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학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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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학살 (4)
2021.12.18.
분명히 이곳에 들어올 때 입대하겠다는 지원서를 쓰기는 했지만…….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육만배는 한없이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뒤돌아서서 물었다.
“어이쿠, 이거, 이놈의 귀가 주책맞게 그만 두 분 말씀 나누시는 걸 들어버렸습니다. 허허, 징집이 드디어 시작됐군요. 저 같은 늙은이도 도울 수 있는 겁니까? 이래 봬도 아직 총 들 힘은 남아 있습니다.”
“하하, 육 사장님 마음은 감사합니다. 그런데 연세도 생각하셔야죠. 해당 사항이 없어요. 일단은 30대 이하 남자들만입니다. 대단한 비밀은 아닙니다만, 내일 다른 쉘터로 이송이 끝나고 나서 차출을 시작할 예정이니까 아직은 다른 분들에게 말씀하지 말아 주십시오. 아시죠?”
장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쉿, 하고 검지를 입술에 댄다. 하긴 징집 소식이 퍼진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는 없다.
이 꽉 막힌 쉘터에서는 아무도 달아날 수 없고, 달아난다고 해봐야 바깥은 좀비들이 우글거리고 있는데 어디로 가겠는가.
아마 끌려가기 전에 수용소 내의 다른 여자들과 섹스라도 해보려고 필사적으로 껄떡대는 게 전부일 것이다.
“그럼요. 저 육만배, 그 정도는 잘 압니다. 그리고 입도 꽤 무거운 사람이고요. 지익! 허허허.”
육만배는 웃으며 자기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고 돌아섰다. 그를 배웅하고 있을 때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 두 군데에서 환하게 불이 밝혀지고, 위이잉― 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혹시라도 좀비들이 이곳의 불빛과 웅성임에 끌려 다가올까 봐 만들어 놓은 미끼들이다.
아직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상부에서 별도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는 매일 장치를 가동시킨다. 그것이 군이라는 조직이다.
“젠장! 젠장!”
야구장 건물 내부로 들어온 육만배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가짜 웃음으로 가렸던 표독함이 얼굴에 드러나서 마주 걷던 사람들은 저절로 몸을 피했다. 스치기만 해도 살해당할 것 같은 적의가 마구 뿜어져 나왔다.
징집이라니! 징집이라니! 30대 이하 남자들만 해당되니까 안심하라고?
육만배는 이를 빠득, 갈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요리사와 연예인 계집애 둘만 빼고 자신의 부하들이 모조리 끌려갈 판이다. 그렇게 되면 만배파고 뭐고 끝장이다.
육만배는 빠르게 이동하면서 아까 그 군인 놈들이 나누던 대화를 되새겼다.
어차피 다음 달 초부터는 병력 차출하기로 돼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다른 쉘터로 옮긴다면 며칠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고, 그 시간 동안 묘수를 찾아낼 수도 있다.
탁―!
육만배는 실수를 하는 척하면서 세상모르고 편하게 뻗어 잠들어 있던 기동이의 다리를 걷어차고 지나갔다.
“어! 뭐야? 이런 씨…… 아이쿠, 회…… 아니, 아저씨, 왜 이러십니까?”
“미안합니다. 제가 바쁘게 걷다가 그만.”
눈치를 주니 기동이가 주섬주섬 일어나 따라온다.
아직 밤도 아닌데 저렇게 축 늘어져서 깊이 잠들어 있던 걸 보니, 기동이 이놈 분명히 또 그 계집애들을 끌고 화장실에 다녀온 모양이다. 암시장 뒤쪽의 화장실은 아직도 러브호텔이자 사창가의 역할을 위해서만 사용되고 있었다.
“너 이 새끼! 눈에 안 띄게 조용히 지내라고 했지?”
흡연용 외야석에 이르러 아무도 곁에 없을 때, 육만배는 기동이의 정강이를 걷어차면서 소리 죽여 성질을 냈다.
크윽~! 정강이를 맞은 기동이가 잠시 엄살을 부리다가 육만배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회장님, 조용히 지내고 있었습니다. 눈에 띌 일은 하지도 않았고요.”
“주댕이 다물어라! 눈에 안 띄고 싶은 놈이 대낮부터 계집애를 둘이나 끼고 화장실에 갔었나? 응? 그것도 연예인 나부랭이 년들을? 이놈의 새끼, 확 불알을 발라 버려야 그 껍죽대는 버릇을 좀 고칠래?”
기동이가 쭈뼛거리며 고개를 숙인다. 어떻게 알았을까 하며 고민하고 있다는 게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째 이 새끼는 이렇게 머리가 나쁜 걸까…….
육만배는 끌탕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문제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내 말 잘 들어. 조금 있으면 방송으로 새 수용소로 옮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지원자를 받을 거야. 애들에게 이야기해서 무조건 다 신청하라고 해. 가능한 한 빨리! 미적거리다가는 꼼짝없이 군대에 끌려간다. 알아들었냐? 봐서 무조건 사람이 더 많은 쪽으로 신청하는 거다. 우리는 내일 저녁에 여기 없어야 해.”
“회장님, 그러지 마시고 이 기회에 아예 여기를 접수하는 건…….”
“미친놈아, 우리는 스무 명이고, 저기는 총 든 군인이 3천이 넘는다. 생각을 좀 하고 지껄여!”
하도 미련한 소리를 해 대는 통에 육만배는 성질을 못 이기고 기동이의 아랫배를 후려쳤다.
후우~ 잠시 화를 삭인 육만배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빨리 가서 애들에게 이야기해, 한 놈도 빠지지 말고 신청하라고. 아, 그리고 초희 년에게 말해서 나 좀 보자고 해라.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어…….”
눈이 똥그래진 기동이가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 조금 늦을 겁니다. 씨, 씻고 오려면. 최대한 서두르라고는 하겠지만.”
“씻어? 왜?”
“그게…… 제가 콘돔을 싫어해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육만배는 피우던 담배를 놈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윽! 광대뼈 위에 불똥이 튀면서 기동이가 가볍게 신음하고 고개를 숙인다.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오늘 걜 부르실 줄 몰라서 제가 철없는 마음에 그만……!”
“그런 게 아니니까 닥치고 가서 얼른 애 보내! 사람들이 다 너처럼 365일 발정이 나 있는 게 아니다, 이 자식아.”
기동이가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육만배는 민구를 생각했다. 민구를 몰랐다면 모를까, 일단 알고 나서는 저런 놈들로는 도무지 만족할 수가 없다.
격차가 너무 크다. 민구가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텐데 도대체 왜 이렇게 늦는 것인지……. 육만배는 고개를 저으며 새 담배를 꺼내 물었다.
우우우웅―
멀리 환하게 불이 밝혀진 미끼용 건물에서는 여전히 둔중한 모터 소리가 들려온다. 육만배는 가늘게 뜬 눈으로 그 건물들의 환하게 밝혀진 조명을 바라보며 가벼운 상념에 잠겼다.
***
육만배가 잠실 쉘터에서 미끼용 거물의 조명을 보고 있던 시각, 민구도 같은 불빛을 보고 있었다.
그는 괴물들의 행진을 피하기 위해 고층 건물 옥상까지 피했다가, 갑자기 동쪽 하늘이 훤해지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높다란 빌딩 두 개 사이에 또 하나의 광원이 있다. 워낙 사방이 어두웠기 때문에 놓칠 수 없을 만큼 밝다.
“훗, 전기가 환하게 들어오는 걸 보니 신기하기까지 하군. 쉘터가 저기 어디쯤 있다는 말이겠지.”
혼잣말을 중얼거린 민구는 허리를 굽혀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길고 길었던 괴물들의 행렬이 이제 슬슬 끝나가는 중이다.
마치 무수한 바퀴벌레들이 떼를 이루어 꼭 달라붙은 채 원을 그리는 것처럼 괴물들은 이동하고 있다.
수천으로 이루어진 작은 무리들이 먼저 지나가고, 그다음 갑자기 그것보다 수십 배는 큰 규모의 떼가 도로를 가득 메웠던 것이다.
“저게 그 규모 여섯인가 뭔가인 것 같군. 큭큭, 무시무시하네. 만나지 않기만 바라야겠는걸.”
민구는 놈들의 무리를 피해서 달리는 것을 깨끗이 포기하고 이곳으로 대피한 자신의 판단에 스스로 박수를 보냈다.
비록 놈들이 지나가는 데에만 서너 시간이 넘게 걸린 데다가 가방을 두고 급히 올라와서 몇 시간째 담배 한 대 피우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곳이 안전하다.
오토바이를 탄다고 해도 양이 저 정도 되면 따돌린다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군인 놈들이 골목마다 끝을 막아버려서, 자칫하면 막다른 길에 몰려 버리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다.
“응?”
괴물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던 민구의 눈에 도로 건너편의 지하철역 입구가 들어왔다. 조금 특이한 광경이다.
“저놈들, 웃기는군. 저리로는 절대 안 들어가는 건가?”
비록 사방이 깜깜해져서 또렷이 보이지는 않지만, 괴물들이 뻥 뚫린 지하철역 계단을 피하듯 걷는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무리 내의 다른 놈들에게 달라붙어 이동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가 보다.
오호, 그래. 지하철…… 쭉 뻗은 선로……. 왜 지금까지 저기로 가볼 생각을 안 했었지?
새로운 루트를 발견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었다. 잘만 되면 오늘 밤 안에 잠실까지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괴물들의 행진이 끝나자, 민구는 다시 아래로 내려가 오토바이를 지하철역의 입구로 몰았다. 아무 데나 가리지 않고 겁 없이 돌아다니는 저놈들이 피해 가는 곳이 다 있다니, 신기하다. 무슨 이유일까?
“훗, 괴물 잡아먹는 귀신이라도 나오는 거냐?”
민구는 맥라이트 플래시를 계단 아래로 비췄다.
머리가 부서지거나 목이 떨어진 시체 몇 구가 엎어져 있을 뿐, 특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컴컴한 계단은 공포 영화의 배경처럼 미동도 없이 그저 아가리를 쩍 벌린 채 그를 기다리고 있다.
“가볼까.”
민구는 별 망설임 없이 RMZ 450의 핸들을 꺾어 계단 아래로 돌렸다. 아래에서 그가 만나게 될 게 무엇이든 간에, 적어도 십만 마리의 괴물 떼보다는 나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조금 전, 옥상 위에서 놈들의 커다란 무리를 보며 민구는 자신이 그간 운이 좋게 이동했다는 것을 절감했다.
카당카당―
계단을 타고 내려가며 앞바퀴가 흔들릴 때마다 입에 물고 있는 플래시 광원이 춤을 춘다.
헤드라이트가 없어서 맥라이트의 불빛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밤이니까 오히려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 아래 깊은 지하 선로는 낮이든 밤이든 캄캄한 어둠 속에 잠겨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그늘 속에 잠긴 지하 통로 양쪽에는 파괴당한 상점들이 죽 늘어서 있다.
부다다당―
길고 좁은 공간에서 머플러의 요란한 배기음이 메아리를 만들어내며 고막을 자극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거지?”
계단을 두 번이나 내려가서 승강장 바로 위쪽에 도달했을 때, 민구는 잠시 혼란스러워하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 게 대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개찰구 위에 붙어 있는 지하철 노선도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그의 고민은 훨씬 더 길어졌을 터였다.
“내가 있는 곳이 여기니까…… 이쪽으로 네 정거장만 더 가면 되는 건가……. 아니야, 그게 아니라 다음 역에서 이 색깔로 옮겨야 하는 것 같은데……. 끄응, 뭐야, 이거? 젠장, 좀 알아먹게 그려놔야 할 것 아냐…….”
초등학생처럼 노선도에 달라붙어서 한참 고민을 하고 머리를 갸웃거린 뒤에야 겨우 자신이 갈 길을 찾은 민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십여 년 전쯤 몇 번 타본 게 전부인지라, 지하철 노선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그로서는 꽤 큰 숙제를 한 것이다.
어쨌든 방향을 정한 그는 다시 좀 더 헤매다가 선로를 찾아 아래로 바이크를 몰았다.
희미하기는 하지만 옅은 노란색의 조명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 비상등일 것이다. 이미 잠실의 환한 건물들을 먼발치에서 보았던 터라, 전기가 공급되는 지역이 있다는 사실이 특별히 놀랍지는 않았다.
“크윽, 냄새 한번 지독하군.”
공기 순환 장치가 가동되지 않는 지하 공간에는 특유의 갑갑한 먼지 냄새와 시체들이 썩으며 풍기는 악취가 섞여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깨지고 금이 가 있는 차단벽을 따라 달리면서 민구는 입으로 숨을 쉬기 위해 물고 있던 라이트를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잠시 불빛이 아래로 움직이면서 사각이 생겼을 때,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바닥에 드리워져 있는, 굵은 소방용 호스였다.
피잉!
다시 라이트를 비췄을 때, 갑자기 팽팽하게 당겨진 소방 호스가 눈앞에 펼쳐진다. 피하거나 멈춰 서기에는 이미 늦었다.
사람이 있었나! 낯선 공간에서 길을 찾는 데에만 집중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실수를 하다니…….
민구는 핸들을 틀면서 몸을 눕혔다.
지이이이익―
매끄러운 바닥에 타이어가 미끄러지면서 각도를 줄여보았지만, 무릎 높이로 당겨진 소방 호스를 피할 수는 없었다.
콰당탕!
바이크가 튕겨 나가면서 민구의 몸도 하늘로 부웅 떠오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엄청난 소리와 함께 둘 다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티이잉―
민구의 손에 들려 있던 맥라이트가 데굴데굴 구르다가 그의 발치를 비추는 지점에서 멈춰 섰다.
“커억!”
쿵! 떨어진 민구의 입에서 커다란 비명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기절한 건가…….”
“기절? 그 속도로 떨어졌는데 당연히 뒈졌겠지. 너도 떨어지는 소리 들었잖아.”
침묵을 깨고 소곤거림이 울린다. 여전히 지하철 승강장은 어둠에 묻혀 있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맥라이트가 비추는 민구의 발뿐이다. 한쪽 신발이 날아가 버려 양말 차림인 것이 처량한 느낌을 더해준다.
“혹시 모르는 거니까 확인을 해보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캔 음료수가 날아와 민구의 다리를 맞춘다. 정강이 근처를 때리고 터진 음료수가 바닥에 흐르는데도 여전히 움직임이 없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 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휴우~ 놀랐네. 뭐지, 이 새끼?”
계단 밑의 기둥 아래에 숨어 있던 두 놈이 기둥에 묶어두었던 소방호스를 푼 뒤 얼굴을 내밀었다. 한 녀석은 쇠파이프를, 다른 녀석은 스패너를 들고 있다. 쇠파이프가 먼저 플래시를 켰다.
여러 바퀴를 돈 오토바이는 차단벽을 들이받고 멈춰 서 있고, 이상한 놈의 시체는 오토바이에서 여덟 발짝쯤 떨어진 곳에 널브러져 있다. 스패너가 갑자기 킥킥거리기 시작한다.
“미친 새끼 아닌가, 이런 때에 저런 걸 타고 다닐 생각을 한다는 게……. 나 좀 잡아먹으라고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큭큭큭, 게다가 뭐한다고 라이트도 없는 오토바이를 이 아래까지 끌고 왔지? 크크.”
“그러게. 씨발, 누가 배달의 민족 아니랄까 봐. 야, 근데 저거 뭐냐? 오토바이 뒤쪽에…….”
쇠파이프는 조심스럽게 걸어가서 마세티를 집어 들었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면서 가방 밖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오, 염병. 죽인다. 이것 좀 봐. 이 새끼, 이런 걸 들고 다녔어.”
마세티를 칼집에서 꺼낸 쇠파이프는 피와 뇌수가 묻은 칼날을 불빛에 비춰 보며 콧구멍을 벌렁댔다. 흥분하기는 스패너도 마찬가지다.
“야, 그거 나 줘. 너는 긴 무기 있잖아.”
“지랄, 엉기지 마라. 확 그어버릴까 보다.”
투덜거리는 스패너를 밀치고 쇠파이프는 마세티를 붕붕 휘두른다.
아깝게 무기 업그레이드의 찬스를 놓친 스패너는 얼른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운 후, 시동을 걸어봤다. 하지만 그것 역시 망가져 있자 성질을 부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씨발, 왜 나한테는 좋은 게 안 걸리는 건데! 왜 망가지냐고!”
“큭큭. 등신, 그렇게 날아갔는데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그리고 오토바이 있어서 뭐할래? 어딜 타고 다니려고?”
쇠파이프가 스패너를 비웃는다. 하지만 스패너는 금방 좌절을 뿌리치고 민구에게로 뛰어갔다.
“그럼 이 새끼에게서 나온 건 내가 갖는다. 오오, 이 시계! 이 새끼, 돈 좀 만지던 놈이었나 보다?”
스패너가 몸을 굽혀 민구의 팔목을 들어 올린다. 커다란 마세티의 매력에 사로잡혀 있던 쇠파이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야, 그 새끼 구두 사이즈 260인지 봐봐. 맞으면 내가 신을게. 아까 비춰볼 때 얼핏 발바닥에 찍힌 마크, 프라다인 것 같더라?”
그런데 대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