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덫을 놓다 (2)
(102/449)
102. 덫을 놓다 (2)
(102/449)
102. 덫을 놓다 (2)
2021.12.11.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썩지 않았네. 가죽 시트라서 그런가?”
좀비가 앉아 있던 운전석을 보면서 보안관이 말했다. 유빈도 고개를 끄덕였다.
군데군데 얼룩이 남기는 했지만, 시체가 열흘이나 꼼짝 않고 방치되어 있던 자리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깨끗하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기는 해도 확실히 좀비들은 보통의 시체처럼 부패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운전대와 운전석 바닥 깔개는 사정이 좀 달랐다. 녀석이 토해놓은 토사물들이 엉망으로 엉겨 붙어 있다.
“으…… 이거 닦으려면 한참 공사 좀 해야겠는걸.”
유빈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물에 적신 휴지로 운전대와 계기판을 닦아냈다. 힘을 주어 문지를 때마다 바짝 말라붙은 토사물들이 굳은 점토처럼 툭툭, 부러지면서 떨어져 나간다.
보안관은 깔개를 꺼내 아예 멀리 던져 버렸다. 어차피 오래 타고 다닐 차도 아니므로 굳이 바닥을 보호하기 위한 깔개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대충 닦고 시동부터 걸어봐. 만약 망가진 차면 이렇게 공을 들이는 게 억울하니까.”
보안관이 팔을 들어 코를 막으며 말했다. 유빈은 운전석에 자리를 잡고 키를 돌렸다.
키리리릭, 우우웅―
‘걸렸다!’ 하고 좋아하기도 전에 좀비의 토사물 냄새가 가득 담긴 에어컨 바람이 갑자기 확 뿜어져 나온다.
우웁! 유빈은 질색하고 손을 뻗어 바람의 방향을 틀며 동시에 창문들을 열었다. 환기가 절실하다. 다행히도 연료계는 3분의 2 이상의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으아, 냄새 때문에 도저히 타고 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말은 했어도 유빈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언제 좀비들의 행진이 이곳에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여기에서 차를 빼내야 했다.
기어를 넣고 핸들을 꺾은 뒤 액셀러레이터를 가볍게 밟자, 차가 앞으로 움직인다. 앞차와의 여유는 그리 많지 않았다.
쿠웅―!
앞차의 범퍼에 부딪치자마자 유빈은 핸들을 반대로 돌린 다음, 후진했다. 뒤차 역시 바짝 멈춰 서 있기는 매한가지다.
쿠웅!
“아, 젠장. 어지간히 달라붙어들 있네.”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민 유빈이 투덜거리며 다시 전진한다.
쿠웅! 쿠웅!
결국 예닐곱 번 이상의 범핑을 하고 나서야 코롤라는 복지 센터를 향하는 길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매끈한 선의 범퍼와 펜더 라인은 이미 정신없이 긁혀 버린 지 오래다.
후우우~ 유빈이 진땀을 닦아냈다.
길을 막고 있던 코롤라가 빠졌으니 뒤에 세워진 중형차도 자유로워졌다. 보안관은 중형차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시동을 걸었다.
키리링― 부우웅―
조금 낡은 중형차인 데다 배터리도 쌩쌩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별로 속 썩이지 않고 시동이 걸렸다.
다만, 기름이 별로 없다. 바닥에 바짝 붙어 있는 연료계 바늘은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겨 봐도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부우웅―
핸들을 틀고 복지 센터를 향해 몰자, 조금 소음을 내면서 중형차가 움직인다.
“이건 세녹스 넣어야겠다.”
“올라가서 하자. 이제 애들도 데리고 와야지. 간다?”
코롤라 운전석에서 유빈이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먼저 가, 뒤따라갈게. 간만에 음악이라도 들어볼까?”
보안관이 오디오를 켰다. CD가 아니라 곧바로 라디오로 넘어갔다.
치이익―
제대로 전파를 잡지 못한 라디오는 계속 잡음만을 낸다.
주파수 끝까지 가도록 튜너를 돌려보다가 겨우 걸린 것이라고는 딱 하나, 피난 센터의 명단과 위치를 읽어주는 녹음된 목소리뿐이다. 일전에 산에서 주웠던 전단지의 내용과 비슷하다.
“쳇, 여전히 건대까지는 가야 하네. 거기까지 어떻게 가라는 말이야?”
보안관이 투덜거리는 동안 두 대의 차는 벌써 삼식이들이 기다리고 있던 복지 센터 앞에 도착했다.
“우와! 오빠들 쩐다. 저도 좀 태워주면 안 돼용~?”
삼식이가 하이 톤으로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몸을 배배 꼰다.
“응, 안 돼. 너는 안 되고, 저 뒤에 애는 태워줄 용의가 있다.”
차에서 내린 보안관이 제니를 가리키며 거들먹거린다. 신입은 코롤라에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다가 코를 감싸 쥐었다.
“우와, 냄새. 완전 썩었잖아. 뭐야, 시체라도 타고 있던 차냐?”
“어떻게 알았지? 너 주려고 트렁크에 담아 왔는데.”
유빈은 신입을 한 번 흘겨본 후, 공구 가방에서 스프레이 파스를 찾아 와 운전석과 차 안에 골고루 뿌린 다음 낡은 수건으로 토사물이 튀어 있는 계기판을 닦았다.
당장 방향제가 없으니 이걸로라도 냄새를 좀 지워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삼식이와 보안관은 도로와 공터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철책 두 칸을 앵커째 뜯어냈다. 끌고 온 자동차를 공터 안에 들여놓기 위해서다.
“환기가 좀 됐나? 이제 어서들 타. 같이 내려가서 작업해야 돼.”
공구와 세녹스, 모두의 배낭을 트렁크에 넣고 차를 돌려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기름이 없는 중형차는 공터 안쪽에 세워두었다. T자형 도로 10여 미터 앞까지 가서 차를 멈춘 뒤, 만일의 경우 누구라도 몰 수 있도록 키는 꽂아두고 내렸다.
“아, 씨바. 이거, 엄청 화끈거린다. 여기 앉지 말걸.”
조금 아까 파스를 잔뜩 뿌려놓은 운전석에 앉았던 보안관이 등을 더듬거리며 인상을 찌푸린다. 제니를 옆자리에 태우고 운전하는 기분을 즐기느라 그걸 깜빡 잊고 있었다.
“자, 이거부터 움직일 거야. 키 걸려 있는 자동차만 하나씩 몰고 가서 복지 센터 앞 공터에 세워둔 다음, 걸어서 내려오면 돼. 웬만하면 덩치가 조그만 놈들 위주로 챙겨. 알았지?”
공구와 세녹스를 꺼낸 유빈이 코롤라 바로 옆 라인에 서 있던 소형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꽉 막혀 있던 데에서 차 두 대가 빠졌으니 이제는 퍼즐이 한층 수월하다. 삼식이가 물었다.
“몇 대나 가져가?”
“더 많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아까우니까 계속 차만 주무르고 있을 수는 없고, 일단 서너 대만 더 가져가 보지, 뭐. 최소한 타이어나 배터리는 확보하는 거잖아. 그리고 제니는 망 잘 봐주고.”
삼식이의 망원경을 제니에게 건넸다.
롸저―! 제니는 가볍게 경례를 하고 나서 트럭 위에 올라서서 망원경으로 앞뒤를 살폈다. 자동차 사이로 도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는 유빈과 보안관을 향해 신입이 물었다.
“야, 우리만 일 시켜놓고서 너희는 어디 가는데?”
“전쟁 준비한다, 이 새끼야.”
등에 묻은 파스의 화끈거림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아진 보안관이 으르렁거리는 얼굴로 윽박질렀다. 좀비들이 북쪽 방향에서 걸어왔다는 건 세워진 차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비를 맞아 흙먼지를 골고루 뒤집어쓰고 있는 남쪽 방향 노선의 차들에 비해 북쪽 방향의 차들에는 좀비들의 손자국, 발자국, 옷으로 먼지를 쓸고 간 흔적들이 잔뜩 남아 있다. 보닛과 지붕도 움푹움푹 찌그러져 있다.
“원숭이처럼 네 발로 타고 넘었나 봐.”
자동차에 찍혀 있는 좀비들의 손자국이 무서운 이야기 속 이미지처럼 느껴진다. 터널에 차를 세워뒀다가 갑자기 오싹해져서 나와봤더니 유리창에 전부 손자국이 찍혀 있더라는 이야기…….
유빈과 보안관은 가끔씩 차 바닥과 도로 사이를 살피면서 천천히 걸었다.
좀비나 시체가 갇혀 있는 차들이 가끔씩 눈에 띄었다. 양손에 들고 있는 세녹스와 공구 가방이 무겁다고 느껴질 때쯤 그들은 여러 자동차들 가운데서 원하던 것을 찾아냈다. LPG 가스통을 실은 트럭이다.
“여기를 거점으로 해서 막으면 되겠다. 선을 어디에 치지?”
보안관이 짐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유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동차들이 유례없이 꽉꽉 들어서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전형적인 변두리의 한적한 4차선 도로였다.
도로 양쪽 중에 한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다른 한쪽은 가드레일이 있다.
가드레일 너머는 가로수가 규칙적으로 늘어선 폭이 좁은 인도, 그리고 또 난간이 있다. 거길 넘어가면 5미터가량의 낭떠러지, 그리고 그 아래는 작물들이 말라 죽어가는 밭이다.
“한 20미터 정도는 떨어뜨려서 장치해야 하겠지. 아니, 그 정도로도 좀 모자라려나?”
유빈은 자신들이 교차로에서 얼마나 걸어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망원경으로 이쪽을 살피던 제니가 유빈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열심히 손을 흔들어준다. 무슨 신호인지는 몰라도 위험하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소리를 빽! 질렀을 테니까.
“이쯤이면 될 것 같아. 키도 걸려 있고, 높이도 적당하고.”
다시 한참 뒷걸음질을 쳐서 두 대의 승합차가 서 있는 곳에 다다른 유빈이 승합차를 두드리며 말했다.
문이 열려 있는 걸로 봐서 배터리는 이미 방전된 지 오래겠지만, 기어만 조작할 수 있다면 밀어서 길을 더 잘 막을 수 있다.
부우웅―
뒤쪽에서 자동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삼식이와 신입 중 하나가 차를 몰고 올라가는 중인가 보다.
“자, 민다! 하나, 둘, 셋!”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핸들을 끝까지 돌려놓은 유빈이 보안관과 함께 승합차를 밀었다. 꿈쩍도 하지 않던 승합차가 보안관이 기합을 주는 것과 동시에 스르륵 앞으로 굴러간다.
쿠웅―!
앞차의 범퍼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마주 오던 두 대의 승합차를 V자로 마주 붙여서 중앙 차선을 막았을 때, 뒤쪽에서 모종의 기척이 느껴졌다.
제니로부터의 위험 경고는 없었는데?
“어?”
깜짝 놀란 보안관과 유빈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개다. 좀비 덕분에 졸지에 유기견이 된 개들이 무리를 이뤄 그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산 쪽을 지나가고 있었다.
개들은 보안관과 유빈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오히려 자신들이 더 놀랐다는 듯 걸음을 서둘러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어휴~ 젠장. 야이 개새끼들아, 놀랐잖아.”
보안관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유빈도 한숨을 쉬며 이마를 훔쳤다.
“그러고 보니 저 새끼들이 좀비 시체 뜯어 먹는 건 한 번도 못 봤네. 갈비뼈 앙상한 거 보면 꽤 배고플 텐데.”
“개도 그렇고, 비둘기도 좀비는 안 건드리는 것 같더라. 더 웃긴 건 뭔 줄 알아? 좀비들도 동물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거야. 너, 개 뜯어 먹힌 시체 본 적 없지?”
“으음, 하긴 그러네. 개를 부러워해야 되는 거냐?”
보안관은 진지한 얼굴로 개들이 사라진 방향을 한 번 더 쓱 쳐다보고 나서 고글과 해머를 집어 들었다. 본의는 아니지만 파스도 미리 잔뜩 발라뒀겠다, 본격적으로 힘을 쓸 시간이다.
“이거부터 부수자.”
선을 쳐야 하는 자리를 막고 선 소나타를 가리키며 유빈이 먼저 해머를 후려갈겼다.
와장창!
옆 유리가 박살 나며 작은 부스러기가 되어 떨어진다.
고글에도 파편이 날아와 튀었다. 반대편에서도 보안관이 해머를 휘둘러 보닛 앞부분을 작살낸다. 창이란 창은 전부 박살을 낸 뒤, 그들은 바로 옆의 차로 옮겨갔다.
이놈 역시 키가 없이 잠겨 있다. 유빈은 다시 힘껏 해머를 휘둘렀다. 박살 낼 차가 많기도 하다.
“아씨, 아깝다. 이왕이면 길 가까이에 세워놓고 갈 것이지. 나 이거 하나 가지고 싶었는데.”
제네시스 쿠페를 보고 입맛을 다지던 보안관은 에이~ 하고 탄식하면서 보닛에 해머를 꽂아 넣었다.
꽈지직―!
매끈하던 빨간 곡선이 엉망으로 박살 난다. 이제 이 녀석을 탈 수 있는 기회는 영영 날아갔다.
“오빠아! 오빠아~!”
제네시스의 비스듬히 누운 뒤쪽 유리창을 부수려고 할 때, 비명에 가까운 고음으로 그들을 부르는 제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안관과 유빈은 동시에 앞뒤를 번갈아 돌아봤다. 제니가 미친 듯이 엑스 자를 그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하지만 둘의 눈에는 아직 좀비의 행렬이 보이지 않는다.
“빠지자!”
두 사람은 세녹스와 공구 가방을 자동차 아래로 밀어 넣어 숨긴 뒤, 제니를 향해 달렸다.
빨리요, 빨리!
제니의 목소리가 그들을 재촉한다.
“너도 내려와!”
보안관이 두 팔을 뻗어 트럭 위에 올라서 있던 제니를 가볍게 안아 내렸다. 삼식이와 신입은 차를 몰고 올라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세 명은 서둘러서 코롤라에 올랐다. 햇빛에 달궈진 차 안에 들어가자 안 그래도 더웠던 몸에서 순식간에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가까워? 대충 얼마나 돼?”
시동을 걸며 보안관이 물었다. 등산 모자를 뒤로 젖히며 제니가 대답했다.
“망원경에서 보이자마자 소리를 지른 거라서 몇 마리인지는 몰라요. 하여간 길을 꽉 채우고 몰려와요.”
“잘했어, 잘했어!”
부우웅―
가속 페달을 최대한 밟으며 보안관이 소리를 질렀다. 정확한 규모는 어차피 경전철역 옥상 위로 달아나서 살피면 된다. 유빈은 시간을 체크했다. 디지털시계는 8시 40분에서 막 8시 41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신입이다. 야, 빨리 타!”
너털 걸음으로 천천히 길을 따라 내려오던 신입과 삼식이를 차례로 태운 코롤라는 속도를 내서 미리 뚫어놓은 철책 사이를 통과해 벌판을 내달렸다.
그 순간, 소형 해치백과 검은 오피러스가 나란히 세워진 게 눈에 들어온다. 누가 뭘 가져왔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쿠웅― 쿵― 쿵―
굴곡이 진 곳을 지날 때마다 삼식이는 천장에 머리를 찧었다. 걸을 때는 평평하다고 느낀 공터지만,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에서는 꽤나 심하게 흔들렸다.
와사사삭―
무성하게 자라난 풀이 뭉개지며 열린 창문 사이로 상큼한 향기가 스며들었다.
“아야야, 속도 좀 줄여! 이러다가 뒤집히겠다. 이런 놈이 면허는 어떻게 땄지?”
유리창에 얼굴을 부딪친 신입이 짜증을 부린다.
“면허 없어. 이번 여름 지나면 따려고 했는데…….”
“뭐어? 야!”
“그래도 걱정하지 마. 운전 솜씨는 확실하니까. 그리고 지금 80킬로밖에 안 돼.”
조그만 구릉을 피해 휘리릭, 핸들을 틀며 보안관이 말했다. 여전히 속도는 줄이지 않는다. 평소 10분 이상 걷던 거리를 순식간에 가로질러서 산책로와 맞닿은 철책 앞에 차를 세웠다.
“어으~ 토할 것 같아.”
차에서 내린 신입이 비틀거리며 구역질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안관과 유빈, 제니는 빠르게 철책을 지나 역을 향해 뛰었다.
좀비들이 복지 센터 앞을 지나가기 전에 자리를 잡고 정확한 규모를 확인하고 싶었다. 싸움을 위해 중요한 정보가 되어줄 것이다.
퉁―
트렁크에서 배낭을 꺼낸 삼식이까지 구름다리를 넘어가자, 신입은 그제야 마지못해 천천히 따라오며 ‘같이 가’를 외친다.
“하아~ 하아~”
계단을 전속력으로 뛰어 올라온 일행이 숨을 헐떡이며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댔을 때, 아직 좀비들은 복지 센터 부근까지는 오지 못한 상태였다.
심지어 T자형 교차로 부근에까지도 미치지 못했다. 쏜살같이 차를 몰고 도망을 왔으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자, 이거 마셔.”
뒤따라온 삼식이가 배낭에서 물을 꺼내 건넨다. 제니부터 차례로 바짝 말라 있던 목을 축이고 기다렸다.
20분쯤 기다리자 좀비들의 맨 앞줄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을 필두로 하여 계속해서 놈들이 줄을 지어 걸어온다.
대충 어림짐작으로도 육칠백 마리 이상은 돼 보인다. 워낙 수가 많아서 망원경의 힘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생각했던 것 이상의 규모다.
“씨발, 저 많은 거랑 싸우겠다고? 안 돼. 도저히 저거 다 못 죽여. 그냥 우리가 피하자. 내가 볼 때는 그게 낫다.”
복지 센터부터 T자 교차로까지 긴 커브 길을 가득 메우고 있는 좀비들을 보고 흥분한 신입이 목청을 높인다. 유빈은 대꾸하지 않았다.
저 정도라면 아직 승산은 있다. 놈들은 또다시 이 길을 지나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