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4. 시가전 (2) (94/449)


94. 시가전 (2)
2021.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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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보는 다른 부대 병사를 향해 김 상병이 물었다.

“네, 이병 성낙수!”

“아니, 이름 말고, 이 어리바리한 새끼야. 뭐하는 새끼냐고?”

“시청 방어 중대 소속입니다.”

“조난 신청했던 부대?”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뒤를 따라왔어? 너희 부대는 주유소 사거리에서 아홉 시로 갔는데?”

“저…… 저는 그냥 계속 앞사람 뒤통수만 보고 뛰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까 여기다, 그런 이야기야?”

“그렇습니다.”

불안함이 가득한 눈동자를 굴리며 이병이 대답한다. 김 상병은 불쌍하다는 듯 혀를 찼다.

“쯧쯧, 그래, 규모 삼이라는 보고를 안 했다고?”

“어제 아침까지는 분명히 규모 삼이 가장 큰 무리였고, 그렇게 보고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서 왔는지 생전 보이지도 않던 넷짜리가 나타나서…….”

“전방 확보! 이동합니까?”

김 상병이 총성 속에서 낙오병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탄창 두 개를 비우며 좀비들을 작살낸 진우가 고개를 돌리며 외친다.

머리를 내밀어 좌우를 살피던 이 병장이 인상을 쓴다.

“젠장, 지금 우리가 어디 있는 거냐? 하도 뱅글뱅글 돌았더니 홈플러스가 어딘지도 모르겠어!”

“좌측으로 가면 대로! 직진하면 배후입니다!”

“그래. 박 이병,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좋아! 직진해! 야! 너도 움직여!”

이 병장은 낙오병의 등을 잡아끌며 전진했다.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두 시 방향의 골목에서는 어디선가 꾸역꾸역 몰려온 좀비들이 날카로운 괴성을 내지르며 미친 듯이 몸을 날린다.

진우의 총성을 시작으로, 분대원 전체의 탄약이 일제히 한 방향을 향해 쏟아졌다. 유리창이 깨지고 살덩이가 터져 날아간다.

“저기! 저기!”

다급해진 낙오병이 정확한 방향이 아니라 ‘저기’라는 막연한 어휘만 되풀이하며 손짓을 한다. 진우와 김 상병은 낙오병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아홉 시 쪽으로 총구를 돌렸다.

3미터 폭의 넓지 않은 골목을 가득 메우고 대량의 좀비들이 몰려온다. 정 상병은 후방을 긁는 중이어서 이쪽에 신경을 써줄 여유가 없어 보였다.

드르르르르륵! 드르르륵!

하늘 위로 기세 좋게 연사를 퍼부은 김 상병은 진우가 여섯 마리를 쓰러뜨리는 동안 곧바로 탄창을 갈아 끼우고 다시 방아쇠를 당긴다.

콰장창!

주변 건물 2, 3층의 유리창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며 좀비들의 몸에 박혔다.

“김 상병님!”

진우는 이를 악물고 좀비들의 머리를 날리며 김 상병을 불렀다. ‘제발 그렇게 하지 말고 다리를 쏘십쇼!’라고 간청할 참이었다. 놈들은 동료의 박살 난 머리통을 밀치고 계속 달려든다.

얼핏 보아도 남은 놈들이 20마리는 넘는다. 낙오병의 사격 실력도 의지할 만한 것은 아니었고, 이렇게 하다가는 탄창을 갈아 끼울 시간이 없어서 당한다.

우지지직!

끼우웅―

3층 건물에 매달려 있던 커다란 당구장 간판이 앞으로 기울며 둔한 소리를 낸다.

그러더니 곧 가속도가 붙어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김 상병이 하늘로 쏘아올린 총알에 의해 지지대가 박살 나버린 것이다. 간판은 맞은편 건물의 에어컨 실외기를 때리면서 반으로 잘린 채 아래로 꽂혔다.

콰자작!

세차게 추락한 간판의 첫 번째 조각은 좀비들의 목을 때리면서 길을 막았고, 그 위로 다시 에어컨 실외기와 간판의 다른 조각이 덮쳐졌다.

콰아앙―!

육중한 쇳덩이와 간판들이 좀비들의 뼈를 엉망으로 꺾고 바닥에 널브러지자, 좀비들의 수효와 진격 속도 모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제는 장애물을 뛰어넘어 달려드는 놈들만 정리하면 된다.

“허어―!”

자신의 성과를 가장 믿을 수 없던 것은 물론 김 상병이었다. 그는 방아쇠를 당기는 것도 잠시 잊은 채 깔려 버린 좀비들을 바라보며 탄성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김 상병과 낙오병이 그 예기치 못한 놀라운 전과에 감탄하는 동안, 진우는 아직 움직이는 놈들의 대갈통에 총알 한 방씩을 박아 넣었다.

“전방, 안경 가게!”

앞쪽에서 누군가 외친다. 안경이 그려진 간판을 확인한 분대원들은 모두 일사불란하게 코너를 돌아 그쪽을 향해 뛰어간다.

다만 낙오병은 난데없이 안경 가게로 몰려가는 영문을 몰라, 그들을 따라 열심히 달리면서도 좌우의 눈치를 살폈다.

“박 이병! 엄호해!”

이 병장이 김 상병을 대동하고 소방도로를 가로질러 가게 안으로 뛰어들면서 외쳤다. 시간을 끌 여유는 없다.

투투툭! 투투둑!

진우는 두 선임을 덮치려던 좀비들을 정리하고 길을 터줬다. 고개를 디밀어 카운터 안쪽이 안전한지를 확인한 김 상병이 서랍을 열고 안쪽에 있던 안경집들을 닥치는 대로 쓸어 담는다. 모두 영수증이 붙은 것들이다.

“이 집, 돈깨나 벌었던 모양입니다!”

김 상병이 배낭을 여미며 실없는 소리를 한다. 운 좋게도 예상했던 것보다 제작되어 있던 안경이 많았다.

“훔치는 거 아니야! 무기로 쓰는 거다, 무기! 아까 지형지물로 좀비 잡는 거 봤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는 낙오병을 지나치며 김 상병이 묻지도 않은 것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런가? 하긴 간판을 날려서 좀비도 잡았으니까. 그런데 안경은 또 무슨 기능을 하는 걸까?

열심히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낙오병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안경이 대체 무슨 무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알 수 없었는지 낙오병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김 상병은 손바닥으로 녀석의 하이바를 탁, 치고 나서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잊어버려! 상병 달면 배우는 기술이니까! 너 이 새끼야, 호기심 많으면 일찍 죽는다!”

“다시 전진!”

진우, 정 상병과 함께 앞쪽의 좀비들을 정리한 이 병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아, 하아…….”

시체를 밟고 미끄러졌다가 다시 일어난 강 일병이 소매를 들어 땀을 닦아낸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정 상병의 뒤에 바짝 붙어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지쳐 있었는데, 이제는 발목까지 삐끗했다. 뒤처진 강 일병을 돌아본 이 병장이 명령했다.

“오 일병! 김 상병! 너희가 강 일병 챙겨! 뛰어야 돼!”

김 상병은 얼른 몸을 돌려 강 일병에게 뛰어간 뒤 팔을 잡아 어깨에 둘렀다. 정 상병과 역할을 바꾼 진우가 후방을 경계하며 놈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차례로 쓰러트렸다.

제아무리 김 상병이 애를 써도 2인 3각처럼 달리는 것은 느려질 수밖에 없고, 좀비들이 달려드는 전장에서 속도가 줄어드는 것은 치명적이다. 분대와의 간격이 벌어지자 강 일병이 분한 목소리로 울먹였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새꺄, 그딴 소리 하지 마! 내가 다치면 넌 안 끌어줄 거야?”

김 상병이 단호하게 말하며 자신의 배낭 어깨끈을 두드렸다.

“너 줄 거 여기 잔뜩 있다! 작전 끝나자마자 이 중에서 골라!”

대로 쪽에서는 여전히 바쁘게 울리는 총성, 폭발음과 함께 비명이 섞여 들려온다.

끄아악― 안 돼!

좀비 떼를 열심히 헤쳐 나가다가도 그런 소리가 고막을 울릴 때마다 모골이 송연해져서 자연히 멈칫거리게 된다.

타아앙― 타아아앙― 타아앙―!

건물 옥상에서 특임대의 저격 지원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대로의 상황은 어지간히 심각한 모양이다.

“다른 데 신경 쓰지 마! 움직여! 계속 쏴! 정신 똑바로 안 차리면 우리가 죽는다! 정 상병, 세 시!”

투투투투투투둑―

이 병장의 지시를 받은 정 상병이 K―3의 방향을 돌려 오른편 갈림길을 훑었다.

팅팅티디딩―

길 한쪽에 일렬로 세워진 자동차들이 자연 엄폐물이 되어버려서 총알의 절반 이상이 차체를 맞고 튀었다.

투르르르륵―

다시 한 번 갈겨봐도 쓰러지는 놈들의 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펑― 퍼엉―

쨍강!

애꿎은 자동차 창문과 타이어만 잇달아 터져 나가는 동안 좀비들은 훨씬 가까워졌다.

나머지 병사들도 모두 열심히 전방의 놈들을 상대하고 있어서 화력의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위험한 지경이 되어버렸다.

“박 이병! 세 시!”

급박해진 정 상병이 지원을 요청했다. 진우가 막 몸을 돌리는 순간, 연료통을 맞은 소형차가 폭발하며 들썩인다. 그 사이로 달려오던 좀비들의 머리와 옷에 곧바로 불이 옮겨붙었다.

쏟아지는 유리 조각들을 피하기 위해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놈들과의 거리는 10미터 남짓. 끔찍한 형상으로 달려드는 놈들을 향해 진우는 필사적으로 총알을 꽂아 넣었다.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드는 좀비도 무섭지만, 온몸이 불덩어리인 녀석들과 근접전을 벌이는 것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파앙― 파파방― 파파팍―

진우의 총구가 머물렀던 방향에는 불덩어리가 된 시체들만이 남아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린다. 오징어 타는 냄새가 연기와 함께 거리를 가득 메웠다.

“차 뒤에 가려진 새끼들! 그 새끼들 잡아! 넘어오는 놈들은 내가 정리할게!”

자동차를 넘어 달려드는 놈들을 박살 내면서 정 상병이 다급하게 외쳤다.

어떻게?

명령을 받은 후 잠시 멈칫하던 진우는 근거리에 남은 두 마리를 모두 사살하고 나서 탄창을 갈아 끼우며 납작 엎드렸다. 자동차 타이어 사이로 뛰어다니는 발이 보인다. 가장 앞의 놈부터 다리를 날렸다.

타앙―

그런 후, 바로 그 자리를 내딛는 또 다른 좀비의 발에도 진우의 총알이 꽂힌다.

크라악―!

발목이 잘려 나간 좀비들은 제자리에 호되게 고꾸라진다. 넘어진 머리통 높이가 자신의 시선과 일치하는 그 순간, 진우는 방아쇠를 당겼다.

퍼억― 퍼억―!

놈들의 머리에 커다란 구멍 하나씩이 뚫리는 것을 곁눈질로 확인하면서 진우는 곧바로 총구를 돌려 차례로 등장하는 또 다른 녀석들의 발을 겨눴다.

빨간색 하이힐.

타앙!

묵직해 보이는 등산화.

타앙!

먼지가 뽀얗게 낀 검정 구두, 98년형 에어조던, 뼈가 드러난 맨발.

타앙! 타앙!

보이는 발마다 두 쪽 모두 날려 버렸고, 그 지점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도로에는 발목이 날아가서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좀비들의 무더기가 쌓였다. 기동력을 상실한 놈들 정리는 정 상병이 맡았다.

계속해서 발목을 날리던 진우가 일순간 멈칫한다. 잠시 사이를 두고 자동차 바닥과 도로의 틈에 나타난 것은 워커였다.

검은색 군용 워커가 계속해서 들이닥친다. 하마터면 아군을 쏠 뻔했다는 생각이 들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진우는 한숨을 내쉬면서 외쳤다.

“몇 분대야? 신호를 하고 들어와야지! 쏠 뻔했잖아!”

대답이 없다. 진우가 몸을 일으키는 동안에도 저쪽에서는 워커 소리만 울릴 뿐, 아무런 말이 들려오지 않는다.

싸사사삭―

자동차 지붕 위로 위장 무늬 하이바들이 이쪽을 향해 바쁘게 다가온다. 정 상병과 서로 마주 본 진우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뻐근한 어깨에 총구를 바짝 붙였다.

첫 번째 녀석이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아군이 맞네, 라고 생각한 순간, 무언가 낯설다. 총을 들고 있지 않았다.

“이…… 이런 씨발.”

정 상병이 힘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손에서 총을 놓은 채 어깨를 늘어뜨리고 달려오는 병사들, 군복에 가득 튀어 있는 핏자국, 떨어져 나간 팔목과 살점들…….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좀비들이 자동차 엄폐물을 지나쳐서 진우의 분대를 향해 똑바로 돌진해 오고 있다.

어느새 이렇게 당해 버린 것일까? 우리도 여기에서 곧 이런 꼴이 되어버리는 걸까?

사복 입은 좀비들을 대할 때와는 그 기분이 완전히 달라서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게 절실하게 와 닿는다.

그 흉측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득해지는 것 같다. 전방을 정리하느라 뒤늦게 측면의 사태를 파악한 분대원들이 일제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젠장!”

겨우 정신을 추스른 정 상병이 K―3의 방아쇠를 당긴다.

투루루루루룩―

사나운 기세로 날아간 5.56㎜ 총알들이 군복 좀비들의 내장을 후방으로 날려 보내고 뼈를 부러뜨린다.

그러나 하이바가 지켜주는 머리통만은 단번에 뚫리지 않았다. 머리통이 박살 나지 않은 좀비들은 충격에 의해 뒤로 날아갔다가도 곧바로 몸을 일으켜 뼛조각들을 덜렁거리며 다시 달려들었다.

그롸아아악!

가장 앞선 놈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쉰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몸을 던졌을 때, 진우의 K―2가 불을 뿜었다.

투투둑―

얼굴이 박살 난 좀비가 앞으로 고꾸라지고, 놈이 쓰고 있던 하이바는 뇌수와 함께 뒤쪽 하늘로 튀어 오른다.

투두둑― 투둑― 투두둑―

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쁘게 총구를 움직여 정확하게 삼점사를 퍼부어 놈들을 순서대로 쓰러뜨렸다. 예전에 민간인이었든 군인이었든 달라진 건 없다.

다만, 표적의 크기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을 뿐이다. 이놈들을 쓰러뜨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이바가 보호해 주지 않는 얼굴을 관통시켜 뇌를 날려야 한다.

문제는 좀비들이 늘 그렇듯, 이 녀석들도 고개를 비스듬히 숙인 채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든다는 것이다.

“쏴! 아무 데라도 계속 쏴!”

놈들이 가까워지면서 이 병장의 목소리도 점점 다급해진다.

파파파파파바―!

정 상병과 분대원들이 거친 난사로 좀비들의 몸통을 날릴 때마다 아직 온전히 굳지 않은 피가 터져 나오며 검붉은 안개를 만들어냈다.

진우는 날아간 놈들이 다시 몸을 일으키기를 기다렸다가 둥근 가늠쇠 안에 얼굴이 들어오는 순간, 눈 주위를 겨냥해 쏘았다. 군복 입은 좀비들은 그렇게 해야만 겨우 정리가 가능하다.

“하아, 하아…… 제기랄.”

달려들던 놈들을 가까스로 정리한 뒤, 분대원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저마다 한마디씩 욕설을 뱉었다.

그들의 것과 완전히 똑같은 군복을 입고 있는 좀비들의 시체. 산산조각이 나버린 그들의 팔과 다리, 내장이 사방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대로 쪽 상황이 이렇게 안 좋아? 우리 애들이 이렇게나 많이 물려 버렸어? 이런 썅…….”

이 병장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대로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콰쾅! 타타타타타―

건물 벽에 막혀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총성과 울부짖음, 비명이 섞여 들려오고 있다.

“……이 병장님, 얘들…… 우리 부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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