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 안간힘 (4) (123/449)


123. 안간힘 (4)
2022.01.01.


16554464695463.png

“제가 부축하겠습니다!”

강 일병이 총을 왼손에 옮겨 들고 김 상병을 부축했다. 그러나 강 일병 역시 상태가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왼팔과 손은 파랗게 변색되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나뭇가지에 관통될 때 터져 나온 피가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해 고이고 있는 모양이다.

무릎이 부러진 녀석이 팔이 작살난 녀석에게 기대어 걷고 있는 걸 보고 있던 중위가 땅이 꺼져라 큰 한숨을 내쉬며 끼어들었다.

“도저히 보고는 못 있겠다! 야! 나한테 기대! 너, 너는 그 팔 쓰지 마, 인마!”

네 명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전력이 될 수 있는 것은 둘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버스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살려 달라고 외치며 뛰어오고 있다. 뒤에 좀비를 잔뜩 달고서…….

씨발, 너희 버스 때문에 이 사달이 났는데 아직도 우리 꼴이 구세주처럼 보이나……. 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이 병장은 피가 섞인 침을 연신 뱉으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를 썼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온몸의 근육들은 비명을 터뜨렸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저마다 피를 잔뜩 흘리며 달려오는 사람들. 누가 물렸고 누가 괜찮은지조차 파악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얽혀서 뛰어오는 터라 함부로 총을 발사하기도 어렵다.

그롸아아아―

그 바로 몇 걸음 뒤에는 좀비들이 쫓아온다. 이 병장은 사격 자세를 취하며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엎드려! 다 엎드려!”

말을 듣고 행동에 옮겨주는 사람은 절반 정도밖에 안 됐다. 나머지는 여전히 비명을 질러 대며 팔을 휘젓고 달리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젠장…….

이 병장은 일단 시야가 확보된 방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둑― 투투투둑―

그를 따라서 중위와 강 일병도 일제히 쏘아댄다. 중위가 총을 잡기 위해 부축을 푸는 바람에 김 상병은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퍼퍼벅―

가슴팍을 맞은 좀비들이 뒤로 넘어갔다가 다시 몸을 추슬러 일어난다. 진우가 없으니 살상 능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 버렸다.

꺄아아~ 엎드려 있던 여자들이 총소리에 놀라 째지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렸다.

이 병장 일행의 총구에서 다시 불이 뿜어져 나온다.

타타타타― 투투투투둑―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예닐곱 마리의 좀비들을 모두 쓰러뜨리기는 했지만, 아비규환의 생지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으아아악!”

엎드리지 않고 계속 달리던 사람들은 발이 느려진 순서대로 좀비에게 붙잡혀 어깨를 물어 뜯겼다.

콰드득― 우드득―

뼈와 이가 부딪치며 부러지고 살이 찢겨 나가는, 죽음의 끔찍한 소리만큼은 빗소리와 총성이 퍼붓는 속에서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선명하게 전달되었다.

“엎드리라고! 엎드려!”

탄창을 갈아 끼운 중위가 경고의 말을 끝마치는 것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더 머뭇거리고 있다가는 그들까지도 좀비들의 먹이가 되고 말 상황이었다.

파파파박―

운이 좋았다. 총알은 엔지니어의 바로 곁을 스치고 날아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몸을 날리던 좀비의 얼굴과 어깨를 엉망으로 박살 내버렸다.

이 병장이 겨눈 녀석은 복부가 벌집이 된 채 날아갔다. 하지만 강 일병의 총알은 허망하게 하늘 위로 빗나간다.

방금 대여섯 발의 총알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좀비는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병사들을 향해 부웅 몸을 날렸다. 쫙 벌어진 놈의 아가리가 덮쳐 온다.

“이이익―!”

좀비와 강 일병 사이에 뛰어든 김 상병이 안간힘을 쓰며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그가 내지른 총이 좀비의 목을 꿰뚫는다. 다른 병사들이 사격을 하는 동안 대검을 끼운 것이다.

그르르― 그르륵―

목과 성대가 관통당한 좀비의 입에서 공기가 끓는 소리가 난다.

그렇게 된 상황에서도 놈은 연신 팔을 휘저으며 어떻게든 김 상병과 강 일병에게 이빨을 박아 넣으려 하고 있다. 놈이 몸부림을 칠 때마다 김 상병의 몸이 뒤로 밀리고 무릎이 꺾인다.

“우습게 보지 마, 이 새끼야!”

그렇게 외친 김 상병이 방아쇠를 꾹 누르자, 세 발의 총알이 잇달아 발사된다.

박살이 나며 잘린 좀비의 머리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가 떨어져 내렸다. 그러는 사이 이 병장과 중위는 희생자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있는 좀비들과 그들의 먹이를 함께 처리했다.

턱, 걸음을 옮기던 이 병장이 누군가의 몸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쪼그리고 앉은 여자 직원이었다.

“달라붙지 마요! 싸우는 데 방해가 됩니다!”

이 병장이 애원해 보지만,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군인들의 주변으로 몰려들고 바지 자락이라도 붙들어보려고 애를 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교통사고를 방금 겪고 나온 이들이어서 온통 피투성이들이다. 이 중에 한두 사람이 언제 갑자기 좀비로 돌변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그롸아아아―

두 번째 웨이브의 놈들이 자신들이 곧 닥쳐오리라는 것을 소리로 먼저 알려준다.

“붙지 말라고! 이런 젠장! 떨어져요! 이봐요! 거기, 아저씨들! 트럭에 가면 총이 있어! 총 쏠 줄 알지? 군대 갔다 왔을 거 아니야?”

중위가 남자 직원들에게 알려줬다.

총?

비교적 젊은 세 명이 반색을 하면서 모로 누워 있는 트럭을 향해 달려간다.

짐칸 입구에서 병사들의 시체를 보고 비명을 지른 직원들은 어둠 속을 더듬거려 겨우 피 묻은 소총을 집어 들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게이트 쪽으로 도망가 버렸다.

“야이, 미친! 뭐하는 거야? 이리로 와서 싸워야지! 너희만 달아나겠다는 거야? 그리로 가봐야 죽어!”

중위가 악을 써봐도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그들의 머릿속에는 함께 힘을 합쳐 싸우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어, 어떻게 해요? 우리도 뛰어요!”

“기다려요! 같이 가요!”

젊은 엔지니어들이 총을 탈취해서 달아나는 것을 보고 동요하던 사람들은 무작정 그들의 뒤를 따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그 방향으로 가면 더 많은 좀비들이 기다리고 있고, 게이트는 이미 막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바보 같은 결정이었다. 답답한 상황이지만, 이 병장 일행이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동한다!”

이 병장이 강 일병과 김 상병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렇게 사방이 트인 공간보다는 좀 더 나은 위치를 선점할 필요가 있었다. 박 이병과 윤 일병을 만나기로 한 지점까지는 아직 400여 미터 이상이 남았다.

끄으윽, 좀비와 맞서느라 부러진 무릎이 더 악화된 김 상병은 고통 어린 신음을 내면서도 이를 악물고 부지런히 발을 뗐다. 아직까지 그들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사람들도 그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저 위로 가자!”

이 병장이 가리킨 곳은 계단 위에 위치한, 야트막한 컨테이너 사무실이었다. 비록 그리 높지는 않은 계단이라고 해도, 죽느냐 사느냐가 찰나에 갈리는 이런 상황에서는 충분히 차이를 만들어줄 것이다.

계단의 중간 정도 올랐을 때, 두 시 방향에서 자욱한 스팀을 뚫고 달려오는 놈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롸아아아―

그리고 곧이어 10시와 12시에서도 한 무리가 달려왔다.

“으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계단을 뛰어오르는 사람들. 병사들은 폭넓게 산개해서 자세를 잡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수가 너무 많다. 한 사람이 세 마리 이상을 쓰러뜨린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렇게 아래를 향해 쏘는데도 김 상병의 탄환은 멀리 날아가 뒷줄의 놈들에게만 꽂혔다.

“계단! 계단을 집중해!”

좀비들이 계단 위로 뛰어오를 것이라 생각한 이 병장의 판단은 틀렸다. 놈들은 네 발로 기면서 완만한 경사를 날듯이 타고 오른다.

이런 젠장!

이 병장이 뒤늦은 후회를 하며 총구를 돌려보지만, 놈들은 벌써 그들과 대등한 위치까지 올라와 있다.

“어떡해! 꺄아아악~!”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남자들이 몸을 치며 뛰어 달아난다. 가뜩이나 힘이 든 상황에서 그 정도의 혼란은 병사들의 집중력을 완전히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이이익! 중위가 이를 바드득 갈며 좀비들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강 일병도, 김 상병도…… 모두 이제는 죽는구나 하는 각오를 다졌다. 빗발처럼 쏟아부은 포화도 좀비들의 전진을 막아내지 못했다.

네 병사는 뒤로 물러나며 열심히 쏘아보지만, 이제 곧 탄창이 텅 비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그리고 자신들이 그걸 갈 만한 여유가 없다는 사실도 절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으윽, 김 상병이 또다시 중심을 잃고 넘어진다. 그리고 그에게 발이 걸려 강 일병과 중위도 넘어졌다.

투투둑― 투투둑― 투툭― 투투둑―!

그 순간, 아홉 시 방향에서 들려온 총성. 그리고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다섯 마리의 좀비가 머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고꾸라졌다. 계단을 뛰어 올라오던 두 마리 역시 두개골이 터져 나간 채 아래로 곤두박질쳐 버린다.

하아아~ 빈총을 꽉 움켜쥐고 전방을 노려보고만 있던 이 병장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나왔다.

총알이 날아온 곳으로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만, 보기 전부터 이미 누가 쐈는지는 알고 있다. 그들이 속한 대대에서 이 정도를 해낼 수 있는 녀석은 한 명뿐이니까…….

“박 이병, 이 새끼야! 늦었잖아! 끄으으~”

김 상병이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아무리 센 척을 해보려고 해도 이미 무릎의 고통은 그 한계를 넘어섰다.

“3호기에서부터 여기까지 계속 뛰어오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허억~ 허억~”

진우가 허리를 숙이고 겨우 숨을 돌렸다. 윤 일병은 토하기 일보 직전이다. 진우가 근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들 계십니까? 그리고 다른 분들은…….”

“모두 전사했다. 여기 보이는 게 남은 병력 전부야.”

이 병장이 탄창을 갈아 끼우며 대답해 준다. 충격을 받은 진우와 윤 일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진우는 고개를 돌려 도로 쪽을 내려다봤다.

3호기에서 탈출한 미니버스가 전면이 찌그러진 채 멈춰 서 있고, 트럭 역시 옆으로 넘어진 상태다.

저 버스, 3호기 앞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그렇게 과속을 하더니, 결국 사고를 내고야 말았군.

“잘 왔어! 다 집결했으니까 이제 도보로 이동한다. 2킬로미터 정도니까 20분 내에 주파하는 걸 목표로 한다. 박 이병, 선봉에 서!”

이 병장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는 동안, 뒤로 도망갔던 연구소 직원들이 다시 슬금슬금 걸어온다.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그들을 보고 진우와 윤 일병은 긴장했다. 살이 찢긴 상처를 가진 사람들도 눈에 띈다.

“이 병장님, 저분들 전부 안전한 게 맞습니까? 외상자들이 많습니다.”

윤 일병이 걱정스레 묻는다. 이 병장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몰라. 그냥 멀쩡히 교통사고 때문에 다친 사람들 행세를 하고 있으니, 뭐 알아낼 도리가 있나? 행여 물렸다고 해도 설마 우리에게 솔직하게 말하겠어?”

“그런데도 함께 갑니까?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 자기 발로 쫓아오는 사람들을 발로 차서 쫓을 거야? 따라오지 말라고 하면 듣겠냐고.”

“제가 한번 말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강 일병이 직원들을 향해 외쳤다.

“혹시 물리신 분은 따라오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물론 강 일병의 순진한 시도는 먹히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상처가 트럭과의 충돌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그대로 뒀다가는 도무지 입을 다물어줄 것 같지 않아서 이 병장이 나섰다.

“앞서 달리지 마세요! 그리고 교전이 시작되면 방해가 되지 않게 모두 제자리에 엎드리는 겁니다. 강 일병, 네가 가장 뒤에서 호위하며 따라온다. 중위님, 경계 확실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생존 직원들의 수는 모두 네 명. 전력이 될 만한 사람은 없었다.

타타탕― 으악~!

멀리 빗속에서 총소리와 비명이 들려온다. 조금 전 총을 가지고 게이트 쪽으로 달아났던 사람들일 것이다. 간간이 울리던 총소리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곧 잠잠해졌다. 비명 소리마저 끊긴 걸 보면 벌써 모두 당한 게 분명하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간다! 그리고 터널이 나타나면, 그때 아래로 내려간다. 알겠지!”

사무실 사이로 튀어나오는 놈들을 조심해야 하겠지만, 계단 위가 아래쪽 널찍한 도로를 달리는 것보다야 안전할 것 같았다.

디젤 터빈인지 뭔지, 저놈의 네모난 건축물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증기 안개만 없어도 시야가 한결 넓게 확보될 터였다. 그리고 몰아치는 파도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가자! 뛰어, 뛰어!”

이 병장의 명령과 함께 일행은 달리기 시작했다. 가끔씩 길을 가로막고 얼굴을 들이미는 좀비들은 아가리를 벌리기도 전에 진우의 탄환에 관통되어 벽에 처박혔다.

후우우~ 후우우~

윤 일병의 어깨에 기대 달리는 김 상병은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린다.

몇 개의 간이 건물 창고를 지나 2층 높이의 휴게소를 지날 때까지는 그래도 순조로웠다. 문제는 발전 시설 1호기의 곁을 어떻게 지나는가 하는 데 있었다.

거대한 1호기 건물 앞에는 수많은 좀비들이 달라붙어 손톱이 벗겨지도록 벽을 긁어 대며 포효하고 있었다.

그들이 위치한 곳에 가장 가까운 놈과의 거리는 50여 미터, 높이 차이는 3미터 정도 된다. 진우는 일단 모두를 정지시키고 이 병장을 손짓으로 불렀다.

“젠장…… 여기서 5분만 더 가면 지하 통로인데…….”

가로수 뒤에 숨어 놈들의 동향을 살피던 이 병장이 난감하다는 듯 웅얼댔다.

오늘 밤 그렇게 많이 없앤 것 같은데, 봉인된 발전 시설 앞에는 아직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놈들이 모여 있다. 핵발전소가 어지간히 마음에 드는지, 놈들은 자석에 달라붙은 쇳가루처럼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플래시를 끈 다음, 소리를 죽이고 포복해서 지나가자. 그렇게 하면 높이 차이 때문에 이쪽이 안 보이지 않을까?”

곁으로 다가온 중위가 속삭인다. 이 병장은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진우를 돌아보았다.

진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시각이나 청각 같은 오감이 아닌, 무언가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을 감지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저렇게 눈이 뒤집혀 발전소에 달라붙어 있는 상황이라면 이쪽에게도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

“좋아, 그렇게 해보자. 뒤쪽으로 전달해. 별도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천천히 포복으로 이동한다고.”

명령을 내린 이 병장은 김 상병에게 다가갔다. 부어올라 있는 무릎을 보니 그가 참아내고 있는 고통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충분히 가늠이 간다.

“김 상병, 우리 기어가야 한다. 너, 가능하겠어?”

“후우우~ 후우~ 충분합니다. 이까짓 거, 오른쪽으로만 기어가면 되지 말입니다.”

“그래, 이제 다 왔다. 조금만 더 가면 탈출이야. 우리 나가고 나면 이 지긋지긋한 데는 아예 쳐다보지도 말자.”

김 상병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 보인다. 포복 이동은 순조로웠다.

그롸아아아―

놈들의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침착하게 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아니, 된다고 생각했다.

크르르륵!

기어가고 있는 일행의 앞에 좀비 한 마리가 걸어서 다가온다. 절룩이는 다리, 떨어져 나간 두 팔…… 놈의 상태도 어지간히 좋지 않았다. 제대로 속력을 내지 못해서 무리로부터 떨어진 놈인 것 같았다.

크르르르―

놈의 입에서 또다시 그르렁대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놈의 신호가 혹시라도 동료들에게 전달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진우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퍼걱!

벌어져 있던 놈의 아래턱이 떨어져 나간다. 하지만 좀비는 쓰러지지 않고 곧바로 달려들었다.

빠악!

이번에는 이 병장이었다. 이 병장의 개머리판이 놈의 머리를 180도 가까이 돌려 버렸다. 목이 돌아간 좀비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가 경사로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하아아~ 진우와 이 병장이 다시 몸을 숙이며 한숨을 내쉰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한 놈이었기에 망정이지, 세 마리만 되었다면 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발전소의 놈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계속 이동합니다.”

이 병장이 뒤를 돌아보며 속삭일 때, 여자 엔지니어 중 하나가 마른기침을 터뜨렸다.

“콜록! 콜록! 캑! 캑, 우욱~!”

파도 소리와 빗소리에 비한다면 그것은 아주 조그만 소음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일행의 심장은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곁에 있던 윤 일병이 서둘러 손으로 입을 막았다.

“조용히 해요, 제발.”

그러나 여자의 기침은 좀처럼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난감한 윤 일병은 입을 막은 손에 더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우웨에엑―

윤 일병의 손에 뜨거운 토사물이 쏟아져 내린다. 엄청난 악취! 그녀의 증상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윤 일병이 몸을 빼려고 했지만, 여자가 입을 벌리는 것이 더 빨랐다.

와드득!

여자의 이빨이 독하게 다물어지자 윤 일병의 손가락 두 개가 뭉텅 잘려 나간다.

“끄으윽!”

윤 일병은 피가 배어날 만큼 입술을 꽉 깨무는 것으로 비명을 대신하고 여자의 몸을 밀쳤다.

소리를 내지 않고 처리하기 위해 대검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검지와 중지가 날아가 버린 손으로는 칼 막이를 풀어내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롸아아아아~!

밀쳐 넘어졌던 여자가 몸을 일으키며 포효한다. 곁에 엎드려 있던 민간인들 역시 그에 지지 않을 만큼 큰 소리로 비명을 질러 댔다. 윤 일병은 재빨리 왼손을 휘둘러 여자 좀비의 목을 그었다.

사각― 피부를 스치고 지나는 칼날!

너무 얕았다!

그롸악~!

목에서 피를 분수처럼 쏟아내는 좀비가 윤 일병의 몸을 덮친다.

1655446469547.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