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불꽃처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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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불꽃처럼 (1)
2022.01.04.
뒷문을 밀치고 뛰어드는 좀비들 때문에, 엔지니어를 찾아야 한다는 진우의 말은 잠시 끊겼다.
투투투투― 투투투―
진우의 총구가 다시 불을 뿜고, 좀비들의 머리가 박살 난다. 두개골이 열린 채 쓰러지는 끔찍한 모습과 저 지독한 악취는 아무리 보고 맡아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잠시 후, 놈들의 습격이 잦아들 때쯤, 진우는 이 병장과 김 상병을 돌아보았다.
둘은 조금 전 진우가 했던 말을 미처 듣지 못한 표정으로 뒷문만 노려보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 울리는 시끄러운 총성과 메아리 때문에 귀가 먹먹해진 탓이리라.
“이 병장님!”
진우는 목청을 높였다.
“아까 그 사람! 그 엔지니어를 찾으러 가야 합니다! 자동차 키 말입니다!”
좀비들의 웨이브 하나가 끝났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언제 또 이렇게 좋은 기회가 올는지 기약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병장이 머뭇거린다. 그가 그렇게 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엘리베이터 표시등은 3층에 멈춰 서 있었다.
그러나 그놈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이후 이 넓은 건물 중 어디로 도망을 갔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벌써 건물 외부로 빠져나갔을 수도, 어딘가 후미진 곳을 찾아 들어가 문을 잠근 채 숨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자동차 열쇠는 정말 간절하게 필요한 물건이 맞다. 그게 없이 빈손으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밀려드는 좀비들의 밥이 될 뿐이니까.
하지만 김 상병을 업고 좀비들을 피해 계단을 뛰어다니면서 무사히 엔지니어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을지,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여기에 있는 것보다야 낫잖아! 이건 그냥 총알이 바닥나기를 기다리는 꼴밖에 안 돼! 일단 3층으로 가봐서 정 여의치 않으면 옥상으로 가자고!”
중위가 끼어든다. 조금 전 넘어졌던 이후로 그는 계속 구역질을 해 대고 있었다. 오른팔도 미세하게 떨리는 경련이 멈추지 않는다. 한마디로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머릿속에서 혈관이 터진 게 분명하다.
언젠가 전해 들었던 말이 이 병장의 뇌리를 스친다. 머리를 세게 부딪쳤을 때, 밖으로 피가 흐르지 않는 게 훨씬 더 위험하다고……. 이 사람마저 죽어버린다면 화력이 20퍼센트 더 줄어드는 거다.
“좋습니다!”
이 병장은 결심을 하고 김 상병을 어깨에 들쳐 업었다.
“분대! 일제히 3층으로 이동한다! 박 이병, 강 일병, 너희 둘이 선봉이다!”
전술 조끼에 탄창을 채워 넣은 진우가 앞장을 섰다. 사방에 정신없이 널려 있는 좀비들의 시체 사이로 조심스레 한 발, 한 발을 내디디며 문가까지 다가간 진우는 고개를 내밀어 복도를 살폈다.
쿠웅― 쿠웅―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두 놈이 강당의 앞문을 두드려 대고 있다.
좀비 중에서도 가장 멍청한 놈들인 모양이다. 반대쪽에서는 아직 달려오는 녀석들이 보이지 않는다. 잠가놓은 매점 문이 꽤나 대견하게 버텨주고 있어서 다행이다.
툭, 투둑.
진우는 재빨리 두 놈을 처리하고 복도로 이동하며 플래시를 켰다.
조명이 환히 밝혀져 있던 강당에 있다가 불이 꺼진 복도로 나오니, 동공이 어둠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뒤에 강 일병이 서 있는 것을 확인한 진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고는 계단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깨진 유리문 사이로 천둥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이 밤의 태풍은 도무지 잦아들 기미가 없다.
“야, 박 이병. 너 여기 구조 알아? 방향도 확실히 모르면서 왜 이렇게 뛰어?”
뒤를 따르는 강 일병이 걱정스레 물었다.
“아까 엘리베이터 옆에 붙은 그림에서 계단 위치를 봤습니다. 길은 알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 게 있었다고?”
“네, 그렇습니다! 건물마다 다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공사 마무리 심부름을 할 때 화재 발생 시 탈출 경로 패널은 지겹게 붙였다. 진우는 엘리베이터를 지나치면서 슬쩍 곁눈질을 해보았다. 아직도 3이라는 글자에 불이 들어온 채 멈춰 있다.
계단은 화물 엘리베이터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코너를 돌아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힘들게 그걸 뛰어 올라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 바로 옆에 멀쩡한 직원용 엘리베이터가 두 대나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처음부터 이리로 내려왔으면 조금 전 강당에서 그 난리를 칠 필요도 없었잖아!”
3층 버튼을 누르며 김 상병이 투덜댄다. 이 병장은 헐떡이며 숨을 돌렸고, 중위는 벽에 기댄 채 어지럼증을 달래고 있다. 핏기가 빠져나간 그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소, 손이 너무 떨려……. 제기랄, 이게 대체…… 왜 이러지…….”
쉼 없이 부들거리는 오른손을 꽉 붙든 채 아무리 주물러 봐도 경련은 도무지 가라앉지를 않는다. 자세히 보면 오른쪽 눈꺼풀 역시 계속해서 파르르 떨린다. 뒤통수를 찧었을 때, 어딘가 심각하게 다친 것이다.
띵―
그러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3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기 직전, 뛰쳐나갈 준비를 하는 강 일병을 제지하고, 진우는 개머리판을 어깨에 붙였다. 한 번 올라간 이후 내려오지 않던 3층 엘리베이터. 아무래도 불길하다.
스르릉―
문이 양쪽으로 벌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 위장 무늬 하이바 두 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바로 아래 하얗게 변해 버린 눈동자와 벌어진 아가리도 보였다.
그롸아아!
“으아아아아~!”
군복을 입은 좀비들과 깜짝 놀란 김 상병이 거의 동시에 울부짖었다. 문이 다 열리지도 않았는데 좀비는 그 문틈을 비집고 돌진해 온다.
진우는 주저하지 않고 연달아 쏘았다. 노린 곳은 내밀어진 어깨와 가슴의 중간. 하이바를 쓴 채 고개를 숙이고 달려드는 좀비를 무력화시킬 때 그곳을 맞춰 뒤로 날려 보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퍼벅―!
어깨가 박살 난 좀비의 몸통이 젖혀진 순간, 진우는 총구를 돌려 두 번째 놈의 아가리에 쑤셔 넣다시피 한 뒤 쐈다.
퍼벅―!
놈의 얼굴이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처참히 박살 나고 터져 나온 뼛조각이 사방으로 튄다.
진우는 다시 첫 번째 놈의 턱을 향해 두 발을 더 날려서 끝냈다. 녀석들의 하이바는 산산조각으로 터져 나온 뇌수와 피로 가득 덮였다.
“으아! 씨발, 놀랐네……. 근데 이건 누구야? 못 보던 얼굴인데, 게이트 경비대인가? 어쩌자고 여기까지 올라왔지?”
김 상병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좀비의 시체를 살핀다. 어차피 얼굴은 이미 박살이 나버렸기 때문에 식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인상이 꽤나 낯설었다. 처음 보는 녀석들이다. 중위가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을 쓸어내리며 일러준다.
“아마, 대공포대 애들이었을 거다. 우리랑은 별개로 원래부터 여기에 상시 주둔하고 있었거든.”
애들이라…….
진우는 그 말을 심각하게 곱씹었다. 한두 마리를 잡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은 현재 이 건물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고, 그건 사방 어디에서든 좀비들이 덤벼들 수 있다는 의미였다.
시간을 끌지 말고 빨리 움직여서 엔지니어를 찾아야 한다. 살아 있든, 아니면 좀비가 되어 있는 상태든 그런 건 관계없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것은 엔지니어의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는 자동차 열쇠뿐이니까.
“화물 엘리베이터부터 가보자.”
다시 김 상병을 업으며 이 병장이 말했다. 진우가 코너를 돌았을 때, 화물 엘리베이터 앞이 환해졌다가 다시 어두워지고, 이내 또 환해지는 광경이 보였다.
띵― 철컹― 쿵― 띵― 철컹― 쿵―
가까이 다가가면서 태풍의 거대한 소음에 묻혀 있던 소리들도 들린다. 시간이 경과해서 저절로 닫히려던 엘리베이터 문이 무언가에 부딪쳐 다시 열리기를 무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뭐지? 왜 저래?”
한 발짝 뒤에서 따라오던 강 일병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린다. 아마 지금 그의 눈에는 바닥에 흥건하게 흘러나와 있는 피가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상황을 대충 파악한 진우는 조심스레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갔다.
화물 엘리베이터 안은 온통 피로 가득했다. 아까 이것을 타고 내려가던 중 그가 아련하게 과거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던 카레 냄새는 피비린내로 덮여 있었고, 문가에는 상체가 뜯겨 나간 채 숨을 거둔 엔지니어의 시체 하반신이 엎어져 있다.
그들이 걸어왔던 곳과 반대 방향 복도에는 피와 내장이 죽 흩어져서 엔지니어의 상체가 어디로 끌려갔는지를 알려주었다.
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덤벼든 또 다른 좀비가 엔지니어를 물어뜯고 그 자리에서 작살을 냈으리라. 그리고 시체가 끼는 바람에 엘리베이터는 이 3층에 발이 묶인 것이다.
“결국 이렇게 죽어버렸구만.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치더니…… 쯧쯧.”
이 병장이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차는 동안 진우는 곧바로 시체의 바지 주머니를 더듬어 열쇠를 찾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자신이 쏴 죽인 하이바 쓴 좀비들은 입가에 피를 묻히고 있지 않았으므로 이 엔지니어를 반으로 뜯어 죽인 놈, 혹은 놈들은 따로 있다.
“찾았습니다!”
진우는 들어 올린 스마트 키를 곧바로 이 병장에게 넘겼고, 이 병장은 다시 그것을 김 상병의 손에 쥐여 주었다.
“꽉 쥐고 있어. 나중에 열쇠 잃어버린 것 같아요, 어쩌구 하면 쏴 죽여 버릴 거야.”
탁탁탁탁― 쿠당탕― 그롸아아아―
계단 쪽에서 여러 마리의 발소리와 굴러떨어지는 소리, 좀비들의 울음이 한꺼번에 울려온다. 아마도 위층에 있던 녀석들이 새로 나타난 먹잇감을 반기며 뛰어오고 있는 모양이다.
옥상으로의 피신은 이제 선택지에서 삭제됐다. 일행은 얼른 엔지니어의 시체를 엘리베이터 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았다.
“그런데 이거, 어디에 주차되어 있는 무슨 차인지도 모르잖습니까? 그 주차장 엄청 넓던데…….”
1층 복도로 돌아와 뛰는 동안 김 상병이 물었다.
“열쇠에 자동차 메이커 있잖아.”
“현대입니다만…… 거기 서 있는 차들 중에 절반은 현대 차일 테지 말입니다.”
“그럼 알람 버튼을 계속 누르면서 뛰면 되지, 별걸 다 걱정한다.”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이 병장과 김 상병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선봉에 선 진우가 손을 들어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온 까닭이다.
휘이이잉~
비를 가득 담은 바람이 불어와 열기와 흥분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준다. 트럭이 전복되었던 이래, 그토록 돌아가고 싶었던 지하 통로가 바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제는 매점과 지하 통로 사이의 20여 미터 구간. 가로등이 비추는 그곳은 좀비들이 배회하는 죽음의 거리였고, 그 뒤쪽으로 철책이 뜯겨 나간 곳에서는 파도가 계속해서 새로운 좀비 군단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물론 매점 내에도 아직 여러 마리가 들어 있다. 지하 통로 내부 역시 안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전부 열한 마리입니다. 제가 잡는 동안 곧바로 뛰셔야 합니다.”
진우가 일행에게 작전을 설명한다. 사실 작전이랄 것도 없는 간단한 계획이다.
진우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길을 막고 이리저리 흩어져 뛰어다니는 좀비 열한 마리를 하나도 남김없이 쏴 죽여야 하고, 그사이에 세 명이 김 상병을 부축해 지하 통로까지 뛰어가면 된다.
그 세 명이란 반신에 마비가 오고 있는 중위와 눈이 거의 안 보이고 한 팔을 쓸 수 없는 강 일병, 그리고 김 상병을 업고 다니느라 지칠 대로 지친 이 병장이다.
그다음에는 총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다른 좀비들이 따라잡기 전에 차고까지 뛰어가서 차를 찾아 타야 한다. 지하 통로의 총 길이는 대략 1.5킬로미터. 진우가 한 놈이라도 빗맞히면 죽는다. 달리다가 넘어져도 죽는다.
“후우우~”
중위가 먼저, 그리고 이 병장이 그다음에 작게 한숨을 내쉰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이것이 무리한 계획이라는 걸 절감하고 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다들 눈 밑에 다크 서클이 짙게 드리워져 있고, 입술은 바짝 말라 갈라졌다.
정문 외곽에서 근무를 설 때부터 지금까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를 지난 지 오래다. 어떤 형태로든 이제 끝이 났으면 하는 약한 마음도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었다.
“그냥 저를 어디 방 같은 데 숨겨놓았다가 차를 가져와서 데려가시면 안 됩니까? 꼭꼭 잘 숨어 있겠습니다.”
김 상병이 말했다. 말이 쉽지, 그냥 버려 달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 병장이 김 상병의 콧잔등을 톡, 치며 가볍게 대꾸했다.
“몇 번 이야기해야 되냐? 따라잡힐 것 같으면 던져서 미끼로 쓸 거라니까. 다 내가 필요하니까 업고 가는 거야.”
하지만 굳이 자동차 열쇠를 김 상병에게 맡길 때부터 모두의 이미 마음은 정해져 있었다. 죽든 살든 함께할 거라고……. 대충 마음들을 다잡은 것 같아서 진우는 탄창을 갈았다.
열한 마리 중 그들이 가야 하는 경로에 위치해 있는 좀비들은 정확히 다섯 마리. 나머지 여섯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다. 진우는 가까운 놈부터 잡기로 하고 마음속으로 순서를 정했다.
“준비되셨습니까?”
김 상병을 양쪽에서 부축한 이 병장과 강 일병이 고개를 끄덕인다. 중위는 토하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막은 채 애를 쓰고 있다. 조준경의 물기를 닦아낸 진우가 총을 겨누고 숨을 고른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구를 빠져나와 음속을 돌파한 총알이 엄청난 소리를 내자마자 좀비 한 마리의 뒤통수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다.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은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으으윽!”
김 상병이 이를 악물고 뛴다. 부축을 받고 깽깽이걸음으로 달리는 것이지만, 오른발을 힘차게 내디딜 때마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부러진 왼쪽 무릎에까지 전달됐다.
타앙― 타당―
두 번째, 세 번째 좀비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다른 놈들이 앞을 가로막지만, 병사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롸아아아―
지하 통로에서도 마중을 나와준다. 중위가 부들거리는 손으로 난사를 하며 놈들을 상대했다.
타앙, 투두둑―
또 두 마리가 쓰러졌다. 이제 경로는 확보됐고, 남은 건 제대로 뛰어가는 일뿐이다. 진우도 뒤를 쫓아 달리면서 쏘기 시작했다.
툭― 투둑― 투둑―
열네 발을 쏘았고, 여덟 마리를 잡았다.
그롸아아악―
인기척을 느끼고 매점에서 쏟아져 나온 좀비들이 이 병장 일행을 향해 덮쳐든다. 예상했던 것보다 수도 많고, 덤벼드는 시기도 빨랐다.
“이이익!”
강 일병이 부축을 풀고 돌아서서 매점 쪽 좀비들을 향해 연사한다. 그냥 이대로 도망만 치다가는 다 죽게 생겼다고 느낀 모양이다. 하지만 놈들은 너무 많다.
“야, 인마!”
깜짝 놀란 이 병장과 김 상병이 애타게 부르는 사이, 강 일병의 몸 위로 대여섯 마리의 좀비들이 한꺼번에 덮쳐졌다.
으아아아악―!
목을 물어뜯긴 강 일병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방아쇠를 꽉 당겼다.
투투투투둑―
좀비들의 몸통을 엉망으로 꿰뚫고 날아가는 총알들. 하지만 강 일병의 몸 역시 좀비들의 이빨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고 있다.
“강 일병!”
이 병장이 김 상병을 내려놓고 돌아서려 할 때, 중위가 달려와 그의 팔목을 잡았다.
“이미 늦었어! 너도 물린 걸 봤잖아!”
“크흐윽~!”
틀린 말이 아니다. 이 병장은 입술을 꽉 깨물며 다시 뛰었다. 강 일병이 부축하던 자리를 중위가 대신 채웠다.
“강 일병님!”
진우 역시 망연자실한 얼굴로 강 일병을 겹겹이 둘러싼 좀비들을 향해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강 일병의 군복을 뚫고 팔다리를 물어뜯던 놈들이 탄환에 꿰뚫려 날아간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강 일병은 눈을 홉뜬 채 숨져가는 중이었고, 설사 목숨이 붙어 있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놈들 중 하나로 변하게 될 것이다.
“미안합니다!”
강 일병의 시체를 지나쳐 뛰어가면서 진우는 마주 달려오던 두 놈을 쓰러뜨렸다. 저 앞 지하 통로에 접어든 이 병장 일행이 보인다. 아무래도 너무…… 너무 느리다.
“허억~ 허억~!”
이 병장을 따라잡은 진우는 이따금씩 몸을 돌려 뒤를 쫓아 달려오는 놈들을 쓰러뜨리고 다시 달리기를 반복했다. 1.5킬로미터. 연병장 두 바퀴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인데 이렇게 숨이 차오를 줄이야…….
우후우욱~! 우웨에엑!
중위가 또다시 구토하며 넘어지는 바람에 이 병장과 김 상병까지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 중위는 이제 오른쪽 반신을 거의 쓰지 못한다.
“일어나! 일어나!”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기 위해 전술 조끼까지 벗어 던진 이 병장이 김 상병을 어깨에 둘러업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롸아아―
따라오는 좀비들의 포효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진우가 아무리 저지하려고 해봐도 한계가 분명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