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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시가전 (4) (96/449)


96. 시가전 (4)
202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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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의 목소리는 묵살당하고, 네 정의 샷건은 일제히 발사되었다. 민간인 좀비들의 상체가 벌집처럼 뚫린다.

그리고 아군 좀비의 전투 조끼에 부착되어 있던 연막탄의 뇌관이 샷건에 맞아 폭발했다.

푸슈슛―!

점차 빠르게 뿜어져 나오는 흰 연기와 함께 군복을 입은 좀비의 시체가 덮쳐든다.

가뜩이나 좁은 플래시 광원에 의존하고 있던 시야는 금세 뿌연 연기로 완전히 덮여 버렸고, 장막의 안쪽에서는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좀비들이 뛰어오고 있다.

“이런 젠장!”

당황한 특임대원들이 무작정 난사하며 후퇴한다.

파방― 파방― 타바바바―

뒤로 물러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조준 없이 쏴대는 총알에 맞아, 진열되어 있던 살충제 스프레이들이 불꽃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퍼퍼펑―!

불꽃과 함께 뿜어져 나온 매캐한 검은 연기들이 연막탄의 흰 연기구름과 겹쳐지며 시야는 더욱 가려졌다. 당황한 특임대원들의 총구가 흔들릴 때마다 플래시가 사방으로 춤을 춘다.

“뒤로 빠져!”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

그롸아아악!

빠르게 가까워지는 괴성.

특임대 선두의 방패에 좀비가 몸을 날리며 부딪쳐 온다. 방패 위로 총구를 내밀어 쏘았다.

관통력이 부족한 RIP 파편탄이라서 좀비가 쓰고 있는 하이바를 뚫지 못한다고는 해도 다른 뼈들은 박살 낼 수 있다.

우드득! 어깨가 뭉개진 좀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가 다시 몸을 일으킨다. 진열대 사이는 금방 뿌연 연막으로 가득 차올라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돼버렸다.

파바바바방― 투두둑―!

방향을 뒤로 돌린 진우의 분대는 혹시 모를 위협을 처리하기 위해 일단 총격을 가하면서 달렸다.

취이익―!

캔 사이로 터져 나온 청량음료 줄기가 죽어라 달리는 그들의 얼굴 위로 쏟아진다. 오렌지 맛이 난다.

“좌회전! 좌회전!”

이 병장과 진우가 한목소리로 외쳤다. 한 번 지나쳐 왔던 쪽으로 가는 편이 아무래도 안전할 것이다. 분대원들은 코너에서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퍼엉!

눈먼 샷건에 얻어걸린 좀비의 몸뚱이가 날아가며 진열장을 흔든다.

와장창창!

뭐가 들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리병들이 엉망으로 박살 나며 떨어졌다.

그롸아악!

어느새 뒤를 밟았던 것인지, 왼쪽에서 달려드는 좀비들.

정신없이 흔들리는 플래시 불빛 속에서 놈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대로라면 두 개의 분대가 반으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진우는 걸음을 멈추고 상체를 돌렸다. 그러고는 가슴에 고정된 플래시가 놈들을 정면으로 비추었을 때,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 투두둑! 투두둑! 투둑!

눈에 들어오는 네 마리는 모두 정리했는데, 아직도 울부짖는 놈이 남아 있다.

어디지? 어디?

3시와 9시, 두 사각을 향해 필사적으로 몸을 돌려봐도 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왠지 불안함이 위쪽으로부터 엄습해 왔지만, 가능성이 없으므로 애써 무시했다.

“뭐해, 박 이병! 이 새끼야! 뛰어!”

이 병장이 진우의 어깨를 잡아당겼을 때, 와지끈!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선반이 무너지고 위에서 군복 입은 좀비가 떨어져 내린다. 진열장 위로 달아났다가 그곳에서 변해 버린 모양이다.

“으갸아!”

뒤따라 달리던 특임대의 얼굴 위로 두 마리가 한꺼번에 덮쳐졌다.

파바바바바―

좀비에 물려 쓰러지면서 난사한 MP5 탄환이 사방으로 날린다.

“고개 숙여!”

소령이 진우와 이 병장의 뒤통수를 누른다.

퍼퍽! 으아악!

총알이 뚫고 들어가는 둔중한 소리와 고통스러운 비명이 거의 동시에 울려 퍼졌다.

누군가의 방탄조끼나 몸통을 관통한 것이다. 돌아볼 여유도 없고, 정확한 방향을 모른다면 볼 수도 없다.

세 사람은 자세를 낮춘 채 어둠 속을 쉬지 않고 달렸다. 길을 가로막는 좀비들은 진우가 정리했다.

“하아~ 하아~ 안전핀도 안 뽑았는데 왜 터지고 지랄이야! 씨발.”

악취가 진동하는 정육 진열장 코너에 몸을 기댄 세 사람은 한숨을 몰아쉬면서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해 전방을 살폈다.

뛰어다니는 사람들 사이로 어지럽게 춤추는 플래시의 불빛, 그리고 어둠 속에서 희끗희끗 아주 조금씩만 모습을 드러내는 좀비들, 불이 옮겨붙어 타오르고 있는 진열장만이 그들이 가진 유일한 전체 조명이었다.

퍼버엉!

몇 초에 한 번씩 살충제 통이 폭발하면서 튀어 오른다.

병사들은 사방으로 산개하여 달아나는 중이었다. 근거리에서 터진 작은 연막탄 한 개 때문에, 앞서서 걷던 정예부대는 대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 병장님! 3시 경계 부탁드립니다!”

이 병장은 정신을 추스르고 몸을 돌려 그들이 들어온 입구 쪽을 비췄다. 사각을 맡긴 진우는 곧바로 사격 자세를 취했다.

좀비들에게 쫓기는 자신의 분대원들이 보인다. 아군들이 좀비와 섞여 있는 상황이어서 그들은 마음대로 몸을 돌려 방아쇠를 당기지도 못하고 있었다.

“최 일병님! 숙여!”

목소리를 알아들은 그들이 자세를 낮추자 진우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사격을 시작했다.

파바박― 파바박― 파박―

플래시의 광원이 중심을 이동시킬 때마다 달리던 좀비의 머리통이 뒤로 터져 나가면서 고꾸라진다.

예광탄이 날아갈 때마다 마치 레이저로 조준된 것처럼 정확하게 좀비들의 머리와 진우의 총구 사이에 정확한 선이 그려진다.

“이쪽이야! 이쪽!”

전방과 3시를 번갈아 살피며 이 병장이 다급하게 손짓을 했다.

퍼엉!

진우의 바로 옆에서 썩은 고기 팩이 터지면서 튀어 오른다. 누군가 이 방향을 향해 발사한 총알이 좀비의 몸에 박히지 못하고 여기까지 날아온 것이다.

사선에 마주 서 있는 것은 서로에게 위험한 일이다. 진우는 옆걸음으로 뛰면서 다시 좀비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으아아, 감사합니다!”

합류한 병사들이 몸을 돌린다. 하나, 둘, 셋, 넷…….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 심지어 낙오병인 성 일병까지도. 이 병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비하고 따라와!”

인원을 확인한 이 병장이 진우의 뒤를 따라 달려 나가며 명령했다.

정면에서 상대하는 것이라면 이젠 그다지 무서울 것도 없다. 병사들은 반쯤 벗겨진 하이바를 고쳐 쓰고, 다시 방향을 돌려 뛰었다.

타타타타타다― 파방! 파방!

진열장 두 개 너머에서 기관단총과 샷건, K―2의 소리가 정신없이 울린다.

더 이상 비명 소리가 울리지 않는 걸 보니 특임대원들도 재정비를 어느 정도 마친 모양이다. 진열대에 뚫린 여러 개의 총알구멍을 통해 플래시 불빛이 비쳐 든다.

그롸아아악!

갑자기 과일 진열대 위에서 군복 입은 좀비 하나가 몸을 날려 덮쳐 온다.

부패한 수박이 정신없이 굴러떨어져 내리는 순간, 파바박― 진우와 소령의 총알이 거의 동시에 놈의 얼굴과 다리를 꿰뚫어 뒤로 날려 보냈다.

끄롸아아―

놈이 다시 일어나 보려고 발광한다. 그 지경이 되고도 뇌가 파괴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두 다리가 날아가 버린 터라 쉽게 몸을 뒤집지 못했다. 흔들리는 조명 사이로 발광하는 좀비의 장교 계급장이 얼핏 스쳐 보인다.

“멈춰! 멈춰! 쏘지 마! 훼손하지 마!”

끝장을 내주기 위해 들어 올린 진우의 총구를 돌리며 소령이 좀비에게 다가간다.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한 진우가 긴장된 얼굴로 서 있는 동안 소령은 좀비의 얼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파바박―

MP5에서 발사된 RIP탄이 안구를 뚫고 들어가 터지며 놈의 머리통을 엉망으로 박살 낸다. 몸부림을 치던 좀비는 마침내 축 늘어져 버렸다.

“후우~”

숨이 완전히 끊어진 것을 확인한 소령은 손을 뻗어 좀비의 목덜미를 더듬었다.

뭘 하려는 거지?

그 기괴한 광경이 이해가 되지 않아 진우가 갸웃거리고 있는 동안, 소령은 마침내 자신이 찾던 것을 얻었다. 상자를 열기 위한 열쇠다.

투두둑―

좀비의 목에서 원기둥 모양의 금속제 열쇠를 뜯어낸 소령은 그것을 전투 조끼 주머니에 넣은 뒤 탁탁, 두들겼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소중한 물건인가 보군.

진우는 그제야 조금 전 저놈을 처리하려고 했을 때 왜 그렇게 소령이 적극적으로 나섰는지, 그리고 왜 이 지하 던전에서조차 폭발물 하나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새끼, 똘똘한데?”

진우를 지나쳐 걸어가며 소령이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뒤따라온 이 병장의 하이바를 탁, 치면서 한마디를 보탰다.

“이 자식, 다 믿는 구석이 있었구만.”

“아직 이병이라 한창 가르치는 중입니다.”

끝까지 말을 받아치는 꼴이 곱게 보일 리 없을 텐데, 목표를 무사히 완수한 것 때문에 기분이 좋았던 소령은 웃으며 넘어갔다.

“피해 상황 보고해!”

얼추 상황을 정리하고 돌아온 특임대에게 소령이 물었다.

“유탄에 부상을 당한 게 한 명, 그리고 두 명이 물리는 걸 봤습니다.”

다른 대원들에게 부축을 받고 있는 부상병의 허벅지에서는 천으로 꽉 졸라 묶었는데도 피가 꿀럭꿀럭 솟아오르고 있다. 소령은 다시 보고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물린 게 두 명이라고? 그래, 지금 어디 있어?”

“하나는 목을 뜯겨 죽어 있기에 처리했고, 다른 하나는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저쪽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보고자가 매장 안쪽의 깊고 짙은 어둠 속을 가리킨다. 알 만한 이야기다. 좀비에게 물린 걸 다른 대원들이 봤으니, 사살당하기 전에 피신한 것이다.

어차피 곧 끔찍한 고통을 거쳐 좀비로 변하게 될 테지만, 어떤 인간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아주 작고 작은 희망의 끈이라도 놓지 않으려 발버둥을 친다. 소령은 어둠을 향해 플래시를 비추며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우리 쉽게 가자! 깨끗하게 처리해 줄 테니 나와! 어차피 너도 힘만 든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소령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유탄 발사해!”

M32를 든 대원이 나서서 네 발을 발사했다.

토옹― 통―

멍청해 보이는 발사음과 달리 40㎜ 유탄은 매장 건너편까지 날아가 진열장들을 박살 내버렸다.

그롸아아―

좀비들이 깔리며 내지르는 소리가 울려온다.

“작전 종료한다. 목표물 회수했다.”

특임대원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후방을 경계하며 퇴각할 채비를 했지만, 이 병장과 1분대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병장이 불이 붙은 매장 저 너머 끝의 창고를 가리키며 더듬거렸다.

“저, 소령님! 저 안에 혹시 생존자가…….”

“없어. 무전에도 응답이 없었고, 있다고 해도 리스크가 너무 크다.”

“하지만 그러면 대체 여기까지는 왜?”

소령이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는 바람에 이 병장은 말을 맺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한 마디라도 더 내뱉었다가는 곧바로 주먹보다 더한 것이 날아올 기세였다. 지금까지 말장난을 할 때와는 사뭇 다른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전원 철수한다!”

소령이 특임대를 앞세우고 출발하자,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따라 걷던 이 병장이 목소리를 낮춰 투덜거렸다.

“……사람을 구할 게 아니라면 뭐하러 여기까지 목숨 걸고 왔던 거야?”

아까 열쇠를 챙기는 소령의 모습을 목격했던 진우만 빼고 분대원들 전원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허탈하다.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 드디어 작전이 끝났다. 돌아갈 수 있다.

***

육만배는 바보가 아니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보호소에 수용되기 위해 이동하면서 스무 명이 넘는 덩치들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면 안 된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런 짓을 했다가는 가뜩이나 긴장해 있는 군인들은 그를 요주의 인물로 점찍을 테고, 조그만 말썽만 일어나도 모든 혐의가 그에게 돌려질 게 분명하다.

그래서 그는 스물두 명의 일행을 네 그룹으로 나눴다. 먼저 연예인 계집애 둘과 조직원 세 명을 한 팀으로 만들었다. 조직원들에게는 프로덕션 매니저와 이사라는 직함을 주었다.

두 번째 팀은 기동이와 요리사 둘, 조직원들 여섯 명을 묶어 구성한 뒤,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사람들처럼 굴라고 일렀다.

요리사들이 실제로 솜씨가 있으므로 의심받을 상황이 되면 요리를 해 무고함을 증명하면 된다.

그리고 자신과 조직원 셋은 무역 업체 사장과 직원으로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봐도 일반인이라고 우기기는 어려운 나머지 커다란 덩치들은 경호업체 직원이라고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나눠 두면 주목도 덜 받을 것이고, 운신의 폭도 넓어진다.

“너희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이고, 나랑도 그저 여기 함께 숨어 지냈던 관계인 거다. 괜히 허리 숙이고 인사해서 눈길 끌지 말라는 말이다. 알아들었지?”

구조 헬기를 기다리는 동안 육만배는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했다. 두 명의 연예인 계집애에게는 매니저 역할을 맡은 녀석들이 따로 교육을 시켰다.

“회장님, 그럼 그 안에서는 인사를 드리면 안 됩니까?”

그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불경이라는 듯 조직원 녀석 하나가 눈을 똥그랗게 뜨며 물었다. 육만배는 담담하게 대답해 줬다.

“모르는 아저씨 보고 인사하겠나? 그저 소 닭 보듯 하고 지나가. 그리고 그곳에 가게 되면 괜히 시비 붙거나 말썽 피울 생각하지 말고.”

“레스토랑에서 일한다고 할 거면 정장 바지에 흰 와이셔츠만 입고 갈까요, 회장님?”

기동이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을 때, 육만배는 단호하게 말했다.

“옷장에서 제일 깨끗한 슈트로 갈아입고 오너라. 그러면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 싶겠지만, 이 나라에서는 입성이 멀쩡해야 사람 대우를 받으니까. 그리고…….”

육만배가 기동이의 팔을 가리켰다.

“행여라도 그림 내보이지 마라. 그림 보이는 놈은 내 손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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