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3. 시가전 (1) (93/449)


93. 시가전 (1)
202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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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님, 저희 탄약 부족합니다. K―3도 탄약통 두 개 다 비웠습니다.”

작전이 시작되기 전, 이 병장은 빈 탄창을 모아 내밀며 소위에게 보급을 요청했다. 다른 분대의 병사들은 자신들이 투입될 경로를 확인하느라 웅성거린다.

특임대는 레펠로 인근 건물 옥상들에 저격조를 배치하고 홈플러스 옥상으로 진입할 계획이다. 우회로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모르는 소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1분대, 너희인가? 왜? 뭘 하느라 150발이나 되는 실탄을 벌써 다 썼다는 거야?”

“갈림길에서 규모 둘이 넘는 좀비들을 만나 섬멸했습니다. 적어도 100여 마리는 됩니다.”

“빈 탄창이 이것뿐이야?”

“나머지는 좀비 시체 더미랑 섞여 있습니다. 그것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당당하게 말하는 이 병장을 보면서 진우는 뒤가 켕겨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의 배낭 안에는 아직도 김 상병이 훔쳐 낸 예비 탄창들이 들어 있다.

“후후후, 아군 피해 없이 100마리를 잡았다고? 너희 분대 단독으로? 그런 화기만 가지고? 아하하, 이 새끼들.”

헬기를 향해 이동하던 중 둘의 대화를 들은 특임대 장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으며 지나친다. 웃음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다른 특임대원들의 어깨도 들썩인다.

그런 화기라고? 국방부에서 전시에 싸우라고 지급한 무기가 이건데?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한 이 병장은 경례를 하면서도 소령의 고글 낀 얼굴을 빤히 노려보았다.

“발포하는 소리도 못 들으셨습니까?”

이 병장의 도발에 소령이 걸음을 멈췄다.

“총소리는 방아쇠만 당기면 나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명중시킨 건 아니지. 그래, 정말로 규모 삼짜리 좀비들을 처리했다고? 100마리 확실한가? 혹시 열 마리 잡는 데 1,000발을 쏟아부은 건 아니고? 세어봤어? 대답해 봐.”

소령은 이 병장의 얼굴에 바짝 대고 위압적으로 말했다. 이 병장이 특유의 뻔뻔한 얼굴을 그대로 유지하며 대답했다.

“저희 부대는 죽은 좀비 머릿수 같은 건 안 셉니다.”

“왜? 현실을 똑바로 보는 게 무서운가?”

“그딴 걸 셀 시간에 움직이는 놈들 잡는 게 낫습니다. 천 마리 넘게 죽여보면 아시게 됩니다.”

“뭐, 이 새끼야?”

소령이 잡아먹을 듯 이 병장에게 달려들어 정강이를 세게 걷어찼다. 이 병장은 뒤로 밀려 주춤거리면서도 다시 얼굴을 들어 소령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차렷! 똑바로 서, 이 새끼야.”

자세와 복장을 가지고 갈구기 시작할 모양이다. 분위기가 필요 이상으로 가열된다. 소령과 이 병장을 중심으로 둘러선 특임대와 육군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눈을 부라렸다.

“소령님.”

소위가 아주 적절한 톤과 크기로 목소리를 유지하며 끼어들었다.

“제 부하들입니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제가 교육시키겠습니다.”

“늦었어, 소위! 평소에 똑바로 가르쳤어야지!”

“저희 대대장님의 교육 방침은 늘 확실히 주입하고 있습니다.”

대대장인 중령을 은근히 개입시키자 계급 놀이가 복잡해졌다.

“병사들 관리 똑바로 해. 발목 잡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죽일 것처럼 소위를 노려보던 소령은 그 말만 남긴 채 부하들을 거느리고 사라졌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무표정하게 서 있던 소위는 특임대 전체가 코너를 돌아 나가자 이 병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조금 전 장교를 대하는 자네의 태도는 용납될 수 없는 거였다.”

“부대 전체가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병장의 말에 소위가 살짝 입꼬리를 올리자, 부러진 콧대를 감싼 쇠 보호대가 같이 씰룩거린다.

“그런 건 말이 아니라 몸으로 증명하는 거다. 예비 탄약 지급해 줄 테니, 이번 작전에서 실적으로 기를 확 꺾어버려.”

보급병에게 트럭에서 탄약을 가져다주라고 지시한 소위는 은근히 물었다.

“많이 아파?”

“못 알아들었습니다.”

“소령님에게 차인 곳 말이야.”

“맞은 줄도 몰랐습니다!”

“복귀할 때 사유서를 써주겠다. 점호 때 무슨 상처냐고 물으면 보여 드려.”

이 병장이 허세를 부리자, 기분이 좋아진 소위는 장갑차에 오르며 웃었다. 이 병장은 분대원들을 향해 돌아서며 이마를 찌푸렸다.

“아야야, 씨발. 아우, 존나 제대로 맞았다.”

“어후, 그러게 왜 그렇게 도발을 하십니까? 걔들 아까 노려보는데, 전 아군끼리 싸움 나는 줄 알았습니다.”

얼른 쪼그려 앉아서 이 병장의 정강이를 문질러 주며 김 상병이 한숨을 내쉰다.

“열 받으니까 그렇지. 특임대 소령이라고 끼어들어서 깐족거려도 된다는 법 있냐? 우리가 걔네보다 덜 뺑이 치는 것도 아니고. 오늘만 해도 우리가 죽인 놈들이 더 많았어.”

“탄약도 제가 훔쳐 온 게 있었으니까 꼭 달라고 하지 않아도 됐지 말입니다.”

“그건 이미 우리 거야. 요즘 같아서는 꼬불쳐 둘 필요도 있을 것 같아……. 야, 좀 살살 문질러라, 이 새끼야. 네가 누르는 게 더 아프다. 일부러 그러냐?”

타박을 당하면서도 김 상병은 열심히 입김을 불어준다. 이 병장은 고개를 들고 분대원들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이 일 때문에 괜히 특임대 애들 기죽여 보겠다고 설치는 놈 있을까 봐 하는 말인데, 오버하지 마. 좀비 한 마리 더 죽인다고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어. 우리 목표는 전역할 때까지 분대 전원이 더 이상 다치지 않는 거다. 손실은 김 일병 하나로 족해. 알았지?”

김 일병은 분대가 새로 꾸려진 첫날 장갑차 안에서 아군의 유탄에 관통상을 입고 후송된 녀석이다. 넷! 분대원들은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병장은 고개를 끄덕인 뒤, 말을 이었다.

“저 사거리를 지나면 홈플러스까지 600미터 정도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존나게 긴 거리야. 자동차가 서 있어서 시야도 불량해. 모두 정신 바짝 차리고 따라와. 정 상병, 김 상병, 너희는 강 일병 안경 챙겨주고, 그리고 박 이병.”

“네.”

진우가 대답했다. 관등성명을 대는 허식 따위는 벌써 예전에 사라졌다.

“네가 제일 잘해야 돼. 너한테 탄창 몰아주는 이유 알지? 분대원들 엄호 확실히 해라.”

“네, 병장님.”

진우는 분대원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그러는 동안 탄약이 도착했고, 머리 위로 헬기가 지나간다. 요란한 무한궤도 소리와 함께 전진하는 장갑차들의 뒤를 밟으며 보병들이 이동을 시작한다.

“좋아, 우리도 움직이자!”

이 병장의 명령과 함께 탄창을 나눈 분대원들은 두려움과 결의가 반반씩 섞인 표정으로 중앙로 6차선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헬기가 지나면서 좀비들이 위치한 곳에 발사해 둔 신호탄에서 붉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연기 기둥이 적어도 예닐곱 개는 되었다.

“으, 더워.”

이글거리는 여름 한낮의 아스팔트에 장갑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더해지며 강 일병을 보호하기 위해 바짝 붙어 걷던 김 상병의 입에서는 앓는 소리가 나온다.

다른 병사들 역시 굳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교동로와 만나는 사거리에서 병력을 둘로 나누었다.

원래부터 삼척에 주둔하고 있던 소대의 잔여 병력이 홈플러스의 측면을 타격하기 위해 우회해서 이동하는 동안, 12시 방향에서는 사람의 낌새를 느낀 좀비들이 괴성을 지르며 몰려오고 있다.

쾅쾅쾅쾅~! 쾅쾅―!

K21 장갑차의 40㎜ 기관포가 요란한 소음과 함께 복합 기능탄을 잇달아 발사한다.

도로를 막고 있던 자동차들이 폭발하면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기능탄들이 순차적으로 공중폭발하며 달려들던 좀비들을 산산조각 냈다.

꾸우웅―

구부러진 교차로의 신호등이 짐승의 신음 같은 소리를 내면서 넘어지며 뒤이어 달려오던 좀비들을 덮친다.

“우리 소대장도 특임대 애들한테 잘난 척 좀 하고 싶은 것 같은데?”

늘 7.62㎜ 동축 기관총만 쏘아대던 장갑차가 유례없이 화려한 화력 쇼를 퍼붓자, 김 상병이 히죽거렸다.

퍼어엉~! 퍼어엉!

세워져 있던 차량들 사이로 불길이 번지며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6차선 전체에 걸쳐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통에 전방의 시야가 흐려졌다. 불이 붙은 채 달려오던 좀비들이 폭발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날아가 상가 유리창에 꽂힌다.

타앙― 탕― 탕―

홈플러스에 인접한 산림 조합 건물과 길 건너편의 하이마트 옥상에 헬리콥터 레펠로 자리를 잡은 특임대 저격수들이 아래쪽 도로를 향해 발사를 시작했다.

“아홉 시 좀비!”

쿠르르르―

사거리의 왼편에서 몰아쳐 오는 놈들을 저지하기 위해 2호 장갑차가 뒤로 빠진다. 덕분에 열을 맞춰 뒤를 따르던 보병들의 진영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콰장창!

2층 건물들마다 창문을 깨고 거리로 뛰어내리는 좀비들이 더해지자 놈들의 무리는 점점 더 불어난다.

골목마다 다만 몇 마리씩이라도 좀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쯤 되면 규모 삼이라던 애초의 보고가 잘못되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뒤로 빠져! 멍하니 서 있다가 깔린다! 박 이병! 길 터!”

이 병장이 분대원들을 이끌고 세 시 방향의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선봉에 선 채 달려들던 좀비들의 머리통을 날려 버린 진우가 물었다.

“직진합니까?”

“좌회전한다!”

타타타―

뒤를 돌아본 짧은 순간에도 좀비들은 한두 마리씩 계속 뛰어든다. 진우가 코너를 살피는 동안 전방은 정 상병이 K―3를 훑으며 커버했다.

크롸아악―!

가정집 옥상에서 뛰어내린 좀비 네 마리가 그로테스크한 자세로 몸을 일으키며 울부짖는다. 엉망으로 뼈가 부러져 버린 탓에 뛰지는 못하지만, 어그적거리면서도 꾸준히 기어온다. 목표는 김 상병과 강 일병이었다.

좀비들이 한 걸음씩을 뗄 때마다 부러진 뼈가 살을 뚫고 나왔다. 모두 알록달록한 속옷만 입고 있는 여자들이었고, 머리카락 길이나 색깔로 미루어 보아 좀비로 변하기 전에 꽤나 젊었을 것 같다.

“아으~ 이 계집애들아, 한 열흘 전에 이렇게 달려들어 줬으면 얼마나 좋았냐?”

김 상병이 눈살을 찌푸린 채 물러나다가 결국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투―

제아무리 김 상병이라고 해도 쉽게 빗맞히기 어려울 만큼 가까이 접근해 있던 터라, 좀비들은 엉망으로 터져 나갔다. 이 병장이 거들어서 머리통을 쏘아 정리했다.

“하아, 하아…… 속옷인 줄 알았는데, 비키니네.”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시체를 살피던 김 상병이 중얼거렸다.

“이 새끼, 이상한 취향이야? 지금 이 상황에 그런 걸 왜 따져?”

중국집 후문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놈들을 향해 사격하면서 이 병장이 타박했다. 김 상병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수영복 입은 좀비는 처음 보는 거라 신기해서 그럽니다.”

“7월에 동해 바다니까 당연히 수영복 입은 사람 많지!”

“그렇구나…… 휴가철이었지. 그런데 이 병장님, 이상하지 말입니…….”

콰아앙!

누군가의 총알에 맞아 LPG 가스통이 폭발하는 바람에 놀란 김 상병은 말을 끊었다.

“쓸데없는 소리 작작하고 열심히 싸워!”

유리 조각 비가 한차례 쏟아지고 난 뒤, 진우를 따라 앞쪽으로 뛰어나가며 이 병장이 소리를 질렀다.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생각을 놓친 덕에 무엇 때문에 잠시 고민했는지를 잊어버린 김 상병도 큰 소리로 대답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알겠습니다! 병장님! 저만 믿으십쇼!”

사방에서 좀비들이 튀어나와 한데 뭉쳐 달려온다. 정 상병의 K―3는 여섯 시 방향을 청소하는 데만도 벅차서 전방 지원사격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다.

투투투투투둑― 투투투투둑―

놈들은 불과 3, 40미터 뒤의 코너 양쪽에서 뛰쳐나오고 있다. 이쪽에 닿기까지의 시간은 불과 4초 내외. 잠시라도 방심하거나 시야에서 놓치면 그걸로 끝이다.

“머뭇거리지 마! 빨리 전진해!”

정 상병이 진땀을 흘리며 K―3의 방아쇠를 당겼다.

끄아아악― 옆 블록에서 요란한 총소리를 뚫고 사람의 비명이 들려오자 모두들 등골이 오싹해진다.

투두둑! 투앙! 투두둑!

진우가 전방을 훑을 때마다 뛰어오던 좀비들이 뇌수를 뿌리며 고꾸라졌고, 그렇게 해서 생긴 공간을 향해 분대원들이 돌진했다.

코너의 우유 대리점 앞에 세워진 조그마한 트럭을 진지로 삼아서 달려드는 좀비들을 처리하고 잠시 숨 돌릴 틈을 얻은 김 상병이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씨발! 어떤 개새끼가 규모 삼이라고 한 거야? 천 마리도 훨씬 넘겠구만!”

“원래 여기 방어하던 새끼들이겠지.”

정 상병의 대답을 듣고 나자 더 화가 난다는 듯 김 상병이 목소리를 높인다.

“하여간 별 등신 같은 새끼들! 만나기만 하면 아주 아작을 내줘야지!”

“……그런데 저희가 그렇게 보고한 게 아니지 말입니다.”

다 죽어가는 기세로 등 뒤에서 속삭이는 낯선 목소리 때문에 분대원들은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바짝 마른 이병 하나가 당황한 얼굴로 그들을 마주 보고 쪼그려 앉아 있다. 바로 곁에서 여섯 시를 감시하던 정 상병도 놀란 표정이다.

“어! 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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