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덫을 놓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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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덫을 놓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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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덫을 놓다 (3)
2021.12.12.
“저것 봐. 저놈들, 정말로 담배 피우고 싶은가 본데?”
모여 서서 주춤거리는 좀비들을 가리키며 삼식이가 말했다. 길을 따라 얌전히 걷던 놈들이 복지 센터 근처에 이르러서 우왕좌왕하더니, 결국엔 복지 센터 1층의 재떨이 통 앞에 집결해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놈들이 모여들면서 복지 센터 내부로까지 줄이 늘어섰다. 이제 행진을 계속하는 놈들과 멈춰 서서 배회하는 놈들이 반반 정도 비율까지 올라갔다.
“저 지랄을 하느라 우리 사다리를 작살내셨구만. 변하기 전에 담배를 피우던 놈들이라 인이 박혀서 저러나?”
보안관이 투덜거린다.
“초딩들도 있는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저런 애들이 담배 피웠겠냐?”
“……너는 가끔 피웠잖아.”
“에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 같지야 않지이~”
망원경을 넘겨받아 보니 삼식이의 말처럼 아주 키가 작은 좀비들도 서성이는 대열 속에 끼어 있다. 넉넉하게 쳐준다고 해봐도 열 살은 넘지 않았을 꼬마들이다.
“어쨌든 실험을 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는 것 같다. 담배를 저렇게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나는 슈퍼에 좀 다녀올게. 삼식아, 저것들 빠지는 시간 잘 기억해 둬. 혹시 뒤에 더 오는 놈들은 없는지도 봐주고.”
좀비들의 행진 속도가 지지부진해지자 유빈이 혼자 일어서며 당부를 한다.
“슈퍼에 간다고? 왜?”
“화염병 만들 재료 챙기러.”
“화염병? 같이 갈까?”
보안관이 몸을 돌리자, 유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희는 따로 할 일이 있어. 저놈들 다 지나가고 나면 얘들이랑 선로 아래로 내려가서 케이블을 가지고 와줘. 무거울 거야.”
“케이블이라니? 여기 그런 게 어디 있어?”
신입이 따지며 묻자 삼식이가 대답해 줬다.
“이게 전철이잖냐. 공사가 끝나도 수리할 때 필요하니까 전철역 주변에는 케이블 통을 놓아두는 공간이 따로 있어. 그 왜, 너도 본 적 있을걸? 나무로 만든 바퀴 두 개 사이에 실패처럼 전선을 둘둘 말아둔 거 말이야.”
“몇 미터나 가져와?”
“그냥 통째로 가져가지, 뭐. 굴리면서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아~씨, 너희, 정말로 싸우려고 그래? 승산이 없다고, 이 답답한 새끼들아. 예전에 죽였을 때랑은 완전히 달라. 저거 봐! 수백 마리란 말이야! 그냥 조용히 숨어서 지내면 되는데 왜 자꾸 문제를 키워?”
겁먹은 신입이 짜증을 내며 말린다.
“좀비들이 매일 점점 더 원을 크게 그리는데, 여기까지라고 안 올 것 같아? 그때는 싸울 방법도 없어. 어차피 우리나 저것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돼.”
“다른 데로 도망가면 되잖아.”
“여기보다 더 나은 데 알고 있냐? 좀비들이 없는 동네가 어딘지 아냐고. 당장 한 정거장 건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야이, 븅신아. 사람 말 좀 들으라고! 이 씨발, 이러다가 우리 다 죽으면 그 책임도 네가 질 수 있어, 이 새끼야?”
유빈의 팔을 잡은 신입이 난리를 치자, 듣다못한 보안관이 끼어들었다.
“네 새끼 목숨을 누구한테 책임져 달라는 거야? 징징거리고 싶으면 혼자서 조용히 징징거려. 공연히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 주지 말고!”
“그래, 보안관. 너 말 잘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게 그 말이야! 싸우고 싶으면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 혼자 조용히 가서 싸우다 뒈지란 말이야! 저 좃도 아닌 새끼가 짜는 게 무슨 대단한 작전이라고 우리가 전부 그 말을 들어야 되는데? 난 싫으니까, 이번에는 도와달라는 소리 할 생각 말아, 개새끼들아!”
“뭐어? 누가 누굴 도와줬다는 거야? 네가 그동안 뭘 했는데?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새끼가!”
핏대를 올리던 보안관이 갑자기 입을 꾹 다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새끼…… 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렸다.
학창 시절 싸움이 일어나면 대부분의 경우, 그 책임은 전후 사정과 관계없이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는 친구들에게 덮어씌워졌었다. 그리고 성질 고약한 선생들은 회초리로 머리통을 두들기면서 잔소리를 늘어놓았었다.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말썽을 피우지?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새끼들이…….
고등학교는 졸업하라는 부모님의 간곡한 부탁만 아니었다면 당장 선생의 얼굴에 훅을 날리고 싶었을 만큼 보안관은 그 차별적인 말이 싫었다.
다른 사람을 향해서 나는 이런 몹쓸 소리를 지껄이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었는데…… 그런데 오늘 갑자기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어 버린 것이다.
얄팍한 진심이 표현된 것 같아서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큼, 큼, 저기…… 마지막 말은 취소한다. 잊어버려.”
보안관이 멋쩍어하면서 돌아섰다. 하지만 신입은 오히려 그리 신경 써서 들은 것 같지 않다.
“마지막 말이 뭔데?”
“못 들었으면 됐어. 신입, 이리 와서 담배나 피워.”
삼식이가 신입의 어깨를 잡아끌고 구석으로 가서 담배를 꺼내 준다.
전후 사정을 대충 아는 유빈이 한숨을 쉬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들이 그렇게 싫어했던 몹쓸 어른들을 닮아갈까 봐 두렵지만, 여기서 살아남지 못하면 누굴 닮기도 전에 모든 게 끝난다.
“침대 시트, 가위, 맥주병, 철사, 설탕, 알코올, 라이터 기름…….”
유빈은 잡념을 떨쳐 버리기 위해 자신이 챙겨야 하는 물건들을 읊으며 달렸다. 그것들을 다 담으려면 일단 큼직한 배낭부터 집어 가야 할 것이다.
***
아침 아홉 시 반이 되었을 때, 샤워를 마치고 새 옷을 꺼내 입은 민구는 떠날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도로를 메운 채 위협적인 소리를 내던 괴물들의 대규모 행진도 조금 전 막 끝난 참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다.
먼저 허리띠 뒤로 나이프 스트랩을 비스듬히 차고, 쿠크리를 끼워 넣었다.
샥―
등 뒤로 손을 뻗어보고 나서 민구는 히죽 웃었다. 익숙한 느낌의 칼이 익숙한 자리에 있는 그 감촉이 만족스럽다.
바람을 막아줄 재킷 안쪽에는 울트라마린 나이프를 찼다. 그리고 긴 가방 안에 소지품들과 마세티를 집어넣은 후, 지퍼를 올려 대충 잠가두었다.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간 그는 10리터짜리 휘발유 통이 가득 들어 있는 창고 안에서 하나를 꺼냈다. 휘발유라는 건 참 쓸모가 많기 때문에 만배파 창고에는 늘 이게 상비되어 있었다.
이걸 한번 뿌리기만 하면 먹고 죽으려 해도 없다던 돈이 곧바로 어디선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계약서를 읽어보지도 않은 채 열심히 지장도 찍는다.
게다가 불만 붙이면 범죄의 증거들이 싸그리 재가 되어 깨끗하게 사라져 준다. 물론 오늘 민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듯이 이 휘발유를 연료로만 쓸 것이다.
“조신하게 있어. 아무한테도 대주지 말고.”
자신의 애마인 트라이엄프 스피드 마스터를 지나치면서 민구는 길이 든 가죽 안장을 가볍게 쓸었다. 그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트라이엄프 대신 자신이 훔쳐 온 RMZ 450을 타고 가기로 했다.
헤드라이트조차 없는 놈이지만 오프로드 전용이어서 좁은 자동차 사이를 누비고 다니기도 좋고, 무엇보다도 ‘잠실 쉴 터’라는 곳이 얼마나 안전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평소 아끼던 오토바이를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만배파 간부들의 고급 자동차들과 함께 이 지하 차고의 어둠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편이 녀석에게도 나을 성싶다.
“후후후, 치안 상태 한번 좋군.”
키를 꽂아놓은 채 로비에 세워두었던 RMZ 450이 아무의 손도 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을 본 민구가 킥킥거린다.
연료를 보충하고 새의 부리처럼 길쭉한 뒷바퀴 진흙받이에 가방을 고정시킨 다음, 안장에 앉아서 뒤로 손을 뻗어 마세티를 꺼내봤다.
스릉―
칼집에서 빠져나온 묵직한 칼이 아침 햇살을 맞으며 번쩍인다. 손잡이를 잡고 동시에 지퍼를 푸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몇 번 하다 보면 이것도 곧 익숙해지리라.
“후우우~”
민구는 깨진 유리창 너머의 거리를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머릿속으로 경로를 그려봤다.
쉴 터라는 데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실은 멀지 않다. 테헤란로를 타고 그대로 달릴 수만 있다면 20분 안에도 전부 훑어볼 수 있는 거리다.
다만, 그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군인들에 의해 막혀 있는 길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민구는 몇 번이나 완전히 봉인돼 버린 사거리들을 본 적이 있다. 어쩌면 이곳과 잠실을 이어주는 삼성교나 봉은교도 이미 폐쇄되었을지 모른다.
“쯧, 가보면 알게 되겠지. 오늘도 화끈한 하루가 되겠군.”
고글을 내려쓴 민구는 시동을 걸었다.
부다다당―
머플러에서 천둥처럼 요란한 배기음이 쏟아져 나온다.
우우우웅―
그를 실은 RMZ 450은 빌딩을 빠져나간 뒤, 곧바로 속력을 내며 테헤란로를 향해 좌회전했다.
가끔 차선 밖으로 튀어나온 자동차의 차체가 앞을 가로막았지만, 민구는 핸들을 가볍게 틀면서 장애물들 사이를 스치듯 매끄럽게 빠져나갔다.
***
“오라지게 무거웠어,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벌판을 가로질러 케이블을 굴리고 온 삼식이와 보안관이 한숨을 내쉬며 땀을 닦았다.
어느새 태양이 높이 떠올랐고, 이글거리는 태양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체력을 갉아먹을 만큼 뜨거웠다.
“고생했겠다.”
유빈은 두 사람을 위로하고는 세녹스와 라이터 기름, 알코올을 섞어서 화염병을 만들기 시작했다. 병 속에 설탕을 붓고 가위로 자른 침대 시트를 쑤셔 넣고 있을 때, 맞은편에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던 제니가 물었다.
“다른 건 알겠는데, 설탕은 왜 집어넣어요?”
“음, 이걸 넣으면 화염병이 터질 때 불길이 더 잘 옮겨붙는대. 사실인지 어떤지는 나도 몰라.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거니까.”
“근데…… 오빠는 어쩌다가 화염병 만드는 걸 다 찾아봤지?”
유빈은 대답 대신 고개를 들어 잠시 제니의 얼굴을 보다가 다시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러게. 나도 첨 보는 모습이네. 너 뭐야? 테러리스트냐?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알카에다가 된 거야?”
“알카에다? 풋!”
삼식이의 질문에 웃음이 터진 유빈이 입을 열었다.
“시시하고 구질구질한 이야기야. 진짜 알고 싶어?”
“응!”
삼식이와 제니가 동시에 대답했다. 보안관과 신입도 은근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중3 때였는데, 우리 할머니가 떡볶이를 팔았었거든. 길거리에서 리어카에 놓고.”
“알지. 아, 할머니 떡볶이 맛있었는데…….”
“근데 어느 날 할머니가 울면서 집에 오셨는데, 왜 그러느냐고 아무리 물어도 말을 안 해주는 거야. 결국 따로 알아보니까 단속 나온 용역 애들이 리어카를 압수했더라고. 그게 처음도 아니었어. 어린 마음에 어찌나 분하던지…… 그날 곧바로 피시방에 가서 인터넷으로 화염병 만드는 법을 열나게 찾았지.”
“화염병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랬어요?”
“뭐…… 빤한 거잖아. 덩치 큰 놈들 여러 명이라서 힘으로는 못 이기니까 단속 트럭에다가 던지려고 했지.”
“나한테 이야기하지 그랬어. 어휴, 그런 줄 알았으면 내가 그 새끼들 가만히 안 두는 건데.”
보안관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친다. 유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야, 너도 그때 중3 꼬꼬마였어. 그리고 그런 문제 때문에 너까지 정학당하게 하기는 싫었고.”
“그래서 정말로 던졌어요?”
“아니야. 구석에서 휘발유 쪼물락거리다가 할머니에게 걸렸거든. 할머니가 막 울면서 그러는 거야. 죄 짓지 말라고. 내가 똑바로 못 크면 자기가 죽어서 엄마, 아빠 얼굴을 어떻게 보냐고……. 아, 씨발. 나 그만 이야기할래.”
말을 하다 보니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 같아서 유빈은 입을 다물고 젓가락으로 천을 꾹꾹 눌러 병 속에 집어넣었다.
흠, 짧게 숨을 내뱉은 삼식이가 중요한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면 이게 정말 터질지 아닐지도 지금은 모르는 거네? 한 번도 실전에 써먹어본 적은 없으니까.”
“터지기야 하겠지. 기름에다 알코올에다 전부 다 불에 잘 타는 것들뿐인데.”
화염병을 두 개째 완성했을 때, 유빈의 작업을 눈여겨보고 있던 제니가 빈 병에 비율을 맞춰 내용물을 붓고 심지를 만들어 꽂는다.
“이렇게 하면 되죠?”
“매듭을 단단히 묶어야 된댔어. 던지다가 빠지지 않게.”
제니의 야무진 손놀림을 보니 더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일전에 일러준 대로 작업을 할 때는 늘 케블라 장갑을 끼고 있다. 제작이 마무리된 화염병들을 박스로 덮어둔 다음, 세 친구는 케이블 통을 굴리며 아까 자동차들을 부수던 곳으로 걸어갔다.
“오빠, 가서 도와줘요. 오빠가 참아야지 어쩌겠어요.”
아직 응어리가 남았는지 뚱한 표정으로 뒤쪽에 버티고 서 있던 신입에게 제니가 다가가 조용히 귀엣말을 한다. 예기치 않은 제니의 행동에 놀란 신입이 말을 더듬는다.
“그, 그, 그래도 저 새끼들은 별로 도와주고 싶지가 않아.”
“나를 위해서는 해줄 수 있잖아요.”
“무,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어서요. 이따가 이거 끝나면 설탕 듬뿍 넣어서 커피 타 줄게요. 옳지, 잘한다. 우리 오빠 파이팅! 후후후.”
신입은 얼결에 등이 떠밀려 세 친구의 뒤를 따라간다. 마지못해 걸어가면서도 계속 갸웃거리는 신입의 뒷모습을 보고 제니는 혀를 날름하며 웃었다.
저런 게으름뱅이 밉상에게 일을 시키는 게 이렇게 간단한데……. 좋은 오빠들이지만 도무지 사람의 심리를 이용할 줄 모른다. 남자들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