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덫을 놓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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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덫을 놓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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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덫을 놓다 (1)
2021.12.10.
판을 거의 다 가로질렀을 때, 삼식이가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지금 시각은 7월 23일 오전 6시. 지금부터 우리는 좀비와의 싸움을 위해 복지 센터로 간다. 하지만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끔찍한 결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아아,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야이, 미친!”
불길한 소리에 보안관이 발끈하자, 삼식이는 목적을 이뤘다는 듯 킥킥거린다. 제니와 신입도 소름이 끼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침부터 이 모양인 걸 보니 오늘도 푹푹 찌겠구나. 잠깐 쉬자.”
20리터짜리 세녹스 통을 내려놓고 물을 꺼내 마시며 유빈이 중얼거렸다. 동이 트자마자 삼식이와 신입이 깔때기와 함께 가져온 말통 두 개 중 하나다. 두려움과 더위가 겹쳐져 목덜미로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다들 잠을 설쳤다. 멀쩡한 집과 침대를 마다하고 굳이 이불을 가져다가 옥상에서 새우잠을 잤던 건 단지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라거나 화장실의 죽은 여자가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그들을 괴롭게 하고 결국 옥상 위로까지 올라가도록 만든 건, 벽에 걸린 사진들이었다.
지금은 죽어버린, 원래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들을 보고 있자니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집으로 삼고 있던 복지 센터가 좀비들의 경로 안에 들어갔다는 게 그들을 잠 못 이루게 했다.
어젯밤, 그들은 어떻게 싸울지에 대해 늦게까지 고심하며 의견을 나눴다.
10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에 좀비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며칠 내에 번화가까지도 놈들이 몰려올 것이기 때문이다.
“다들, 자기 배낭 다시 확인해 봐. 혹시라도 빠진 것 있으면 말하고.”
유빈이 말했다. 싸움을 앞두고 유빈은 모두의 배낭에 손전등과 헤드 랜턴, 배터리, 라이터와 생수 한 병, 빨랫줄, 칼집이 달린 과도, 작은 스패너와 드라이버, 반창고와 소독약, 티슈, 그리고 초코바와 껌 몇 개씩을 집어넣었다.
일전에 제니와 깜깜한 경전철역 계단을 올라갔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낸 일종의 표준 장비였다.
여기에 또 세녹스 1.8리터를 넣으니 가방은 더욱 묵직해졌지만, 이 정도의 준비물을 갖추고 있으면 혹시 낙오된다고 하더라도 며칠 정도는 단독으로 운신이 가능할 것이다.
“제니야, 너 괜찮아?”
배낭을 짊어지고 있는 제니를 보면서 보안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제니는 밝게 웃었다.
“이 정도야 끄떡없죠. 아이돌을 우습게 보지 마세요. 자, 이 스피드!”
제니가 제자리에서 빠르게 달리는 시늉을 해 보이자, 자극을 받은 삼식이가 옆으로 가서 더 빠르게 허벅지를 번갈아 들어 올린다.
파파파팍―
“장난 그만 치고, 이제 가보자.”
경쟁하는 제니와 삼식이를 말리며 유빈이 앞장을 섰다. 환한 햇살 아래 현실과 마주할 시간이다.
“이쪽에서 와서 저쪽으로 갔네.”
복지 센터 앞 도로를 살핀 유빈이 결론을 내렸다.
좀비들의 스피드를 줄이기 위해 길 양쪽에 뿌려놓았던, 못 박힌 나뭇조각들의 모양을 보고 판단한 것이다. 흩어진 나뭇조각들이 오른쪽 방향을 향해 드문드문 뿌려져 있다. 저쪽에서 밟고 오다가 하나둘씩 빠져나간 것이리라.
“유빈아, 이리 와봐. 얘들 웃기다.”
복지 센터 1층을 살펴보던 삼식이가 손짓한다. 유빈과 보안관이 뛰어가자, 삼식이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여기에만 발자국이 엄청 몰려 있어.”
그 말대로 1층 바닥 아래 어느 특정한 영역에만 더러운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다. 흙이 묻은 것도 아닌데 발자국이 이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이유는 담배다.
삼식이가 물을 받아놓고 재떨이 삼아 쓰던 커다란 쇠 통이 넘어지면서 담뱃진과 재가 섞인 시커먼 물이 놈들의 발바닥에 묻었기 때문이다.
“여기, 네가 담배 피우던 자리 바로 아래잖아?”
유빈이 2층 창문을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평소에 삼식이가 바로 저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아래에 있는 통을 향해 휙 던져 버리곤 했었다.
응, 맞아. 대답을 하면서도 삼식이는 또 한 대를 피워 물었다.
“후우~ 이놈들도 담배 피우고 싶었던 걸까?”
“바보 같은 소리.”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이 주변에만 잔뜩 몰려서서 배회했다는 게 이상하잖아. 봐봐. 저쪽으로 간 발자국은 있지만, 여기에서 다시 복지 센터 안으로 들어간 흔적은 없어.”
듣고 보니 삼식이의 말은 일리가 있다.
이상한걸…….
유빈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말로 담배꽁초의 지독한 냄새가 좀비들을 끌어들였다면, 얌전히 길을 따라 걷던 놈들이 갑자기 도로에서 벗어나 복지 센터 안을 휘젓고 다닌 것도 설명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이미 죽은 놈들이 어째서 담배를?
유빈은 머리를 한 번 털어 계속 떠오르는 궁금증들을 떼버렸다. 가만히 앉아서 고민만 하기에는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놈들이 회전하는 방향을 알았으니, 어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단 차부터 가져오자. 너희들, 망 잘 봐야 해.”
수백의 좀비들을 몰살시키려는 이 커다란 작전에서 자동차는 꼭 필요한 준비물이다. 삼식이와 신입, 제니를 언덕 위에 두고 유빈과 보안관은 완만한 경사가 져 있는 왼편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갔다.
빠른 걸음으로 15분쯤 걷자, 펜스에 들이받고 멈춰 선 첫 번째 자동차가 눈에 들어온다. 앞 유리창에 튀어 있는 검은 핏자국 주변에는 커다란 파리 떼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닌다.
찌그러진 라디에이터 그릴과 깨진 헤드라이트, 터져 버린 타이어.
자동차는 한눈에 봐도 심각하게 망가져 있었다. 문이 열려 있었지만 키가 없고, 어차피 그런 차는 훔치고 싶지도 않았다. 둘은 그 차를 지나쳐 조금 더 걸었다.
“우와, 이건 뭐, 난리도 아니네.”
보안관이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탄식한다. 복지 센터 앞길과 T자로 만나는 왕복 4차선 도로에는 엄청난 수의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선 채 방치되어 있었다.
서로 앞코를 박은 차부터 다중 추돌을 일으킨 차들과 넘어져서 차선을 막은 사고 차량까지, 그날 달아나 보려던 사람들의 참혹했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어쩌자고 이렇게들 차를 끌고 나왔지? 길 막힐 거 몰랐나?”
보안관이 말했다.
“일단 버릇처럼 몰고 나온 걸 거야. 그러다가 이러느니 걷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 순간에 차를 버렸을 테고, 그런 차들이 앞에 막혀 있어서 뒤의 차들도 움직이지 못한 거지, 뭐.”
유빈의 말을 들은 보안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한 게 있어야 할 텐데…….”
유빈은 납작 엎드려 시선의 높이를 지면과 같게 하고 자동차 하체와 도로 사이를 눈으로 훑었다. 혹시 허리나 다리가 끊어진 좀비들이 바닥을 기어 다니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다.
“아무것도 없어. 좀비가 한 마리라도 있었어 봐라. 그랬으면 우리가 근처에 왔을 때부터 벌써 소리 지르고 생난리가 났을걸?”
케블라 장갑의 손목 부분에 청테이프를 감아 단단히 고정시키면서 보안관이 말했다. 그 말처럼 다행히 바닥을 쓸고 다니는 좀비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네. 어쨌거나 확실히 해두는 게 좋은 거니까…….”
하부 안전을 확인한 유빈과 보안관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멈춰 선 자동차들의 내부를 살폈다.
벌판 외에는 달릴 곳이 없다고는 하지만, 자동차의 스피드라는 것은 매력적이다. 혹시 복지 센터에서 좀비들과 만난다고 해도 차로는 놈들을 쉽게 뿌리칠 수 있다.
“저게 어떨까? 이왕이면 벤츠로.”
커다란 검은색 벤츠를 발견한 보안관이 반가워하며 다가간다. 하지만 유빈이 반대했다.
“아니, 그렇게 기름 많이 잡아먹는 건 안 돼. 메이커는 상관없지만, 좀 작은 놈으로 골라야지.”
“하지만 벤츠잖아. 일단 가져가 보는 게 어때? 이것 봐라, 이 쿠션!”
보안관이 트렁크 부분을 짚으며 누른다.
끼익―
압력을 받은 트렁크의 뚜껑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아마도 차를 버리고 달아난 운전자가 트렁크를 제대로 잠그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이 새끼, 대체 뭐하던 새끼냐?”
트렁크 내부를 본 보안관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테이프를 친친 감은 쇠파이프, 긴 사시미 칼 여러 자루, 흙이 묻은 삽 두 개……. 그 외에도 여러 개의 연장과 함께 사람도 너끈히 들어갈 것 같은 크기의 검정 비닐봉지가 들어 있다.
“딱 보면 사연 나오네. 깡패 새끼들이었겠지.”
소름 끼치는 무기들이지만 어차피 좀비 살상용으로 적합하지는 않다. 유빈이 다시 트렁크를 닫으려 하자 보안관이 말리며 안으로 손을 넣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이런 게 있잖아.”
비닐봉지를 치우고 보안관이 끄집어낸 것은 테이프가 감긴 알루미늄 배트였다. 조금 찌그러진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꽤나 멀쩡했다.
붕― 붕―
배트를 휘둘러 본 보안관이 만족스러워한다.
“해머보다 훨씬 가벼워. 이거는 가져가야지.”
벤츠의 문은 열려 있지만 키가 빠진 채였다. 보안관은 아쉬워하며 다음 차로 옮겨갔다.
“어, 이건 키가 꽂혀 있다!”
유빈이 들어가서 시동을 걸어봤다.
키이잉― 키이잉―
힘없는 소리만 울린다.
“벌써 배터리가 방전됐나?”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안개등을 켜두고 달아난 것이다.
“에휴~”
유빈은 한숨을 내쉬고는 망원경으로 복지 센터 쪽을 살폈다. 삼식이는 여전히 팔을 높이 들어서 원을 그리고 있다. 안전하다는 신호다.
“빨리 가져가야지, 저러다가 삼식이 팔 빠지겠다.”
널려 있는 게 차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의외로 조건이 까다롭다.
시동이 걸려 있던 차나 라이트를 켜두었던 차는 안 된다. 뭐, 사실 정 궁하면 그 정도는 다른 차에서 멀쩡한 배터리를 빼와서 갈아 끼우면 될 테지만…….
그리고 가지고 있는 연료가 세녹스뿐이니까 경유나 LPG 차량도 안 된다. 또 키가 꽂혀 있지 않은 차도 안 된다. 물론 길가에서 너무 멀리 세워진 차는 뺄 수가 없으니 역시 안 된다.
이것저것 다 빼고 나니 그들이 고를 수 있는 차는 서너 대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것도 맨 가장자리에 세워진 토요타 코롤라를 길 안쪽으로 움직여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 이거 문제인걸.”
코롤라 내부를 들여다본 보안관과 유빈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긁적였다. 키도 꽂혀 있고 멀쩡히 움직일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롸아아악!
바로 운전석에 앉은 좀비 때문이다. 목을 이리저리 빼며 미친 듯이 울부짖는 좀비의 포효가 닫힌 문을 타고 조그맣게 들려온다.
3점식 안전벨트에 의해 운전석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녀석은 보안관과 유빈을 보자 극도로 흥분해서 두 팔로 운전석을 내려치고 발을 구르며 발광을 하는 중이다.
“이거, 각이 나오겠냐?”
보안관이 운전석 문을 닫아둔 채 해머로 각을 계산해 보다가 고개를 젓는다. 아무래도 영 때리기가 나쁘다. 그렇다고 여러 번 아무 데나 후려쳤다가는 차고 좀비고 다 박살이 날지도 모른다.
아무리 이런 상황이라고 해도 좀비의 뇌수를 뒤집어쓴 의자에 앉아서 운전을 하고 싶지는 않다.
네일 건을 쓴다면 한 번에 끝낼 수 있을 텐데, 충전해 두지 않은 게 못내 아쉬워진다. 유빈은 즉석에서 플랜 B를 생각해 냈다.
“하아~ 젠장, 이거…… 너나 나나 서로 못할 짓인데…….”
좀비를 보며 중얼거린 유빈은 벤츠 트렁크에서 꺼내 온 검은 비닐봉지를 두어 번 겹친 다음, 뒷좌석으로 돌아 들어갔다.
“크윽!”
차문을 연 순간, 내부에 갇혀 있던 끔찍한 악취가 코를 찌른다. 유빈은 재빨리 밖으로 튀어나와 헛구역질을 했다. 자그마치 열흘 동안이나 썩어온 냄새다.
“우엑! 컥! 어휴~ 젠장.”
유빈이 눈물과 콧물을 닦은 다음 숨을 멈추고 다시 뒷좌석으로 들어갈 때, 보안관도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보안관을 향해 좀비가 목을 뻗는 동안 뒤통수 쪽에서 재빨리 비닐봉지를 확 씌운 유빈은 양 끝을 끌어당겨 졸랐다.
그으으으으~!
비닐봉지가 입에 밀착되자 좀비의 울음소리도 인간의 신음과 비슷하게 들린다. 그게 더 끔찍하게 느껴져서 유빈은 몸서리를 쳤다.
“이익!”
비닐봉지를 있는 힘껏 뒤로 당기자 좀비의 머리가 헤드 레스트에 밀착된다.
앞으로 기울이려는 녀석과 온 힘을 다해 뒤로 당기는 유빈의 줄다리기가 팽팽히 맞서는 동안 보안관은 공구 가방에서 꺼낸 드라이버를 꽉 움켜쥐고 다가섰다.
먼저 비닐로 덮인 옆머리를 손바닥으로 더듬어야 했다. 귓구멍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놈이 머리를 흔들고 발광을 할 때마다 그 움직임이 손바닥에 전해져 소름이 쫘악 돋는다.
거리를 둔 채 해머로 머리통을 부술 때와는 또 다른, 끔찍한 경험이었다. 마침내 위치를 확인한 보안관이 드라이버를 놈의 귀에 박아 넣었다.
푸슉!
고막을 뚫고 그 너머까지 들어가 박히며 드라이버가 고정되자, 좀비는 팔다리를 휘저으며 난리를 친다. 놈의 공격을 피한 보안관은 스패너로 있는 힘껏 드라이버의 손잡이를 후려쳤다.
빠지직!
살과 뼈를 뚫고 들어가는 소리!
하지만 좀비는 아직 움직인다. 할퀴려고 내뻗는 손을 스패너로 후려갈긴 보안관이 숨을 헐떡인다. 좀비의 얼굴이 검은 비닐봉지에 의해 가려져 있으니 자신이 무슨 테러리스트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영 좋지 않다.
“빨리 좀 해!”
좀비와 힘 대결을 하고 있는 유빈이 소리를 친다. 보안관은 이를 악물고 더 깊숙이 박아 넣었다.
그와!
포효하려던 녀석의 성대가 떨림을 멈춘 것과 동시에 휘젓던 팔다리가 축 늘어지고 앞으로 당겨 대던 목의 기운도 빠져나간다. 뇌가 파괴된 것이다. 드디어 녀석이 죽어버렸다.
후우~
좀비의 시체를 자동차 밖으로 끌어낸 유빈과 보안관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해서 겨우 자동차 한 대가 확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