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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안간힘 (5) (124/449)


124. 안간힘 (5)
202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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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아앙~!

진우가 발사한 총알이 그녀의 머리통을 꿰뚫는다.

측면 두개골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여자 좀비는 뇌수를 사방에 흩뿌리며 고꾸라졌다. 그녀의 시체가 바닥에 바다에 닿기도 전에, 발전소에 붙어 있던 좀비들이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야! 너 인마! 총소리를 내면……!”

윤 일병이 난감한 표정으로 울먹이며 진우를 나무랐다. 그러고는 손가락 두 개가 좀비의 배 속으로 사라져 버린 자신의 오른손을 믿기지 않는 듯 들어 보였다.

그롸아아아!

엄청난 포효와 함께 뛰어오는 좀비들. 민간인 세 명은 다들 일어나서 달리기 시작했지만, 병사들은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분대원이 물린 것을 목격하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돌이킬 수도, 치료할 수도 없다.

“끄으으! 씨발, 진짜 살고 싶었는데…….”

소매로 눈물을 훔쳐 낸 윤 일병이 하늘을 한 번 흘겨본 후, 전우들에게 말했다.

“가십쇼!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하, 하지만…….”

“하지만이 아닙니다! 다 함께 죽을 필요가 없는 거잖습니까! 가세요! 다들 꼭 사세요!”

말을 마친 윤 일병은 달려오는 좀비 무리들을 향해 K―2를 난사하며 크게 고함을 질렀다.

“이 개새끼들아! 여기다아아아~! 일로 다 덤벼어어~!”

방아쇠를 당기는 약지가 부들부들 떨린다.

투투투투투둑― 투투투투투둑―

탄창 하나를 순식간에 다 써버린 윤 일병은 두 번째 탄창을 끼우면서 플래시까지 켰다.

크롸아아―

소리와 빛에 끌린 좀비들이 그를 향해 방향을 바꾸었다.

“가자! 뛰어! 이 새끼야!”

멍하니 윤 일병을 보고 있는 진우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 병장이 외쳤다. 중위는 김 상병을 업고서 달리는 중이다. 이제 똑바로 길을 따라 도망갈 수는 없게 되었다.

그들은 건물의 뒤쪽으로 돌아 난생처음 가보는 미로 같은 길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앞에서 달려가는 민간인 생존자들이 제대로 길을 알고 뛰고 있는 것이기를 비는 수밖에 없다.

허억~ 허억~! 막다른 길에 도착했나 싶은 순간, 남자 엔지니어가 건물의 문을 열고 뛰어든다. 모두들 그 뒤를 따랐다.

타타타타타다― 타타―

……윤 일병의 총소리가 끊겼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이리로 가면 지하 통로로 이어지는 거예요?”

길고 어두운 복도를 여러 번 꺾으며 내달리다가 지쳐서 숨을 돌리는 엔지니어를 향해 이 병장이 물었다.

우우욱~! 줄곧 김 상병을 업은 채 달린 중위가 토사물을 쏟아낸다. 모두가 긴장해서 돌아보았다.

“하아~ 하아! 이, 이 사람도 변하는 거 아닙니까? 토, 토했잖아요!”

엔지니어가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을 친다. 이 병장이 고개를 저었다.

“좀비가 토하는 건 이것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악취가 심해요. 그냥 숨이 차서 토한 겁니다. 아저씨가 한번 쟤를 업고 뛰어봐요. 곧바로 넘어오나 안 넘어오나……. 그보다 이 길이 맞습니까? 지하 통로로 가야 합니다.”

“거, 거기는 막혀 있을 텐데…….”

“열려 있어요. 우리가 거기로 들어왔습니다.”

“갈 수는 있어요. 여기에서 한 층 내려가면 매점이 있거든요. 그 출입구로 나가면 돼요. 거기에서 200미터 정도만 가면…….”

그나마 희망적인 이야기였다. 이 병장은 출발하기 전에 전열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중위님, 이제 교대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제가 업겠습니다.”

중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큼 격하게 운동을 해본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까마득하다.

끄응~ 김 상병을 들쳐업은 이 병장이 강 일병을 불렀다.

“강 일병, 이제 네가 박 이병 뒤에 선다. 경계 확실히 하고, 알겠지?”

대답이 없다.

어? 놀란 이 병장이 뒤를 돌아본다. 가장 후방을 담당하고 있던 강 일병이 사라져 버렸다.

***

꺄아아아~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건물 외부에서 울려 퍼진다.

강 일병에게도 그 비명 소리는 들렸다.

하아~ 하아~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달래며 그는 주변을 필사적으로 둘러보았다. 어두운 윤곽으로만 파악되는 건물들과 가로수들, 모든 것이 분명하지 않다.

“젠장…….”

조금이라도 더 잘 보기 위해서 눈에 스며드는 땀을 닦아냈다. 하지만 그다지 나아지지는 않는다.

오늘 그는 또 안경을 잃었다. 정 상병이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을 때, 그 역시 정신없이 곤두박질치면서 물살 속에 안경을 흘린 것이다.

하지만 안경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할 겨를은 없었다. 허벅지에서 피를 분수처럼 쏟아내고 있는 조 일병을 치료하는 게 몇 배나 더 긴박했기 때문이다.

“대체 어디에서 길을 잘못 든 거지?”

강 일병은 난감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생전 처음 보는 미로 같은 건물 구조. 환한 대낮이라고 해도 쉽게 길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비 오는 밤에 안경까지 없으니…….

크으윽! 정신없이 뛰던 강 일병이 다시 멈춰 서서 신음한다.

다친 왼팔이 저려와서 더 이상 총을 들고 있기도 힘이 든다. 그때, 복도 끝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강 일병은 간절한 기도를 담아 물었다.

“박 이병? 박 이병이냐? 이 병장님?”

하지만 그렇게 묻는 동안에도 강 일병은 자신의 바람이 어리석은 욕심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인정하고 있었다. 그의 전우들이었다면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전에 싸구려 군납품 워커의 발소리부터 먼저 들렸어야 한다.

날아간 대답이 메아리가 되어 들려올 때까지도 답이 없다. 강 일병은 마른침을 삼키며 사격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사실 안경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뿌옇게만 보여서 가늠자 따위는 무의미하다. 그리고 복도 저 끝에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롸아아아아―!

좀비의 포효. 역시 오늘은 그의 운이 바닥을 치는 모양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강 일병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다시 한 번 확인을 했다.

“누구야? 말해! 쏠 거야!”

그림자는 대답 대신 맹렬하게 대시를 하며 그를 향해 덮쳐 왔다. 물에 젖은 맨발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치며 나는 철퍼덕 소리가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다. 강 일병은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둑― 투투둑― 투투둑―

아홉 발을 잇달아 발사했다. 첫 번째 탄환이 날아가자마자 외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그것을 기준점으로 삼아 몸을 틀며 영점을 잡았다.

퍼버버벅―

가슴과 배가 엉망으로 뚫린 좀비가 뒤로 날아가 나동그라졌다.

젠장! 이런 개 같은!

곧바로 뒤돌아 달리면서 강 일병은 자신의 신체를 저주했다. 어째서 이렇게 눈이 나쁘단 말인가. 그 가까운 거리의 좀비가 죽어버린 건지 아닌지도 확인이 안 될 만큼…….

“박 이병! 이 병장님~! 박 이병!”

코너를 꺾어 달리면서 강 일병은 필사적으로 동료들을 불렀다. 하지만 워낙에 폭우가 쏟아지고 거칠게 파도가 휘몰아치는 중이어서 그의 목소리가 멀리까지 퍼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미로처럼 생소한 복도를 몇 개나 꺾어가며 달렸다.

이놈의 건물은 대체 왜 이렇게 복잡하게 생긴 것인지, 지금 어디에서 어디를 향해 가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다. 그저 뒤쫓아오는 공포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롸악!

복도를 뒤흔드는 좀비의 울부짖음이 자신의 발소리에 섞여 들려온다. 아까 그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녀석들이 있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도망가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소화기나 쓰레기통 같은 흔한 물건들이 다리에 걸리는 바람에 몇 번이나 고꾸라질 뻔하면서도 강 일병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죽어라 뛰었다. 그러다가 막다른 길에 다다른 자신을 발견했다.

“하아, 하아~ 이게 뭐야……. 이런 젠장…….”

자신이 달려온 방향만 빼고 나머지 세 군데가 벽으로 가로막혀 있다. 강 일병은 이마의 땀을 훔치고 다시 몸을 틀었다.

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뛰기 시작했다. 계단과 다른 복도까지 이어진 곳에 도달했을 때, 이 병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 일병! 강 일병! 어디야? 대답해!”

강 일병은 걸음을 멈추고 귀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어느 쪽이지? 어디에서 부르는 거지?

그러는 동안 다시 한 번 그리운 목소리가 그를 부른다.

“강 일병님! 어디 계십니까?”

박 이병이다. 조금 전 이 병장의 목소리보다 약간은 가까워졌다. 강 일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크게 외쳤다.

“나 여기 있어! 여기야!”

메아리치는 목소리. 그리고 곧바로 질문이 돌아왔다.

“엘리베이터 보이나? 엘리베이터! 화물용이야!”

강 일병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엘리베이터? 그런 게 어디 있지?

불이 꺼져 있어 온통 어두운 가운데 몇 개의 조명이 어렴풋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그게 비상구를 가리키는 건지, 엘리베이터의 불빛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안 보입니다! 안경을…….”

이야기를 맺지 못하고 강 일병은 총을 들어 올렸다.

그르르르―

아까부터 계속 그의 뒤를 따르던 문제의 그 좀비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강 일병의 플래시 불빛을 받은 좀비의 가슴에는 박살 난 갈비뼈와 내장이 엉망으로 부서진 채 뒤엉켜 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가깝다.

투투투투투둑―

강 일병은 시간을 주지 않고 재빨리 총알을 퍼부었다. 좀비의 머리와 상체가 잘린 채 날아간다.

후우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대답을 하려는 순간, 코너에서 대여섯 마리의 좀비들이 윤곽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누구냐고 물을 필요조차 없었다. 놈들의 강렬한 악취가 화약 냄새를 지우고 엄습해 온다.

“으아아아!”

강 일병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필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두 마리가 픽픽 날아가는 동안 네 마리는 전속력으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탁, 탁, 약실이 비어 있음을 알리는 소리, 강 일병은 뒷걸음질을 치면서 탄창을 꺼냈다.

그롸아아아아―

놈들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져 온다. 재장전을 막 끝마친 순간, 좀비의 아가리가 그의 얼굴을 향해 덮쳐졌다.

파바바박―

강 일병은 이를 악물고 놈의 머리통을 향해 난사했다.

좀비의 머리뼈와 뇌수가 터져 그의 얼굴에 뿌려진다.

윽! 눈에 뇌수와 체액이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도 전염이 되는 걸까?

하지만 그런 고민도 일단 덮쳐 온 놈들을 모두 처치한 다음에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강 일병은 쓰라린 눈을 꽉 감고 30발들이 탄창이 바닥날 때까지 총구를 휘두르며 방아쇠를 놓지 않았다.

투투투투투둑― 퍼퍼버벅―

총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하고, 근거리에서 박살 난 좀비들의 뼛조각이 날아와 얼굴과 팔뚝에 박힌다.

“끄아아아~!”

총알이 다 떨어진 후에는 총구를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어차피 물릴 것 같기는 하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쨍그랑!

총구에 맞은 유리창이 깨지면서 파편이 피부를 쭈욱 찢는다. 그 날카로운 고통! 하지만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강 일병은 두 눈을 꽉 감은 채 미친 듯이 두 팔을 휘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해! 강 일병, 진정해!”

그를 멈춘 것은 이 병장의 목소리였다. 뒤에서 다가와 총구의 끝을 꽉 잡은 이 병장이 강 일병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진정시킨다.

“……이 병장님?”

눈을 껌뻑거려 보지만, 도무지 떠지지가 않는다. 이 병장이 물었다.

“맞아, 우리야. 근데 눈은 왜 그러냐?”

“크흑~ 눈에 좀비 체액이 튀었는데 따가워서……. 으, 이거 전염되는 거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좀비들은? 네 마리인가, 다섯 마리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 그 많은 걸 제가 정말 다 죽였습니까?”

이번엔 김 상병이 끼어들었다. 김 상병은 강 일병의 손에 수통을 쥐여 주며 말했다.

“죽이긴 했지. 네가 아니고 박 이병이 죽인 거지만……. 자, 괜찮으니까 이걸로 좀 씻어내 봐. 그딴 걸로 전염될 거였으면 우리 벌써 다 좀비 됐을 거니까 그만 걱정하고. 아참, 그러고 보니 안경은 어쨌어?”

“잃, 잃어버렸습니다. 으흑.”

수통의 물을 흘려 눈을 닦고 있던 강 일병은 목이 메어 대답했다.

감사와 안도와 뭔지 모를 서러움까지 한꺼번에 북받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를 위해 모두가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준 안경인데 면목이 없다. 하지만 김 상병은 쿨하게 대꾸했다.

“까짓것, 사회 나가면 발에 치이는 게 안경이다. 걱정하지 마, 인마. 부대 밖에 가면 다시 구해줄게.”

“네…… 흑, 네…….”

“어? 뭐야? 이 새끼, 왜 울고 그래? 야, 무릎이 작살난 나도 안 울고 버티는데!”

놀려 대는 짓궂은 말투까지도 반갑고 고맙다.

조금 전, 동료들과 떨어져 있을 때 느꼈던 고독감과 당혹스러움을 눈물로 녹여 보내고 나서 엉망이 된 팔뚝으로 얼굴을 쓱쓱 닦아내자, 그는 비로소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중위와 끝까지 살아남은 민간인까지, 포함해도 남은 것은 이제 모두 여섯 명뿐이다.

“어느 정도 견딜 만하면 출발하자. 박 이병, 앞장서.”

이 병장이 김 상병을 둘러업으면서 말했다. 강 일병을 구하기 위해 뛰어오느라고 지친 그의 다리가 후들거린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민간인 엔지니어가 설명을 해준다.

“아래층으로 가서 곧바로 우측으로 꺾으면 매점이 있습니다. 이쪽에서 보자면 지하이고 발전소 도로 쪽에서 보자면 1층인 구조인데요, 그런데 거기는 전면이 유리라서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일 텐데…….”

말을 다 맺지는 않았지만, 그가 걱정하는 것이 뭔지는 알 수 있다.

도로가 좀비들에 의해 점거되어 있는 이 상황이라면, 그들이 매점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수십 마리의 좀비가 그들을 먼저 알아보고 덮쳐 오게 될는지도 모른다.

다들 말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매점과 식당에서 물건을 실어 나르는 화물용 엘리베이터에는 카레와 돈가스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역시 무리가 아닐까 싶지 말입니다. 이제는 차도 없는데…… 저는 다리가 이 모양이고……. 차라리 이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서 문을 잠그고 농성을 하는 게…….”

김 상병의 걱정스러운 넋두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당장 오늘 밤 하루의 생존 확률만을 따진다면, 그편이 물론 몇 배나 높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봐야 미래가 없기는 매한가지다.

부족한 식량과 탄약으로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또 용케 구조된다고 해봐야 곧바로 소모적인 전투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분대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 부상자들을 치료해 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이 밤, 좀비 무리의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가 죽고 싶지는 않기는 하다. 모두가 갈등하는 가운데, 연구원이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차는 있어요. 근데 도대체 차를 타고 어디까지 가야 합니까? 여기만 벗어나면 되는 거 아니었어요?”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빙글빙글 돌린다. 알람이 장착된 스마트키였다.

헐~ 구세주를 만난 표정의 중위가 물었다.

“그 차 어디 있습니까, 아저씨?”

“지하 주차장에요. 그 왜, 대학원 건물 B동에 있는…… 지하 통로 들어오기 전에 보셨을 거 아니에요?”

아, 그 넓은 주차장!

모두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제 달아날 수단이 생겼다. 그러는 동안 엘리베이터는 지하층에 도착했다.

띵―

문이 열리자마자 중위와 진우는 좌우를 경계하며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당장 복도 내에는 좀비가 보이지 않는다. 진우가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 앞장을 섰다.

우측으로 꺾어 20여 미터쯤 더 전진하자 매점 방화문이 보인다. 매점 안쪽이 어떤 상황인지는 전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손잡이를 돌리기 전에 일행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긴장감 때문에 가슴이 뛰는 소리가 드럼처럼 울린다.

하나, 둘, 셋, 진우가 차례로 손가락을 편 다음, 문을 확 열어젖혔다. 그리고 문 옆에 몸을 숨긴 채 내부를 살폈다.

“깨끗한 것 같습니다.”

플래시로 천천히 사방을 훑은 진우가 말했다.

널찍한 전면 유리창 중 어느 한 장 깨진 것도 없고, 안에 들어와 배회하는 좀비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플래시 불빛이 너무 눈길을 끌까 봐 우려했는데, 매점의 바로 옆에 가로등이 밝혀진 터라 그것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매점 바깥쪽에서 어슬렁거리는 서너 마리의 좀비들이었다.

놈들 자체로는 그리 대단할 게 없지만, 다른 놈들의 주의까지 끌어들이면 곤란하다. 상황을 확인한 일행은 모두 플래시를 껐다.

“들어갑니다.”

진우가 먼저 허리를 굽히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줄지어 늘어선 테이블과 의자들 사이를 빠르게 내달려 중간까지 도착하고 음료수 진열대 뒤에 몸을 숨겼다. 외부의 좀비들은 여전히 반응이 없다. 진우의 신호를 받은 일행들 역시 차례로 잠입했다.

“이제부터가 문제인데…….”

테이블에 기댄 이 병장이 숨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강 일병과 김 상병은 냉장 진열되어 있던 비타민 음료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켠다.

“지금 보이는 건 네 마리야. 박 이병, 저거 한 번에 모두 처리할 수 있지?”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 병장은 주위를 둘러봤다.

“그럼 남은 건 총소리를 낸 다음 터널 끝까지 뛰어갈 수 있느냐 하는 건데 말이야…….”

이 병장은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허벅지를 꽉 꼬집었다. 성인 하나를 업고 뛴다는 것이 생각보다도 더 많이 체력을 빼앗아간다.

이미 중위는 탈진 직전까지 김 상병을 업었고, 강 일병은 팔이 엉망인 데다가 유리에 찢겨 출혈도 크다. 아직 멀쩡한 건 진우뿐이지만, 그는 화력의 90퍼센트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에 차출할 수 없다.

“가다가 정 안 될 것 같으면 미끼로 던지고 가시지 말입니다.”

고통이 밀려와 식은땀을 쏟아내면서도 김 상병은 농담을 잊지 않았고, 이 병장은 네가 부탁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뒤 다시 김 상병을 업었다.

쿠웅―

일행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던 그때, 무언가가 매점의 유리문을 들이받는다. 아군이었다. 아까 게이트에서 이 병장과 대화를 나누던 그 병장이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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