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안간힘 (1)
(120/449)
120. 안간힘 (1)
(120/449)
120. 안간힘 (1)
2021.12.29.
초조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던 김 상병이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
“의사가 몇 호에 있습니까? 의사! 몇 호예요?”
“308호였지, 아마…… 아닌가…….”
김 상병은 대답을 듣자마자 재빨리 뛰어 올라가서 308호의 문을 두들겼다.
쾅쾅쾅― 쾅쾅쾅―
다급한 김 상병은 워커 발로 문을 걷어찼다.
“사람이 죽어가요! 제발 도와줘요!”
“뭡니까?”
꽤나 노년의, 그러나 능숙해 보이는 사내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김 상병은 급하게 손부터 잡아끌었다.
“부상당했습니다. 급하게 지혈을 해야 해요.”
“지혈이라니? 외상병은 접촉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그게 규칙입니다!”
“물린 거 아니라고요! 아저씨! 얌전히 안 따라오면 내가 무슨 사고를 칠지 나도 모릅니다!”
김 상병이 멜빵에 건 총을 들어 보이며 으르렁거린 다음에야 의사는 마지못해 그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2층 의무실 침대에 조 일병을 눕히고 상태를 본 의사는 다시 절망적인 얼굴을 지었다.
“어렵습니다. 저 정도는 전문 병원이라고 해도 어려운 상태예요. 여기는 원래 응급조치만 하는 곳이란 말입니다.”
정맥주사를 놓고 수액을 연결한 의사가 이 병장을 구석으로 끌고 와 귓속말을 한다. 이 병장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기적을 바라고 싶었던 그는 무작정 사정을 하기로 했다.
“어려운 거 압니다, 선생님. 제발,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피만 좀 멎게 해주시면…… 그리고 고통만이라도 좀 줄여주시면…….”
“둘 중에 한 가지는 할 수 있어요. 몰핀을 투여하면 아픈 건 좀 가실 겁니다. 하지만 그러면 심박이 떨어져서 결국…… 더 위험이 커집니다.”
“피는…… 상처를 좀 꿰매면 안 됩니까?”
“그렇게 해도 내부에서는 피가 계속 나와서 고여요. 이미 끊긴 동맥들이 수축돼서 근육 안으로 숨었는데, 그걸 다 끄집어내서 연결하는 걸 나 혼자 할 수가 없어요.”
이 병장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젠장, 순식간에 두 명이나 목숨을 잃는 건가…….
아직 멀쩡히 살아 있는 애가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미칠 것만 같다.
후우~ 소리 죽여 한숨을 흘린 이 병장은 의사에게 속삭였다.
“그럼…… 가장 안 아픈 진통제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잠자는 것처럼…….”
말을 다 맺기 전에 의사는 알겠다는 표정으로 이 병장의 어깨를 두들겼다.
“끄으으~ 끄으, 후, 후, 이, 이 병장님, 저…… 끄으으, 어떻게 되는 겁니까? 후, 후우~”
의사와 대화를 마치고 돌아온 이 병장에게 조 일병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이 병장의 가슴속에서 뜨거운 게 울컥하고 치솟아 올랐지만, 애써 침착한 말투로 대답했다.
“자식, 이제 괜찮아. 병원에 왔잖냐? 선생님이 주사 놔주실 거야. 그다음에 맥박이 진정되면…… 너, 몇 바늘만 꿰매면 된다고 하신다.”
“아…… 끄으, 감사합니다. 후, 후, 이렇게 살려주셔서…… 끄으, 끄으으, 처음에 지혈도…… 후, 후, 잘해주시고…….”
조 일병은 이 병장의 손을 꽉 잡았다. 비에 젖은 데다 피가 많이 빠져나가 이미 죽은 사람의 손처럼 차다. 부들거림만이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증거였다.
“쉬어. 한잠 자고 나면 수술은 다 끝났을 거다.”
“죄, 죄송합니다…… 끄으으, 후, 후, 아무런 도움이 못 돼드려서…… 후우, 후, 하아…….”
“그런 말 하지 마. 넌 최선을 다했어.”
그러는 동안 의사가 진통제를 주사했다. 얼마나 독한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맞자마자 조 일병의 일그러진 얼굴이 조금 펴지는 게 보였다.
하아아~ 그제야 살겠다는 듯 조 일병이 한숨을 내쉰다. 이 병장은 그런 그의 마지막 모습을 두 눈에 담고 몸을 돌렸다.
“이, 이 병자응니임…….”
돌아서서 의무실을 나오려는 이 병장을 조 일병이 부른다. 혀가 많이 풀렸다.
“응? 왜?”
“저…… 끄으으, 수술 끝나며어 다르 외상자드처럼 끌려가니까? 거기…… 후, 너무 무서스니다. 소, 소문이…….”
이런 씨발!
이 병장의 눈에 왈칵 눈물이 고였다.
“너, 너는 거기 안 끌려간다!”
이 병장은 목소리를 추스르고 단언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 그러니까 그건 안심해라!”
이 병장의 다짐에 조 일병은 그제야 평화로운 얼굴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제기라알!
다섯 명의 병사는 분노와 절망으로 터질 듯한 얼굴을 푹 숙이고 1층으로 내려왔다.
타타타타타―
사방에서 총소리가 들려온다. 해안 쪽에서는 비명도 울리는 것 같다. 저 바리케이드가 뚫리면 그다음엔 2킬로미터 밖의 발전 시설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것이다.
“김 상병.”
조수석에 앉은 이 병장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나지막이 김 상병을 불렀다.
“아까 말했던 그거, 지금 하자.”
“에? 정말이십니까?”
“그래, 여긴 이제 끝났어. 더 이상 의미 없이 애들 죽는 꼴은 못 보겠다……. 어차피 우리 몇 명 정도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 아니겠냐? 저 새끼들도 사람 취급 안 해주고.”
이 병장이 작전실이 있는 대학원 건물 최상층을 노려본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김 상병도 입을 꽉 다물고 기어를 넣었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서 떠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여전히 트럭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연구원들은 불쌍하지만, 돕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목숨을 바쳐 5분을 벌면서 오지도 않을 지원 병력을 기다리기에는 이미 충성심이 너무 엷어졌다.
“이봐,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큰 위기인가?”
트럭이 막 출발하려는 순간, 운전석 아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인슈타인이다. 김 상병은 망설이지 않고 일단 그를 태웠다. 살려주고 싶은 사람이다.
“타세요!”
“어디를 가는데?”
물어보면서도 일단 아인슈타인은 조수석에 몸을 비집고 올라탔다.
“발전소 밖으로요!”
“그, 그럼 여기 방어는?”
“이미 늦었습니다. 해안 도로가 전부 좀비들에게 점령당했어요. 바리케이드로 막고 있지만, 아마 5분이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안 되는데……. 이보게, 나 좀 발전 시설로 데려다 줄 수 없겠나? 건물을 봉쇄해 버리면 다만 얼마라도 시간을 벌 수 있어. 나한테는 그 명령 취급 권한이 있네.”
“새로 올 방어 부대에 맡기고 그냥 잊어버리세요. 좀비들이 발전소를 때려 부술 만한 지능이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경수로에 설치된 파이프 내부는 120기압이 넘어. 여러 마리가 거기에 매달리기라도 하면 그 순간 대폭발이 일어날 걸세. 제발, 이렇게 부탁하네. 응?”
“가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설사 가고 싶어도 못 들어갑니다. 저쪽 도로에는 벌써 바리케이드가 막혀 있어요. 뛰어서 간다는 건 자살행위고요.”
김 상병은 심드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열심히 핸들을 좌우로 틀었다.
“길은 있어.”
아인슈타인이 김 상병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치며 말했다.
“귀빈 전용 지하 통로가 있네. VIP나 뭐, 그런 분들이 이용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비상시 탈출 용도도 겸해서 설치한 거지. 제발…… 자네들더러 함께 저 안에서 죽자고 하지는 않겠네. 날 거기까지만 데려다줘. 이 속도라면 발전 시설 세 곳 모두를 도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을 걸세.”
김 상병이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리며 이 병장의 눈치를 보았다. 이 병장도 뭐라고 하기 난감한지 잠시 머뭇거린다.
“전에 말했지 않은가, 여기가 무너지면 나라 전체가 위험해진다고. 지금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피폭 범위는 수십 킬로미터가 넘네.”
아인슈타인이 다시 한 번 간절하게 빈다.
이렇게 더러운 경우가 다 있나…….
김 상병은 이를 바득 갈았다. 지금 돌아가면 좀비들에게 무사하지 못할 것이고, 만약 달아나면 며칠 내로 방사능에 노출돼서 죽게 된다. 하지만 애초에 답은 정해져 있었다.
“에이잇!”
김 상병은 커다란 핸들을 바쁘게 돌려서 트럭의 방향을 틀었다.
“그래, 그 지하 통로가 어딥니까?”
“대학원 건물 B동! 거기 차고 지하 2층이 통로와 이어져 있어.”
김 상병은 이 병장의 눈치를 흘끗 살펴본 후,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이 병장 역시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지금껏 수백 명이 목숨을 걸고 해왔던 일이므로 떠나기 전에 유종의 미를 거둔다거나 하는, 그런 거창한 논리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이 포기하면 발전소는 폭발하게 될 것이고, 어차피 터지면 다 죽는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오늘을 살아남은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내일을 살기 위해서는 오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다들 잘 들어! 지금부터 지하 통로를 이용해서 발전 시설로 접근한다. 우리 임무는 이 연구원을 그곳까지 이송하고, 발전소 세 곳을 폐쇄하는 동안 엄호하는 것이다. 마지막 임무가 될 테니까 정신 바짝 차려라. 알아들었지?”
“마지막 임무?”
강 일병과 진우를 제외한 분대원들이 무슨 뜻인가 싶어 잠시 술렁인다. 하지만 대충 눈치를 채기는 했다.
이곳의 경비는 실패했다. 병력 지원은 더뎠고, 병사들을 소모품 정도로만 취급하는 지휘관 때문에 사기는 땅에 떨어졌으며, 예고 없이 몰아친 태풍까지 상황을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명령을 전달받지 못해 분대 단위로 우왕좌왕하며 뛰어다니고만 있는 병사들이 그 증거다.
“이봐, 너희들. 무슨 계획은 가지고 움직이는 거야? 그냥 무작정 여기에서만 벗어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중위가 트럭 뒤창에 바짝 다가와 묻는다. 이 병장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 밤에 갑자기 생각한 건데 거창하게 계획까지 짰겠습니까? 그냥 살아남으려는 겁니다.”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려가며 바쁘게 트럭을 몰던 김 상병도 한마디 했다.
“명예 찾으실 거면 지하 통로 지나는 대로 내려 드리겠습니다. 거기에서 게이트 경비대 애들이랑 합류하시면 명예롭게 싸우실 수 있을 겁니다. 야! 비켜!”
우물쭈물하고 있는 한 무리의 병사들을 칠 듯 스쳐 지난 트럭이 이내 대학원 건물 B동에 도착하는 동안 중위는 굳게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차고의 셔터는 굳게 내려진 채였고, 조명도 꺼진 상태다.
“기다리게. 내가 열 수 있어.”
재빨리 조수석을 열고 뛰어내린 아인슈타인은 셔터 옆에 부착된 전자 경보 장치의 자판을 눌렀다. 암호 키를 입력하고 검지를 가져다 대자, 전원이 들어오고 셔터가 올라간다.
“헤에~ 아저씨, 여기서 꽤 높은 분이셨나 보네요. 이런 건 보통 아무나 아는 게 아닌데…….”
아인슈타인이 다시 차에 오르자 김 상병은 감탄하며 차고 안으로 트럭을 몰아 들어갔다.
완만한 경사로를 지나자 아주 널찍한 차고가 모습을 드러낸다. 수십 대의 승용차들이 어둑어둑한 차고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섹션 H까지 쭈욱 직진하게. 거기에서 내려가면 터널이야.”
“갑니다!”
김 상병은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우우우웅―
풀 스피드에 가깝게 달리는 트럭의 엔진과 타이어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엄청난 울림을 만들어냈다.
순식간에 A부터 H까지 여덟 개의 블록을 지난 트럭은 한 층을 더 내려가 왕복 2차선의 통로로 접어들었다. 터널 위쪽에는 LED 조명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서 꽤나 환하다.
“엄청 크네요, 트럭 높이 때문에 못 지나가는 건가 걱정했었는데…….”
“말했지 않나, 비상 탈출 경로이기도 하다고. 그러려면 버스도 들어올 수 있을 만큼은 되어야지.”
초승달처럼 휘어진 코너를 빠져나가자 통로의 끝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가깝다. 이 속도라면 10분 내에 끝낼 수 있다던 아인슈타인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가서 바로 좌회전하면 되네! 그리고 첫 번째 원통형 건물 앞에 세워주게.”
“그럽죠!”
김 상병은 아주 살짝만 브레이크를 밟고 자신 있게 핸들을 꺾었다. T자형 도로인 데다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것이지만, 일시 정지 따위를 하고 있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이 정도면 전복되거나 하지 않고 충분히 스피드를 살려 회전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차피 차들의 왕래도 없을 테지……라고 생각했다.
“어어어어!”
트럭의 머리가 돌자마자 라이트 범위 내에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브레이크에 발을 가져다 대는 것보다 사람을 치는 게 더 빠를 만큼 가까웠다. 김 상병도, 아인슈타인도, 이 병장도…… 비명을 지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와자자작―!
트럭의 강철 범퍼에 받힌 사람은 순식간에 허리가 꺾여 바퀴 아래로 말려 들어갔다.
덜컹!
왼쪽 앞바퀴가 살짝 들리는 느낌. 다시 덜컹! 왼쪽 뒷바퀴가 흔들리는 느낌. 그러고 나서도 20여 미터를 더 달린 다음에야 트럭은 멈춰 설 수 있었다.
끼이익―
예상하지 못한 급정거 때문에 짐칸에서는 분대원들이 앞으로 쏠리며 넘어진다. 오발 사고가 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 정도였다.
“흐으으~ 저 지금 사람 죽인 겁니까? 허억, 허억…….”
김 상병이 울상을 지으며 얼굴을 감싸 쥔다. 대시 보드에 호되게 박치기를 한 이 병장도 정신을 추스르고 백미러로 뒤를 확인한다. 아인슈타인의 코에서는 피가 철철 흐른다.
“……야, 그냥 밟아.”
고개를 들고 백미러를 살피던 이 병장이 김 상병의 하이바를 탁, 치며 말했다.
“아니, 아, 아무리 그래도…… 도, 도의적으로 누굴 죽인 건지는…….”
“아무도 안 죽었으니까 계속 가라고, 인마!”
무슨 말이야? 조금 전에 분명 사람을 친 것도 모자라 밟고 넘어가기까지 했는데…….
이해하지 못한 김 상병이 고개를 내밀어 사이드미러를 살폈다.
엉망으로 박살 나버려서 이제 빗물이 튄 사이드미러에 비치는 형체만으로는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 덩어리가 뿌드득, 뿌드득거리며 일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어깨가 180도 돌아간 녀석의 아가리가 쫘악 벌어지며 포효가 울려 나온다.
그롸아아아아~!
“야이, 개새끼야! 놀랐잖아!”
김 상병은 고개를 내밀어 좀비에게 한바탕 욕설을 퍼부은 뒤, 트럭을 후진시켰다.
위이잉―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트럭의 뒷바퀴가, 일어나려고 애쓰던 녀석의 머리통을 박살냈다.
퍼거걱!
대갈통이 터져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김 상병은 다시 기어를 바꿔 앞으로 내달렸다.
그롸아아아―
뒤쪽에서 가로등 불빛에 의해 밝혀진 도로 위로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모습을 드러낸 채 달려오며 울부짖어 댔다. 조금 전 죽인 녀석의 일행들이 가까이에 있었던가 보다.
“뭐야! 왜 이렇게 많아! 게이트 새끼들은 뭘 하고 있기에…… 박 이병!”
사이드미러에 비친 좀비들을 보고 깜짝 놀란 이 병장이 진우를 부른다.
“넷!”
“뒤쪽 처리해! 혹시라도 위험이 될 수 있다!”
“알겠습니다!”
진우는 트럭 후방으로 자리를 옮겨 쪼그려 앉은 채 K―2를 겨눴다.
투투투둑― 투투투투둑― 투투투투둑―
탄약 걱정이 없으니 아끼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고, 그의 총구가 한차례씩 훑을 때마다 도로에는 녹색으로 부패한 좀비의 뇌수가 흩뿌려지며 전속력으로 뛰어오던 놈들의 몸뚱이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줄지어 늘어서 있는 대형 콘크리트 빌딩들 때문에 혼란스러워진 김 상병이 물었다. 지난 열흘간 이곳에서 먹고 자고 매일 싸웠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발전 시설 가까이까지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었다.
건물들이 보이는 크기나 모양으로 보아 터널의 출구는 발전 시설과 조금 전 바리케이드를 친 경비대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을 성싶다.
“으아! 여기도 또 있네!”
오른편 건물 틈에서 튀어나오는 좀비들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틀며 김 상병이 비명을 지른다. 트럭이 휘청거리는 것을 우려한 이 병장이 외쳤다.
“피하지 말고 그냥 받아! 바퀴 쪽 말고 정면으로!”
“막상 해보십쇼! 머리로는 알지만, 그게 잘 안 됩니다! 자꾸 움찔거리게 되지 말입니다!”
“바퀴벌레라고 생각해! 사람이 아니라! 아니면 레이싱 게임에서 길에 깔린 포인트라고 생각하든가!”
김 상병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이 병장을 돌아본다.
그게 되겠습니까, 저렇게 사지가 달린 놈들이 사람 얼굴을 하고 갑자기 튀어나오는데…….
그리고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두 마리의 좀비가 뛰어들며 길을 가로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