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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불꽃처럼 (2) (127/449)


127. 불꽃처럼 (2)
202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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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해요! 이제 버리라고! 충분히 했으니까!”

김 상병이 이 병장의 부축을 뿌리치며 울부짖는다. 손에 쥐고 있던 자동차 열쇠도 이 병장을 향해 던졌다.

“너, 이 새끼…… 하아~ 하아~ 여기에서 나가면 오랜만에 얼차려 좀 해야겠다. 도대체가 고참 알기를…… 하아~ 하아~ 아주 똥으로 알고…….”

이 병장은 열쇠를 주워 다시 김 상병의 군복 주머니에 넣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김 상병을 들어 올렸다.

김 상병을 둘러업고 나자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걸음을 뗐다. 중위도 비틀거리며 그 뒤를 따른다.

그러는 동안 진우는 또 열 마리 이상의 머리통에 바람구멍을 뚫어 잠재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 봐야 놈들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터널 전체를 울리는 여러 가지 커다란 소음들 때문에 지하 통로는 지옥과 아주 가까운 곳처럼 느껴진다.

“다 왔어! 이제 정말 다 왔다고!”

지하 주차장으로 이어진 오르막길이 눈에 들어왔다. 이 병장은 이를 악물고 소리를 쳤다.

그렇게 휘청거리며 나선형의 오르막을 반 정도 지났을 때, 앞쪽에서 한 무리의 좀비들이 그들을 향해 쇄도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뒤를 쫓는 좀비들을 상대하던 진우가 마지막 두 놈의 머리통을 조준하던 순간이었다.

끄아아아아―

좀비들에게 밀려 굴러떨어지며 이 병장과 김 상병이 비명을 지른다. 바닥에 부딪힌 김 상병의 무릎은 한층 더 심하게 꺾였다.

“초, 총을…….”

중위가 허둥거리며 K―2를 잡아보려 한다. 그러나 경련이 이는 오른손 검지를 방아쇠울 안에 넣는 데만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투투둑―

뒤쪽의 놈들을 정리한 진우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얼굴을 향해 군복을 입은 좀비 한 놈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달려들었다.

이런!

진우는 총을 들어 올려 놈의 이빨을 막았다.

콰작―!

쇠를 깨문 좀비의 앞니가 뽑히고, 그 충격을 못 이겨 진우도 뒤로 넘어졌다.

“이이익!”

진우가 아무리 뿌리쳐 보려 하지만, 놈은 꽉 깨문 총을 도무지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 그리고 두 팔로 계속 진우의 팔과 어깨를 후려친다.

윽, 왼팔이 밀리면서 총을 들고 있던 손이 더 버티지를 못한다. 이제 좀비의 이빨과 진우의 목덜미 사이에는 중간에서 버티고 있는 그의 K―2뿐이다.

모로 돌아간 그의 시선에 좀비 세 마리와 한데 뒤섞인 이 병장, 김 상병의 모습이 보인다.

칼을…….

진우는 대검을 뽑아 좀비의 목을 찌르려고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더듬거려 봤다. 하지만 총이 워낙 바짝 눌려 있어서 칼 막이를 끌러내기도, 대검을 뽑기도 힘들다.

“끄, 끄윽!”

좀비의 무게가 더해지면서 목이 졸려온다.

뭐지? 내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뭐지?

한계까지 내몰린 진우의 오감이 부쩍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오른쪽 건빵주머니 안에 중위에게서 압수한 권총이 들어 있다는 것이 기억났다.

이이익―

진우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주머니 안에 넣었다. 차갑고 딱딱한 쇠뭉치가 닿는다. 손잡이를 꽉 쥔 진우는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천천히 권총을 들어 올리고 안전장치를 푼 후, 좀비의 턱에 가져다 댔다.

공이가 뒤로 젖혀지며 딸깍거리는 소리가 났는데도 좀비는 여전히 K―2를 물어뜯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진우는 열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눈을 꾹 감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성이 울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좀비의 몸에서 힘이 추욱 빠져나간다.

놈의 시체를 밀쳐 내고 일어난 진우는 이 병장과 김 상병을 향해 뛰어갔다. 좀비들의 고개가 바쁘게 움직인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의 살점이 뜯겨 나간다는 뜻이다.

“야이, 개새끼들아!”

진우는 있는 힘껏 개머리판을 휘둘러 좀비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퍼억!

첫 번째 놈은 이렇다 할 저항도 못 해 보고 죽어버렸지만, 두 번째 놈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달려들었다.

진우가 총구를 돌리려 할 때, 어딘가에서 날아온 총알이 좀비를 날려 버렸다. 중위였다. 이제야 간신히 총을 제대로 쥘 수 있게 된 모양이다.

“하아~ 하아~”

세 번째 놈마저 처리한 뒤, 진우는 떨리는 마음으로 이 병장과 김 상병을 향해 다가갔다.

“으으으…… 아이구, 아야야…….”

김 상병이 신음하며 고개를 들어 올린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으세요?”

“……괜찮을 리가 있겠냐? 흐흐, 잔뜩 물렸지.”

김 상병은 모기한테 물렸다고 할 때처럼 씨익 웃었다. 좀비들의 이빨에 뜯겨 나간 그의 팔과 다리는 온통 피투성이였다. 등과 어깨도 엉망으로 찢긴 채다.

“김 상병님!”

목소리가 갈라진 진우가 괴로워하자, 김 상병은 덜덜 떨리는 손을 휘휘 저었다.

“야, 야, 관둬. 그렇게 계집애처럼 굴지 마. 어차피 이렇게 될 줄 다 알고 있었잖아……. 아이구, 아야야! 씨발, 좃 나게 아프네……. 흐흐흐, 뭐, 그래도 내가 이 병장님은 안 물리도록 확실하게 감쌌지. 그렇죠, 이 병장님? 김 상병표 고기 방패 확실했죠?”

“크크큭, 퍽이나, 이 새끼야…….”

이 병장이 얼굴을 감싸 쥐고 있던 손을 떼어내자 흰 뼈가 드러나다시피 살이 잘려 나간 볼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손가락도 하나 없어졌다. 진우의 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끄응차, 이 병장이 총을 지팡이 삼아 짚고 일어나며 말했다.

“아직 안 끝났다. 가자!”

“가다니…… 어디로 말씀이십니까?”

“답답한 놈일세. 어디긴, 탈영하기로 했잖아. 으! 아아아~”

이 병장의 부축을 받아서 겨우 몸을 일으킨 김 상병이 신음한다. 부러졌던 다리에서는 왈칵왈칵 피가 솟아 흐르고 있다. 이 병장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가 앞장서서 다 막아줄 테니까 넌 바짝 붙어서 따라와. 정말 간만에 고참 노릇 좀 해보자. 중위님, 정신 차리십쇼!”

벽에 기대 숨을 헐떡이고 있던 중위가 고개를 끄덕인다. 진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근거리에서 권총의 화약이 터지며 입은 화상보다도 몇천 배는 더 아플 만큼 가슴이 답답하고 찢어지는 것 같다.

“젠장, 이놈의 차, 어디에 있냐?”

알람의 해제 버튼을 계속 누르고 다리를 질질 끌며 김 상병이 투덜댄다.

이 병장은 휘청거리면서도 김 상병을 부축한 손을 놓지 않았다. 자동차는 그로부터도 한참을 더 지나 D섹션에 있었다. 멀리 소나타 한 대가 방향 지시등을 점멸하면서 신호를 보낸다.

크롸악!

어두운 구역, 좁은 자동차들 사이에서 난데없이 좀비 한 마리가 튀어나온다. 이 병장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손을 내밀어 좀비의 입을 틀어막았다.

콰드득!

조금 전 네 개로 줄어들었던 손가락이 다시 하나 줄었다.

“어림없어! 이 개새끼야!”

이 병장은 옆구리에 꽉 끼고 있던 K―2를 난사해서 좀비의 몸통과 얼굴을 모두 박살 냈다. 그런 후, 쇼크로 부들거리는 왼손을 꽉 쥐었다.

“자, 이제 이건 네 거다.”

소나타 문을 열 때까지 경호원 노릇을 마다 않던 김 상병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진우에게 건넨다. 피에 젖은 그의 손은 정신없이 떨렸다.

우우욱, 이 병장이 구토를 시작했다.

저 냄새! 익숙한 악취가 정든 사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다. 김 상병도 지지 않겠다는 듯 토사물을 바닥에 흩뿌렸다.

“어우욱~ 야, 우린 여기까지인 것 같아. 박 이병! 아니지. 진우야! 꼭 살아야 돼. 너, 형들 기억할 거지? 응? 누가 물어보면 선임 잘 만나서 군대 생활 꿀 빨았었다고 해야 된다……. 우우욱!”

김 상병은 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드러누운 채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하지만 근육이 잘려 나가고 출혈 때문에 감각이 무뎌진 손은 담배를 제대로 꺼내지 못한다. 진우는 말없이 담배를 꺼내 김 상병과 이 병장의 입에 물려주고 불을 붙였다.

후우우우~! 쿨룩! 쿨룩!

기침을 하면서도 최대한 깊숙이 연기를 빨아들인 이 병장은 세 개만 남은 손가락으로 진우의 하이바를 쓰다듬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나는 인마, 네가 이렇게 됐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곧바로 발랐을 거야. 그리고…… 도망가서 꼭 살아! 분대장으로 하는 마지막 명령이다.”

“그래…… 쿨룩! 쿨룩! 진우야, 이제 출발해. 우리 변하는 거 보여주기 싫다. 빨리! 우웨에엑.”

진우는 입술을 깨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이제 거의 의식이 없는 중위를 조수석에 벨트로 고정시키고 진우가 두 고참에게 마지막 경례를 했을 때, 뒤쪽에서 좀비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저 징그러운 놈들에게는 포기라는 게 없는 모양이다.

우웅―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소나타가 가벼운 엔진 소리와 함께 움직인다. 크게 원을 그리며 빠져나온 진우는, 백미러를 통해 마지막으로 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병장과 김 상병이 손을 꽉 잡고 마지막 한 모금을 빨고 있다. 그리고 좀비들이 가까워지기를 기다리던 두 사람은 동시에 그들의 주변에 있던 자동차 연료 탱크를 향해 최후의 사격을 했다.

콰콰콰쾅!

20여 발 이상이 관통되자 연료 탱크가 폭발했고, 두 용감한 병사의 모습은 순식간에 화염에 의해 덮여 버렸다.

진우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직도 끝이 난 게 아니다. 진우는 마지막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애들 어디 갔어? 응? 애들은?”

의식이 돌아온 중위가 창백한 얼굴로 이 병장과 김 상병을 찾는다.

“전사하셨습니다.”

중위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서 진우는 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콰아아―

주차장 입구를 가로막으려 들던 좀비들을 그대로 받아버렸다. 군복을 입은 놈들이다.

대학원 B동 부근은 조용했다. 간간이 총성이 울리기는 하지만, 예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적은 병력만이 남아 있었고, 대부분 좀비들에 의해 둘러싸인 채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산 쪽을 담당하고 있던 장갑차 부대 역시 제대로 보급을 받지 못해 꼼짝없이 고립되어 있을 것이다.

도대체 그 많은 병력이 왜 힘도 제대로 못 써보고 당해 버린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진우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거창한 명분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싶지 않다.

- 도망가서 꼭 살아…….

이 병장과 김 상병의 당부가 귀에서 떠나지 않고 몇천 번이고 메아리를 친다.

“얘네들 어디 갔어? 응? 애들 데리고 가야지…….”

중위가 조금 전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한다. 아마도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진우는 대꾸하지 않고 폐허처럼 무너진 정문 바리케이드를 전속력으로 통과했다. 몇 마리씩 몸을 날리는 좀비가 있었지만, 차를 따라잡을 만큼 빠르지는 않았다.

콰자작―

앞길을 막아서는 좀비를 제대로 피하지 못해서 사이드미러가 부서져 날아간다. 이놈들 틈바구니를 헤집고 달리자니, 김 상병이 얼마나 운전을 잘해줬었는지가 뼈에 사무친다.

목이 뜯겨 나간 병사들의 시체와 좀비들의 시체가 피할 수 없을 만큼 널려 있어서 자동차는 계속 덜커덩거리고 흔들렸다.

삐익! 삐익!

쏟아지는 장대비는 와이퍼를 최대속으로 가동시켜도 여전히 시야를 가린다. 그래도 진우는 이를 악물고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응? 저건?”

예전에 장갑차들이 뚫어놓은 길을 따라 전속력으로 10여 분을 달렸을 때, 앞쪽에 낯선 광경이 보였다.

도랑에 코를 처박은 채 빠진 장갑차와 버려진 중무장 레토나. 그리고 장교들이 타던 사제 SUV가 엉망으로 부서진 채 멈춰 서 있다. 아까 1분대가 발전소로 돌아올 때 정문을 뚫고 나가던, 바로 그 조합이다.

전투를 지원하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도망을 치다가 여기에서 발이 묶였던 모양이다. 가장 앞에는 장갑차가 서 있다.

한 칸이 끊어져 늘어진 장갑차 무한궤도 내에는 좀비들의 뼈와 살이 잔뜩 엉켜 들러붙어 있다. 고기를 다지다가 멈춰 선 믹서의 칼날을 보는 것 같다.

기동력을 잃고 멈춰 서버린 장갑차 해치 위에는 한때 아군이었던 좀비 세 마리가 달라붙어 단단히 잠긴 쇠문을 열어보려고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긁어 대는 중이었다.

“개 같은 놈들…….”

진우의 입에서 저절로 욕설이 흘러나왔다. 좀비가 아니라 사병들을 내팽개친 장교들을 향한 욕이었다. 저만큼의 화력만 지원받았다면 1분대에서 단 한 사람의 전사자도 없이 발전 시설을 봉인할 수 있었을 터였다.

하긴 윗대가리들이야 우리와 생각하는 게 다르지…….

진우는 곧 체념하고 고개를 저었다. 놈들이 뭘 했든 이제 와서 그따위 상관하고 싶지는 않지만, 장갑차 속에서 누군가 구조를 바랄지도 모른다는 게 신경이 쓰인다. 그의 분대원들이 발전 시설 내에서 너무도 간절하게 그랬던 것처럼…….

“좋아, 이게 진짜 마지막이다.”

멀찍한 곳에 정차한 진우는 K―2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하이 빔이 자신들을 환히 비추고 있는데도 좀비들은 여전히 장갑차 해치를 긁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제 그만 쉬어라.”

그렇게 읊조리고 나서 진우는 차례로 헤드샷을 날렸다.

하이바가 보호해 주지 못하는 눈에 구멍이 뚫린 채 좀비 세 마리는 장갑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진우는 자동차로 돌아가 경적을 크게 울렸다. 혹시나 장갑차 내에 생존자가 있다면 나오라는 의미였다.

으으응~ 또 기절해 있던 중위가 들이치는 비바람을 얼굴에 맞고 깨어난다.

“장갑차잖아……. 지금 여기가 어딘가…….”

오른쪽 입이 제대로 벌어지지 않아 중위의 발음은 부정확했다. 느릿느릿 그 말을 간신히 해놓고 중위는 머리를 감싼 채 신음했다.

“정문에서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이제 영외입니다.”

모르스부호를 보내듯 클랙슨을 눌렀다 떼기를 반복하고 있던 진우가 설명을 해주었다. 중위는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하면서 계속 고통을 호소했다.

“으으, 머리가 쪼, 쪼개지는 것 같아. 너무 아파……. 그, 그 빵빵대는 소리만 들어도 귀가 울려서…….”

그때, 조그만 해치가 열리며 기울어진 장갑차 안에서 누군가 머리를 내밀었다.

“좀비 더 없나? 응? 다 죽였어? 거기 이리 와! 이리 와서 좀 거들어! 나 좀 나가야 하니까!”

손을 내밀고 낑낑대는 건, 중년으로 향해 가는 남자였다. 하이바에는 중령 계급장이 박혀 있다. 지난 열흘 동안 먼발치에서나 한두 번밖에 보지 못했던 대대장이다. 대대장이 다시 지껄여댄다.

“너희 병력 얼마나 돼? 응? 뭐야? 두 명이 단가?”

진우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대대장은 용을 써가며 스스로 해치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놈, 이거 넋이 나가서 아무 말도 못하는구만. 뭐, 이해한다. 이렇게 치열한 전투는 처음 겪어봤을 테지. 그런데도 용케 여기까지 구조하러 왔구만. 어? 너, 안 중위 아니야? 허허, 이 새끼…… 후배라고 챙기고 아껴줬더니 그래도 보은을 하네. 육사 인연 참 질기구만. 여튼 잘 왔어. 너희는 운이 좋아. 나를 호위해서 R―7포인트까지만 가자. 거기로 헬기를 보내라고 했으니까 지금쯤 기다리고 있을 거야. 거기에서 울산으로 가면 너희 훈장도 받고 1계급씩 특진도 하게 될 거다. 아, 이놈의 레일이 어쩌자고 그만 똑 끊어져서 보수하러 나갔던 애들까지도 싹 다…….”

진우가 차갑게 노려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대장은 쉬지 않고 주둥이를 놀려 댔다.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장갑차의 무한궤도가 끊어지면서 달아나던 놈들이 멈출 수밖에 없었고, 그걸 수리하겠다고 해치를 연 순간 좀비들이 덮쳐들면서 모든 게 끝났으리라.

대대장은 중위에게 다가가 그 어깨를 두드렸다.

자, 자, 가자……. 중위가 반응이 없자 이번에는 진우의 손을 잡아끈다. 진우는 그 손을 뿌리치며 확실히 알려주었다.

“군으로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뭐어?”

대대장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위협적인 소리를 내질렀다. 그래 봐야 진우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제가 진짜 군인에게서 받은 마지막 명령은 도망가서 살아남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의 명령은 없습니다.”

“아니! 이, 이 새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이런 미친놈이…… 안 중위! 너도 들었지? 이 새파란 작대기 하나짜리 새끼가 지금 대대장한테…….”

“닥쳐!”

중위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대장을 밀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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