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불길한 바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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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불길한 바람 (5)
2021.12.27.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라서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아마 분명히 끔찍할 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원자만 나서도록! 내키지 않으면 굳이 뛰어들 필요 없다.”
이 병장이 강 일병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상을 당하면 탈영하자는 모의를 했던 터라, 지원자만 나서라는 이 병장의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런 내용을 전혀 모르는 정 상병과 나머지 분대원들이 먼저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서로 눈길을 마주친 진우와 김 상병, 강 일병 역시 그 뒤를 따른다.
“야, 너…… 너 인마…… 일단 들어가고 나면…….”
이 병장이 강 일병의 어깨를 짚으며 머뭇거린다.
외상을 입고 있는 그가 발전소 내부로 돌아가 전투를 벌일 경우, 아무리 운이 좋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다시 외부로 나오지 못한 채 헬멧이 덮어씌워져 끌려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강 일병은 오히려 대범하게 웃어 보였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제가 죽을 자리 정도는 제가 고르고 싶다고 말입니다.”
이 병장은 이를 악물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말리려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다른 뾰족한 수를 낼 수 없다는 게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가지고 있는 탄창이 두 개뿐인데, 사방에서 좀비들이 폭풍처럼 쏟아져 내리는 이 밤에 혼자서 도망을 가봐야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마음을 모질게 먹기로 한 이 병장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래, 같이 가자!”
그 짧은 대화를 나누고 결정을 내리는 동안에도 파도에 떠밀려온 좀비들은 어느새 또 무리를 이루어 발전소 정문 경비대를 향해 뛰어온다.
널찍한 4차선 도로와 갓길, 주변의 잔디밭까지 온통 벌거벗은 채 달려오는 썩은 몸뚱이들로 채워져 있다.
“젠장! 또 온다!”
파파파파파― 투투투투둑―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정문 경비대의 K―3와 소총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파바박―
사방으로 흩날리는 탄자들 사이로 예광탄이 어지럽게 교차되고, 퉁퉁 분 좀비들의 몸뚱이는 걸레처럼 터져 나갔다.
수많은 K―2, 네 정의 K―3, 지프에 설치된 중기관총까지 일제히 사격을 퍼붓자 수십여 마리의 좀비 떼가 순식간에 몰살됐다.
물론 도로와 길가에 세워진 나무들까지도 몽땅 다 박살이 나버렸다.
그간 워낙 병력 소모가 많던 터라 정문 경비대에 1개 소대밖에는 배치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한 방향으로 집중된 소대 병력의 화력이라는 건 역시 대단하다.
“쿨럭! 야, 너희들! 좀 제대로 겨냥을 하고…….”
수분 때문에 무거워진 공기를 타고 자욱하게 번진 화약 연기를 흐트러뜨리던 이 병장이 하려던 말을 멈춘다. 갑
자기 탄약 문제로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이 병장은 조금 전 함께 무전을 날렸던 경비병을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
“너, 너희들, 탄창 몇 개나 지급받았어?”
“에? 탄창 말입니까? 그거…… 전부 다 네 개씩 아닙니까? 분대 지원화기는 400발.”
그래, 너희들도 그것밖에 가지고 있지 않을 테지…….
이 병장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의 감을 믿자면 분명 좀비들은 밤새도록 몰려 들어올 테고, 이 녀석들이 지금처럼 아무렇게나 난사를 했다가는 앞으로 서너 웨이브도 버티지 못하고 빈총으로 놈들과 맞서게 될 게 분명했다.
“안 돼, 이 정도 가지고는! 야, 너희들도 몇 명 따라와! 부대로 돌아가서 탄약 보충해 와야 돼!”
이 병장의 말에 다들 술렁거린다. 정식으로 내려온 명령도 아니고, 지휘관이 자리를 비운 터라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물론 정보도 턱없이 부족했다.
“내가 하나만 데리고 다녀오지. 이 아저씨 말이 맞는 것 같은데.”
경비대 소속 병장 하나가 나서며 진우네 분대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하더니, 선두에 서 있던 트럭에 올라탄다. 진우네 분대가 서둘러 짐칸 위로 뛰어오르자마자 트럭은 이내 출발했다.
어두운 짐칸 안에 마주 앉아 다들 아무 말이 없었다. 경비대가 자리 잡은 초소로부터 정문까지의 거리는 500미터.
거길 통과해서 대학원 건물들을 지나면 발전 시설로 이어진 게이트다. 그리고 그 선을 넘어가면 해안과 마주하게 된다.
쿠르르르르―
정문이 가까워졌을 때, 트럭이 차선 끝으로 붙는다 싶더니, 장갑차의 요란한 엔진 소리가 들려온다.
“휴우~ 다행이다. 그래도 예비 장갑차를 보내주기는 하는구나…….”
김 상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트럭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무리 열심히 싸워봐야 정문이 뚫린다면 별다른 의미가 없다.
쿠르르르―
장갑차 두 대가 속도를 높여 그들이 탄 트럭을 스쳐갔다. 그리고 완전무장한 레토나 세 대가 그 뒤를 따른다. 그런데……
그다음이 이상했다. 차출해 온 민간 SUV 한 대가 꼬리에 바짝 붙어 지나간다.
“저, 저건 뭐야? 전투에 도움도 안 될 것 같은데…….”
분대원들이 의아해하는 동안 여섯 대의 차량은 순식간에 정문 경비대가 쳐놓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달렸다.
콰앙―
박살 난 바리케이드가 사방으로 튀며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다시 트럭이 출발하자, 두 배의 속도로 멀어진 그 차량들은 완전히 외부 도로의 빗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뭐지? 지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대체 방어를 어디까지 가서 하려고…….”
김 상병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이 병장이라고 해서 알 리가 없다.
그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정문을 통과한 트럭은 탄약고가 있는 대학원 건물 A동에 도착했다. 병력이 총출동해 있는 산 쪽으로 탄약을 실어 나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여러 대의 트럭들이 엔진이 걸린 채 서 있었다.
“내려! 쓸데없는 고민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우리 눈앞에 있는 새끼들 먼저 처리한다!”
이 병장이 분대원들을 재촉한다. 운전을 하고 온 경비대 병사들도 급하게 뛰어내렸다. 그들은 서둘러 A동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3소대로 갈 탄약 어디 있어!”
“이거, 몇 시 방향입니까?”
“7.62밀리 탄약도 가져가야 합니다!”
탄약고로 사용하는 회의실 앞에서는 보급병들이 정신없이 떠들어 대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부족한 인원수로 무거운 탄약 박스를 움직이기 위해 서두르다가 상자가 엎어지자, 촤아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엄청난 양의 탄창이 매끄러운 복도에 쫙 깔린다. 회의실 내에는 K100이라고 적힌 박스들이 가득했다.
“개새끼들, 이렇게 잔뜩 쌓아놓고서…….”
정 상병이 분하다는 듯 중얼거린다. 다른 병사들의 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지! 너희들 뭐야?”
난데없이 뛰어 들어와 탐욕스러운 눈을 반짝이며 탄창을 보고 있는 열한 명의 병사에게 보초병들이 다가와 손을 들어 올리며 제지한다.
“정문 경비대다! 예비 탄약 지급해 줘! 빨리 돌아가야 돼! 지금 교전 중이다!”
이 병장이 나서서 급하게 설명을 한다. 따라온 경비대 병장도 동의한다는 의미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전 중이라고? 정문 경비대에 대해서는 우리는 지시받은 게 없는데?”
쏟아진 탄창을 열심히 한쪽으로 밀어 쳐서 길을 트고 있던 부사관이 끼어들었다. 분대원들의 눈빛이 사납게 변한다.
지시? 이 개새끼들이 한가한 소리 하고 있네! 우리가 매일 좃 뺑이 치는 동안 여기에서 에어컨 쐬면서 박스 개수나 세고 있는 새끼들이…… 라는 말이 하마터면 목구멍 밖으로까지 치고 나올 뻔했다.
발끈해서 대들려는 정 상병을 제지하면서 이 병장이 말했다.
“그럼 빨리 확인해 주십쇼! 탄약이 부족해서 밀리기 직전입니다!”
“중위님! 어떻게 합니까?”
때리라는 무전은 때리지도 않고 부사관은 또 곁에 선 장교에게 확인을 해본다. 장교는 잠시 턱 주변을 감싸 쥐고 생각해 보더니 짧게 말했다.
“그냥 좀 줘서 보내라.”
이런 씨발, 거지 동냥을 주는 것도 아니고!
분대원들의 얼굴에 또 한 차례 분노가 휩쓸고 간다. 하지만 다들 애써 꾹꾹 눌러 참았다. 여기에서 쓸데없이 말씨름이나 하려고 다시 돌아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빨리 챙기자!”
이 병장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병사들은 2인 1조가 되어 탄약 박스를 날랐다.
정 상병이 마지막으로 욕심을 부려서 800발들이 K―3용 탄 박스 두 개를 낑낑거리면서 가지고 나왔을 때에는 일종의 성취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강 일병의 부상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이 문제였다.
“엇?”
복도에 점점이 떨어져 있던 핏자국을 본 것은 중위였다.
“이게 뭐야? 응? 이거…….”
워커로 붉은 핏방울을 문질러 본 중위는 곧바로 안색이 바뀌어 진우네 분대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매의 눈으로 용의자를 물색하던 중위의 눈에 강 일병이 들어왔다.
다들 소매를 접어 입었는데, 한 놈만 소매를 끝까지 내리고 있다.
저놈이구나! 바보 같은 놈들, 저희들 내부에 외상자가 있는 것도 모르고…….
“야! 거기 서봐! 정문 경비대!”
“돌아보면 안 됩니다. 강 일병님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마음 약한 김 상병과 강 일병이 주춤하려는 순간, 뒷줄에서 걷고 있던 진우가 등을 떠밀며 말한다. 이 병장이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단호하게 명령했다.
“속도 올려! 계속 걸어!”
그리고 병사들은 위치를 바꾸어 강 일병을 앞쪽으로 보냈다.
정문 경비대 소속의 병장도 별다른 내색도 하지 않고 잘 따라준다. 자신의 명령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언짢아진 중위가 다시 더 큰 소리로 불렀다.
“야, 이 새끼들아! 서라고! 내 말 안 들려?”
모두 무시하고 걸음을 서둘렀다. 복도에는 다른 병사들이 많았지만 다들 자신의 임무 때문에 바빴기 때문에 그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다시 자기 업무에 집중할 뿐이다. 공연히 뛰어서 시선을 집중시키지만 않으면 된다.
“이런 개새끼들이! 멈추라고! 거기 서란 말이야, 외상병! 외상자! 이 쌍놈의 새끼들아!”
발끈한 중위가 권총집을 풀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분대원들은 벌써 긴 복도를 다 지나왔다.
트럭까지만…….
모두들 낑낑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발을 움직였다. 중위는 달리면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정문을 빠져나오자마자 공포탄이라도 발사할 요량이다.
덜컥, 정문 너머 계단 아래에 탄약통이 하나 떨어져 있어서 하마터면 헛디뎌 구를 뻔했다.
이 새끼들, 기껏 탄약을 달라고 해서 줬더니 여기다가 버리고 가?
이래저래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은 중위는 트럭 쪽으로 멀어져 가는 병사들의 뒤통수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야! 너! 소매 내린 새끼! 거기 안 서? 확 쏴 버릴까 보다! 명령을 뭐로 알고 이런 개…… 헉!”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던 중위가 문득 신음을 토한 뒤 입을 꽉 다물었다.
턱밑을 꾹 누르는 진우의 총구 때문이다. 진우는 환한 정문을 지나치자마자 만나게 되는 어둠의 사각 속에 몸을 숨긴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쉿―! 조용히 하십쇼. 이 거리에서는 빗나갈 수가 없습니다.”
진우가 속삭인다. 중위는 마른침을 삼키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자신에게 총을 겨눈 이 졸병을 노려보았다.
“너, 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줄 알아? 이렇게 하고도 멀쩡할 수 있을 것 같아?”
“자꾸 소리를 내시면 그냥 당겨 버리겠습니다. 국방부 덕에 사람 머리통 날리는 건 이제 아주 익숙합니다.”
진우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어조로 차분하게 말했다. 그의 말에서 진심을 느낀 중위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무장해제하겠습니다.”
진우가 왼손을 뻗어 중위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는다. 중위는 이놈이 엉뚱한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너, 너희들을 어쩌려는 게 아니야! 너희 중에 외상자가 있다! 그놈을 그냥 두면 너희들도 위험해져! 죽을 수도 있어!”
“지금 가장 위험해진 사람은 중위님이십니다. 자, 이제 걸어가십쇼.”
권총을 오른손으로 옮겨 쥔 진우가 중위에게 바짝 붙어 서서 권총 끝으로 등을 쿡 찌른다.
“어, 어디로 가란 말이야?”
“저 트럭으로 들어가십쇼.”
진우가 가리키는 것은 시동이 걸린 채 서 있던 여러 트럭 중 하나였다.
별다른 수가 없어서 중위는 시키는 대로 걸었다. 그가 속도를 줄이거나 멈춰 서려 할 때마다 진우는 사정없이 총구를 들이밀어 척추를 압박했다.
“야~ 중위님, 어서 오시지 말입니다. 누추합니다.”
운전석에 앉아서 뻔뻔하게 웃고 있는 김 상병을 지나쳐 짐칸으로 가자 분대원들이 박스를 열고 탄창을 챙기며 기다리고 있다.
쿡, 빨리 올라타라는 의미로 진우가 또 등을 찌른다. 중위는 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트럭 위에 몸을 실었다.
부우웅~
탄약을 나눠 실은 정문 경비대의 트럭이 그들보다 한발 먼저 출발해 자신의 부대로 돌아갔다.
“탑승 완료했습니다.”
정 상병이 트럭 뒤창을 두드리자 그들을 태운 트럭도 출발했다. 안쪽 깊숙한 곳에 감금되다시피 한 중위가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너희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려주기만 하면 나는 잊을 준비가 돼 있다. 혹시…… 이 와중에 집단 탈영이냐? 그래서 탄약을 챙겼어? 그래, 가라. 하지만 나는 명예로운 장교로서 거기에 협조할 수 없어. 그러니까 내려다오. 나에게는 국가 수호라는 신성한 의무가…….”
“쫌! 쫌!”
정 상병이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대검을 꺼낸다. 한참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이던 중위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우우우웅~
대학원 건물들 사이를 빠르게 내달린 트럭은 이내 발전 시설과 이어진 게이트에 도착했다.
“시끄럽게 하지 맙시다.”
트럭이 멈춰 서자 정 상병이 만일을 대비해 바짝 붙어 앉으며 대검을 중위의 옆구리에 가져다 댄다.
“지원 병력이야? 한 트럭? 이게 다야?”
게이트 경비병들이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큰 소리로 외친다. 이 병장이 차에서 내려 대답했다.
“정문 외곽 경계 병력이다. 파도를 타고 해안으로 접근했던 좀비들과 교전을 마치고 지금 돌아왔다. 여기는 어때?”
역시 작대기 네 개짜리인 경비병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아, 젠장. 안 좋아. 안 좋으니까 지원 병력 요청했지. 근데 대체 왜 안 오는 거야? 위급하다고 무전 때린 지가 언젠데? 답도 없고, 지원도 안 오고!”
게이트 너머에는 방어용 참호와 초소가 있고, 또 다른 서치라이트는 바다 쪽으로 난 철책을 비추며 움직이고 있다.
촤아아~ 처얼썩~! 솨아아~
파도는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사납고 높아져 있었다. 테트라포드 방파제를 넘어올 만큼 거대한 파도가 이따금씩 몰아칠 때면 좀비들이 3미터 높이의 철책 꼭대기까지 부딪쳐 온다.
철책 아래에는 박살이 난 좀비 시체들도 여러 마리 자빠져 있다. 아주 드물게 저 높이를 넘어서까지 날아온 놈들인 모양이다.
“여기 지키는 병력 얼마나 돼? 우린 한 분대가 다야!”
“마찬가지야! 그래도 철책이 버텨주니까 다행이지, 저게 없었다면 벌써 무너졌을 거야. 무전 다시 때려봐야지! 씨발, 탄약도 쥐똥만큼 줘놓고서…….”
경비병이 초소 안으로 들어가 무전기를 들어 올리는 순간, 다시 거대한 파도가 잇달아 휘몰아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 파도가 가장 컸다. 철책을 향해 엄청난 기세로 맹렬하게 치닫는 파도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이 실려 있었다.
초소 안의 경비병도, 바깥에서 기다리던 이 병장도, 운전대를 잡고 있던 김 상병도 모두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것은…… 불 꺼진 소형 어선이었다.
콰아아아~
파도에 휘말려온 소형 어선이 철책을 향해 내리꽂혔다.
콰자자작―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철책의 기둥이 휘고, 볼트로 단단히 고정시켜 두었던 철책이 뜯겨 나간다.
쏴아아~
벌어진 철책 사이로 수십 톤은 족히 될 양의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젠장! 빠져! 뒤로 빠져!”
경비병이 초소 밖으로 달려 나와 외치는 소리가 전달되기도 전에, 좀비들을 가득 실은 거대한 파도가 벌어진 철책 사이를 후려치듯 덮쳤다.
그롸아아아~
철책에 찍히고 긁혀 갈기갈기 찢어진 좀비들이 드디어 발전 시설의 아스팔트 위에 두 발을 내디디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