알아?”

“산에 설치해 놓은 트랩에 좀비들이 여럿 걸려 있어.”

난감하다. 유빈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풀 위에 엎드려 복지 센터를 바라보는 일행들 전부의 입에서 안타까운 한숨이 새어 나온다.

뭐가 문제였을까? 왜 하룻밤 만에 저렇게 많은 좀비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걸까? 불에 타 죽은 동료들의 복수를 하려고? 아니, 놈들에게 그만한 지능은 없다. 그렇다면 본능?

본능이라…….

삼식이의 재떨이 주변에서 서성이던 놈들이 있던 게 기억난다.

어쩌면 불을 지른 게 잘못이었을까? 좀비들이라는 건 탄 냄새를 좋아하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히지만, 확실한 건 한 가지뿐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집처럼 여기던 공간은 더 이상 그들에게 안전한 은닉처가 아니다. 이제 좀비들의 요새가 되어버린 것이다.

“돌아가자……. 이제 복지 센터는 버려야 돼.”

유빈은 최대한 침착함을 가장하며 말했다. 하지만 떨리는 그의 목소리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단순히 거주 공간이 바뀐다거나, 혹은 조금 후퇴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좀비들의 행진이 매일 방향을 바꾸고 있으니, 저기에 있는 수백 마리가 언제 또 번화가 쪽으로 그 발길을 돌릴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또는 그 역의 경우로 시내에서 몰려온 좀비들이 번화가를 점령해 버릴지도 모른다.

“이, 이제 어떻게 해야 돼요, 우리?”

번화가를 향해 걸음을 서두르던 중 제니가 묻는다. 어제오늘 살이 빠져 더 커다래진 그녀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 서려 있다.

“일단 번화가로 돌아가서 숙소를 정해야지. 이슬 맞고 자는 일은 더 못하겠으니까. 그리고 철책을 뜯어다가 옥상마다 연결해서 혹시 좀비들에게 둘러싸이면 달아날 수 있도록 해둬야 돼. 그다음에 슈퍼에서 가능한 한 많이 음식을 가져와 쌓아놓아야 해.”

“둘러싸인다고요?”

“아니, 그, 그건 그냥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거야. 그런 일이 없도록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유빈은 자기 자신도 믿지 않는 헛된 약속을 했다.

“공구도 거의 다 복지 센터에 있는데…….”

보안관이 야구 배트를 어깨에 걸치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이젠 해머도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둔 것 하나뿐이다.

“가방 안에 넣고 다니던 걸로 아쉬운 대로 해결해야지, 뭐. 일단 스패너만 있으면 철책은 뜯을 수 있으니까…….”

웅얼거리며 뒤를 돌아보던 유빈은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어느덧 풀밭에서 벗어난 그들은 산책로까지 와 있었다.

손을 짚으며 일어나려는 유빈의 눈에, 바닥에 적혀 있는 숫자 11,200이 다시 들어온다. 일전에도 한 번 보았던 숫자다.

근데 대체 이게 뭐지…… 하는 궁금증이 뇌리에 들어오기 직전, 벌써 역 안으로 들어간 보안관과 삼식이가 철책 한 칸을 흔들며 물었다.

“이것부터 뜯는다?”

유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야, 보안관. 넌 일단 좀 쉬라니까…… 내가 할게!”

당장 보안관의 체력이 걱정된 유빈은 머릿속의 숫자를 뒤로하고 친구들을 향해 달려갔다.

***

제주 강정 해군 기지의 한 작전실에서는 한 교수가 서너 명의 군인들과 함께 스크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어제 새벽 갑자기 영감이 떠오른 교수가 긴급하게 자료들을 긁어모으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똑같은 행동을 하는 중이다.

테이블 위에 어지럽게 널린 음료수 병들과 포도주 병, 그리고 아무렇게나 비벼 끈 꽁초의 산이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방 안에 있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건 아냐. 다음 걸 돌려봐.”

교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은 군인이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러자 전방의 대형 화면에 또 다른 밤바다 영상이 떠올랐다. 8배속으로 돌려봐도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수백 개의 데이터가 모두 그랬던 것처럼…….

컴퓨터 앞의 전산병은 몰래 입을 가리고 하품을 했다.

저 양복 입은 작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비슷한 영상만 계속 돌려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젯밤부터 교대도 못 하고 계속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그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우리가 확보한 것 중에서 바다가 나오는 영상은 다 긁어모아.”

어제 새벽 그에게 떨어진 명령은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와 동료들은 생 노가다를 뛰며 데이터베이스에서 영상들을 검색하고, 그것을 따로 폴더에 저장했다.

6월 중순 이후, 해안 감시선이 찍었던 순찰 영상부터 민간 여객선에서 전송한 영상까지 일절 예외를 두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이미 예전에 정보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들까지도 전부 포함하고 나니 그 양이 엄청났다.

하지만 김성진이 틀어주었던 영상, 그러니까 해경들이 낯선 배를 탐색하다가 처음 좀비에 물렸던 그 사건의 영상은 거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채 장군이 사본을 만들면서 아예 원본을 삭제해 버렸기 때문이다.

“야, 잠깐. 멈춰봐. 아니, 리와인드해. 48분 20초 지점으로.”

살짝 졸며 클릭질을 하고 있던 병사는 그 명령에 깜짝 놀라 깨서 재빨리 뒤로 가기를 눌렀다.

“그래. 거기야, 거기.”

교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눈을 번뜩이며 화면에 집중했다. 병사가 뭔가 싶은 마음에 모니터를 유심히 봤지만, 개뿔 대단할 건 없었다.

백령도 주변에서 NLL 이북을 찍은 것이었는데, 작고 허름한 배 한 척이 파도를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게 전부였다. 녹화된 날짜는 7월 2일로 표기되어 있다.

“저거 키워봐. 화면 확대할 수 있지?”

둥둥 떠다니는 배를 한참 더 구경하던 교수가 말했다.

“예. 하지만 화질이 많이 떨어집니다.”

“최대한 해상도를 높여봐. 배를 중심으로 해서.”

이제 제발 그만하자. 지긋지긋하다…….

병사는 속으로 투덜대며 기계를 조작했다. 수십 배로 화면을 확대하니 이제 도트 하나가 손톱 크기만 해졌다.

“거기서 멈춰.”

그렇게 말한 교수는 벌떡 일어나서 대형 모니터 앞으로 걸어갔다. 눈을 아주 가까이 대고 한참 동안 배를 바라보던 교수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야, 이 글씨 뭐라고 쓴 것 같으냐?”

“글씨 말씀이십니까? 에…… 858―81 아닙니까?”

“아니야. 하지만 비슷해. 이거 850―01이야. 거기 너, 네 생각은 어때?”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좋아, 이제 다시 재생해.”

교수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그가 턱을 괴며 고민하는 사이, 문제의 배는 조금씩 흘러가 카메라 범위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지금의 진행 방향대로 계속 표류했다면 북한의 어느 해안에 닿았을 것이다.

“저 배가 맞아. 딱 저렇게 생긴 거였어…….”

교수는 더 이상 영상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는지 고개를 하늘로 쳐든 채 중얼거리기만 했다. 게다가 저 숫자, 어딘지 낯설지가 않다.

850―01이라…… 뭐지? 그리고 7월 13일 밤에 내가 보았던 영상에는 뭐라고 써 있었지?

교수는 두 손의 엄지를 관자놀이에 가져다 대고 생각에 잠겼다. 좀비 사태가 일어난 날 새벽부터 영상을 보던 시점까지 기억을 역순으로 되짚어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음…… 그래, 그날 밤 회의를 마치고 킹메이커와 헤어져서 단골 요정으로 갔었지. 그리고 두 년을 끼고 잠이 들었다가…….

교수는 감각들을 되살려서 모든 걸 영화 필름처럼 연결해 보려 애썼다.

그 배로 건너갔던 해경의 비명 소리, 총소리, 그리고 바닥에 튀던 피. 그 배에 적혀 있던 숫자는…… 분명 82―08이었다.
그래, 맞아. 82―08이었어!

“설마!”

교수가 벌떡 일어나서 책상을 쾅! 내려쳤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군인들이 어깨를 움츠렸다.

교수는 자책의 의미를 담아 머리를 쿵쿵, 두드렸다. 그날 그 영상을 보면서 왜 그 숫자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단순하고 빤히 보이는 것인데도 말이다.

훗, 왜긴. 욕심이 눈을 덮어버려서 그렇지. 미련한 새끼…….

교수는 자신을 비웃었다.

띠띠― 띠띠―

핸드폰의 알람이 그에게 회의 시간이 가까워졌음을 알린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에서 더 많은 화면을 검토하고 싶지만, 킹메이커가 주선한 중요한 회의라서 꼭 참석해야 한다.

“여기에서 대기! 나 금방 갔다 올 테니까, 그때까지 남해 쪽에서 81이라는 숫자가 박힌 배를 찾아놔. 다른 글씨는 없고, 그냥 81로 시작해야 돼.”

문을 열고 나서며 교수가 내린 명령에 병사들은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렇지, 우리만 당했을 리가 없어. 그랬으면 다들 이렇게 조용하게 있을 리가 없지.”

복도를 걸어가면서 교수는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중국과 일본이 왜 저리 침묵하고 있는지도 이해가 간다.

이건 아주 조직적이고도 거대한, 그리고 아주 악질적인 장난질이었다. 적어도 동아시아의 주요국들 전부를 대상으로 한 것만은 분명했다.

하아~ 자신이 찾아낸 것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교수는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들 때문에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누가 왜 저 지랄을 한 거지? 그것도 국가번호로 분류까지 하면서?”

850은 국제전화를 위한 북한의 국가번호이다.

지난 7월 2일, 북한에도 좀비들이 배달된 것이다.

***

컨퍼런스 룸이 있는 강정 기지 작전 본부 4층 복도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공조 시스템이 공기를 빨아들여 최첨단 필터로 여과시키기도 전에 삼삼오오 복도 의자에 모여 앉아 있는 수십여 명이 담배 연기를 뿜어 대고 있는 까닭이다.

금연 구역이었지만 그런 걸 지키는 사람들은 일반 직원들이나 청소를 하는 병사들뿐이었다.

“어, 채 장군 오셨구만. 들어가십시다.”

육군 참모들에 둘러싸여 뻑뻑 담배를 빨아들이고 있는 채 장군을 보고 교수가 반가운 척 손을 들었다. 채 장군은 여유 있는 미소를 짓는다.

“예, 먼저 들어가십시오. 이것만 마저 피우고 들어가겠습니다. 아, 참 이걸 끊어야 되는데…….”

“채 장군도 참. 힘들게 배운 걸 왜 끊어요. 허허.”

교수가 문 안으로 사라지자 채 장군의 얼굴에서 가식적인 웃음이 지워진다. 그의 우측에 앉아 있던 중장 하나가 아니꼽다는 듯 말한다.

“참내…… 군복이라고는 평생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새끼가 작전 회의에는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기어 들어오는 건지…….”

“내비 둬라. 민주주의 사회 아니냐.”

채 장군은 필터를 잘근잘근 씹으면서 대꾸했다.

“하지만…….”

조금 전의 중장은 그래도 뭔가 더 할 말이 남은 눈치였지만, 채 장군은 얼른 눈짓을 해서 그의 입을 막았다.

맞은편에서 해군참모총장 이승남이 일행을 이끌고 걸어오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승남 대장이 과장되게 큰 소리를 지르며 손을 쫙 벌렸다.

“아이구, 채 장군님. 허허허, 어떠세요? 뭐 불편한 거 없으시죠? 제가 특별히 배려해 드리라고 단단히 말을 해놓았는데, 아무래도 지방이라…… 그리고 육군분들을 모셔본 경험이 없어서! 허허허!”

이승남이 껄껄거리는 동안 그 옆에 선 해병대 사령관은 눈알을 부라리며 채 장군과 그의 참모들을 노려본다.

겨우 별 세 개짜리가…….

채 장군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꿈에서도 생각해 볼 수 없는 일이다.

“아, 좋습니다, 이 총장님. 워낙에 그 배려를 잘해주셔서……. 야전에서 이만큼 나이를 먹었는데, 객지 생활이 불편할 리가 있겠습니까? 저보다야 오히려 이 총장님이 걱정입니다. 계룡대에서 편히 계시다가 낯선 잠자리이실 텐데.”

말은 좋게 하는 듯하지만, 채 장군이 전달한 실제 의미는 ‘너도 원래 여기 없던 놈이잖아?’였다.

계룡대 3군 통합 기지라는 하나의 공간에 함께 있을 때만 해도 공식 서열 3위인 해군참모총장이 그의 앞에서 모가지에 기브스를 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아, 저야 그래도 기반이 여기니까 채 장군님 같지는 않죠. 채 장군님, 모자란 거 있으시면 부관들에게 말씀만 하십시오.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검토하라고 제가 미리 언질을 해놓겠습니다. 허허허.”

이 총장이 허세가 가득한 웃음과 함께 사라졌다. 숙청과 서열 재배치의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한, 그런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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